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제도적 대안
이윤경 justyk@daum.net
전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몇 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에 드라마 〈더 글로리〉를 연상한다. 심각한 신체 폭행, 자살로 몰아가는 집단 따돌림, 금품 갈취 등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에 의한 범죄 수준의 폭력을 상상하고 “이런 애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싹을 자르고 영원히 매장시켜야 한다”라며 심판관의 자리에 선다. 하지만 실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에 접수되는 사안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거리가 멀다. 이는 2016년부터 4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을 지냈고, 2020년부터 서울에서도 학교폭력 건수 3위 안에 드는 2곳의 교육지원청에서 4년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할 수 있다.[ref]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임기는 최장 4년이다.[/ref]
‘학폭’이 아닌 게 없다
심의위에 올라오는 학교폭력 사안들의 양상이 달라졌다. 가·피해가 명백한 신체 폭력은 줄어들고 언어폭력이 증가했다. 예를 들면 “쟤가 나한테 ‘망해라’라고 했어요”, “내가 학폭 때문에 교내봉사 중이란 걸 A가 소문냈어요”, “B에게만 얘기했던 비밀인데 그걸 B가 C에게 말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유치원 때 별명을 D가 친구들 앞에서 불렀어요” 등이 실제 심의위에 접수됐던 사안들이다. 이는 언어폭력 중 명예 훼손이나 모욕에 해당되며 언어폭력의 내용 중 성에 관련된 용어가 포함되어 있으면 성폭력에도 해당된다. 물론 언어폭력도 명백한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교육지원청에서 다루기보다 학급이나 학교 안에서 중재하고 폭력 예방 교육, 성평등 교육 등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로 매년 교육부가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 중 피해 유형별 비율을 살펴보면 1위가 언어폭력(39.4%), 2위가 신체 폭력, 집단 따돌림(15.5%)이다. 1위와 2위 사이에 2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언어폭력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분 | 언어 폭력 | 신체 폭력 | 집단 따돌림 | 강요 | 사이버 폭력 | 스토킹 | 성폭력 | 금품 갈취 |
전체 | 39.4 | 15.5 | 15.5 | 5.7 | 7.4 | 5.3 | 5.9 | 5.4 |
초 | 39.0 | 16.7 | 14.3 | 6.3 | 6.3 | 6.2 | 5.4 | 5.7 |
중 | 40.0 | 13.5 | 17.7 | 4.6 | 9.2 | 3.4 | 6.7 | 4.9 |
고 | 41.3 | 11.6 | 17.6 | 4.2 | 10.4 | 3.7 | 7.2 | 4.0 |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교육부) 중 피해 유형별 비율(%)(복수 응답, 건수 기준)
심의위는 접수된 사안에 대해 그것이 학교폭력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가리고, 학교폭력이라면 어떤 폭력 유형에 해당하는지 ‘죄목’을 붙인다. 형사법에서 유래된 「학교폭력예방법」의 죄목들은 생각보다 무섭다.
화장실이나 교실에서 친구를 못 나오게 막았으면 ‘감금’이다. 급식실이나 체육관을 가던 중에 길을 막거나 계단을 막아도 ‘감금’이다. E를 만나러 갔는데 그곳에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던 F가 있었으면 ‘유인’으로 E를 신고할 수 있다. 누가 내 흉을 봤는지 이름을 대라고 하면 ‘강요’다. 이어폰을 빌려 갔는데 잃어버려서 돌려주지 않았으면 ‘금품 갈취’다. 경찰서에서나 오갈 법한 무시무시한 범죄 용어들이 초등 1학년 학생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또한, 학교폭력은 공소 시효가 없어 아주 오래전 사건도 접수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친한 사이였을 때 장난으로 넘어갔던 일도 지금 문제 삼으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악용해 변호사들은 가해 측으로 접수된 학생의 보호자에게 어떤 것으로든 “나도 피해를 입었다”는 맞폭[ref]학교폭력에 관련된 양측 학생이 서로 맞신고하는 것을 이르는 말.[/ref]을 걸라고 권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 학교폭력으로 걸 만한 내용이 반드시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조언이다. 이들은 학교폭력의 범위가 넓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공략해 “3년 전에 놀다가 네가 나 꼬집었잖아”처럼 기억도 안 나고 증거도 없는 사안들도 학교폭력으로 만들어 접수시킨다.
