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마지막 회
다시, 보편의 ‘대학생’을 불러 보기
- 인터뷰를 마치며, 대학생운동의 현실과 과제에 대한 소회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흘러넘치는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의 홍수 속에, 대학 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체들을 만나 대학생이 바라보는 대학의 위기를 질문하기 위한 7번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3곳의 전국적 대학생운동단체(대학 언론, 총학생회 연대체, 교대 연대체)와 4곳의 개별 대학 학내 단위(동아리, 인권위원회, 노학연대 모임, 생활도서관)를 만난 소감을 풀기에 앞서, 이번 연속 인터뷰 기획의 가장 치명적인 결점에 대한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려 한다.
사실 이 인터뷰는 구성에서부터 실패했다. 4곳의 개별 대학 학내 단위들이 모두 서울에 위치해 소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주요 대학들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고한 대학 서열 체제와 특히 취약한 지방 사립대를 대상으로 각종 압력이 차등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빗대어 봤을 때 이는 큰 한계다. 서울에 위치한 주요 대학 주체들의 인터뷰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운동을 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한국 대학 사회 전반의 위기에 대한 적절한 진단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변명하자면 인터뷰 대상의 물색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무능력이 초래한 실패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축된 대학 사회의 조건 속에서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는 단위들을 찾기 어려워 부득이 언론 보도나 SNS에 노출되는 ‘운동’의 흔적들에 의존한 한계가 컸다. 단순한 대학생 ‘활동’이 아니라 운동적 성향을 가진 단위를 만나려는 의도가 어찌 보면 운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대학들만 선별하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 준 단위 및 활동가들과 부족한 역량으로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전국의 대학생운동들, 무엇보다 기획을 풀어 갈 공간을 할애해 준 《오늘의 교육》 지면과 독자들께 사과드린다.
한계가 명백한 구성이었지만 그럼에도 연속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름의 소회를 정리하려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학생운동들이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운동의 궤적을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려 왔고 그려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이전의 운동을 계승하면서 혹은 단절과 쇄신을 꾀하면서, 2010년대에 설립된 단위도, 1990년대·2000년대부터 자신들의 의제와 운동을 지켜 온 단위도, 학내외 조건의 변화와 붕괴 속에서 2010년대·2020년대에 문을 연 단위도 있었다. 대학생운동은 언제나 무너지고 있었다는 통념과 달리 새로운 시도와 운동 들이 여전히 대학에서 전개되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인터뷰마다 소소한 위로를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터뷰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쳤지만 미처 직접 만나지 못한 단위들도 자신들의 운동을 활발하게 이어 왔음은 물론이다. 대학에서의 운동을 낭만적인 향수로 회고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를 경계해야 하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간 황야에서 여러 운동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이 이번 연속 인터뷰의 중요한 의미였다.
파편화된 현실
그렇다면 범람하는 대학의 위기 담론을 대학생운동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몇 가지 화두를 제기해 본다. 다만 이 화두는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전체 대학생운동(혹은 활동) 전반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첫째, 오늘의 대학생운동과 그 주체들은 적극적으로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면서도, 동시에 ‘대학의 위기’에 대한 전체적인 진단은 부재해 있었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도 이미 붕괴와 소멸이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대학생운동이 나름의 활동을 이어 온 원동력은 각자의 의제에 대한 치밀한 진단에 근거했다. 다시 말해, 각자의 운동들은 왜 자신들이 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마땅한 이유를, 왜 자신들의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당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와 당위는 오늘의 ‘대학’이 얼마나 문제적이고 위기에 직면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과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대학이 왜 문제적이고 위기에 직면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각자의 의제가 지적하고 있는 대학의 문제와 위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짓는,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대학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재했던 게 아닐까. 왜 대학 언론이 대학 사회에서 소외되는지, 전통적인 총학생회와 그 연대체에 대한 지지와 관심이 희미해지는지, 학내 대학생운동의 비판적인 의제들에 대한 백래시와 공격이 왜 일상화되는지 각각의 분석은 활발하지만 이 전체를 묶는 설명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소외와 무관심과 공격은 과연 상호 독립적인가? 물론 모든 운동이 항상 거대한 질문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의 문제의식을 연결할 수 있는 보편적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질문의 부재는, 곧 오늘의 대학생운동이 직면하는 일반적인 위기로 이어진다.
