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최보근 qhrms379@naver.com
세종호텔 공대위 집행위원, 성공회대 학생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곧바로 국회에 갔다. 경찰을 뚫고 국회의원들을 출입시켜야 했고,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군인의 출입을 막아야 했다. 총알이 날아들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계엄령 아래 엄혹한 시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라는 생각으로 여의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다행히 국회에 들어갔고, 때맞춰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흔들리는 진보정당의 깃발과 노동조합 조끼들을 보았고, 거리에서 보았던 동지들도 많이 만났다. 계엄을 해제할 권한도 없는 수천 명의 시민들은 온몸으로 윤석열을 막았다. 말 그대로 자신을 바쳐 싸웠다. 그 사이 국회는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독재로의 회귀를 막아 냈다.
12월 3일 국회로 나온 이는 누구인가?
2022년 대학에 진학하고 큰 집회를 처음 가 봤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면서 매주 목요일에 개최하는 집회였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세종호텔 목요 문화제를 마칠 때는 〈파업가〉를 부른다. “해골 두 쪽 나도 지킨다”라는 무시무시한 가사를 빵빵한 앰프로 번화한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틀었다. 내 머릿속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세종호텔 해고자들과 연대하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원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남과 대화하는 것도 미숙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스마트폰 수거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도 혼날까 봐 꼬박꼬박 스마트폰을 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2022년 9월 세종대 재단 이사회가 열리는 사무실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쳐서 항의했다. 경찰은 “이사님, 이사님!” 하고 외치던 나를 집어 던졌고, 그때 손가락을 다쳐 살면서 처음으로 깁스도 해 봤다. 해고자들 옆에서 싸운 그날, 나는 세종호텔 해고 문제에 깊숙이 연루됐다. 이제는 투쟁의 경험을 발판 삼아 기꺼이 국가 폭력의 한가운데에 내 몸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비상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로 가기로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크고 작은 광장들은 많았고, 공권력은 꾸준히 시민의 것을 빼앗아 왔다. 계엄령이 너무 큰일이었을 뿐, 어찌 보면 12월 3일 밤도 그저 수많은 긴급 집회 중 하나였다. 몸으로 군경을 막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2월 3일 국회로 나온 이들은 이미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 오던 사람들이었다.
대통령만 바꾸면 민주주의가 실현되나?
윤석열이 완전히 탄핵되던 2025년 4월 4일, 고공 농성을 이어 오던 노동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소현숙,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그리고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김형수. 이들은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측에게 내몰려 고공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방관과 적극적인 탄압으로 노동자의 고통은 배가 됐다.
소년공 출신이라던 이재명이 당선되고,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농성자를 만나러 노동부 장관이나, 여당 대표가 방문하기도 했다. 노동부 장관은 “어떤 판결도 노사 당사자 간 합의보다 나은 판결은 없다는 게 평생의 경험”, “(대통령께서) 장관이 가진 권한을 아끼지 말고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하셨다”라며 허울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약간의 기대가 생겼지만, 그 뒤에도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갔다.
그 사이 건강 악화로 소현숙이 땅을 밟았다. 박정혜도 600일의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을 종료하고 땅을 밟았다. 고진수는 여전히 저 높은 구조물 위에 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옵티칼 노동자들과의 약속도 방치하고 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도 어렵사리 회사와 교섭을 잡았다. 정작 정부는 노동자의 양보만을 얘기하며 손을 놓았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양복을 입지 않았다
서울 도심을 행진한다. 매연을 맞으면 온몸이 더러워진다. 누가 밟고 지나갔을지 모르는 길바닥에서 노숙 농성을 한다. 흙먼지를 뒤집어쓴다. 해가 지날수록 옷은 해지고, 얼굴은 까매진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정리 해고 철회하라!” 거리에서는 내가 원하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
혹자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고상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약자들이 정부와 기업과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압력을 가하려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대화가 아니라 굴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한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없다. 운이 좋아 고상한 테이블에 앉아도 그것이 대화가 되는 자리라고 할 수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가 한창 화제를 모으던 2022년의 어느 날이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선전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삼각지역으로 나갔다. 활동가들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서 혼자서 쭈뼛거렸다. 그다음에 갈 때는 피켓을 만들어 가방에 넣어 놓고,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깃발을 망토처럼 두르고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와 있다고 활동가들이 당황하지 말라고, 지지의 의미를 표현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연대했다.
