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특집]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 박노해 / 김수현 / 김홍규 / 정유진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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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광장, 그리고 학교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박노해

eclipz13@naver.com

경북 초등 교사


김수현

ee97002@naver.com

경기 중등 교사


정유진

qthuble@naver.com

경기 중등 교사


김홍규

plateaux2@gmail.com

강원 중등 교사





학생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박노해


12월 3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상계엄 사태 다음 날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로 출근했다. 내가 일하는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등교했으며 오전 9시가 되자 평소처럼 1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교사 휴게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간밤의 소요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뿐 학교는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었다.

쉬는 시간에 대통령 담화문을 포함해 계엄과 관련한 뉴스를 빠르게 찾아보았다. 계엄은 국회에 의해 해제되었으며 나라에 큰 사변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전쟁과 같은 큰일이 없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면 간밤의 소요는 다 무엇이었나?’ 하는 정리되지 않은 의문이 따라붙었다. 반 학생들도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며 내게 질문을 했다.

교사 역시 평소 계엄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거의 없거니와 12.3 비상계엄이 ‘정상적인’ 계엄도 아닌 터라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간밤의 일이 그저 만우절 농담이었단 듯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발 빠르게 수업 자료를 배포해 주어 그것을 참고 삼아 12.3 사태에 대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계엄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평소 수업에 비해 매우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들과 달리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이라 그런 것일까? ‘계엄이 왜 선포되었는가?’,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때를 틈타 북한이 쳐들어올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등의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학생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계엄의 심각성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하고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학생,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에요. 우리 엄마가 어제 그랬어요”라며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군인과 총기, 군용 차량과 같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12.3 사태를 ‘재미있는 볼거리’로 소비하는 경향도 보였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 표결로 세상이 한창 시끄러울 무렵 탄핵과 관련한 수업을 한 차례 진행했다. 초등학생들도 지금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대략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육과정에 나오는 삼권 분립에 대한 내용이었다. 3학년에겐 다소 이르지만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때도 역시나 계엄 직후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높은 관심과 더불어 많은 질문이 오고 갔다.

당시 12.3 사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보면 교사인 내가 그저 지식 전달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정치적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로 받아들여지는 학교 문화와 학생 보호자 중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가 섞여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한몫했던 것 같다. 단순히 지식 몇 개를 전달하는 걸 넘어 옳고 그름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김선생님법’을 통해 본 민주시민교육의 딜레마