학교폭력 신고 건수가 증가한 이유
교육부의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 보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차 전수 조사에서 피해 응답률은 2.1%로 전년 동차 대비 0.2%p 증가했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교 4.2%, 중학교 1.6%, 고등학교 0.5%로 전년 동차 대비 각각 0.3%p, 0.3%p, 0.1%p 증가했다. 해당 보도 자료는 피해 응답률 증가에 대해 성윤숙 선임연구위원(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의견을 인용하여 “학교폭력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고 관계 회복에 주력할 수 있는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부모 대상 강의에서 접하거나 학부모 상담실에 접수되는 사례들, 언론에서 취재해 발표하는 내용들을 보면 교육부가 분석한 원인 외에 학교폭력 신고를 부추기는 다른 요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2024년 10월 11일에 방영된 KBS 〈추적 60분〉 ‘학교폭력예방법 20년 - 지금 학교에서는’ 편은 학교폭력 시장과 변호사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이혼과 학폭으로 먹고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교폭력은 이미 법조계의 거대 비즈니스, 대형 고객이 되었다. 부모들은 가해든 피해든 자녀가 학교폭력에 연루되면 제도에 대한 무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순간 학생은 수천만 원대의 고객이 되는 것이다.
신고 건수가 증가한 또 다른 이유는 학교폭력의 외주화에 있다. 학교 안에서 발생한 갈등을 자치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2020년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겨 버렸고, 2024년에는 사안 발생 초기의 조사마저 외부인인 ‘전담 조사관’에게 맡겨 버렸다. 이러한 두 차례의 외주화 이유는 모두 ‘교원의 업무 경감’이었다. 교원들의 기피 업무 1호였던 학교폭력은 바라던 대로 학교·교사와 무관한 영역으로 분류되어, 사소한 갈등마저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세요”라고 안내하는 것이 매뉴얼처럼 되었다. 심의위에 출석한 보호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바로 이러한 ‘학교 측의 무관심’이다. 결과적으로 교육 기관인 학교가 학생들을 ‘교육이 아닌 사법의 영역으로’ 내모는 데에 앞장선 것이다.
학교폭력은 범죄, 학생은 전과자?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는 학교폭력을 범죄로, 가해 학생을 범죄자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일반 형사법도 아닌 특별법으로, 장소와 대상이 모호한 사안들이 뒤죽박죽 혼재된 엉망진창인 법이다. 사안 조사서는 경찰서에서 사용하는 조서 형식인데, 사안 조사도 하기 전에 신고한 사람의 말만 믿고 상대 학생을 7일까지 즉시 분리시킬 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다. 실제로 경쟁 교육 시스템에서 시험 기간을 앞두고 악용되기도 하는데, 잘못 신고했어도 이미 즉시 분리되어 수업에 못 들어간 이후여서 침해된 학습권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소년법」은 청소년의 장래를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는데, 「학교폭력예방법」은 생기부에 기재해 상급 학교 진학에 불이익을 주고, 졸업 후에도 기록을 남겨 새출발을 막는다. 올해 대학 입시부터 모든 대학들은 학교폭력 가해 조치를 입시에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가장 낮은 1호 ‘서면 사과’ 조치도 감점 대상이 된다.[ref]서울대는 최대 100점, 연세대는 50점을 감점하는데 1호(서면 사과)·2호(접촉·협박·보복 금지)·3호(교내 봉사)는 10점, 4호(사회봉사)·5호(특별 교육·심리 치료)는 25점, 6호(출석 정지) 처분 이상은 50점을 감점한다. 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이화여대·한국외대 등도 1호 처분부터 대입에 반영하는데 고려대는 최대 20점을 감점하며 성균관대·서강대는 2호부터 전형 총점(1000점)을 0점 처리한다. 한양대·중앙대·이화여대는 7호(학급 교체) 처분까지는 감점, 8호부터는 아예 부적격 처리한다.(“‘학폭 가해자’ 대입 불이익…올해부터 ‘의무 반영’”, 〈이데일리〉, 2025년 3월 12일)[/ref] 생기부가 ‘생활기록부’가 아닌 ‘학생 전과 기록부’로 전락했고 이는 ‘학생’에게만 가해지는 이중 처벌이다. 성인은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고, 벌금형을 받아도 2년이면 삭제된다. 또한, 「학교폭력예방법」은 「초·중등교육법」 관할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부에선 학교폭력으로 신고되기 전에 자퇴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쫓는 데 일조한다고 볼 수 있다.
