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 교실 속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 사례를 중심으로
글
최은주
indioomuri@gmail.com
서울 공진초 교사
가끔 학교를 벗어나 동료 교사들과 분위기 좋은 곳에 앉아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늘만큼은 학교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이런저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화제는 어쩔 수 없이 교실 이야기로 돌아오고야 만다.
“글쎄, 우리 반에…….”
“우리 반에선 이런 일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교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학교라는 형태와 교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던 모든 공간과 시간에 있었을 테니 특별할 것은 없다. 같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발달 수준은 제각각이고 성장 과정의 경험들도 모두 다른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실이다. 이런 점은 교실을 생동감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개별 학생들을 마주해야 하는 교사에겐 수업 설계, 학급살이 등 여러 면에서 고민이 많아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렇게 쉴 새 없이 학생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기대감이 사라지고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같은 무력감과 절망감만 남은 듯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교사가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은 교사의 정서 문제로 멈추지 않는다. 교실에서 적절한 조기 개입이 꼭 필요한 정서행동 위기학생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문제의 수위는 교사의 적절한 대응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넘어간다. 문제의 과정에서 학급의 일상이 위협받고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신규 발령 후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기를 꿈꾼다. 효과적인 교수법이나 창의력을 높이는 발문법, 아이들의 활동 및 참여를 늘리는 수업 방법 등을 공부하며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 서려고 노력한다. 그런 꿈과 노력이 소수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좌절된다고 느낄 때, 교사들은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왜?”
처음엔 해결 방법을 알고 싶은 호기심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조언도 구해 보고, 학생에게 애정을 쏟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학생의 문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점차 질문의 의미가 달라져 간다.
“왜?”
이번엔 혹시 교사가 모르는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장애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고, 가정 문제는 아닌지 고민해 보고 상담도 해 본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욱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해당 학생을 대한다. 그럼에도 학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질문의 의미는 다시 달라진다.
“왜?”
원인이나 대응 방법을 찾는 것 말고 학생에게 따지고 싶어진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왜 너는 나의 애정에도 변화가 없는 것인지, 왜 너는 우리 반인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무력감이 교사를 덮친다. 학생을 원망하고 있는 교사라니, 겨우 그런 교사라니.
교사와 작업치료사가 만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작업치료사와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었다. 교육 현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3년 차에 큰아이의 중증장애 진단으로 3년간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기간 당사자의 입장으로 초등학교 교실이 아닌 공간에서 학생의 행동 변화를 위한 다양한 접근을 볼 수 있었다. 똑같은 쉬는 시간, 똑같은 수업 장면을 보았지만 치료사는 교사인 나와는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보고, 다른 말로 학생의 행동을 설명했다. 나를 포함한 교사들은 문제 행동의 이유를 학생의 의도나 습관, 인성 등에서 주로 찾으려고 한다. 반면 작업치료사들은 주변 환경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고, 감각 입력에 대한 개인차 등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접근 방식이 무척 새로웠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직 후 초등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이 함께하는 공부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복직한 학교에서 뜻맞는 교사들과 함께 정서행동 문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아는 작업치료사와 함께 직무 연수를 개설했다. 연수를 마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공통 질문은 ‘이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은데 연구회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국 매달 작업치료사와 교사 8명 정도가 모여서 기초 신경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명칭도 없이 관심 있는 교사들이 하나둘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면서 연구회는 지속됐다. 그러다 인디스쿨 교사 모임 ‘다시’로 이어졌고, 초등학교 교실에 작업치료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협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교사는 외부인에게 교실을 열어야 했고, 작업치료사들은 자신들의 쉬는 날을 반납하고 교실을 관찰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연구회 소속 교사들 대다수가 협업을 신청했을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
처음에는 작업치료사의 발달과 신경에 관한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고, 때로 학생의 문제 행동을 너무 잘 해석하고 설명해 주어 신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마다 엎드려 있는 P는 학습 의욕이 정말 없어 보였다. 그런데 교실을 관찰한 작업치료사가 체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같다면서 적정 수준의 각성으로 올리기 위한 몇 가지 활동을 제안했고, 그 활동을 학급 전체와 같이 하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체육 시간을 유난히 힘들어 하는 K의 경우도 그냥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작업치료사는 청각이 예민해서 체육관에서 울리는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필요한 순간에 귀를 막을 수 있도록 해 주자 K는 체육 시간에 훨씬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교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교사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과 외부인에게 평가받는 것에 기분이 유쾌하지 않아 약간의 반발심도 생겼다. ‘여긴 1:1로 치료하는 치료실이 아니라 교사 1명이 20명이 넘는 학생들과 만나야 하는 교실인데……’ 같은 의문이 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여러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의 협업이 2년씩이나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기관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이해하고 싶은 교사들과 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한 작업치료사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내려놓고 서로의 공간을 열고 학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나누었다.