당시에 학생들과 했던 수업 외에 다른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던 차에 수업 하나를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일명 ‘김선생님법’이라 불리는 수업이 바로 그것인데 수업의 골자는 초등학교 2학년 교사인 ‘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린다’와 같은 과격한 규칙을 따르도록 일방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모의 수업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해 독재 상황을 겪게 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통해 해당 수업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부끄럽지만 ‘저러다 학생들끼리 진짜 때리기라도 하면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하나’ 하는 보신주의였다. 이어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것이 초등학생들에게 적절한 수업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수업에 관해 말하기 위해선 반드시 상황과 맥락을 살펴야 하고, 수업 참여자들 간의 관계 맺음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기사를 통해서는 이러한 부분까지 충분히 알 수는 없기에 해당 수업에 관한 평가를 외부에서 하는 것은 섣부른 면이 있다. 그럼에도 김 선생님의 수업과 그 수업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는 다소 염려되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폭력의 위험성을 가르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부분이다. ‘김선생님법’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조항은 ‘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린다’이다. 다행히 해당 조항으로 인해 학생들 간의 신체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교사에 의해 폭력이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또한 직접적인 신체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이후에 학생들이 사용한 언어는 다분히 폭력적이다. 김 선생님 반 학생들이 만든 ‘우리반법’에는 ‘선생님은 우리한테 맞아야 한다’거나 ‘선생님은 바보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학생들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억압에 따라 발생한 부정적 감정을 그저 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화해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싸움을 붙이지 않는다. 잘못에 따른  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학생들의 잘못을 유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리를 김 선생님의 수업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독재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수업이 꼭 억압적 상황을 직접 경험하는 형태여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모의 계엄’이 일단락되고 난 이후 김 선생님은 수업 의도에 대해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염려되는 것은 수업의 대상이 된 학생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점이다. 저학년 학생들은 급격한 상황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교사가 추후에 적절한 설명과 이해를 구해도 학생들은 이전까지 펼쳐졌던 억압적 상황에서 정서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연령이 낮은 아이들일수록 보호자의 따뜻한 보살핌과 그로 인한 신뢰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교에서 그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은 교사인데, 학생과 교사 간의 신뢰를 흔들면서까지 도달해야 할 수업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 선생님 반 학생들이 아마 가장 믿고 의지했을 담임 선생님을 향해 “때려야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그들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여담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는 교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함축적이거나 빗대어 표현된 말은 저학년 학생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의 상황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초등학교 2학년에겐 다소 이르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과격한 표현일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김 선생님의 수업은 수업이라기보다 ‘실험’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특정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 실험 말이다. 물론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불의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수업을 근거리에서 관찰하지 않았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외람된 일이다.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이 존재함에도 참여자의 동의 없이 수업을 진행한 것은 연출된 폭력을 넘어 실재하는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나아가 이번 일을 다룬 언론이나 이를 접한 누리꾼의 반응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거의 접할 수 없었단 점이 한편으로 놀라웠다. 비록 누리꾼들을 통해 교사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해당 수업이 학생들 정서에 가져올 문제나 수업 자체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목적이 수단마저 정당화해 주진 않을 텐데, 탄핵이란 강력한 목표가 다양한 결의 논의를 소거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끝으로 교사로서 나 자신이, 혹은 김 선생님도 어쩌면 학생들을 그저 계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는가 묻게 된다.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은연중에 다그치는 투로 말하지는 않았던가. 가장 좋은 민주주의교육은 학생들을 민주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치적 현안을 수업 안에 적절히 녹여 내는 것 역시 필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수업에 대한 반성을 하다 보니 생각이 멀리까지 뻗어 가게 되었다. 계엄과 탄핵이란 이번 사태를 통과하며 우리 주변에 온갖 말들이 떠돌고 있다. 허나 세상은 말로 가득하지만 정작 학교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여전히 12.3 불법 계엄에 대한 해석의 언어를 갖지도, 해석에 대한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학교가 지금의 정국과는 완벽히 동떨어진 공간인 것처럼. 그런 와중에 김 선생님의 수업을 놓고 너무 비판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비판을 넘어 교육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공유될 수 있기를, 나아가 학교가 12.3 불법 계엄에 대한 마땅한 ‘할 말’을 찾길 바란다.




비상계엄 후 학교는


김수현



2024년 12월 3일 : 계엄의 밤


“쌤, 석열이 이 뚱보가 비상계엄령 선포했는데 휴교 가능하다는데 안 가도 되나요?”


어디서 가짜 뉴스를 듣고 이런 질문을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텔레비전을 켰다. ‘비상계엄 선포’ 속보 헤드라인이 날아들었다. 성난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섰다. 가슴 안쪽에서 뭔가 낙하하고 눈물이 맺힌다. 국회로 들어가기 위해 아우성치는 국회의원들은 입구를 막아선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대치 중이다. 긴박한 화면은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는 군인들을 비춘다. 말로만 듣던 계엄군인가. 난초 화분이 깨질까 살짝 밀어 두는 걸 보니 밀리터리 예능 프로그램 같기도 하고. 이 초현실적인 광경에, 상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답하려던 손가락이 자판에서 머뭇거린다. 학급 단톡방은 토론장으로 변했다. 


“그게 아니라 이 새끼 탄핵당할 거 같으니까 비상계엄령 때리는 거임. 휴교 안 함.”

“에초에 비상 계엄령이면 휴교 가능하다는데?”

“휴교 안 할 듯.”

“그냥 대통령 자리 내려가기 싫어서. 이걸로 휴교하면 진짜 개레전드임.”

“내 생각엔 〈서울의 봄〉이 이번에 상 받는 거 보고 이러는 듯.”

“니 얼굴 윤석열.”

“ㅋㅋㅋㅋㅋㅋㅋ”


우리반 빅 토커들(big talkers)의 단정적인 말투 속에서도 혼란이 묻어났다. ‘얼굴 욕’으로 토론은 끝났지만 혼란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모티콘의 의미는 해석할 수 없었다. 휴교를 안 해서 아쉬운 건지, 계엄령이 슬픈 건지. 또 학교나 교육청에선 어떠한 지침도 없다. 폭설 때처럼. ‘관료들아, 학생과 학부모는 담임에게 묻잖아! 민원 들어오면 담임한테 책임 묻고, 그때서야 지침 내릴래?’ 하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지침을 기다리길 반쯤 포기한 때, 1990년대생 후배 선생님이 반 농담으로 묻는다.


“낼 휴교인가요? 계엄 시절 겪어 보신 옛날 사람들 나와 주세요.” 


