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I 디지털교과서, 엇나간 혁신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타당성 문제
- 체계 정당성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김범주
89category@gmail.com
교육 분야 연구자
AI 디지털교과서는 전자책인가?
당장 내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가 학교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도 말만 들어 봤을 뿐 그 실체에 대하여 면밀하게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첫 번째 이유는 올 11월까지 검정 절차가 완료되어야 그 실물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AI 디지털교과서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여전히 전자출판물로서 E-book과 같은 형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교과서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첫 번째로 책이 떠오르고, 그것을 전자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전자책 정도가 함께 생각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에 따르면 ‘디지털교과서’는 “교과내용과 참고서, 문제집, 학습사전, 공책, 멀티미디어 요소자료 등의 기능을 연계한 미래형 교과서”로 정의된다.[ref]교육과학기술부(2011), 〈[대통령 보고 자료]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 8쪽.[/ref] 같은 문서에서 서책형 교과서를 PDF 파일로 전환한 것을 ‘e-교과서’라고 지칭했는데, ‘디지털교과서’는 문자 외에 소리,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8월, 교육부는 “효과성 검증 등이 미흡한 상태에서 디지털교과서를 초·중·고에 전면 적용한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효과성 검토·현장 준비도 제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2016년 8월 29일 교육부고시 제2016-98호로 제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등학교 디지털교과서 국·검정 구분」에 근거하여 2017년부터 학교 현장에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25년부터 도입될 AI 디지털교과서는 전자책이 아니다. 전술한 디지털교과서와는 차이가 있다. 교육부가 도입하겠다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법령상 표현은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이다.[ref]2023년 10월 24일 개정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항에 따르면 ““교과서”라 함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이하 “디지털교과서”라 한다) 및 그 밖에 음반·영상 등의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ref] 굳이 그 실체를 따지자면 일종의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2023년 1월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최초로 언급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가 AI 기반 코스웨어라고 적시한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2023년 1월 5일.[/ref] 코스웨어란 “교육과정(course)”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교수·학습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목적으로 바람직한 교수 환경 또는 수업 조건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컴퓨터 소프트웨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엄밀하고 정치한 설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진흥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소프트웨어”의 정의 규정[ref]「소프트웨어 진흥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소프트웨어”란 컴퓨터, 통신, 자동화 등의 장비와 그 주변장치에 대하여 명령·제어·입력·처리·저장·출력·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하는 지시·명령(음성이나 영상정보 등을 포함한다)의 집합과 이를 작성하기 위하여 사용된 기술서(記述書)나 그 밖의 관련 자료를 말한다.[/ref]이나 사전적 의미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이해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그 형식은 전자책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위 종이에 인쇄된 것을 PDF 파일로 전자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령 규정의 “지능정보화기술”[ref]「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의 “지능정보화기술”은 관계 법률에서 정의하고 있는 규정을 참조할 때 “지능정보기술”을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 제5호에 따라 “지능정보화”를 정보의 생산·유통 또는 활용을 기반으로 지능정보기술이나 그 밖의 다른 기술을 적용·융합하여 사회 각 분야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효율화·고도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동 정의를 따를 경우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ref]이란 무엇인가? 학계에서는 지능정보기술에 대하여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되는 ‘지능’과 데이터·네트워크 기술(ICBM)에 기반한 ‘정보’가 결합된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 제4호는 “지능정보기술”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전술한 ‘지능’과 ‘정보’가 결합된 기술 다섯 가지를 각목으로 열거하여 하나에 해당하는 기술 또는 그 결합 및 활용 기술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ref]「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4. “지능정보기술”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술 또는 그 결합 및 활용 기술을 말한다.
