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기고] ‘충암파’라는 명명에 대한 질문들 | 최성용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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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파'라는 

명명에 대한 질문들



최성용

ghwjrehf@gmail.com

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학 강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이후, 국회와 언론에 의해 쿠데타 주도 세력에 대한 조사와 취재가 본격화됐다. 비상계엄 준비 및 선포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친위 쿠데타를 획책한 인물과 세력이 누구인지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비상계엄 직후 ‘충암파’가 지목됐다. 이는 서울시 은평구에 소재한 충암고등학교 출신의 ‘학연’이 계엄 주도 세력의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충암파는 윤석열(8회 졸업)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7회)을 필두로, 실제 계엄을 주도했던 군 방첩 기관 및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찰을 총괄하는 자리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12회), 군의 방첩 기관에는 여인형 방첩사령부 사령관(17회), 박종선 777사령부 사령관(19회)이 포진했다. 그 외에도 쿠데타 직전인 11월 29일에 임명된 박성하 방첩사령부 기획관리실장(23회), 대통령 경호 임무를 담당하는 황세영 서울특별시경찰청 101경비단장(18회)도 충암고 출신이다.


'충암고'라는 기표와 범주 혼동의 오류


쿠데타에 가담했던 주요 지휘관들이 국회에 출석해 질의를 받고 충암파가 지목되는 가운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충암고 교직원과 재학생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충암고를 ‘계엄고’로 개명하라는 비난이 일었고, 학교에 항의 및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아 며칠간 업무가 거의 마비되기도 했다. 충암고 스쿨버스 운행을 가로막고 학생들을 표적으로 계란을 던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에 학교 당국은 12월 6일 “등교 복장 임시 자율화 안내”라는 가정 통신문을 발송하며 두 달간 등교 복장을 자율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자 충암고 구성원들은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12월 9일 이윤찬 충암고 교장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윤석열 및 충암파와 현재의 충암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교직원과 재학생을 향한 비난과 조롱, 공격을 멈춰 달라고 했다. 실제 2021년에 윤석열 대통령 예비 후보가 충암고 야구부를 방문한 것 외에는 윤석열 정부와 충암고 사이에 별다른 접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암고 학생회는 12월 10일 입장문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면서 윤석열과 충암파가 “충암고등학교를 잠시 거쳐 간 인물들일 뿐 재학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재학생을 향해 비난하는 일은 멈춰” 달라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짚어야 할 것은 ‘충암파’라는 명명의 효과다. 충암파와 충암고 학생은 각기 별개의 범주이지만 ‘충암고’라는 동일한 기표로 지시됨으로써 혼동된다. 이로 인해 충암고 학연이 친위 쿠데타의 바탕이 된 네트워크였다는 사실로부터, 충암고 구성원 일반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규정하는 논리적 비약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범주의 혼동은 단순히 논리적 착오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충암파와 현 충암고 재학생을 구분하지 않는 데는 익숙한 사회 문화적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바로 현재의 학교가 ‘민원 창구화’된 풍토가 그것이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 기관을 민원 창구로 대하는 의식의 밑에는 이중적인 권력관계가 깔려 있다. 먼저 민원인보다 더 힘이 세고 부당한 일을 벌이는 ‘기득권’으로서 국가가 있다. 어느 정도 합당하기도 한 국가에 대한 불신은 국가를 표상하는 존재인 공무원에게도 연속적으로 적용된다. 공무원도 부당한 집단이며 기득권 세력의 일부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민원인은 민원 창구에 온갖 부정적 감정을 쏟아 내지만, 정작 그것이 가능하려면, 민원인의 믿음과는 달리 민원을 받는 측이 권력관계에서 열위에 놓여야 한다. 학교에서 민원 전화를 감당하는 교사는 적어도 그 순간에는 민원인에 대해 약자의 위치에 놓인다. 실은 민원인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충암고’라는 기표 아래 충암고 재학생과 대통령이 모두 동등한 수준의 기득권을 지닐 리는 없다. 국가라는 거대한 덩어리에서도 현장 실무자와 고위 공무원의 권한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이를 구분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보는 시선은 문제의 책임을 정확하게 묻지 않은 채 상대적인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를 만든다.

다행히도 학교 관계자들의 항변과 호소가 알려지자 ‘학생들이 무슨 죄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에 더해 12월 18일, 시민단체 ‘서대문마을넷’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며 충암고에서 풀빵을 나눠 주는 행사를 열었다.❶ 지역 사회가 충암고 학생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이는 학교와 지역 사회가 부당한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피해자들을 지키려는 노력이자, 충암고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적대시해야 할 한 덩어리의 집단 대신 구체적인 얼굴을 한 동네 이웃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충암파'는 과연 누구일까


