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함께 만든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특성화고 교사
오랜만의 담임이기도 하고 3학년 담임이어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설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직전이 담임을 맡은 마지막 해였으니 5년 만이었다. 그때도 고3 담임이었다. 특성화고의 고3 담임은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을 모두 만나지만 올해는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며 겨울 방학을 보냈다. 지난 5년 동안 어느 나라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여러 일을 겪었고, 겪은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다. 요약하자면 ‘다음 소희’를 넘어 ‘3학년 2학기’까지 잘 보내고 싶었다. 민주주의, 인권은 그동안의 교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올해는 안전과 건강을 우선하려 했다. 현장실습생이 아닌 학생으로만 지내는 3학년 1학기 동안 어떻게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래야 2학기가 되어 실습이 시작되어 교실에 빈자리가 많아질 때 학생들에게 덜 미안하고 학생들도 덜 아쉬울 것이라 믿었다.
모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함께한 민주적인 학급
첫 학급 회의 때에도 학교에선 학급 자치 규정을 만들라고 했지만, 우리 반은 1학기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내야 가을에 등교가 아닌 출근을 할 때 덜 아쉬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계획을 세웠다. 학급 인원 19명 중 2~3명이라도 동의하거나 반대가 없기만 하다면 모두 다 하기로 했다. 3월엔 2주 정도 무작위로 뽑아 ‘어사즈’(어색한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활동)를 하기로 했고, 회의를 하던 그날부터 학급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주계와 부계 모두 맞팔하기로 하되, 부계는 팔로우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여름엔 물총 놀이를 하기로 하고, 졸업 전엔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도 했다. 처음엔 어사즈끼리 하루 급식 같이 먹는 정도의 스케일이었지만, 무엇을 제안하든 대부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아서인지 점점 품이 많이 드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학급 회의 시간이 끝날 때쯤 한 학생이 담임 선생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자는 제안을 했다. 반대 의견을 내는 학생은 없었고 동의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서 괜찮은 것 같아 나도 동의했다. 한편으론 ‘3월이라 뭐든 좋겠지, 곧 서로 바빠지고 갈등도 생기면 지금 세운 계획을 다 실행하기도 전에 그때 우리가 참 별의별 계획을 세웠었다는 기억만 남을 수도 있을 텐데, 초를 치고 싶지 않다’ 싶기도 했다.
학급 회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찾아왔다. 자신은 학급 활동에서 빠지고 싶다고, 자신은 친목이 싫고 조용히 지내다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졸업 사진도 안 찍을 생각이라고. 어차피 학급 회의 때에 약속했다. 어떤 활동이든 참가 여부는 당일 개인의 선택으로 하기로. 그러니 문제없을 거라고, 언제든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강제로 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6월이 되기 전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했다. 나름 민주적으로 정한 약속들이니 대부분 참여해 주었다. 어사즈를 하며 급식을 같이 먹고, 잔디밭에서 좀비 게임을 하고, 수박을 같이 먹고, 생일 파티도 했다. 그리고 체육대회가 있던 날에는 전교생이 하교한 후에 우리 반만 남아 물총 놀이를 3시간 동안 했다.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고 3시간의 놀이를 마친 후 다른 교사와 학생 없어 평온해진 운동장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며 저녁은 뭘 먹을까 수다를 떨었다. 모든 활동의 순간들을 누군가 학급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각자 하트를 눌렀다. 모든 이가 참여한 활동은 없었고 모든 활동에 불참한 학생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던 학생도 좀비 게임을 같이 했고, 수박인지 아이스크림인지는 같이 먹었던 것 같다. 더할 나위 없이 1학기는 계획대로 즐겁게 보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불안해졌다. 이런 식이면 내 집에도 모두 초대해야 하나?
