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호[리뷰] 교육운동이 기억해야 할 저항과 연대의 역사 | 강동선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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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교육운동이 기억해야 할 저항과 연대의 역사



조한진희 기획, 김소연 외 씀, 《고등학생운동사》, 동녘, 2025



강동선  akbar@hanmail.net

경남 김해건설공고 교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유서에 남긴 이 한 문장은 2025년 지금 교실에 서 있는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등학생운동사》는 바로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했던 세대, 1980~1990년대 고등학생들의 치열했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육운동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지금 교육 현장에서 교사인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운동’의 뿌리는 깊다. 일제강점기 때도 고등학생들은 저항의 주체였다. 3.1운동 당시 수많은 고등학생이 거리로 나섰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조직적 저항으로 전국적인 학생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4월 혁명에서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에 참여해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이끌었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고등학생들은 계엄군에 맞서 항쟁에 나섰다. 이처럼 한국의 고등학생운동은 단절된 사건이 아닌, 일제의 식민 지배와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맞서는 지속적인 저항의 흐름 속에 존재했다.


《고등학생운동사》는 이러한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월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맥락 위에서 교육 민주화를 위한 고등학생들의 조직적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고운)은 단지 교육에 대한 불만을 넘어, 학교와 사회를 바꾸려는 조직적이고 집단적 활동이었다. 저자들은 고등학생운동을 한국 민주주의의 토양을 일군 중요한 주체로서 다시 조명한다. 따라서 《고등학생운동사》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에 고등학생들이 새긴 발자취를 되새기게 만드는 소중한 텍스트다.



고등학생운동의 기록, 역사의 중심으로


《고등학생운동사》는 고운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운은 그동안 ‘학생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 이는 단지 기록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10대를 비정치적인 존재로 간주해 온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다. 특히 고운은 마치 전교조의 부산물인 것처럼, 전교조 교사를 지키기 위한 ‘순수한 학생들의 우발적 행동’으로 이해되기도 했고, 전교조 교사에게 배후 조종당하는 의식화된 학생으로 간주되곤 했다. 이 책은 당시 고등학생들이 교육 주체로서 실질적으로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연대기를 넘어, 그들이 ‘왜 저항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저자들은 고등학생 시절 교사와 학생의 실천적 연대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직선제 학생회 운동, 사학 비리 고발, 전교조 해직 교사 지지 활동, 거리 집회와 유인물 제작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삶 속에 새겨진 ‘운동’을 통해 10대를 증언한다. 정화여상에서 사학 비리에 저항해 전교생이 시내 행진을 벌이고 학년 전체가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던 이야기,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광고협)이 주도한 연합 집회에 수만 명이 참여해 투석전까지 벌였던 장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학생의 권리를 외쳤던 장면, 이 모두가 10대가 정치적 존재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장면들이다. 학생들은 전교조 해직 교사와 단식 투쟁에 동참하며 도시락을 교장실 앞에 내려놓았고, 사회과학 서적을 품에 안고 학교를 바꾸고자 했다. 고운의 주체들은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저항적인 세대였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운동사》는 1980~1990년대 고운 활동을 했던 11명의 저자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형태를 갖고 있다. 1명을 제외하면 모두 1970년대 초반 출생으로, 10대 시절 1987년 6월 항쟁을 겪었고, 고등학생이던 1989년에는 전교조 결성과 1,500여 명의 교사 해직 사태를 직접 마주한 세대다. 나는 당시 국민학생이었기에, 고등학생들의 깊은 고민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군부 독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학교가 얼마나 폭력적 공간이었는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보다 5~6년 먼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들은 어떻게 이런 활동을 해낼 수 있었을까? 아침 7시 30분 등교, 하루 2~3시간의 보충수업,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 토요일 수업까지 감내하면서, 소모임을 만들고, 회의를 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며, 각종 행사를 기획했다니. 학생에게 자유와 존중은 없고, 대신 폭력과 멸시, 억압만 가득했던 학교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고운 활동가들에게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마치 일제강점기 운동사를 읽는 듯, 그들의 신념과 결연한 의지가 전해졌다.


흔히 고등학생을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아직 미숙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고운 활동가들은 그러한 통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들은 폭력적인 학교 현실에 정면으로 맞섰고, 학교를 바꾸기 위해선 사회 전체가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했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19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의 창립 선언문에 담긴 “끓는 가슴으로 이 땅에 민주의 씨앗을 뿌리고 갑시다.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군부 독재 타도하자!”라는 구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격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군부 독재에 맞섰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교육 시스템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사회를 변혁하려고 했던 각성된 새로운 정치 주체였다.