생기부 협박에 초토화된 학교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베프였던 두 남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어 심의위에 출석했다. 급식실에서 준우(가명)는 머리를 한 대 맞았다고 했고 현수(가명)는 때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같은 반인 두 학생은 심의위가 열리기까지 4개월간 교실 맨 앞자리와 맨 뒷자리, 각각 다른 모둠 식으로 분리가 되었다. 두 학생 모두 심의위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자의 중간 전달 역할이 필요했다. 준우는 본인의 기억을 말하기보다는 엄마가 “네가 그때 그랬잖아” 하고 다그치면 앵무새처럼 반복해 답변했다. 현수는 거의 모든 질문에 “엄마, 뭐라고 해야 돼?”라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현수가 울먹이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 준우랑 언제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이 사안은 목격 학생도 없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려 ‘증거 불충분’으로 ‘학교폭력 아님’ 처리됐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인스타그램을 차단했다’, ‘급식실에서 순서를 새치기했다’, ‘전 남친이 자꾸 째려보는 것 같다’ 등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사소한 갈등이 심의위에 올라오는 이유는 대부분 부모들 간의 갈등으로 번져서 괘씸죄로 사안이 커졌기 때문이거나, 학교의 무책임한 떠넘김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요즘엔 가해든 피해든 처음부터 변호사가 개입하고, 조치 결정 이후에도 행정 심판, 행정 소송, 심지어 민사 소송까지 이어진다.
이는 생기부 때문이다. 학생생활교육위원회(구 ‘선도위’)나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 사항은 생기부에 남지 않는 반면 학교폭력은 모든 조치가 기록에 남는다. 가해 학생 조치로 1호(서면 사과)~3호(교내 봉사) 조치가 내려져도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다시 학교폭력으로 회부되어 1호 조치라도 받게 되면 지난번에 내려진 조치와 이번에 내려진 조치가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받는다. 학생 운동 선수의 경우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2022년 8월부터 스포츠윤리센터 규정상 학생 선수는 가해 조치에 따라 경기 출전이 정지된다.[ref]1~3호 조치를 받으면 3개월, 4~7호는 6개월, 8호(전학)는 12개월, 9호(퇴학)는 5~10년간 출전이 정지되며 10년간 기록이 남는다.[/ref]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생 선수 중엔 학교폭력에 연루될까 봐 아예 친구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접촉을 피한다는 상담 사례도 있었다.
전담 조사관 제도와 심의위 제도의 문제점
2024년부터 전직 경찰관이 포함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사안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교사는 대부분 편해졌다는 반응인데, 보호자는 조사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조사관이 전직 교사나 상담사인 경우보다 전직 경찰관인 경우 강압적이었다거나 인권 침해적이었다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전담 조사관 제도가 도입될 때 참교육학부모회는 반대 의견을 내고 ‘학교와 교사가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사관이 아무리 사안 조사서를 작성하는 전문가라고 해도, 학생들의 관계와 일상 속에서 발생한 갈등을 맥락과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사안만 똑 떼어 내 육하원칙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관점 자체가 비교육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조사관이 조사하고 심의위원들이 조치를 내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은 다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해야 된다. 졸업할 때까지 학교장의 책임하에 있는 우리 학교, 우리 반 학생들이다. 생활지도가 필요한 초등학생들을 낯선 조사관이 범죄자를 취조하듯 조사하고 심의위에 불러 법정처럼 판결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가해와 피해를 막론하고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나쁜 경험이다. 이는 「학교폭력예방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행위’이므로, 학교폭력에 해당된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런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국회와 교육부, 교육청, 학교다.
「학교폭력예방법」, 폐지가 답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개정할 것이 아니라 진작에 폐지했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아니어도 각 학교의 학교생활규정(학칙)에 의해 얼마든지 선도가 가능하다. 학생 징계위원회에서 징계도 가능하다. 중대 범죄는 경찰에 신고해 경찰서에서 다루고, 갈등은 학교 내 생활교육위원회에서 교육적으로 다뤄야 한다. 학생의 앞날을 담보 삼아 생기부를 무기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경찰에 신고되어 「소년법」으로 처리된 사안도 생기부 기재를 위해 다시 심의위를 열어 조치와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상한 구조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어떠한 법도 이런 경우는 없다.
