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후속]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 학생인권조례 적용은 안 받지만, 폐지 반대를 외치다 | 현승민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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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적용은 안 받지만, 폐지 반대를 외치다

-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시위를 한 까닭



현승민

seungh471@gmail.com

성미산학교 9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농구와 게임을 좋아합니다. 청소년에 대한 

활동 제약과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가 많아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2024년 6월 14일, 우리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를 외쳤다. 이 집회는 성미산학교 8~10학년 통합 그룹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숲처럼 생각하는 법을’이라는 도시 탐구 프로젝트 과정 중 하나다. 학교에서의 배움을 자기 삶과 연결해 질문과 주제를 만들고 그 주제와 연결된 도시와 공간을 탐구하는 것이 중점 활동이다. 모두 4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팀원들이 상의해서 프로젝트 주제를 정한 뒤, 주제를 정한 모둠이 발표와 활동 기획을 맡아서 진행하면 다른 모둠의 학생들도 참여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공부하는 의미가 컸다.



학생인권조례로 주제를 정한 이유


내가 속해 있는 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청소년의 권리’에 관심을 가졌다. 탐구할 만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던 중 한 명이 “최근에 만 14세가 되지 못해서 검정고시 온라인 접수를 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번 물꼬가 트이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들과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한 팀원은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없다는 것에 억울해했다. 자신은 중학생이지만 참정권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은 자신이 어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이인데도 반말을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생활의 제약을 겪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쉽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들 청소년 인권을 공부하고 싶었다. 때마침 충남·서울에서의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고, 앞에서 말한 맥락에서 우리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알아보고 행동하기로 했다.

공부해 보니 학생이란 존재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억압과 통제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교육은 굉장히 권위주의적으로 이루어졌다. 나이가 어린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또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복종해야 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관행들을 이겨 내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왜 폐지되었는지를 알아봤다. 폐지하면서 어떤 이유를 들었는지, 관련된 자료와 뉴스들을 찾아봤다.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 그리고 너무 많은 언론 기사들이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아니고, 침해할 수도 없다. 학생인권조례에는 누군가를 처벌하는 조항도 없을뿐더러, 학생인권과 교사의 권리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폭행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괴롭히는 등의 문제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교권을 보호하려면 이를 위한 학교 문화와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조사하다 보니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학생인권조례가 너무 쉽게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권리를 반대하는 서울시의회를 반대한다!”


주제를 정하고 활동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목소리를 잘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한 팀원이 “시위를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재밌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 다른 팀원들도 찬성해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시킨 서울시의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하기로 했다. 17명밖에 안 되는 중등 학생들끼리 하는 것이었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보고 싶었다. 시위를 진행할 사회자와 발언문을 읽을 사람도 정했다. 다소 촉박하게 준비했는데, 다른 중등 인원들도 열심히 자신의 피켓을 만들었다. 시위 중에 사용할 전단지도 만들었다. 



드디어 시위를 하기로 한 6월 14일이 되었다. 우리는 피켓을 들고 서울시의회 앞에 도착했다. 마이크 세팅 등 마지막 준비를 마치고 시위를 시작하기로 한 11시가 다가오자 점점 긴장됐다. 사회자가 시작을 알렸고, 준비한 발언문과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후에는 구호를 외치고 서명운동을 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다음은 시위에 참가한 학생이 읽었던 발언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미산학교에 재학 중인 박다온입니다. 얼마 전 이곳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저희의 인권을 존중해 주었고, 저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런 조례가 한순간에 어른들에 의해서 사라졌습니다. 국민들의 인권을 누구보다 중요시해야 할 의원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조항 중에는 체벌 금지, 차별 금지 등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학생인권조례를 더 늘려도 모자란 상황에 의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계속해서 폐지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권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고, 사라져선 안 되며,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학생들의 인권이 일부 어른들에 의해서 무시당해야 합니까?

조례를 폐지시킨 어른들은 교권 침해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고 해서 교권이 올라간다는 이야기에는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교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정말 학생인권조례 폐지일까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 

더 이상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져선 안 됩니다. 조례가 아닌 법안으로 제정되어야 하며, 학생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권까지 함께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저희의 인권을 완전히 존중하게 되는 날까지 목소리를 내며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인권을 폐지하는 건 누구를 위한 일인가! 서울시의회는 더 이상 과거로 퇴행하지 말고 당장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철회하라!”

“학생의 권리를 반대하는 서울시의회를 반대한다!”


우리 앞을 지나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무관심해 보였다. 그러나 직접 다가가 서명을 부탁하자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37명의 서명을 받았는데, 적은 숫자일 수 있겠지만 시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에 우리는 굉장히 기뻐했다.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서명을 부탁하며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는데 그것이 부당하다”라고 설명하자, “어른들이 알아서 할 거니,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우리는 시위를 하는 동안조차 어리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당황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우리에게 목소리마저 내지 말라는 말이라서 한층 더 억울했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 준 덕에 만든 전단지는 다 나눠 주고서 시위를 마칠 수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 전반을 바꾸었다


성미산학교는 비인가 대안학교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학생인권조례가 적용되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서, 우리는 학생인권조례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사실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시위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소년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청소년의 인권에 관심이 없고, 이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데에도, 그런 무관심과 청소년들은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의 시위는 단순히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우리 사회의 ‘어린 자를 하대하는 인식’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비인가 대안학교라고 해서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다. 

시위가 끝난 이후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성미산학교에서 공현 청소년운동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의 인식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도, 없애기도 하지만, 반대로 학생인권조례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학생들의 인권도 지켜 줘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건 학교 내에서 인권을 지켜 주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높아진 인권 의식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학생인권조례가 직접적인 적용 대상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조례가 살아나는 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의 시위도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우리와 같이 학생인권조례에 직접 포함되지 않는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을 위한 조례도 필요하다. 단순히 학생인권조례에 학교 밖 청소년들을 포함시킬 수는 없다. 반대로 어린이·청소년 인권 전반을 다루는 조례로 일반 학교 학생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일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법도 다르다. 법 제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문화도 만들어 가야 한다. 대표적으로,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말하는 문화가 바뀌고 청소년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도중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법원이 서울시교육청의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 유지된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되살릴 기회를 다시 한번 얻게 되었다. 꼭 우리의 목소리가 전해져 학생인권조례가 완전히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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