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연속 기획] 민주 진보 교육은 교육감의 것인 적이 없다 (김진)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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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획 /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


민주 진보 교육은 교육감의 것인 적이 없다



김진  
unlive93@hanmail.net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라는 주제로 숙제를 받아든 지 벌써 두 달.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시작한 지금은 전교조 선거가 막 시작된 시점이다. 이 글을 써 보겠다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즈음에는 전교조 경기지부에 출마한 후보들과 함께 경기도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주 진보 교육감들이 경기 지역의 학교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민주 진보 교육’이란 이름 자체가 너무 불투명하게 느껴지면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 주제에 뭔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민주 진보 교육감’ 14년, 막 내린 ‘민주 진보’?

“민주 진보 교육”을 검색 창에 넣어 보니 이런 문구들이 눈에 바로 띄었다. “‘진보 교육감 전성 시대’ 막 내렸다”, “진보 교육감 독주 마감”, “진보 교육감 8년 독주 마치고 ‘균형’”, “막 내린 진보 교육감 전성 시대… 교육 정책 대변화?”…….


대부분 2022년 6월 교육감 선거 결과에 대한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기사를 더 검색해 봤지만 그즈음에 생성된 기사는 비슷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막을 내렸다’ 함은 이전 시기와 달라졌다는 것이고, 이제 또 다른 변화나 퇴행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사의 내용처럼 이번 교육감 선거로 학교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을 거라 예상되는 지역은 바로 ‘경기’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보 교육감의 포문을 열었고, 혁신학교와 무상 급식,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굵직한 정책들이 시작된 곳이 바로 경기이다. 그리고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임태희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진보 교육감이라 불리던 이들의 대표 정책들을 일거에 퇴보시킬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 바로 경기이기 때문이다.


소위 ‘민주 진보 교육감’의 시작은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었다. 2010년 김상곤 교육감의 재선, 그리고 역대 최다 후보가 출마했다는 2014년 선거와 2018년 선거에서는 경기도에서 이재정 교육감이 당선되며 ‘민주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이어 갔다. 이재정 교육감은 김상곤 교육감의 혁신학교 정책을 이어받았고, 9시 등교와 상벌점제 폐지, 야간 자율 학습 폐지, 고등학교 무상 교육 확대 등을 대표적인 진보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그렇게 2022년까지, 진보 교육감 등장 이후 14년이 흘렀고, 김상곤 교육감이나 이재정 교육감 임기 말, 스스로 밝힌 공약 이행률은 거의 언제나 100%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럼 경기 지역은 민주 진보 교육이 자리를 잡고도 남았을 텐데, 과연 그러했나?


‘바뀌는 게 없는’데 뭐가 ‘혁신’학교라는 건가

어찌 보면 가장 큰 변화는 혁신학교의 수일 것이다.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에서 13곳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경기도의 학교들 중 57%(1,393개)가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혁신학교는 입시 경쟁 교육에 몰입해 있는 반교육적인 교육과정 대신 대안적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구성원들의 민주적 참여와 자치를 기본으로 운영된다. 그럼 경기 지역에서 절반 이상의 학교들이 민주적 운영 시스템을 가지고 자치와 자율을 기본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을까? 여기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혁신학교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운이 나쁘게도 혁신학교에서 단 한 번도 근무를 해 본 적이 없고, 재직 중인 학교가 올해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지만 나는 휴직 중이다) 혁신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작년에 혁신학교 신청을 앞두고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학교 측에서 한 이야기는 혁신학교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학교 관리자들이 내세운 이유는 ‘2025년부터는 경기도 내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된다는데, 그때 전환하면 지원이 없다. 지금 해야 지원을 해 준다’라는 논리였다. 당시 교감이 했던 말은 더 기막혔다. “바뀌는 건 하나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하시던 대로 하면 돼요.”


전교조 지회 활동을 오래 하고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 어떤 학교가 혁신학교인지 잘 모른다. “선생님 학교 혁신학교죠? 어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무늬만’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 학교나 선도 학교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물론 정말로 자율과 자치를 지향하며 열과 성을 다하는 학교도 있다. 하지만 초기 약속했던 ‘25명 이하 학급당 학생 수’가 14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듯, 성공(?)한 혁신학교들은 교육청의 실질적인 지원보다는 교육 노동자들의 열정에 기반한 자발적 노동 강도의 강화로 만들어진 결과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학교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는 임태희 교육감 당선이란 사건은, 혁신학교를 열정적으로 추진해 왔던 주체들은 긴장시킬 수 있을지언정, 일반 학교 현장에서는 이에 관해 별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할 일일 수도 있다. 들어 본 건 혹시 ‘학급당 학생 수가 복원되는 거냐’는 정도의 질문뿐이었다. 경기교육청도 학교에서 원하면 혁신학교 재지정을 할 수 있다고 했고, 혁신학교의 이름을 미래학교로 전환하는 것일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척하기도 했다. 자율과 자치, 공동체와 삶을 위한 교육을 내건 혁신학교 정책이 시작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입시 경쟁과 대학 진학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신세나 학교 노동자들의 상황 역시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학생인권조례, 첫발은 떼었으나

