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특별 기획/또 한 명의 교사의 죽음 앞에서] 통합교육의 실패 | 김헌용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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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의 실패

- 왜 특수학급의 비극은 반복되는가



김헌용

engccer@gmail.com 

서울 신명중 교사,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들어가며 : 반복되는 비극


또다시 한 교사가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천의 초등학교 특수 교사였고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망 수개월 전부터 동료들에게 “못 버티겠다”, “살려 달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과밀 학급에서 8명의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담당하며 주당 29시간의 수업을 혼자 감당했고, 여기에 통합학급 소속 장애 학생 6명에 대한 행정 업무도 더해졌다. 교육청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산과 기한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게 그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여기에는 우리 교육 현장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교육부의 〈2024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학령기 인구의 2.0%인 11만 5,610명이 특수교육대상자로 등록되어 있다. 이들 중 73.7%가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지원 체계는 이러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법정 정원을 초과한 과밀 학급, 과도한 행정 업무, 전일제 분리 수업의 모순. 특수 교사들은 시스템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극한의 환경에서 고군분투한다. 또다시 이 사건을 한 사람의 개인적 비극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또 여기에는 특수교육 현장의 오랜 요구와 외면이 있었다. 특히 지난해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계는 교권 보호를 외쳤고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특수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제는 이 반복되는 비극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우리 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차별적인 구조 : 표면 아래의 심각한 문제들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과밀 학급, 업무 과중, 행정 대응 체계 미비와 같은 원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구조적 문제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가진 ‘특수’와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틀이다. 장애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구분 짓는 순간, 그들에 대한 교육적 책임은 특수 교사에게 전가된다. 이는 단순한 업무 분장의 문제를 넘어선다. 일반 교사들은 ‘우리는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 학생 교육에 거리를 두고, 학부모들은 특수 교사에게 모든 기대와 불만을 쏟아 낸다. 관리자는 특수학급의 사안에 대해서는 중재를 꺼리고 특수학급 업무를 책임지는 부서도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특수 교사는 교육자이자 상담가, 행정가, 때로는 돌봄 제공자의 역할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둘째, 통합교육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 앞서 전체 특수교육대상자의 73.7%가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는 통계를 인용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한 공간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을 뿐 교육과정이나 학교생활에서는 여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한다. 전일제 분리 수업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많은 특수 교사들은 전일제 분리 수업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현실 자체가 통합교육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통합교육의 이상만 높을 뿐 사실상의 분리 교육과 다름없는데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오롯이 특수 교사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셋째, 행정 편의주의적 접근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교육청은 학생 수가 법정 정원을 초과했음에도 예산과 기한을 이유로 교사 추가 배치를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질보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이 특수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특수 교사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실무사나 자원봉사자 배치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오히려 특수 교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들은 서로 맞물려 작동하면서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이분법적 인식은 통합교육을 형해화하고, 형식적 통합은 행정 편의주의를 정당화한다. 그 결과 특수 교사는 점점 더 고립된 섬이 되어 가고, 장애 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대책을 내놓더라도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통합’이 실종된 통합교육 : 특수 교사만의 섬이 된 특수학급


이번 사건은 언뜻 생각해 보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저출생이 화두인 시대에 과밀 학급이라니, 통합교육을 목표로 설치된 특수학급에 전일제 분리 수업을 받는 학생이 많다니, 교사의 행정 업무 감축이 교육 정책의 큰 흐름이 된 지 오래인데 특수 교사들은 만성적인 행정 업무 과다에 시달린다니……. 구조적 문제에서 짚었듯 특수교육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인식의 틀은 이토록 같은 교육 시스템 내에서도 큰 괴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특수학급의 소외이다. 비단 장애 학생만이 아니라 통합교육 현장 자체가 일반 교육 시스템과 유리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30년 동안 이어 온 통합교육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이 아직도 통합교육의 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 교육 시스템은 장애 학생의 통합이라는 과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왔다.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어울리며 학교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 내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요소들이 많다. 물리적 환경 조성에서부터, 각종 편의 지원, 장애 인식 개선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통합은 교실 안보다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모든 책임은 특수 교사에게 전가되었다. 결국 특수 교사는 본연의 교육 활동보다 이러한 환경 조성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다. 통합교육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지원 체계는 제공하지 않은 채, 그 책임만을 특수 교사 개인에게 떠넘긴 셈이다.

