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학교 민주주의는 학부모에게도 작동하는가
이윤경 justyk@daum.net
본지 편집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문
필요할 때만 존재하는
반투명 인간, 학부모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인 교사가 학생 출결 체크를 종이가 아닌 앱으로 하자고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보안이 생명인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시대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 및 보고서, 질병 결석 증빙용 서류 등을 여전히 종이로 제출하는 학교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여기까지는 백 퍼센트 동의하는 내용이라 공감을 표시했는데 댓글에서 “학부모들이 이건 왜 민원을 제기하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인 것을 보고 억울한 마음에 한마디 보탰다. “토론회 등 여러 채널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학부모 의견은 늘 비전문가의 주장으로 취급되었어요. 학교에도 얘기했지만 교육부 소관이라고 하더라고요.” 내 글에는 아무 반응도, 어떤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몇 년 전,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한 교원단체의 교사와 이 정책에 대해 심도 있게 의논한 적이 있었다.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듯한 교육청 관계자를 연결해 주어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스템 구축은 안 됐지만 그나마 교육청에 전달이라도 된 건 학부모가 아닌 교사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리라. 그전에도 학부모 제출 서류 전산화는 두 아들이 다녔던 학교마다 교사와 관리자에게 여러 번 건의했지만 헛수고였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종이 서류를 없애는 데 성공한 건 2021년에 학교운영위원회(학운휘) 회의 자료를 태블릿으로 바꾼 사례다. 당시 나의 위치가 학운위원장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학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참여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미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각종 위원회 등의 협의체가 법제화되어 운영되고 있고, 겉으로 보이는 학교는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충분히 갖춘 민주적인 곳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학부모로서 여러 위원회에 참여해 본 경험으로 단언컨대, 학부모에게 적용되는 민주주의는 형식적이고 선택적이다. 학부모를 민주주의 협의의 장에 ‘진짜로’ 참여할지 말지는 학부모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나 진행자에게 결정권이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참여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고, 그 목소리가 실제 결정에 반영될 때 참여자가 효능감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진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민주주의는 ‘참여의 자리’만 있을 뿐 ‘참여의 힘’은 부재하다. 이는 단순히 학부모 개인의 불만에 그치지 않고 교육공동체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 여파는 학생들에게도 스며들어 ‘겉치레뿐인 민주주의’, ‘왜곡된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학습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학교 민주주의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지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야 한다.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조례 등의 제도가 있음에도 왜 학부모는 학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주변인으로 겉돌고 있는가? 어떤 시스템과 문화가 학부모 참여를 형식으로만 소비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문화적 변화가 필요한가? 단위 학교와 전국 학부모단체의 대표로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형식뿐인 학교 민주주의의 한계를 짚어 보고 대안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의 위치
학교운영위원회는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시·도의 조례에 의해 구성원과 기능, 운영에 관한 사항까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그 안에서는 위계와 관행이 가짜 민주주의로 작동하며, ‘형식적 동의’가 마치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것처럼 기록된다.
회의 안건부터 짚어 보면, 학운위 안건들은 학부모에게 사전에 의견을 묻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행정실과 교사, 관리자가 결정한 안건들은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수정 제안을 하거나 거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상황적으로도 제약이 많다. 이미 진행된 사안이 사후 심의로 올라오거나, 다음 회의로 미루면 학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사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운위는 학부모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하고 심지어 진행까지 한 일들을 보고하는 형식적인 자리일 뿐이다. 서울의 경우, 학운위를 의무적으로 연 8회 이상 개최해야 했던 조항이 분기별 1회 이상 개최 권고로 바뀐 이후 학운위의 위상은 더욱 추락했다.❶
또한, 학부모의 발언은 결정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발언한 내용마저도 회의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위원이 질문을 해도 “그건 위원님이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거나 “이미 담당 교사들이 논의한 것” 또는 “작년에도 이렇게 진행했던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데 수억 원 규모의 예산안을 휘리릭 설명한 뒤에 “이의가 없으시면 가결”이라며 통과시키기 일쑤다.