가. 전자적 방법으로 학습·추론·판단 등을 구현하는 기술
나. 데이터(부호, 문자, 음성, 음향 및 영상 등으로 표현된 모든 종류의 자료 또는 지식을 말한다)를 전자적 방법으로 수집·분석·가공 등 처리하는 기술
다. 물건 상호간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에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물건을 이용·제어 또는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라.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른 클라우드컴퓨팅기술
마. 무선 또는 유·무선이 결합된 초연결지능정보통신기반 기술
바.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ref] 단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것이라면, 해당 교과의 학습 자료를 망라한 대시보드를 갖춘 플랫폼의 성격에 훨씬 더 가깝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식 체계 내에 있는 ‘교과서’에 관한 도식 바깥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체적 성격을 떠나 교육부는 2023년 10월 24일 대통령령을 개정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확보했다고 주장한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법적 지위를 얻다”, 2023년 10월 16일.[/ref] 그러니까 대통령령에 따라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하도록 규정하였지만, 법체계 측면에서 볼 때 이를 교과용 도서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교가 반드시 선정해야 할
‘교과용 도서’인가?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용 도서”인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과용 도서”라는 지위를 득한다면, 학교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1항은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학교의 교과용 도서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널리 받아들이고 있다.[ref]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교과서는 심신이 미숙한 학생으로 하여금 그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므로……”라고 설시한 헌법재판소 1992년 11일 12일 선고 89헌마88 전원재판부 결정례와 [정순원(2023), 〈AI 디지털교과서 법령 현황 및 법적과제〉, 《교육법학연구》, 35(3), 188쪽] 등이 있다.[/ref]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각급 학교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선정을 의무화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령 규정에 따른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가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지는 물론이고, 포함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 규정에 따라 학교가 반드시 AI 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는 「헌법」과 법령의 해석적 관점에서 다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전자는 「헌법」상 교육 제도 법률주의와 이에 따른 교과서 법률주의에 따라 국회의 명시적인 결정 없이 과거 대통령령으로 위임된 범위 내에 AI 디지털교과서도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미 시행 중인 대통령령의 위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대통령령에 따른 교과서 정의 규정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시행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이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89헌마88 결정문에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헌법은 교육 제도 법률주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제도의 일환인 교과서 제도에 대하여서도 법률주의의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설시한 적이 있다. 교과용 도서의 본질은 학생의 「헌법」상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 수단이라는 데 있으므로, 자유권을 보장하고 행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교과용 도서에 관한 중요 사항이 법률에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2023년 10월 24일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한 법률상의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다. 동 규정에 따라 교과용 도서의 범위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의 위임 규정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령으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규정한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좁힘으로써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의 달성을 저해하는 것까지 무한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도록 규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그 연혁을 톺아보면, 1996년 11월 18일 정부가 제출한 「교육법중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0303)을 국회가 가결하여 공포한 것을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으로 이어 온 것이다. 이처럼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서책’보다 넓혀 규정한 까닭은 1997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3~6학년 대상 영어 교과용 도서를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동 교과용 도서는 교과서와 지도서 그리고 교과서에 녹음테이프, 지도서에 따른 비디오테이프 4종을 1세트로 묶은 형식으로 보급되었는데, 종전과 같이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서책형 독본으로 제한하는 경우, 교과용 도서에 부수되는 음반·영상저작물 등에 대해 법령상 검정·발행·공급 등 절차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입법적 미비를 보완하고 사회적·기술적 변화에 대응하여 신축적으로 행정입법이 가능한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이해된다.
위와 같은 1997년 당시 입법자가 대통령령 위임 근거를 마련한 입법 취지와 함께 다른 법령과의 관계에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도서관법」과 「부가가치세법」과 각 하위 법령에서도 도서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전자의 경우 전자출판물까지를 도서의 범위로 인정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 ‘도서에 부수하여 그 도서의 내용을 담은 음반, 녹음테이프 또는 비디오테이프를 첨부하여 통상 하나의 공급 단위로 하는 것’까지를 도서의 범위로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도서 및 정기간행물통계의 국제표준화에 관한 권고〉에서도 도서란 국내에 출판되고 공중의 이용에 제공되는 적어도 49페이지(표지를 제외) 이상의 인쇄된 비정기 간행물을 말한다고 정의한 뒤 여전히 이를 개정하지 않고 있다.
