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과하고 고백할 용기를 낼 때
진선
gojinsun85@hanmail.net
경남 초등 교사

장하나 외 씀, 《노키즈존 한국 사회 – 어린이를 혐오하는 나라에서 환대하는 나라로》, 교육공동체 벗, 2025
학교 안의 ‘노키즈’와 ‘노키즈존’
학교에도 ‘노키즈’(“학생은 안 돼”)가 있다. 학생은 다칠 수도 있으므로 슬리퍼를 신을 수 없고, 교실에서는 되도록 모자를 벗어야 한다. 화장도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만 허용이 된다. 학생들이 화장지를 함부로 쓴다는 이유로 화장지를 화장실 출입구에만 비치한 학교를 봤다.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급식 때 국을 많이 먹는 학생은 식판이 작아 다시 국을 받으러 배식대로 가야 한다. 학생들도 필요에 따라 국그릇을 따로 요구할 수 있는 학교가 있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학교생활규정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전교 학생 자치 선거의 투표권이 3학년 학생부터 있는 초등학교가 많다. 반 학생들에게 왜 1, 2학년 학생에게는 투표권이 없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은 ‘걔네들은 아직 어려 학교생활을 잘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뽑거나 남의 말을 듣고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면 투표할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비슷한 이유로 저학년 학생들이 투표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노키즈존’도 있다. 학생은 교실 뒷문으로만 출입을 해야 하는 학급을 본 적이 있다. 학생이 교직원 화장실을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학교도 많다. 어느 학교의 급식실은 교직원 식사 공간을 바닥에서 30cm 정도 높게 만들고 주위에 펜스를 설치했다. 어느 학생이 내게 “왜 저기는 높게 만든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의 학생 혐오
책 《노키즈존 한국 사회》는 한국 사회의 어린이·청소년 혐오 현상을 두루 짚고 있다. 노키즈존은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를 뜻하며, 어린이와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고객들과 업소들의 편의를 위해 생겼다. 노키즈존처럼 학교 밖에서 학생들이 자본의 관점으로 대상화된다면, 학교 안에서는 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진다.
어린이·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을 바라보는 데는 그들을 평등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존재로 포장할수록 어린이·청소년은 ‘우리’ 외부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 본문 225쪽
책을 읽으며, 나 역시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들도 시민이다. 그들이 학교에서 행복할 권리를 누리고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나의 사상과 태도를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가 가장 많이 함께 생활하는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노키즈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의 성숙을 위해서라며 1교시 수업 시작 전 교실에서 독서 시간을 갖는 학급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1교시 시작 전의 시간은 학생들에게는 쉬는 시간이다. 쉬는 시간의 학습은 충분한 이유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협의와 동의가 필요하다. 혹시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싫다거나 학생들이 놀다 다칠까 우려하는 교사의 편의주의와 조바심에서 아침 독서 시키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습이 노키즈존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학년 담임들은 으레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선생님 반 애들이 이제 좀 사람 됐네요.”
“아유, 뭘요.”
“우리 반 애들은 언제 사람 될까요?”
“(웃음)”
학생들은 아직도 ‘짐승’이라는 맥락을 가진 교사들의 이런 대화는 서로 칭찬이나 웃음 코드로 학생에 대한 혐오를 교묘히 가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 지도나 학급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면 “혹시 그 학생 다문화인가요? 아니면 특수?”라고 묻는 교사가 있다. “아니요”라고 답하면 “다문화도 아닌데 왜?”라며 놀란다. 반대로 “예”라고 답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생님이 고생 많겠네요”라며 연민의 표정을 짓는다.
이주민 자녀 학생과 특수교육대상학생을 향한 낙인이 교사 개인의 문제일까? 학교에서는 매년 교사 인사 이동 점수를 조사하는데, 학급에 이주민 자녀 학생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이주민 자녀 학생은 담임에게 짐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추가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 혐오는 학생의 소수자성을 교원 인사에서 가산점으로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학교 제도에서 나온다.
