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특집]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 편집부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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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중에서도 청소년 자살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을 보이지만, 그 추세와 의미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선 사회적 비상사태다. 2023년 10~19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7.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숫자 뒤에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친구였을, 우리가 지키지 못한 한 생명의 무게와 존재의 가치가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한순간에 통계로 환원된 것이다. 매년 비극이 반복되지만 사회는 잠시 충격과 애도를 표할 뿐, 근본적인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상담 인력을 늘리고, 심리 치료를 강조하고, 각종 캠페인이 이어지지만, 그 모든 노력은 청소년들의 현실에 닿지 못한다. 그들이 겪는 고통의 결은 행정의 언어나 정책의 문서 속에서는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살은 결코 갑작스럽거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쌓여 온 구조적 압력의 결과이며,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귀결에 가깝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로 보아야 한다.


학교와 사회, 가정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끊임없이 더 잘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한다. 성적과 입시, 성취와 효율이 삶의 기준이 되면서 아이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다. 학교에서의 하루는 경쟁의 단위로 쪼개지고, 가정은 그 경쟁의 연장선이 된다. 사회는 그 결과를 평가하며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경쟁은 관계를 갈라놓고, 비교는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서로를 적으로, 스스로를 실패자라 여기게 된다. 혐오와 차별은 그 틈을 파고들어 관계를 무너뜨리고, 제도는 그 사이에서 무력하게 방관한다. 


청소년을 끝없는 경쟁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그들이 무너지고 추락하는 이유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사회. 《오늘의 교육》88호 특집은 ‘청소년 자살’의 원인인 한국 사회와 상담과 치료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과 제도의 문제를 짚어 본다. 


이민아는 우리 청소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율성을 빼앗기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수치심을 학습하며 살아간다고 진단한다. 그는 뒤르켐의 ‘숙명적 자살’ 개념을 빌려, 이러한 통제와 억압의 사회 구조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분석한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을 벗어나면 실패로 간주되고, 실패는 곧 존재의 결함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경쟁을 늦추고, 실패할 자유와 쉴 권리를 회복하는 것, 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자살을 줄이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발랑은 학교와 복지 현장에서 마주한 청소년들의 절박한 현실을 기록한다. 장기 결석, 자해, 가출, 학대, 은둔은 모두 죽음으로 향하는 신호지만 사회의 체계는 여전히 분절되어 있다. 교육·복지·의료·사법 제도는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사이의 경계는 아이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그는 청소년 자살의 근본 원인을 ‘단절과 고립’에서 찾으며, 사회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해 아이들의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들은 더 쉽게 죽음으로 내몰린다. 소라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을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자살을 생각한 이가 77%, 실제로 시도한 이가 47%에 달하지만, 그들은 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혐오 발언, 가정에서의 폭력, 쉼터에서의 배제는 그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더욱 고립시킨다.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지 않기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죽음은 침묵 속에서 반복된다. 소라는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자살 고위험군으로 포함하고, 그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공식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호진은 청소년 정신건강과 양육 담론이 과도하게 의료화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정서 조절 장애’, ‘애착 손상’ 같은 용어가 범람하면서, 문제의 원인 또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뇌와 부모의 양육 실패 등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 결과, 구조적 불평등과 사회적 요인은 가려지고, 부모와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이 전가된다. 이러한 시선은 교육 정책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교육청은 위기 학생을 ‘정서·행동 지원 대상’으로 분류하고, 상담과 치료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관리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단지 ‘전달 체계’로 기능할 뿐이고 이런 접근은 오히려 아이들을 더 고립시킨다.


결국 청소년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 그 삶을 짓누르는 세계다. 경쟁이 파괴를 낳고, 단절이 고립을 만들며, 배제와 낙인이 절망을 키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더 깊은 침묵으로 스러져 간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도울 것인가”가 아니라 “왜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담·치료가 아니라 사회의 재설계, 단기적 위기 대응이 아니라 성찰과 인식의 변화를 통한 관계와 제도를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는 실패해도 괜찮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관계망이 살아 있는 사회다. 그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다음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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