다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법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종의 소프트웨어와 같은 형식마저도 교과용 도서로 인정하리라고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교육에 관한 중대한 제도적·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라면 입법자의 결정으로서 명시적인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 법률로부터 위임받은 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아닌지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모범의 위임 범위를 확정하거나 하위 법령이 위임의 한계를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ref]대법원 2015년 8월 20일 선고 2012두2280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ref]에 비추어 쟁송을 통해 확인되어야 할 필요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 AI 디지털교과서는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와 독립된 별도의 교과서 지위를 가지는가? 2023년 6월 교육부는 2025학년도 교과용 도서부터 “독립형” 선정 방식을 예고한 바 있다. 이전까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할 때에는 학교에서 교과서만 선정하면 자동으로 지도서나 전자저작물 등이 선정되며, 필요에 따라 서책인 지도서나 전자저작물의 경우 구입을 신청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2025년부터는 서책형 교과서와 다른 발행사(출판사)의 AI 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할 수 있다. 이것은 AI 디지털교과서가 하나의 별도 교과서라는 지위를 가졌다는 전제가 유효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호는 서책, 디지털교과서, 전자저작물 등을 하나의 묶음으로 해석되는 규정 방식을 취한다. 법령에서 “또는”은 ‘혹은’과 같이 대부분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접속사인 반면, “및”은 2개 이상의 사항을 함께 필요로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접속사이다.[ref]법제처(2023),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제10판 증보판)》, 진한엠앤비, 88쪽; 조석훈(2020), 《학교와 교육법》, 교육과학사, 32쪽.[/ref] 법무부예규인 「법령 제정·개정 업무 지침」에 따르면, 3개 이상의 사항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사항 앞에만 “및”을 쓰고 그 앞에는 가운뎃점(·) 또는 쉼표(,)로 연결하도록 하고 있다. [ref]「법령 제정·개정 업무 지침」(2020년 5월 20일 법무부예규 제1253호) 제4항 나목 (2) 부분에서는 “‘또는’은 2개 이상의 사항을 나열할 때 사용하는 선택적 접속사이고, ‘및’은 2개 이상의 사항이 함께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는 병합적 접속사이다. 3개 이상의 사항을 연결할 때는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사항 앞에만 ‘또는’, ‘및’을 쓰고 그 앞에서는 가운뎃점(·) 또는 쉼표(,)로 연결한다”고 적시하고 있다.[/ref] 즉,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호에 따른 서책, 디지털교과서, 전자저작물 등이 각각 교과서로서의 독립적 지위가 인정되려면, 현행 규정과 같이 “및”이 아니라 “또는”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1호는 “교과용도서”라 함은 교과서 및 지도서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동 규정에 따라 교과서와 지도서가 “및”으로 연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독립적인 교과용 도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학교에서 교과서의 발행사와 다른 지도서를 선정하여도 무방한 것이 된다. 따라서 현행 규정에 따라 교과용 도서는 교과서, 지도서라는 2개의 요소로 구성되는 하나의 개념으로 보고, 교과서와 지도서는 하나의 묶음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행 대통령령 규정대로라면 AI 디지털교과서가 서책형 교과서와 별도 독립된 교과서로서의 법적 지위가 부여되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고 교과서 제도가 시행된 이후, 교과용 도서의 구성 요소의 일부가 하나의 독립된 교과서로서 지위를 가진다고 해석한 적이 없었다는 연혁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가 예시하고 있는 “독립형” 선정 방식의 법적 근거가 타당하게 확보되지 못했음은 물론, 법률에 따라 학교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해야 하는 의무 범위 내에 AI 디지털교과서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하고 과잉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없이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
마지막으로 AI 디지털교과서는 결국 대량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법적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도입의 목전에 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술한 것처럼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는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되는 ‘지능’과 데이터·네트워크 기술(ICBM)에 기반한 ‘정보’가 결합된 기술”을 활용하여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데이터를 수집·이용·제공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인정보를 포함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2023년 8월 발간한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에서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의 규제 대상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8조의2 제1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소관 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하여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변경하는 경우에는 보호위원회에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를 요청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시행령 제9조의3 제1항에 따르면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에는 “법령을 통하여 도입되거나 변경되는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정책·제도의 목적과 주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법령 문언 그대로를 따라가 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2023년 10월 24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었으니 이 개정이 있기 전에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가 실시되었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3년 7월 17일 교과서의 범위에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에 대하여 사전 영향평가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디지털교과서의 개념 및 기술·서비스 적합성 여부에 대한 심사 기준을 도입하고 있을 뿐,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제공하는 등 구체적으로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법령 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 평가 결과를 ‘침해 요인 없음’으로 통보했다. 2023년 7월 26일의 일이다. 