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교원 노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동행하다
-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창립 4주년을 맞아
글
편도환
pdh47s@nate.com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정책실장
학교라는 공간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한 번쯤은 거쳐 갔을 장소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 그리고 선생님들은 같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나이, 성별, 생김새, 사회 경제적 배경, 가정 환경 등 상당히 이질적이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에는 신체 조건도 포함된다. 키가 작은 친구와 키가 큰 친구, 힘이 센 친구와 힘이 약한 친구, 운동을 잘하는 친구, 공부를 잘하는 친구 그리고 그렇지 못한 친구 등 신체 조건이라는 요소만 놓고 보아도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친구들 중에는 간혹 몸이 약하거나 몸이 어딘가 불편한 친구도 있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러한 친구 중에 하나로,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비친 모습은 눈이 나쁜 친구였다.
그런데, 유독 교사만큼은 나처럼 눈이 심하게 나쁘다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시력을 모두 잃고 맹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몸이 불편한 선생님, 즉 장애가 있는 교사를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씩은 거쳐 가는 학교라는 공간에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한두 명, 많게는 여러 명씩 있기 마련인데, 왜 교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을까? 이 글은 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시작으로 장애를 지닌 교사들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 우리는 장애인 교사를 만나지 못했나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국민들에게 공무담임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공무원이 되어 봉사하고 공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권이다. 이러한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연령, 성별,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신체적 조건, 장애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공립학교의 교사는 교육공무원으로서 공직의 직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 임용이 허용된 것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1991년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제정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사업주가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교원은 판사 등과 같이 초기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이로 인해 2000년대 초까지도 교사 임용 시험에서 장애인 교사의 임용이 허용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곤 하였다.❶ 200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개정되면서 교원을 비롯한 판사, 군무원 등의 직종에도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해당 법이 시행된 2006년 말에 치러진 2007학년도 교사 임용 시험에서부터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에 따른 구분모집 전형이 도입되었다.
언론에서는 특수교사가 아닌 일반 교사로 임용되는 장애인 교사들에 특히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2007학년도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해 우리나라 최초로 일반 학교에 임용된 첫 시각장애 영어 교사를 비롯해,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등등 해마다 장애인 교사가 임용될 때마다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장애를 딛고 꿈을 이룬 모범적인 사례들로 소개되곤 하였다. 그런데, 장애인이 교단에 설 수 있게 되면 모든 장애는 극복되고 그날부터 화려한 조명과 장밋빛 무대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추는 빛이 강할수록 그 뒤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짙어지게 마련이다.
장애인 교사 임용의 빛과 그림자
나는 2015년에 영어 교사로 임용되어 한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당시에도 언론은 내 임용 자체에 주목하며 “장애를 딛고 교단에 선 장애인 선생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 줘” 등의 메시지를 담아 보도했다. 한 학생이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수업도 재미있게 하시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담겼다. 교사로서 상당히 뿌듯하고 고마운 장면이었다. 이처럼 내 첫 교직 생활은 설렘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격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30〜40년 간의 교직 생애를 그려 볼 때면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가 발령받은 학교는 서울의 한 혁신학교로, 교육과 학교 혁신에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교사들이 매우 많았다. 학교 혁신을 위한 활발한 토론은 물론 실제로 다양한 교육 활동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나 역시 지금까지 학생으로서 다녔던 학교와 비교하여 매우 좋은 학교라 여겼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교사로서 교육 활동과 직무 수행에 임하는 데 어려움이 존재하였다.
먼저, 2015년 임용 발령 시기를 되돌아보면, 교육청에서는 시각장애인 교사를 위해 교과서를 대체 자료로 제공하지 않았다. 선배 장애인 교사들의 조언과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의 도움으로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전자 문서 형태의 대체 자료를 직접 제작해야 했다. 교육 당국에서 사용하는 업무 관리 시스템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별도의 교육도 존재하지 않아, 첫해에는 수업 외에 아무런 업무도 분장받지 못했다. 연말이 되어 다음해의 업무 분장을 고려하던 시기에 같은 학교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시간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교사와 학급의 수업 시간표 배정 및 변경을 하는 업무를 제안받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스크린리더(시각장애인이 컴퓨터 사용 시 화면의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 주는 프로그램) 접근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결국 업무를 맡지 못했다.