여기서 둘째, 인터뷰로 만난 모든 대학생운동은 이중의 ‘파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한편에서 보편적인 질문이 부재한 결과 개별 운동들이 제기하는 의제들이 파편화된다. 일례로 등록금 의제는 필연적으로 현저히 낮은 고등교육의 공적 부담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학 법인 위주의 대학 재정 위기에서 비롯되지만,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현시점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대학 재정 지원 사업을 매개로 재정이 취약한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에 대한, 나아가 결국 누가 고등교육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제기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의제별로 필요한 전략적 선택에 따른 전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등록금 이외의 의제 자체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동시에 대학생운동 단위들의 대학 캠퍼스 간, 그리고 캠퍼스 내에서의 파편화가 관찰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위축된 학생 자치의 열악한 조건하에서, 전국 단위 연대체들은 참여 단위 감소 경향이 뚜렷하고, 개별 대학 내 단위와 주체들은 학내외에서의 공격이나 고립에 대한 경계가 일상화된 것 같다. 다행히 인터뷰에서 만난 단위들은 원활하게 새로운 구성원들이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애초에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단위들이 추려진 부수적인 효과가 아니었을까. 인터뷰이 물색 과정에서 찾은,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에 수소문한 다른 여러 운동 단위들은 재생산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거나 소멸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새롭게 등장한 단위들만큼 학생 사회 위축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진 단위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과 고군분투는 오늘의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 상당히 오랫동안) 대학생운동 그 자체를 표현한다.
의제의 파편화가 대학생운동 단위와 주체들의 파편화의 원인인지, 반대로 단위와 주체들의 파편화가 의제의 파편화를 추동한 것인지, 둘 중 어떤 파편화가 선행하고 원인이 되었는지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두 파편화가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순환을 그리며 서로를 더 잘개 쪼개고 있는 악순환의 반복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이중의 파편화는 오늘의 대학생운동들의 조직 형태나 의제와 무관하게 하나의 막다른 경로를 강제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의 효과와 한계
가장 핵심인 셋째, 파편화의 결과 운동 단위들이 ‘진입 장벽을 낮춰 최대한의 참여를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는 경향이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로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인 것’ 혹은 ‘운동권스러운’ 외양과 형식을 지양하는 형태로 구체화한다. 물론 이는 단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학내외의 오래된 탈정치적이고 반운동적인 분위기, 특히나 에브리타임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발산된 폭력적인 에너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적응의 결과에 가깝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성 제도권 정치나 사회운동과의 접점을 최소화하고, 특히 학내에서 전통적인 운동권을 연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오늘의 대학생운동 단위들은, 인터뷰 말미의 공통 질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운동’으로 정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운동을 ‘운동권스럽지 않게’ 전개해야 하는 역설적인 조건을 강요받고 있었다.
이러한 형식의 표백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닌 것이, 이미 1990년대부터 대학생운동의 헤게모니가 상실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국 대학가 어디서나 흔히 관찰되던 현상이기도 했다. 물론 형식의 문제가 오늘날 대학생운동이 해결해야 할 위기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운동과 그 구체적인 활동의 양상이 꼭 ‘운동권스러워’야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의 확장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여지도 있다. 다만 1990년대 대학생운동의 균열 때부터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반정치, 탈정치적인 경로로의 전환 시도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인 것 자체를 외면하는 것으로 대학과 학생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요구된다. 반갑게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각자의 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형식적 측면과 함께 의제 자체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를 주로 제시하거나, 의제는 제시하되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성은 비워 두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핵심은 여기에 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의 대표적인 예시는 역시나 등록금 문제, 혹은 이와 유사한 대학생 재정 문제 등 고등교육 비용의 문제일 것이다. 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차고 넘치고, 관련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서도 다룬 바 있으니❶ 여기에서는 ‘모두의 동의’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보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만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원리를 충실하게 준수한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의제는 애초부터 배제된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또는 의제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구체적인 요구와 대안도 모두가 동의한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의 난점도 만만하지 않다.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개별 대학생들의 재정적 부담과 직결된 등록금 인상의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화두다. 하지만 고등교육 비용을 국가와 민간 중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록금 법정 상한제 이후에도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국가 부담 비중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대학 운영은 상당 부분 등록금에 의존하지만 등록금을 부담하는 대학생들이 대학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대학 소유와 운영의 분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배제되고 있다.