학부모 위원이 학운위원장이 된다고 해서 권한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위원장은 회의 진행 시 행정실에서 작성해 준 시나리오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의견이 엇갈려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해도 교장이나 교원 위원들이 진행하고 위원장은 결정된 사항만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지역 위원이 위원장일 때보다 학부모 위원이 위원장일 때 위상을 낮게 보는 경향도 있다. 동등한 위원이 아닌 OO 어머니, OO 아버지로 보는 시각이 원인인 듯하다.
학부모회의 대상화, 주변화
학부모회는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대구를 제외한 16개 시·도교육청에서 조례로 규정하고 있는 학교 공식 기구이다. “학부모들이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교육 활동에 참여하여 학교교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중요한 조직임에도 실제 위상은 학교에서 허락하는 범위를 넘을 수 없고 역할도 행사 지원이나 자원봉사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7~8년 전, 고등학교의 학부모회장일 당시 교육감이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 학부모회에서 몇 명을 참석시켜 달라는 통보를 받고 학년별로 참석자를 엄선했는데 회의실에 도착하자 학교 측에서 미리 선정한 질문들을 할당해 주었다. 학교에 필요한 사안들이니 기왕이면 학부모가 요청하면 좋겠다면서. 그런데 이런 경험은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청이 주관하는 행사에서도 여러 번 겪었다. 교육감이나 교육장 간담회에서 미리 질문자를 정해 놓거나 질문 내용을 출력해 제공하는 것은 학부모의 민원성 돌발 질문을 방지하기 위한 관행이기도 했다. 이는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는데 짜인 각본대로 진행되는 가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현장을 보며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부모회가 ‘자원봉사자’로 전락한 사례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30여 년의 학부모운동이 일궈 낸 학부모회 법제화를 통해 경기도교육청에서 첫 번째로 학부모회 조례를 제정했던 2013년부터 학부모회는 학교와 동등하게 협력하는 자치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백기 3년은 학부모회를 예전의 자리로 후퇴시켰다. 교육과정이나 급식 개선 방안, 학사 운영 등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동원하는 지원 인력으로 전락한 것이다.
요즘 학부모회에서 체육대회 때 떡볶이, 어묵, 닭꼬치 등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는 얘기가 다시 들려온다. 서울시교육청 학부모회 컨설팅단으로 수많은 학교를 다니며 가장 ‘지양해야 할 활동’으로 교육해 온 것이 바로 먹거리 행사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배가 불러 급식을 안 먹게 된다, 배탈이라도 나면 역학조사가 어렵고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되어 비교육적이다” 등이었다. 대신 “중고 물품 되살림 장터, 만들기 체험 등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조례에 명시된 학부모회 기능에 적합하다”라고 설명하곤 했다. 학부모회장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 정책이 학부모회 활성화가 아닌 민원인 배제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한몫했다. 그 여파가 다시 부메랑이 되어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을 더욱 퇴행시켰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에서 ‘학부모’를 삭제하고 위상을 낮추려는 학부모 배제 정책의 결과다. 민원인, 외부인과 학교 민주주의, 민주적 학교 문화를 의논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정책은 학부모를 위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 문화 역시 퇴보시킨다. 도대체 언제 적 떡볶이인가.