협업 후 작업치료사들의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정상의 범위가 무척 넓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치료사이다 보니 학생들의 행동 중 이상한 부분에만 주목하곤 했다. (교사의) 설명을 듣고 지속적으로 학생을 관찰하다 보니 개인의 건강 상태나 당일 컨디션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폭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실에서 1:1로 충분히 학습이 가능한 친구가 왜 학교에선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교실 상황을 보니 그 친구가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치료실에서 어느 부분에 좀 더 집중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교사들은 협업 초반에 느꼈던 부담감에 관한 이야기부터 했다.
“처음에 학생을 관찰하고 하는 이야기인데도 나에 대한 평가로 들려서 어려웠다.”
“학생 행동에 대한 주변 환경(교사 반응 포함)을 이야기할 때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학생도) 그런 행동을 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시 기대감을 갖게 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협업을 소개받을 때, 우리 반 ○○이가 생각나서 신청했다. 치료사가 와서 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려 주고, 뚝딱 그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내려 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신경학이나 작업치료도 도깨비방망이는 아니었다. 학생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환경이었다. 한쪽의 변화는 다른 한쪽의 변화를 가져왔다.”
초반엔 부담감 혹은 지나친 기대감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하면서 얻은 것들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면이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제, 환경, 개인 요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좋았다.”
“○○이의 행동을 ○○ 부분과 연관 지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관련이 있어서 놀랐다.”
결과적으로 협업을 함께한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은 작지만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교사가 불안을 내려놓고 자신감 있게 학생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에는 늘 행동에 변화가 없어서, 말을 해도 도무지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학생을 대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발달의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자, 학생의 행동이 더 잘 구분되어 보였다.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런 믿음이 교사를 조바심 나지 않게 했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 그러자 눈에 띄는 변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절실함 : 후배 교사들을 위해서라도
제 실패담을 들려주고 싶어요
앞서 이야기한 협업이 교실의 문을 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 주는 시도였다면, ㄷ초등학교 사례는 교사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몇 해 전 ㄷ초 교장 선생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2학년 교실에 작업치료사와 함께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놀라움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또한 담임 교사가 교장 선생님의 제안에 동의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사실 ㄷ초와는 ‘아이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러 몇 번 방문했던 인연이 있었다. 이후 관련 공부를 지속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 정기적인 공부 모임도 한 학기 정도 진행했다. 나와 작업치료사도 그 학교의 분위기는 대충 알고 있었고, 담임 교사도 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년을 몇 해 앞둔 교사가 교실을 개방하고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잠시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파견 교사 신분이어서 오전에 학교 방문이 가능했다. 동행한 작업치료사 또한 오랫동안 연구회와 협업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학교의 설명에 따르면, 2학년 한 학급의 학생 6명이 수업 방해 행동을 심하게 하고, 일부는 공격적인 행동도 매우 심각해 담임 교사가 학급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여러 지원 방법을 시도하고 고민하다가 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우선 이틀간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학생들을 관찰했다. 2학년임에도 해당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사의 설명에 매우 큰 소리로 반응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등 수업 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또 해당 학생들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 날선 대화를 이어 가는 모습을 수업 흐름과 상관없이 수시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이 매 수업 시간마다 벌어지는 듯 보였다. 담임 교사 또한 해당 학생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시작되면 바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2학기였고, 학급 구성원들은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의 문제 상황에 익숙해진 집단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이 달라지지 않은 채 누군가의 행동을 수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당 학생들은 담임 교사의 수업과 교과 교사의 수업에서의 행동 패턴이 달랐고, 시작 행동은 비슷했으나 교사의 반응에 따라 이후 진행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관찰 후 우리가 가장 고민한 것은 ‘어떻게 교사를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담임 교사는 문제 상황 속에서 많은 순간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 상황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다 보니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대응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담임 교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학교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담임 교사에게 교실에서 취한 적절한 반응에 대해 설명하고, 그 행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근거를 설명해 주고 싶었다. 담임 교사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적절하게 대응한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해당 학생들에 대한 방과후 프로그램이었다. 교사가 적절한 대응을 해도 교실의 분위기가 바로 수정되지 않는 것은, 해당 학생들의 사회성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긍정적인 경험을 해 볼 기회가 부족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이 부분을 경험하고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았다.
