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연속 기획]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 자치로 향한다 (김석규)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충북 괴산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 자치로 향한다

- 깨어 있는 마을 활동가와 교사들의 공간, 행복교육괴산어울림



김석규

klsukkyu@naver.com

충북 괴산 칠성중 교사



서울에 살다가 2008년 아내의 고향인 충북 증평군으로 이사했다. 


예전에 증평군은 괴산군 증평읍이었는데 청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아파트가 많은 소도시로 발전하기 위하여 2003년에 분리되었다. 괴산군은 농업을 위주로 하는데 인구가 3만 7,000명에 불과하여 면 단위 학교는 학년별로 학생이 10명 내외이고 읍내 초등과 중등 학교조차 두세 학급에 지나지 않는다. 학령 인구가 줄어 가면서 면 단위에서는 중학교가 폐교되었고 초등학교조차 폐교 위기에 처해 있다.


괴산군 청천면 송면 지역에는 1990년대부터 유기 농업을 해 온 분들이 모여 사는 솔뫼농장이 있는데 나는 옆에 있는 방과 후 학교인 ‘하늘지기꿈터’에 관심이 많았다. 예전에 송순재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이끄는 ‘대화와 실천을 위한 교육사랑방’에서 방과 후 학교의 남궁영미 수녀님을 만난 적도 있다. 귀촌한 후 하늘지기꿈터도 다시 방문하고 예수회 정일우 신부의 정신을 이어서 살아가려는 협동 정신이 충만한 귀농인들도 만났다. 읍내에서 가까운 소수면에 있는 ‘눈비산 마을’의 조희부 선생도 만났는데 생각해 보니 1986년 대학생으로 농촌 활동에 참가하여 만난 분이었다. 그분은 원주의 장일순 선생처럼 괴산에서 1970년대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하다가 1986년 한살림 창립 시기부터 유정란과 전병을 생산하는 한살림생산자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전통인지 모르지만 한살림 소비자를 초대하여 대보름 잔치를 열었고 괴산 읍내에 한살림 매장을 연 2014년부터 겨울 인문학 교실을 마련해서 귀농인을 비롯하여 전교조 교사들을 초대해 주셨다.


증평으로 이주한 후 충북의 대표 인물과 사건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았다. 서울에서는 맡지 않았던 역사 수업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충북 지역의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체계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농촌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열등감을 갖기도 쉬운데 내 수업을 듣고서 아이들이 자신의 고향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괴산에 한살림생산자공동체가 일찍부터 시작하여 유기농 일번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적 인적 유산이 많은 괴산이지만 주류 언론이나 충북연구원에서 꼽는 충북을 대표하는 인물과 유적은 우암 송시열과 화양서원이었다.


나는 일제 강점기 황도 유학의 잔재인 충효 논리를 아직도 반복하면서 서원 체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대신 나는 역사 수업에서 1893~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본거지였던 충북 보은과 옥천을 부각시켰다. 이미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이 체포된 원주군 호저면 송골에 세운 비석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고 그 비석을 세우신 장일순 선생이 동학의 전통을 한살림운동의 철학으로 제시했기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최시형 선생은 1893년 3월부터 보은에 머물며 동학교도 2만여 명을 모아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요구하는 집회인 보은취회를 이끌었고, 다음 해에는 옥천군 청산면 문바위골에서 2차 봉기를 지휘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3년 여름에는 전교조 괴산증평지회의 조합원 가족, 학생들을 안내하는 역사 탐방을 했다. 1894년 동학군들이 걸었던 옛길을 따라 괴산군 청천면에서 보은군 보은읍까지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서 조금 걷는 방식이었다. 동학군 2,000여 명이 일본군과 마지막 전투를 벌였던 보은읍 종곡리 북실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까지 가 보았다.