교육청·교육부 위원회의 ‘명단용 학부모’
교육청이나 교육부 소관 위원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각종 자문회의에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책은 이미 행정과 전문가 중심으로 설계된 뒤였고, 학부모의 목소리는 장식품처럼 들러리로만 존재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
2020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이관된 해부터 4년 동안 2곳의 교육지원청에서 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위원장이 임기 중간에 그만두어 교체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그 자리는 교육장이나 교장 출신으로 채워졌다. 학폭 규정은커녕 용어도 생소한 신임 위원장들은 중요한 부분만 읽으면 되는 문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고, 심의 시간을 늘리는 데에 한몫했다. 학부모 위원은 아무리 오랜 학폭 심의 경력이 있어도, 청소년 상담 관련 직종에 몸담고 있어도 평생 ‘비전문가’일 뿐이다.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정, 교원 양성 체제 혁신, 돌봄, 교육 재정, 대학 입학 전형 등 여러 주제의 위원회에 참여했지만 2시간이 넘는 회의에서 발언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고작 1~2회 정도였다. 전문 용어라서 이해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어차피 반영을 안 할 거라서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는 건지, 어쩌면 두 가지 다 해당된 것인지 모르겠다. 멘트도 늘 비슷하다. “학부모님도 한말씀 하시죠.” 엄연히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것을 알면서도 교원단체의 대표와는 급이 달랐다.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 국민권익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였는데 내게 발언 기회가 왔을 때 청탁금지법에 관한 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더니 쉬는 시간에 어느 교수가 내게 “무엇을 하는 분이냐?”라고 물었다. 학부모단체 대표라고 했더니 “원래 무엇을 했었냐?”라며 되물었다. ‘그냥 학부모일 리가 없다’는 학부모에 대한 비하와 편견이 깔려 있는 불쾌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역시 학부모다.)
이처럼 학부모는 정책의 공동 설계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보여 주기 위한 ‘명단용’ 존재로 소환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위원회에서 했던 학부모의 발언들은 회의록에는 기록되지만 정책 문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학부모의 참여는 ‘민주적 절차의 장식’에 불과하다.
학부모 토론자는 우리 편으로 구색 맞추기
국회나 교육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토론회도 학부모에겐 평등하지 않다. 발제나 중요한 역할에 학부모 이름이 올라간 적은 거의 없다. 심지어 학부모 정책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교수나 교사가 발제하고 학부모는 토론자로 고작 5~10분 발언하는 정도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토론회의 양상이 달라졌다. 토론 주제에 따라 여러 의견을 듣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아닌, 특정 집단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토론자들로만 구성된 지지 선언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런 자리에 맞게 거수기 역할을 해 줄 학부모를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 넣은 토론회 홍보물을 보면 토론회보다 ‘부흥회’가 맞지 않나 싶다.
이러한 편 가르기 현상은 교사단체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이초 사건 이전에만 해도 교권, 고교학점제, 유보통합, 초등 돌봄 등 주요 정책들에 대해 입장이 다른 학부모단체 소속 토론자를 섭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모 토론자가 입맛대로 움직여 주지 않자, 한 교사 단체는 2023년에 아예 자회사처럼 학부모단체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교사 단체에 의해 만들어진 그 학부모단체는 각종 토론회, 기자회견, 성명서 등을 통해 모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다. 학부모단체 간판을 걸고 학부모, 학생의 권익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학부모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지금 시대에 이런 꼼수를 대놓고 벌이는 것인지, 통탄할 노릇이다. 민주주의와 건강한 시민운동을 짓밟는 이러한 행태로 인해 학부모는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자리를 빼앗기고 목소리를 잃고 있다.
