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글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흔치 않은 장애인 중등 수학 교사라 좋습니다.
수학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입시 교과라서’라든가 ‘논리력 향상을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말해 주는 학생들이 훨씬 많아지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학교가 있었나?
작년엔 ‘부슬부슬’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주륵주륵’이다. 오늘 온 중학교는 주차장과 학교 건물 사이의 거리도 먼데……. 하필이면 왜 오늘 가라고 했을까. 단축 수업까지 하면서 오늘 꼭 가 달라고 부탁하는데 안 갈 수도 없어 오긴 했지만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작년에도 비가 오는 날에 이곳에 왔었다. 학급 수도 많아서 교사용 홍보 책자와 학생용 리플릿, 학교 홍보를 겸하는 선물까지 챙기면 두 손 가득이다. 비를 맞으며 주차장에서 학교 건물까지 가느라 책자와 리플릿이 젖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더 많은 비가 오니 더 많이 젖겠구나. 봉투가 찢어지면 안 될 텐데. 아, 맞다. 거기다 여기 교무실은 4층이고 엘리베이터는 아무도 타지 말라는 듯한 구석 위치에 있었지.
한참을 망설이다 차 문을 열고 걷기 시작했다. 우산은 쓰지 못했고 옷으로 봉투를 덮었다. 이런 모습으로 중학교 교무실에 들어서는 내 모습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 앞에 가는 저분도 학교 이름이 적힌 봉투를 들고 서두르는 것을 보니 학교 홍보를 하러 오신 분인가 보다. 당신도 나도 애쓰고 있구나. 위로가 된다.
4층까지 천천히 올라오니 나보다 앞서 가시던 분은 복도에서 옷을 가다듬고 계신다. 내 머리는 이미 젖은 채라 그냥 교무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학교 홍보 차 3학년 부장님을 뵈러 왔는데 혹시 자리에 계신가요?”
“아, 아직 수업 중이신데 곧 끝나요.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홍보 관련 짐을 탁자 위에 올려 뒀다. 그 옆엔 나보다 먼저 왔지만 밖에서 옷을 가다듬고 있던 그분이 놓은 짐이 보인다. 낯선 이름의 학교다. 서울에 내가 모르는 특성화고가 있었나? 검색해 보니 학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요즘 분위기가 그렇다. 자꾸 특성화고 학교 이름과 학과명이 바뀐다. 우리도 바뀌긴 했다. 그래도 우리 학교 정도면 바뀌었는지 눈치채기 힘들다. ‘영상과’에서 ‘영상정보과’가 됐으니 큰 변화라고 할 수 없다. 교육과정도 거의 똑같다.
우리가 먼저 바꾸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특성화고들에 부는 변화의 바람도 느꼈고, 교육청에서 컨설팅단이 오고 관리자들이 회의를 하고 나니 어느새 바뀌게 되었다. 목적은 단 하나이다. 신입생 모집. 중학생이 오고 싶게 만드는 학교 이름, 선택하고 싶게 만드는 학과명. 이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내 앞에 놓인 처음 보는 학교 이름도 그렇게 선택된 이름일 것이다. 과연 성공적일까. 중학생 모집이 끝나는 올겨울이 되어 보면 알겠지. 정원을 채운 대단한 학교로 이름을 날릴까, 미달 난 학교로 추가 모집 공고문에 실린 애처로운 이름으로 남을까.
