66호[기획] 청소년과 우리 사회 모두가 잘 살기 위한 선언 (레빗)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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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2021년의 선언들


청소년과 우리 사회 모두가 잘 살기 위한 선언



레빗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청소년은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한다
- 2021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


수능 시험이 있는 오늘, 모두가 ‘수능 대박’을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입시경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의 교육은 누군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경쟁 교육이며, 현재의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억압적인 교육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이제는 참지 않고 당당히 새로운 체제를 요구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과 국제중, 자사고 등 일부 특권 학교들은 학생들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줄 세워 선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내신, 특별 활동, 봉사 활동, 독서 기록 등 입시의 기준에 맞추려 학교생활을 저당 잡히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입시 결과를 트로피로 삼으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특혜를 제공한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차별 대우와 모멸감에 시달린다. 모든 청소년은 자신의 인격적 발달을 위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공공에 기여하기 위해 교육을 필요로 한다. 선발하기 위한 교육, 시험 성적과 자격에 따라 차별적인 기회를 주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입시 경쟁은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층 사다리”라는 것은 잘못된 교육이 지속되게 만들어 온 환상이다. 입시 경쟁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계급을 재생산하는 수단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 출신 대학은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이 체제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학생들이 서는 출발선은 모두 다르다. 상위 계층의 학생은 막대한 부를 들여 사교육과 입시 컨설팅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평범한 학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한편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을 겪으며 경기장에 설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무엇보다 입시 경쟁은 청소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 쏟아붓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규 수업에 더해 보충 수업, 야간 자율 학습, 사교육까지 엄청난 양의 학습 노동을 견뎌 낸다. 그러나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도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려나 ‘깔아 주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한국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이나 복통,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청소년도 많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파괴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은 청소년기에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청소년은 입시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입시 경쟁의 폐지를 원한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교육, 진정한 배움을 가로막는 교육, 불평등과 양극화를 부추기는 교육은 필요 없다.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어떤 교육을 받을지 선택하고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받는 목적은 더 높은 계층에 오르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효능감을 느끼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그 기회는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학생을 선발할 권한을 학교에게서 박탈하라. 우리에게는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나. 고교·대학의 서열을 폐지하고 평준화하라. 우리에게는 경쟁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나. 대학 등록금을 전면 무상화하라. 우리에게는 장벽 없이 공공을 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나. 학교에 만연한 성적 차별을 금지하라.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속도를 존중받으며 각자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하나. 학력·학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 우리에게는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2021년 11월 18일
청소년 선언자 (324명), 비청소년 지지 서명 (688명)
공동 제안 단위 (14개 단체)
고양시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이든, 교육공동체 나다, 노동당 청소년청년위원회(준),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부천청소년인권공동체 세움,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녹색당,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청년액션,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청소년은 자신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반강제적으로 자신들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온전한 인권을 갖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을 인권 침해에 노출되어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2021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떠올린 답은 ‘입시 경쟁’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 곧 청소년이 성장하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자 ‘평범한 삶’을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여겨진다. 더욱 처참한 것은 ‘청소년=학생=입시생’이라는 공식이 너무나 당연해서,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 이외의 길을 선택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청소년들의 건강을 해치고, 결국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몬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청소년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청소년들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입시 경쟁이 과열, 심화되면서 나타난 폐해이다. 입시 경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청소년 시기의 모든 시간과 역량을 입시에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입시 경쟁은 ‘입시 전쟁’이라 불리기도 한다. 입시를 치르는 이들이 직접 붙인 별칭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조하며 위안을 얻고, 전쟁 같은 입시에서 생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2021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은 결단코 입시 경쟁에서 패배했거나 입시를 거부하는 이들만의 선언이 아니다. 처음 선언을 기획·제안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 선언을 청소년이지만 입시 경쟁의 당사자가 아니거나 입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험난한 입시 경쟁을 견뎌 내는 청소년 등 다양한 입장에 놓인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입시에 반대하는 선언으로 기획했다. 이 선언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를 비롯하여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교육공동체 나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등 14개 단체가 공동 주최로 참여했다. 단체 외에도 최대한 다양한 청소년들이 모여 다양한 목소리로 하나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렇게 선언의 취지에 공감하는 청소년들의 서명을 모아 2021년 11월 18일, 약 51만 명의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지를 받아드는 날, 입시 경쟁 반대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 담긴 문제의식