청주시 외곽의 내수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괴산 지역 중학교로 옮기면서 느티울행복한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선생님들도 만나고 한살림생산자공동체에도 더 자주 가게 되었다. 괴산 지역에서는 2000년대 초에 전교조, 한살림생산자공동체, 농민회 등이 학교 무상 급식 운동을 벌여서 충북 최초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대운하 건설 추진에 반대해서 연대 단체를 만들기도 했기에, 다른 방식의 공교육에 대한 말을 꺼내기가 쉬웠다. 괴산에 사는 전교조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 예술 활동가, 학부모 들이 참가하는 ‘교육 인문학 독서 모임’을 만들고 《오늘의 교육》 읽기를 시도하거나 교육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농촌의 아이들에게 농촌의 가치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을 하면서 군내 유일한 일반고인 괴산고등학교 학생들에게서 무기력함이 많이 관찰된다거나 20여 명에 이르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는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이 결국 농촌에 남아서 농사를 짓거나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할 것인데 너무도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농촌 아이들에게 농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을 장려하는 장학금을 취소하고 농민이 되려는 아이들에게 주는 정책을 논의했다.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을 하던 분들 위주로 ‘농생명교육연구회’를 만들었는데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키는 교육을 하자는 의미와 더불어 유기농 일번지로서 괴산군의 특징을 부각시키자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농생명’이라는 용어 때문에 농업고등학교나 농생명과학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교육을 하자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마침 2012년에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한살림 생산자들과 함께 교육 농장을 만들자는 합의까지 이루어 냈지만 출자금을 내는 단계에서 조합원을 모으지 못하고 중단했다.


농생명교육연구회를 출범하고 활동을 본격화하려는 즈음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2014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촛불 집회를 괴산 읍내에서 이어 갔다. 그러면서 학교 교실 밖에서 세상을 바꾸는 교육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학교인 느티울행복한학교에서 주말마다 1박 2일 연극 교실을 열고 일반 학교 중·고등학생도 함께 참여해서 작품을 준비했다. 인근 음성군으로 귀촌한 연극인들을 강사로 초빙했고 여름 방학 캠프도 밀도 있게 진행했다. 괴산읍에 새로 개교한 중원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과 조교가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가을에 괴산군민회관 무대를 빌려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분장, 의상, 무대 장치까지 자원 봉사자들이 나서서 도왔다.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학교의 정책에 맞서서 주말에 ‘숲길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모험 놀이터를 운영했다. 이런 활동에 참여한 개인과 단체가 모여서 2015년에 ‘행복교육괴산어울림(괴산어울림)’이라는 교육 문화 활동가의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의 영향으로 2014년 6월 당선된 진보 교육감이 서울의 ‘교육혁신지구정책’과 경기도의 ‘마을교육공동체사업’을 모방한 ‘충북행복교육지구사업’을 공약으로 채택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듣고 탈출을 포기한 채 바닷물 속에서 죽어 간 학생들에 대한 죄스러움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공교육을 바꾸려는 정책이 등장했다. ‘충북행복교육지구사업’이 시행되기 전에 혁신학교 정책을 모방한 ‘행복씨앗학교’가 먼저 등장했다. 괴산 읍내 초등학교 한 곳은 전교조 조합원들이 집중해서 근무했는데 행복씨앗학교로 지정되기 전부터 색다르게 교육과정을 운영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오전 중간 휴식 시간을 30분으로 한다든지 학교 밖 뒷산으로 날마다 산책을 가거나 마을 활동가를 학교로 초청해 색다른 체험을 하는 식이었다. 이 읍내 초등학교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행복씨앗학교를 운영하다가 교사들이 흩어지면서 유야무야되었지만 면 단위 초등 학교 네 곳이 행복씨앗학교로 지정되어 폐교 위기를 극복하려는 학부모와 지역 사회의 힘을 모아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참여를 통해 직접 바꾸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7년 괴산행복교육지구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학교의 학부모들은 행복씨앗학교 지정 전부터 학교 도서관 도우미로 나서서 활동하면서 1교시 시작 전에 교실에 들어가 동화책을 읽어 주는 활동을 했다. 학교장과 교사가 바뀌는 상황에서 학교와 마을 간의 소통을 이루어 내려는 학부모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지만 쉽지는 않았다. 안전 문제를 내세워서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학교 관리자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2017년 초 충북교육청에서 행복교육지구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중심 구호는 “작은 학교를 지키자”는 수준을 넘어서 “인구 절벽에 의한 지방 소멸을 막자”는 데로 모아졌다. 그때 모인 학부모와 활동가 들은 교육 여건이 불리한 괴산을 떠나는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월 충북도의회에서 행복교육지구사업 대상 지역을 지정하면서 괴산군을 제외하려고 하자 도의회 회의장 복도에서 피켓 시위를 조직하고 군수와 교육감을 압박했다. 괴산어울림의 활동가들은 산업화의 희생양이 된 농촌과 농촌 교육에 ‘서울대학교 지역 균형 선발 제도’와 같은 보상을 요구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았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 기회 균등’을 주장하거나 좀 더 많은 예산을 따 오려고 하기보다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교육청과 군청에 요구하는 예산은 지역 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동원할 마중물 성격이었다.


