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특집] 학교에 드리워진 계엄령을 걷어 내자 | 조영선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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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광장, 그리고 학교



학교에 드리워진 계엄령을 

걷어 내자



조영선  

imaginer96@gmail.com

서울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12.3 내란 사태로 새해가 뒤숭숭하다. 시민들의 힘으로 유혈 사태 없이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까지 왔지만, 다른 한편 이번 일로 ‘계엄령’이라는 국가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여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5.18 광주항쟁 등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접해 온 나에게 계엄령은 마치 집행 중지된 채 법에만 적혀 있는 사형제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대통령을 뽑으면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폭력적인 제도는 민주적인 분위기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가도,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만약 국회라는 입법 기구가 비상계엄을 해제하지 못했다면 시민들 모두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세간에서 이야기되듯 대통령과 배우자, 그리고 무속일까? 내란의 중심에서 시대착오적이면서 위험한 멘탈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이른바 “충암고 라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학교는 몇 년 전까지도 대표적인 학생인권 침해 학교이자 사학 비리의 상징이었다.❶

당시 사학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자기들의 배를 불리느라 전교생이 700명인 학교에 화장실을 단 1개만 제공했고, 중학교 현관을 틀어막고 그 자리에 법인 사무실을 두어 학생들의 중앙 현관 통행을 금지하였다. 2015년에는 교감이 “급식비 안 냈으면 밥 먹지 마”라며 학생들을 가로막는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와 이어진 수사, 판결에 따르면, 충암학원은 직영 급식으로 위장해 편법 위탁 운영을 하였으며, 식자재비를 부풀리고 무단 반출하는 수법으로 횡령을 했다. 이번 내란 세력이 공유한 물리력에 의한 지배, 고문 등 신체적 학대, 상명하복 등의 문화가 어디서 배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이 2023년에 학생인권조례 폐지 방침을 내린 것은 이들의 멘탈을 드러내 준다. 개인의 다양성을 철저히 지워야 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개개인의 인간으로 존중하자는 가치를 담은 학생인권조례가 혼란을 만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내란 사태로 표출된 시대착오적인 역사의식은 학교 밖의 민주화가 학교 안까지 뿌리내리지 못한 지체된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비단 특정 학교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학교는 언제나 군대에 파견될 수 있는 학생들을 길러 내기 위해 1980년대까지 교련을 배우게 했고, 상명하복의 군사주의 문화를 더 어렸을 때부터 내면화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 이후에도 오래도록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며 전체주의 문화의 숙주가 되었던 곳이 바로 학교였다.


윤석열이 학교에 미리 내린 계엄령


2023년, 윤석열 정권에 의해 학교에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라는 포고령이 선포되었다. 윤석열 정권은 교사가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사건의 원인을 엉뚱하게도 학생인권조례로 돌렸다. 동시에 학생인권조례를 ‘좌파 교육감의 세뇌’라고 선동하며 조례를 폐지 또는 개악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국민의힘 시·도의원들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일어났다. 2024년 충남 학생인권조례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었고, 교육감의 재의 요구와 대법원 소송으로 조례의 효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광주 역시 폐지 시도가 있었으나 시민들과 의회의 힘으로 부결, 위기를 넘겼다. 

학교의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문제를 제기해 온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로 2010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생겼고, 2013년까지는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많은 지역과 학교에서 학생 개개인에 대한 최소한의 신체적 자유가 신장되었다. 하지만 최근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다시 용의·복장 규제 및 휴대전화 일괄 수거가 강화되는 등 학교의 인권 상황은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에서도 사학들이 예배 등 종교 행위에 학생과 교사를 동원하기 시작했고,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통과 직후 두발 검사를 다시 하려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12.3 내란 이후 일련의 사태에 분노를 느끼고 시국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회가 징계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학교에 내려진 일종의 계엄령인 것이다.