등록금 문제를 벗어나 다른 의제를 보면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의 난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 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쟁점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학령 인구 감소에 의한 대학 구조 조정이 오늘날 대학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이지만, 정작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집단적 대응은 요원하다. 일부 학문 단위 소속 학생들의 산발적인 저항의 흔적들도 무관심 속에 사그라진다. 등록금 수익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사학 중심 대학 재정 구도에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등록금 수익의 감소는 곧 재정의 위기이며, 때문에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과 연계된 대학 구조 조정은 어떤 학문 단위와 구성원들이 그 대학의 생존을 위해 사라져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즉, 기업에서의 구조 조정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모두가 동의하는 대학 구조 조정’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러한 대학 의제의 배제를 제도권 정치의 편의에 따른 청년·대학생 동원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접근은 파편화의 악순환 속에 오늘날의 대학생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쪼개지고 있고 앞으로도 쪼개질 것이 분명한 운동은 스스로의 보전을 위해 논쟁적인 쟁점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부담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보전의 논리로, 의제는 유지하되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성을 비워 두는 전략이 특히 개별 대학에서 활동하는 기층 단위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는 점이 이번 연속 기획을 통해 짚어야 할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각각의 단위들은 학내외 노동, 소수자, 자치 공간 등 탈정치화된 학생 사회에서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논쟁적인 의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단위 스스로에 구체적인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었다. 즉, 의제는 제시하되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와 지향으로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백으로 남겨 둔다. 이는 단위의 재생산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되는데, 구성원들이 구체적인 방향성에 관한 진입 장벽에 막혀 이탈하지 않게, 단위의 구심력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이다. 일상적인 재생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오늘날 단위들의 조건에서 이러한 전략적 선택의 합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의 부수적 효과는 한편에서 단위와 운동의 유연성이 확장된다는 점이다.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합류하고, 운동의 관성을 넘어 구성원들의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급변하는 쟁점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운동이 내세우는 강령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선명한지 여부가 그 운동의 의미를 담보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정도는 운동이 추구하는 목표와 발 딛고 선 환경의 조건, 그리고 그 운동에 결합하는 구성원들의 동의의 정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터뷰에서도 몇 차례 지적했던 것처럼, 진입 장벽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크다. 결국 앞서 확인한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에 기반해 진입 장벽이 무한히 낮아진다면 근본적으로 단위의 재생산을 위한 합리적 고려의 수준을 넘어 의제‘만’ 남는, 좌표 상실과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의제를 어떤 문제의식과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정 부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 운동의 재생산에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단위가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 운동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한편에서 이미 문제의식과 운동성을 갖춘 주체들이 단위 외부에서 수혈되기 때문은 아닐까? 단위가 구체적인 방향성을 근거로 구성원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그 운동의 방향성은 외부에서 진입하는 ‘주어진’ 주체들의 공급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단위와 운동에 방향성을 요구하지 않는 준비된 주체들이 더 이상 대학 사회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진입 장벽을 아무리 낮춰도 운동의 재생산이 담보될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단위의 의제에 동의하는 주어진 주체들의 규모와, 의제에 동의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단위가 설득할 수 있는 예비 구성원들의 규모 중 어느 집단이 보다 많은 재생산의 기회를 부여할까?