이렇다 보니 장애 학생들이 특정 학교로 몰려 과밀 학급이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기존에 특수학급이 있고 장애 학생이 많은 학교는 그만큼 통합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또한 장애 학생 학부모들의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어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거나 권리를 주장하기도 수월하다. 반면 장애 학생이 소수인 학교는 경험도 부족하고 지원 체계도 미비하여, 학부모들이 자녀가 학습 결손이나 차별에 노출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기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쏠림 현상은 결국 일부 학교와 특수 교사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던 교사 역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의 희생양이었다. 이는 통합교육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난다. 진정한 통합교육은 학교공동체가 장애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이를 통합교육을 넘어선 ‘포용교육’이라 부른다. 포용교육은 장애 학생 교육의 책임을 특수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공동체 전체가 나누어 지는 유기적 시스템을 요구한다.



특수 교사만의 몫이 아닌, 학교 전체가 책임지는 ‘포용교육’


포용교육은 학교 구성원 간의 새로운 업무 분장과 관계 정립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선 학교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기존에 특수 교사가 담당하던 각종 편의 지원을 위한 행정 업무를 학교가 맡아야 한다. 보조 인력 업무 배정 및 관리, 방과후수업 강사 채용 및 강사비 지급, 원거리 통학비 및 현장체험학습비 지급 관리, 보조공학기기 신청 및 관리와 같이 교육과는 무관한 행정 업무는 이제 학교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장애 인식 개선 업무 같은 경우도 얼핏 보면 특수 교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지만 사실 일반 교과 교사나 학교 관리자들이 수행할 때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업무이다.

더 나아가 통합교육의 성패는 장애 학생이 또래 집단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는 특수학급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전체 학교 문화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체육 대회나 학교 축제와 같은 행사에서 장애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특수 교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 교과 교사들이 수업을 설계할 때부터 장애 학생의 참여를 고려해야 하고, 학급 담임 교사들은 학급 운영 과정에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사이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

학교 관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배치나 학급 편성에서부터 교육과정 운영, 시설 관리에 이르기까지 관리자의 결정이 통합교육의 질을 좌우한다. 또한 통합교육 관련 업무를 특수 교사에게만 집중시키지 않고 학교 전체가 분담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것도 관리자의 몫이다. 교육청이나 외부 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 역시 관리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결국 진정한 통합교육은 장애 학생을 ‘특수’학급이라는 별도의 공간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포용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우리가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특수 교사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해 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제는 학교 전체가 나서서 이 짐을 나누어 져야 할 때다. 그것이 우리가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가며 : 비극의 종식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


지난 1년간 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 교육이 당면한 ‘포용성의 위기’를 이야기해 왔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침해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도, 웹툰 작가의 아동학대 신고 사건이 논란이 되었을 때도, ‘왕의 DNA’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도 나는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모든 사건의 근저에는 우리 교육이 가진 이분법적 구조, 즉 ‘특수’와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자리 잡고 있다고.

나는 이 문제를 누구보다 가깝게 체감해 왔다. 시각장애인 교사로서 14년째 일반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나 또한 이 경계의 공간에서 수많은 고민과 마주해야 했다. 맹학교에서 12년을 보낸 학생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일반 학교의 교사로서 나는 양쪽의 세계를 모두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진정한 통합이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인천 특수 교사의 비극적 선택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그동안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책임을 특수 교사 개인에게 떠넘겨 왔는지를 가장 아픈 방식으로 보여 주었다. 통합교육은 결코 특수 교사 혼자 완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학교 전체가, 나아가 우리 교육 시스템 전체가 함께 변화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다.

얼마나 더 미룰 수 있겠는가? 포용교육으로의 전환은 이제 시대적 과제다. 그것은 단순한 정책의 변화나 제도의 개선을 넘어선다. 우리는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특수 교사와 일반 교사라는 구분을 넘어, 모든 구성원이 공동의 원칙과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포용적 학교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인식의 틀부터 교사가 처리하는 공문 한 장까지 곳곳에 스며들어야 할 새로운 사고방식이자 행동 양식이다.

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이 한 편의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간절한 바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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