세상은 장애인의 속도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집단적으로 탑승하기만 했는데 지하철이 지연됐다. 서울교통공사는 폭력적으로 탄압했고, 일각에서는 혐오 섞인 공격도 이어졌다. 그래도 장애인이 처한 현실이 사회에 공론화됐고 박경석 대표는 MBC 〈100분 토론〉에 초대받았다. 방송은 시작부터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스튜디오에 설치된 ‘고상한 테이블’은 비장애인의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이준석한테는 테이블이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는 박경석 대표에게는 턱받이쯤 되는 높이에 있었다. 동등한 토론을 하기에 눈높이가 너무 달랐다.
양복 입은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약자들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다. 평등한 토론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고, 압력을 행사한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모으면 힘도 모인다. 저들이 겁을 먹을 만큼 모여야 교섭도 가능하고, 토론도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교육과정이 있다면
무엇이 민주주의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그러나 거리에 나가 목소리 내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이렇게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이 많은 줄 몰랐다. 어쩌면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멀게 느껴져서 인상 깊은 모습으로 남지 못했던 것 같다. 처절한 싸움은 흑백 사진 속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도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에 교육과정이 있다면 주된 내용은 체험학습이면 좋겠다. 적어도 싸우는 이들과 만나는 단원이라도 편성되면 좋겠다. 고공 농성에 오른 노동자들,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들, 계엄을 막으러 국회로 나온 시민들은 모두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배울 때는 차별받고 착취당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사회를 바꿔 나가는지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리에서 함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
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최보근 qhrms379@naver.com
세종호텔 공대위 집행위원, 성공회대 학생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곧바로 국회에 갔다. 경찰을 뚫고 국회의원들을 출입시켜야 했고,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군인의 출입을 막아야 했다. 총알이 날아들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계엄령 아래 엄혹한 시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라는 생각으로 여의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다행히 국회에 들어갔고, 때맞춰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흔들리는 진보정당의 깃발과 노동조합 조끼들을 보았고, 거리에서 보았던 동지들도 많이 만났다. 계엄을 해제할 권한도 없는 수천 명의 시민들은 온몸으로 윤석열을 막았다. 말 그대로 자신을 바쳐 싸웠다. 그 사이 국회는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독재로의 회귀를 막아 냈다.
12월 3일 국회로 나온 이는 누구인가?
2022년 대학에 진학하고 큰 집회를 처음 가 봤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면서 매주 목요일에 개최하는 집회였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세종호텔 목요 문화제를 마칠 때는 〈파업가〉를 부른다. “해골 두 쪽 나도 지킨다”라는 무시무시한 가사를 빵빵한 앰프로 번화한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틀었다. 내 머릿속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세종호텔 해고자들과 연대하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원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남과 대화하는 것도 미숙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스마트폰 수거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도 혼날까 봐 꼬박꼬박 스마트폰을 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2022년 9월 세종대 재단 이사회가 열리는 사무실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쳐서 항의했다. 경찰은 “이사님, 이사님!” 하고 외치던 나를 집어 던졌고, 그때 손가락을 다쳐 살면서 처음으로 깁스도 해 봤다. 해고자들 옆에서 싸운 그날, 나는 세종호텔 해고 문제에 깊숙이 연루됐다. 이제는 투쟁의 경험을 발판 삼아 기꺼이 국가 폭력의 한가운데에 내 몸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비상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로 가기로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크고 작은 광장들은 많았고, 공권력은 꾸준히 시민의 것을 빼앗아 왔다. 계엄령이 너무 큰일이었을 뿐, 어찌 보면 12월 3일 밤도 그저 수많은 긴급 집회 중 하나였다. 몸으로 군경을 막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2월 3일 국회로 나온 이들은 이미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 오던 사람들이었다.
