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 지방의회에서 단체 문화까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하승우 anar00@hanmail.net
이후연구소 소장
상투어는 알리바이가 되기 쉽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문제’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문제를 바로잡고 의미를 채우는 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그리고 제도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큼 생활 정치의 난제를 해결하며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을까?
대의 민주주의가 문제라서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 투표 1번으로 정치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닌데 우리가 먼저 포기한 채 불만만 터뜨리는 건 아닐까. 지금의 제도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 지방의회를 방청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방법 중 하나이다.
지방의회 방청기
지방의회에 가면 사무국이란 곳이 있고, 회의장에 입장을 하려면 그곳에서 신청하고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시민들이 방청을 가면 그곳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서 오라고 환영할까? 왜 왔냐고 따질까? 아니다, 일단은 당황한다. 방청을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민들과 함께 들어가자 의회 사무국은 갑자기 분주해졌고, 회의가 열리는 장소에서 대기하던 공무원들도 경계심을 보였다.
지방의회를 방청하려면 일단 의장이나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69조 제1항은 “위원회에서 해당 지방의회의원이 아닌 사람은 위원회의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 방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자체에 회의나 방청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어 있고 모두 허가 사항이다(실제로 2023년 2월에 서울시의회는 혼란을 이유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방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통은 방청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방문증을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의장이나 의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다 해도 방청 자체를 제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입장을 허가받아야 하는 것이 문턱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닫힌 문은 아니다.
그렇게 방문증을 받으면 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는데, 방청 규칙이 재미있다. 이 규칙은 국회의 방청 규칙을 본뜬 것인데, 모자나 외투를 벗고 들어가야 하고 보자기나 물품 휴대를 막는 건 보안상 그렇다 쳐도, 회의장에서 가부(可否)의 의견을 표시하거나 박수를 치는 것도 금지된다(그럴 경우 의장이나 위원장이 퇴장시킬 수도 있다). 시민들이 의원들의 발언에 반응하는 것은 기본적인 정치 행위인데, 법이나 규칙은 이를 금지한다. 결국 방청만 허락되고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금지되는 셈인데, 그래도 시민들이 입장한 것만으로도 의원들은 긴장한다.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서 의원들의 발언을 들으려니 지루하고 심심하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잘 들어 보면 아는 내용이다. 당시 우리가 참관한 위원회는 예결산위원회로 지자체의 재정을 다루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날 발언 자료를 의원이나 공무원들이 공유해 주지 않아 내용을 말로만 이해하긴 쉽지 않았지만, 군청의 예비비 지출과 작년에 진행된 사업들의 결산을 승인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인구 5만 명의 크지 않은 군이어도 당시 결산액이 7000억 원을 훌쩍 넘겼으니 적지 않은 돈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사용한 돈의 승인을 받으면서도 군청은 사업의 성과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보직이 바뀐 담당자들은 사업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해서 형식적으로만 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군청의 이런 태도를 지적하는 지방의원도 있었지만 그들의 질문도 날카롭지 못했고, 자료를 꼼꼼히 읽고 질문을 준비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어떤 의원은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았고, 심지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의원도 있었다. 주민들이 방청하고 있음에도 이런 식이니 평상시는 얼마나 더할까 싶었다.
같이 방청을 갔던 주민들은 어설픈 행정의 태도에 분노했고 불성실한 의원들의 태도에 실망했다. 그래도 그 모든 광경을 봤으니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방청한 사람들과 지방의회의 활동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매번 방청하기는 어려우니 각자 시간이 날 때 방청하고 참여를 못 할 경우 의회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되는 회의 내용을 지켜보거나 회의 이후에 공개되는 회의록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움직이자 의회도 약간 긴장했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현안에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의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대의 민주주의에는 여러 한계가 있지만, 대의하는 과정을 감시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대의와 직접의 간극을 메우려면 제도야 어떠하든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런 제도가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아주 많은 정책들에 관해 배우고 합의점을 찾으며 결정권을 행사해야 함을 뜻하는데, 우리에게는 정말 그럴 의지와 에너지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이다. 내부의 민주주의는 외부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지방의회나 국회를 함께 방청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힘도 생긴다.
형식화되지 않아야 하는 진짜 민주주의
매년 연말, 연초가 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결산과 총회 준비에 바쁘다. 회원이나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총회에 참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는 적다. 그래서 그 수가 많을 경우 대의원을 뽑아서 대의원 총회를 열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여자는 적다.
1년에 1번 열리는 총회는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단체마다 큰 숙제이다. 총회 참석은 회원/조합원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왜 그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지방의회처럼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 그리고 과연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은 총회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 알고 있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을까? 만약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 사람들이 정족수 부족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일까? 반대로 정족수를 채운다 한들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결정이 내려지거나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일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을 말하지 못한다.
사실 하루 동안 진행되는 1회의 총회로 1년의 계획을 토론하고 결정한다는 것도 민주주의라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1번의 총회조차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우니 2번, 3번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이 정도면 정족수는 ‘민주주의의 함정’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정족수의 벽’조차 넘지 못한다.