민간의 주도권을 강조한 괴산 지역의 마을교육 활동가들은 처음부터 ‘민관학 거버넌스’라고 쓰고 ‘풀뿌리 자치’로 이해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이나 경기도 의정부시 같은 선진지를 방문하고 다른 지역 모델을 연구하면서 ‘교육 생태계 복원’, ‘마을교육 역량 강화’ 같은 용어보다 ‘풀뿌리 교육 자치’, ‘청소년 자치 배움터’ 같은 개념에 더 끌렸다. 민관학 거버넌스 체계에서 보장하는 민간의 발언권이란 1년에 한 번 군수, 교육장과 같이 회의를 하거나 월 1회 실무 추진단 협의회를 갖는다는 것 정도였다. 때문에 관이 기획하고 민을 동원하는 새마을 운동 방식을 극복하고 주도권을 철저히 민간이 가질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민간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회의 안건도 마을교육 자원을 발굴해 학교의 교육과정에 적용하는 등의 혁신적인 주제가 아니라 감사에 걸리지 않게 행정 처리를 하는 방법으로 차츰 중심이 이동했다. 마을교육 활동가를 대할 때도 교육자로서 존중하기보다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거나 안전교육을 수강하도록 하는 것을 더 중시하였다. 재정 운영도 처음에는 괴산어울림과 같은 중간 지원 조직에 통째로 맡기는 방식이었는데 차츰 다른 시·군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여러 건으로 나누어 여러 단체에 공모를 거쳐 집행하는 등 관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카페를 실험하다


2016년 경기도 의정부의 청소년 자치 공간인 ‘꿈이룸배움터’를 방문했는데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몽실학교’라는 간판을 붙여서 운영하기 직전에 방문하였기 때문에 장학사, 교사, 마을 활동가, 청소년들이 협력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 사례를 모델로 삼아 괴산군 마을 활동가들과 읍·면 단위로 청소년 카페를 설치하기로 뜻을 모으고 청소년 자치 배움터 개념을 적용했다. 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청소년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청소년 카페 도우미로 나선 학부모나 마을 활동가 중에는 간식과 휴식을 제공하는 돌봄 공간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청이나 군청도 그런 수준으로 운영하기를 원했다. 면 단위 청소년 카페는 날마다 공간을 지켜 줄 도우미도 구하기 어려웠고 워낙 학생 숫자가 적어서 청소년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다.


2017년 읍내 교회 공간에 설치한 청소년 카페 어스 같은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간식을 조리해 제공하자 청소년들이 많이 방문했고 청소년운영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으로 구성된 연극단을 초청해 공연을 올리는 등 여러 행사를 주최해 괴산군 전체에 걸쳐서 참가자들이 모였다. 만약 도우미를 배치할 예산(자원 봉사비)이 충분했다면 초등학생들이 집에 돌아간 뒤 저녁 시간에 개방해서 고등학생들이 자율성을 발휘하면서 이용할 수 있었겠지만 군청과 교육청 담당자는 그럴 필요성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코로나19가 확산된 2019년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에 대한 돌봄 공백을 메꾸는 공간으로 역할을 제대로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교가 문을 닫은 상황에서 갈 곳 없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소규모 모임을 할 유일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1년 교육청이 주관하여 도서관 지하를 리모델링해서 그곳으로 공간을 옮겼는데 도서관과 출입구를 함께 사용하는데다 운영 시간 등을 따로 조정할 수 없어서 여러 가지 제약이 생겼다. 일반직과 사서가 관리하는 교육청 도서관 공간을 음식 조리와 공연까지 하는 자치 배움터로 운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공간으로 이전할 생각을 꾸준히 하는 상황이다.