교사의 선택, 학교 관리자의 선택
2010년을 전후로 몇 년간 특성화고들은 미달을 걱정하는 곳이 아니었다. 중학생들에게 일반고보다 인기가 좋았다.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도 높았다. 일반고에 비하면 학교 이름도 특색이 있어서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을 배울 것만 같았다. “○○관광고”, “○○미디어고”, “○○마케팅고”, “○○인터넷고”, “○○영상고”, “○○디자인고”와 같은 선명한 이름들이 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물론 그 인기의 비결 중 가장 큰 것은 이름보다는 대학에 가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긴 했지만, 학교들도 나름대로 자기 방향성에 맞는 교육을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상고’, ‘공고’ 이미지를 씻어 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자 애썼다. 학생들에게만 낯선 교과가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낯선 교과였기에 교사들은 부전공을 하고 자신의 학교에 적합한 교과서를 새로 집필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거치며 특성화고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도 위기감이 돌기는 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 특성화고는 더 이상 대학에 가기 좋은 학교도 아니었고 특성화고에서 배운 기술로 취업을 하기엔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상업 계열 학교가 가장 많이 취업하던 금융권은 비대면이 대세가 되었고, 공업 계열 학생들의 취업처인 공장은 학생들에겐 매력적인 진로가 아니었다. 차라리 배달을 하는 게 나았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기존의 특성화고들은 자신들이 가고 있던 방향이 어느새 현실에서 멀어졌음을 느꼈다.
지난 몇 년간의 입시 결과도 이를 증명해 주었다. 자존심이 세던 오래된 특성화고들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2021년 1차 모집에서 미달이 안 된 학교는 정말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미달의 비율이 큰 학교들도 있었다. 한 반 정원이 평균 8명인 특성화고도 있다. 담임 1명에 학생이 3명인 학급도 있다. 학교 홈페이지나 학교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면 처참하다. 10년 전에는 특성화고의 학급 정원이 25명이었다. 미달이 난 학교는 정원을 줄여야 했다. 지금은 정원을 20명으로 더 내렸지만 그조차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태반이다. 그러니 학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학교를 완전히 탈바꿈하고자 한다. 어떤 학교는 아예 올해 모집을 포기했다. 입학생을 받는 것을 한 번 포기하고 제대로 준비해서 내년에 새로운 교명과 학과로 홍보를 하겠다고 한다. 과연 1년 동안 준비해서 가능한 일일까? 그러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까?
서울의 특성화고 중 대부분은 사립 학교다. 원래 서울의 고등학교는 2/3가 사립 학교이니 당연하다. 사립 학교의 교사는 전근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실업계고가 전문계고로,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바뀌던 시점에 많은 교사가 꽤 힘들게 버티거나 그만두었다. 부기를 가르치던 교사가 컴퓨터 수업을 해야 했고, 회계를 가르치던 교사가 토익 영어를 가르쳐야 했다. 더 심한 경우엔 전산을 수업하던 교사가 영상 제작을 가르치게 되었고, 무역을 가르치던 교사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서 사진 수업을 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면서 자신의 교과를 버리고 새로운 교과에 적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변화가 너무 빠르고 빈번하다.
5년 전쯤엔 홍보가 잘 안 되던 학교들이 학과 이름에 ‘콘텐츠’ 를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영상콘텐츠, 미디어콘텐츠, 콘텐츠디자인, 콘텐츠마케팅……. 한때 이런 이름 바꾸기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그래 봤자 코로나19 시기에는 대부분 미달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더니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이름들이 시도되고 있다. ‘빅데이터고등학교’, ‘인공지능고등학교’, ‘매그넷고등학교’, ‘생활과학고등학교’와 같은 이름도 보인다. 대체 어떤 것을 가르치길래 저렇게 과감한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모두 사립 학교던데 그곳의 교사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마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교과 내용을 배워서 가르치거나, 그만두거나. 학교 관리자도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 선생님들이 부전공을 하게 하거나 정규직 자리가 나도 기간제 교사로 채우거나. 아무래도 교사의 선택은 어려워 보이고 관리자의 선택은 쉬워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특성화고는 기간제 교사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정규직 교사가 퇴직을 해도 같은 교과의 교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며 기간제 교사를 채용한다. 올해 모집이 실패하면 내년에 학과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니 섣부르게 단일 교과의 자격을 가진 교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다. 그러니 학과의 이름과 내용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과의 교사를 1, 2년만 채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디자인만 가르치던 학교가 ‘푸드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과를 바꿔서 조리를 교과에 넣고 조리과 교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계획을 짜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의 정교사들에게 부전공을 연수시키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채, 자연 감소되는 인원을 계속해서 기간제 교사로 채워 넣고 소모하는 꼴이다.
