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의 ○○○ 민주주의
양서영
paneepink@hotmail.com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문1) ‘○○○’에 들어갈 말로 가장 알맞은 것은?
① 가련한 ② 하찮은 ③ 허름한 ④ 창피한 ⑤ 기타 꼭 맞는 단어를 넣어 보세요 :
8~9년 전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교직원 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쳤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의 주제는 ‘체육복 반바지를 몇 단 접어 입게 할 것인가’였다.
덥기도 하거니와 절대 예쁘기 어려운 색상의 체육복이 그나마 예뻐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접어 입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학생들은 화장의 진하기와 비례하게 접어 입는 단의 개수를 늘렸다. 학생들과 큰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던 유한 성정의 교사들도 단의 개수가 3개를 넘어서 허벅지의 절반이 보일 정도가 되어가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단까지는 허용하자는 결론으로 토론이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의 토론이 참 서글펐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토론할 주제가 겨우 이것인가. 그리고 체육복을 입는 당사자 학생들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것, 어른들 중 누구도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와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2025년 오늘의 학교에서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 ‘하복 위에 사복 겉옷 착용을 허용할 것인가.’ 인권이니 자유니 따지기 전에 이미 규정에 허용 여부가 명시되어 있다.
□□중학교 학교생활인권규정 제60조
…
② 교복의 착용 시기는 학생 개인이 계절별 특성과 건강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④ 방한용 덧옷 등의 착용 여부 및 색상·형태 등에 대해서는 학생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복 위에 겉옷을 입는 경우 적발하여 지도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 규정을 제시하며 그럴 수 없음을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방한용 덧옷이지 않으냐, 여름에 입는 옷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였다. ‘자율’이나 ‘선택’이라는 단어보다는 ‘방한’이라는 단어가 먼저 보이는 듯하다.
“맞아요 방한이라는 건 추워서 입는다는 거죠. 하복을 입고 쌀쌀할 때 겉옷을 입죠. 그걸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이에요.”
친절한 설명에도 고개를 갸웃하기에 교육청의 자문을 얻어 다시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게 지도할 경우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교육청에서 얘기하네요. 정정 바랍니다.”
생활지도 방안은 겨우 정정되었다. 그게 작년의 일이다.
그런데 올해 다시 ‘하복 위의 겉옷 규제’가 쟁점이 되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보니, 작년의 ‘정정 사항’은 학년과 학급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학년에서 규제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 새롭게 대두된 문제는 교사들 간의 불통이었다. 생활지도 방안과 작년의 논의 과정에 대해 서로의 견해와 기억이 달랐고, 소통 과정에서 오해까지 생겨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다.
담당 부서나 관리자와 얘기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다음 교직원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교직원회의에는 학부모 상담으로 바쁜 담임 교사들이 대거 불참하였고, 그다음 교직원회의에는 평가를 앞두고 긴급한 전달 사항이 너무 많아 논의를 할 수 없었고, 그다음 교직원회의는 학교 사정으로 연기되었고……. 이렇게 저렇게 하여 어느새 7월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금의 생활지도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불평을 쏟아 놓을 때마다 규정개정위원회 절차를 설명하며 ‘학생회에서 안건으로 올려 보면 어떠냐’고 이야기만 던져 놓고 마치 이 일과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한 걸음 뒤로 빠진 채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그냥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하루 자고 나면 새로워져 있는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도대체 왜 하복 위에 집업(지퍼 가디건)을 입을 수 없어? 후드티는 왜 안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얻지 못하고 울분이 쌓여 가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 ‘자율’, ‘주권’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신이 입을 옷 하나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는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믿어질까? ‘민주’, ‘자율’을 말하는 교사 자신도 스스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매해 2월에는 1학기 평가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평가 계획에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1학년 2학기와 2학년은 전 학기 지필 평가에 논술형 문항을 필수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병가를 끝내고 복직하는 참이어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출처가 어디인가 보니 경기도교육청 〈2025학년도 중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이었다.
경기도 중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취지를 고려하여 1학년 2학기와 2학년의 지필 평가에서는 학교가 정한 일정 비율 이상의 논술형 문항을 반드시 포함한다.
- 〈2025학년도 중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 7쪽
여기서 ‘경기도 중학교 교육과정’이라 함은 교육청이 정한 ‘생각의 힘 어쩌구저쩌구’이다. 아무리 해도 그 이름이 외워지지 않아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마찬가지이다.) “쌤 왜 갑자기 논술형 봐요?”라는 학생의 질문에도, “그거 생각이 어쩌고 그거 뭐였죠?”라는 교사의 질문에도 “왜 그, 생각이 자라는 어쩌고 있잖아요”라고 답하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입시 제도와 결을 달리한 채로 시작된 자유학기제가 그 명운을 다하고 스러져 가는 중에 ‘서술형 확대’ 방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1학년 2학기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기’, 2학년은 ‘생각의 힘을 나누는 학년’, 3학년은 ‘생각의 힘을 펼치는 학년’으로 지정되어 그 결과로 논술형 평가가 강요된 것이다. 말 그대로 의견 한 번 내 볼 겨를이 없이 강요당했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영문도 모른 채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나도 어쩔 수가 없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지난봄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날 부담임으로 동행하려는 나에게 한 학생이 “쌤, 저희 반 차 타고 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몰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학생도 그러려니 했다.
우리는 쉽게 권리들을 뺏기고도 그 자리에 서서 잠시 투덜거리다가 내가 뺏긴 권리가 무엇이었는지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다음 것을 뺏기고, 그다음 것을 뺏겨도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보다 내가 아직 휘두를 수 있는 칼을 매만지고 내게 휘둘려질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다.