불완전한 제도화는 이렇듯 민주화에 반대했던 세력에게 힘을 주고, 이에 대한 반발 역시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 ‘교권 회복’을 빌미로 「생활지도 고시」가 만들어졌지만 교사에게 안전망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전까지 보장되었던 가치들이 무시되는 것에 대한 반발과 불완전한 제도 안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교사들이 ‘민원’을 받을 위험을 초래한다. 학교 안의 모든 개인이 당연한 제도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힘을 활용해야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학생·보호자는 (힘을 잃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민원이나 아동학대 처벌 등의 협박을 통해 개인의 힘을 갖추는 데 골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법적인 힘에 기대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수록, 더 많은 힘을 가진 이들의 위세는 더 커지고 있다.

소위 ‘교권 4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교사들은 민원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은 학교를 민주적으로 만들어 구성원끼리 서로 연대하여 집단적인 힘으로 구조적인 해법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는 대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지도 고시」는 학생이 문제 행동을 저질렀을 때 교사 개인에게 발휘할 수 있는 공권력(‘물리적 제지’나 ‘분리’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동원하려 했던 물리적 공권력과 매우 유사하다)을 주고, 학부모의 참여는 억제하여 철옹성처럼 학교 문을 닫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학생들은 물리적 제지나 분리 등으로 기본적인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고, 이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학부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학부모는 전전긍긍하며 학교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아예 학교를 공격하는 양극단의 대처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나마 이런 대처를 해 줄 부모의 힘이 없는 학생은 똑같이 물리적, 즉각적으로 방어·반응하다가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2024년 10월 인천에서 일어난 특수 교사 사망 사건은 ‘학생인권이 문제’라거나 ‘민원 때문’이라는 프레임으로는 교사의 노동을 보호할 수 없음을 보여 주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바뀌지 않고 있다. 「생활지도 고시」상 물리적 제지, 분리 조치 등을 법제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교사노조 출신의 백승아 국회의원은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물리적으로 제지하고 분리할 수 있는 권한이 마치 계엄군이 가진 권한과 같다는 주장이 무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엄령의 핵심은 자의성이다. 즉 권력자의 인격이 다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력으로 동원될 수 있는 ‘인격의 권력화’가 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위험에 처했다는 판단을 개인인 대통령이 한다면 그동안 보장되어 왔던 개인의 자유도 모두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비상계엄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자의적 판단에 의해 개인의 증오에 근거한 포고령을 시행하였다. 

「생활지도 고시」나 이를 법률에 담으려는 법안들 역시 교사에게 모든 문제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과 이에 따라 즉시 물리적 제지나 분리 등의 물리적 수단을 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한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행사될 경우에 즉시 해제할 수 있는 국회와 같은 견제 장치가 없다. 이미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물리적 힘과 평가권 등 유무형의 권력 격차가 존재한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사가 한 모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물리적 힘을 사용하거나 배제 조치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생활지도 고시」인 것이다.


‘김 선생의 계엄 수업’에서 보여 준 예시가 바로 현실이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교사들이 계엄령을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계기 수업을 한 사례들이 화제가 되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교실 상황에서 계엄령과 유사한 포고령을 선포하고 이를 접한 학생들이 선생님을 몰아내자고 했다는 사례이다.❷ 이 교사가 만든 ‘김선생법’은 계엄령의 속성에 대해 알려 준다. 계엄령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행동에 대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즉결 처분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그 교사가 발표한 법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에게 폭력을 사용한다든지, 수업 준비를 하지 않는다든지, 거짓말을 한다든지 등 문제가 있는 행위들에 대해 ‘김 선생’이 즉결 처분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폭력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에는 당연히 민주 사회의 원리에 따른 제재가 필요하다. 문제는 교사가 직접 처단하는 집행자가 되어 친구를 때리도록 하거나, 