무책임한 수요-공급의 논리
학생들은 이런 사정을 모른다. 푸드디자인과에 오면 진짜 푸드를 디자인할 줄 알고 입학한다. 컨벤션고등학교에 가면 진짜 3년 동안 컨벤션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을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완벽하게 그럴 수 없다. 그런 학교들엔 경력이 30년 된 교사들도 있고 여전히 상업과 공업에 특화되어 있다. 10여 년 전 전공을 바꾼 교사들은 나름대로 특성화된 학교에 맞는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갑자기 또 학과가 바뀌어 버리면 그들도 더 이상은 따라갈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매년 바뀌고 소모되는 기간제 교사들뿐인데, 그분들은 내년에도 계실지를 알 수가 없다. 학생이 지내는 3년 동안 전공 담당 교사가 매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입학한 학생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특성화고의 지금 모습은 무책임하다. 오로지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쉽게 학교의 방향을 바꾸는 학교는 학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가 없다. 모집 정원만 채우면 성공했다고 말하는 학교는 정말 대책 없는 학교일 뿐이다. 그렇다고 미달되어 학급에 학생이 10명도 안 되는 학교들이 나오는데 학교의 방향을 꿋꿋하게 유지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타깝고 애처롭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교사들의 고된 시간도 알고 관리자들의 마음도 이해 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이제 특성화고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특성화고에서 3년을 보내면서 자신이 희망한 전공을 잘 배우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좋은 특성화고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과 추세에서는 그런 학교들이 많지가 않다. 쉽게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이기에 교육청들도 학교들도 이리저리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라고 대단한 대책을 가진 것은 아니다. 2000년대의 상고와 공고의 몰락을 보며 교육부는 대학 입학의 문을 열어 주며 특성화고를 버티게 해 주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버틸 수는 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일반고의 몰락이 온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직업계 학교를 살린다며 대입의 문을 넓히는 것은 학교의 설립 목적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특성화고는 그때도 지금도 목적을 잃은 채 방향감을 상실한 것일 수 있다. 특성화고는 일반적인 교육과정이 아닌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특성화고라면 각각의 학교들이 조금씩 다른 특별한 교육과정을 가져야 했고 그것을 교육청이 관리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다. 미디어 관련 학교가 잘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새로운 영상, 디자인 특성화고가 생겨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쟁에서 뒤처진 학교는 정원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학과를 바꾸거나 확대하다가 학교 이름과 어울리기도 힘든 학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교육청은 그럼에도 다 인정해 줬다. 입학 정원이 미달된 학교라면 뭐라도 하게 했고 무엇을 하든 웬만하면 허가해 줬다. 그 계획에 타당성이 있는지도, 교육과정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게 교사 수급이 가능한지도 엄밀하게 따지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특성화고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온 것일 수 있다. 학생 모집에 성공하면 당장 그해에 학교 측은 기뻤지만,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며 만족하지 못했다. 기대했던 교육과정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결국 코로나19를 겪으며 중학생들의 머릿속엔 ‘굳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특성화고에서 배우는 것이 일반고에 가서 학원에서 배우거나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것보다 더 특별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특성화고에 올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학교를 운영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학생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의 목표는 입학 정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의 만족도여야 한다. 몇 년마다 바뀌는 트렌드와 인기 있는 직업에 따라 학교 이름과 교육과정을 바꾸는 식으로는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한 수요층을 만들려면 다양한 특성화고가 존재해야 하고 자신의 교육과정에 자신을 갖고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고집스럽게 방향을 유지하라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변화가 필요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니 그 선은 지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성화고의 교장들은 당장 입학생이 미달되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는 곳은 학교 아닌가. 학교라면 그래도 좀 더 학교다워야 하지 않을까.
특집 /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글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흔치 않은 장애인 중등 수학 교사라 좋습니다.
