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호[기고] 학교급식은 교육이고, 급식노동자도 교육노동자다 | 정명옥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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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급식은 교육이고,

급식노동자도 

교육노동자다



정명옥  tarjan100@hanmail.net

전 초등학교 영양 교사

《밥 공부》 저자



학교급식 현장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출근해 하루를 보내고 퇴근 시간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속엣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큰 숨이 절로 쉬어지던 나날이었다. 학교를 떠나면 무겁던 마음이 좀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학교급식 현장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해마다 급식노동자들(조리실무사, 비정규직 영양사)은 학교급식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조직적으로 전국 단위 파업을 진행했다.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격려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개 ‘아이들을 볼모로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욕심 많은 노동자들’로 악마화하기 일쑤였다. 


파업이 있던 어느 해, 나는 연가를 내고 집회 현장에 응원을 가려고 했다. 교장은 허락하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대체 음식을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대체 음식 제공은 파업 노동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법이다. “파업은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 권리’이며 파업 대상은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교장은 “영양 교사로서 어떻게 학생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느냐”라며 나를 질타했다. 그런 교장에 맞서 날선 논쟁도 설득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교감까지 합세해 압박했고 그렇게 내 저항은 힘을 잃었다. 당시 내가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동료 교사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일부 학부모는 학교로 항의 전화를 하여 불만을 쏟아 냈다고 들었다. 자녀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지 못해 드는 안쓰러움과 도시락을 챙기기 귀찮은 마음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급식을 제공하지 않은 비용을 누군가 착복하는 것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음모론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안타깝지만 학교 역시 다르지 않다. 더구나 조리노동자 같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학교 안팎으로 더 팽배해 있다. 



학교급식의 민낯과 그림자 노동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가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11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지속가능한 급식을 위해 자신들의 곡기를 끊어야 한다’며 단식 투쟁의 취지를 밝혔다. 


조리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학교급식은 멈춘다. 급식 노동은 학교에서 잘 보이지 않다가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 급식 노동은 이른 새벽(대개 아침 7시 전후)에 식재료가 들어오면 꼼꼼히 검수하고 반입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전에 미리 식단을 구성하고 시장 조사(물가 조사)를 토대로 식재료를 주문하는 것은 영양 교사와 영양사의 몫이다. 조리노동자는 계획된 작업 일정에 따라 식재료 전처리부터 시작하여 조리와 배식, 세척과 소독, 정리 정돈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조리노동자의 일과를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하지만, 이 일은 매우 위험하고 고되다. 조리노동자들은 무거운 식재료와 조리 도구 등을 옮기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기 쉽다. 항상 뜨거운 불, 물, 기름 등에 노출되는 위험도 있다. 또한 학생들이 좋아하는 튀김이나 볶음 요리 등 고온의 기름을 사용할 때 많이 배출되는 조리 흄(cooking fume)은 발암 물질로 조리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중 폐암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169명이고 그중 13명은 목숨을 잃었다. 각 시·도교육청은 최근에서야 조리장 시설 개선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여전히 많은 조리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편 현재 조리노동자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학교급식 인원은 120~150명에 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방식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급식 노동이 얼마나 힘들고 막중한 일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리장의 시설이 잘 갖추어진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이 직접 조리하는 학교급식을 시작한 지 44년이 됐다. 노후된 조리 도구와 기계, 시설을 교체하고 있지만 낡아 가는 속도를 예산과 행정이 따라가지 못한다. 더구나 학교급식 노동은 잘 보이지 않으니 우선순위에서도 자꾸 밀린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고, 교육은 지식 전수라는 통념과 편견은 다른 교육 활동을 실천하는 노동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인력 정원을 채우려고 해도, 노동 강도가 세다는 소문 (실제로도 그렇다)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올해 17개 시·도교육청 조리실무사 신규 채용 미달률은 평균 29%로 집계됐다. 막상 채용되더라도 취업의 기쁨은 잠시,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일주일 혹은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급식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이로 인해 결원은 잦고 충원은 힘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렇듯 풍전등화와 같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질 좋은 학교급식을 바라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학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다. 최고 권력인 학교장이 있고, 교사인 교육노동자와 교사가 아닌 노동자로 나뉜다. 교사지만 보조라는 이름을 달고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특수학급 보조 교사, 방과후 돌봄 교사가 있고, 행정실무사, 청소노동자, 숙직 담당 방호노동자 그리고 조리노동자 들이 있다. 청소나 방호노동자는 이미 용역 업체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조리노동자도 서서히 외부로 위탁하는 곳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리 인력 문제 해소를 핑계로 외주를 본격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학교급식법」에는 위탁 급식을 금지하고 있으나 부분 위탁은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조리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정책이다. 거대 자본이 튀김 로봇, 볶음 로봇, 부침 로봇과 같이 다양한 로봇을 개발하여 호시탐탐 학교급식 조리장에 들어오려 한다. 1대당 수억 원인 조리 로봇은 이미 상용화되어 학교에 배치된 곳도 있다. 많은 ‘힘’이 필요하거나 뜨거운 불, 뜨거운 물, 뜨거운 기름 등 안전이 요구되는 작업에는 로봇 등 특수 장비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로봇은 공산품을 조리하는 데 적합하다. 학교급식은 우리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학생들에게 먹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급식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 또한 조리 로봇이 들어오면 조리노동자들은 로봇이 하지 못하는 조리 전 단계를 준비하고 조리 후에는 로봇을 세척하고 관리하는 로봇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고장 및 기계적 감가상각까지 고려하면 조리 로봇의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부분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전통 음식의 ‘맛’을 내는 데 필요한 미세 작업은 로봇이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시 인력 외주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조리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겹쳐진다. 조리노동자를 로봇이나 학교 밖 사람들로 대체한다면 그림자로라도 비쳤던 노동의 실체가 더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학생들 의식 속에서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존재와 노동 행위가 지워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러면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생과 노동자는 관계 맺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노동 주체의 행위를 통한 배움의 기회는 휘발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노동자 정체성에는 ‘학생들은 내가 키운다, 내 밥 먹고 자란다’는 사명감이 존재한다. 아이들의 개별 특성을 일일이 파악하고 식습관에 따른 ‘약간’의 차이를 통해 사랑과 관심을 주곤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한 점을 더 준다든지, 채소 반찬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편식을 개선할 수 있게 유도해 개별 학생의 만족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금세 눈치채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배식도 한다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용역 업체 직원이 기계적인 배식 활동만 한다면?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과 더욱 분리되고 멀어져 버릴 우려가 있다. 이런 현상은 명백히 비교육적이다.