1시간 동안 침묵을 시키거나, 모이지 못하게 하는 등 부적절한 방식으로 기본권을 모두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계엄령 치하에서 모든 민주적 절차들이 무시되고 계엄 사령관의 명령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윤석열 정권이 내놓은 「생활지도 고시」에는 ‘김선생법’처럼 때리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물리적 제지’는 상대가 저항할 경우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분리의 경우에도 말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성격이다. 실제 물리적 제지는 대체로 초등교육에서 더 유효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이러한 점에서 이 법은 분명한 물리적 폭력에서의 우위를 가정하고 설계된 법이다. 우리는 12월 3일 비상계엄을 통해 정당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일상이 파괴될 수 있는지 경험하였다. 어떤 정치인을 만나는가가 전체 국민의 안위를 결정하는 것이 계엄령이라면, 학생인권조례의 폐지와 「생활지도 고시」는 어떤 교사를 만나는가에 학생의 안위를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도 학교의 교칙은 계엄령과 계엄 포고령으로 가득했다. 1949년 제정되어 1989년에 폐지된 「교육법」은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규정했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학교의 각종 학칙과 문화는 인격을 권력화하는 것이었다. 교장이 교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교사는 학생에게 명령을 내리는 문화 속에서 교사 개인이 생각하는 교육적 목적에 부합한다면 체벌 등의 폭력도 허용되어 왔다. 관련 내용은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4항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오랜 역사적 습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법령에서 정하는 바’라는 기준도 모호하기에 교사 또는 학교장에 따라 학칙의 내용이 바뀌기도 하고, 교실마다 다른 생활지도 방식이 통용되기도 했다. 아직도 한 학교 안에서도 어떤 학급에서는 쉬는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고, 어떤 학급에서는 금지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일관되지 않은 학교 규범은 대부분 교사의 지도와 처벌이라는 형식을 통해 지켜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제 학칙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용의·복장, 휴대전화 등과 관련된 일부뿐인 경우가 많다. 학교에 따라 의견을 수렴하는 범위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이 적용과 처벌을 받게 되는 징계 규정이나 벌점 규정에 관해서는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24년 기준으로도 학교들의 학칙에 포함된 징계 기준표를 보면, 계엄 포고령을 연상케 하는 학생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각종 항목이 명시되어 있다. 특히 “교사의 수업 및 생활지도 관련 정당한 지도에 불응한 학생’이 징계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고, 누적된 횟수에 따른 가중 처벌도 크다. 즉 교사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곧바로 벌점이나 징계가 가능한 것이다. 사실상 생활지도권은 교사 개인의 학생 징계권과 마찬가지이고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계엄령의 속성과 일치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교사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에 제약을 받는 계엄령 속에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김 선생의 계엄 수업’ 기사를 보고 그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이러한 수업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계엄과 같은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학생들이 알 수 있게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만약 중·고등학교에서 이러한 수업을 하면 어땠을까? 언제든지 교사의 마음대로 벌점을 줄 수 있고 벌점이 쌓여 징계로 이어지곤 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런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 수업에서 ‘김선생법’을 보고 학생들이 교사에게 저항했다는 것은 평소 교사가 학급의 분위기를 민주적으로 만들어 왔고, 교사라도 이처럼 부당한 일을 하면 탄핵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관계를 맺어 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교실에서는 과연 학생들이 저항할 수 있었을까? 이런 수업을 했을 때 학생들이 이런 법을 명령한 선생님은 탄핵되어야 한다는 말을 교사 앞에서 할 수 있는 교실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의 계엄령을 멈출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고 그 책임을 물어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적어도 교사의 부당한 행위를 즉시 중지시킬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하거나,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했을 경우 탄핵할 수 있는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개인이 소송을 제기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권한이 정당하게 행사되었는지 따질 수 있는 제도와 절차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인권의 기준 위에서 사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며, 인권 침해에 대해 학교 안에서 공식적으로 평화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이 바라는 최소한의 틀인 것이다.

 

응원봉 시위의 발랄함과 키세스 투쟁의 처절함 사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이 이어지며, 응원봉 시위에 대한 사회적 칭송이 자자하다. 학생인권조례를 경험한 세대의 새로운 민주주의라고 추켜세우는 글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주의를 이끌고 있는 2030 여성들은 이러한 민주주의를 과연 학교에서 배웠을까? 