교사와 학생, 저항의 공동체


전교조 교사로서 나는 이 책을 통해 1989년 전교조 창립 당시 고등학생들의 투쟁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해직 교사 선배들을 통해 전교조 결성 과정과 교사들의 치열한 투쟁은 익히 들어 왔지만, 고등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연대했는지는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 고운을 했던 선배들로부터 간헐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 선배들조차 고운의 구체적인 과정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전까지 나는 고운을 단지 전교조 해직을 지켜본 학생들의 감정적 연대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1989년 당시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의 해직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조직적인 저항의 계기로 삼아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깊이 깨닫게 되었다. 특히 광고협과 서고련 등은 이미 이전부터 직선제 학생회를 쟁취하기 위해, 체벌, 인격 모독, 강제 보충·자율학습에 맞서서 조직적인 투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단지 선생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처한 교육 현실을 바꾸고자 행동했다. 


고운 활동가들은 입시 교육의 폭력성과 학교 내 비민주주의에 저항하며, 학내 시위와 자율학습 거부 등의 실천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의 과정에서 참교육을 외치는 전교조와 만났던 것이다. 고운 활동가들과 전교조는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는 비민주적 교육 현실에 맞선 교육 개혁의 동반자였다. 책 속에서 만난 “우리가 전교조를 지지하고 선생님의 해직에 반대한 건 교원노동조합의 건설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전교조 출범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선생님들을 사랑하고 지지했다는 것’으로만 우리를 규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라는 말에 못내 가슴이 아팠다.


 

차별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


특히 당시 고등학생들이 지녔던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입시 경쟁이 극에 달하고, 대학에 진학해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던 시대였다. 학교는 학생을 오직 성적으로만 평가했다. 그러나 정화여상 투쟁에서 학생들이 보여 준 모습은 달랐다. 이들은 1부와 2부라는 내부의 구조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싸웠다. 기성세대가 성적이라는 방식으로 폭력적으로 구분하고 차별했지만, 이들은 그런 구분을 따르지 않았다. 나누지 않고 함께 손잡으며, 억압적인 교육 현실에 함께 맞섰다.


지역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인문계와 실업계, 좋은 학군과 안 좋은 학군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학교나 진로에 따른 차별 없이, 같은 동지로서 비민주적인 학교 현실에 함께 저항하고자 했다. 고운은 고통받는 교육 현실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이 함께했던 대중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고운은 ‘의식화된 소수 엘리트의 운동’이 아니라, 억압받는 학생 전체를 향한 교육민주화운동이었다.


또한 고운 활동가들은 자신이 처한 교육 환경의 불평등과 억압 말고도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에도 저항하였다. ‘왜 우리는 공부만 해야 하나? 왜 학교는 침묵을 강요하는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왜 사회는 이토록 불공정한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운은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민주화운동이었다.


이처럼 학생들이 서로 다른 조건과 차이를 넘어 함께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화된 교육 현실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와 나를 나누고 서열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고운은 말한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지금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교실에서, 우리는 다시 ‘연대’와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을까? 고운의 이야기들이 그 물음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열사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것은 스스로를 불살라 항거한 3명의 열사, 심광보, 김수경, 김철수 열사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였다. 전교조 교사로서 늘 참교육을 이야기해 왔지만, 나는 이분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들의 삶과 죽음은 단지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적 교육 현실과 독재 정치에 맞서 싸운 교육 주체의 외침이었고, 우리 교육운동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었다.


특히 김수경 열사의 유서를 읽었을 때,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전교조를 지지했던 게 죄가 된다면 법정에서 떳떳이 죗값을 받고 싶다”는 마지막 외침. 한 여고생이 겪어야 했던 학교의 폭력성과 모멸감, 전교조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겪은 고립과 탄압에 교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분노했고, 슬펐고, 무엇보다 교사라서 부끄러웠다. 학교는 그에게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이 아니었고, 감시, 조롱, 체벌, 왜곡의 장소였다. 학교가 학생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김철수 열사 역시 마찬가지다. 5.18 기념식에서 "이런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래?"라고 외치며 온몸에 불을 붙인 그는 이미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부당한 체제에 항거하였다. 심광보 열사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 했고, 불평등한 교육 구조를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는 학생운동이 학교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참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세 열사의 죽음은 우리가 지켜 주지 못한 학생들의 절규였다. 전교조 교사로서, 나는 다시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교육은 학생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응답하라 1989’


몇 년 전 담임을 맡았을 때, 학생들이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그 시절 고등학교엔 뭔가 낭만이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드라마 속 10대들은 시험과 입시에 힘들어하면서도, 가족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성장한다. 그 모습은 어딘가 따뜻하고 정겨웠을 것이다.


