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특집] 좌담 -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 강물, 박숙영, 반은기, 임수희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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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 오래된,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해법


참석자

강물    경기 중등 교사

박숙영  평화비추는숲

반은기  평화교육연구소

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일시      2024년 12월 18일

장소    서울남부지방법원

기록·정리    서경



강물은 학교폭력 책임교사로서 근무한 지 한 학기만에 병휴직을 결정했다. 그 과정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강물    2024학년도 1학기부터 2학기 초까지 한 학기 남짓의 시간 동안 34건의 사건이 일어났다. 모두 개별 건은 아니고, 요즘 늘고 있는 ‘맞폭’ 사례로 한 사건이 두세 건이 된 경우도 있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당 6학급 규모의 학교인데, 20건의 사건이 있었던 2023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비슷한 규모의 다른 학교는 보통 10건, 적게는 한두 건만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업무의 양도 양이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데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학생들 때문에 힘든 점은 많지 않았고, 보호자들이 민원을 접수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힘들었다. 밤에 항의 전화를 걸거나 아침에 갑작스레 찾아오거나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 오는 일이 이어졌다. 내가 사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이들에게는 내가 사건과 관련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에 나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보통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교사와 생활부장 이 둘이 분담해도 버거운 일을, 우리 학교에서는 생활부장이 잘 협력해 주지 않아 거의 혼자 하는 구조였다. 그럼 다른 교사들이 무책임한 것이냐 물을 수 있는데, 애초에 절차 자체가 비밀 유지를 위해 두 교사 외에 다른 사람들은 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매뉴얼대로 절차를 밟아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4건 중 갈등이 해결된 사례는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건들도 있다. 사안이 발생한 후 이뤄지는 절차는 관할 기구 또는 담당자별로 분자화되어 있고, 학생의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해도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 거기서 오는 절망감이 컸다.



“학생의 갈등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박숙영    관련된 주체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점이 절차가 갈등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의 큰 원인이다. 사건 초기에 보호자들끼리 해결하고 싶어서 상대편 보호자의 연락처를 달라고 할 때, 학교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제공할 수 없다. 이때 대화의 기회를 한 번 잃게 된다. 또 하나는 최근 도입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의 문제인데,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학생들이 절차마다 반복해서 진술하게 된다. 나는 갈등 조정가로서 사건을 파악해야 하는데, 조사관이 이미 조사한 것을 공유해 주면 그걸 미리 숙지하고 학생에게는 중복되지 않는 질문을 할 수 있고 ‘그 일로 무엇이 힘들었는지’ 등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그 조사 내용을 공유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 


임수희    〈아동 권리 협약〉 제12조 아동의 피청취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 아동의 피청취권이란 쉽게 말해 아동의 목소리가 들려질 권리인데,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가 ‘피청취권의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권리의 행사가 거칠게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일수록, 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일수록 그 진술은 섬세하게 고안된 배려받는 절차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 피해 아동에게는 사건을 진술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2차, 3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에 진술 자체를 가능한 1회에 끝낼 수 있도록 아동을 중심으로 절차 관여자들이 배치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절차는 거꾸로 되어 있다.


강물    애초에 절차가 그 조항을 위반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다. 학생이 신고를 하면 책임교사로서 ‘어떤 일이 있었니’ 하고 일차적인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 후 조사관이 와서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고 나서 작성한 조사서를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임수희    그래서 전담 조사관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깜짝 놀랐다. 절차로 아동을 학대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아동을 위한 절차라고 하는데 가해 아동도 피해 아동도 절차에서 완전히 소외되어서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알 수 없고 교육적 의미도 없고 고통만 당하는 것 같다.


‘절차로 아동을 학대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왜 이런 불합리한 일이 일어날까?