민주 진보 교육감 등장 이후 큰 변화로 꼽고 싶은 또 다른 한 가지는 학생인권조례다. 2010년 9월 10일,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현재 가장 눈에 띄게 바뀐 학교 모습은 용의·복장 지도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을 방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용의·복장 검사가 사라지자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처음 학생인권조례가 생겼을 무렵 내가 재직 중이었던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잘 반영한 학교생활규정이 만들어졌다. 학생인권조례의 조문이 거의 그대로 규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 주체들과 여러 차례 토론하고, 수없이 회의를 반복했다. 당시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시위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냈다. 아마도 그런 학생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잘 반영했다고 생각했던 그 규정은 함께했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교사들도 학교를 옮긴 뒤 또다시 개정되었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토론을 거쳐 통과된 내용은 학칙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형식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또는 아무런 과정 없이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치의 공간이어야 할 학생회는 학교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 내용을 채우기 위한 스팩이 된 지 오래다. 학생들은 학교생활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떻게 바꾸는지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작년에 수업 시간의 일부를 내어 학생들과 학교생활규정을 검토하고, 수정안을 만들어 학생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학생회는 규정을 바꾸지 못했다. 이전 학교에서 학교생활규정이 학생인권조례에 반한다고 생각될 때는, 교육청에 민원을 내거나 인권옹호관에게 연락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직접 진정을 하곤 했다. 작년에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천천히 변하더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이상의 관심은 보여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뭘 남길 수 있는지, 자율 동아리를 할지 말지,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수행 평가 점수에 들어가는지 아닌지, 이런 데 더 관심이 많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첫발을 뗀 학생의 기본권 보장은 14년째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법대로’, ‘규정대로’를 외치는 사람들도 학생인권조례는 법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제 임태희 교육감은 ‘교육적 해결’을 이야기하며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

‘시효(時效)’란 “일정한 사실 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됨으로써 법률상으로 권리의 취득 또는 권리의 소멸이 일어나게 되는 법률 요건”이라는 뜻이다. 결국 민주 진보 교육은 살아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글에서 요청받은 숙제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민주 진보 교육”이라고 검색하면 교육감 이야기만 나오고, 이 숙제를 내 준 《오늘의 교육》 편집부 역시 민주 진보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내가 느꼈던 어색함은 아마 거기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민주 진보 교육은 언제부터 진보 교육감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진보 교육감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지금, 민주 진보 교육 역시 막을 내린 것일까?


‘민주’라는 이름에 걸맞은 교육이라면, 기본적으로 주체들이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들에게 교육을 운영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는 그런 힘이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진보 교육감이었다면, 14년 동안 다양해진 교육 주체들이 학교 또는 교육의 공간 속에서 얼마나 주체성을 확보하고 교육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 진보 교육을 진보 교육감 체제와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니면 아예 다른 의미로 보수 교육감이 들어선 지금 이제 정말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가 남아 있는지를 알아볼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4년간 제대로 학교에 ‘민주’ 진보 교육이 적용되고 뿌리내렸다면 교육감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흔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만이 아니라 ‘진보’도 문제다. 이전 김상곤 교육감의 공약부터 최근 ‘진보’ 교육감 후보까지 공약들을 보자면, 앞서 이야기한 대표 정책들을 제외하고는 보수와 진보 후보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가장 가까이 치러진 2022년 선거에서는 공약만 봐선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입시 경쟁 교육이라는 거대한 틈바구니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고, 진보 교육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껍데기는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를 가르는 정도의 의미 이외에 아무런 뜻을 지니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거 기간 어느 지역, 어느 후보나 진보는 파란색을, 보수는 빨간색을 선택하며 거대 양당의 색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 것은 그를 이용해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었을 뿐이다.


지난 선거에서 어느 지역의 민주 진보 교육감이라고 자칭한 한 후보에 대한 기사 제목은 이러했다. “젊고 유능한 민주·진보 후보 ○○○ 교육감 후보, 1대1 맞춤형 교육 충분히 가능!” 보수 교육감과 다른 점이 없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내걸었던 공약 중에도 ‘경기도 학력을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2022년 민주 진보 교육감이라고 출마한 경기 지역의 후보 역시 ‘AI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가 교육감 또는 교육감 후보들의 것이었다면, 솔직히 처음부터 그런 시효는 있지도 않았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그렇다 해서 이제 ‘민주 진보 교육’이 끝난 것은 아니다. 민주 진보 교육감이 펼쳤던 대표 정책들은, 그동안 입시 경쟁 교육으로 억눌려 있던 학교의 현실을 바꿔 보고자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해 온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도 그렇고 혁신학교의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9시 등교나 야간 자율 학습 폐지, 무상 급식도 그렇다. 이들은 진보 교육감의 대표 정책도, 전유물도 아니다. 교육운동을 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들이 운동으로 일구어 낸 역사다.


혁신학교든 학생인권조례든 주체들이 없으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편으론 주체들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주체를 조직하고 힘을 모으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민주 진보 교육의 효력을 담보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인권조례 개악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교육청 앞에 모이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연대하여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전교조 선거에서는 윤석열, 임태희에 맞서 제대로 싸우든, 당당하게 싸우든 모든 후보들이 싸우겠다고 한다.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는 교육감들이 만들었다가 이제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와 ‘진보’는 고정된 어떤 것일 수 없다. 민주 진보 교육은 역사와 사회의 진전의 반영이자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따라서 역사 진전과 함께 진화되어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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