그리고 자료집을 꼼꼼하게 읽고 참석해서 발언하고 토론하는 회원/조합원은 얼마나 될까? 지방의회 회의에 불참하거나 발언하지 않거나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는 지방의원들을 비판하는 우리는, 발언을 얼마나 준비하고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을까? 물론 지방의원들은 유급으로 일하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회원/조합원의 책임감이 적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총회나 운영위원회는 제대로 공개되고 있을까? 지방의회는 실시간 방청이나 생중계, 녹화 중계, 회의록 등을 통해서 여러 차원으로 공개된다.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방의회의 회의록은 꽤 꼼꼼하게 기록된다(중요한 사업이 회의장 밖에서 결정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자료에 접근해서 내용을 불충분하더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다. 또 사전에 공개되지 않으면 정보 공개를 청구해서 자료를 받아 볼 수도 있다. 이 정도라도 지속적으로 정보가 공개되는 조직은 한국에 얼마나 될까?
또한 회의 외에도 회원/조합원들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들은 제대로 공개되고 있을까? 사실 단체의 활동 일지, 재정 상황, 재무재표, 손익계산서 같은 내용들은 꾸준히 운영을 관찰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제대로 정보가 전달되고 소통하려면 쉽게 가공된 자료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지자체나 지방의회는 돈을 써서 쉬운 형태를 만들 수 있겠지만, 회비로는 부족한 살림조차 채울 수 없는 단체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단체마다 비슷한 회원/조합원 – 운영위원회/이사회 - 대의원대회/총회의 의사 결정 구조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어렵다.
조직과 회원의 관계가 일방향이 되면 회원이나 조합원을 상대하는 일이 점점 더 고단해지고 민원처럼 된다. 이용하려는 사람은 있지만 유지하려는 사람이 없는 조직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형식화되고 소비자화된 직접 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책임을 지는 대의 민주주의보다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리의 단체 문화는 또 얼마나 민주적일까? 조직 내 민주주의는 구성원을 서로 존중하자는 매너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실 민주주의는 차이와 갈등을 통해 발전하는데,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순간 서로 말을 아끼는 것이 존중이고 민주주의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구성원들 간의 평등은 필요하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만큼 책임을 지면서 차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기계적인 평등이 주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찾아 갈 때 일상의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그 힘이 제도의 민주주의를 변화시키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나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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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 지방의회에서 단체 문화까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하승우 anar00@hanmail.net
이후연구소 소장
상투어는 알리바이가 되기 쉽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문제’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문제를 바로잡고 의미를 채우는 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그리고 제도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큼 생활 정치의 난제를 해결하며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을까?
대의 민주주의가 문제라서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 투표 1번으로 정치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닌데 우리가 먼저 포기한 채 불만만 터뜨리는 건 아닐까. 지금의 제도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 지방의회를 방청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방법 중 하나이다.
지방의회 방청기
지방의회에 가면 사무국이란 곳이 있고, 회의장에 입장을 하려면 그곳에서 신청하고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시민들이 방청을 가면 그곳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서 오라고 환영할까? 왜 왔냐고 따질까? 아니다, 일단은 당황한다. 방청을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민들과 함께 들어가자 의회 사무국은 갑자기 분주해졌고, 회의가 열리는 장소에서 대기하던 공무원들도 경계심을 보였다.
지방의회를 방청하려면 일단 의장이나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69조 제1항은 “위원회에서 해당 지방의회의원이 아닌 사람은 위원회의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 방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자체에 회의나 방청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어 있고 모두 허가 사항이다(실제로 2023년 2월에 서울시의회는 혼란을 이유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방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통은 방청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방문증을 못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의장이나 의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다 해도 방청 자체를 제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입장을 허가받아야 하는 것이 문턱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닫힌 문은 아니다.
그렇게 방문증을 받으면 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는데, 방청 규칙이 재미있다. 이 규칙은 국회의 방청 규칙을 본뜬 것인데, 모자나 외투를 벗고 들어가야 하고 보자기나 물품 휴대를 막는 건 보안상 그렇다 쳐도, 회의장에서 가부(可否)의 의견을 표시하거나 박수를 치는 것도 금지된다(그럴 경우 의장이나 위원장이 퇴장시킬 수도 있다). 시민들이 의원들의 발언에 반응하는 것은 기본적인 정치 행위인데, 법이나 규칙은 이를 금지한다. 결국 방청만 허락되고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금지되는 셈인데, 그래도 시민들이 입장한 것만으로도 의원들은 긴장한다.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서 의원들의 발언을 들으려니 지루하고 심심하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잘 들어 보면 아는 내용이다. 당시 우리가 참관한 위원회는 예결산위원회로 지자체의 재정을 다루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날 발언 자료를 의원이나 공무원들이 공유해 주지 않아 내용을 말로만 이해하긴 쉽지 않았지만, 군청의 예비비 지출과 작년에 진행된 사업들의 결산을 승인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인구 5만 명의 크지 않은 군이어도 당시 결산액이 7000억 원을 훌쩍 넘겼으니 적지 않은 돈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사용한 돈의 승인을 받으면서도 군청은 사업의 성과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보직이 바뀐 담당자들은 사업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해서 형식적으로만 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군청의 이런 태도를 지적하는 지방의원도 있었지만 그들의 질문도 날카롭지 못했고, 자료를 꼼꼼히 읽고 질문을 준비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어떤 의원은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았고, 심지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의원도 있었다. 주민들이 방청하고 있음에도 이런 식이니 평상시는 얼마나 더할까 싶었다.