수학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입시 교과라서’라든가 ‘논리력 향상을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말해 주는 학생들이 훨씬 많아지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학교가 있었나?
작년엔 ‘부슬부슬’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주륵주륵’이다. 오늘 온 중학교는 주차장과 학교 건물 사이의 거리도 먼데……. 하필이면 왜 오늘 가라고 했을까. 단축 수업까지 하면서 오늘 꼭 가 달라고 부탁하는데 안 갈 수도 없어 오긴 했지만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작년에도 비가 오는 날에 이곳에 왔었다. 학급 수도 많아서 교사용 홍보 책자와 학생용 리플릿, 학교 홍보를 겸하는 선물까지 챙기면 두 손 가득이다. 비를 맞으며 주차장에서 학교 건물까지 가느라 책자와 리플릿이 젖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더 많은 비가 오니 더 많이 젖겠구나. 봉투가 찢어지면 안 될 텐데. 아, 맞다. 거기다 여기 교무실은 4층이고 엘리베이터는 아무도 타지 말라는 듯한 구석 위치에 있었지.
한참을 망설이다 차 문을 열고 걷기 시작했다. 우산은 쓰지 못했고 옷으로 봉투를 덮었다. 이런 모습으로 중학교 교무실에 들어서는 내 모습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 앞에 가는 저분도 학교 이름이 적힌 봉투를 들고 서두르는 것을 보니 학교 홍보를 하러 오신 분인가 보다. 당신도 나도 애쓰고 있구나. 위로가 된다.
4층까지 천천히 올라오니 나보다 앞서 가시던 분은 복도에서 옷을 가다듬고 계신다. 내 머리는 이미 젖은 채라 그냥 교무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학교 홍보 차 3학년 부장님을 뵈러 왔는데 혹시 자리에 계신가요?”
“아, 아직 수업 중이신데 곧 끝나요.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홍보 관련 짐을 탁자 위에 올려 뒀다. 그 옆엔 나보다 먼저 왔지만 밖에서 옷을 가다듬고 있던 그분이 놓은 짐이 보인다. 낯선 이름의 학교다. 서울에 내가 모르는 특성화고가 있었나? 검색해 보니 학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요즘 분위기가 그렇다. 자꾸 특성화고 학교 이름과 학과명이 바뀐다. 우리도 바뀌긴 했다. 그래도 우리 학교 정도면 바뀌었는지 눈치채기 힘들다. ‘영상과’에서 ‘영상정보과’가 됐으니 큰 변화라고 할 수 없다. 교육과정도 거의 똑같다.
우리가 먼저 바꾸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특성화고들에 부는 변화의 바람도 느꼈고, 교육청에서 컨설팅단이 오고 관리자들이 회의를 하고 나니 어느새 바뀌게 되었다. 목적은 단 하나이다. 신입생 모집. 중학생이 오고 싶게 만드는 학교 이름, 선택하고 싶게 만드는 학과명. 이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내 앞에 놓인 처음 보는 학교 이름도 그렇게 선택된 이름일 것이다. 과연 성공적일까. 중학생 모집이 끝나는 올겨울이 되어 보면 알겠지. 정원을 채운 대단한 학교로 이름을 날릴까, 미달 난 학교로 추가 모집 공고문에 실린 애처로운 이름으로 남을까.