학교 측에서는 우리의 두 가지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답해 주었다. 또 담임 교사가 동의하면, 관찰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에 다른 교사들도 참여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고 먼저 제안했다. 우리 역시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서 학교의 제안을 수용했다. 한편으로는 동료 교사의 수업 중에 벌어지는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치환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라는 특수성과 교실이라는 닫힌 공간을 열었을 때,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며칠 뒤 학교에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교사들이 참석해서 놀랐다.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책상을 둥그렇게 놓은 교실에는 10명이 넘는 교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우리가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년을 앞둔 경력 많은 교사가 교실을 열고 학생들과의 문제 상황을 드러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현재 ‘정서행동 위기학생’ 등으로 일컬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교사의 적절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문제 상황이 반복되는 원인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 때문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누구도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고, 서로 노력했음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담임 교사는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결과에 주목하느라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한 노력과 적절히 대응한 순간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설명하자 담임 교사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교실을 열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풀어놓았다. 이후 담임 교사가 “교직 생활의 마무리가 무너지는 것 같아 두려웠는데 다시 스스로를 믿고 힘을 내 보겠다”라고 하자 함께 모인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사실 어느 수업이든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교사의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나 수정하면 더 좋을 법한 수업 계획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생활과 수업을 이어 가야 하는 교사는 설정을 바꾸면 바로 출력 행동이 바뀌는 로봇이 아닌 오롯한 사람이다. 따라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교사인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지원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학생들은 개개인의 어려움이 분명하게 보이는 편이었다. 수업이나 활동을 하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해 문제 행동을 벌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참여가 많은 수업일수록 문제 행동의 빈도가 높아졌고, 더욱 부적절한 방법으로 교사와 친구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거나 그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원책으로 방과 후에 해당 학생들과 간단하게 놀이 수업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회성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학부모의 동의를 받고, 주 1회 2시간씩, 총 6회기에 걸쳐 학생들과 방과후 놀이 수업을 진행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그 시간 이후 교실에서 확실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전해 들었다.
교사와 학생을 함께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을 이야기할 때 해당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학생들을 여러 환경 요인에 의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시작이 학생의 문제 행동이라는 시각은 여전한 것 같다.
ㄷ초 사례를 보면서 여러 물체가 매달린 모빌이 생각났다. 서로 연결된 모빌은 어느 쪽에서 시작하던 그 진동이 전해지며 점점 운동성이 활발해진다. 움직이고 있는 모빌의 진동을 멈추려고 할 때 어디가 그 진동의 시작이었는지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동시에 무의미한 일이다. 그저 아무 곳이나 손 닿을 수 있는 부분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ㄷ초 사례는 나와 작업치료사 모두 처음 해 보는 시도였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사와 학생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원칙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닌 외부 전문가와 협업할 때 교사를 수정의 대상으로 보거나, 학생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학생의 행동을 소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다. 당장은 문제 장면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들이 추진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교 협업 사례를 다룬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자신 있게 교육할 수 있다면,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아이는 반드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❶
교사가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❶
나카마 치호, 지석연 옮김(2023),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케렌시아, 20쪽.