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적어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오늘의 대학생운동들은 ‘대학의 위기’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의식이 부재한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 원인은 대학생운동들이 의제의 파편화와 단위 및 주체의 파편화를 이중으로 강제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중의 파편화는 대학생운동들이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 아래 의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거나, 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대신 단위의 방향성을 열어 두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진입 장벽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간 공백으로 남아 있어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언제까지 준수할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보편적 대학생운동의 복원
물론 지금 여기의 대학생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에 비하자면, 이건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느낀 감상을 정리한 소회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 외부의 관찰자의 관점에서 감히 제언하자면, 돌파구는 이중의 파편화를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실마리로 잘개 쪼개진 학생 사회 의제들과 단위들을 연결하는 보편적 ‘대학생’ 담론의 복원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대학생운동의 의제와 그 내용이 논쟁적이고 구체적으로 쟁점화되어야 한다. 이미 인터뷰로 만난 모든 단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 구체적인 쟁점화는 개별 의제와 개별 캠퍼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 대학 사회 보편의 문제의식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수직적으로는 대학 서열 체제, 수평적으로는 교육부가 독점하고 있는 고등교육 정책하에 상당 부분 통합되어 있다. 국공립과 사립, 수도권과 지역, 대학 서열 등 대학과 대학을 구분 짓는 경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위기와 대학 내 각종 문제들은 상당 부분 유사하며 톱니바퀴처럼 연동된다. 때문에 각각의 대학생운동 단위들은 자신들의 의제를 한국 대학 체계와 전국적 학생 사회 일반의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 등록금 인상에 상한이 생기면서 누적된 대학들의 재정적 불만은 2020년대 진입 후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정원과 고등학교 졸업자 수의 역전 현상’ 이래 실체적인 재정 위기로 전환된다. 비록 대학 서열 체제에 따라 재정 위기의 압박은 차등적으로 가해지지만, 수도권 대학들은 대학 내 노동의 외부화나 교육 환경 하락, 학생 자치 보장 축소로 대표되는 비용 절감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취약한 지역 사립 대학들은 이러한 비용 절감과 함께 학령 인구 감소분만큼 스스로의 양적 축소를 전제한 통폐합과 학문 단위 구조 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교육부는 각종 재정 지원과 연계된 구조 조정 정책을 통해 일련의 과정에 박차를 가한다. 이 지리한 과정 속에서 대학 법인이 독점하고 있는 학내 의사 결정 구조에 학생 사회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기저의 재정 위기와 고등교육 비용의 문제,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 조정 문제, 학내 민주주의와 의사 결정의 문제가 밀접하고 인과적인 순환을 그리는 가운데 대학(캠퍼스)별로 체감하는 표면상의 문제가 각기 상이하게 드러나는 형국이다. 결국 오늘날의 대학생운동에 제기되는 핵심적인 질문은 각자 상이하게 경험하는 표면상·체감상의 문제에 각자도생으로 대응할 것인지, 기저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대학 체계 일반에 보편적 대응을 조직할 것인지다.
운동의 구체성을 주장하면서 추상적인 선언을 반복하는 민망함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다시 보편의 ‘대학생’을 상상해야 할 때다. 의제와 각각의 개별 대학, 캠퍼스, 각자의 운동에서 고립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운동과 활동에 적극적 연대를 모색하는 기회의 장을 기대한다. 보편의 문제의식을 세우고 이견과 갈등을 우회하지 않으며 각 단위들이 근거하고 있는 학생 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학 체계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운동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제와 단위의 파편화를 보편의 대학생으로 묶어 내며, 나아가 ‘대학의 위기’에 대한 전국적 학생 사회 일반 나름의 담론을 세우는 보편적 대학생운동의 복원이 곧 운동과 단위들의 재생산을 위한 확실한 돌파구임을 오늘의 대학생운동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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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남(2020), 〈재난의 비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의 재구성으로 - 대학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와 한계〉, 《오늘의 교육》, 57(2020년 5·6월).