주말을 포함한 9일이면 두 기관의 공문서의 작성과 발송, 수신과 기관 내 검토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지점도 있지만, 교육부가 법령에 따라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를 충실히 작성하지 않는 한 개인정보호호위원회가 요청서의 범위를 넘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여건도 있다. 실제 교육부가 2023년 7월 17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송부한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를 살펴보면, 대통령령 개정 사항만을 적시하고 있을 뿐 이를 통해 도입하는 정책·제도의 목적은 물론 그 주요 내용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요청서에 근거하여 평가한 결과 ‘침해 요인 없음’이라고 통보하였을 뿐이고, 그 요청서는 법률로 정하고 있는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제도의 시행 취지를 전혀 달성할 수 없도록 부실하게 작성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 요인에 대하여 제대로 검증한 적이 없다. 이대로 도입된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수십만 명의 학생과 그 보호자가 어떤 개인정보 관련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AI 디지털교과서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가 ‘교육법’이라고 부르는 제반 법률과 그에 따른 하위 법령은 왜 존재하는가?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설시한 대로,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현과 형성을 위한 본질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이로써 교육기본권이 행정기관의 부당한 간섭에 의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에 대한 검토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교과용 도서 체제보다 더 많은 교육 자원의 투입이 예상되고 여러 부작용이 수반되는 일을 제대로 된 법적 기반도 없이 진척시키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다.
[특집] AI 디지털교과서, 엇나간 혁신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타당성 문제
- 체계 정당성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김범주
89category@gmail.com
교육 분야 연구자
AI 디지털교과서는 전자책인가?
당장 내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가 학교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도 말만 들어 봤을 뿐 그 실체에 대하여 면밀하게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첫 번째 이유는 올 11월까지 검정 절차가 완료되어야 그 실물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AI 디지털교과서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여전히 전자출판물로서 E-book과 같은 형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교과서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첫 번째로 책이 떠오르고, 그것을 전자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전자책 정도가 함께 생각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에 따르면 ‘디지털교과서’는 “교과내용과 참고서, 문제집, 학습사전, 공책, 멀티미디어 요소자료 등의 기능을 연계한 미래형 교과서”로 정의된다.[ref]교육과학기술부(2011), 〈[대통령 보고 자료]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 8쪽.[/ref] 같은 문서에서 서책형 교과서를 PDF 파일로 전환한 것을 ‘e-교과서’라고 지칭했는데, ‘디지털교과서’는 문자 외에 소리, 그림,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8월, 교육부는 “효과성 검증 등이 미흡한 상태에서 디지털교과서를 초·중·고에 전면 적용한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새 정부에서는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효과성 검토·현장 준비도 제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2016년 8월 29일 교육부고시 제2016-98호로 제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등학교 디지털교과서 국·검정 구분」에 근거하여 2017년부터 학교 현장에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25년부터 도입될 AI 디지털교과서는 전자책이 아니다. 전술한 디지털교과서와는 차이가 있다. 교육부가 도입하겠다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법령상 표현은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이다.[ref]2023년 10월 24일 개정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항에 따르면 ““교과서”라 함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용되는 학생용의 서책,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이하 “디지털교과서”라 한다) 및 그 밖에 음반·영상 등의 전자저작물 등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ref] 굳이 그 실체를 따지자면 일종의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2023년 1월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최초로 언급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가 AI 기반 코스웨어라고 적시한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2023년 1월 5일.[/ref] 코스웨어란 “교육과정(course)”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교수·학습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목적으로 바람직한 교수 환경 또는 수업 조건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컴퓨터 소프트웨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엄밀하고 정치한 설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진흥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소프트웨어”의 정의 규정[ref]「소프트웨어 진흥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소프트웨어”란 컴퓨터, 통신, 자동화 등의 장비와 그 주변장치에 대하여 명령·제어·입력·처리·저장·출력·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하는 지시·명령(음성이나 영상정보 등을 포함한다)의 집합과 이를 작성하기 위하여 사용된 기술서(記述書)나 그 밖의 관련 자료를 말한다.[/ref]이나 사전적 의미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이해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그 형식은 전자책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위 종이에 인쇄된 것을 PDF 파일로 전자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령 규정의 “지능정보화기술”[ref]「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의 “지능정보화기술”은 관계 법률에서 정의하고 있는 규정을 참조할 때 “지능정보기술”을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 제5호에 따라 “지능정보화”를 정보의 생산·유통 또는 활용을 기반으로 지능정보기술이나 그 밖의 다른 기술을 적용·융합하여 사회 각 분야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효율화·고도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동 정의를 따를 경우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ref]이란 무엇인가? 학계에서는 지능정보기술에 대하여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되는 ‘지능’과 데이터·네트워크 기술(ICBM)에 기반한 ‘정보’가 결합된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 제4호는 “지능정보기술”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전술한 ‘지능’과 ‘정보’가 결합된 기술 다섯 가지를 각목으로 열거하여 하나에 해당하는 기술 또는 그 결합 및 활용 기술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ref]「지능정보화 기본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4. “지능정보기술”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술 또는 그 결합 및 활용 기술을 말한다.
