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진짜, 먼저 필요한 법

하영 외 씀,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교육공동체 벗, 2024
레빗
oec0202@naver.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엄동설한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덜덜 떨고 있는 학교가 있다. 교실 창문은 바람을 제대로 막아 주지 않고 난방 장치가 고장 나서 수업과 일상이 얼어붙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제발 추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태가 심각해져 저체온증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같은 문제가 여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자 교육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모든 교실에 커튼을 달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달아 준 커튼은 얇은 쉬폰 커튼이었으며, 당연하게도 바람을 막아 주지는 못했다……. 아니, 커튼은 필요 없고 창문과 난방 장치를 고쳐 달라니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교육부는 커튼을 잘 활용해 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심지어는 교사들조차 커튼으로 바람을 막아 보려 애썼다(분명 교무실엔 히터가 빵빵할 것이다). 학생들은 하는 수 없이 추위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언젠가는 또 쓰러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를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다.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않고 그럴싸한 장식품이나 갖다 놓는 교육부와, 여전히 냉기 가득한 교실, 와중에 장식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일부 교사들과 그 모든 과정에서 소외된 학생들. 모두가 춥고 불행한 학교.
「생활지도 고시」 해설서를 해설하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 보면 학생인권조례 등의 법조문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용을 달달 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각 학교의 학교생활규정 또한 어떤 교사나 학생도 전문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는다. 규정을 들고 다니며 하나하나 신경 쓰기도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규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휴대전화마저 수거당하곤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상식에 의존하여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 잘 알지도 못하는 규정을 신경 쓰며 생활하지는 않는다. 교사들 또한 규정보다는 자신의 주관에 의해 학생을 통제한다. 사실상 학교생활규정은 징계를 부여할 때나 기준으로 사용된다.
법과 규칙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쉽다는 점에서, 법을 제대로 된 고려 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학교생활규정이 곧 학교의 생활이 될 수 없듯이, 우리의 인권도 조항 몇 개로 보장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도 최소한의 울타리일 뿐 한계는 명확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가 마치 교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양 내놓고서, 해설서까지 만들었다.
생활지도 고시 해설서에서도 어떤 경우에 교사의 교육활동이나 생활지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열거하고 있는데, 굉장히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어 대체 어느 정도가 법적인 문제가 생기고 어느 정도가 괜찮다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 본문 37쪽
이 책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와 해설서의 어떤 내용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고시에 해설이 필요한 것도 문제이지만 해설서를 해설하게 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생활지도의 범위 자체가 너무 광범위한데, 고시와 해설서까지 숙지하며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생활지도 고시」의 존재도 알지 못할 학생들은 과연 그 생활지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할까? 본문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의 목적을 이렇게 해석한다.
‘정당한 교육활동’임을 인정받으려면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하면서, 소송을 잘 피할 수 있게끔 뭘 하더라도 문서와 기록을 남기고, 녹화하고 녹취하는 등의 절차와 방법을 안내하는 것.
- 본문 38쪽
이처럼 「생활지도 고시」는 교사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떠밀고 있을 뿐이다. 교사와 학생이 왜 갈등하는지, 학부모는 왜 민원을 넣는지, 학교는 왜 그것을 막을 수 없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마치 만악의 근원이 학생의 문제 행동이라는 양 억압과 통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고시를 교육부에서 내놓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휴대전화 수거하면 좀 나아집니까
2023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이 교사는 일부 학생 보호자들에게 과도한 연락과 무리한 요구를 받아 왔으며, 그중에는 폭언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교육부는 「생활지도 고시」를 발표한다. 단적으로 말해, 교사 사망 사건의 대책으로 휴대전화 수거를 제시한 셈이다. 교사를 학교 현장에서 보호해 달라는 요구가, 어떻게 교사가 휴대전화 수거, 소지품 압수, 반성문 작성, 물리적 제지 등을 ‘생활지도’의 명목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고시로 이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생활지도 고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학교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생인권은 ‘교권 보호’에 의해 희생되어 버렸다.