진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 교실 속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 사례를 중심으로
글
최은주
indioomuri@gmail.com
서울 공진초 교사
가끔 학교를 벗어나 동료 교사들과 분위기 좋은 곳에 앉아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늘만큼은 학교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이런저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화제는 어쩔 수 없이 교실 이야기로 돌아오고야 만다.
“글쎄, 우리 반에…….”
“우리 반에선 이런 일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교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학교라는 형태와 교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던 모든 공간과 시간에 있었을 테니 특별할 것은 없다. 같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발달 수준은 제각각이고 성장 과정의 경험들도 모두 다른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실이다. 이런 점은 교실을 생동감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개별 학생들을 마주해야 하는 교사에겐 수업 설계, 학급살이 등 여러 면에서 고민이 많아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렇게 쉴 새 없이 학생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기대감이 사라지고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같은 무력감과 절망감만 남은 듯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교사가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은 교사의 정서 문제로 멈추지 않는다. 교실에서 적절한 조기 개입이 꼭 필요한 정서행동 위기학생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문제의 수위는 교사의 적절한 대응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넘어간다. 문제의 과정에서 학급의 일상이 위협받고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신규 발령 후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기를 꿈꾼다. 효과적인 교수법이나 창의력을 높이는 발문법, 아이들의 활동 및 참여를 늘리는 수업 방법 등을 공부하며 전문성을 가지고 아이들 앞에 서려고 노력한다. 그런 꿈과 노력이 소수 학생의 문제 행동으로 좌절된다고 느낄 때, 교사들은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왜?”
처음엔 해결 방법을 알고 싶은 호기심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조언도 구해 보고, 학생에게 애정을 쏟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학생의 문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점차 질문의 의미가 달라져 간다.
“왜?”
이번엔 혹시 교사가 모르는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장애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고, 가정 문제는 아닌지 고민해 보고 상담도 해 본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욱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해당 학생을 대한다. 그럼에도 학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질문의 의미는 다시 달라진다.
“왜?”
원인이나 대응 방법을 찾는 것 말고 학생에게 따지고 싶어진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왜 너는 나의 애정에도 변화가 없는 것인지, 왜 너는 우리 반인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무력감이 교사를 덮친다. 학생을 원망하고 있는 교사라니, 겨우 그런 교사라니.
교사와 작업치료사가 만나다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작업치료사와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었다. 교육 현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3년 차에 큰아이의 중증장애 진단으로 3년간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기간 당사자의 입장으로 초등학교 교실이 아닌 공간에서 학생의 행동 변화를 위한 다양한 접근을 볼 수 있었다. 똑같은 쉬는 시간, 똑같은 수업 장면을 보았지만 치료사는 교사인 나와는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보고, 다른 말로 학생의 행동을 설명했다. 나를 포함한 교사들은 문제 행동의 이유를 학생의 의도나 습관, 인성 등에서 주로 찾으려고 한다. 반면 작업치료사들은 주변 환경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고, 감각 입력에 대한 개인차 등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접근 방식이 무척 새로웠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직 후 초등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이 함께하는 공부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복직한 학교에서 뜻맞는 교사들과 함께 정서행동 문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아는 작업치료사와 함께 직무 연수를 개설했다. 연수를 마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공통 질문은 ‘이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은데 연구회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국 매달 작업치료사와 교사 8명 정도가 모여서 기초 신경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명칭도 없이 관심 있는 교사들이 하나둘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면서 연구회는 지속됐다. 그러다 인디스쿨 교사 모임 ‘다시’로 이어졌고, 초등학교 교실에 작업치료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협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교사는 외부인에게 교실을 열어야 했고, 작업치료사들은 자신들의 쉬는 날을 반납하고 교실을 관찰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연구회 소속 교사들 대다수가 협업을 신청했을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
처음에는 작업치료사의 발달과 신경에 관한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고, 때로 학생의 문제 행동을 너무 잘 해석하고 설명해 주어 신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마다 엎드려 있는 P는 학습 의욕이 정말 없어 보였다. 그런데 교실을 관찰한 작업치료사가 체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같다면서 적정 수준의 각성으로 올리기 위한 몇 가지 활동을 제안했고, 그 활동을 학급 전체와 같이 하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체육 시간을 유난히 힘들어 하는 K의 경우도 그냥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작업치료사는 청각이 예민해서 체육관에서 울리는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필요한 순간에 귀를 막을 수 있도록 해 주자 K는 체육 시간에 훨씬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교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교사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과 외부인에게 평가받는 것에 기분이 유쾌하지 않아 약간의 반발심도 생겼다. ‘여긴 1:1로 치료하는 치료실이 아니라 교사 1명이 20명이 넘는 학생들과 만나야 하는 교실인데……’ 같은 의문이 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여러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의 협업이 2년씩이나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기관이 주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이해하고 싶은 교사들과 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한 작업치료사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내려놓고 서로의 공간을 열고 학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나누었다.