너무 많은 개정으로 더 이상 손댈 곳도 남아 있지 않은 ‘누더기 학폭법’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지난 20년간 「학교폭력예방법」이 학교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는 수많은 통계 자료가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자고 추가했던 ‘즉시 분리’는 악용, 남용, 오용되어 최악의 조항이 되었다. 경미한 가해 학생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의 1~3호 기재 유보는 4호 이상 조치들의 불복 신청 증가로 이어졌다. 학교폭력 조치의 대학 입시 반영은 변호사 시장만 키우고 있다. 피해 학생이 원하는 조치가 나왔어도 변호사 수임료를 감당하기 위해 가해 학생 측에 민사 소송을 걸어 위자료를 청구하는 게 현실이다. 학교폭력 보험금을 받기 위해 무고한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신고하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될 정도다.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과도기적 대안으로 초등학교부터 폐지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3학년 이하라도 폐지하자.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도 초등 1~3학년은 설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시킨다. 초등 저학년은 조치가 아닌 교육이 필요한 대상이다.
도대체 학교가 얼마나 더 황폐해져야 「학교폭력예방법」의 실패를 인정할 것인가. 국회와 정부가 변호사, 보험 회사들과 결탁한 것이 아니라면 「학교폭력예방법」을 폐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학생에게는 교화가 아니라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을 사법이 아닌 교육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학교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 탓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법률 개정 전에라도 학교장과 교육 당국이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
• 강릉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 10여 년간 학교폭력 사안이 한 건도 제기되지 않았다. 전교생이 100명 미만인 작은 학교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 학교는 학생들 간의 갈등을 심의위로 넘겨 조치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해결해 왔다. 특히, 이 학교는 전교생이 ‘놀이’를 하는 학교인데 함께 놀다 보면 의견 차이나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그래야 더 오래,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놀이다.
• 중·고등학교에서는 HR(학급 회의)을 주 1회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반의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는 갈등 조정의 경험이 필요하다.
• 교사의 중재가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문화를 만들자. 학교폭력 사안에 교사가 개입하면 자칫 어느 학생의 편에 서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학생 간 갈등을 외면하고 당사자끼리 밖으로 나가서 싸우게 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담임 교사야말로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안을 정확히 볼 수 있다. 학생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학급의 문화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조성하는 것 역시 외부인보다 담임 교사가 가장 잘할 수 있다. 학생들의 관계와 교실의 분위기를 사건 이전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사법 전문가가 아닌 갈등 조정 전문가다. 이미 시·도교육청들은 화해중재단, 갈등전환지원단, 관계가꿈지원단 등의 명칭으로 학교 현장에 갈등 조정 전문가를 지원해 주고 있다.
•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해 매년 3월에 모든 초·중·고에서 며칠 또는 1~2주 동안 ‘관계 맺기 주간’을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이 기간 동안은 교과 수업 대신 학급 구성원 간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운영하되 ‘회복적 교육’ 프로그램을 일정 시간 필수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회복적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지원청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진행하도록 하고 담임 교사도 참여자로 함께 한다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 가해 학생 조치 강화가 아닌, 갈등 해결과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할 수 없다면, 학교폭력으로 접수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갈등 조정 프로그램’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폭력’이 아닌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응보적 조치’보다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고 전문 기관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갈등 조정 과정에는 반드시 양측 보호자가 참석하도록 강제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학교폭력은 대부분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 관련 학생이 분리를 요청한 경우나 성 관련 사안 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사안에는 구체적이고 세심한 지침이 필요하다.
• 학교장과 전담 기구에 중재 권한을 부여하고, 피해 학생 측이 학교장 자체 해결에 ‘부동의’하는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현행처럼 ‘피해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자체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광범위한 조건으로는 자체 해결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 마지막으로, 교육지원청마다 ‘학부모 전담 상담 창구’ 운영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예방 교육만으로는 정작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없다. 정보를 얻을 곳이 없으니 온라인 검색 등을 통해 변호사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현행 학교폭력제로센터는 학부모를 상담해 주는 구조가 아니다. 교육청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학교폭력 업무 경험이 있는 파견 교사, 장학사나 전문가를 두어 초기 상담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학교폭력 접수 건수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지금처럼 엄벌주의로 치닫는 한 학교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학교와 교실은 더욱 붕괴될 것이다. 학교의 사법화가 어떤 악영향을 초래했는지 우리는 지난 20년간 충분히 경험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 학생은 사과도 받지 못하고 피해가 회복되지 못한 채 오랜 세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가해 학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반성할 기회조차 없이 조치 이행이라는 면죄부와 생기부 낙인만 남는다. 가해 학생을 격리시키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고 해서 피해가 아물거나 관계가 개선되고 교실이 회복되진 않는다.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학교의 사법화를 중단해야 한다. 학생에게는 교화가 아니라 ‘교육’이 필요하다.