만약 지금의 고등학생들이 《고등학생운동사》를 접한다면, 아마도 이것이 또 다른 의미의 ‘응답하라 1989’로 읽히지 않을까? ‘그 시절은 낭만이었다’ 하는 인식 대신, “우리와 다르지 않은 환경이었구나”, “지금도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라는 공감과 놀라움이 먼저 다가올지도 모른다. 시대는 변했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고, 입시와 경쟁 중심의 교육, 학생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 구조는 지금도 여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의 이런 생각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1980~1990년대 고운 활동가들은 〈응답하라 1988〉의 등장인물들처럼 기억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생운동사》에서는 ‘고운이 성공한 운동인가’ 물으면 상당수가 고개를 저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운은 민주화운동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 있었고, 광주 항쟁과 6월 항쟁의 현장에도 있었다. 이들은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고, 시위에 나섰고, 학교에서 백지 시험지를 제출했다. 심지어는 연행과 구속, 퇴학을 감수했다. 때로는 연합 집회를 조직해 정권과 교육 정책에 저항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교육과 사회를 꿈꿨다. 그럼에도 고운을 했던 주체들이 이 운동을 실패하고 패배한 것으로 기억하는 것은, 고운이 명확한 성과도 사회적 평가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입시 위주 교육 체제는 여전히 우리 교육을 짓누르고 있으니 성과를 남기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운동은 오늘날의 청소년운동, 학생인권, 교육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전교조는 여전히 학교에서 교육 개혁을 말하고, 학생과 함께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고운은 끝나지 않았고,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해맑은 웃음을 위해


서문에서 기획자인 조한진희는 “정치적인 존재로서의 10대”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래, 교육은 정치와는 별개고,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하다는 편견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좁은 시선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고등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문을 나서서 민주주의를 외쳤고, 거리로 나섰다.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고, 사복 경찰에게 끌려가고, 심지어는 자퇴서를 제출하면서도 “학교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라고 외쳤다. 그런 그들을 그저 ‘어린 학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리고 《고등학생운동사》에서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영웅화하지 않는다. 고운 활동은 지역마다, 시기마다, 방식마다 모두 달랐고,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친구는 학생회에서 활동했고, 어떤 친구는 흥사단고등학생아카데미, KSCM(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총연맹) 같은 공개된 조직에서 활동했다. 어떤 친구는 거리에서, 또 어떤 친구는 전교조를 지지하며 학교에서 싸웠다. 누군가는 평생을 사회운동가로 살았고, 또 누군가는 그때를 마지막으로 운동을 접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모든 다양한 이야기를 소중하게 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고, 우리 곁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책을 그냥 과거의 이야기로, 흥미롭게만 읽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평가하는 구조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1980~1990년대 고등학생들이 외쳤던 ‘참교육’이라는 말, 그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약속처럼 우리 교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생과 교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지난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이르기까지, 고비 고비마다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10대들이 있었다. 2024~2025년, 10대들은 분명히 광장의 민주주의의 주역이었다. 이들에게 《고등학생운동사》는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광장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이제는 교실 안, 학교 안에서도 꽃피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교사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시민’들이다. 그렇다면 그런 학생들을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만나야 할까? 그 답은 30여 년 전,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이자 각성된 시민이라 외치며 행동에 나섰던 고운 세대 안에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권리를 외치고 싸웠던 시민이었다. 민주주의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2025년 5월 전교조 창립 36주년 교사대회가 한창 준비 중이다. 조기 대선 정국에 발맞추어서 전교조는 10대 교육 의제를 발표하였다. 10대 교육 의제에는 교육 공공성, 입시 경쟁 폐지, 학교 민주화 등 우리 교육이 직면한 핵심 과제가 담겨 있다.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킨 학생들과 교실에서 어떤 과제를 함께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의 봄을 만들려면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다시 교실로 이어져야 한다.


전교조 창립 선언문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동지여! 함께 떨쳐 일어선 동지여! 우리의 사랑스런 제자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굳게 뭉쳐 싸워 나가자!”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서울, 광주, 대구, 부산 지역의 고등학생운동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다. 앞으로 다른 지역, 특히 마산·창원, 진주 같은 경남 지역의 고운 이야기도 꼭 책으로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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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