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활동가
하라던 말이 ‘재청’이었는지 ‘제청’이었는지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거나 연습해 본 적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몇 주에 한 번 하던 ‘학급 회의’다. 안건은 아마 복도에서 뛰지 말자는 것이었던가, 학생은 교실 뒷문으로 다니자는 것이었던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었던가, 여하튼 이게 왜 우리 회의 안건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때 학급 회의에는 담임 교사가 정해 놓은 순서가 있었다. 의장(반장)이 안건을 설명하고 나서 찬반 의견이 있는지 묻는다. 보통 안건들이 딱히 반대할 만한 부분이 없었기에 교실에는 침묵이 감돈다. 그럼 한 명이 손을 들고 “동의합니다”라고 하고, 또 한 명이 손을 들고 “재청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표결을 제청합니다” 같은 말도 있었는데, 정확한 순서는 모르겠다. 마지막에 거수 투표를 거쳐 과반수가 찬성하면 하나의 안건이 끝난다.
진행을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 학생은 회의마다 정해져 있었는데, 한번은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손을 들고 말하면서도 내가 지금 말하는 게 재청(再請)인지, 제청(提請)인지, 표결을 하자는 건지, 토론을 하자는 건지 헷갈렸다. 아마도 한두 번은 순서를 틀렸을 텐데, 회의 진행자든 참석자든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문제 될 리는 없었다. 그저 이 연극같이 이상하고 지루한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을 뿐. 여전히 나는 재청이 뭐고 제청이 뭔지 잘 모른다. 회의 절차나 용어를 배우게 하는 게 그 교육의 목표였다면 철저하게 실패한 셈이다. 다만 이제껏 그 용어를 잘 모르는 게 ‘민주주의하기’에 걸림돌이 된 적은 없다.
초·중·고 시절 ‘민주주의’라는 태그를 붙일 만한 기억들은 대부분 기만과 억압, 그리고 저항의 경험들이다. 중학교 이후로 나는 학교가 독재 정권 같다고 느꼈고, 그 안에서 저항적 언론인이나 지식인, 문인, 투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상상하곤 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도 그랬으니,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더욱 ‘독재 치하의 민주화운동가’ 같은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칙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벌점을 받고 징계 위기에 처했고,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체벌을 당했다. 신문부가 내는 신문에 쓴 칼럼이 검열당해서 ‘지하 신문’을 만들어 발행했다. 그러니까 학교는 나에게 무엇이 민주주의가 아닌 상태인지 체감하게 함으로써 나를 민주주의자로 만들었다.
바위에 둘러앉은 풍경
그럼에도 내가 학교를 다니며 민주주의를 느끼고 익혔다고 여기는 시간이, 분명 존재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가입해서 활동한 만화 동아리 ‘실프’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당시 실프에는 활동에 대한 감독이나 위계 구조가 없다시피 했다. 동아리 담당인 미술 교사는 만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우리가 싸움을 벌이거나 사고만 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았다. 선배들도 후배들에게 뭐를 시키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정기적 동아리 활동은 모여서 각자 만화책을 읽거나, 누군가가 감명 깊게 본 만화책·라이트노벨·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수평적인 관계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픈 일을 제안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고 성과를 추구하는 과정을 겪어 봤다. 물론 일이 다 잘된 것은 아니었다. 회지를 내 보려고 했지만 만화를 기한 안에 완성 못 하기도 했고, 영수증을 잘못 끊어 와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교지에 만화를 게재한다든지 축제 때 캐릭터 일러스트로 만든 팬시상품 부스를 낸다든지 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계획한 것 중 반 이상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남는 활동이었지만, 성과와 상관없이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런 관계와 활동이 곧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별다른 형식 없이 이루어지던 회의, 결정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고 점검하던 과정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중심에 있던 것은, 내 생각에는 회의나 투표 같은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아무 이유 없이 둘러앉아 있는 ‘잉여로운’ 시간이었다.