선생님들은 ‘푸하하하’ 웃었지만 나도 그와 다르지 않다. 동갑인 동학년 교사는 난리통인 학급 단톡방에 “자라”는 짧은 답을 남겼단다. 역사 교사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전문을 올리며 “제가 뭘 보고 있는 건가요?”라며 경악한다. “이 황당한 상황은 어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머리가 어지럽네요;;;” 다들 말줌임표밖엔 할 말이 없었으리라. 그날 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12월 4일이 되었다.


2024년 12월 4일 ~ 종업식 : 계엄의 잔영들


우리 반 철수❶

《소년이 온다》가 철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늘 조용히, 신중한 몸짓으로 나를 도와주는 우리 반 철수는 2주가량 이 책을 들고 다녔다. 독후감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꾹 참았다 물었다. ‘독서논술 학원 선생님이 이번에 공부할 책이라고 하셔서 읽었고, 좋았다. 조금 지식이 쌓였다’고 했다. 계엄령에 대해, 전두환에 대해, 그걸 또 따라 한 윤석열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막말을 던지는 친구들에 대해, 책 속 슬픈 장면들에 대해서도. 말수가 너무 없어 철수의 목소리를 들어 본 선생님은 손가락에 꼽힌다. 그런 철수가 책 이야기를 하며 옅은 미소를 짓기도 하고, 오만상을 짓기도 했다. 나는 철수와 며칠 동안 짬짬이 이야기를 나눴다. 철수는 중2 12월 겨울, 계엄령을 잊지 못하겠지, 나와 나눈 대화들은 잊어도. 단숨에 철수는 내 최애로 등극한다.  


3학년 ◯반 현진과 석우 

남학교의 문화상 확증 편향이 강해질 수 있다지만, 3학년 ◯반은 해도 너무하다. 여기서도 현진이와 석우는 두드러졌다. 담임 선생님께 애들이 커뮤니티 용어를 사용해 여혐, 지역 비하, 고인이 된 대통령 모욕 등을 숨 쉬듯 한다며 고통을 토로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그나마 선생님이라 눈치 보고 덜 했을걸요. 어쩌겠어요.” 

피식 웃었고, 힘 빠진 웃음 속엔 마치 불치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체념이 담겨 있었다. 

현진이는 장난스럽지만 공부 시간엔 열심이었다. 그러다 ‘민주주의’, ‘애국’, ‘자유’, ‘시민’ 같은 주제로 ‘바람직함’을 논하는 학습 활동마다 돌변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기묘한 맥락에 사용했고, “파괴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끔은 극우의 음모론을 학습 활동에 버무리기도 했다. 그럴때 마다 제발 아니길 하고 부정하는 마음으로 “현진아, 일베 하는 거 아니지?” 하고 물으면, 반 친구들은 “맞다”고 합창을 하고, 현진이는 “아니에요”라며 웃는다.

11월, 현진이는 수행 평가 과제로 대선 후보였던 모 정치인을 괴수를 만들어 조롱하는 마스코트를 제출했다. 물론 ‘파괴’라는 글자도 빼먹지 않았다. 그에게 과제의 의도를 물었다. 현진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퇴근길에 담임 선생님께 말했더니, 현진이가 중국에서 귀화했다고 말해 줬다. ◯반의 심한 혐중 정서 때문에 나타난 반동 작용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2월 계엄령 이후, 현진이가 변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소설 속 ‘엄석대’ 같던 석우도 달라졌다. 민주 투사가 된 것처럼 굴었다. “선생님, 계엄 미친 거 아녜요?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변절이었다. 석우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다니, 선생님들끼리도 의아해했다. 

현진이와 석우를 두고 어떤 선생님은 “원래 주류를 따르는 애들일 뿐이에요”라고 분석했지만,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에 신념을 조율하고, 때로는 자기 신념을 바꿨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는 것 같다.


2학년 반, 준이와 태수

2학년 반은 힘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3학년 ◯반보다는 나았지만, 조롱의 언어가 가득했다. 그걸 꾸중할 때마다 아이들은 ‘요즘 애들이 다 쓰는 말’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나는 “교양의 문제”라고 단호하게 응대했다. 혐오나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면 어차피 “눼눼눼, 잘못했습니다”로 얼버무릴 것이 뻔했기에.