[연재]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마지막 회
다시, 보편의 ‘대학생’을 불러 보기
- 인터뷰를 마치며, 대학생운동의 현실과 과제에 대한 소회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흘러넘치는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의 홍수 속에, 대학 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체들을 만나 대학생이 바라보는 대학의 위기를 질문하기 위한 7번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3곳의 전국적 대학생운동단체(대학 언론, 총학생회 연대체, 교대 연대체)와 4곳의 개별 대학 학내 단위(동아리, 인권위원회, 노학연대 모임, 생활도서관)를 만난 소감을 풀기에 앞서, 이번 연속 인터뷰 기획의 가장 치명적인 결점에 대한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려 한다.
사실 이 인터뷰는 구성에서부터 실패했다. 4곳의 개별 대학 학내 단위들이 모두 서울에 위치해 소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주요 대학들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고한 대학 서열 체제와 특히 취약한 지방 사립대를 대상으로 각종 압력이 차등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빗대어 봤을 때 이는 큰 한계다. 서울에 위치한 주요 대학 주체들의 인터뷰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운동을 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한국 대학 사회 전반의 위기에 대한 적절한 진단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변명하자면 인터뷰 대상의 물색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무능력이 초래한 실패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축된 대학 사회의 조건 속에서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는 단위들을 찾기 어려워 부득이 언론 보도나 SNS에 노출되는 ‘운동’의 흔적들에 의존한 한계가 컸다. 단순한 대학생 ‘활동’이 아니라 운동적 성향을 가진 단위를 만나려는 의도가 어찌 보면 운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대학들만 선별하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 준 단위 및 활동가들과 부족한 역량으로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전국의 대학생운동들, 무엇보다 기획을 풀어 갈 공간을 할애해 준 《오늘의 교육》 지면과 독자들께 사과드린다.
한계가 명백한 구성이었지만 그럼에도 연속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름의 소회를 정리하려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학생운동들이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운동의 궤적을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려 왔고 그려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이전의 운동을 계승하면서 혹은 단절과 쇄신을 꾀하면서, 2010년대에 설립된 단위도, 1990년대·2000년대부터 자신들의 의제와 운동을 지켜 온 단위도, 학내외 조건의 변화와 붕괴 속에서 2010년대·2020년대에 문을 연 단위도 있었다. 대학생운동은 언제나 무너지고 있었다는 통념과 달리 새로운 시도와 운동 들이 여전히 대학에서 전개되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인터뷰마다 소소한 위로를 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터뷰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쳤지만 미처 직접 만나지 못한 단위들도 자신들의 운동을 활발하게 이어 왔음은 물론이다. 대학에서의 운동을 낭만적인 향수로 회고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를 경계해야 하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간 황야에서 여러 운동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이 이번 연속 인터뷰의 중요한 의미였다.
파편화된 현실
그렇다면 범람하는 대학의 위기 담론을 대학생운동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몇 가지 화두를 제기해 본다. 다만 이 화두는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전체 대학생운동(혹은 활동) 전반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첫째, 오늘의 대학생운동과 그 주체들은 적극적으로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면서도, 동시에 ‘대학의 위기’에 대한 전체적인 진단은 부재해 있었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도 이미 붕괴와 소멸이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대학생운동이 나름의 활동을 이어 온 원동력은 각자의 의제에 대한 치밀한 진단에 근거했다. 다시 말해, 각자의 운동들은 왜 자신들이 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마땅한 이유를, 왜 자신들의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당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와 당위는 오늘의 ‘대학’이 얼마나 문제적이고 위기에 직면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과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대학이 왜 문제적이고 위기에 직면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각자의 의제가 지적하고 있는 대학의 문제와 위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짓는,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대학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재했던 게 아닐까. 왜 대학 언론이 대학 사회에서 소외되는지, 전통적인 총학생회와 그 연대체에 대한 지지와 관심이 희미해지는지, 학내 대학생운동의 비판적인 의제들에 대한 백래시와 공격이 왜 일상화되는지 각각의 분석은 활발하지만 이 전체를 묶는 설명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소외와 무관심과 공격은 과연 상호 독립적인가? 물론 모든 운동이 항상 거대한 질문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의 문제의식을 연결할 수 있는 보편적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질문의 부재는, 곧 오늘의 대학생운동이 직면하는 일반적인 위기로 이어진다.