오늘의 나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처량하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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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의 ○○○ 민주주의
양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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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1) ‘○○○’에 들어갈 말로 가장 알맞은 것은?
① 가련한 ② 하찮은 ③ 허름한 ④ 창피한 ⑤ 기타 꼭 맞는 단어를 넣어 보세요 :
8~9년 전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교직원 회의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양한 의견들이 부딪쳤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의 주제는 ‘체육복 반바지를 몇 단 접어 입게 할 것인가’였다.
덥기도 하거니와 절대 예쁘기 어려운 색상의 체육복이 그나마 예뻐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접어 입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학생들은 화장의 진하기와 비례하게 접어 입는 단의 개수를 늘렸다. 학생들과 큰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던 유한 성정의 교사들도 단의 개수가 3개를 넘어서 허벅지의 절반이 보일 정도가 되어가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단까지는 허용하자는 결론으로 토론이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의 토론이 참 서글펐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토론할 주제가 겨우 이것인가. 그리고 체육복을 입는 당사자 학생들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것, 어른들 중 누구도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와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2025년 오늘의 학교에서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 ‘하복 위에 사복 겉옷 착용을 허용할 것인가.’ 인권이니 자유니 따지기 전에 이미 규정에 허용 여부가 명시되어 있다.
□□중학교 학교생활인권규정 제60조
…
② 교복의 착용 시기는 학생 개인이 계절별 특성과 건강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④ 방한용 덧옷 등의 착용 여부 및 색상·형태 등에 대해서는 학생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복 위에 겉옷을 입는 경우 적발하여 지도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 규정을 제시하며 그럴 수 없음을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방한용 덧옷이지 않으냐, 여름에 입는 옷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였다. ‘자율’이나 ‘선택’이라는 단어보다는 ‘방한’이라는 단어가 먼저 보이는 듯하다.
“맞아요 방한이라는 건 추워서 입는다는 거죠. 하복을 입고 쌀쌀할 때 겉옷을 입죠. 그걸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이에요.”
친절한 설명에도 고개를 갸웃하기에 교육청의 자문을 얻어 다시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게 지도할 경우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교육청에서 얘기하네요. 정정 바랍니다.”
생활지도 방안은 겨우 정정되었다. 그게 작년의 일이다.
그런데 올해 다시 ‘하복 위의 겉옷 규제’가 쟁점이 되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보니, 작년의 ‘정정 사항’은 학년과 학급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학년에서 규제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 새롭게 대두된 문제는 교사들 간의 불통이었다. 생활지도 방안과 작년의 논의 과정에 대해 서로의 견해와 기억이 달랐고, 소통 과정에서 오해까지 생겨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다.
담당 부서나 관리자와 얘기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다음 교직원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교직원회의에는 학부모 상담으로 바쁜 담임 교사들이 대거 불참하였고, 그다음 교직원회의에는 평가를 앞두고 긴급한 전달 사항이 너무 많아 논의를 할 수 없었고, 그다음 교직원회의는 학교 사정으로 연기되었고……. 이렇게 저렇게 하여 어느새 7월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금의 생활지도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불평을 쏟아 놓을 때마다 규정개정위원회 절차를 설명하며 ‘학생회에서 안건으로 올려 보면 어떠냐’고 이야기만 던져 놓고 마치 이 일과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한 걸음 뒤로 빠진 채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그냥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하루 자고 나면 새로워져 있는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도대체 왜 하복 위에 집업(지퍼 가디건)을 입을 수 없어? 후드티는 왜 안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얻지 못하고 울분이 쌓여 가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 ‘자율’, ‘주권’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신이 입을 옷 하나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는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믿어질까? ‘민주’, ‘자율’을 말하는 교사 자신도 스스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매해 2월에는 1학기 평가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평가 계획에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1학년 2학기와 2학년은 전 학기 지필 평가에 논술형 문항을 필수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병가를 끝내고 복직하는 참이어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출처가 어디인가 보니 경기도교육청 〈2025학년도 중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이었다.
경기도 중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취지를 고려하여 1학년 2학기와 2학년의 지필 평가에서는 학교가 정한 일정 비율 이상의 논술형 문항을 반드시 포함한다.
- 〈2025학년도 중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 7쪽
여기서 ‘경기도 중학교 교육과정’이라 함은 교육청이 정한 ‘생각의 힘 어쩌구저쩌구’이다. 아무리 해도 그 이름이 외워지지 않아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마찬가지이다.) “쌤 왜 갑자기 논술형 봐요?”라는 학생의 질문에도, “그거 생각이 어쩌고 그거 뭐였죠?”라는 교사의 질문에도 “왜 그, 생각이 자라는 어쩌고 있잖아요”라고 답하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입시 제도와 결을 달리한 채로 시작된 자유학기제가 그 명운을 다하고 스러져 가는 중에 ‘서술형 확대’ 방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1학년 2학기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기’, 2학년은 ‘생각의 힘을 나누는 학년’, 3학년은 ‘생각의 힘을 펼치는 학년’으로 지정되어 그 결과로 논술형 평가가 강요된 것이다. 말 그대로 의견 한 번 내 볼 겨를이 없이 강요당했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영문도 모른 채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나도 어쩔 수가 없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지난봄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날 부담임으로 동행하려는 나에게 한 학생이 “쌤, 저희 반 차 타고 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몰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학생도 그러려니 했다.
우리는 쉽게 권리들을 뺏기고도 그 자리에 서서 잠시 투덜거리다가 내가 뺏긴 권리가 무엇이었는지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다음 것을 뺏기고, 그다음 것을 뺏겨도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보다 내가 아직 휘두를 수 있는 칼을 매만지고 내게 휘둘려질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다.
오늘의 나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처량하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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