  준이와 태수는 반의 여론을 주도했다. 준이는 내가 파란색 니트를 입고 온 날, 물었다. “선생님, 민주당 지지자예요? 저번에 대통령 ◯◯◯ 뽑았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준이식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사상 검증용 질문도 종종 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말을 흐리면 “김일성 XXX”를 해 보라고 다그쳤다. 준이의 호의는 계속됐다. 막말을 하는 반 애들에게 “야, 도덕 선생님, 민주주의자야. 그만해!” 그럼 넌 반민주주의자냐, 따져 묻고 싶어도 애매해서 그냥 넘어갔다. 준이는 계엄을 재밌어했는데, ‘또라이 짓’이기 때문이란다. 계엄 이후 준이는 더 이상 나의 사상을 검증하려 하거나 ‘민주주의자’라고 칭하지 않았다.  

태수가 2학년 반 학급 단톡방에 계엄을 처음 알렸다. 뉴스 속보 동영상 링크를 올려 “비상!”을 외쳤다. ‘중앙지검장의 탄핵 때문에 계엄을 일으켰고, 이제 군인이랑 경찰한테 개기면 안 된다, 원-달러 환율 10% 상승으로 경제 비상사태, 학교는 무슨 일 있어도 간다,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똑똑한 머리로 계엄의 원인과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더니, 그동안 학급의 비만이거나 성정이 여린 친구들을 날카롭게 조롱하던 태수가 내란 우두머리와 그 일당으로 조롱의 대상을 바꿨다. 

“이제 시험 끝나서 놀려고 하는데 또 못살게 구네, 살려 주세요. ㅋㅋㅋ 이거 시위하는 사람들 다 때리는 거 아니야? 아, 무서워. IMF 일어나는 거야?” 

분석가다웠다. 계엄 이후 태수는 내 생각을 여러 차례 물어 왔다. 동지를 바라보는 눈빛을 장착한 채.   

  

그 외 

2학년 태민이는 내게 집회 참여 여부를 물었다. 관심이 있나 싶어 우리 지역 탄핵 집회 장소를 알려 줬더니, 서울에서 시위를 해야 있어 보인단다. 예술을 사랑하는 무대 체질 태민이는 집회에 사용되는 노래들을 흥얼거리기도 했고, 집회 참여 여부에 따라 놀랍도록 단순하게 교사들의 시민성을 평가했다. 

올해 1학년은 전반적으로 딴소리를 잘했다. 그러니 계엄에 대해서도 자신감 있게 소비했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맞나 싶은 수준으로 재해석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자습하고, 나는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들 딴에는 내 걱정을 해 준다고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야, 선생님 생기부 땜에 어깨에 계엄령 내리셨잖아. 조용히 해!”

“조용해, ‘개(계) 엄’하게 칠판에 이름❷ 쓴다.”  


몽매한 망상이 판치지 못하게


계엄은 끝났지만 몸이, 정신이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새 학년 학생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지도자의 망상 앞에 ‘악의 평범성’을 말해 주면서 1년이 갈 것이다. 그 와중에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도들처럼 부정 선거, 반국가 세력, 빨갱이, 중국인, 국민 저항권, 입법 독재 같은 그런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망상에 끈질기게 대답도 해야 할 거다. 경멸스럽기도 사랑스럽기도 한 나의 학교. 그 괴리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학생들에게 독서와 토론, 성찰을 통해 상상력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매우 구체적으로. 망상이 현실이 된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저항의 방법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는다면, 너무 늦을 테니까.  



❶ 글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❷ 해당 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 지나치게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게 한 후 깜지를 쓰게 하셨다.  




빠르고 용감한 학생들, 
아무 일 없는 듯 굴러가는 학교


김홍규



“미친 거 아냐?”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처음 듣고 내가 한 말이다. 정확하게 그렇게 말했단다. 12월 3일, 유난히 일찍 잠들었다. 머리만 닿으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잔다. 잠든 내게 큰아들이 소식을 전하자, 이 말을 뱉고 곧장 다시 잠들었단다. 대화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다. 당장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는 아들은 계엄 해제 확정 이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했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해서 사실상 처음 ‘계엄’ 소식을 듣고, 몇몇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전날 계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이 많았다. 밤을 새운 학생도 있었고, 나처럼 등교 후에야 사실을 안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쏟아 냈다.

12월 3일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정기 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고등학교에서 2학기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는 것은 각종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축제와 학년 마무리 준비, 진로와 인문학 특강, 학급 추억 만들기, 수업 시간 주제 발표, 교과 융합 탐구 등. 안 그래도 바쁜 학생들은 몸이 10개라도 모자라는 때다.