같이 방청을 갔던 주민들은 어설픈 행정의 태도에 분노했고 불성실한 의원들의 태도에 실망했다. 그래도 그 모든 광경을 봤으니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방청한 사람들과 지방의회의 활동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매번 방청하기는 어려우니 각자 시간이 날 때 방청하고 참여를 못 할 경우 의회 홈페이지에서 생중계되는 회의 내용을 지켜보거나 회의 이후에 공개되는 회의록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움직이자 의회도 약간 긴장했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현안에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자 의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대의 민주주의에는 여러 한계가 있지만, 대의하는 과정을 감시하고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대의와 직접의 간극을 메우려면 제도야 어떠하든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런 제도가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아주 많은 정책들에 관해 배우고 합의점을 찾으며 결정권을 행사해야 함을 뜻하는데, 우리에게는 정말 그럴 의지와 에너지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이다. 내부의 민주주의는 외부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지방의회나 국회를 함께 방청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힘도 생긴다.
형식화되지 않아야 하는 진짜 민주주의
매년 연말, 연초가 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결산과 총회 준비에 바쁘다. 회원이나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총회에 참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는 적다. 그래서 그 수가 많을 경우 대의원을 뽑아서 대의원 총회를 열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여자는 적다.
1년에 1번 열리는 총회는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단체마다 큰 숙제이다. 총회 참석은 회원/조합원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왜 그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지방의회처럼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 그리고 과연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은 총회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 알고 있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을까? 만약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 사람들이 정족수 부족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일까? 반대로 정족수를 채운다 한들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결정이 내려지거나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일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을 말하지 못한다.
사실 하루 동안 진행되는 1회의 총회로 1년의 계획을 토론하고 결정한다는 것도 민주주의라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1번의 총회조차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우니 2번, 3번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이 정도면 정족수는 ‘민주주의의 함정’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정족수의 벽’조차 넘지 못한다.
그리고 자료집을 꼼꼼하게 읽고 참석해서 발언하고 토론하는 회원/조합원은 얼마나 될까? 지방의회 회의에 불참하거나 발언하지 않거나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는 지방의원들을 비판하는 우리는, 발언을 얼마나 준비하고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을까? 물론 지방의원들은 유급으로 일하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회원/조합원의 책임감이 적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총회나 운영위원회는 제대로 공개되고 있을까? 지방의회는 실시간 방청이나 생중계, 녹화 중계, 회의록 등을 통해서 여러 차원으로 공개된다.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방의회의 회의록은 꽤 꼼꼼하게 기록된다(중요한 사업이 회의장 밖에서 결정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자료에 접근해서 내용을 불충분하더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다. 또 사전에 공개되지 않으면 정보 공개를 청구해서 자료를 받아 볼 수도 있다. 이 정도라도 지속적으로 정보가 공개되는 조직은 한국에 얼마나 될까?
또한 회의 외에도 회원/조합원들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들은 제대로 공개되고 있을까? 사실 단체의 활동 일지, 재정 상황, 재무재표, 손익계산서 같은 내용들은 꾸준히 운영을 관찰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제대로 정보가 전달되고 소통하려면 쉽게 가공된 자료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지자체나 지방의회는 돈을 써서 쉬운 형태를 만들 수 있겠지만, 회비로는 부족한 살림조차 채울 수 없는 단체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단체마다 비슷한 회원/조합원 – 운영위원회/이사회 - 대의원대회/총회의 의사 결정 구조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어렵다.
조직과 회원의 관계가 일방향이 되면 회원이나 조합원을 상대하는 일이 점점 더 고단해지고 민원처럼 된다. 이용하려는 사람은 있지만 유지하려는 사람이 없는 조직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형식화되고 소비자화된 직접 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책임을 지는 대의 민주주의보다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리의 단체 문화는 또 얼마나 민주적일까? 조직 내 민주주의는 구성원을 서로 존중하자는 매너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실 민주주의는 차이와 갈등을 통해 발전하는데,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순간 서로 말을 아끼는 것이 존중이고 민주주의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구성원들 간의 평등은 필요하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만큼 책임을 지면서 차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기계적인 평등이 주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찾아 갈 때 일상의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그 힘이 제도의 민주주의를 변화시키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나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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