최근 20년간 광장이 이렇게 큰 규모로 열린 것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때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때였다. 2008년 촛불 당시에도 여성 중고생의 참여가 높아 ‘촛불 소녀’로 호명되었다. 그때는 광우병 이슈가 15~20년 후 발병한다는 것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가 많았고 학교에서도 많이 이야기되었다. 또한 이명박 정권에서 특권 교육, 경쟁 교육 정책을 내놓으며, 학교 자율화의 이름으로 강제적 보충·자율학습에 대한 규제가 풀리는 문제도 있었다. 즉 ‘미친 소’로 불린 광우병이란 이슈만큼이나 ‘미친 교육’이란 구호로 표현된 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교육 이슈는 이후 진보 교육감들의 주요 의제로서 안전한 먹거리를 기반으로 한 무상 급식 정책과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전면화된다. 당시 광장에도 청소년의 참여가 활발했고, 이것이 교육운동의 의제로 부상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다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도 민영화 등 퇴행적 정책이 이어졌다. 대학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이슈가 됐으며 중·고등학교로도 이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몇 년간의 끈질긴 세월호 참사 투쟁에 많은 청소년이 함께 했고, 이후 국정 농단 사태와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졌다. 보수적인 중앙 정부와 진보 교육감이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를 안전의 날로 새길 수 있도록 공문을 내리는 교육청들이 있었고, 그나마 학교 안에서 세월호에 대한 추모가 공론화될 수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가 당시의 모토였기에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민주 공화국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4.16 교육 체제’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선거권 연령 18세로 하향’이라는 성과도 얻어 냈다. 

지금 2030 여성들은 이러한 사건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일들이 공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허용되거나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는 교육부의 징계 압박 속에서 부분적으로만 진행됐다. 학생들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 운동을 하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대부분 학교에 의해 빠르게 철거당했다. 2010년대 초부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역들이 있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두발·복장 규제조차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그 후 스쿨 미투 운동 속에 학교는 미약하나마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공식화한 적이 없다. 학생에 대한 규제 완화는 슬그머니 이루어지고, 교장이나 생활지도부장이 바뀌면 다시 학교는 내홍을 겪는다. 성희롱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규범이 예전보다는 퍼졌지만, 피해자가 나서지 않는 한 그런 발언을 하는 교사에 대해 누구도 공식적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만들어져 그대로 남아 있던 학칙들이 교육청에서 공문 한번 오면 ‘복사+붙여넣기’를 통해 바뀐다. 그러한 변화의 의미를 공식화하고 학생들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그 권리를 보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가 변한 것 같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그대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청소년들은 늘 부당한 현실에 맞서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지만, 참여한 만큼의 권리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학교에서 보장된 적은 없었다. ‘이명박근혜’ 시절에 청소년이었던 현재의 2030들이 학교의 변화나 민주시민교육의 확산 덕에 윤석열 탄핵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계엄령이 지난 역사 속에서 독재의 수단이자 산물이었다는 점을 교과서에서 배울 수는 있었겠지만, 행동에 나서는 자발성과 끈기는 학교교육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학교는 학교 밖 사회의 변화를 애써 부정하거나 공론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반대로 우리는 과연 학생인권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이 가능한지 되돌아봐야 한다.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의 변화에 대해서도 학교는 투표는 할 수 있으나 정치적인 활동은 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일관되게 발신하였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거나,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꺼린다. 익명성이 보장된 평가 설문에 소극적으로 응답할 뿐, 정치적인 의견이나 비판을 드러내놓고 공론화하는 것은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용모까지 단속받는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쉽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덕질’의 세계이다. 덕후는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자신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추앙하는 우상을 매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행동한다. 학교 밖에서 그나마 ‘팬으로서의 나’가 존중받을 수 있는 곳, 팬들의 뜻에 따라 나의 우상이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는 세계가 바로 ‘다시 만난 세계’인 것이다. 아마도 그 공간에서는 많은 사람이 ‘나’로서 존재하고 목소리 낼 수 있었을 것이며, 팬의 대표로서 조직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행동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팬들의 이러한 참여는 가수들의 부당 계약 문제를 사회 의제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확대되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들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참여하고, 각 나라의 환경, 인권 등 정치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미 액티비즘’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❸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의 팬의 이름으로 사회 참여나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들은 취향의 공동체로 시작하였지만, 함께 정치적으로 연결되고 행동하는 것을 학습한 셈이다.