교사도 할 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담임 교사는 반 학생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의미 있는 이별을 준비하느라 마음도 힘들다. ‘생을 갈아 넣어야 쓸 수 있어서’ 아직도 ‘생기부’라고 불리는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준비에 어깨가 무겁다. 이러한 시기에 내란이 일어난 것이다.

내란 이후, 학생들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너무 어이없어 웃음만 나온다.’ 내가 잠결에 뱉은 ‘미친 거 아냐?’와 비슷하다. 황당함을 느꼈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루이틀 지나면서 두 가지 모습이 따로 또 같이 보였다. 영화 〈서울의 봄〉과 소설 《소년이 온다》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민주주의 시대에 계엄령은 무슨 말인가. (……)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인터넷을 보고서야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역사, 정치에 대해 1도 관심 없었기에 계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반성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 대체 왜 계엄을 선포한 것인가? (……) 계엄이 선포된 후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지만, 몇 시간이 아닌, 며칠 동안 계속되었으면, 그땐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나는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고, 앞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❶


행동으로 옮기는 학생들도 생겼다. 반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탄핵 요구 집회에 들고 갈 깃발을 만들겠다고 분주했다.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더니, 미술 교사에게 필요한 재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들은 주말이 지나고 정작 사회 교사인 담임은 가지 못한 집회 소식을 자세하게 전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고, 무엇을 했는지…….

집회에 들고 갔었다는 아담한 깃발이 교실 뒤 사물함 위에 놓여 있었다. 깃발에는 ‘세특 밀린 고등학생들 연합’이라고 적혀 있었다.❷ 쉬는 시간 깃발에 쓸 문구를 논의하던 몇몇이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자부하던 ‘꼰대’들은 10여 년 전 대학생들이 집회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를 때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란 규탄 집회에 등장한 아이돌 그룹 응원 도구에 놀랐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잘난 줄 안다. 하지만, 창의력과 조직력에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이들은 항상 앞서 있었다. 눈길을 받지 못했을 뿐.

대다수 언론은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극소수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의과대학 입시 기사를 쏟아 냈다. 내란 주범들이 장악하려고 했던 신문사와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작 대학 입시가 현실로 닥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달랐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학벌 카스트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시간을 사회를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세특 밀린 고등학생들’이라는 문구는 그래서 그 어떤 구호보다 강렬하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잘 보지 않던 뉴스도 매일매일 챙겨 보고 있다. 지금 상황을 봐선, 국민이 직접 나라를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❸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 학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예비군이라 군대에 다시 불려가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교사가 보호자들을 포함한 시민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공포감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학교가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 해야 할 일을 하고, 계획대로 돌아가는 학교가 참 신기했다.”❹


방학한 지 한참 후에도 ‘학교생활기록부’를 쓰느라 얼굴이 초췌해진 신규 교사의 말이다.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내란을 저질러 탄핵 심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해야 하는 행정적 절차들은 물론이고 하지 않아도 될 관행도 놓지 않았다.

여전히 다수 학교에서 지역을 불문하고 학년 말 ‘진급 사정회’라는 행사를 관행적으로 치른다. 구체적 진행 방법은 다르지만, 내가 있는 지역만 해도 절반 이상 고등학교에서 이 모임이 이루어졌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전국 많은 학교 교사들이 올린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진급 사정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 모임이다. ‘진급 사정’이라는 용어도 근거 법령 없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정(査定)을 “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함”이라고 정의한다. 말 그대로 진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육 활동의 근거가 되는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어디에도 이 단어는 없다.

현행법상 ‘진급’ 또는 ‘수료’ 조건은 단 하나이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50조 제2항에 있는 “수업 일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6조(학년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50조(수료 및 졸업 등) 제1항과 제2항이 관련 규정이다. ‘사정’ 권한이 없는 학교가 아무렇지 않게 이 용어를 사용한 공식 회의를 진행한다.

유급 제도가 없으니 대부분 학교생활기록부를 점검한다.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에서도 교사들이 작성한 학교생활기록부를 들여다본다. 학생들 개인 정보가 공식적으로 다수에게 노출된다. ‘교권’을 강조하는 교육청과 교원단체, 학교 모두 이럴 때는 교사의 고유 권한 침해 상황을 모른 척한다.

직전 학교에서 없앴으니 우리도 폐지하자는 제안에 ‘부장 회의’까지 열렸다지만,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부장 회의에 참석하는 구성원들은 대체로 담임 교사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울러 교원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점검하지 않는 법령에 무관심한 경향이 강하다.