어느 해, 동학년 동료 교사가 나에게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아니에요? 불법 이주민 애들도 다 받아 주고, 학교도 다니게 하고. 그거 다 우리 세금으로 다니게 하는 거잖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을 “야”, “너희들”로 부르면서 어미만 존칭으로 끝낸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동료 교사는, 학생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그 학생이 교실에 없을 때 학생의 사물함에 있던 책을 쓰레기통에 넣고 그 학생의 책상을 복도로 옮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혐오의 현장에서 나는
학교에서 학생 혐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제 조금 사람이 됐다’며 칭찬과 웃음으로 포장되어 발화되기도 하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대놓고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교사 본인의 인사 이동 점수를 챙기기 위해서 조사 항목에 ‘우리 반에 해당 학생이 있음’을 체크하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나는 그 혐오의 현장에 있어 왔다. 그 현장에서 보고 들었다. 보고 들었지만 그건 혐오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지적이 싸움으로 번질까 봐 겁이 났다. 당신의 말과 태도가 왜 혐오인지 세련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아동학대 신고를 비난하고 ‘교권 보호’를 외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나는 소신 발언을 하지 못했다. 용인하고 동조했다. 용기가 없었다. 집에 가서야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연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럼 나는 떳떳한가? 학생들을 혐오한 적이 없나? 혐오에 가담한 적이 없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나?’였다. 나는 떳떳할 수 없다. 학생들을 혐오한 적이 있으며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겁이 났다. 가해자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체벌로 입은 상처를 꺼내 놓고 이야기하며 이를 미화하지 않고 성찰하는 과정,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체벌이 우리 모두에게 남겼고, 남기고 있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119쪽
책을 읽다가 이 글귀에 오래 마음이 갔다. “체벌”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 자리에 “혐오”나 “폭력”을 넣어도 글의 의미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저 문장들은 내게 말해 줬다. 너부터 사과하라고.
신규 교사로 발령받고 주변에서 “초반부터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학생들을 제압하려 노력했다. 말은 짧고 차갑게. 늘 미간을 찌푸린 채. 본보기로 어느 학생의 멱살을 잡기도 했고, 급식실 가는 길이 시끄럽다며 학생들에게 ‘오리걸음’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난 때리지는 않잖아.’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고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걸리고 있다. 내 의도대로 지도나 소통이 되지 않는 학생을 만나는 해에는 그 학생을 때리거나 교실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혐오와 폭력은 무의식을 잠식할 수 있기에 부단히 경계하고 주시해야 한다. 나의 혐오와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죄를 지은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겠다. 앞으로 동료들에게 그것은 혐오와 폭력이라고 지적하겠다. 학생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하겠다. 교사들에게 반성하고 성찰하자고 제안하겠다. 이제는 용기를 낼 때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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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고 고백할 용기를 낼 때
진선
gojinsun85@hanmail.net
경남 초등 교사
장하나 외 씀, 《노키즈존 한국 사회 – 어린이를 혐오하는 나라에서 환대하는 나라로》, 교육공동체 벗, 2025
학교 안의 ‘노키즈’와 ‘노키즈존’
학교에도 ‘노키즈’(“학생은 안 돼”)가 있다. 학생은 다칠 수도 있으므로 슬리퍼를 신을 수 없고, 교실에서는 되도록 모자를 벗어야 한다. 화장도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만 허용이 된다. 학생들이 화장지를 함부로 쓴다는 이유로 화장지를 화장실 출입구에만 비치한 학교를 봤다.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급식 때 국을 많이 먹는 학생은 식판이 작아 다시 국을 받으러 배식대로 가야 한다. 학생들도 필요에 따라 국그릇을 따로 요구할 수 있는 학교가 있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학교생활규정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전교 학생 자치 선거의 투표권이 3학년 학생부터 있는 초등학교가 많다. 반 학생들에게 왜 1, 2학년 학생에게는 투표권이 없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은 ‘걔네들은 아직 어려 학교생활을 잘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뽑거나 남의 말을 듣고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면 투표할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비슷한 이유로 저학년 학생들이 투표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노키즈존’도 있다. 학생은 교실 뒷문으로만 출입을 해야 하는 학급을 본 적이 있다. 학생이 교직원 화장실을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학교도 많다. 어느 학교의 급식실은 교직원 식사 공간을 바닥에서 30cm 정도 높게 만들고 주위에 펜스를 설치했다. 어느 학생이 내게 “왜 저기는 높게 만든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의 학생 혐오
책 《노키즈존 한국 사회》는 한국 사회의 어린이·청소년 혐오 현상을 두루 짚고 있다. 노키즈존은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를 뜻하며, 어린이와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고객들과 업소들의 편의를 위해 생겼다. 노키즈존처럼 학교 밖에서 학생들이 자본의 관점으로 대상화된다면, 학교 안에서는 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진다.