대통령만 바꾸면 민주주의가 실현되나?
윤석열이 완전히 탄핵되던 2025년 4월 4일, 고공 농성을 이어 오던 노동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소현숙,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그리고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김형수. 이들은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측에게 내몰려 고공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방관과 적극적인 탄압으로 노동자의 고통은 배가 됐다.
소년공 출신이라던 이재명이 당선되고,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농성자를 만나러 노동부 장관이나, 여당 대표가 방문하기도 했다. 노동부 장관은 “어떤 판결도 노사 당사자 간 합의보다 나은 판결은 없다는 게 평생의 경험”, “(대통령께서) 장관이 가진 권한을 아끼지 말고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하셨다”라며 허울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약간의 기대가 생겼지만, 그 뒤에도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갔다.
그 사이 건강 악화로 소현숙이 땅을 밟았다. 박정혜도 600일의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을 종료하고 땅을 밟았다. 고진수는 여전히 저 높은 구조물 위에 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옵티칼 노동자들과의 약속도 방치하고 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도 어렵사리 회사와 교섭을 잡았다. 정작 정부는 노동자의 양보만을 얘기하며 손을 놓았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양복을 입지 않았다
서울 도심을 행진한다. 매연을 맞으면 온몸이 더러워진다. 누가 밟고 지나갔을지 모르는 길바닥에서 노숙 농성을 한다. 흙먼지를 뒤집어쓴다. 해가 지날수록 옷은 해지고, 얼굴은 까매진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정리 해고 철회하라!” 거리에서는 내가 원하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
혹자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고상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약자들이 정부와 기업과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압력을 가하려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대화가 아니라 굴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한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없다. 운이 좋아 고상한 테이블에 앉아도 그것이 대화가 되는 자리라고 할 수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가 한창 화제를 모으던 2022년의 어느 날이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선전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삼각지역으로 나갔다. 활동가들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서 혼자서 쭈뼛거렸다. 그다음에 갈 때는 피켓을 만들어 가방에 넣어 놓고,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깃발을 망토처럼 두르고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와 있다고 활동가들이 당황하지 말라고, 지지의 의미를 표현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연대했다.
세상은 장애인의 속도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집단적으로 탑승하기만 했는데 지하철이 지연됐다. 서울교통공사는 폭력적으로 탄압했고, 일각에서는 혐오 섞인 공격도 이어졌다. 그래도 장애인이 처한 현실이 사회에 공론화됐고 박경석 대표는 MBC 〈100분 토론〉에 초대받았다. 방송은 시작부터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스튜디오에 설치된 ‘고상한 테이블’은 비장애인의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이준석한테는 테이블이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는 박경석 대표에게는 턱받이쯤 되는 높이에 있었다. 동등한 토론을 하기에 눈높이가 너무 달랐다.
양복 입은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약자들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다. 평등한 토론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고, 압력을 행사한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모으면 힘도 모인다. 저들이 겁을 먹을 만큼 모여야 교섭도 가능하고, 토론도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교육과정이 있다면
무엇이 민주주의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그러나 거리에 나가 목소리 내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이렇게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이 많은 줄 몰랐다. 어쩌면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멀게 느껴져서 인상 깊은 모습으로 남지 못했던 것 같다. 처절한 싸움은 흑백 사진 속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도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에 교육과정이 있다면 주된 내용은 체험학습이면 좋겠다. 적어도 싸우는 이들과 만나는 단원이라도 편성되면 좋겠다. 고공 농성에 오른 노동자들,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들, 계엄을 막으러 국회로 나온 시민들은 모두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배울 때는 차별받고 착취당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사회를 바꿔 나가는지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리에서 함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