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에세이] 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은 시간, 변화가 필요해 | 배이슬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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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은 시간, 

변화가 필요해


- 진안 생태 텃밭 수업 6년을 돌아보며


배이슬  eden_dew@naver.com

이든농장,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 대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 동안 전북 진안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 개인에게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지역에서의 삶과 원주민의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삶의 근원으로서 농사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해를 이어 가는 연속성을 가진 활동이었기에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유치원 때는 괭이밥을 뜯어 먹으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이 2학년이 되어서는 제 몸보다 큰 삽으로 땅을 파려 하더니, 어느새 훌쩍 자라 제법 솜씨 있게 두둑을 만들고, 농민의 권리와 GMO에 관한 이야기에 분노할 줄 아는 5, 6학년이 되었습니다.



“힘들었는데 재밌었어”


매년 12월이면 아이들과 그간의 텃밭 활동을 함께 돌아봅니다. 이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표현 중 하나가 “힘들었는데 재밌었어”입니다. 그랬던 한 친구는 이제 고등학생이 됩니다. 초등학생 때 엄마한테 “나 농부가 될 거예요!” 하며 소곤거리던 그 꿈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매일 나눌 이야기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지칠 때도 있었고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으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치우치게 이야기하진 않았는지 반성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 덕분에 한 뼘 더 자라고, 아이들의 눈을 통해 매년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주 깊이 가라앉은 어떤 시간에는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영영 가라앉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숨을 쉴 수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낸 6년의 시간을 돌아보자니 아주 할 말이 많은데 또 어떤 말도 쉬이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주 뜨문뜨문 구멍이 난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을 나눕니다.



진안 토종 생태 학교 텃밭


‘토종’, ‘생태’ 등등 추구하는 가치 모두를 드러내 이름 한번 거창하게 시작했던 생태교육 활동은 2019년 3월부터 교육청의 지원을 받고 지역 주민이 참여해서 진행했습니다. 이때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종자 주권의 이해 

· 텃밭 디자인을 통한 공간 혁신의 재정의 

·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태적 감수성 함양

· 2015 교육과정과 참학력의 핵심 역량 함양

· 학교와 지역의 연계로 마을 교육과정의 실천적 전망 수립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지원청은 여러 가지 문제로 지원 대상을 학교로만 국한했습니다. 그래서 개별 농장, 마을 교사들이 학교별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각 학교가, 활동을 진행하는 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행정 구조상 지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지역 사회 안에서 충분히 협의해서 함께 움직일 사람들의 그룹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안의 삶을 연결하는 일


학교별로 다른 가치를 중심에 두고 많게는 매주 6시간, 적게는 2주에 2시간으로 학교 상황에 맞춰 프로그램을 다르게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교는 생태민주교육을 중심 교육으로 세우기 위해 함께 부지런히 연수도 하고, 학교 이해 관계자와 학교에서 일어나는 생태적 활동들의 바탕을 나누기 위해 모두가 애를 썼습니다. 어떤 학교는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몇몇 교사들만의 힘으로 별안간 투쟁하듯 생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학교에서는 학교 홍보용으로 쓰기 위해 적당히 진행하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모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조율하고 진행하는 명확한 근거와 목적이 있었고,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몇 가지 최소한의 선을 두고 학교마다 색깔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난 6년의 세월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특징적이고 중요한 과정이자 성과는 진안의 삶을 연결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과는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이 확연히 다릅니다. 농촌에서 나고 자랐기에 가지는 정서나 감각이 있습니다. 글이나 말로 배워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다른, 일상에서 새겨지는 문화와 정서 같은 것입니다.


농촌의 정서와 마음, 감각을 연결하는 일이 학교 텃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든 생태 텃밭 활동을 하자면 살고 있는 지역에 맞는 시간의 흐름이 있고, 더 나아가 학교가 위치한 세부적인 공간의 미기후와 절기, 그에 따른 주민들의 생활 방식 등을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도 같지 않은 삶의 지혜와 양식 등을 연결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부귀면, 마령면, 진안읍은 같은 진안군이라도 밭에서 시간을 보내 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독 운장산 자락 계곡에 둘러싸인 부귀면은 추위가 길기도 길고 빛도 짧지만, 진안읍은 같은 진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주변의 에너지를 조금만 활용하면 10월이 넘어도 토마토를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합니다. 진안의 유일한 뜰이라 보는 마령면 역시 볕이 길고 평지라 다른 면에 비해 온실에서 겨울을 나는 작물들이 제법 되고, 논이 많아 정미소가 많은 것도 작은 면 단위별, 마을별 기후에 따른 생활의 차이입니다.