이렇듯 제도적,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장애가 있는 교사들은 업무를 제대로 맡지 못해 교사 집단에서 그 입지가 좁은 경우가 많다. 이는 동료 교직원들의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곤 한다. 장애가 있는 교사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본인의 능력이나 적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기보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경우가 잦다.
시각장애인 교사들, 연대하기 시작하다
선배 장애인 교사들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2010년,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모여 ‘한국시각장애인교사회’라는 임의 단체를 만들어 어려움과 고민을 나누며 교류하기 시작했다. 점자정보단말기 등의 보조 기기를 구할 수 있는 정보나 교과서, 업무 관리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의 노하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2013년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단체 진정을 제기하였으며, 국회 토론회를 열어 시각장애인 교사의 접근성 보장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단체는 임의 단체로서 교육청이나 교육부와 공식적인 협의를 갖고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그 역량과 기능에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2016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한 교사가 해당 단체의 정기 총회에서 장애인 교원 단체 설립을 제안했다. 그 당시에는 시각장애인 교사를 제외한 다른 유형의 장애인 교사 모임이나 단체와의 교류가 없었기에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대략 6개월간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토론 끝에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의결을 묻는 투표에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찬반 동수로 안건이 부결되었다.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을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장애인 교사는 소수인데 소수가 모여 보아야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제대로 대우하거나 상대해 주지 않을 것 같다.” “장애인 교사는 학교에서도 장애라는 이유로 일종의 낙인 효과가 있는데, 노조에 가입하면 이중 낙인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기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큰 조직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설립 초기에는 장애인 교사의 근무 조건 및 환경 개선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추진할 교육 본연에 대한 의제 발굴이 되지 않아 한계점이 있다.” “교원 노동조합이나 교원 단체 같은 조직에서 실무 경험이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데 누가 조직 운영을 맡아 할 것이며 어떻게 외연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까?”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협의하고 의기투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당시에는 반대 의견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해 부결되었다. 하지만 이는 향후의 더 큰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자평한다. 또한, 위에서 제기된 반론들은 현시점에서 충분히 해소되었고 어떤 것은 기우였음을 입증한 반면, 어느 의문점은 여전히 당면한 과제로 남아 있다.
2016년의 부결로 단체 설립을 향한 열기는 사그라들었다. 나는 단체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당분간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러던 2017년, 나는 당시 혁신연구부장으로 보임하던 동료 교사의 소개로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교사노동조합(2016년 12월 창립) 간의 단체 교섭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장애인 교사의 근무 여건에 관한 교섭 요구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이를 교육청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 교섭하고 설득하면서 단체협약을 맺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18년에는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새로운 교사노동조합들과의 연맹체인 교사노동조합연맹을 결성하면서 연맹과 교육부 간의 단체 교섭에도 참여했다. 이 두 차례의 단체 교섭 경험은 실무 업무를 경험하고 실제 교원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큰 디딤돌이 되었다.
다른 유형의 장애와 어우러지기 시작하다
2018년 하반기, 뜻을 같이하는 장애인 교사들을 모집하며 다시 한 번 재도전의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면서 청각장애 교사 모임과 만나고 그중 일부와도 함께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장애인계는 오래전부터 장애 유형에 따른 이해관계가 상이하여 다른 유형간의 연대나 협력이 잘 이뤄지지 못해 왔다.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하다 보니 다른 장애 유형의 선생님들은 홀대하거나 의견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의 시선도 상당하였다. 이러한 다른 장애 유형 간의 갈등과 회의적인 시각을 해소하는 과정이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 전후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조합 설립 전인 2019년 7월, 장애 유형별 공동 위원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를 존중하고 절충하여 장애인교원노동조합의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은 서로 장애 유형을 달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노동조합 규약에 명시했다.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 중의 하나인 중앙위원회의 구성 역시 특정 장애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유형별 인원을 균등히 하는 안도 논의되었다.