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제도적 대안
이윤경 justyk@daum.net
전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몇 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에 드라마 〈더 글로리〉를 연상한다. 심각한 신체 폭행, 자살로 몰아가는 집단 따돌림, 금품 갈취 등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에 의한 범죄 수준의 폭력을 상상하고 “이런 애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싹을 자르고 영원히 매장시켜야 한다”라며 심판관의 자리에 선다. 하지만 실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에 접수되는 사안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거리가 멀다. 이는 2016년부터 4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을 지냈고, 2020년부터 서울에서도 학교폭력 건수 3위 안에 드는 2곳의 교육지원청에서 4년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단언할 수 있다.[ref]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임기는 최장 4년이다.[/ref]
‘학폭’이 아닌 게 없다
심의위에 올라오는 학교폭력 사안들의 양상이 달라졌다. 가·피해가 명백한 신체 폭력은 줄어들고 언어폭력이 증가했다. 예를 들면 “쟤가 나한테 ‘망해라’라고 했어요”, “내가 학폭 때문에 교내봉사 중이란 걸 A가 소문냈어요”, “B에게만 얘기했던 비밀인데 그걸 B가 C에게 말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유치원 때 별명을 D가 친구들 앞에서 불렀어요” 등이 실제 심의위에 접수됐던 사안들이다. 이는 언어폭력 중 명예 훼손이나 모욕에 해당되며 언어폭력의 내용 중 성에 관련된 용어가 포함되어 있으면 성폭력에도 해당된다. 물론 언어폭력도 명백한 폭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교육지원청에서 다루기보다 학급이나 학교 안에서 중재하고 폭력 예방 교육, 성평등 교육 등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로 매년 교육부가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 중 피해 유형별 비율을 살펴보면 1위가 언어폭력(39.4%), 2위가 신체 폭력, 집단 따돌림(15.5%)이다. 1위와 2위 사이에 2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언어폭력이 압도적으로 많다.
폭력
폭력
따돌림
폭력
갈취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교육부) 중 피해 유형별 비율(%)(복수 응답, 건수 기준)
심의위는 접수된 사안에 대해 그것이 학교폭력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가리고, 학교폭력이라면 어떤 폭력 유형에 해당하는지 ‘죄목’을 붙인다. 형사법에서 유래된 「학교폭력예방법」의 죄목들은 생각보다 무섭다.
화장실이나 교실에서 친구를 못 나오게 막았으면 ‘감금’이다. 급식실이나 체육관을 가던 중에 길을 막거나 계단을 막아도 ‘감금’이다. E를 만나러 갔는데 그곳에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던 F가 있었으면 ‘유인’으로 E를 신고할 수 있다. 누가 내 흉을 봤는지 이름을 대라고 하면 ‘강요’다. 이어폰을 빌려 갔는데 잃어버려서 돌려주지 않았으면 ‘금품 갈취’다. 경찰서에서나 오갈 법한 무시무시한 범죄 용어들이 초등 1학년 학생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또한, 학교폭력은 공소 시효가 없어 아주 오래전 사건도 접수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친한 사이였을 때 장난으로 넘어갔던 일도 지금 문제 삼으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악용해 변호사들은 가해 측으로 접수된 학생의 보호자에게 어떤 것으로든 “나도 피해를 입었다”는 맞폭[ref]학교폭력에 관련된 양측 학생이 서로 맞신고하는 것을 이르는 말.[/ref]을 걸라고 권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 학교폭력으로 걸 만한 내용이 반드시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조언이다. 이들은 학교폭력의 범위가 넓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공략해 “3년 전에 놀다가 네가 나 꼬집었잖아”처럼 기억도 안 나고 증거도 없는 사안들도 학교폭력으로 만들어 접수시킨다.