박숙영    당시 해당 교육청에 상황을 이야기하고 개선을 제안했는데 ‘학교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들으라’는 답변이 왔다. 교육청도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아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 연락하니 그 교사는 비공식적으로 보여 주더라. 교사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강물    한편으론 교사들도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예전 같으면 담임 교사로서 개입해 해결을 시도했을 만한 일도, 잘못 건드렸다가 교사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두려운 것이다. 학생이 담임 교사에게만 말을 해도 곧바로, 혹은 학년부를 거쳐 책임교사인 나에게 전달되곤 한다. 매뉴얼에 쓰여 있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학교 교감은 갈등 해결에 의욕을 가져 처음에는 전담 기구 운영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는 “우리 이렇게 하지 맙시다. 우리가 다칩니다. 매뉴얼대로 해서 올리거나 끊거나 그것만 합의합시다”라고 하는 식으로 바뀌더라. 이런 과정을 겪고 또 지켜보며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회복적 정의를 적용한 갈등 조정 프로그램[ref]일부 교육청 산하 각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학교 내 갈등 조정 절차를 말한다.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학생인권 침해, 교육활동 침해 등 학교 내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신청이 있을 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단이 학교에 배치되어 활동한다. 일반적으로 갈등 중재 전문가, 변호사, 전문 상담사, 전·현직 교원, 전·현직 경찰관 등으로 구성된다. 강원, 경기, 경북, 서울, 세종, 울산, 인천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갈등 조정 프로그램’, ‘관계 회복 대화 모임’ 등 시도교육청별로 제도의 이름과 구체적인 절차에는 차이가 있다. 이하 ‘갈등 조정 프로그램’으로 부른다.[/ref]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선에서는 ‘해 보니까 안 되더라’ 하는 냉소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강물    학교 안에서의 갈등 해결의 주체는 학교 구성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교육청 등에서 진행하는 갈등 조정 프로그램은 외부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방식이고 교사는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학교의 경우 경기도교육청의 프로그램을 4회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회복적 사법에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당사자와 그 보호자를 설득했는데 결과가 모두 좋지 않았다. 교사는 예비 세션, 본 세션 모두 참여할 수 없도록 배제되어 있어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조정이 어려웠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갈등 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잃어 갔다. 외부 전문가가 중심이 되는 현재 흐름이 적절한지, 교사가 전문성을 쌓아야 하지 않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충분한 정보 공유 속에 교사와 전문가가 협력할 수 있어야


박숙영    주체는 학교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외부 전문가는 앞으로 현장에 남을 사람이 아니며 결과를 책임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학교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학교 내부의 주체들이 논의하여 수용된 아이디어를 이행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는 경우는 사건 당사자가 학교를 공격하는 경우다. 이럴 때는 외부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사건 당사자들도 절차를 보다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임수희    말씀하신 사례는 조정자의 역할 자체를 외주화한 모델인 것 같다. 다만 짚고 넘어갈 부분은, 조정 과정에서 퍼실리테이터를 어떤 사람들로 구성할 것이며 역할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좋은가는 오랜 논쟁거리라는 점이다. 나 역시 사건 담당자(판사 등)와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통합해서 한 사람이 해도 괜찮은가 하는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다. 재판장과 조정자 간의 ‘역할 갈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모델이 있을 수 있고 각각의 장·단점을 고려해서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강물에게 이어서 묻고 싶은 부분이 있다. 절차에 대한 기대감을 잃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개선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강물    먼저 장점은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사안에서는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 일반적인 절차 안에서는 학생들이 충분히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하고, 당사자 학생들은 사건 발생과 동시에 분리 조치 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작은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있다. 단점은, 먼저 당사자 학생과 보호자들에게 참여 자체를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둘째로는 겨우 성사가 되어도 조정단이 배정되기까지 사건 발생으로부터 2~3주가 걸려 너무 늦게 개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셋째로 정해진 시간 내에 종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매뉴얼상 예비 세션, 본 세션 각 1회로 정해져 있어 그 시간 내에 종결할 것이 강요된다. 심지어 점심시간 1시간 내에 예비 세션부터 본 세션까지 마치는 경우도 봤다. 마지막으로 가해자 측에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는 경우나 학생 간 불신이 깊은 경우 갈등 조정 프로그램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



‘대화’의 가능성을 연다는 것, 어떤 비용으로도 대체할 수 없어


임수희    언급한 부분은 단점이라기보다는 개선점으로 보인다. ‘안전하게 대화하도록 돕는다’는 장점은 어떤 비용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이다. 한 아이가 제대로 말할 기회를 갖느냐, 보호자가 사건에 대해 누군가 충분히 들어 주는 경험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나는 이런 점을 개선·보완해서 ‘제발 법원에만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원으로 오게 되면 서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극단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이겨도 이기지 못한 상황이 된다. 학교에서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의 자율적인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가 법원에 오는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고, 그럴 때 아동이 절차적으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은기    절차상의 학대는 아동만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교사와 보호자 모두가 겪게 되는 것 같다. 보호자가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안전하고 정당한 해결을 위해서인데, 그 절차가 폭력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보니 교사 개인이 고통받게 되고 그 피해는 아동과 보호자에게 돌아온다.