학부모 배제가 당연해진 시스템과 학교 문화
정리하자면, 학교 현장에서의 학부모 참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한이 없는 절차적 참여에 불과하다. 학운위는 학교장의 안건 통과 기구, 학부모회는 행사 지원 조직이며, 교육청 위원회에서 학부모는 명단 채우기의 수단일 뿐이다. 한국의 학교 민주주의는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절차적 외피’에 머물고 있으며, 학부모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처럼 학부모 참여가 형식에 그치는 이유는 교육계에 만연한 폐쇄적·수직적 학교 문화, 위계와 차별, 학부모에 대한 불신, 행정 편의주의, 여전히 학부모 활동을 자기 자녀만을 위한 ‘치맛바람’으로 보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학부모를 불편해하고 피하고 싶어 하던 교사들에게 서이초 사건은 도화선이 되었다.❷ 그 후 2년 동안 학교에는 학부모를 전담하는 민원 대응팀이 생겼고, 예약 없이는 학교를 방문할 수 없게 되었으며, 수업 공개와 교원평가, 체험학습도 교사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학부모가 뽑은 교육감이 학부모를 고발하는 제도가 생겼고, 급기야 전북 전주의 한 학부모를 대응하는 일이 교육계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 모든 교원단체가 총집결해 단결 투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1000만명의 학부모를 배제한 채 50만 명의 교원만으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떻게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학부모가 함께해야 학교 민주주의다
학부모에게 학교 민주주의는 사실상 허락되지 않은 성역이다. 학교 민주주의는 단순한 형식이나 절차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직접 체험하며 터득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는 한계와 실패는, 단지 학부모와 교사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교육의 가치와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구조적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학교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절차는 있으나 실질은 없는’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만약 지금처럼 ‘민주적 절차’를 표방한 시스템이 단지 요식 행위일 뿐이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며, 권한은 없고 장식뿐인 상황이 지속된다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보여 주기’라는 잘못된 예시가 될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에서 학부모가 배제된다면 학부모만 잃는 것이 아니라 학교 민주주의 자체를 실패하게 될 것이다. 학부모가 더 이상 ‘봉사자’가 아닌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에 권한과 책임을 가진 동등한 주체로 설 때,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 효능감을 느낄 때, 학교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부모 참여의 제도적 권한 강화, 존중, 열린 소통, 학교 문화의 변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를 절차와 과정이 아닌, 참여와 권한, 책임과 협력에 중심을 둔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할 때다.
❶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립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 제16조 ③항이 “다만, 회의는 연 8회 이상 개최하며, 회의 일수는 연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에서 “다만, 회의는 각 학교 실정에 맞게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개정(2023년 7월 26일)되었다. ‘분기별 1회 이상’ 개최를 권고하는 규정은 서울과 제주뿐이고 그 외 15개 시·도교육청은 학교 규정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❷ 이윤경(2023),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76호(2023년 9·10월).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
후속 |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학교 민주주의는 학부모에게도 작동하는가
이윤경 justyk@daum.net
본지 편집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문
필요할 때만 존재하는
반투명 인간, 학부모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인 교사가 학생 출결 체크를 종이가 아닌 앱으로 하자고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보안이 생명인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시대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 및 보고서, 질병 결석 증빙용 서류 등을 여전히 종이로 제출하는 학교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여기까지는 백 퍼센트 동의하는 내용이라 공감을 표시했는데 댓글에서 “학부모들이 이건 왜 민원을 제기하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인 것을 보고 억울한 마음에 한마디 보탰다. “토론회 등 여러 채널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학부모 의견은 늘 비전문가의 주장으로 취급되었어요. 학교에도 얘기했지만 교육부 소관이라고 하더라고요.” 내 글에는 아무 반응도, 어떤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몇 년 전,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한 교원단체의 교사와 이 정책에 대해 심도 있게 의논한 적이 있었다.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듯한 교육청 관계자를 연결해 주어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스템 구축은 안 됐지만 그나마 교육청에 전달이라도 된 건 학부모가 아닌 교사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리라. 그전에도 학부모 제출 서류 전산화는 두 아들이 다녔던 학교마다 교사와 관리자에게 여러 번 건의했지만 헛수고였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종이 서류를 없애는 데 성공한 건 2021년에 학교운영위원회(학운휘) 회의 자료를 태블릿으로 바꾼 사례다. 당시 나의 위치가 학운위원장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학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참여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미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각종 위원회 등의 협의체가 법제화되어 운영되고 있고, 겉으로 보이는 학교는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충분히 갖춘 민주적인 곳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학부모로서 여러 위원회에 참여해 본 경험으로 단언컨대, 학부모에게 적용되는 민주주의는 형식적이고 선택적이다. 학부모를 민주주의 협의의 장에 ‘진짜로’ 참여할지 말지는 학부모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나 진행자에게 결정권이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참여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주어지고, 그 목소리가 실제 결정에 반영될 때 참여자가 효능감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진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민주주의는 ‘참여의 자리’만 있을 뿐 ‘참여의 힘’은 부재하다. 이는 단순히 학부모 개인의 불만에 그치지 않고 교육공동체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 여파는 학생들에게도 스며들어 ‘겉치레뿐인 민주주의’, ‘왜곡된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학습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학교 민주주의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지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야 한다.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조례 등의 제도가 있음에도 왜 학부모는 학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주변인으로 겉돌고 있는가? 어떤 시스템과 문화가 학부모 참여를 형식으로만 소비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문화적 변화가 필요한가? 단위 학교와 전국 학부모단체의 대표로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형식뿐인 학교 민주주의의 한계를 짚어 보고 대안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의 위치
학교운영위원회는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 시·도의 조례에 의해 구성원과 기능, 운영에 관한 사항까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그 안에서는 위계와 관행이 가짜 민주주의로 작동하며, ‘형식적 동의’가 마치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것처럼 기록된다.