학교폭력 신고 건수가 증가한 이유
교육부의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 보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차 전수 조사에서 피해 응답률은 2.1%로 전년 동차 대비 0.2%p 증가했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교 4.2%, 중학교 1.6%, 고등학교 0.5%로 전년 동차 대비 각각 0.3%p, 0.3%p, 0.1%p 증가했다. 해당 보도 자료는 피해 응답률 증가에 대해 성윤숙 선임연구위원(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의견을 인용하여 “학교폭력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고 관계 회복에 주력할 수 있는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부모 대상 강의에서 접하거나 학부모 상담실에 접수되는 사례들, 언론에서 취재해 발표하는 내용들을 보면 교육부가 분석한 원인 외에 학교폭력 신고를 부추기는 다른 요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2024년 10월 11일에 방영된 KBS 〈추적 60분〉 ‘학교폭력예방법 20년 - 지금 학교에서는’ 편은 학교폭력 시장과 변호사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이혼과 학폭으로 먹고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교폭력은 이미 법조계의 거대 비즈니스, 대형 고객이 되었다. 부모들은 가해든 피해든 자녀가 학교폭력에 연루되면 제도에 대한 무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순간 학생은 수천만 원대의 고객이 되는 것이다.
신고 건수가 증가한 또 다른 이유는 학교폭력의 외주화에 있다. 학교 안에서 발생한 갈등을 자치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2020년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겨 버렸고, 2024년에는 사안 발생 초기의 조사마저 외부인인 ‘전담 조사관’에게 맡겨 버렸다. 이러한 두 차례의 외주화 이유는 모두 ‘교원의 업무 경감’이었다. 교원들의 기피 업무 1호였던 학교폭력은 바라던 대로 학교·교사와 무관한 영역으로 분류되어, 사소한 갈등마저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세요”라고 안내하는 것이 매뉴얼처럼 되었다. 심의위에 출석한 보호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바로 이러한 ‘학교 측의 무관심’이다. 결과적으로 교육 기관인 학교가 학생들을 ‘교육이 아닌 사법의 영역으로’ 내모는 데에 앞장선 것이다.
학교폭력은 범죄, 학생은 전과자?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는 학교폭력을 범죄로, 가해 학생을 범죄자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일반 형사법도 아닌 특별법으로, 장소와 대상이 모호한 사안들이 뒤죽박죽 혼재된 엉망진창인 법이다. 사안 조사서는 경찰서에서 사용하는 조서 형식인데, 사안 조사도 하기 전에 신고한 사람의 말만 믿고 상대 학생을 7일까지 즉시 분리시킬 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다. 실제로 경쟁 교육 시스템에서 시험 기간을 앞두고 악용되기도 하는데, 잘못 신고했어도 이미 즉시 분리되어 수업에 못 들어간 이후여서 침해된 학습권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소년법」은 청소년의 장래를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는데, 「학교폭력예방법」은 생기부에 기재해 상급 학교 진학에 불이익을 주고, 졸업 후에도 기록을 남겨 새출발을 막는다. 올해 대학 입시부터 모든 대학들은 학교폭력 가해 조치를 입시에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가장 낮은 1호 ‘서면 사과’ 조치도 감점 대상이 된다.[ref]서울대는 최대 100점, 연세대는 50점을 감점하는데 1호(서면 사과)·2호(접촉·협박·보복 금지)·3호(교내 봉사)는 10점, 4호(사회봉사)·5호(특별 교육·심리 치료)는 25점, 6호(출석 정지) 처분 이상은 50점을 감점한다. 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이화여대·한국외대 등도 1호 처분부터 대입에 반영하는데 고려대는 최대 20점을 감점하며 성균관대·서강대는 2호부터 전형 총점(1000점)을 0점 처리한다. 한양대·중앙대·이화여대는 7호(학급 교체) 처분까지는 감점, 8호부터는 아예 부적격 처리한다.(“‘학폭 가해자’ 대입 불이익…올해부터 ‘의무 반영’”, 〈이데일리〉, 2025년 3월 12일)[/ref] 생기부가 ‘생활기록부’가 아닌 ‘학생 전과 기록부’로 전락했고 이는 ‘학생’에게만 가해지는 이중 처벌이다. 성인은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고, 벌금형을 받아도 2년이면 삭제된다. 또한, 「학교폭력예방법」은 「초·중등교육법」 관할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부에선 학교폭력으로 신고되기 전에 자퇴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쫓는 데 일조한다고 볼 수 있다.