실프가 동아리실로 쓰던 미술실 앞에는 사람이 3~4명 정도 앉을 만한 바위와 자그마한 단풍나무가 있었다. 실프 사람들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약속도 없이 그 바위에 모여서 걸터앉거나 주변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어느새 학생들 사이에서 ‘실프 바위’라고 불리게 된 그곳에서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허무맹랑하거나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냈고, 노래를 듣고 불렀으며, 태권도·택견 따위의 연습을 했다. 실은 그냥 가만히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들이 우리를 느슨하게라도 공동체로 묶어 주었고, 감정적인 신뢰와 일상적인 소통이 동아리 활동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듯싶다. 그래서 현재도 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과 이미지는, 첫째로 나무 아래 또는 바위 같은 곳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권단체 생활
좀 더 실질과 형식을 모두 갖춘 ‘빡센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천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청소년인권단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였다. 아수나로는 막 창립 총회를 하고 조직을 만들어 가던 단계로, 회칙이나 의사 결정 구조 등도 제로(0), 백지에서 구축해야 할 상황이었다. 지부나 팀은 있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회의와 활동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초기 멤버로서 몇 년에 걸쳐 회칙 초안을 만들고, 총회나 정기 온라인 회의 등의 권한과 방식을 정하는 데 참여했다. 정말로 ‘자치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단체의 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의사 결정 구조 등을 만들어 가는 것은 골치 아프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이만큼의 사람들이 모인 이 정도 수준의 회의에서는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일이 굴러가게 하려면 어떤 주기로 회의가 열려야 할까? 암묵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던 논의와 결정을 규칙과 형식에 담아내면서, 쓸데없는 허례허식은 최대한 빼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형식이나 절차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게 된 면도 있다. 예컨대, 회의는 왜 꼭 며칠 전에 시간과 장소, 가능하면 안건도 공지되어야 하는가? 의결권자가 모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지 않고 구성원 중 일부끼리 모여서 우리가 회의해서 결정했노라고 하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비민주적 배제니까.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을 이해하고 훈련하기 위한 교육에는 조직의 운영 방식과 의사 결정 규칙을 백지에서부터 설계해 보는 방법도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란,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동의나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인지, 그리고 여기에 유용한 틀이 되는 절차는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는 일이다.
청소년인권단체를 비롯해 인권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이곳이 대체로 민주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내가 원하면 언제든 참여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다만). 당연히 내가 소속된 단체나 활동의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고 모든 일에 의견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운영에 관해 어떤 정보를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었고, 의견을 제기하면 고려되고 논의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내 생각대로 결정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불가능한 걸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면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를 설득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말을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속에 품고 살았는데, 인권운동에서는 무력감보다는 유력감(?), 효능감을 더 자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정말 민주주의적인지에 관해 위기나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우리는 정말로 서로 평등한가’라는 질문·비판이다. 활동 경험이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고연차 활동가에게 아무래도 더 많은 영향력과 발언권이 돌아가는 것 아닌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역할/기여를 많이 못 하는 활동가는 불만이나 이견이 있어도 이야기도 잘 못 꺼낸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연차 고역량 활동가의 발언이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었다. 한차례 이런 논쟁을 거치며 내린 결론은, 저연차 활동가가 성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회를 많이 만들고, 당장은 발언 및 의견 제시를 배려, 독려하자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민주주의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반민주적이고 독재 정권 같은 학교 – 동아리 자치 활동으로 익힌 민주주의의 모습 – 인권단체에서의 빡센 민주주의’라는, 일견 정석적으로까지 보이는 도식으로 나의 민주주의 체험을 설명해 보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 회고의 결과물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일부러 생략한 부분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나 민주주의는 우당탕탕 삐거덕거리는 요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경험 속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또 무엇보다도 재미있으며 행복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은, 여러 용어나 형식들, ‘재청’과 ‘제청’ 같은 것을 배우는 것으론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시도해 보는,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제를 곱씹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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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활동가
하라던 말이 ‘재청’이었는지 ‘제청’이었는지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거나 연습해 본 적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몇 주에 한 번 하던 ‘학급 회의’다. 안건은 아마 복도에서 뛰지 말자는 것이었던가, 학생은 교실 뒷문으로 다니자는 것이었던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었던가, 여하튼 이게 왜 우리 회의 안건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때 학급 회의에는 담임 교사가 정해 놓은 순서가 있었다. 의장(반장)이 안건을 설명하고 나서 찬반 의견이 있는지 묻는다. 보통 안건들이 딱히 반대할 만한 부분이 없었기에 교실에는 침묵이 감돈다. 그럼 한 명이 손을 들고 “동의합니다”라고 하고, 또 한 명이 손을 들고 “재청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표결을 제청합니다” 같은 말도 있었는데, 정확한 순서는 모르겠다. 마지막에 거수 투표를 거쳐 과반수가 찬성하면 하나의 안건이 끝난다.