교사의 선택, 학교 관리자의 선택
2010년을 전후로 몇 년간 특성화고들은 미달을 걱정하는 곳이 아니었다. 중학생들에게 일반고보다 인기가 좋았다.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내신 성적도 높았다. 일반고에 비하면 학교 이름도 특색이 있어서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을 배울 것만 같았다. “○○관광고”, “○○미디어고”, “○○마케팅고”, “○○인터넷고”, “○○영상고”, “○○디자인고”와 같은 선명한 이름들이 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물론 그 인기의 비결 중 가장 큰 것은 이름보다는 대학에 가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긴 했지만, 학교들도 나름대로 자기 방향성에 맞는 교육을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상고’, ‘공고’ 이미지를 씻어 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자 애썼다. 학생들에게만 낯선 교과가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낯선 교과였기에 교사들은 부전공을 하고 자신의 학교에 적합한 교과서를 새로 집필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거치며 특성화고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도 위기감이 돌기는 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위기는 현실이 되었다. 특성화고는 더 이상 대학에 가기 좋은 학교도 아니었고 특성화고에서 배운 기술로 취업을 하기엔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상업 계열 학교가 가장 많이 취업하던 금융권은 비대면이 대세가 되었고, 공업 계열 학생들의 취업처인 공장은 학생들에겐 매력적인 진로가 아니었다. 차라리 배달을 하는 게 나았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기존의 특성화고들은 자신들이 가고 있던 방향이 어느새 현실에서 멀어졌음을 느꼈다.
지난 몇 년간의 입시 결과도 이를 증명해 주었다. 자존심이 세던 오래된 특성화고들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2021년 1차 모집에서 미달이 안 된 학교는 정말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미달의 비율이 큰 학교들도 있었다. 한 반 정원이 평균 8명인 특성화고도 있다. 담임 1명에 학생이 3명인 학급도 있다. 학교 홈페이지나 학교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면 처참하다. 10년 전에는 특성화고의 학급 정원이 25명이었다. 미달이 난 학교는 정원을 줄여야 했다. 지금은 정원을 20명으로 더 내렸지만 그조차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태반이다. 그러니 학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학교를 완전히 탈바꿈하고자 한다. 어떤 학교는 아예 올해 모집을 포기했다. 입학생을 받는 것을 한 번 포기하고 제대로 준비해서 내년에 새로운 교명과 학과로 홍보를 하겠다고 한다. 과연 1년 동안 준비해서 가능한 일일까? 그러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까?
서울의 특성화고 중 대부분은 사립 학교다. 원래 서울의 고등학교는 2/3가 사립 학교이니 당연하다. 사립 학교의 교사는 전근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실업계고가 전문계고로,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바뀌던 시점에 많은 교사가 꽤 힘들게 버티거나 그만두었다. 부기를 가르치던 교사가 컴퓨터 수업을 해야 했고, 회계를 가르치던 교사가 토익 영어를 가르쳐야 했다. 더 심한 경우엔 전산을 수업하던 교사가 영상 제작을 가르치게 되었고, 무역을 가르치던 교사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서 사진 수업을 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면서 자신의 교과를 버리고 새로운 교과에 적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변화가 너무 빠르고 빈번하다.
5년 전쯤엔 홍보가 잘 안 되던 학교들이 학과 이름에 ‘콘텐츠’ 를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영상콘텐츠, 미디어콘텐츠, 콘텐츠디자인, 콘텐츠마케팅……. 한때 이런 이름 바꾸기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그래 봤자 코로나19 시기에는 대부분 미달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더니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이름들이 시도되고 있다. ‘빅데이터고등학교’, ‘인공지능고등학교’, ‘매그넷고등학교’, ‘생활과학고등학교’와 같은 이름도 보인다. 대체 어떤 것을 가르치길래 저렇게 과감한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모두 사립 학교던데 그곳의 교사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마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교과 내용을 배워서 가르치거나, 그만두거나. 학교 관리자도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 선생님들이 부전공을 하게 하거나 정규직 자리가 나도 기간제 교사로 채우거나. 아무래도 교사의 선택은 어려워 보이고 관리자의 선택은 쉬워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특성화고는 기간제 교사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정규직 교사가 퇴직을 해도 같은 교과의 교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며 기간제 교사를 채용한다. 올해 모집이 실패하면 내년에 학과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니 섣부르게 단일 교과의 자격을 가진 교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다. 그러니 학과의 이름과 내용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과의 교사를 1, 2년만 채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디자인만 가르치던 학교가 ‘푸드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과를 바꿔서 조리를 교과에 넣고 조리과 교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10년 이상의 계획을 짜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의 정교사들에게 부전공을 연수시키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채, 자연 감소되는 인원을 계속해서 기간제 교사로 채워 넣고 소모하는 꼴이다.