생기부 협박에 초토화된 학교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베프였던 두 남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어 심의위에 출석했다. 급식실에서 준우(가명)는 머리를 한 대 맞았다고 했고 현수(가명)는 때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같은 반인 두 학생은 심의위가 열리기까지 4개월간 교실 맨 앞자리와 맨 뒷자리, 각각 다른 모둠 식으로 분리가 되었다. 두 학생 모두 심의위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자의 중간 전달 역할이 필요했다. 준우는 본인의 기억을 말하기보다는 엄마가 “네가 그때 그랬잖아” 하고 다그치면 앵무새처럼 반복해 답변했다. 현수는 거의 모든 질문에 “엄마, 뭐라고 해야 돼?”라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현수가 울먹이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 준우랑 언제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이 사안은 목격 학생도 없고 서로의 의견이 엇갈려 ‘증거 불충분’으로 ‘학교폭력 아님’ 처리됐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인스타그램을 차단했다’, ‘급식실에서 순서를 새치기했다’, ‘전 남친이 자꾸 째려보는 것 같다’ 등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사소한 갈등이 심의위에 올라오는 이유는 대부분 부모들 간의 갈등으로 번져서 괘씸죄로 사안이 커졌기 때문이거나, 학교의 무책임한 떠넘김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요즘엔 가해든 피해든 처음부터 변호사가 개입하고, 조치 결정 이후에도 행정 심판, 행정 소송, 심지어 민사 소송까지 이어진다.
이는 생기부 때문이다. 학생생활교육위원회(구 ‘선도위’)나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 사항은 생기부에 남지 않는 반면 학교폭력은 모든 조치가 기록에 남는다. 가해 학생 조치로 1호(서면 사과)~3호(교내 봉사) 조치가 내려져도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다시 학교폭력으로 회부되어 1호 조치라도 받게 되면 지난번에 내려진 조치와 이번에 내려진 조치가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받는다. 학생 운동 선수의 경우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2022년 8월부터 스포츠윤리센터 규정상 학생 선수는 가해 조치에 따라 경기 출전이 정지된다.[ref]1~3호 조치를 받으면 3개월, 4~7호는 6개월, 8호(전학)는 12개월, 9호(퇴학)는 5~10년간 출전이 정지되며 10년간 기록이 남는다.[/ref]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생 선수 중엔 학교폭력에 연루될까 봐 아예 친구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접촉을 피한다는 상담 사례도 있었다.
전담 조사관 제도와 심의위 제도의 문제점
2024년부터 전직 경찰관이 포함된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사안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교사는 대부분 편해졌다는 반응인데, 보호자는 조사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조사관이 전직 교사나 상담사인 경우보다 전직 경찰관인 경우 강압적이었다거나 인권 침해적이었다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전담 조사관 제도가 도입될 때 참교육학부모회는 반대 의견을 내고 ‘학교와 교사가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사관이 아무리 사안 조사서를 작성하는 전문가라고 해도, 학생들의 관계와 일상 속에서 발생한 갈등을 맥락과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사안만 똑 떼어 내 육하원칙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관점 자체가 비교육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조사관이 조사하고 심의위원들이 조치를 내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은 다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해야 된다. 졸업할 때까지 학교장의 책임하에 있는 우리 학교, 우리 반 학생들이다. 생활지도가 필요한 초등학생들을 낯선 조사관이 범죄자를 취조하듯 조사하고 심의위에 불러 법정처럼 판결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가해와 피해를 막론하고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나쁜 경험이다. 이는 「학교폭력예방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행위’이므로, 학교폭력에 해당된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런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국회와 교육부, 교육청, 학교다.
「학교폭력예방법」, 폐지가 답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개정할 것이 아니라 진작에 폐지했어야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아니어도 각 학교의 학교생활규정(학칙)에 의해 얼마든지 선도가 가능하다. 학생 징계위원회에서 징계도 가능하다. 중대 범죄는 경찰에 신고해 경찰서에서 다루고, 갈등은 학교 내 생활교육위원회에서 교육적으로 다뤄야 한다. 학생의 앞날을 담보 삼아 생기부를 무기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경찰에 신고되어 「소년법」으로 처리된 사안도 생기부 기재를 위해 다시 심의위를 열어 조치와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이상한 구조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어떠한 법도 이런 경우는 없다.
