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지상 중계]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 | ‘해방적 관계로서의 돌봄’을 발명하는 교육운동이 필요하다 | 조한진희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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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중계] ‘돌봄’ 중심으로의 전환, 무해한 말들을 넘어 정치적인 전망으로


‘해방적 관계로서의 돌봄’을 발명하는 

교육운동이 필요하다

- 어린이는 일방적인 교육이나 돌봄의 대상이 아니다

 


조한진희(반다)

iingmodo@gmail.com

다른몸들 활동가, 

《돌봄이 돌보는 세계》 편저자,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지금은 낡고 어색한 말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1989년 전교조 출범 이후, 교사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기까지는 10년의 지난한 세월이 필요했다. 또 한편 그 시절에는 “보살핌(돌봄)은 노동이 아니다”라는 말도 흔했다. 교사를 노동자로 ‘폄훼’하는 ‘운동권’에게 분노하는 이들과 ‘숭고한 모성에 의한 돌봄’을 노동으로 ‘폄훼’하는 페미니스트에게 분노하는 정서가 상당했다. 노동에 대한 천시가 더 노골적이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제법 세월이 흐른 뒤 “학교는 교육 기관이지 돌봄 기관이 아니다”라는 말이 등장했다. 2020년 학교 돌봄전담사 파업 시기다. 이후 돌봄과 교육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어 오고 있지만, 진보적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교육이냐 돌봄이냐’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서,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은 것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돌봄을 주제로 다양한 운동을 해 오고 있지만, 현재 교육운동을 함께 하고 있지 않은 위치에서 교육과 돌봄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 온 경로 혹은 현장의 운동 경험이 교육과 돌봄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키는 데 다소나마 유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던 1990년대 초반, 고등학생운동을 하던 나는 자주적 학생회 건설을 위한 공청회에서 이런 토론을 했다. ‘학생이 잘못을 했을 때 교사가 청소를 시키며 노동을 징벌로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대안을 요구할 것인가. 교사는 노동자이고 노동자는 자랑스러운 이름이라고 말하는 상당수 전교조 교사들조차, 징벌로서 노동이 주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없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판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체벌에 대한 제재가 없었고 물리적 폭력이 흔하던 시절이다. 사실 회초리 대신 청소가 나름 진보적인 실천이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더 진보적일 것을 요구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여성단체에서 활동을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모성을 신성시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자가 임신하면 해고를 단행하는’ 사측에 맞서 부당 해고 철회 투쟁을 했다. 사측과의 싸움은 어렵지만 단순했다. 그러나 투쟁에 연대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과의 관계는 복잡했다. 그들은 우리와 연대하면서도 페미니스트들이 ‘집안’에까지 노동, 차별, 착취의 개념을 들여와서 분란을 만든다며 비난했고, 그 모순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은 자주 실패했다. 그리고 그때는 자본에 분노했을 뿐, 자본과 모성의 관계를 선명히 이해하지 못했다. 자본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무상으로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모성 숭배가 필연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임신·출산 해고가 그 자체로 여성을 저임금 시장에 묶어 두기 위한 유용한 전략일 수 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불분명해지고, 문제적 현실을 바꾸는 데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또 한편 한국에서 누구나 한마디씩 하고 언제나 주목받는 교육이나 어린이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팔레스타인이라니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부에서 답이 안 보일수록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다른 사회의 교육, 돌봄, 어린이의 현실을 보는 게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인티파다❶ 열기가 제법 남아 있던 2004년, 팔레스타인 현장 연대 활동을 갔었다. 거리의 벽에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하다가 죽은 자들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붙어 있었고, 그 포스터를 배경으로 외국인에게 기념품을 팔던 일곱 살 마흐무드와, 아홉 살 하산의 또렷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어린 동생을 옆에 두고 돌보면서, 능숙하게 손님과 가격 협상을 하며 장사를 했다. 당시 한국은 안전한 돌봄과 사교육비 경감 담론 안에서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이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같은 시기 8,000km 떨어진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전쟁은 이들이 응석을 부리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훼손시켰고 빠르게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린이의 돌봄 책임이 학교로 몰려드는 것의 효과