무책임한 수요-공급의 논리
학생들은 이런 사정을 모른다. 푸드디자인과에 오면 진짜 푸드를 디자인할 줄 알고 입학한다. 컨벤션고등학교에 가면 진짜 3년 동안 컨벤션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을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완벽하게 그럴 수 없다. 그런 학교들엔 경력이 30년 된 교사들도 있고 여전히 상업과 공업에 특화되어 있다. 10여 년 전 전공을 바꾼 교사들은 나름대로 특성화된 학교에 맞는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갑자기 또 학과가 바뀌어 버리면 그들도 더 이상은 따라갈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매년 바뀌고 소모되는 기간제 교사들뿐인데, 그분들은 내년에도 계실지를 알 수가 없다. 학생이 지내는 3년 동안 전공 담당 교사가 매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입학한 학생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특성화고의 지금 모습은 무책임하다. 오로지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쉽게 학교의 방향을 바꾸는 학교는 학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가 없다. 모집 정원만 채우면 성공했다고 말하는 학교는 정말 대책 없는 학교일 뿐이다. 그렇다고 미달되어 학급에 학생이 10명도 안 되는 학교들이 나오는데 학교의 방향을 꿋꿋하게 유지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타깝고 애처롭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 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교사들의 고된 시간도 알고 관리자들의 마음도 이해 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이제 특성화고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특성화고에서 3년을 보내면서 자신이 희망한 전공을 잘 배우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 학생들이 많은 학교가 좋은 특성화고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과 추세에서는 그런 학교들이 많지가 않다. 쉽게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이기에 교육청들도 학교들도 이리저리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라고 대단한 대책을 가진 것은 아니다. 2000년대의 상고와 공고의 몰락을 보며 교육부는 대학 입학의 문을 열어 주며 특성화고를 버티게 해 주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버틸 수는 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일반고의 몰락이 온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직업계 학교를 살린다며 대입의 문을 넓히는 것은 학교의 설립 목적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특성화고는 그때도 지금도 목적을 잃은 채 방향감을 상실한 것일 수 있다. 특성화고는 일반적인 교육과정이 아닌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시행하는 학교이다. 특성화고라면 각각의 학교들이 조금씩 다른 특별한 교육과정을 가져야 했고 그것을 교육청이 관리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다. 미디어 관련 학교가 잘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새로운 영상, 디자인 특성화고가 생겨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쟁에서 뒤처진 학교는 정원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학과를 바꾸거나 확대하다가 학교 이름과 어울리기도 힘든 학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교육청은 그럼에도 다 인정해 줬다. 입학 정원이 미달된 학교라면 뭐라도 하게 했고 무엇을 하든 웬만하면 허가해 줬다. 그 계획에 타당성이 있는지도, 교육과정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게 교사 수급이 가능한지도 엄밀하게 따지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특성화고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온 것일 수 있다. 학생 모집에 성공하면 당장 그해에 학교 측은 기뻤지만,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며 만족하지 못했다. 기대했던 교육과정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결국 코로나19를 겪으며 중학생들의 머릿속엔 ‘굳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특성화고에서 배우는 것이 일반고에 가서 학원에서 배우거나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것보다 더 특별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특성화고에 올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학교를 운영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학생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의 목표는 입학 정원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의 만족도여야 한다. 몇 년마다 바뀌는 트렌드와 인기 있는 직업에 따라 학교 이름과 교육과정을 바꾸는 식으로는 학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다양한 수요층을 만들려면 다양한 특성화고가 존재해야 하고 자신의 교육과정에 자신을 갖고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고집스럽게 방향을 유지하라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변화가 필요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니 그 선은 지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성화고의 교장들은 당장 입학생이 미달되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는 곳은 학교 아닌가. 학교라면 그래도 좀 더 학교다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