이처럼 장애 유형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외형적인 균형을 맞추는 한편 충분히 서로 교류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청각장애인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 참여 보장을 위해 문자 통역을 모든 공식적인 회의와 행사에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실행 중이다. 행사 장소의 선정에서도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이 모두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소의 위치, 경로, 출입구, 동선, 화장실 등을 모두 점검하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단체명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에 명시된 창립 정신, ‘함께하는’이라는 말이 허울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온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더욱더 가까워야 한다. 우리는 서로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이 아닌 실제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식 개선이며, 인식 개선이라고 명명할 필요도 없는 함께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교원 노조가 변화시킨 것들
이렇게 2019년 7월에 창립한 장교조는 올해로 창립 4주년을 맞게 되었다. 조합을 설립하기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접근성의 개선이다. 시각장애인 교사에게는 업무 시스템, 교과서 등과 같은 정보 접근성이, 청각장애인 교사에게는 문자 통역이나 수어 통역과 같은 의사소통 수단의 접근성이, 지체장애인 교사나 뇌병변장애인 교사 등에게는 물리적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지만, 행·재정통합시스템(K-에듀파인)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하여 교육부와의 협의와 단체 교섭을 통해 접근성 자문단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교사에게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이지만 연수 시에 의사소통 편의를 제공하는 사례가 생겼다. 지체장애인 교사 등에게 물리적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 역시 몇몇 학교에서 보이고 있다.
둘째, 인사 제도이다. 기존 인사 제도에서는 장애인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장교조의 지역별 활동으로 각 교육청의 인사 제도에 장애인 교사를 위한 조항들이 제·개정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교육청의 〈2024학년도 중등학교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인사관리원칙〉 개정 과정에서 반영된 장애인 교사의 교육전문직원 시험에서의 편의 제공, 전보 계획에 보행상장애가 있는 장애인 교사에 대한 우대 기준 명시 등이 해당된다. 보행상장애의 경우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증 장애인 교사 중 이동이나 교통의 편의가 필요한 이들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 교육청의 개별 교사에 대한 지원 확대이다. 이 부분은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교육청에서는 장애인 교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서 다른 기관에 떠맡기려 한다. 조합은 학교 현장에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교육청과 꾸준히 협의하고 있다. 아직은 아쉽지만, 적극적으로 지원을 확대했다기보다 최소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면하도록 소위 방어하는 소극적 차원에서의 성과가 있었다고 하겠다.
넷째, 교육부와의 단체협약 체결이다. 장교조가 창립함으로써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직 단체(교원 노동조합 및 교원 단체)의 의견 수렴이 필요한 경우 정책 파트너로서 의견 조회를 요청하며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2023년 6월 2일, 교육부와 장교조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2020년 8월 단체 교섭을 시작으로 2023년 6월에 이르기까지 약 3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23차례의 실무교섭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이번 단체협약은 장애인 교원의 임용, 발령, 전보 등의 인사 제도, 장애인 교원의 수급 및 양성, 접근성 보장, 장애물 없는 환경 조성, 전문성 신장, 지원 인력 및 문자 통역·수어 통역 지원 등과 같이 장애인 교원들이 학교 현장에서 제 몫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지원에 관한 내용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교육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조합과 정책 파트너로서의 협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섯째, 장애인 교사의 자존감 증진 및 원활한 교육 활동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 교사의 실제적인 교육 활동과 직무 수행에서의 변화이다. 나를 포함한 장애인 교사 동료들은 장교조 설립 이전까지 담임 교사 등 학교에서의 주요 보직이나 업무를 수행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조합 활동으로 조금씩 장애인 교사 근무 여건을 개선함으로써 장애인 교사들도 하나둘씩 담임 교사를 맡는 등의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여섯째, 장애인 교사들의 버팀목 역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지닌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장애를 밝히지만, 자신의 장애를 숨기고 교직 생활을 하는 교사들도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지닌 교사들에게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창구도, 들어 줄 동료도 없었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되며 다른 이에게 토로하지 못했던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장애에 대해 동료들에게 밝히는 등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보인다.
지금까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 창립되기까지의 과정과 창립 후의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하여 나의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과 조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교사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것들조차도 그 과정 속에 수많은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현실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애인의 역사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 교사들도 그들의 인권을 위해, 온전히 교육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근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의 역사에 함께 발맞추어야 할 것이다.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과 과제들이 있을 것이다. 설립 당시 제기된 의문점 중 교육 본연의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아직 많이 내지 못한 점이나 아직 자신의 장애에 대해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는 장애인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등의 과제들이 남아 있다. 앞으로의 과정 속에 힘들 때 서로 등 기대어 주고, 함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장애인 교사들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❶ 단, 맹학교와 농학교와 같은 감각 장애 특수학교에는 기존에도 시각 장애가 있는 교사, 청각장애가 있는 교사 등이 있었다.