그럼 본격적으로 돌봄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내 손으로 밥숟가락 뜰 때까지만 살겠어”라는 말이 흔하고, 이는 적극적으로 의존하는 몸이 되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을 함의한다. 돌봄받는 몸에 대한 멸시를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❷ 또 한편 2000년대 초반 ‘돌봄의 사회화’ 구호에 이어 최근에는 ‘돌봄의 공공성 강화’ 요구가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있다. 돌봄의 공공성 확대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잘 되지 않는 가운데, 어쨌거나 그 구호의 이면에는 “나는 하기 싫은 혹은 힘든 돌봄을 누군가 안전하게 저비용으로 해 줬으면” 하는 욕망이 일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는 자본주의가 우리 몸을 생산력의 쓸모 중심으로 위계화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사회가 누구도 돌볼 수 없게 만든 결과이다. 누군가를 돌볼 시간과 여력도 없이 노동에 몸을 받쳐야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됐다. 혹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힘쓰는 ‘갓생’을 살다가 잠잘 시간도 부족해서 번아웃이 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돌봄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력이 있는 일부를 제외한 절대 다수는 누군가를 충분히 돌보거나 돌봄받을 수 없는 사회를 살게 됐다.

결국 노동자들에게는 아이를 키울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가운데, 어린이의 돌봄 책임이 학교로 몰려들고 있다. 양육자들은 학교가 다른 공간보다 안전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고, 정부는 통제하기 편리하고 구색 맞추기도 좋은 학교에, 사회 전반이 책임져야 할 돌봄을 일방적으로 ‘때려 넣고’ 있다. 이것의 효과는 무엇일까? 

바로 돌봄을 주고받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바꾸는 힘을 소실시킨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일방적으로 돌봄(교육)서비스에 맡겨지고, 양육자인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더 긴 노동 시장에 투입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자 숨이 턱까지 찬, 다른 신분으로 등급 매겨진 학교 내 노동자들이 갈등하게 된다. 정규직/비정규직, 전문직/비전문직이라는 ‘분할 통치술(divide and rule)’에 붙잡히지 않고,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범인’을 붙잡는 것으로 나아가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돌봄과 교육에 관한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닌, 본질적 질문을 놓치게 만들고 있다. 돌봄은 오랫동안 취약한 일부 존재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고, 돌봄의 의미와 가치도 부정당해 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순수하게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강조해 온 것을 비판하며,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는 환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전 생애에 걸쳐 돌봄의 필요와 밀도가 다르게 존재할 뿐, 인간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취약하고 의존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드러냈다.❸ 그렇다면 돌봄과 교육에 관련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간의 교육은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표준으로 두고 지향해 왔는데, 애초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이 보편이라면 우리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린이, 21세기의 ‘여성’