회의 안건부터 짚어 보면, 학운위 안건들은 학부모에게 사전에 의견을 묻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행정실과 교사, 관리자가 결정한 안건들은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수정 제안을 하거나 거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상황적으로도 제약이 많다. 이미 진행된 사안이 사후 심의로 올라오거나, 다음 회의로 미루면 학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사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운위는 학부모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하고 심지어 진행까지 한 일들을 보고하는 형식적인 자리일 뿐이다. 서울의 경우, 학운위를 의무적으로 연 8회 이상 개최해야 했던 조항이 분기별 1회 이상 개최 권고로 바뀐 이후 학운위의 위상은 더욱 추락했다.❶
또한, 학부모의 발언은 결정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발언한 내용마저도 회의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위원이 질문을 해도 “그건 위원님이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거나 “이미 담당 교사들이 논의한 것” 또는 “작년에도 이렇게 진행했던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데 수억 원 규모의 예산안을 휘리릭 설명한 뒤에 “이의가 없으시면 가결”이라며 통과시키기 일쑤다.
학부모 위원이 학운위원장이 된다고 해서 권한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위원장은 회의 진행 시 행정실에서 작성해 준 시나리오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의견이 엇갈려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해도 교장이나 교원 위원들이 진행하고 위원장은 결정된 사항만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지역 위원이 위원장일 때보다 학부모 위원이 위원장일 때 위상을 낮게 보는 경향도 있다. 동등한 위원이 아닌 OO 어머니, OO 아버지로 보는 시각이 원인인 듯하다.
학부모회의 대상화, 주변화
학부모회는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대구를 제외한 16개 시·도교육청에서 조례로 규정하고 있는 학교 공식 기구이다. “학부모들이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교육 활동에 참여하여 학교교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중요한 조직임에도 실제 위상은 학교에서 허락하는 범위를 넘을 수 없고 역할도 행사 지원이나 자원봉사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7~8년 전, 고등학교의 학부모회장일 당시 교육감이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 학부모회에서 몇 명을 참석시켜 달라는 통보를 받고 학년별로 참석자를 엄선했는데 회의실에 도착하자 학교 측에서 미리 선정한 질문들을 할당해 주었다. 학교에 필요한 사안들이니 기왕이면 학부모가 요청하면 좋겠다면서. 그런데 이런 경험은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청이 주관하는 행사에서도 여러 번 겪었다. 교육감이나 교육장 간담회에서 미리 질문자를 정해 놓거나 질문 내용을 출력해 제공하는 것은 학부모의 민원성 돌발 질문을 방지하기 위한 관행이기도 했다. 이는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는데 짜인 각본대로 진행되는 가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현장을 보며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부모회가 ‘자원봉사자’로 전락한 사례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30여 년의 학부모운동이 일궈 낸 학부모회 법제화를 통해 경기도교육청에서 첫 번째로 학부모회 조례를 제정했던 2013년부터 학부모회는 학교와 동등하게 협력하는 자치 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백기 3년은 학부모회를 예전의 자리로 후퇴시켰다. 교육과정이나 급식 개선 방안, 학사 운영 등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동원하는 지원 인력으로 전락한 것이다.