진행을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 학생은 회의마다 정해져 있었는데, 한번은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손을 들고 말하면서도 내가 지금 말하는 게 재청(再請)인지, 제청(提請)인지, 표결을 하자는 건지, 토론을 하자는 건지 헷갈렸다. 아마도 한두 번은 순서를 틀렸을 텐데, 회의 진행자든 참석자든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문제 될 리는 없었다. 그저 이 연극같이 이상하고 지루한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을 뿐. 여전히 나는 재청이 뭐고 제청이 뭔지 잘 모른다. 회의 절차나 용어를 배우게 하는 게 그 교육의 목표였다면 철저하게 실패한 셈이다. 다만 이제껏 그 용어를 잘 모르는 게 ‘민주주의하기’에 걸림돌이 된 적은 없다.
초·중·고 시절 ‘민주주의’라는 태그를 붙일 만한 기억들은 대부분 기만과 억압, 그리고 저항의 경험들이다. 중학교 이후로 나는 학교가 독재 정권 같다고 느꼈고, 그 안에서 저항적 언론인이나 지식인, 문인, 투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상상하곤 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도 그랬으니,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더욱 ‘독재 치하의 민주화운동가’ 같은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칙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벌점을 받고 징계 위기에 처했고,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체벌을 당했다. 신문부가 내는 신문에 쓴 칼럼이 검열당해서 ‘지하 신문’을 만들어 발행했다. 그러니까 학교는 나에게 무엇이 민주주의가 아닌 상태인지 체감하게 함으로써 나를 민주주의자로 만들었다.
바위에 둘러앉은 풍경
그럼에도 내가 학교를 다니며 민주주의를 느끼고 익혔다고 여기는 시간이, 분명 존재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가입해서 활동한 만화 동아리 ‘실프’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당시 실프에는 활동에 대한 감독이나 위계 구조가 없다시피 했다. 동아리 담당인 미술 교사는 만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우리가 싸움을 벌이거나 사고만 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았다. 선배들도 후배들에게 뭐를 시키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정기적 동아리 활동은 모여서 각자 만화책을 읽거나, 누군가가 감명 깊게 본 만화책·라이트노벨·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수평적인 관계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픈 일을 제안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고 성과를 추구하는 과정을 겪어 봤다. 물론 일이 다 잘된 것은 아니었다. 회지를 내 보려고 했지만 만화를 기한 안에 완성 못 하기도 했고, 영수증을 잘못 끊어 와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교지에 만화를 게재한다든지 축제 때 캐릭터 일러스트로 만든 팬시상품 부스를 낸다든지 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계획한 것 중 반 이상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남는 활동이었지만, 성과와 상관없이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런 관계와 활동이 곧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별다른 형식 없이 이루어지던 회의, 결정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고 점검하던 과정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중심에 있던 것은, 내 생각에는 회의나 투표 같은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아무 이유 없이 둘러앉아 있는 ‘잉여로운’ 시간이었다.