가. 전자적 방법으로 학습·추론·판단 등을 구현하는 기술
나. 데이터(부호, 문자, 음성, 음향 및 영상 등으로 표현된 모든 종류의 자료 또는 지식을 말한다)를 전자적 방법으로 수집·분석·가공 등 처리하는 기술
다. 물건 상호간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에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물건을 이용·제어 또는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라.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른 클라우드컴퓨팅기술
마. 무선 또는 유·무선이 결합된 초연결지능정보통신기반 기술
바.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ref] 단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것이라면, 해당 교과의 학습 자료를 망라한 대시보드를 갖춘 플랫폼의 성격에 훨씬 더 가깝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식 체계 내에 있는 ‘교과서’에 관한 도식 바깥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체적 성격을 떠나 교육부는 2023년 10월 24일 대통령령을 개정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확보했다고 주장한다.[ref]교육부, “[보도 자료]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법적 지위를 얻다”, 2023년 10월 16일.[/ref] 그러니까 대통령령에 따라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하도록 규정하였지만, 법체계 측면에서 볼 때 이를 교과용 도서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교가 반드시 선정해야 할
‘교과용 도서’인가?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용 도서”인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과용 도서”라는 지위를 득한다면, 학교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1항은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학교의 교과용 도서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널리 받아들이고 있다.[ref]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교과서는 심신이 미숙한 학생으로 하여금 그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이므로……”라고 설시한 헌법재판소 1992년 11일 12일 선고 89헌마88 전원재판부 결정례와 [정순원(2023), 〈AI 디지털교과서 법령 현황 및 법적과제〉, 《교육법학연구》, 35(3), 188쪽] 등이 있다.[/ref]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 말까지 각급 학교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선정을 의무화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령 규정에 따른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가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지는 물론이고, 포함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 규정에 따라 학교가 반드시 AI 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는 「헌법」과 법령의 해석적 관점에서 다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전자는 「헌법」상 교육 제도 법률주의와 이에 따른 교과서 법률주의에 따라 국회의 명시적인 결정 없이 과거 대통령령으로 위임된 범위 내에 AI 디지털교과서도 포함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미 시행 중인 대통령령의 위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대통령령에 따른 교과서 정의 규정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시행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이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89헌마88 결정문에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헌법은 교육 제도 법률주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제도의 일환인 교과서 제도에 대하여서도 법률주의의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설시한 적이 있다. 교과용 도서의 본질은 학생의 「헌법」상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 수단이라는 데 있으므로, 자유권을 보장하고 행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교과용 도서에 관한 중요 사항이 법률에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2023년 10월 24일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의 범위에 포함한 법률상의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다. 동 규정에 따라 교과용 도서의 범위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의 위임 규정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령으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규정한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좁힘으로써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의 달성을 저해하는 것까지 무한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도록 규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그 연혁을 톺아보면, 1996년 11월 18일 정부가 제출한 「교육법중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0303)을 국회가 가결하여 공포한 것을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으로 이어 온 것이다. 이처럼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서책’보다 넓혀 규정한 까닭은 1997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3~6학년 대상 영어 교과용 도서를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동 교과용 도서는 교과서와 지도서 그리고 교과서에 녹음테이프, 지도서에 따른 비디오테이프 4종을 1세트로 묶은 형식으로 보급되었는데, 종전과 같이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서책형 독본으로 제한하는 경우, 교과용 도서에 부수되는 음반·영상저작물 등에 대해 법령상 검정·발행·공급 등 절차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입법적 미비를 보완하고 사회적·기술적 변화에 대응하여 신축적으로 행정입법이 가능한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이해된다.