충암고를 향한 비난은 다행히도 일시적 소동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충암고’를 둘러싼 이 소동에는 좀 더 복잡한 독해가 필요하다. 가령 충암고 동문 중에는 ‘충암고가 배출한 대통령’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더러 존재한다. 12월 13일로 예정했던 동문 송년회 ‘충암인의 밤’ 행사를 취소한 충암고 총동문회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목으로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았고, 충암고 재학생을 향한 비난에도 침묵했다. 이는 친위 쿠데타를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문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 동문들 사이에서 나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❷ 윤석열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가 지워질 수 없는 우리 충암인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는 글이 충암고 총동문회 홈페이지에 관리자 계정으로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 일반적 수준에서,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윤석열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 충암고 출신을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하려는 현상에는 분명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됐던 학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구체적 수준에서 보면, 한편으로 충암고 동문들은 소위 ‘야구 명문’ 충암고의 야구팀을 응원하고자 함께 모이고 서로 교류하면서, 의례를 통한 학연 정체성의 구성을 경험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 신인’이던 윤석열은 자신의 약한 세력 기반을 보강하기 위해 출신 학교 동문들을 동원하고 중용했다.❸ 물론 학연의 네트워크에 기대어 도움을 주고받던 구시대적 엘리트의 습속에 의존한 윤석열의 세대적, 개인적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충암고 동문이라는 학연 정체성에 근거한 윤석열과의 동일시는 얼마나 실질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실제 충암고 동문은 윤석열 정부나 충암파에 인적 수원지 역할을 했던 것일까? 어느 정도 그러했다. 대선 캠프에서 정부 구성에 이르기까지 충암고-서울대 출신이 여러 직책에 중용되었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충암고 출신의 공직자들이 충암고 출신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해 윤석열 정부는 충암고 출신 중에서도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을 중용한 것이다. 충암고 출신이라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육사가 아닌 다른 경로로 군 장교가 되었다면 정부에서 역할을 맡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암고 동문’은 결코 한 덩어리의 집단이 아니며 계급, 학력, 학벌의 분할 선에 의해 나뉘어져 있다. 충암고 출신 공직자가 될 기회는 결코 모든 충암고 동문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지 않았다.

더욱이 12월 3일 친위 쿠데타를 주도한 세력 전체가 ‘충암파’인 것도 아니다. 계엄 이후 정보사령부가 쿠데타에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란 주도 세력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네트워크로 ‘대전파’가 등장했다. 이는 김용현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관계를 고리로 하여 연결된 다른 네트워크를 일컫는다. 노상원 및 그가 김용현에게 연결해 준 문상호 정보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모두 대전의 고등학교 및 육군사관학교 출신이기에 ‘대전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2024년 8월 정부의 외교 안보 라인 개편에서 김용현을 위시한 ‘충암파’에 밀려났던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위시한 ‘국방파’는 비상계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이들 역시 동조 또는 방조의 책임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충암파라는 명명은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감이 있다. 쿠데타의 주도 세력으로 언급된 충암파는 과거 쿠데타로 집권했던 ‘하나회’를 연상시킨다. 하나회는 박정희에 대한 충성이라는 기치 아래 육사 출신들로 구성되어 군의 공식 계통과는 다른 비공식적 라인을 구축했다. 이와 비교해 12.3 친위 쿠데타 주도 세력은 그 기반이 더 협소하며, 대전파와 국방파 등 더 복잡한 인적 구성을 지녔다. 요컨대, 충암고 동문과 충암고 출신의 공직자는 동일하지 않으며 충암파조차 쿠데타 주도 세력의 ‘핵심이자 일부’에 국한된다.


어느 학교는 문제가 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쿠데타 주도 세력 및 관여자들을 총칭하는 명명은 차라리 ‘서울대-육사’ 라인이 정확할 것이다. 하나회의 구성도 그러했거니와, 이번 12.3 쿠데타를 주도한 것도 육사 출신이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서 서울대 출신이 절반 이상을, 남성이 90%를 차지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바 있다.❹

따라서 비상계엄 이후 쿠데타의 배경에 육사가 있다며, 사관학교 통폐합 등 육사 출신의 비대한 권력과 군의 ‘육사 중심주의’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늘의 그대 미래의 계엄사령관”이라며 육사를 조롱하는 포스터도 등장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서울대의 경우는 쿠데타의 배경으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 충암고 학생들은 충암파와 자신들을 어떻게든 분리하려 했지만, 12월 27일 ‘내란범·내란 동조자 동문 규탄’ 기자 회견에서 서울대 재학생들은 윤석열 정부 내각의 다수를 구성하는 서울대 출신 국무위원과 여당 국회의원 “선배님”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동문으로서’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내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문’이라는 자의식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기자 회견에 참석한 학생들 역시 서울대라는 ‘학연’의 일부이기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권력의 행사,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것을 ‘상징 폭력’이라 불렀다. 충암파라는 명명과 충암고를 둘러싼 소동은 무엇이 문제로 여겨지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거기에는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❶ ““학생들은 잘못이 없잖아요” 충암고에 위로의 풀빵 전한 시민들”, 〈경향신문〉, 2024년 12월 18일.

❷ ““쪽팔린다” “우린 형제” 갈라진 충암고… 총동문회는 “중립””, 〈중앙일보〉, 2024년 12월 5일.

❸ “현역 의원 하나 없이 대통령을 배출해 버린 학교… 尹 모교 충암중고-대광초 인수위 인맥은?”, 〈동아일보〉, 2022년 4월 9일.

❹ ““서울대·8학군·서울 출신↑”… 윤석열 내각 109명 분석”, 〈KBS〉, 2023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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