마을교육과정은 가능할까


학교 수업에 마을 활동가를 강사로 초빙하거나 학교 밖 체험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마을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행복씨앗학교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정규 교과 시간에 마을로 나와서 수업을 하는 것이 좋았기에 괴산행복 교육지구사업에서는 초기부터 한 학기 단위 마을교육과정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마을을 이해하기 위해, 마을 어른들과 만나기 위해, 또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해 마을교육과정을 만들려고 했다. 이렇게 만든 마을교육과정을 통해 농산촌 교육의 특징이 나타나고, 지방 소멸을 막는 ‘지역 인재’를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지역 인재’라는 표현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요즘에는 ‘지역 인재’나 ‘인재 유출 방지’라는 표현 대신에 ‘마을 시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편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농사의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농진로교육’이라는 명칭도 제안하였다. 괴산어울림이 ‘교육지원청 진로교육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거나 교육부의 ‘미래교육지구사업’ 공모에 응하자는 논의를 꽤 깊이 있게 진행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학부모와 마을 활동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교육과정’이라는 좀 더 유연한 개념을 사용했다. 귀농한 학부모들조차 농사를 진로로 가르치는 데 반대하거나 일회성 농사 체험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지레짐작했다. ‘농사’, ‘농민’, ‘농촌’을 천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농촌의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지역 인재’가 되기보다 대도시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서 풍요롭게 살기를 바란다. 다만 어렸을 때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하는 기회는 많이 갖게 해 주고 싶은 욕심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에 다양한 문화 예술 체험이 섞여 있는 마을교육과정을 배우고 여기에 농사 체험이 조금 들어 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을 활동가들은 마을교육과정을 다양하게 개발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농사와 요리, 생태 탐방, 역사 기행, 어르신 자서전 들을 주제로 자료를 조사하고 지도와 책자로 성과를 모아 나가고 있다. 물론 한계도 많고 아쉬움도 있지만 청천면 송면초등학교에서 3학년 때 ‘논살림 교육과정’을 시작해서 몇 해 지속한 후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을 보면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 교육하기 좋은 공간이 있는 솔뫼농장 앞 논을 사들여서 실습장으로 내놓은 귀농 학부모가 있고, 이를 교육과정으로 만들려고 서울로 연수를 받으러 가는 회원 서너 명의 열성이 더해져서 1년 단위 교육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살림 생산자들이 조직한 모임끼리 전국 단위 교류를 하고 일본으로 연수를 받으러 간 분도 있다. 3월 찬바람 부는 시기에 볍씨를 소독해 모를 만들고, 6월에 손 모내기를 하고, 7, 8월 여름의 논 생물 관찰, 10월 벼베기, 12월 수확한 쌀로 떡 만들기와 볏짚 공예 등을 여러 차례 경험하고 난 아이들은 농부를 존경하고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안다. 그 아이들이 기후 위기 글로벌 행동에 맞추어 교내 시위를 하고 학교 급식에 채식 식단을 도입하는 결정을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환학교는 농촌 마을의 전망이 될 수 있을까


2021년, ‘마을을 살리기 위한 교육, 지역 인재와 마을 시민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목도고등학교 폐교 반대 vs. 전환학교 설치’ 논쟁이다. 학생 수 감소 때문에 신입생 숫자를 채우기 어려운 목도고등학교는 해마다 인근 시·군에서 밀려난 학생을 받아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떠밀려 온 학생들은 자존감이 낮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차라리 폐교하고 다른 형태의 학교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교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충북 교육감이 덴마크 에프터스콜레를 방문하고 와서 목도고등학교에 청소년들의 ‘자아 성찰과 진로 탐색’을 위한 전환학교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자 학부모들이 찬성했다. 하지만 ‘폐교’라는 절차에 대해 목도고등학교 동문회원들에게 충분한 동의를 얻는 과정이 없었던 문제 때문에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괴산 군수까지 교육감을 비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군청과 교육감의 협력으로 시작된 행복교육지구사업까지도 중단할 수 있다는 군수의 발언이 나오고, 마을 활동가들도 군수와 교육감을 지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에 목도고 동문회가 폐교에 찬성해 전환학교 설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농산촌 교육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공부할 1년을 선물하는 전환학교(법규정으로는 각종학교)를 설치하는 것이 괴산이라는 농산촌 지역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에게 학습권과 자유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의미, 학업 중단 학생을 줄여서 사회적 손실을 최소로 한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교육, 지역 인재와 마을 시민을 키우는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점을 부각 시켜서 목도고 동문과 군수를 설득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대안학교 학생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고 괴산 지역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려면 특성화고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다. 증평이나 청주로 빠져나가는 특성화고 지망 학생을 수용하자는 요지인데, 그 숫자가 너무 미미하고 다른 지역의 특성화고도 이미 미달 사태를 겪고 있는 현실 때문에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전환학교를 설치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괴산 지역의 마을 어른들과 만나서 인턴십을 하고 마을을 살리는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농산촌에 필요한 인재로 커 나갈 수 있다는 주장 또한 먹히지 않았다. 괴산 지역 학생들이 초등학교부터 마을교육과정을 경험한 연장선에서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본격적인 삶의 현장 프로젝트와 여행을 해 본다면 좀 더 살기 좋은 농산촌에 대한 포부를 가지고 2학년에 복귀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꿈으로 취급받 았다. 결국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가?”와 같은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확인하면서 전환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농촌 무시, 수도권 중심, 소비 지향, 능력주의, 비교·경쟁주의와 싸워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진정한 풀뿌리 자치를 위한 과제들