협업 후 작업치료사들의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정상의 범위가 무척 넓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치료사이다 보니 학생들의 행동 중 이상한 부분에만 주목하곤 했다. (교사의) 설명을 듣고 지속적으로 학생을 관찰하다 보니 개인의 건강 상태나 당일 컨디션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폭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실에서 1:1로 충분히 학습이 가능한 친구가 왜 학교에선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교실 상황을 보니 그 친구가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치료실에서 어느 부분에 좀 더 집중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교사들은 협업 초반에 느꼈던 부담감에 관한 이야기부터 했다.
“처음에 학생을 관찰하고 하는 이야기인데도 나에 대한 평가로 들려서 어려웠다.”
“학생 행동에 대한 주변 환경(교사 반응 포함)을 이야기할 때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학생도) 그런 행동을 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시 기대감을 갖게 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협업을 소개받을 때, 우리 반 ○○이가 생각나서 신청했다. 치료사가 와서 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려 주고, 뚝딱 그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내려 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신경학이나 작업치료도 도깨비방망이는 아니었다. 학생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환경이었다. 한쪽의 변화는 다른 한쪽의 변화를 가져왔다.”
초반엔 부담감 혹은 지나친 기대감으로 시작했으나 마무리하면서 얻은 것들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면이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제, 환경, 개인 요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좋았다.”
“○○이의 행동을 ○○ 부분과 연관 지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관련이 있어서 놀랐다.”
결과적으로 협업을 함께한 교사와 작업치료사들은 작지만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교사가 불안을 내려놓고 자신감 있게 학생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에는 늘 행동에 변화가 없어서, 말을 해도 도무지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학생을 대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만 했다. 그러나 발달의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자, 학생의 행동이 더 잘 구분되어 보였다.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런 믿음이 교사를 조바심 나지 않게 했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 그러자 눈에 띄는 변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절실함 : 후배 교사들을 위해서라도
제 실패담을 들려주고 싶어요
앞서 이야기한 협업이 교실의 문을 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 주는 시도였다면, ㄷ초등학교 사례는 교사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몇 해 전 ㄷ초 교장 선생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2학년 교실에 작업치료사와 함께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놀라움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또한 담임 교사가 교장 선생님의 제안에 동의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사실 ㄷ초와는 ‘아이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러 몇 번 방문했던 인연이 있었다. 이후 관련 공부를 지속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 정기적인 공부 모임도 한 학기 정도 진행했다. 나와 작업치료사도 그 학교의 분위기는 대충 알고 있었고, 담임 교사도 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년을 몇 해 앞둔 교사가 교실을 개방하고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잠시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파견 교사 신분이어서 오전에 학교 방문이 가능했다. 동행한 작업치료사 또한 오랫동안 연구회와 협업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학교의 설명에 따르면, 2학년 한 학급의 학생 6명이 수업 방해 행동을 심하게 하고, 일부는 공격적인 행동도 매우 심각해 담임 교사가 학급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여러 지원 방법을 시도하고 고민하다가 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우선 이틀간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학생들을 관찰했다. 2학년임에도 해당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사의 설명에 매우 큰 소리로 반응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등 수업 진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또 해당 학생들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 날선 대화를 이어 가는 모습을 수업 흐름과 상관없이 수시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이 매 수업 시간마다 벌어지는 듯 보였다. 담임 교사 또한 해당 학생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시작되면 바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2학기였고, 학급 구성원들은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의 문제 상황에 익숙해진 집단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이 달라지지 않은 채 누군가의 행동을 수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당 학생들은 담임 교사의 수업과 교과 교사의 수업에서의 행동 패턴이 달랐고, 시작 행동은 비슷했으나 교사의 반응에 따라 이후 진행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관찰 후 우리가 가장 고민한 것은 ‘어떻게 교사를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담임 교사는 문제 상황 속에서 많은 순간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 상황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다 보니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대응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담임 교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학교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담임 교사에게 교실에서 취한 적절한 반응에 대해 설명하고, 그 행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근거를 설명해 주고 싶었다. 담임 교사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적절하게 대응한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해당 학생들에 대한 방과후 프로그램이었다. 교사가 적절한 대응을 해도 교실의 분위기가 바로 수정되지 않는 것은, 해당 학생들의 사회성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긍정적인 경험을 해 볼 기회가 부족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이 부분을 경험하고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았다.