또 한편 돌봄과 교육 문제를 촉발시킨 2020년 돌봄전담사 파업 이래 현재 늘봄학교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현실도 보인다. 학교에서 돌봄 혹은 교육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현재 돌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돌봄과 관련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누구도 어린이에게 묻지 않았다! 어린이와 함께 지금의 돌봄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고 제안할 때마다, 학교의 돌봄교실 대상은 저학년이라 토론은커녕 제대로 된 의견을 말하기도 쉽지 않은 연령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라는 시기는 정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하는 ‘정치적’ 존재가 되기에 불가능한 것일까? 인간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과 입장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변화해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여성은 과연 지혜를 가진 존재인가’를 두고 토론했다.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여성은 이성이 충분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에 도덕적이기 어렵다’고 했고, 교육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루소는 여성과 남성이 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종(species)에 있어서는 같다며 여성 교육을 주창했지만, 여성의 비이성적 태도를 근거로 정치적 삶에는 부족한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며, 여성이 종속적 지위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조건으로 교육을 강조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임을 주장했다.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이성과 역량을 지닌 존재임을 주장하다가 교수대에서 이슬로 사라지고(올랭프 드 구주), 달리는 국왕의 말에 뛰어들며(에밀리 데이비슨) 수없이 시위와 투쟁을 했다. 그리고 지난한 세월이 쌓여 비로소 여성 참정권을 쟁취했다. 사실상 20세기 들어서야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인간’의 범주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빈자리가 어린이로 채워진 것 같다. 고대 철학자부터 칸트나 루소가 말했던 미숙하고 감정적이며 이성적이지 못한 ‘여성’이 21세기에는 ‘어린이’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은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에 너무 어린 연령인 게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현재 돌봄(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묻지 않아 왔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토론할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는 게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앞서 말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다시 떠올려 보자. 나블루스에 사는 아홉 살 하산은 물건을 판매하면서 짧은 영어로 외국인에게 가격 협상을 하고, 다섯 살 동생 아이샤를 돌본다. 외국인 손님을 집에 초대해서 다과와 차를 대접하면서, 이스라엘의 만행과 부패한 파타❹에 대해 설명한다. 하산뿐 아니라 그의 친구인 7~9세 마흐무드, 자밀라, 아흐메드에게 모두 익숙한 일상이다.❺ 이 어린이들이 학교 대신 혹은 하교 이후 생계 현장에 뛰어들어서, 성인들 틈에서 빠르게 성숙했던 게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7~9세는 타인을 돌보고, 성인과 협상하고, 정치적 입장을 주장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집에서 자기 손으로 물도 떠 먹지 않는 8세 어린이가 수두룩하고,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10대는 위험하게 치부되고, 20대가 됐지만 사소한 진로 문제 조차도 결정할 줄 몰라서 양육자의 말에 좌우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아픈 몸이나 노약자를 위한 사소한 돌봄조차 전혀 할 줄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고, 그것을 민망해하기는커녕 당연시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를 돌보며,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연시켜 왔다. 학생이 정치적 존재로 각성하고, 갈등하고 저항하고 협상하며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체로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것을 넘어, 통제하고 차단해 왔다.❻ 건국 이래 제도 교육은 어린이와 10대들을 성인의 일방적 보호와 통제 아래 두는 것을 중시하며,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유예시키고 지체시키는 교육을 해 왔음이 새로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입시 중심 교육의 폐해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선후가 바뀐 해석으로 보인다. 체제 유지를 위해 서로를 돌보며 불의에 저항하는 정치적 존재로 나아가는 것을 지체시키는 교육이 필요한데, 입시 중심 교육이 여러모로 유용하게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지식은 비대하지만 삶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서로 연결되고 성찰하는 연대적 삶은커녕 과도한 경쟁 속에서 10대 자살률이 더없이 높아졌다. 현실이 아무리 후퇴해도 교육 제도는 외피만 바뀔 뿐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더 많은 돌봄’이 선인가?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 온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있다. 돌봄과 교육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온 어린이와 관련해서 완전히 누락된 질문에 관한 것이다. 어린이는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약자이고, 안전하게 어른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는 존재이며, 더 많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린이에게 꼭 좋은 것인가? 

나는 《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조한진희 외, 다른몸들 기획, 2022, 동아시아)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쓴 바 있다. “‘사회적 약자를 잘 돌보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라는 말은 재사유되어야 한다. 보호는 통제를 동반하고 보호 담론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비켜난 모든 몸들을 약자화하는 현실을 문제화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 너머를 질문해야 한다. 어떤 조건이 특정 존재를 약자로 만드는가. 약자를 약자로 만들지 않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내용을 어린이에게 적용해 보자. 참고로 이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조건이 어린이를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만 하는 약자, 어른의 통제 아래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가’라는 구조에 대한 질문이다. 어린이는 약하고, 귀엽고, 미흡한 존재가 아니라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닌 한 명의 시민이라는 주장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어린이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린이를 계속 약자로 두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어린이에게 더 많은 보호와 돌봄을 쏟는 행위가 무조건 이로운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 어린이를 일방적 보호와 돌봄의 존재로만 규정하는 교육관은 인간의 해방에 기여하는 교육과 거리가 멀다. 어른에게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며, 이는 어린이의 예속적 존재성을 강화한다. 어린이를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 존재로만 정체화하는 것은 그들의 주도성과 자율성을 훼손시키고, 개별적 존재로서의 성숙을 지체시킨다. 