사소한 제안 덕분에, 9월 1일 새로 온 교장 취임 행사에 모든 학생을 불러 모으자는 계획을 무산시켰던 과거까지 소환됐다. 사사건건 학교 업무에 간섭해 부장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하소연도 들어 줬다. 이럴 땐 나이가 많아서 불편하다. 자꾸 조심하게 된다.


교실에 사회를 들이는 태도


내란 이후, 교육계 일부에서 ‘민주시민교육’, ‘학교 정치교육’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내란 주범들은 기성세대다. 교육은 기득권 세력이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민주적이며, 정치적이다.

‘교사도 정치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교실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사회 교사인 내게 이런 주장은 너무도 상식적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다. 역사적으로도 이미 1920~1930년대 미국에서 러그(Rugg), 카운츠(Counts) 등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관련 문제들’을 교과목으로 다뤘다. 러그는 사회적 쟁점을 다룬 교과서를 보급하기도 했다. 그들과 수많은 이들의 투쟁 덕에 교실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됐다.

교실에 사회를 들이는 태도와 관련해 진보적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두 가지를 짚고자 한다. 프레이리가 말한 ‘의식화’, 독일 정치교육에서 옮겨 온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관련된 내용이다.

프레이리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 채 지금은 거의 버려졌다. 아직도 가끔 그런 교사들이 있지만, 프레이리가 사용한 ‘의식화’라는 개념을 ‘교화’ 또는 ‘지도’로 왜곡하는 사례가 있다. 소통이나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런 교육 방법은 개에게 목줄을 매달고 산책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한때 일부 교육자들이 유행시켰던 독일식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원칙들을 담은 교육도 마찬가지다.❺ 결국, 교사나 주최 측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우아한 태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와 자세로 교실에 사회를 들여야 할까? 프레이리와 루소의 말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❻


“교훈을 미리 제시하지 말고, 학생 스스로 그것을 발견해 내도록 해야 한다.”❼


가르치려 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천천히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보고 논의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교실 문화를 만들면 된다. 교사는 단지 민주적인 모습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 보장이 필요하지만, 교실에서 교사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대체로 어렵지 않다. 교사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건 한두 가지 교육 기술이나 짧은 시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정보를 지니고 있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배울 수 있는 존재이다. 실제로 이런 장면은 학교 현장에서 쉽게 확인된다.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이 학생들과 어린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그들을 모른다. 그들이 얼마나 강하고 용감한지를. 내란 이후 학교 풍경을 바라보며 새삼 깨닫는다.


“당신의 학생들을 더 잘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확신하건대 당신은 그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❽



“우리는 타인에게 무해하면서도 얼마든지 강하고 용감한 사람일 수 있다. (……) 연민과 예민함을 유지하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할 수 있다.”❾



❶ 나와 수업을 같이 했던 한 학생이 ‘한 학기 돌아보기’ 시간에 쓴 글 일부이다.

❷ 깃발에 쓰인 ‘세특’은 ‘학교생활기록부 특기 사항에 기록될 수 있는 활동 후기 제출’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이라는 각 교과목의 정성 평가에서 유래됐다. 

학년 말이 되면 교과 융합 수업, 초청 강연, 독서와 감상문 작성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같은 여러 학교 활동에 참여하고 소감문을 작성해 제출하면, 교사가 활동 과정과 결과물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교생활기록부 특기 사항에 기록할 수 있다. ‘세특 밀린’이라는 표현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 소감문 작성이 ‘밀려(쌓여) 있다’라는 뜻이다. 대학입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특기 사항’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는 정량 평가인 학교 성적만을 반영하던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전형’(학생부 교과)에서도 교사가 작성하는 정성 평가를 일정 비율 포함하는 대학이 늘어나는 추세다.

‘학종’과 ‘학생부 교과’는 대입 수시 전형의 대표 방법이다. 비수도권 학생들은 대부분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다. 강원도의 경우, 2024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간 학생은 94.2%로 정시 5.8%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보도 자료] 2024학년도 도내 재학생 대학 진학 결과〉, 강원도교육청, 2024년 3월 12일. 참조)

❸ 나와 수업을 같이 했던 또 다른 학생이 ‘한 학기 돌아보기’ 시간에 적은 글 일부이다.

❹ 내란 발생 한참 후에 학교 동료 교사와 대화하던 중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❺ 1976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라는 도시에 모인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자들이 이념 대립 해결 문제를 주제로 논의했다. 논의 결과, 정치교육 중요 원칙으로 강제성 금지, 논쟁성 유지, 정치적 행위 능력의 강화 세 가지를 들었다.(조상식(2009), 〈민주시민교육의 교육 이론적 지평〉, 《교육사상연구》, 한국교육사상학회, 220쪽.)