혁신교육지구정책과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가치와 철학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상황이다. 경기도 시흥시의 조례에서는 읍·면·동 단위로 마을자치회 예산을 지원하고 마을교육 분과를 만들어서 유급으로 간사를 임명하고 있다. 삶을 위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읍·면·동 단위로 마을교육공동체를 조직하고 초·중·고등학교를 포괄하는 협력 체계를 민관학 거버넌스 또는 마을교육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갖추어야 한다. 복지 분야에서 읍·면·동 단위로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설치한 것처럼 말이다. 이미 평생학습센터가 읍·면·동 단위로 설치되어서 마을교육공동체와 함께 움직이면서 온마을 배움터를 운영하는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괴산군은 같은 평생교육팀 내에서 운영하지만 평생 학습과 마을교육의 칸막이가 강하다. 군청에서는 업무 부담이 많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담당자가 서로 업무를 미루지만 읍·면·동 단위로 가면 담당 공무원 한 명이 처리하고 마을교육 활동가가 평생 학습 매니저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괴산어울림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지원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도교육청 조례에 의해 ‘괴산마을교육공동체지원센터(센터)’를 설치하고 상근자를 배치하고 있지만 군 단위 민관학 거버넌스를 실현하는 중간 조직에 그치고 있다. 군청의 조례가 없기 때문인지 군청 담당자는 센터에 사업 위탁을 꺼리고 군청이 직접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마을교육과정 운영에 대해 학교 교사, 마을 교사와 협의체를 운영하기 어렵다. 군청의 조례를 만든다면 단순히 군 단위 민관학 거버넌스를 제대로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읍·면 단위 마을교육협의회를 만들어야 한다. 읍·면·동 단위 마을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초·중학교 학교장과 교사, 읍·면 공무원, 주민자치위원, 마을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마을교육협의회를 설치해 마을 교육 자치를 실현하는 길을 열어 가려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거나 관행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2021년 말 행안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마을자치회 조항을 삭제한 국회의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특별 교부금을 따 오면서 시·군 단위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읍·면·동 단위 도로 포장과 시설물 건축을 해 주면서 지역구 관리를 하던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을 염려한 것이라고 한다. 풀뿌리 자치 때문에 불편해지는 사람은 이들 말고 또 누구일까? 시민들이읍·면·동장을 직접 뽑겠다고 나오면 시장, 군수의 영향력이 약해진다.


교육감은 교육지원청에 권한을 이양해야 하고 학교장은 울타리를 넘어서 마을교육에까지 관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분명히 우리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고 시민의 권한이 커지면서 참여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게 될 것이다. 학생과 청소년들도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자라면 읍·면·동이라는 생활 권역에 관심을 가지고 마을 시민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 농산촌이라면 농부가 직접 정치를 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며 식량 주권, 로컬 푸드, 공공 급식, 도농 교류 등에서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괴산과 같은 농산촌에서 마을 교육 자치를 필두로 해서 읍·면 단위 풀뿌리 자치가 이루어진다면 ‘스마트 팜’이나 식물 공장 대신 가족농을 농업의 미래로 여기고 농부가 되도록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교육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물론 내 상상과 반대로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이해 대기업이 운영하는 스마트 팜이나 식물 공장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사는 것이 농촌의 미래라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깨어 있는 시민, 깨어 있는 교사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 선생이 서당 훈장이듯이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걸쳐 교사는 지역 사회의 변화를 고민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해 왔다. 민주화운동 세대만 공감하는 부분인지 모르지만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는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육노동운동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는 지역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 도시화, 산업화의 문제점을 느끼고 농산촌에 이주한 교사들이 주로 그런 역할을 맡는다. 자녀의 아토피 문제이든 자신의 생태주의 신념 때문이든 그런 교사들이 혁신학교로 모이거나 마을 활동가들과 연대할 때 가능하다. 농산촌의 학생들이 농부를 존경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시민으로 자라는 것도 그런 교사와 마을 활동가의 지원이 있을 때 가능함을 절감한다.


그러한 교사와 마을 활동가가 없는 상황이라면 읍·면·동 단위 마을 자치와 교육 자치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새마을 운동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관 주도의 주민 동원을 잠시 시도하며 성과 자랑을 하다가 곧 시들해질 것이다. 농산촌 마을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청소년, 교사, 마을 주민 모두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를 벗어나서 서로 돌보고 책임지는 호혜주의를 신념으로 가지는 날이 올까? 그런 시민이 조직되어 마을 자치를 실현하는 곳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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