요즘 학부모회에서 체육대회 때 떡볶이, 어묵, 닭꼬치 등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는 얘기가 다시 들려온다. 서울시교육청 학부모회 컨설팅단으로 수많은 학교를 다니며 가장 ‘지양해야 할 활동’으로 교육해 온 것이 바로 먹거리 행사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배가 불러 급식을 안 먹게 된다, 배탈이라도 나면 역학조사가 어렵고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되어 비교육적이다” 등이었다. 대신 “중고 물품 되살림 장터, 만들기 체험 등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조례에 명시된 학부모회 기능에 적합하다”라고 설명하곤 했다. 학부모회장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 정책이 학부모회 활성화가 아닌 민원인 배제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한몫했다. 그 여파가 다시 부메랑이 되어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을 더욱 퇴행시켰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에서 ‘학부모’를 삭제하고 위상을 낮추려는 학부모 배제 정책의 결과다. 민원인, 외부인과 학교 민주주의, 민주적 학교 문화를 의논할 리 만무하다. 이러한 정책은 학부모를 위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 문화 역시 퇴보시킨다. 도대체 언제 적 떡볶이인가.
교육청·교육부 위원회의 ‘명단용 학부모’
교육청이나 교육부 소관 위원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각종 자문회의에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책은 이미 행정과 전문가 중심으로 설계된 뒤였고, 학부모의 목소리는 장식품처럼 들러리로만 존재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
2020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이관된 해부터 4년 동안 2곳의 교육지원청에서 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위원장이 임기 중간에 그만두어 교체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그 자리는 교육장이나 교장 출신으로 채워졌다. 학폭 규정은커녕 용어도 생소한 신임 위원장들은 중요한 부분만 읽으면 되는 문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고, 심의 시간을 늘리는 데에 한몫했다. 학부모 위원은 아무리 오랜 학폭 심의 경력이 있어도, 청소년 상담 관련 직종에 몸담고 있어도 평생 ‘비전문가’일 뿐이다.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정, 교원 양성 체제 혁신, 돌봄, 교육 재정, 대학 입학 전형 등 여러 주제의 위원회에 참여했지만 2시간이 넘는 회의에서 발언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고작 1~2회 정도였다. 전문 용어라서 이해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어차피 반영을 안 할 거라서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는 건지, 어쩌면 두 가지 다 해당된 것인지 모르겠다. 멘트도 늘 비슷하다. “학부모님도 한말씀 하시죠.” 엄연히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것을 알면서도 교원단체의 대표와는 급이 달랐다.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 국민권익위원회 자문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였는데 내게 발언 기회가 왔을 때 청탁금지법에 관한 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더니 쉬는 시간에 어느 교수가 내게 “무엇을 하는 분이냐?”라고 물었다. 학부모단체 대표라고 했더니 “원래 무엇을 했었냐?”라며 되물었다. ‘그냥 학부모일 리가 없다’는 학부모에 대한 비하와 편견이 깔려 있는 불쾌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역시 학부모다.)
이처럼 학부모는 정책의 공동 설계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보여 주기 위한 ‘명단용’ 존재로 소환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위원회에서 했던 학부모의 발언들은 회의록에는 기록되지만 정책 문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학부모의 참여는 ‘민주적 절차의 장식’에 불과하다.
학부모 토론자는 우리 편으로 구색 맞추기
국회나 교육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토론회도 학부모에겐 평등하지 않다. 발제나 중요한 역할에 학부모 이름이 올라간 적은 거의 없다. 심지어 학부모 정책을 주제로 한 토론회도 교수나 교사가 발제하고 학부모는 토론자로 고작 5~10분 발언하는 정도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토론회의 양상이 달라졌다. 토론 주제에 따라 여러 의견을 듣고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아닌, 특정 집단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토론자들로만 구성된 지지 선언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런 자리에 맞게 거수기 역할을 해 줄 학부모를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 넣은 토론회 홍보물을 보면 토론회보다 ‘부흥회’가 맞지 않나 싶다.