학교 측에서는 우리의 두 가지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답해 주었다. 또 담임 교사가 동의하면, 관찰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에 다른 교사들도 참여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고 먼저 제안했다. 우리 역시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서 학교의 제안을 수용했다. 한편으로는 동료 교사의 수업 중에 벌어지는 문제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치환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라는 특수성과 교실이라는 닫힌 공간을 열었을 때,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며칠 뒤 학교에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교사들이 참석해서 놀랐다.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책상을 둥그렇게 놓은 교실에는 10명이 넘는 교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우리가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년을 앞둔 경력 많은 교사가 교실을 열고 학생들과의 문제 상황을 드러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현재 ‘정서행동 위기학생’ 등으로 일컬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교사의 적절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문제 상황이 반복되는 원인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 때문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누구도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고, 서로 노력했음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담임 교사는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결과에 주목하느라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한 노력과 적절히 대응한 순간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설명하자 담임 교사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교실을 열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풀어놓았다. 이후 담임 교사가 “교직 생활의 마무리가 무너지는 것 같아 두려웠는데 다시 스스로를 믿고 힘을 내 보겠다”라고 하자 함께 모인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사실 어느 수업이든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교사의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나 수정하면 더 좋을 법한 수업 계획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생활과 수업을 이어 가야 하는 교사는 설정을 바꾸면 바로 출력 행동이 바뀌는 로봇이 아닌 오롯한 사람이다. 따라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교사인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지원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학생들은 개개인의 어려움이 분명하게 보이는 편이었다. 수업이나 활동을 하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해 문제 행동을 벌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참여가 많은 수업일수록 문제 행동의 빈도가 높아졌고, 더욱 부적절한 방법으로 교사와 친구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거나 그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원책으로 방과 후에 해당 학생들과 간단하게 놀이 수업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회성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학부모의 동의를 받고, 주 1회 2시간씩, 총 6회기에 걸쳐 학생들과 방과후 놀이 수업을 진행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그 시간 이후 교실에서 확실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전해 들었다.
교사와 학생을 함께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을 이야기할 때 해당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학생들을 여러 환경 요인에 의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시작이 학생의 문제 행동이라는 시각은 여전한 것 같다.
ㄷ초 사례를 보면서 여러 물체가 매달린 모빌이 생각났다. 서로 연결된 모빌은 어느 쪽에서 시작하던 그 진동이 전해지며 점점 운동성이 활발해진다. 움직이고 있는 모빌의 진동을 멈추려고 할 때 어디가 그 진동의 시작이었는지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동시에 무의미한 일이다. 그저 아무 곳이나 손 닿을 수 있는 부분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ㄷ초 사례는 나와 작업치료사 모두 처음 해 보는 시도였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사와 학생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원칙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닌 외부 전문가와 협업할 때 교사를 수정의 대상으로 보거나, 학생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학생의 행동을 소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는 시각은 한계가 있다. 당장은 문제 장면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들이 추진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교 협업 사례를 다룬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자신 있게 교육할 수 있다면,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아이는 반드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❶
교사가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❶
나카마 치호, 지석연 옮김(2023), 《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케렌시아,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