장애인 교원 노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동행하다
-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창립 4주년을 맞아
글
편도환
pdh47s@nate.com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정책실장
학교라는 공간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한 번쯤은 거쳐 갔을 장소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선·후배 그리고 선생님들은 같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동질감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나이, 성별, 생김새, 사회 경제적 배경, 가정 환경 등 상당히 이질적이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에는 신체 조건도 포함된다. 키가 작은 친구와 키가 큰 친구, 힘이 센 친구와 힘이 약한 친구, 운동을 잘하는 친구, 공부를 잘하는 친구 그리고 그렇지 못한 친구 등 신체 조건이라는 요소만 놓고 보아도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친구들 중에는 간혹 몸이 약하거나 몸이 어딘가 불편한 친구도 있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러한 친구 중에 하나로,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비친 모습은 눈이 나쁜 친구였다.
그런데, 유독 교사만큼은 나처럼 눈이 심하게 나쁘다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시력을 모두 잃고 맹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몸이 불편한 선생님, 즉 장애가 있는 교사를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씩은 거쳐 가는 학교라는 공간에는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한두 명, 많게는 여러 명씩 있기 마련인데, 왜 교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을까? 이 글은 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시작으로 장애를 지닌 교사들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 우리는 장애인 교사를 만나지 못했나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국민들에게 공무담임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공무원이 되어 봉사하고 공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권이다. 이러한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연령, 성별,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신체적 조건, 장애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공립학교의 교사는 교육공무원으로서 공직의 직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 임용이 허용된 것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1991년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제정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사업주가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교원은 판사 등과 같이 초기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이로 인해 2000년대 초까지도 교사 임용 시험에서 장애인 교사의 임용이 허용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곤 하였다.❶ 200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개정되면서 교원을 비롯한 판사, 군무원 등의 직종에도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해당 법이 시행된 2006년 말에 치러진 2007학년도 교사 임용 시험에서부터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에 따른 구분모집 전형이 도입되었다.
언론에서는 특수교사가 아닌 일반 교사로 임용되는 장애인 교사들에 특히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2007학년도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해 우리나라 최초로 일반 학교에 임용된 첫 시각장애 영어 교사를 비롯해,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등등 해마다 장애인 교사가 임용될 때마다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장애를 딛고 꿈을 이룬 모범적인 사례들로 소개되곤 하였다. 그런데, 장애인이 교단에 설 수 있게 되면 모든 장애는 극복되고 그날부터 화려한 조명과 장밋빛 무대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추는 빛이 강할수록 그 뒤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짙어지게 마련이다.
장애인 교사 임용의 빛과 그림자
나는 2015년에 영어 교사로 임용되어 한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당시에도 언론은 내 임용 자체에 주목하며 “장애를 딛고 교단에 선 장애인 선생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 줘” 등의 메시지를 담아 보도했다. 한 학생이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수업도 재미있게 하시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담겼다. 교사로서 상당히 뿌듯하고 고마운 장면이었다. 이처럼 내 첫 교직 생활은 설렘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격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30〜40년 간의 교직 생애를 그려 볼 때면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가 발령받은 학교는 서울의 한 혁신학교로, 교육과 학교 혁신에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교사들이 매우 많았다. 학교 혁신을 위한 활발한 토론은 물론 실제로 다양한 교육 활동 프로그램이 이루어져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나 역시 지금까지 학생으로서 다녔던 학교와 비교하여 매우 좋은 학교라 여겼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교사로서 교육 활동과 직무 수행에 임하는 데 어려움이 존재하였다.
먼저, 2015년 임용 발령 시기를 되돌아보면, 교육청에서는 시각장애인 교사를 위해 교과서를 대체 자료로 제공하지 않았다. 선배 장애인 교사들의 조언과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의 도움으로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전자 문서 형태의 대체 자료를 직접 제작해야 했다. 교육 당국에서 사용하는 업무 관리 시스템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별도의 교육도 존재하지 않아, 첫해에는 수업 외에 아무런 업무도 분장받지 못했다. 연말이 되어 다음해의 업무 분장을 고려하던 시기에 같은 학교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시간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교사와 학급의 수업 시간표 배정 및 변경을 하는 업무를 제안받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스크린리더(시각장애인이 컴퓨터 사용 시 화면의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 주는 프로그램) 접근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결국 업무를 맡지 못했다.