이러한 편 가르기 현상은 교사단체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이초 사건 이전에만 해도 교권, 고교학점제, 유보통합, 초등 돌봄 등 주요 정책들에 대해 입장이 다른 학부모단체 소속 토론자를 섭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모 토론자가 입맛대로 움직여 주지 않자, 한 교사 단체는 2023년에 아예 자회사처럼 학부모단체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교사 단체에 의해 만들어진 그 학부모단체는 각종 토론회, 기자회견, 성명서 등을 통해 모단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다. 학부모단체 간판을 걸고 학부모, 학생의 권익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학부모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지금 시대에 이런 꼼수를 대놓고 벌이는 것인지, 통탄할 노릇이다. 민주주의와 건강한 시민운동을 짓밟는 이러한 행태로 인해 학부모는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자리를 빼앗기고 목소리를 잃고 있다.
학부모 배제가 당연해진 시스템과 학교 문화
정리하자면, 학교 현장에서의 학부모 참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한이 없는 절차적 참여에 불과하다. 학운위는 학교장의 안건 통과 기구, 학부모회는 행사 지원 조직이며, 교육청 위원회에서 학부모는 명단 채우기의 수단일 뿐이다. 한국의 학교 민주주의는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절차적 외피’에 머물고 있으며, 학부모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처럼 학부모 참여가 형식에 그치는 이유는 교육계에 만연한 폐쇄적·수직적 학교 문화, 위계와 차별, 학부모에 대한 불신, 행정 편의주의, 여전히 학부모 활동을 자기 자녀만을 위한 ‘치맛바람’으로 보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학부모를 불편해하고 피하고 싶어 하던 교사들에게 서이초 사건은 도화선이 되었다.❷ 그 후 2년 동안 학교에는 학부모를 전담하는 민원 대응팀이 생겼고, 예약 없이는 학교를 방문할 수 없게 되었으며, 수업 공개와 교원평가, 체험학습도 교사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학부모가 뽑은 교육감이 학부모를 고발하는 제도가 생겼고, 급기야 전북 전주의 한 학부모를 대응하는 일이 교육계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 모든 교원단체가 총집결해 단결 투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1000만명의 학부모를 배제한 채 50만 명의 교원만으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떻게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학부모가 함께해야 학교 민주주의다
학부모에게 학교 민주주의는 사실상 허락되지 않은 성역이다. 학교 민주주의는 단순한 형식이나 절차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직접 체험하며 터득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학교 현장에서 경험하는 한계와 실패는, 단지 학부모와 교사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교육의 가치와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구조적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학교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절차는 있으나 실질은 없는’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만약 지금처럼 ‘민주적 절차’를 표방한 시스템이 단지 요식 행위일 뿐이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며, 권한은 없고 장식뿐인 상황이 지속된다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보여 주기’라는 잘못된 예시가 될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에서 학부모가 배제된다면 학부모만 잃는 것이 아니라 학교 민주주의 자체를 실패하게 될 것이다. 학부모가 더 이상 ‘봉사자’가 아닌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에 권한과 책임을 가진 동등한 주체로 설 때,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 효능감을 느낄 때, 학교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부모 참여의 제도적 권한 강화, 존중, 열린 소통, 학교 문화의 변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를 절차와 과정이 아닌, 참여와 권한, 책임과 협력에 중심을 둔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할 때다.
❶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립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 제16조 ③항이 “다만, 회의는 연 8회 이상 개최하며, 회의 일수는 연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에서 “다만, 회의는 각 학교 실정에 맞게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개정(2023년 7월 26일)되었다. ‘분기별 1회 이상’ 개최를 권고하는 규정은 서울과 제주뿐이고 그 외 15개 시·도교육청은 학교 규정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❷ 이윤경(2023),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76호(2023년 9·10월).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