❻ 파울로 프레이리, 남경태·허진 옮김(2018), 《페다고지》, 그린비, 116쪽.

❼ 장 자크 루소, 김중현 옮김(2003), 《에밀》, 한길사, 88쪽.

❽ 장 자크 루소(2023), 앞의 책, 55쪽.

❾ 해나 주얼, 이지원 옮김(2024),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뿌리와이파리, 29쪽. 여기서 ‘우리’는 젊은 세대를 말한다. 주얼은 ‘꼰대’들이 젊은이들을 비꼬면서 손에 닿으면 금방 녹아내리는 ‘눈송이’라 부른다고 지적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민주주의 수업 단상


정유진


12월 4일, 교실은 어수선함과 저마다 터져 나오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 학생들은 서로 눈치만 본다. 수업인데 진도 나가겠지 설마 정치 뉴스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체념의 눈빛도 있었다. 아예 내게서 등을 돌린 채로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가는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은 ‘저 사람은 이야기를 해 줄까?’, ‘저 사람은 얘기를 건네도 될 사람일까?’ 하는 기색이다. 교실이 이렇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억누르는 곳이 된 지는 아주 오래됐다. 하지만 이번엔 매우 달랐다. 모두 간절하게 그동안 억눌러 온, 목구멍까지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내뱉고 싶어 했다. 12.3 비상계엄 다음 날,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었다. 

  있는 것을 없는 체하는 것은 위선이며 살아 있는 교실은 일상으로부터 흐른다. 수업을 열 때는 하다못해 앞 시간이 체육이었는지, 수행 평가를 해서 진이 빠졌는지, 점심 메뉴는 무엇인지 하는 사소한 안부와 일상을 나누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계엄과 같은 큰 사건으로 인해 교실에 가득찬 혼란을 없는 체한다면 아마 죽은 교실일 것이다. 교실이 이토록 세상에 대해 궁금해한 것이 얼마만인가. 교사로서 놓칠 수 없었다. 밤이 새도록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민주주의 수업’ 자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자는 친구를 깨우고 각자의 퍼즐을 맞췄다


계엄령에 대한 말문이 터지자, 학생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해 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요,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납니까?” “진짜 실화예요? 정말 한심해요.” “저희 누나 유학 갔는데 환율 뒤집히면 저희 집 어떡해요!” “국회가 날로 먹는 횟집입니까?” 계엄을 두고 하는 세상의 온갖 말들이 교실에서도 터져 나왔다. 자는 친구에게 계엄 이야기를 한다며,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라고 깨워 대자 바위 같은 잠도 일어났다. 그러는 가운데 각자 자신의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 여러 매체로부터 접했던 정보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조합하고 정리한다. 교실이 점점 살아난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도덕적 손상의 회복은 이런 것일까?❶ 교실은 각자의 알고리즘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었고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정의로운 것, 자유에 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배움 이전에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엄과 계엄 이후의 상황에 따른 자유와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적을 떠나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유치하든 과격하든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누구나 말할 수 있었고 서로가 그것을 인정했다. 자유와 정의 앞에서 동료 시민이 되었고, 우열이 없는 대등한 존재가 되었다. 서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했다. 자신의 말이 열등할까 봐 눈치 보지 않았고, 자신의 말이 우월하다며 눈치 주지 않았다. 학생들끼리만 통하는 비속어부터 ‘탄핵 부적’, ‘크리스마스의 탄핵 선물’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학기 말을 흘려보냈다. 수업에서도 〈탄핵송〉을 틀어 소개하거나, ‘국회의원 의무투표제’, ‘국민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니 국민이 투표로 파면하자’ 같은 지적인 제안들도 함께 귀 기울여 들었다. 교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내란 세력이 정의와 자유 같은 기본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어른과 세상의 한심함을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교실은 사회 현안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서로를 두고 “1찍이다”, “2찍이다” 하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계엄 수업에서는 ‘찍소리’가 없었다. 되려 탄핵 정국이 지속될수록 교실은 극단적 유대감에 대한 객관화와 비판의 시선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은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이기심과 부정의를 눈으로 확인하며 진짜 자유와 나라의 모습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통합사회 교과 〈6. 사회정의와 불평등〉 단원에서, ‘생활 경험으로부터 발생된 극단적 유대감에 대한 비판과 국가(사회) 건설’을 학생들과 함께 탐구했다. 학생들의 활동지는 온통 ‘잘못한 만큼의 처벌을 받을 때 정의가 실현된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자유권이나 평등권과 같은 개인의 기본권이 충분히 실현되기 어렵다’, ‘자유주의적 관점이 아무런 제한 없이 오직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변질할 경우,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공동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교과서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12.3 내란으로 인해, 자유의 보장과 실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의 노력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임을 학생들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바람직한 국가의 작용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바라게 되었다. 생활 경험으로부터 나온 탐구가 시작되었다. 