여기서 둘째, 인터뷰로 만난 모든 대학생운동은 이중의 ‘파편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한편에서 보편적인 질문이 부재한 결과 개별 운동들이 제기하는 의제들이 파편화된다. 일례로 등록금 의제는 필연적으로 현저히 낮은 고등교육의 공적 부담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학 법인 위주의 대학 재정 위기에서 비롯되지만,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현시점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대학 재정 지원 사업을 매개로 재정이 취약한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에 대한, 나아가 결국 누가 고등교육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제기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의제별로 필요한 전략적 선택에 따른 전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등록금 이외의 의제 자체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동시에 대학생운동 단위들의 대학 캠퍼스 간, 그리고 캠퍼스 내에서의 파편화가 관찰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위축된 학생 자치의 열악한 조건하에서, 전국 단위 연대체들은 참여 단위 감소 경향이 뚜렷하고, 개별 대학 내 단위와 주체들은 학내외에서의 공격이나 고립에 대한 경계가 일상화된 것 같다. 다행히 인터뷰에서 만난 단위들은 원활하게 새로운 구성원들이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애초에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단위들이 추려진 부수적인 효과가 아니었을까. 인터뷰이 물색 과정에서 찾은,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에 수소문한 다른 여러 운동 단위들은 재생산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거나 소멸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새롭게 등장한 단위들만큼 학생 사회 위축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진 단위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과 고군분투는 오늘의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 상당히 오랫동안) 대학생운동 그 자체를 표현한다.
의제의 파편화가 대학생운동 단위와 주체들의 파편화의 원인인지, 반대로 단위와 주체들의 파편화가 의제의 파편화를 추동한 것인지, 둘 중 어떤 파편화가 선행하고 원인이 되었는지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두 파편화가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순환을 그리며 서로를 더 잘개 쪼개고 있는 악순환의 반복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이중의 파편화는 오늘의 대학생운동들의 조직 형태나 의제와 무관하게 하나의 막다른 경로를 강제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의 효과와 한계
가장 핵심인 셋째, 파편화의 결과 운동 단위들이 ‘진입 장벽을 낮춰 최대한의 참여를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는 경향이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로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인 것’ 혹은 ‘운동권스러운’ 외양과 형식을 지양하는 형태로 구체화한다. 물론 이는 단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학내외의 오래된 탈정치적이고 반운동적인 분위기, 특히나 에브리타임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발산된 폭력적인 에너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적응의 결과에 가깝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성 제도권 정치나 사회운동과의 접점을 최소화하고, 특히 학내에서 전통적인 운동권을 연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오늘의 대학생운동 단위들은, 인터뷰 말미의 공통 질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운동’으로 정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운동을 ‘운동권스럽지 않게’ 전개해야 하는 역설적인 조건을 강요받고 있었다.
이러한 형식의 표백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닌 것이, 이미 1990년대부터 대학생운동의 헤게모니가 상실되어 가는 과정에서 전국 대학가 어디서나 흔히 관찰되던 현상이기도 했다. 물론 형식의 문제가 오늘날 대학생운동이 해결해야 할 위기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운동과 그 구체적인 활동의 양상이 꼭 ‘운동권스러워’야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의 확장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여지도 있다. 다만 1990년대 대학생운동의 균열 때부터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반정치, 탈정치적인 경로로의 전환 시도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인 것 자체를 외면하는 것으로 대학과 학생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요구된다. 반갑게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단위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각자의 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형식적 측면과 함께 의제 자체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를 주로 제시하거나, 의제는 제시하되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성은 비워 두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핵심은 여기에 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의 대표적인 예시는 역시나 등록금 문제, 혹은 이와 유사한 대학생 재정 문제 등 고등교육 비용의 문제일 것이다. 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차고 넘치고, 관련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서도 다룬 바 있으니❶ 여기에서는 ‘모두의 동의’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보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만 다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적 원리를 충실하게 준수한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두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의제는 애초부터 배제된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또는 의제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구체적인 요구와 대안도 모두가 동의한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의 난점도 만만하지 않다.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개별 대학생들의 재정적 부담과 직결된 등록금 인상의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화두다. 하지만 고등교육 비용을 국가와 민간 중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록금 법정 상한제 이후에도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국가 부담 비중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대학 운영은 상당 부분 등록금에 의존하지만 등록금을 부담하는 대학생들이 대학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대학 소유와 운영의 분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배제되고 있다.