여러 문제점 가운데, 그럼에도 당사자 간 대화의 기회를 열어 준다는 점에서 갈등 조정 프로그램의 의의와 대체 불가능성을 확인한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시급한 과제부터 꼽아 보면 어떨까?


박숙영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나아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2011년에 처음 회복적 생활교육을 제안했을 때는 그 방향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사들도 많았다. 제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본다. 한편 「학교폭력예방법」은 전담 조사관 제도 도입으로 고쳐 쓸 수도 없는 괴물이 되어 가고 있다.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다툼과 괴롭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모두 뭉뚱그려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원점에서부터 논의해야 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학교폭력예방법」을 폐지하고 전담 조사관 대신 갈등 조정가를 지원하는 등 갈등 조정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갈등 조정을 내실 있게 진행할 수 있는 조정가를 양성하여 인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갈등 조정 프로그램 제도화, 
내실 있게 자리 잡으려면


반은기    프로그램은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장학사의 이해도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대화 모임을 여러 차례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장학사가 있는 반면, 성과와 효율성을 중시해서 짧은 시간과 적은 횟수 안에 사건을 처리하도록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활동하지 않는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시간만에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리어 제대로 진행하려는 진행자가 장학사로부터 ‘왜 그 시간 안에 못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이 크게 좌절감을 주었다. 위원 역할을 그만두어야 하나 회의감까지 들었다.

    한편 2023년에 한 학교에서는 한 해 동안 40여 건의 사안이 발생했는데, 주말도 불사한 담당 교사와 화해위원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2024년에는 사안이 10건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담당 장학사의 지원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담당 교사는 소진되어 전근했고, 새로 담당자가 된 교사는 프로그램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충을 호소하는 점은 같았다. 조정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하지 않아도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힘든 자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걸 보여 주는 사례다. 


임수희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전 안내가 굉장히 중요하다. 회복적 사법 시범 실시 사업[ref]2013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는 국내 최초로 사법 체계에서 회복적 사법 절차를 형사재판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주로 선고 전 피고인과 피해자 양측의 동의를 받아 회복적 대화 절차 전문가들의 지원하에 대화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중점이 된다. 양측이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의 기회를 갖고 진정한 사과와 이를 전제로 한 용서 및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도모한다. 《처벌 뒤에 남는 것들 - 임수희 판사와 함께하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는 이 시범 사업의 배경과 의의, 실제 접수되는 사안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ref] 당시 동의서와 안내문을 구안하는 데 있어 매우 공을 들였다. 동의 서명란 아래에는 ‘언제라도 원하지 않을 경우 참여 의사를 철회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동의 서명에 부담을 줄였다. 동의서 뒤에는 안내문을 만들었는데 피해자용과 피고인용으로 나누어 가장 많이 할 법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넣었다. 예를 들어 ‘이 절차에 참여하면 어떤 이익이 있나요?’를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에게 안내하고, 피해자의 경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반드시 출석해야 합니까?’, ‘피고인은 변호사가 있고 나는 없는데 불리하지 않을까요?’, ‘합의가 되든 안 되든 이런 게 피고인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등에 대해 안내했다. 피해자의 경우 처벌을 원하지만 대화는 하고 사과는 받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 또 피고인의 경우 ‘만약 피해자가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떡하나요?’,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재판에 불이익을 줄까요?’ 등 생생한 질문들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한 번 만들었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뒤로도 어떻게 해야 사건 당사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여러 번 고쳐 쓰니 효과적이더라.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에 회부하기 전 당사자들이 갈등 조정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이행하게끔 제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강물    갈등 조정 프로그램에 꼭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지만 당사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거나 보호자들이 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해 급하게 진행해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무척 안타까웠다. 