이렇듯 제도적,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장애가 있는 교사들은 업무를 제대로 맡지 못해 교사 집단에서 그 입지가 좁은 경우가 많다. 이는 동료 교직원들의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곤 한다. 장애가 있는 교사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본인의 능력이나 적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기보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업무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경우가 잦다.
시각장애인 교사들, 연대하기 시작하다
선배 장애인 교사들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2010년,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모여 ‘한국시각장애인교사회’라는 임의 단체를 만들어 어려움과 고민을 나누며 교류하기 시작했다. 점자정보단말기 등의 보조 기기를 구할 수 있는 정보나 교과서, 업무 관리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의 노하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2013년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단체 진정을 제기하였으며, 국회 토론회를 열어 시각장애인 교사의 접근성 보장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단체는 임의 단체로서 교육청이나 교육부와 공식적인 협의를 갖고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그 역량과 기능에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2016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한 한 교사가 해당 단체의 정기 총회에서 장애인 교원 단체 설립을 제안했다. 그 당시에는 시각장애인 교사를 제외한 다른 유형의 장애인 교사 모임이나 단체와의 교류가 없었기에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대략 6개월간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토론 끝에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의결을 묻는 투표에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찬반 동수로 안건이 부결되었다.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을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장애인 교사는 소수인데 소수가 모여 보아야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제대로 대우하거나 상대해 주지 않을 것 같다.” “장애인 교사는 학교에서도 장애라는 이유로 일종의 낙인 효과가 있는데, 노조에 가입하면 이중 낙인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기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큰 조직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설립 초기에는 장애인 교사의 근무 조건 및 환경 개선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추진할 교육 본연에 대한 의제 발굴이 되지 않아 한계점이 있다.” “교원 노동조합이나 교원 단체 같은 조직에서 실무 경험이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데 누가 조직 운영을 맡아 할 것이며 어떻게 외연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까?”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협의하고 의기투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당시에는 반대 의견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해 부결되었다. 하지만 이는 향후의 더 큰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자평한다. 또한, 위에서 제기된 반론들은 현시점에서 충분히 해소되었고 어떤 것은 기우였음을 입증한 반면, 어느 의문점은 여전히 당면한 과제로 남아 있다.
2016년의 부결로 단체 설립을 향한 열기는 사그라들었다. 나는 단체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당분간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러던 2017년, 나는 당시 혁신연구부장으로 보임하던 동료 교사의 소개로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교사노동조합(2016년 12월 창립) 간의 단체 교섭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장애인 교사의 근무 여건에 관한 교섭 요구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이를 교육청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 교섭하고 설득하면서 단체협약을 맺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18년에는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새로운 교사노동조합들과의 연맹체인 교사노동조합연맹을 결성하면서 연맹과 교육부 간의 단체 교섭에도 참여했다. 이 두 차례의 단체 교섭 경험은 실무 업무를 경험하고 실제 교원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큰 디딤돌이 되었다.
다른 유형의 장애와 어우러지기 시작하다
2018년 하반기, 뜻을 같이하는 장애인 교사들을 모집하며 다시 한 번 재도전의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면서 청각장애 교사 모임과 만나고 그중 일부와도 함께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장애인계는 오래전부터 장애 유형에 따른 이해관계가 상이하여 다른 유형간의 연대나 협력이 잘 이뤄지지 못해 왔다.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하다 보니 다른 장애 유형의 선생님들은 홀대하거나 의견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의 시선도 상당하였다. 이러한 다른 장애 유형 간의 갈등과 회의적인 시각을 해소하는 과정이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설립 전후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조합 설립 전인 2019년 7월, 장애 유형별 공동 위원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를 존중하고 절충하여 장애인교원노동조합의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은 서로 장애 유형을 달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노동조합 규약에 명시했다.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 중의 하나인 중앙위원회의 구성 역시 특정 장애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유형별 인원을 균등히 하는 안도 논의되었다.