그러니 생태 수업에서는 진안군의 만상일(늦봄에 서리 내리는 날)인 5월 7일 이후에 작물들을 내다 심는 일부터, 각 면 단위 학교별로 가을 작물 심는 시기가 조금씩 다 다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텃밭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미기후의 영향으로 어느 학교는 일찍이 배추를 뽑아 먹고 어떤 학교는 넉넉히 남겨 월동 이후 꽃을 먹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장하는 시기, 주로 생산하고 먹는 것, 그리고 그 문화를 다루는 일은 진안이라는 지역의 잊히고 있는 전통을 잇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6년 동안 학교 텃밭에서 함께 이룬 것들


생태 텃밭 교육을 잠시 쉬어가야겠다 마음먹은 이후 그제야 듣게 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집에 오면 온갖 풀씨를 가득 붙여 온 아이가 길만 나서면 풀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설명하더라는 이야기, 초등 과정 이후 으레 도시의 학교를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는데 아이가 행복해하며 꺼내는 농의 가치들을 들으며 농촌에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농사를 지을 테냐고 물어보면 “엄마, 농사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아? 해가 갈수록 먹을 게 없어” 하며 농사에서 기후 위기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모습 너머, 아이들의 일상이 된 농의 이야기는 지역 사회 일원인 가족의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서 한 일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기른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마지막 텃밭 마무리 잔치를 하던 날, 정해진 프로그램을 순서대로 진행하기보다 아이들이 기록한 농사 과정과 사진들을 전시하고 한쪽에서는 토종 작물로 만든 간식을 나누고, 풀로 만든 생활재를 팔고, 아이들 기록으로 만든 학교 굿즈와 전시물을 안내하는 일을, 말 그대로 잔치 벌이듯 열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역할을 맡긴 했지만 모두가 잔치의 주인으로 살피고 진행하자는 취지에서 역할을 크게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밭에서 배운 가장 큰 배움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역할을 떠나 아이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고 자연스레 손을 보태고 할 일을 찾아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지시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서로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행동, 그렇게 알아차리고 서로를 돌보는 감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싹트고 자랐는지 잘 드러났습니다. 텃밭에서 작은 씨앗을 심고, 돌보고, 길러서 먹고, 그로써 다시 지구의 돌봄을 받는 일이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베인 것입니다.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것 같았던 6년의 세월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나아가 지역 사회에 함께 사는 일의 가치와 그를 위한 행동이 배어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지역에서의 생태교육


6년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이들에게서가 아니라 생태교육을 진행하는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교육으로서의 농사는 여전히 체험 ‘이벤트’로 치부되는 일이 많았고, 교실 밖에서의 배움은 교육으로 인정되지 않는, 농사로 주고받는 가치를 ‘교육’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자연에서 머물며 성장하는 배움이라는 바탕을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다양한 자리를 만들어 협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교사 등 학교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변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프로그램의 취지와 가치를 묻고 더듬어 가던 일이 일순간 없었던 것처럼 바뀌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농’의 가치, 농촌에 사는 이로서의 정체성, 기후 위기와 제철을 아는 일 같은 폭넓은 가치를 나누는 최소한의 범위와 약속을 지켜 내기 위해서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생태교육 활동은 지역에 살아가고 있는 교사에 의해 자연스럽게 교과를 넘나들며 진행되는 것일 테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마을 교육 활동가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각 학교만의 교육과정을 세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사회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교육청의 소관이라 하고, 교육청은 마을의 일이라며 지역 사회의 소관으로 떠넘겼습니다. 학교와 아이들, 학부모의 요구와 필요성에도 마을에서 삶을 나눌 최소한의 사람들을 꾸리는 것도 결국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인건비의 기준도 교육청, 학교마다 달라서 1년 이상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6년간 함께 짝꿍 선생님으로 참여했던 수만 20명 가까이 됩니다. 각각의 학교에 1년 이상 활동한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교사의 인건비 책정 기준을 정하고자 애썼지만, 그런 시도부터 학교나 교육청 입장에서는 불편했던 듯합니다.