내가 재학했던 고등학교의 학칙에는 학생의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는 규정이 가득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였음에도,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생활지도가 자주 일어났다. 학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교사에 의해 통제당해야 했다. 학생이 직접 다른 학생에게 벌점을 매기는 ‘선도부’가 존재하여, 서로의 용모까지 검열해야 했다. 생활지도는 때로 학칙에 근거해 이루어지기도 했고, 학칙에 존재하지 않는 부분도 교사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 지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생활지도가 교육을 위해 있는 것인지, 벌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우리 학교의 학칙은 전면 개정되었고,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교사의 주관에 의해 학생들을 ‘생활지도’하는 것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학교들과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학교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생활지도가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이 존재하는 이상 학교마다 규제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생활지도라는 행위가 학생인권 침해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먼저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의 청소년인권단체들은 그동안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고 외쳐 왔다. 애초에 교권과 학생인권은 같은 저울에 놓이는 것이 아니며, ‘교권’의 의미가 ‘학생에 대한 교사의 권력’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만을 보장하며 교권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학생인권을 침해할 권한을 부여하는 「생활지도 고시」를 교권 침해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에 적극 호응하려는 교육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학교가 된다면
이 책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격리해 내는, 순종적인 신체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상상하려는 시도이다.
- 본문 15쪽
이 책은 누군가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를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두의 권리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거나, 답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전화 규제나 물리적 제지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활지도 고시」의 한계를 넘어 대안을 만들어 갈 운동이, 그리고 그 운동을 함께해 나갈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는 든든한 동료가 되어 줄 책이다.
내가 「생활지도 고시」에서 가장 막막하게 느낀 것은 통제와 처벌보다는 ‘분리’ 부분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통제와 처벌에 익숙하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분리시키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지만, 법에 교사가 특정 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명시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어떻게 인격을 가진 학생을 교사 개인이 ‘분리 조치’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이미 학생이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어야 함을 전제한다. 학교 안에서는 그 누구도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더구나 이런 분리 조치는 교실에서 내몰리기 쉽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더 많이 가해진다. 책에서는 생활지도의 이름 아래 장애 학생은 존재 자체가 교육 활동을 방해한다고 판정받고, 성소수자 학생들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고 조치당하기 십상임을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2024년 1월 9일에 발표한 〈부산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가 교사로부터 “여기 성소수자 그런 거 없지?”, “동성애는 금기이며 더러운 것” 등의 혐오표현을 들었다고 한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43%가 학교공동체로부터 배제돼 외롭다고 느낀 경험이 있다고도 했다.
- 본문 146쪽
이미 학교에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존재들이 있다.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위해서는, 통제와 처벌, 분리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중에는 ADHD 학생, 장애 학생, 성소수자 학생, 이주민 학생 등 모든 학생과 모든 교사, 모든 교직원이 포함된다.
‘진짜’ 생활지도,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삶에 대한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에서는 그 해답으로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명시한 상위법과 학생인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그에 기초한 학칙과 학교생활규정을 제시한다. 교사 개인의 재량에 생활지도를 일임하는 방식은 서로에게 안전하지 않은 방식이다. 소수자 학생들이 인권의 테두리 안에서 지도받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학교가 된다면, 그곳은 「생활지도 고시」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이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학교이지 않을까.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모두가 춥고 불행한 학교가 해방되기를, 학교에서 진정한 질문과 해답을 찾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에 진짜, 먼저 필요한 법
하영 외 씀,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교육공동체 벗, 2024
레빗
oec0202@naver.com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엄동설한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덜덜 떨고 있는 학교가 있다. 교실 창문은 바람을 제대로 막아 주지 않고 난방 장치가 고장 나서 수업과 일상이 얼어붙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제발 추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태가 심각해져 저체온증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같은 문제가 여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자 교육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모든 교실에 커튼을 달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달아 준 커튼은 얇은 쉬폰 커튼이었으며, 당연하게도 바람을 막아 주지는 못했다……. 아니, 커튼은 필요 없고 창문과 난방 장치를 고쳐 달라니까!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교육부는 커튼을 잘 활용해 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심지어는 교사들조차 커튼으로 바람을 막아 보려 애썼다(분명 교무실엔 히터가 빵빵할 것이다). 학생들은 하는 수 없이 추위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언젠가는 또 쓰러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를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다.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않고 그럴싸한 장식품이나 갖다 놓는 교육부와, 여전히 냉기 가득한 교실, 와중에 장식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일부 교사들과 그 모든 과정에서 소외된 학생들. 모두가 춥고 불행한 학교.
「생활지도 고시」 해설서를 해설하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 보면 학생인권조례 등의 법조문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용을 달달 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각 학교의 학교생활규정 또한 어떤 교사나 학생도 전문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는다. 규정을 들고 다니며 하나하나 신경 쓰기도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학생들은 규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휴대전화마저 수거당하곤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상식에 의존하여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 잘 알지도 못하는 규정을 신경 쓰며 생활하지는 않는다. 교사들 또한 규정보다는 자신의 주관에 의해 학생을 통제한다. 사실상 학교생활규정은 징계를 부여할 때나 기준으로 사용된다.