너무 많은 개정으로 더 이상 손댈 곳도 남아 있지 않은 ‘누더기 학폭법’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지난 20년간 「학교폭력예방법」이 학교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는 수많은 통계 자료가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자고 추가했던 ‘즉시 분리’는 악용, 남용, 오용되어 최악의 조항이 되었다. 경미한 가해 학생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의 1~3호 기재 유보는 4호 이상 조치들의 불복 신청 증가로 이어졌다. 학교폭력 조치의 대학 입시 반영은 변호사 시장만 키우고 있다. 피해 학생이 원하는 조치가 나왔어도 변호사 수임료를 감당하기 위해 가해 학생 측에 민사 소송을 걸어 위자료를 청구하는 게 현실이다. 학교폭력 보험금을 받기 위해 무고한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신고하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될 정도다.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과도기적 대안으로 초등학교부터 폐지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3학년 이하라도 폐지하자.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도 초등 1~3학년은 설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시킨다. 초등 저학년은 조치가 아닌 교육이 필요한 대상이다.
도대체 학교가 얼마나 더 황폐해져야 「학교폭력예방법」의 실패를 인정할 것인가. 국회와 정부가 변호사, 보험 회사들과 결탁한 것이 아니라면 「학교폭력예방법」을 폐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학생에게는 교화가 아니라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을 사법이 아닌 교육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학교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 탓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법률 개정 전에라도 학교장과 교육 당국이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
• 강릉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 10여 년간 학교폭력 사안이 한 건도 제기되지 않았다. 전교생이 100명 미만인 작은 학교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 학교는 학생들 간의 갈등을 심의위로 넘겨 조치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해결해 왔다. 특히, 이 학교는 전교생이 ‘놀이’를 하는 학교인데 함께 놀다 보면 의견 차이나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그래야 더 오래,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놀이다.
• 중·고등학교에서는 HR(학급 회의)을 주 1회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반의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는 갈등 조정의 경험이 필요하다.
• 교사의 중재가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문화를 만들자. 학교폭력 사안에 교사가 개입하면 자칫 어느 학생의 편에 서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학생 간 갈등을 외면하고 당사자끼리 밖으로 나가서 싸우게 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담임 교사야말로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안을 정확히 볼 수 있다. 학생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학급의 문화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조성하는 것 역시 외부인보다 담임 교사가 가장 잘할 수 있다. 학생들의 관계와 교실의 분위기를 사건 이전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사법 전문가가 아닌 갈등 조정 전문가다. 이미 시·도교육청들은 화해중재단, 갈등전환지원단, 관계가꿈지원단 등의 명칭으로 학교 현장에 갈등 조정 전문가를 지원해 주고 있다.
•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해 매년 3월에 모든 초·중·고에서 며칠 또는 1~2주 동안 ‘관계 맺기 주간’을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이 기간 동안은 교과 수업 대신 학급 구성원 간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운영하되 ‘회복적 교육’ 프로그램을 일정 시간 필수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회복적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지원청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진행하도록 하고 담임 교사도 참여자로 함께 한다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 가해 학생 조치 강화가 아닌, 갈등 해결과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할 수 없다면, 학교폭력으로 접수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갈등 조정 프로그램’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폭력’이 아닌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응보적 조치’보다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고 전문 기관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갈등 조정 과정에는 반드시 양측 보호자가 참석하도록 강제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학교폭력은 대부분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 관련 학생이 분리를 요청한 경우나 성 관련 사안 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사안에는 구체적이고 세심한 지침이 필요하다.
• 학교장과 전담 기구에 중재 권한을 부여하고, 피해 학생 측이 학교장 자체 해결에 ‘부동의’하는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현행처럼 ‘피해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자체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광범위한 조건으로는 자체 해결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 마지막으로, 교육지원청마다 ‘학부모 전담 상담 창구’ 운영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예방 교육만으로는 정작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없다. 정보를 얻을 곳이 없으니 온라인 검색 등을 통해 변호사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현행 학교폭력제로센터는 학부모를 상담해 주는 구조가 아니다. 교육청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학교폭력 업무 경험이 있는 파견 교사, 장학사나 전문가를 두어 초기 상담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학교폭력 접수 건수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지금처럼 엄벌주의로 치닫는 한 학교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학교와 교실은 더욱 붕괴될 것이다. 학교의 사법화가 어떤 악영향을 초래했는지 우리는 지난 20년간 충분히 경험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 학생은 사과도 받지 못하고 피해가 회복되지 못한 채 오랜 세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가해 학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반성할 기회조차 없이 조치 이행이라는 면죄부와 생기부 낙인만 남는다. 가해 학생을 격리시키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고 해서 피해가 아물거나 관계가 개선되고 교실이 회복되진 않는다.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학교의 사법화를 중단해야 한다. 학생에게는 교화가 아니라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