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특집]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 발랑(신선웅)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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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교육-사회복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반영하여



발랑(신선웅)  woong_51@hanmail.net

관악교육복지센터장





뜨거웠던 계절이 지났다. 8월, 여느 때처럼 학교들은 여름 방학을 했고, 우리 센터는 지역에서 여러 기관과 함께 어린이·청소년의 전용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어린이·청소년이 지역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과 그곳에 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함께 힘을 모았다. 그렇게 8월 한 달은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다소 잠잠했던 센터 전화가 다시 분주하게 울렸다.


“선생님, 오늘이 개학인데 가을바람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단풍나무중학교의 교사의 전화 1통이 2학기의 시작을 알렸다. 학교 현장에서 이맘때는 학년 유예 위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기간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하여 한 학년 동안의 등교 일수 중 1/3 이상 결석 일수가 발생할 경우, 즉 결석 일수가 64일 내외가 되면 학년 유예 논의 대상이 된다. 1학기 동안 출결 상황이 좋지 않았던 이들은 2학기에 아주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해야만 다음 학년으로 갈 수 있다. 청소년 가을바람은 1학기부터 미인정 결석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고, 2학기 개학일에도 학교에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난 날부터 학교는 비상이었다. 학교는 우선 보호자에게 학교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보냈다고 했다. 다음 대응 방안으로 가정 방문 시 우리 센터가 동행하여 협조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이에 대해 보호자와 소통을 해 보니, 보호자는 굉장한 불쾌감을 호소했다. 개학을 하자마자 하루를 결석했다는 이유로 보호자에게 내교통지(來校通知)를 하고, 계속해서 등교가 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에 가정 방문을 오겠다고 하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까지 전개를 보면 학교가 과잉 대응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청소년의 상황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이 상황은 단순한 출결 관리가 아니라, 청소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결석과 생존의 상관관계


자칫 결석을 반항이나 게으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 어린이·청소년의 결석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생활이 무너졌고, 사회적 관계망을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요즘 등교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대다수는 극심한 불안과 우울, 가족 갈등, 또래 관계의 단절, 학업 실패, 학교폭력의 경험 등 복합적 요인을 갖고 있다. 이 상황들이 어린이·청소년을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결석은 곧 그 모든 고통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균열과 같다.


더구나 요즘 ‘장기간 결석’이 ‘비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시대적 흐름과 관련이 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장기 결석자 수와 학업 중단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지원하는 현장에서도 체감될 뿐 아니라, 통계적으로도 확인된다. 교육복지 현장에서 장기 결석은 긴급하게 개입해야 하는 사안 중 하나에 해당한다. 잦은 지각과 조퇴를 포함하여 잦은 결석, 불규칙한 등교 상황이 지속되는 사례 역시 위기로 본다. 그중 장기간 이어지는 결석은 고위기 상태, 긴급하고 다각적으로 접근되어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이는 바로 어린이·청소년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석”이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의 안전과 생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요한 신호이다.


가을바람은 올해 6월부터 지속적으로 등교가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큰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교사들은 가을바람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어 하는 활동 등으로 유인해 봤지만 조금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가 결국 무반응이었다. 7월로 넘어오면서 등교일보다 결석일이 많아졌다. 교장·감을 포함하여 담임 교사와 같은 반의 친구들까지 우려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을바람은 장기간 결석에 들어갔다. 담임 교사, 상담 교사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전화, 문자, 그 어떤 소통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보호자를 통해 집에 있다는 소식만 들을 뿐이었다. 가을바람은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고, 그이의 목소리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쯤에서 학교는 교육복지센터에 협력을 요청했는데, 이 일을 단순 출결 문제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청소년의 생존부터 확인해야 했다. 민원성 짙은 연락으로 교사들을 난처하게 하는 보호자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웠다. 또한 보호자의 보고에만 의존하여 ‘잘 있겠거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학교는 청소년이 생존해 있음을, 그리고 안전하게 있음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결국 학교와 교육복지센터가 협력한 끝에 가을바람이 가정 안에 잘 있음을 확인했다. 수없이 시도했고, 양육자를 설득했고, 청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가을바람이 방 안에서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모두 안도했다.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마웠다. 비록 청소년은 그 후로 계속 은둔 생활을 이어 갔고, 학년 유예는 확정되었다. 비슷한 양상의 수많은 청소년을 지원해 본 결과, 감히 예상이라는 걸 해 본다. 가을바람에 대한 길고 긴 기다림과 다양한 시도는 이제 시작이다.