역사 속 어린이에 관해 한 장면만 살펴보자. 1960년 독재에 맞서는 4.19 혁명이 있었다. 4.19 혁명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주도한 운동처럼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출발은 경북여고, 경북고, 대구고 등의 학생들이 주도한 대구 2.28 민주화운동이었고, 이후에는 주지하다시피 3.15 마산 의거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고등학생 김주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전체 사망자 중·고등학생은 36명, 대학생은 22명이었고 가장 많은 사망자는 물론 노동자로 61명이었다.❼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기억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당시에 적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0세였던 임동성 어린이는 거리 시위에 참여하다가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수송국민학교 전한승 어린이가 하교 도중 경찰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같은 학교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말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덕수궁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인류 역사에 어린이를 비롯한 10대들의 투쟁은 언제나 있어 왔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에 대한 일방적 보호와 돌봄 담론이 가진 ‘불순함’을 좀 더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며, 교육과 돌봄을 진보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함께 복원해야 할 오래된 미래다.



변혁적 돌봄 관계, 어린이의 위치와 정체성을
재설정하는 것으로부터


나는 앞서 말한 책에서 “돌봄은 진실을 묻는다”라고 하며, “인간의 의존성을 보편으로 간주하는 돌봄에 대한 관점은 사회 변혁의 씨앗을 품고 있”고, “대안적 사회의 상상력과 기존 사회 질서와 규범에 도전하는 위협적인 잠재력을 가진 것이 돌봄”이며, “돌봄이 다른 질서를 상상하고 사회적 전환을 이끌어 내는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쓴 바 있다. 이 내용을 부분적이지만 어린이와 돌봄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설명 전에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진보적 교육을 논하는 진영에서조차 돌봄과 교육을 둘러싼 혼란이 충분히 정리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어린이가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게 무척 아쉽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제한적 사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혹시 교육 노동자라는 신분에 갇힌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만약 양육자라면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정신에 기반해서,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현실에 ‘민원’을 제기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부연하면 1980년대 중후반 참교육 운동을 해 온 교사들이 전교조 출범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일부 고등학생운동 진영에서는 비판적 목소리가 존재했다. 해방적 교육과 참교육을 견인해야 할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의 연대체를 건설해야 하는데, 교원노조라는 조직 형태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이었다. 물론 전교조 출범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했다. 동시에 교육의 3주체가 참여하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참교육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했던 당시의 비판 또한 여전히 살펴봐야 한다. 만약 당시 교육 3주체의 연대체가 굳건히 건설되었다면, 혹은 최소한 고등학생운동이 소멸되지 않았다면 교육 현장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되돌릴 수 없고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을 뿐인데, 현재 교육 3주체의 연대성은 상당히 유실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각자의 위치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살피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서로의 정체성을 구성하면서 새로운 연대를 세워 내지 못하면, 돌봄과 교육에 대한 변혁적 전환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은 진실을 묻는다”는 것은 어린이가 일방적 보호와 통제 그리고 돌봄의 대상으로만 전락해 버린 비극을 읽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돌봄과 교육 관련해서 어린이가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조력하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 지금 진보적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일 수밖에 없다. 프레이리가 말했듯 “오직 비판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대화만이 비판적 사고를 낳을 수 있다. 대화가 없으면 의사소통이 없고, 의사소통이 없으면 진정한 교육이 불가능”하다. 학교가 교육 기관이든 돌봄 기관이든 간에, 교육과 돌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며 어린이와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는 어떤 진정한 교육도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변혁적 돌봄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 돌봄은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래서 돌보는 자와 돌봄받는 자 사이에는 위계가 형성되기 쉽고, 돌봄받는 자의 자기 결정권이 강조되어 왔지만, 여전히 돌봄은 크고 작은 폭력이 일어나기도 하는 현장이다. 따라서 돌봄이 일방적 권력이 흐르는 관계가 아니라, 돌봄이 담지한 위계적 권력관계를 성찰하고 돌봄받는 이의 ‘역방향 돌봄’❽을 적극적으로 살려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돌봄의 상호의존성을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강화해 내야 한다. 종속적이지 않은 돌봄을 넘어 돌봄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게 변혁적 돌봄의 시작일 것이다.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에 대한 일방적 보호와 통제를 강화하면서 성인에게 예속화시켰던 현실을 성찰하면서, 이들이 한 명의 동료 시민이며 정치적 주체라는 여전히 급진적 주장을 현실화시키는 게 변혁적 돌봄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를 돌본다는 것은 어린이가 온전한 개별적 존재임을 부정해 온 현실을 제거해 가는 것이고, 어린이와 성인이 서로에게 스며 있는 위계와 종속적 문화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며, 어린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사회적·정치적 존재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고 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우리 사회 어린이의 위치와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다시 묻고 재설정할 때 가능한데, 이게 바로 돌봄을 매개로 한 변혁적 관계의 모색이기도 하다. 