법과 규칙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쉽다는 점에서, 법을 제대로 된 고려 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학교생활규정이 곧 학교의 생활이 될 수 없듯이, 우리의 인권도 조항 몇 개로 보장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도 최소한의 울타리일 뿐 한계는 명확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가 마치 교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양 내놓고서, 해설서까지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와 해설서의 어떤 내용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고시에 해설이 필요한 것도 문제이지만 해설서를 해설하게 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생활지도의 범위 자체가 너무 광범위한데, 고시와 해설서까지 숙지하며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생활지도 고시」의 존재도 알지 못할 학생들은 과연 그 생활지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할까? 본문에서는 「생활지도 고시」의 목적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처럼 「생활지도 고시」는 교사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떠밀고 있을 뿐이다. 교사와 학생이 왜 갈등하는지, 학부모는 왜 민원을 넣는지, 학교는 왜 그것을 막을 수 없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마치 만악의 근원이 학생의 문제 행동이라는 양 억압과 통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고시를 교육부에서 내놓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휴대전화 수거하면 좀 나아집니까
2023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이 교사는 일부 학생 보호자들에게 과도한 연락과 무리한 요구를 받아 왔으며, 그중에는 폭언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교육부는 「생활지도 고시」를 발표한다. 단적으로 말해, 교사 사망 사건의 대책으로 휴대전화 수거를 제시한 셈이다. 교사를 학교 현장에서 보호해 달라는 요구가, 어떻게 교사가 휴대전화 수거, 소지품 압수, 반성문 작성, 물리적 제지 등을 ‘생활지도’의 명목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고시로 이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생활지도 고시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학교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생인권은 ‘교권 보호’에 의해 희생되어 버렸다.
내가 재학했던 고등학교의 학칙에는 학생의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는 규정이 가득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였음에도,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생활지도가 자주 일어났다. 학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교사에 의해 통제당해야 했다. 학생이 직접 다른 학생에게 벌점을 매기는 ‘선도부’가 존재하여, 서로의 용모까지 검열해야 했다. 생활지도는 때로 학칙에 근거해 이루어지기도 했고, 학칙에 존재하지 않는 부분도 교사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 지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생활지도가 교육을 위해 있는 것인지, 벌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우리 학교의 학칙은 전면 개정되었고,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교사의 주관에 의해 학생들을 ‘생활지도’하는 것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학교들과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학교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생활지도가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이 존재하는 이상 학교마다 규제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생활지도라는 행위가 학생인권 침해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먼저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의 청소년인권단체들은 그동안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고 외쳐 왔다. 애초에 교권과 학생인권은 같은 저울에 놓이는 것이 아니며, ‘교권’의 의미가 ‘학생에 대한 교사의 권력’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만을 보장하며 교권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학생인권을 침해할 권한을 부여하는 「생활지도 고시」를 교권 침해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에 적극 호응하려는 교육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학교가 된다면
이 책은 누군가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를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두의 권리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거나, 답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전화 규제나 물리적 제지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활지도 고시」의 한계를 넘어 대안을 만들어 갈 운동이, 그리고 그 운동을 함께해 나갈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는 든든한 동료가 되어 줄 책이다.
내가 「생활지도 고시」에서 가장 막막하게 느낀 것은 통제와 처벌보다는 ‘분리’ 부분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통제와 처벌에 익숙하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분리시키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지만, 법에 교사가 특정 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명시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어떻게 인격을 가진 학생을 교사 개인이 ‘분리 조치’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이미 학생이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어야 함을 전제한다. 학교 안에서는 그 누구도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더구나 이런 분리 조치는 교실에서 내몰리기 쉽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더 많이 가해진다. 책에서는 생활지도의 이름 아래 장애 학생은 존재 자체가 교육 활동을 방해한다고 판정받고, 성소수자 학생들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고 조치당하기 십상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학교에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존재들이 있다.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위해서는, 통제와 처벌, 분리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중에는 ADHD 학생, 장애 학생, 성소수자 학생, 이주민 학생 등 모든 학생과 모든 교사, 모든 교직원이 포함된다.
‘진짜’ 생활지도,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삶에 대한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에서는 그 해답으로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명시한 상위법과 학생인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그에 기초한 학칙과 학교생활규정을 제시한다. 교사 개인의 재량에 생활지도를 일임하는 방식은 서로에게 안전하지 않은 방식이다. 소수자 학생들이 인권의 테두리 안에서 지도받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절실하게 필요하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학교가 된다면, 그곳은 「생활지도 고시」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이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학교이지 않을까.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모두가 춥고 불행한 학교가 해방되기를, 학교에서 진정한 질문과 해답을 찾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