9월 한 달의 기록


생존, ‘살아 있는지’ 여부는 긴급하고 중대한 일이다. 무엇보다 어린이·청소년이 살아야 한다. 요즘 이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린이·청소년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들이다. 장기간 결석을 했던 청소년 가을바람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지만, 학교 현장에서 생존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하는 어린이·청소년의 현상은 다양하다.


아직 9월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9월 한 달 사이에 우리 센터로 의뢰되거나 회의가 요청된 사례들은 그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  가출과 성매매 피해 및 집단 폭행의 사례 : 특수교육대상자인 청소년이 가출 후 또래 집단에 의해 성매매 피해를 입었고,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이 이어졌다. 청소년은 고도의 불안감을 보였고 자해와 도주 등으로 위기는 고도화되었다.

•  지속적 자해가 발견된 3명의 사례 : 초등학생 1명, 고등학생 2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지속적인 자해 상황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부모의 이혼과 무기력, 폭식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 양육자의 불안과 폭언 및 심리적 고립감 등이 그들이 호소하는 자해의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  은둔 고립 청소년 2명의 사례 :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다수의 한국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다름’으로 인식되는 자아와 놀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은둔 생활에 들어간 청소년. 그리고 본인 외에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은둔 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청소년을 새롭게 만났다.

•  양육자의 부재로 인한 방임 위기 사례 : 질병에 의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의 양육자, 법적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혼자 살게 된 어린이가 발견되었다. 긴급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로 연계되었지만, 안정적인 삶을 이어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  또래 관계 안에서의 가스라이팅이 의심되는 사례 : 같은 학교 같은 반, 그리고 같은 집에 사는 두 청소년이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 간다. 양육자, 교사, 사회복지사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도울 수 없는 난처함에 빠졌다.

•  학교에서 양육자의 학대를 확인한 두 가지 사례 : 고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이어 가던 중 다시 위기 상황을 보이는 청소년. 양육자가 그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을 교사가 목격했다. 다른 한 청소년은 양육자에게 폭행을 당한 후, 교사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학교는 어떤 과정으로 이들을 지원해야 할지 도움을 요청한다.


서너 줄의 기록만 보아도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될 일들이 아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안에 일어난 일이 맞는지, 우리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다. 자해와 은둔 고립의 양상은 저연령화되어 가고, 정신의학적으로 치료적 접근이 요구되는 양육자도 다수 발견된다. 하지만 대부분 치료를 강력하게 거부하기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자살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내적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가 늘고 있고, 사회적 관계 맺기가 어려워지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여 은둔 고립 생활로 들어간다.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자녀가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해도 양육자가 모든 지원을 거부하는 가정이 끊임없이 확인된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무속 신앙인인 양육자가 고도의 불안과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사례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긴급하게 논의했다. 등교하지 않는 청소년과 일상 관리를 하지 않는 양육자, 부모의 연이은 사망으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사례 등 오늘 의뢰되고 회의 요청을 해 온 내용만 다섯 케이스이다. 쏟아지는 사례들이 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모든 사안들이 궁극적으로 어린이·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들이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유


학교가 교육의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어려운 상황을 발견하고 돕고자 방안을 모색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규칙적으로 등하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신체에서 상흔이 발견되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거나, 급식을 먹는 양이나 횟수에서 특이점이 드러날 때, 교사들은 아이를 눈여겨본다. 그러나 그 뒤의 대응은 몇 가지 정해진 절차로만 진행된다. 내교 통지, 학교폭력 신고, 아동학대 의심 접수. 보호자가 거부하고 숨긴다면 개입은 거기서 멈춘다. 한발도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아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리는가. 어린이·청소년 위기의 본질은 단절과 고립이다. 관계가 끊기기 때문에 이들은 견디기 힘들다. 기댈 수 있는 성인이 없고, 또래 관계에서도 배제될 때, 이들은 자기 안으로만 침잠한다. 가족 또는 동거인의 유무, 학교생활의 여부와 관계없이 단절과 고립이 일어난다. 고립은 불안과 우울을 증폭시키고, 무력감과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그 끝에 자해, 가출, 은둔이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관계로 인한 심리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의 불안정은 어린이·청소년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육자가 장기간 집을 비우거나, 함께 살더라도 양육자 개인의 편중으로 균형감을 잃거나, 정신적 어려움으로 자녀를 돌보지 못하거나, 갈등과 폭력이 심화되고 일상화된 경우, 어린이·청소년은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한다. 가정 안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지 못할 때, 사회 안에서 이들은 집착 또는 단절로 반응하여 유대감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가정이 안전망이 되지 못할 때, 결국 가장 기초적인 삶의 기반을 잃는다.