등록금 문제를 벗어나 다른 의제를 보면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의 난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 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쟁점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학령 인구 감소에 의한 대학 구조 조정이 오늘날 대학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이지만, 정작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집단적 대응은 요원하다. 일부 학문 단위 소속 학생들의 산발적인 저항의 흔적들도 무관심 속에 사그라진다. 등록금 수익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사학 중심 대학 재정 구도에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등록금 수익의 감소는 곧 재정의 위기이며, 때문에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과 연계된 대학 구조 조정은 어떤 학문 단위와 구성원들이 그 대학의 생존을 위해 사라져야 할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즉, 기업에서의 구조 조정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모두가 동의하는 대학 구조 조정’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러한 대학 의제의 배제를 제도권 정치의 편의에 따른 청년·대학생 동원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접근은 파편화의 악순환 속에 오늘날의 대학생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쪼개지고 있고 앞으로도 쪼개질 것이 분명한 운동은 스스로의 보전을 위해 논쟁적인 쟁점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부담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보전의 논리로, 의제는 유지하되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성을 비워 두는 전략이 특히 개별 대학에서 활동하는 기층 단위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는 점이 이번 연속 기획을 통해 짚어야 할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각각의 단위들은 학내외 노동, 소수자, 자치 공간 등 탈정치화된 학생 사회에서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논쟁적인 의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단위 스스로에 구체적인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었다. 즉, 의제는 제시하되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와 지향으로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백으로 남겨 둔다. 이는 단위의 재생산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되는데, 구성원들이 구체적인 방향성에 관한 진입 장벽에 막혀 이탈하지 않게, 단위의 구심력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이다. 일상적인 재생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오늘날 단위들의 조건에서 이러한 전략적 선택의 합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의 부수적 효과는 한편에서 단위와 운동의 유연성이 확장된다는 점이다.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합류하고, 운동의 관성을 넘어 구성원들의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급변하는 쟁점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운동이 내세우는 강령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선명한지 여부가 그 운동의 의미를 담보하지 않는다. 그 구체적인 정도는 운동이 추구하는 목표와 발 딛고 선 환경의 조건, 그리고 그 운동에 결합하는 구성원들의 동의의 정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터뷰에서도 몇 차례 지적했던 것처럼, 진입 장벽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크다. 결국 앞서 확인한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에 기반해 진입 장벽이 무한히 낮아진다면 근본적으로 단위의 재생산을 위한 합리적 고려의 수준을 넘어 의제‘만’ 남는, 좌표 상실과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의제를 어떤 문제의식과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정 부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 운동의 재생산에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단위가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 운동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한편에서 이미 문제의식과 운동성을 갖춘 주체들이 단위 외부에서 수혈되기 때문은 아닐까? 단위가 구체적인 방향성을 근거로 구성원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그 운동의 방향성은 외부에서 진입하는 ‘주어진’ 주체들의 공급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단위와 운동에 방향성을 요구하지 않는 준비된 주체들이 더 이상 대학 사회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진입 장벽을 아무리 낮춰도 운동의 재생산이 담보될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단위의 의제에 동의하는 주어진 주체들의 규모와, 의제에 동의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단위가 설득할 수 있는 예비 구성원들의 규모 중 어느 집단이 보다 많은 재생산의 기회를 부여할까?