이러한 문화를 분석해 보았을 때, 현재 응원봉 세대가 배운 민주주의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 취향의 공동체에서 학습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정치가 공론화되기보다 사적인 취향일 때 공격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해 온 것 아닐까? 이런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영향은 광장의 다양한 깃발로도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단체나 학교의 깃발 아래로 모이지 않고, 취향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사람과 정치적인 뜻도 함께한다는 의미로 개개인이 깃발을 만들어 모인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힘으로 뭉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지만, 분명 한계도 있다. 평화적인 시위에도 정치인들이 민의를 따르지 않을 때는 일상을 멈추는 파업이나 동맹 휴업 등을 택해야 하는데, 그런 조직적 행동을 하기가 어려운 조건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약자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방식으로 연대하며, 영하의 추위에 남태령과 한남동을 지키는 처절함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2시간 반 만에 해제된 후 사람들은 계엄군이 적극적이지 않았고 어설펐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우두머리들의 계획이 언론에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수괴들의 계획이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과 국회의원들의 빠른 대처, 그리고 그 중간에서의 명령 불복종과 젊은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이 그나마 비극으로 폭주하는 열차를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민주화된 사회나 조금은 달라진 교육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시위 문화 쪽이 아니라, 젊은 계엄군의 소극적 저항에서였다. 모두들 계엄령하에 총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책에서 배웠지만, 체벌이 금지된 학교와 군대를 나온 군인들은 적어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아도 사살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부의 명령보다 자신의 양심과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적 불복종의 정신일 것이다. 이러한 불복종이 싹트기 위해서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부당한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해법이 무엇인지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동체 안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그 결정이 이행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부당한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학생이 징계를 위협받는 학교에서 이러한 시민적 불복종의 가치를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불의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광장에서 서로 손을 잡았던 것처럼 일터와 학교에서도 연대하는 경험을 이어 가려면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도록 공적인 공간을 바꿔 내야 할 것이다.   


시민적 불복종과 연대가 가능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자


12.3 내란 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힘을 남용하는 권력은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의적인 통제의 목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가하거나 국회를 해산시키는 등의 조치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형식적으로나마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식은 이제 학교 밖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사가 자의적으로 물리적 제지나 분리 조치를 하도록 하는 「생활지도 고시」는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최고 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내란을 저지르려고 할 때 그 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침묵했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불응하는 시민적 불복종이 일상의 공간에서도 당연히 인정되고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와 참여를 막고 있는 ‘계엄 포고령스러운’ 교칙들이 없어지고, 윤석열이 먼저 내린 계엄령으로 사라지고 있는 학생인권을 다시 살려야 한다. 오랜 독재의 역사 속에 박탈당했던 교사의 정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제도의 테두리에서 교사와 학생의 정치적 권리가 학교에서 보다 폭넓게 보장되고,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변화의 목소리들이 학교에서 공론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남태령과 광화문, 한남동에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두려움 없이 소개하고, 다른 약한 존재에게 연대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길을 여는 이러한 원리가 일상에서도 통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모습이 광장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취약성을 가진 사람도 그 취약성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게 해야 한다.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은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해 학생들이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래야 일상의 공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구조적 윤석열들’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학교에서 힘 있는 존재가 다른 존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킬 수 있게 되는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광장에서 이런 학교를 꿈꾼다.


• 학기 초에 광장에서처럼 ‘저는 고양이를 키우며, 논바이너리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학교.

• 학교 로비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바로 이동권이 부정되는 학생을 위해 수업을 빠지고 운동장에서 모여 있을 수 있는 학교.

• 퀴어 퍼레이드를 열 수 있는 학교.

• 학생이나 교사가 당한 인권 침해를 공론화하여 해결할 수 있는 학교.

• 이주배경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로 대자보를 붙이고 교장도 그 나라 언어로 답변하는 학교.


이 외에 더 다양한 학교의 모습이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❶ “‘똥 쌀 권리 달라’ 요강 들고 시위하던 학교의 변신”, 〈오마이뉴스〉, 2024년 8월 23일.

❷ “‘안 지키면 처단’ 초2 교실의 계엄 수업… 그 끝은 “선생님을 몰아내자””, 〈한겨레〉, 2024년 12월 10일. 

❸ 〈풀뿌리 운동 에너지원 BTS 팬덤 ‘아미 액티비즘’〉, 《시사IN》, 776호, 2022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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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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