실프가 동아리실로 쓰던 미술실 앞에는 사람이 3~4명 정도 앉을 만한 바위와 자그마한 단풍나무가 있었다. 실프 사람들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약속도 없이 그 바위에 모여서 걸터앉거나 주변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어느새 학생들 사이에서 ‘실프 바위’라고 불리게 된 그곳에서 우리는 수다를 떨었고, 허무맹랑하거나 쓸모 있는 아이디어를 냈고, 노래를 듣고 불렀으며, 태권도·택견 따위의 연습을 했다. 실은 그냥 가만히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들이 우리를 느슨하게라도 공동체로 묶어 주었고, 감정적인 신뢰와 일상적인 소통이 동아리 활동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듯싶다. 그래서 현재도 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과 이미지는, 첫째로 나무 아래 또는 바위 같은 곳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권단체 생활
좀 더 실질과 형식을 모두 갖춘 ‘빡센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천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청소년인권단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였다. 아수나로는 막 창립 총회를 하고 조직을 만들어 가던 단계로, 회칙이나 의사 결정 구조 등도 제로(0), 백지에서 구축해야 할 상황이었다. 지부나 팀은 있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회의와 활동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초기 멤버로서 몇 년에 걸쳐 회칙 초안을 만들고, 총회나 정기 온라인 회의 등의 권한과 방식을 정하는 데 참여했다. 정말로 ‘자치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단체의 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의사 결정 구조 등을 만들어 가는 것은 골치 아프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이만큼의 사람들이 모인 이 정도 수준의 회의에서는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일이 굴러가게 하려면 어떤 주기로 회의가 열려야 할까? 암묵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던 논의와 결정을 규칙과 형식에 담아내면서, 쓸데없는 허례허식은 최대한 빼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형식이나 절차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게 된 면도 있다. 예컨대, 회의는 왜 꼭 며칠 전에 시간과 장소, 가능하면 안건도 공지되어야 하는가? 의결권자가 모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지 않고 구성원 중 일부끼리 모여서 우리가 회의해서 결정했노라고 하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비민주적 배제니까.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을 이해하고 훈련하기 위한 교육에는 조직의 운영 방식과 의사 결정 규칙을 백지에서부터 설계해 보는 방법도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란,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동의나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인지, 그리고 여기에 유용한 틀이 되는 절차는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는 일이다.
청소년인권단체를 비롯해 인권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이곳이 대체로 민주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내가 원하면 언제든 참여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다만). 당연히 내가 소속된 단체나 활동의 모든 정보를 다 파악하고 모든 일에 의견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운영에 관해 어떤 정보를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었고, 의견을 제기하면 고려되고 논의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내 생각대로 결정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불가능한 걸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면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를 설득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말을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속에 품고 살았는데, 인권운동에서는 무력감보다는 유력감(?), 효능감을 더 자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정말 민주주의적인지에 관해 위기나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우리는 정말로 서로 평등한가’라는 질문·비판이다. 활동 경험이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고연차 활동가에게 아무래도 더 많은 영향력과 발언권이 돌아가는 것 아닌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역할/기여를 많이 못 하는 활동가는 불만이나 이견이 있어도 이야기도 잘 못 꺼낸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연차 고역량 활동가의 발언이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었다. 한차례 이런 논쟁을 거치며 내린 결론은, 저연차 활동가가 성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회를 많이 만들고, 당장은 발언 및 의견 제시를 배려, 독려하자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민주주의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반민주적이고 독재 정권 같은 학교 – 동아리 자치 활동으로 익힌 민주주의의 모습 – 인권단체에서의 빡센 민주주의’라는, 일견 정석적으로까지 보이는 도식으로 나의 민주주의 체험을 설명해 보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 회고의 결과물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일부러 생략한 부분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나 민주주의는 우당탕탕 삐거덕거리는 요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경험 속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또 무엇보다도 재미있으며 행복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은, 여러 용어나 형식들, ‘재청’과 ‘제청’ 같은 것을 배우는 것으론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시도해 보는,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제를 곱씹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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