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시] 백호의 말 외 | 나종입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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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의 말

영모정勿哭碑 앞에서



“내가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마라”

내가 죽어 통곡을 말라

스스로 황제라 칭하지도 못하고

점령군에게 처녀를 바치고 양반이라 

헛기침하며 팔자걸음하던

손바닥만한 땅덩이에서 큰소리치기 위해

스스로 개 돼지가 되었던

두 손에 쥐어지는 떡고물을 위해 

서로의 가슴에 총질을 해 대고

오누이의 가슴에 단검을 꽂았던 짓밟힌 역사

오욕과 질곡으로 점철된 역사

무에그리 자랑스럽게 살았다고

무슨 설움이 남았다고

그리 서럽게 눈물을 흘린단 말이냐

개 꼴랑지 말아 내리고

눈치를 할끔할끔 보면서

우리 아들을 전장에 내몰던

이 역사 아래서는 

제 어미 등을 파먹던 자들이 성조기 들고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는 이 시대에는

눈물을 흘리지 마라

저 아래 쪽바리 섬에서

한라 백두를 지나 만주벌판에서

아니 저 대륙을 건너 아메리카 똥바다에

백마 타고 마음껏 유린할 때

구천에서라도 통쾌하게 웃으리라.




이 시대의 댓빵을 기다리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잡아서 구워먹겠다

거북이 머리는 우리의 댓빵이지요

제발 시원하게 머리를 내어놓으세요

두 명 대학 졸업하고

한 명은 백수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학교에서 공부를 한들 무엇하랴

외우기 잘해서 판검사 되고 의사 되고

싫증 나면 의원님 돼서 헛기침하는 세상

이 시대의 댓빵은 어디에 있을까 진정한 댓빵.




시작 노트

내가 명색 백호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백호 임재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조 최고의 문인 중 한 분이다. 나는 시를 쓰기 시작하며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 위치한 영모정을 돌아보는 중에 한켠에 자리 잡은 물곡비(勿哭碑) 비문을 읽는 순간 번개에 맞은 듯 전율을 느꼈다. 고등학교 고문 시간에 배웠던 “청초 우거진 골에……”만 알고 있었지 선생의 다른 작품을 알고 있지 못하던 나는 그 호방한 사상에 매료되어 백호문학회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라던, 스스로 황제라 칭하지도 못한 우리 조선조 세도가를 비웃던 그 기개를 말이다.



나종입(gksdnfl99@hanmail.net)      전남 나주에서 출생. 월간 《한국시》에 시, 《세계의 문학》에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하여 지금까지 시를 주로 쓰고 있음. 시집으로 《어머니의 언어》 외 3권 출간, 《한국 전후소설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 35년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마치고 현재 우즈베키스탄 국립 외국어 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로 지내고 있음.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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