교육은 체제 유지의 주요한 거점이 되지만 또 한편 해방된 세상을 향해 가는 주요 경로일 수 있고, 그게 바로 진보적 교육운동이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 진보적 교육운동은 ‘억압과 통제가 아닌, 해방적 관계로서의 돌봄’이 어떻게 가능한지 탐색하고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티파다(Indifada)란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민중 봉기를 가리키며 특히 1987년부터 시작된 저항을 의미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조한진희, “돌봄은 혈연관계나 돈을 매개로만 가능한 것일까”, 〈한겨레〉, 2021년 3월 27일] 참조.

돌봄 관련한 내용은 다음의 책들을 참조할 수 있다. 캐롤 길리건, 허란주 옮김(1997), 《다른 목소리로》, 동녘; 사라러딕, 이혜정 옮김(2002), 《모성적 사유》, 철학과현실사; 조안 트론토, 김희강·나상원 옮김(2023), 《돌봄민주주의》, 박영사; 에바 페더 키테이, 김준혁 옮김(2023), 《의존을 배우다》, 반비.

파타(Fatha)란 팔레스타인 최대 정당 중 하나로 특히 서안지구에서 집권하고 있는데, 민중들은 종종 파타 내부의 부패 문제를 지적한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학교 대신 생계 현장으로 나가는 게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서안지구는 가자지구와 달리 침공과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가족 및 지역 사회에서는 어린이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한 해외 NGO의 지원도 있다. 다만 인티파다 열기가 남아 있던 2004년 팔레스타인 거리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 중에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고, 안 그래도 오랜 점령으로 빈곤이 보편인 현실에서 최소한의 가정 경제까지 무너진 경우 어린이나 노인도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부업’부터 전업 노동까지 긴급하게 뛰어든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등학생운동에 대한 탄압과 소멸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구타, 정학, 퇴학, 구속 등의 직접적 정치적 탄압 이외에도 1980년대 중후반 교복 부활에 대해, 고등학생운동 진영에서는 학생 통제 강화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1986년, 1987년 이후 고등학생운동이 보다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진행되면서 독재 정권 타도, 광주 학살 규명, 사학 비리 근절, 직선제 학생회 쟁취 등의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강력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10대에 대한 통제가 점점 중요해졌다. 실제 교복 부활 이후 학교 밖 문화제나 시위 현장에서 ‘교복’은 형사나 장학사들에게 식별하기 좋은 기호가 됐다.

이승원(2009), 〈“하위주체”와 4월 혁명 : “하위주체”의 참여형태를 통해 본 민주화에 대한 반성〉, 《기억과 전망》, 20, 182~216.

‘역방향 돌봄’이란 적극적으로 돌봄받는 이가 돌봄을 수행하는 이를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조한진희, “나는 돌봄노동자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한겨레〉, 2021년 3월 13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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