위와 같은 1997년 당시 입법자가 대통령령 위임 근거를 마련한 입법 취지와 함께 다른 법령과의 관계에서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도서관법」과 「부가가치세법」과 각 하위 법령에서도 도서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전자의 경우 전자출판물까지를 도서의 범위로 인정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 ‘도서에 부수하여 그 도서의 내용을 담은 음반, 녹음테이프 또는 비디오테이프를 첨부하여 통상 하나의 공급 단위로 하는 것’까지를 도서의 범위로 인정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도서 및 정기간행물통계의 국제표준화에 관한 권고〉에서도 도서란 국내에 출판되고 공중의 이용에 제공되는 적어도 49페이지(표지를 제외) 이상의 인쇄된 비정기 간행물을 말한다고 정의한 뒤 여전히 이를 개정하지 않고 있다.
다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법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종의 소프트웨어와 같은 형식마저도 교과용 도서로 인정하리라고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교육에 관한 중대한 제도적·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라면 입법자의 결정으로서 명시적인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 법률로부터 위임받은 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아닌지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모범의 위임 범위를 확정하거나 하위 법령이 위임의 한계를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ref]대법원 2015년 8월 20일 선고 2012두2280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ref]에 비추어 쟁송을 통해 확인되어야 할 필요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 AI 디지털교과서는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와 독립된 별도의 교과서 지위를 가지는가? 2023년 6월 교육부는 2025학년도 교과용 도서부터 “독립형” 선정 방식을 예고한 바 있다. 이전까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할 때에는 학교에서 교과서만 선정하면 자동으로 지도서나 전자저작물 등이 선정되며, 필요에 따라 서책인 지도서나 전자저작물의 경우 구입을 신청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2025년부터는 서책형 교과서와 다른 발행사(출판사)의 AI 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할 수 있다. 이것은 AI 디지털교과서가 하나의 별도 교과서라는 지위를 가졌다는 전제가 유효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호는 서책, 디지털교과서, 전자저작물 등을 하나의 묶음으로 해석되는 규정 방식을 취한다. 법령에서 “또는”은 ‘혹은’과 같이 대부분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접속사인 반면, “및”은 2개 이상의 사항을 함께 필요로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접속사이다.[ref]법제처(2023),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제10판 증보판)》, 진한엠앤비, 88쪽; 조석훈(2020), 《학교와 교육법》, 교육과학사, 32쪽.[/ref] 법무부예규인 「법령 제정·개정 업무 지침」에 따르면, 3개 이상의 사항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사항 앞에만 “및”을 쓰고 그 앞에는 가운뎃점(·) 또는 쉼표(,)로 연결하도록 하고 있다. [ref]「법령 제정·개정 업무 지침」(2020년 5월 20일 법무부예규 제1253호) 제4항 나목 (2) 부분에서는 “‘또는’은 2개 이상의 사항을 나열할 때 사용하는 선택적 접속사이고, ‘및’은 2개 이상의 사항이 함께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는 병합적 접속사이다. 3개 이상의 사항을 연결할 때는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사항 앞에만 ‘또는’, ‘및’을 쓰고 그 앞에서는 가운뎃점(·) 또는 쉼표(,)로 연결한다”고 적시하고 있다.[/ref] 즉,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2호에 따른 서책, 디지털교과서, 전자저작물 등이 각각 교과서로서의 독립적 지위가 인정되려면, 현행 규정과 같이 “및”이 아니라 “또는”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조 제1호는 “교과용도서”라 함은 교과서 및 지도서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동 규정에 따라 교과서와 지도서가 “및”으로 연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독립적인 교과용 도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학교에서 교과서의 발행사와 다른 지도서를 선정하여도 무방한 것이 된다. 따라서 현행 규정에 따라 교과용 도서는 교과서, 지도서라는 2개의 요소로 구성되는 하나의 개념으로 보고, 교과서와 지도서는 하나의 묶음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행 대통령령 규정대로라면 AI 디지털교과서가 서책형 교과서와 별도 독립된 교과서로서의 법적 지위가 부여되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되고 교과서 제도가 시행된 이후, 교과용 도서의 구성 요소의 일부가 하나의 독립된 교과서로서 지위를 가진다고 해석한 적이 없었다는 연혁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가 예시하고 있는 “독립형” 선정 방식의 법적 근거가 타당하게 확보되지 못했음은 물론, 법률에 따라 학교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해야 하는 의무 범위 내에 AI 디지털교과서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하고 과잉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없이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