여기에 사회적 구조가 덧붙는다. 극도로 성적과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 문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는 고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지원을 받으려 하면 따라붙는 낙인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양육자의 권한에 가로막혀 어린이·청소년이 간절히 도움을 요청해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 지원하지 못하는 제도의 높은 문턱을 넘어설 방안이 없다. 어린이·청소년이 겪는 고통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지만, 실제로는 사회 구조가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2026년 3월부터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고 하지만, 현행 지원 체계는 여전히 파편화되어 있다. 학교, 복지, 의료, 법률이 제각각 움직인다. 각자의 역할은 있지만, 어린이·청소년 한 명을 중심에 두고 연결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대 의심으로 신고한 사건이 아동 보호 기관으로 넘어가도, 경찰과의 협의 과정에서 몇 달씩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최초 신고자에 대한 정보가 학대 의심 가정에 노출되어 교사 또는 사회복지사 등과 관계가 단절되고, 모든 지원을 거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상황들 사이에서 어린이·청소년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다.


무엇보다도 지원은 대부분 사후적이다. 위기가 터지고, 자해 흔적이 드러나고, 장기 결석이 누적된 이후에야 개입이 시작된다.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어린이·청소년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교육복지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어린이·청소년을 만나 보지만 양육자, 교사, 지역 사회에게 요청할 것은 단 하나뿐이다.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를 듣는 것.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라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 ‘양육을 당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그들에게 자기 결정권, 자기 주도적인 삶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어린이·청소년에게 묻고, 듣고, 그에 맞게 응답해야 한다. 그러면 사건이 터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 아무리 사후 개입을 한다 하더라도 어린이·청소년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때로는 모든 지원 자체를 거부해 버린다. 지원이 오히려 또 다른 통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어린이·청소년을 지원하는 활동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우리를 돌이켜 세우는 사건들이 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혹은 만났던 어린이·청소년들이 신호를 보낸다. 오늘 역시 그런 일이 있었다. 


이 현장에서 7년 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청소년을 꼽자면 단연 한 사람, 바로 산바람이다. 처음 만난 건 열한 살, 등교가 불안정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폭력을 수단으로 삼으며 휴대전화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는 증언이 무성했다.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했고 타국에서 온 양육자는 우리 문화권에서의 양육의 개념과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학교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유명했고, 거치지 않은 기관이 없을 정도였다. 늦은 밤에 비상 연락을 받고 출동한 횟수도 셀 수 없고, 온갖 방법으로 등교를 독려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겨우겨우 조금씩 성장하던 아이였다. 그렇게 지원하던 끝에 도저히 가정 안에서 돌봄이 이루어지지 않아 방임 의심 신고 절차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청소년과 우리 기관은 단절되었다.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2년 남짓 시간이 흘러 오늘이었다. 열일곱 살이 된 청소년 산바람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요청하면 항상 도와주셨던 기억이 났어요.”


감동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말이다. 산바람을 담당했던 우리 활동가는 8년째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 낸 활동가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사회복지사를 기억한 청소년에게 고마웠다.


학교생활은 자퇴로 마무리했고, 은둔 고립 생활을 이어 가다가 어제 처음으로 방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이제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혼자 하려니 많이 불안하다고 했다. ‘선생님과 함께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우리가 활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장면들은 통계에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어린이·청소년의 삶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작은 실천이 모여 이들을 살린다.


문제는 이런 작은 실천이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의 전화, 복지사의 기다림, 마을 어른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있지만, 언제까지 개인의 열정만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국가와 지역 사회가 이 작은 실천들을 제도적 기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청소년이 언제 어디서든 ‘안전’을 마주할 수 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할까”라는 물음은 결국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과 같다. 관계가 끊어져도 다시 이어 줄 수 있는 사회, 고립된 한 아이를 발견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 목소리를 잃은 청소년에게 “너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회. 청소년은 죽음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다시 삶을 시도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 기회를 지켜 내는 것이다. 관계의 단절 속에서 어린이·청소년은 고립되지만, 누군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을 때 이들은 다시 연결된다. 학교와 복지, 의료, 지역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효율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어린이·청소년의 생존을 지켜 낼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청소년을 지킨다는 것은 제도를 고치는 일이자, 동시에 사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이들 곁에 끝까지 남아 있겠다는 다짐,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이겠다는 태도, 그리고 그 마음을 정책과 제도로 옮기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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