아이들과 생태 전환의 가치를 삶으로 나누기에 최소한으로 필요하다 생각되는 조건을 요구하고 그것이 협의되지 않으면 수업을 진행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한 번에 2교시 이상 묶음으로 진행하고, 되도록 매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이와는 별개로 그사이에 교사가 반드시 아이들과 텃밭을 매개로 하는 활동을 연계해야 한다.

· 생태교육 공간에는 풀이 어깨만큼 자라든, 심어 놓은 작물이 타들어 죽어 가든 학교의 다른 이해 관계자가 관여하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이 심고 돌보는 공간에서 협의 없이 다른 작물을 심거나 활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아이들과 만들어 가는 생태교육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었습니다. 문장은 길지만 사실 간단한 약속이었습니다. 결과가 아이들의 행동에 따른 것이어야 하고(작물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는 어떻게 돌보는가에 따른 것이니), 아이들 스스로의 공간이니 이는 간섭받거나 침해받지 않을 권리이면서도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6년이나 진행하면서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복원한 건강한 생태계는 그곳 생명들의 안전도 지켜지지 못했고 교육 공간으로서도 충분히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학교의 경우 처음 텃밭 수업을 시작했을 때 그동안 오래 경운하고 비닐을 사용해 온 밭이라 밭에는 바랭이 외에 풀이 없었고, 진딧물이 덮쳐 와 수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난황유를 만들어 진딧물을 죽이면서도 우리가 먹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이며, 우리 텃밭이 건강하지 못해 일어난 일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흙과 더불어 텃밭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밭을 갈지 않고 풀을 잘라 덮었습니다. 3년째 되던 해에는 텃밭의 균형을 알 수 있는 지표로 쇠별꽃을 비롯한 다양한 풀들이 자리했고, 진딧물처럼 한 가지 생명이 덮쳐 오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건강해진 텃밭에서 흙을 돌보는 일을, 학교가 생기기 전부터 함께해 온 생명들을 만나는 일을 이제 겨우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학교는 풀이 자라는 텃밭을 관리한다며 외부 인력을 들였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심어 놓은 것이 사라졌고, 아이들이 “텃밭에 비비탄이 많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화학 비료가 뿌려졌던 겁니다. 아이들이 심은 꽃 새싹은 풀과 함께 뽑혀 나가고, 비료를 먹고 정갈하게 자리한 배추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여태 본 적 없던 양의 깨벌레가 고구마잎을 남기지 않고 먹어 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과 회복해 온 텃밭의 생태계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아이들과 맨손으로 텃밭 활동을 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연결을 생각하자


지역 사회에서 학교는 지역의 최소한의 기반이자 가치의 중심입니다. 지역 정체성을 담은 학교의 존재가 지역 지속성의 핵심이 됩니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학교가 있었던 때를 생각합니다. 놉 얻어 일하던 들녘에 밥을 얻어먹으러 나오던 아이들, 아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쌀 한 줌 손 한 번 보태 학교를 만들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큰 희망을 품고 직접 만들어졌고, 마을은 아이들을 함께 키웠습니다. 그 일은 어려웠던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학교와 마을의 지속성과 성장을 위해 지역공동체가 함께 만든 시스템이었습니다. 교육에는 그만큼 큰 품이 들고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보태어 왔던 사람들의 손과 마음이었을 겁니다.


다시, 지역 사회는 지역의 학교를 들여다보고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기에 누릴 수 있는 ‘농’의 가치와 삶의 지혜를 담고 지원하는 데 애쓰고, 학교는 늘 변하는 유연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을 가치를 연결하는 데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먹고사는 일과 자연의 흐름이 연결되고, 농민과 주민의 경계가 옅어지고, 학교와 지역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잠시 학교 텃밭에서 발걸음을 떼어 바라볼 시간을 가집니다.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혹은 더 많은 이들과 연결했더라면 조금은 바꿀 수 있었을까, 결국 많은 이들과 충분히 나누고 연결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후회도 합니다. 그래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야 보이는 것들을 들여다봅니다.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아이들이 지역 밖이 아닌 지역에서의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등 떠밀어도 나가고 싶지 않게 지역에서의 삶을 꿈꿀 수 있게 만들어 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텃밭에서 나눈 가장 귀한 이야기는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그것 덕분에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안전한 시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 되는 일에 조금 더 힘을 보태며 숨을 돌리고자 합니다. 여전히 발전 혹은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생태 전환교육, 그리고 지역 사회의 변화는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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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