어린이·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을 바라보는 데는 그들을 평등한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존재로 포장할수록 어린이·청소년은 ‘우리’ 외부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 본문 225쪽
책을 읽으며, 나 역시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들도 시민이다. 그들이 학교에서 행복할 권리를 누리고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나의 사상과 태도를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가 가장 많이 함께 생활하는 곳 중 하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노키즈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의 성숙을 위해서라며 1교시 수업 시작 전 교실에서 독서 시간을 갖는 학급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1교시 시작 전의 시간은 학생들에게는 쉬는 시간이다. 쉬는 시간의 학습은 충분한 이유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협의와 동의가 필요하다. 혹시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싫다거나 학생들이 놀다 다칠까 우려하는 교사의 편의주의와 조바심에서 아침 독서 시키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습이 노키즈존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학년 담임들은 으레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선생님 반 애들이 이제 좀 사람 됐네요.”
“아유, 뭘요.”
“우리 반 애들은 언제 사람 될까요?”
“(웃음)”
학생들은 아직도 ‘짐승’이라는 맥락을 가진 교사들의 이런 대화는 서로 칭찬이나 웃음 코드로 학생에 대한 혐오를 교묘히 가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 지도나 학급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면 “혹시 그 학생 다문화인가요? 아니면 특수?”라고 묻는 교사가 있다. “아니요”라고 답하면 “다문화도 아닌데 왜?”라며 놀란다. 반대로 “예”라고 답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선생님이 고생 많겠네요”라며 연민의 표정을 짓는다.
이주민 자녀 학생과 특수교육대상학생을 향한 낙인이 교사 개인의 문제일까? 학교에서는 매년 교사 인사 이동 점수를 조사하는데, 학급에 이주민 자녀 학생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이주민 자녀 학생은 담임에게 짐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추가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 혐오는 학생의 소수자성을 교원 인사에서 가산점으로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학교 제도에서 나온다.
어느 해, 동학년 동료 교사가 나에게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아니에요? 불법 이주민 애들도 다 받아 주고, 학교도 다니게 하고. 그거 다 우리 세금으로 다니게 하는 거잖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을 “야”, “너희들”로 부르면서 어미만 존칭으로 끝낸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동료 교사는, 학생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그 학생이 교실에 없을 때 학생의 사물함에 있던 책을 쓰레기통에 넣고 그 학생의 책상을 복도로 옮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혐오의 현장에서 나는
학교에서 학생 혐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제 조금 사람이 됐다’며 칭찬과 웃음으로 포장되어 발화되기도 하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대놓고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교사 본인의 인사 이동 점수를 챙기기 위해서 조사 항목에 ‘우리 반에 해당 학생이 있음’을 체크하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나는 그 혐오의 현장에 있어 왔다. 그 현장에서 보고 들었다. 보고 들었지만 그건 혐오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지적이 싸움으로 번질까 봐 겁이 났다. 당신의 말과 태도가 왜 혐오인지 세련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아동학대 신고를 비난하고 ‘교권 보호’를 외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나는 소신 발언을 하지 못했다. 용인하고 동조했다. 용기가 없었다. 집에 가서야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연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럼 나는 떳떳한가? 학생들을 혐오한 적이 없나? 혐오에 가담한 적이 없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나?’였다. 나는 떳떳할 수 없다. 학생들을 혐오한 적이 있으며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겁이 났다. 가해자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체벌로 입은 상처를 꺼내 놓고 이야기하며 이를 미화하지 않고 성찰하는 과정,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체벌이 우리 모두에게 남겼고, 남기고 있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119쪽
책을 읽다가 이 글귀에 오래 마음이 갔다. “체벌”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 자리에 “혐오”나 “폭력”을 넣어도 글의 의미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저 문장들은 내게 말해 줬다. 너부터 사과하라고.
신규 교사로 발령받고 주변에서 “초반부터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학생들을 제압하려 노력했다. 말은 짧고 차갑게. 늘 미간을 찌푸린 채. 본보기로 어느 학생의 멱살을 잡기도 했고, 급식실 가는 길이 시끄럽다며 학생들에게 ‘오리걸음’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난 때리지는 않잖아.’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고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걸리고 있다. 내 의도대로 지도나 소통이 되지 않는 학생을 만나는 해에는 그 학생을 때리거나 교실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혐오와 폭력은 무의식을 잠식할 수 있기에 부단히 경계하고 주시해야 한다. 나의 혐오와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죄를 지은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겠다. 앞으로 동료들에게 그것은 혐오와 폭력이라고 지적하겠다. 학생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하겠다. 교사들에게 반성하고 성찰하자고 제안하겠다. 이제는 용기를 낼 때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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