마지막으로 AI 디지털교과서는 결국 대량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법적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도입의 목전에 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술한 것처럼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는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구현되는 ‘지능’과 데이터·네트워크 기술(ICBM)에 기반한 ‘정보’가 결합된 기술”을 활용하여 학습을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데이터를 수집·이용·제공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인정보를 포함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2023년 8월 발간한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에서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의 규제 대상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8조의2 제1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소관 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하여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변경하는 경우에는 보호위원회에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를 요청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시행령 제9조의3 제1항에 따르면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에는 “법령을 통하여 도입되거나 변경되는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정책·제도의 목적과 주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법령 문언 그대로를 따라가 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2023년 10월 24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었으니 이 개정이 있기 전에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가 실시되었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3년 7월 17일 교과서의 범위에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에 대하여 사전 영향평가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디지털교과서의 개념 및 기술·서비스 적합성 여부에 대한 심사 기준을 도입하고 있을 뿐,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제공하는 등 구체적으로 개인정보 처리를 수반하는 법령 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 평가 결과를 ‘침해 요인 없음’으로 통보했다. 2023년 7월 26일의 일이다. 주말을 포함한 9일이면 두 기관의 공문서의 작성과 발송, 수신과 기관 내 검토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지점도 있지만, 교육부가 법령에 따라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를 충실히 작성하지 않는 한 개인정보호호위원회가 요청서의 범위를 넘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여건도 있다. 실제 교육부가 2023년 7월 17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송부한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요청서’를 살펴보면, 대통령령 개정 사항만을 적시하고 있을 뿐 이를 통해 도입하는 정책·제도의 목적은 물론 그 주요 내용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요청서에 근거하여 평가한 결과 ‘침해 요인 없음’이라고 통보하였을 뿐이고, 그 요청서는 법률로 정하고 있는 개인정보 침해 요인 평가 제도의 시행 취지를 전혀 달성할 수 없도록 부실하게 작성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 요인에 대하여 제대로 검증한 적이 없다. 이대로 도입된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수십만 명의 학생과 그 보호자가 어떤 개인정보 관련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AI 디지털교과서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가 ‘교육법’이라고 부르는 제반 법률과 그에 따른 하위 법령은 왜 존재하는가?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설시한 대로,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현과 형성을 위한 본질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이로써 교육기본권이 행정기관의 부당한 간섭에 의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에 대한 검토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교과용 도서 체제보다 더 많은 교육 자원의 투입이 예상되고 여러 부작용이 수반되는 일을 제대로 된 법적 기반도 없이 진척시키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