〈2021 입시 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에는 5개의 요구를 담았다. 학교의 학생 선발 권한 박탈, 고교·대학 서열 폐지와 평준화, 대학 등록금 전면 무상화, 학교 내 성적 차별 금지, 학력·학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수립이다. 이것들은 입시 경쟁 교육 폐지를 위해서도,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평등한 사회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학을 선택하기는커녕, 전공까지도 성적에 맞춰 정해야 한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대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대학교를 이용하는 것이다.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이 학생들을 성적 기준으로 선발하는 고등학교도 결국은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대학도 공교육이고 수업은 학생이 듣는 것인데, 학생이 대학을 고르는 게 아니라 대학이 학생을 고른다는 건 이상하다. 학교는 학생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학생을 선발할 권한을 학교에게서 박탈하라는 요구는 학생에게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과 같다.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대학은 이미 고등교육 기관의 기능을 상실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 읊게 되는, 대학 서열에 따라 대학교 이름의 첫 글자를 딴 구절이다. 대학을 서열순으로 줄여 유행어처럼 외우고 다니는 나라는 아마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청소년들은 오직 더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 대부분의 자유를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한다. 저 대학 서열 순위에 등장할 만한 ‘주요 대학’ 정도는 나와야 취업이 될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 탓에 지방의 대학을 ‘지잡대’라고 비하하여 부르는 표현도 나타났다. 고교 서열 또한 여전히 존재하며,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법원이 위법하다고 판결 내리는 판국이다. 고교·대학의 서열을 폐지하고 평준화하는 것이 실현되지 않고서야, 우리는 영원히 경쟁에 얽매여 현재를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누군가 SKY 대학을 목표로 온종일 학원에서 지낼 동안, 누군가에겐 대학 자체가 하늘보다 먼 장소일 수 있다. 비싼 등록금 탓에 거의 모든 대학생이 크든 작든 학자금 대출이라는 짐을 짊어진 채 다니고 있다.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여 대학은 꿈도 못 꾸는 청소년들에게 대학 서열까지 따지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입시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학원비, 과외비, 교재비 등은 물론, ‘입시 코디네이터’까지 있을 정도이니 입시 경쟁에서 고소득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돈 들여 입시를 치르고 돈 내고 입학해야 하는 상황이다. 취업 가능성도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으니, ‘가성비’ 없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장벽 없는 공공의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 등록금을 전면 무상화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배우며 학생이 될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성적 차별’이라고 하면 복도에 전교생의 성적을 붙여 놓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성적 차별은 학교 안 분위기 자체에 이미 만연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생들은 “이제부터 옆 친구는 경쟁자”라는 말을 듣는다. 성적은 교사의 태도를 결정하고, 학급 안의 위치를 결정하며, 학교로부터 받는 특혜를 결정한다. 성적을 이유로 교사에게 무시당했다는 일화는 어딜 가나 들을 수 있다. 학생이 포기하기도 전에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성적 상위권에 속해야 허락되는 특별반이나 시설도 성적 차별에 해당한다. 누구든지 각자에게 맞는 역량과 속도, 적성이 있는 건데 현재의 교육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각자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마련되려면 학교 안에 만연한 성적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학생들은 서로의 적이 아니며, 학교는 경쟁이 아닌 공존의 공간이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이 과연 계급 사회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봉건 시대의 신분제가 사라진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다른 이름의 신분 제도를 재생산했다. 바로 학력과 학벌이다. 대졸이 아니면 변변한 직장은커녕 취직 자체가 힘든 사회, 대학 이름을 곧 능력이라 여기는 사회에서는 경쟁이 곧 일상이다. 그리고 학력과 학벌은 과거 신분제처럼 개인이 쉽게 넘어서거나 올라갈 수 없다. 그 결과 대한민국 사회가 극단적인 경쟁주의·능력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일부 사회 구성원들은 이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정부 또한 사회 구조를 뜯어고칠 의지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시민단체들에 더 열심히 문제를 지적하라고 하거나 개개인들에게 의식과 문화를 바꾸라고 떠넘길 수는 없다. 우리가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학력·학벌 차별 해소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청소년들과 사회가 병들지 않게 하기 위해

2021년 11월 18일, ‘수능 우선주의 국가’라고도 불리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청소년 324명을 포함해 1,018명의 시민이 입시 경쟁 반대 선언에 함께했다. 청소년 선언자 수가 목표보다 적었지만 현실을 생각해 보면 꽤 엄청난 성과인 것 같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이 선언에, 300명 넘는 청소년이 취지에 동의하고 흔쾌히 서명해 주었다. 청소년 324명이 지지자 694명의 손을 잡고 다 함께 “청소년은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한다!”라고 외친 셈이다. 이 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바로 당사자성에 있다.