임수희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좋겠지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화는 강제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발성이 훼손되면 대화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과정 자체가 회복과 거리가 멀어진다. 사안 접수 전에 대화의 기회를 먼저 가지면 좋겠다는 방향성은 옳지만 제도화할 때는 용어 등에서부터 제안하는 방식까지도 보다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참여하더라도 언제라도 원하지 않으면 중단할 수 있다고 알리며 동의를 구하고, 천천히 대화를 시작하면서 맛을 보고 그 맛 때문에 중단을 하지 않게끔 하는 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매뉴얼에 절차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강물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 학교에 사안 접수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매뉴얼 중심으로 사안이 신고되면 바로 접수를 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교사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안에 따라 대화를 권하거나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도하며 사안 접수까지 가지 않고 해결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생활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사안을 접수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개인적인 판단을 따랐을 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호자 중에서도 사안 접수가 바로 이뤄지지 않으면 학교가 사건을 축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분들이 있다. 실제 그런 사건도 일어나기 때문에 학생과 보호자도 학교를 믿지 못하고 바로 사안 접수를 원한다. 


임수희    그런 방어적인 태도로 책임 있는 자리를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물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생활부장이나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맡는 걸 기피하는 상황이다. 특히 책임교사를 남성 기간제 교사에게 맡기는 학교가 많다. 


학교가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리라는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겠다. 지켜야 할 규칙이 빼곡한 매뉴얼을 보급하기만 한 제도가 자율성을 저해하고, 개개인의 보신주의를 강화하면서 학교 구성원 간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주시라. 


박숙영    2024년 학교폭력 전수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1%로, 2014년도 이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 정부와 교육부가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과 예산을 사용해 왔는데, 왜 변화가 없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 회복에 주목하지 않는 한, 학교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은 자가 상처를 준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자신과 공동체에 좋지 않은 영향으로 되돌아 온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학교폭력의 순환 고리를 우리는 학교 현장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폭력의 순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와 상처, 그로 인한 원망들이 해소되어야 한다. 피해 회복을 지원할 수 있는 회복적 관점의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임수희    갈수록 우리 사회가 분쟁을 사법에 의존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도 정치 문제를 정치로 풀지 않고 법원으로 자꾸 가져오고 있지 않나. 학교 안에서의 분쟁 및 기타 문제는 가급적 우선적으로 학교장 자율하에 학교 내에서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에 부합할 것이다. 아이들이 친구들 사이에 발생한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학교 안에서 배우고 졸업하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 배울 수 있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대체 어느 곳에서 배우란 말인가. 결국 우리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 이를 위한 평상시의 ‘대화 교육’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자신의 분쟁을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고 신뢰하며, 교사와 학교가 이를 발굴하고 키워 주는 역할을 꼭 해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은기    현장에서 갈등을 마주할 때면 ‘갈등이 선물이 될 거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그 말조차 힘이 되지 않을 만큼 깊고 아픈 갈등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갈등의 순간들은,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성장과 배움의 흔적을 남기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교사와 학생, 보호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갈등이라는 파도를 맞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연결을 회복하고, 함께 헤쳐 나갈 힘이 교육 현장에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강물    갈등 조정의 시간이 유의미함을 믿고 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교육청을 통한 갈등 조정 프로그램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었었지만, 좌담을 하면서 문제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하면서 보완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공감하게 되었다. 

    올해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되어 학교폭력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혹은 더 자주 학교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 나누었던 ‘절차로 인한 학대’에도 절감하였으나, 무겁게 다루어져야 할 사안들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뭉개지는 상황들도 여전히 접하게 된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학교폭력이 학교폭력 당사자들만의 일, 업무 담당자들만의 일이 아니어야 함은 확실하다. 현재의 절차는 학교폭력을 각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은 폭력에 둔감해지고 법적 절차에는 예민해지고 있다. “서로 합의해서 때린 거면 괜찮지 않아요?” “이거 그럼 신고할 수 있어요?” 학생들이 교실에서 폭력에 대해 흔하게 뱉는 말들과 인식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학교폭력은 내일, 앞으로, 나중에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들은 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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