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적어도 인터뷰를 통해 만난 오늘의 대학생운동들은 ‘대학의 위기’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의식이 부재한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 원인은 대학생운동들이 의제의 파편화와 단위 및 주체의 파편화를 이중으로 강제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중의 파편화는 대학생운동들이 모두가 동의한다는 원리 아래 의제의 진입 장벽을 낮추거나, 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대신 단위의 방향성을 열어 두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진입 장벽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간 공백으로 남아 있어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언제까지 준수할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보편적 대학생운동의 복원
물론 지금 여기의 대학생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에 비하자면, 이건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느낀 감상을 정리한 소회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 외부의 관찰자의 관점에서 감히 제언하자면, 돌파구는 이중의 파편화를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실마리로 잘개 쪼개진 학생 사회 의제들과 단위들을 연결하는 보편적 ‘대학생’ 담론의 복원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대학생운동의 의제와 그 내용이 논쟁적이고 구체적으로 쟁점화되어야 한다. 이미 인터뷰로 만난 모든 단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 구체적인 쟁점화는 개별 의제와 개별 캠퍼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 대학 사회 보편의 문제의식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수직적으로는 대학 서열 체제, 수평적으로는 교육부가 독점하고 있는 고등교육 정책하에 상당 부분 통합되어 있다. 국공립과 사립, 수도권과 지역, 대학 서열 등 대학과 대학을 구분 짓는 경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위기와 대학 내 각종 문제들은 상당 부분 유사하며 톱니바퀴처럼 연동된다. 때문에 각각의 대학생운동 단위들은 자신들의 의제를 한국 대학 체계와 전국적 학생 사회 일반의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 이후 등록금 인상에 상한이 생기면서 누적된 대학들의 재정적 불만은 2020년대 진입 후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정원과 고등학교 졸업자 수의 역전 현상’ 이래 실체적인 재정 위기로 전환된다. 비록 대학 서열 체제에 따라 재정 위기의 압박은 차등적으로 가해지지만, 수도권 대학들은 대학 내 노동의 외부화나 교육 환경 하락, 학생 자치 보장 축소로 대표되는 비용 절감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취약한 지역 사립 대학들은 이러한 비용 절감과 함께 학령 인구 감소분만큼 스스로의 양적 축소를 전제한 통폐합과 학문 단위 구조 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교육부는 각종 재정 지원과 연계된 구조 조정 정책을 통해 일련의 과정에 박차를 가한다. 이 지리한 과정 속에서 대학 법인이 독점하고 있는 학내 의사 결정 구조에 학생 사회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기저의 재정 위기와 고등교육 비용의 문제,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 조정 문제, 학내 민주주의와 의사 결정의 문제가 밀접하고 인과적인 순환을 그리는 가운데 대학(캠퍼스)별로 체감하는 표면상의 문제가 각기 상이하게 드러나는 형국이다. 결국 오늘날의 대학생운동에 제기되는 핵심적인 질문은 각자 상이하게 경험하는 표면상·체감상의 문제에 각자도생으로 대응할 것인지, 기저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대학 체계 일반에 보편적 대응을 조직할 것인지다.
운동의 구체성을 주장하면서 추상적인 선언을 반복하는 민망함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다시 보편의 ‘대학생’을 상상해야 할 때다. 의제와 각각의 개별 대학, 캠퍼스, 각자의 운동에서 고립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운동과 활동에 적극적 연대를 모색하는 기회의 장을 기대한다. 보편의 문제의식을 세우고 이견과 갈등을 우회하지 않으며 각 단위들이 근거하고 있는 학생 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학 체계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운동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제와 단위의 파편화를 보편의 대학생으로 묶어 내며, 나아가 ‘대학의 위기’에 대한 전국적 학생 사회 일반 나름의 담론을 세우는 보편적 대학생운동의 복원이 곧 운동과 단위들의 재생산을 위한 확실한 돌파구임을 오늘의 대학생운동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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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남(2020), 〈재난의 비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의 재구성으로 - 대학 등록금 반환 운동의 의의와 한계〉, 《오늘의 교육》, 57(2020년 5·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