정말 속상한 것은 학생들도 학교 안 구성원 중에서 가장 힘 있는 권력자와 가장 힘이 없는 노동 계급을 본능적으로 구별한다는 점이다. 조리노동자들은 학생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 구성원들의 인사와 행동을 통해 그런 차별을 느낀다. 심지어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고 수용하며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이러한 체념과 내면화는 비단 조리노동자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은 어떨까?


학교는 조리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마치 그림자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보며 인사하고 노고에 감사하는 학생과 교사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인문적으로 척박한 환경은 노동 주체로서의 노동자성을 형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이것 역시 악순환이다. 노동자로서, 어른으로서 당당하고 자부심 있는 태도가 결여된 현재의 학교, 급식 노동 현장은 바람직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급식 시간, 급식 장소는 교육 시간도 교육 현장도 아닌 제3의 장소가 되고 만다. 



학교급식은 교육이다


학교급식은 학교 안팎,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여서 뭇매질 당하기 일쑤다. 매년 2번씩 실시하는 설문 조사가 그것을 방증한다. 내부 동료들은 물론 학생, 학부모, 언론 등으로부터 심심치 않은 공격을 받는다. 공격 키워드는 ‘급식의 맛’이다. 또한 학교 밥상은 점점 가공식품 전시판이 되어 간다. 안타까운 것은 조리인력의 부족이 반제(반 조리 가공식품)나 완제 가공식품 등 밀 키트(meal kit) 사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급식 실무를 담당하는 영양사(영양 교사)는 조리노동자 입장을 생각하면 가공식품을 많이 사용해야 하고, 급식의 원칙을 고려하면 가급적 가공이 덜 된 자연식품을 사용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더욱 어려운 것은 요즘 학생들의 입맛이 점점 더 가공식품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많은 기업이 학교급식을 통해 미래의 ‘고객’이 될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학교급식을 경제 논리, 효율성만으로 실시한다면 학교급식은 필연적으로 자본 시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학교 예산에서 급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학교급식은 자라나는 어린이·청소년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1차적 목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음식을 먹는 행위에 대해 생태적, 의학적(생물학적), 문화적 의미 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내용을 전달하고 실제 학교 밥상에 구현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을 매일의 경험을 통해 쉽게 익히도록 하는 교육 활동으로서 학교급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기후 위기 시대다. 학교급식을 통한 교육 정책, 그와 연계한 제대로 된 농업 정책 등이 없다면 차라리 급식을 하지 않는 편이 우리 사회의 앞날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방향이 잘못됐는데도 계속 가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실패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리 몸에 이로운 전통 음식을 잇고, 국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며, 학생을 심신이 건강한 어른으로 키우는 것이 학교급식의 기본 방향이다. 여기에 더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과 가르침 등 학교급식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서 학비연대 단식농성은 노동 문제이자 생존 문제지만 곧 교육 문제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정치권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의 손을 맞잡았다. 대선을 앞둔 상황이어서 정책 협약 내용에는 모두 ‘새 정부’라는 앞머리가 달려 있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갖게 했다. 그들은 학교급식 종합 대책안 마련을 통해 학교 급식실을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교육 복지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또 학교 비정규직의 저임금 구조 해결을 위해 임금 체계를 개편하고 방학 중 무임금 문제도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학교급식의 교육적 역할에 주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급식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이 원활히 이루어지면 좋겠다. 교육이 본질적으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고민하며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한 힘을 기르는 것이라면 말이다. 


학교급식은 공염불 같은 ‘죽은 교육’이 아니라 ‘산 교육’이다.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조리노동자들의  투쟁을 교육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면 좋겠다. 그들이, 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 현장에서, 행복한 노동을 해야 행복한 밥상, 건강한 밥상이 차려질 수 있다. 결국 그러한 밥상을 매일 마주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더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❶  조리 흄에는 1급 발암 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등이 포함되어 있어 체내에 흡수되면 세포를 파괴하고 장기에 염증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특히 조리 흄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폐암 등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0년 보고서를 통해 조리 흄을 폐암 위험 요인으로 분류하기도 했다.(시사상식사전)

❷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해야 한다”… ‘산재근로자의 날’ 첫 지정에도 스러져 간 학교 급식 노동자들”, 〈뉴스필드〉, 2025년 4월 30일.

❸  이때 ‘정원’은 학교급식 인원 120~150명당 1명이다.

❹  조리노동자는 공식적으로 또 조리사와 조리실무사 두 직군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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