이처럼 장애 유형 간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외형적인 균형을 맞추는 한편 충분히 서로 교류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청각장애인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 참여 보장을 위해 문자 통역을 모든 공식적인 회의와 행사에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실행 중이다. 행사 장소의 선정에서도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이 모두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소의 위치, 경로, 출입구, 동선, 화장실 등을 모두 점검하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단체명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에 명시된 창립 정신, ‘함께하는’이라는 말이 허울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온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더욱더 가까워야 한다. 우리는 서로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이 아닌 실제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식 개선이며, 인식 개선이라고 명명할 필요도 없는 함께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교원 노조가 변화시킨 것들
이렇게 2019년 7월에 창립한 장교조는 올해로 창립 4주년을 맞게 되었다. 조합을 설립하기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접근성의 개선이다. 시각장애인 교사에게는 업무 시스템, 교과서 등과 같은 정보 접근성이, 청각장애인 교사에게는 문자 통역이나 수어 통역과 같은 의사소통 수단의 접근성이, 지체장애인 교사나 뇌병변장애인 교사 등에게는 물리적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지만, 행·재정통합시스템(K-에듀파인)이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하여 교육부와의 협의와 단체 교섭을 통해 접근성 자문단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교사에게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이지만 연수 시에 의사소통 편의를 제공하는 사례가 생겼다. 지체장애인 교사 등에게 물리적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 역시 몇몇 학교에서 보이고 있다.
둘째, 인사 제도이다. 기존 인사 제도에서는 장애인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장교조의 지역별 활동으로 각 교육청의 인사 제도에 장애인 교사를 위한 조항들이 제·개정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교육청의 〈2024학년도 중등학교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인사관리원칙〉 개정 과정에서 반영된 장애인 교사의 교육전문직원 시험에서의 편의 제공, 전보 계획에 보행상장애가 있는 장애인 교사에 대한 우대 기준 명시 등이 해당된다. 보행상장애의 경우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증 장애인 교사 중 이동이나 교통의 편의가 필요한 이들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 교육청의 개별 교사에 대한 지원 확대이다. 이 부분은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교육청에서는 장애인 교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서 다른 기관에 떠맡기려 한다. 조합은 학교 현장에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교육청과 꾸준히 협의하고 있다. 아직은 아쉽지만, 적극적으로 지원을 확대했다기보다 최소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면하도록 소위 방어하는 소극적 차원에서의 성과가 있었다고 하겠다.
넷째, 교육부와의 단체협약 체결이다. 장교조가 창립함으로써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직 단체(교원 노동조합 및 교원 단체)의 의견 수렴이 필요한 경우 정책 파트너로서 의견 조회를 요청하며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2023년 6월 2일, 교육부와 장교조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2020년 8월 단체 교섭을 시작으로 2023년 6월에 이르기까지 약 3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23차례의 실무교섭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이번 단체협약은 장애인 교원의 임용, 발령, 전보 등의 인사 제도, 장애인 교원의 수급 및 양성, 접근성 보장, 장애물 없는 환경 조성, 전문성 신장, 지원 인력 및 문자 통역·수어 통역 지원 등과 같이 장애인 교원들이 학교 현장에서 제 몫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지원에 관한 내용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교육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조합과 정책 파트너로서의 협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섯째, 장애인 교사의 자존감 증진 및 원활한 교육 활동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 교사의 실제적인 교육 활동과 직무 수행에서의 변화이다. 나를 포함한 장애인 교사 동료들은 장교조 설립 이전까지 담임 교사 등 학교에서의 주요 보직이나 업무를 수행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조합 활동으로 조금씩 장애인 교사 근무 여건을 개선함으로써 장애인 교사들도 하나둘씩 담임 교사를 맡는 등의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여섯째, 장애인 교사들의 버팀목 역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지닌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장애를 밝히지만, 자신의 장애를 숨기고 교직 생활을 하는 교사들도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지닌 교사들에게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창구도, 들어 줄 동료도 없었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되며 다른 이에게 토로하지 못했던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장애에 대해 동료들에게 밝히는 등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보인다.
지금까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 창립되기까지의 과정과 창립 후의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하여 나의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과 조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교사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것들조차도 그 과정 속에 수많은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현실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애인의 역사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 교사들도 그들의 인권을 위해, 온전히 교육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근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의 역사에 함께 발맞추어야 할 것이다.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과 과제들이 있을 것이다. 설립 당시 제기된 의문점 중 교육 본연의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아직 많이 내지 못한 점이나 아직 자신의 장애에 대해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는 장애인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등의 과제들이 남아 있다. 앞으로의 과정 속에 힘들 때 서로 등 기대어 주고, 함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장애인 교사들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❶ 단, 맹학교와 농학교와 같은 감각 장애 특수학교에는 기존에도 시각 장애가 있는 교사, 청각장애가 있는 교사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