두부를 사 주겠다


일상으로부터 흐르는 이야기와 생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탐구는 교실을 살아 있게 만든다.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과 뜻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펼쳤다. 양심, 근원적인 자유와 정의에 관해 질문하고 토론하기에 금기가 존재할 수 없다. 학생들이 만일 교사인 내가 잡혀가게 되면 “두부를 사 주겠다”고 위로할 만큼 우리는 당당하고 떳떳했다. 지적인 탐구와 윤리적 실천이 열린 교실에는 배움이 정제된다. 이렇게 자신과 세상에 관한 서로의 뜻과 마음을 펼치는 것은 교실의 핵심이자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일궈 내는 근원적 활동이 된다.

‘내가 뽑지도 않은 대통령 때문에 혼란을 겪는 우리에게 공부나 하라고 하지 말라. 대등한 시민(국민)으로 보아 달라’는 청소년들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요즘이다. 1960년대 상황에서 만들어진 교실에서의 정치 금기는 세상에 대한 마음과 뜻을 펼치지 못하게 막았다. 이것은 21세기인 현재와 너무도 맞지 않다.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교사와 학생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어 있다. 그 가운데 알고리즘 세계에서 강화되는 좁은 시선, 세상에 대해 각자의 뜻과 마음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금기는 학생들을 사회와 삶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함에 허덕이게 만든다. 교실은 살아 있고 싶어 한다. 교실은 생생한 것을 원한다. 자생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의 양심과 선택으로 실천하고 싶어 한다. 계엄 수업이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교실에 정치적 자유를 돌려달라


학생들은 “어른들이 왜 저러는 거예요, 한심해요”, “어른다운 어른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고 써 붙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도전적·변화적·모험적 속성이 ‘정치교육’ 혹은 ‘교육’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대전환기를 살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발산해야 하는 모습이다. 정치에 대한 금기는 미래에 대한 걸림돌이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마땅히 발휘해야 하는 각자의 뜻과 마음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 교사는 세상의 일인 정치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마땅한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류세의 교육이 인간-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특히 AI 문제)에서 시민과 노동자들의 권력 확장, 사회 안전망의 강화, 좋은 일자리의 창출로 향할 수 있도록, 단지 자율(주체)적인 교육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자기 관계 및 세계화의 관계의 개념을 향하는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논쟁 문제 수업을 안 했다고? 토론과 쓰기를 안 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쟁점 토론과 쓰기 평가는 차고도 넘치게 한다.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와 교실에서 매순간 바람직한 사람을 키워 내는 데 여념이 없다. 다만 어제와 오늘의 정치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고 억압하는 오래된 교실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교사와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차단하고 서로의 침묵을 강요하며 낱낱으로 고립되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를, 교실을 믿지 않는다. 가짜 얘기만 할 게 뻔하니까. 숨김없고 자유로운 말을 나눠도 된다는 신뢰와 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공감도 기대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금기는 학생들로 하여금 궁금한 것들에 대해 가슴 뛰고 치열하게 탐구하려는 인간 본성을 잘라 낸다. 

계엄 이후의 교실은 이제 주저함이 없다. 정치적 자유를 원한다. 정치가 일상 그 자체라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속 활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교실은 그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순간 우리 모두는 숨죽였다. 숭고했기 때문이다. 판에 박힌 구태의연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추상적인 말들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우리의 말이 되었다. 마치 연극 수업 속 대사를 읊듯이 메소드로, 궁서체로 생생하게 읽혔다. 외쳐졌다. 절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외침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앞에 열린 길을 가면 된다. 담대하게 자신의 마음과 뜻을 교실에서 펼치자. 



❶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은 충격적 사건 중 특히 비윤리적인 일을 경험한 후 분노, 슬픔, 자기 비하,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다. 도덕적 손상의 회복은 도덕적 정의의 실현이나 정치적 해결책(political solution), 트라우마의 사회적 공유로 부당한 행위에 대한 공개적 정화와 용서를 통해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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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