선언 발표 기자 회견이 생각보다 많이 보도되면서 여러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동이 꽤 파격적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열등감’ 때문이라 말했지만, 그런 반응조차 입시가 폐지되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취업을 지망하는 고등학생으로 입시 경쟁의 장외에 있다. 수능을 보지 않으며 대학 입시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입시 경쟁과 관계가 없지는 않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입시 경쟁의 연결고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성과 중심 체제나 끝없는 경쟁과 성장 위주의 사회 분위기가 그중 일부이다. 모든 일에 높은 결과를 요구하며 구성원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쉴 틈을 주지 않는 사회생활은 마치 입시 경쟁에 찌들어 치열한 일상을 보내는 학교생활을 확장해 놓은 듯하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듯이, 청소년에게 부과된 사회의 요구가 고스란히 재생산되는 현상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가고 있다.


물론 그까짓 입시 경쟁, 안 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시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거부를 택했을 때 어떤 현실을 마주할까? 우선 우리는 이 사회에서 ‘비주류’가 될 것이다. 왜 그런 길을 선택했냐는 질문과 끊임없이 마주할 것이며,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에서 우리의 자리가 없음을 실감할 것이다. 취업에서 대졸들에게 승리를 양보할 것이며 나중에는 더 많은 임금과 승진 기회까지 내줄 것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 실습에서, 고졸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을 때마다 들려오는 “저래서 대학을 가야 해”라는 말에 주저앉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 대학이 취업 기관이었고, VIP의 자격이었으며, 사람 목숨의 조건이었는지. 나는 실제로 왜 굳이 그런 힘든 길을 선택했느냐 질문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마치 내가 길을 잃은 사람이 된 것처럼, 내 잘못이 아니라 이 세상이 이상한 거라며 해명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청소년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나는 가끔 이 사회가 청소년을 학대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입시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입시를 통해 받는 정신적 고통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살하고 싶다” 같은 말은 별일도 아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일상적이게 되었고 자해가 유행처럼 퍼지기도 했다. 이미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다. 사회가 이를 외면하고 정당화할 동안에 수많은 청소년이 목숨을 잃었거나 잃어 가고 있다. 이는 수치를 따질 필요도 없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이다.


장시간 공부로 인해 일찍이 허리 디스크에 걸리거나 손목 통증을 호소하는 청소년도 많다. 이들이 병원에 다니고 치료하는 이유는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잠을 이겨 내고, 수면 부족에 시달려도 공부 시간을 늘린다. 내 친구들은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해 시험 기간 전후로는 월경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체 사회는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는 것인가? 청소년들은 입시 경쟁으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데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해 주는 건 겨우 “3년만 죽었다고 생각해라” 같은 말이다. 단언컨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인생에서 아주 잠깐의 시기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할 수 없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와의 관계를 라이벌로서 인식하게 하는 존재. 모든 청소년이 한 번씩은 친한 친구라도 시험을 못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경기 남양주, 청소년)
“내게 입시 경쟁은 정신을 팔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학교의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하면 그때마다 입시에 가로막힌다. 모임을 가지려 해도 입시로 인해 모이기 쉽지 않다. 입시 경쟁은 학교의 부당함으로부터 정신을 팔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최**, 강원 강릉, 청소년)
“입시 때문에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가 생겨 3년째 투병 중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입시 교사들과 왜곡된 학력주의는 칼이었어요. 제발 폐지를 원합니다.” (자*, 경기 고양, 비청소년)
“우린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다. 내가 낭떠러지 위로 올라가려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저 끝도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긴박한 낭떠러지에서도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을 낭떠러지 위로 올려 주고 싶다. 더 이상 입시로 고통받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사람이다. 제발 그걸 잊지 말아 달라.” (이**, 충남 홍성, 청소년)

- ‘당신에게 입시 경쟁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선언 참여자들의 답변



매년 수능 날이 가까워지면 이상할 정도로 온 사회가 수험생들에게 집중한다. 우리는 그들이 입시 경쟁에서 승리할지 대신에, 그들이 병들거나 죽지 않을 방법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의 청소년이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며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하는’ 청소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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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