학생들을 초대하는 일에 대해 가족에게는 그제야 물어봤고, 우리 집의 크기로 인해 19명을 한번에 초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음 학급 회의 때 미안하게도 계획을 수정해야 하니 안건을 다시 논의하자고 건의했다. 지금까지 첫 회의에서 정한 대로 다 했기에 급히 수정안을 만들었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제안했다. 동의가 되지 않으면 원안대로 가기로 했다. 수정안은 학교 인근 캠핑장을 내가 대여하는 것이고 불판이나 버너도 내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동의해 주었는데, 몇몇 학생은 어차피 우리 집에서 하더라도 물품 준비는 같이 하려고 했으니 각자 가능한 선에서 물품 준비를 나누자고 했고 갑자기 젓가락부터 김치, 쌈장까지 각자 가능한 물품들을 가져오겠다 했다. 짐이 무거울 것 같은 학생 둘은 아침 등교 시간에 내가 차로 태워 오기로 했다. 덕분에 6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19명 중 16명이 캠핑장에서 삼겹살을 먹고,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한 뒤, 달을 보며 헤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 학급에서 놀기만 한 이야기만 있어서 민망하지만 캠핑장에서 집에 오며 민주적인 학교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유하고 싶은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함께했다. 일찍 가고 싶은 학생은 중간에 갔고, 선약이 있던 학생이나 오고 싶지 않은 학생은 오지 않았다. 다 같이 가야 의미 있다며 못 간다는 학생을 원망하는 이도 없었고, 먼저 간다며 미안해하는 학생을 잡지도 않았다. 학급에서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 분위기가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그 말이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서로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어느 학생의 동성 애인이 교실 앞에 자주 찾아와도 그 모습에 불편해하는 학생도 없었다. 모태 신앙인이자 동성애를 혐오하는 교단의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도, ‘동성애는 죄’라고 어릴 때부터 하도 들어서 아직은 죄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모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미 신앙적으로 죄인들이고 자신도 여러 죄를 짓고 살기에 별일 아닌 것 같다고, 나중에는 동성애가 죄라는 생각조차 않을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어차피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친구라는 것이라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 학생을 위해 일찍 등교하는 학생 두엇이 아침마다 미리 휠체어를 대여해서 다친 학생의 등교 시간에 맞춰 교문으로 마중 나갔다.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책상 사이가 좁으니 좋아하던 창가 뒷자리를 양보해 준 학생도 있었다. 평소 소리를 잘 지르는 학생이 있어 처음에는 걱정도 했지만, 여러 학생이 그 학생의 소리에 반응해 주며 소리를 안 질러도 된다고 진정하고 말하라고 자주 말해 줘서 잘 어울릴 수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이 그 과정에서의 수고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는 더 나서서 도와줬고 누군가는 덜 했으며, 상황마다 서로 다른 역할들을 해 주어서 1학기 동안 학교가 힘들다고, 못 버티겠다고 말한 학생이 없었다.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 선거와 자치 활동에 더 신경을 썼던 예전의 학급보다, 안전과 건강만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올해 학급에서 더 민주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했고, 참여는 자유로웠고 꽤 자발적이었다. 학급 회의 시간이 아니어도 급히 정해야 할 것들은 조회나 종례 시간에 짬을 내어 학급 임원들이 회의를 진행해서 정했고 왜 종례 시간이 늦어지냐고 불만을 가지는 때도 없었다. 지하철 시간이 촉박한 학생은 일찍 갈 수 있었고 대신 다른 학생이 회의 내용을 단체 대화방에 올려 줘 동의 여부는 나중에 말해 줘도 됐다. 회의를 한 번만 해서 그 시간에 다 정하기보다는, 여러 번 회의를 할 것이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민주주의를 깬 고성
3학년 2학기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실습이 시작되었다. 겨울을 앞둔 지금, 우리 교실엔 수능을 준비하며 종일 자습하는 학생들만 남아있다. 19명 중 9명이 떠났다. 떠나기 전의 마지막 학급 회의 때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학교에 건의할 것을 정했다. 특히 많은 학생이 동의한 것은 갑자기 올해부터 단속이 강화된 명찰 착용 문제에 대한 건의였다. 학급회장은 다수의 의견을 모아 학생회와 생활안전부에 건의했다. 실습을 떠난 학생들이 가끔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들의 건의 사항은 어떻게 되었냐고. 학생회에서도 생활안전부에서도 공식 답변은 없었고, 내가 알아본 비공식 답변은 올해 처음 해 본 거니 끝까지 하고 다시 평가해 보겠다는 정도였다. 비공식 답변을 듣고 나니, 명찰 단속 강화에 반대하는 것이 우리 반 모두의 의견이었는데 너무 안일했나 반성하게 된다. 학급에서 민주적인 환경,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 만들기만큼 건의에도 더 신경 썼다면, 학생들이 건의 사항에 답이 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역시 학교는 어쩔 수 없다고 곧장 평가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난주, 졸업생의 결혼식에서 예전 학급의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3이라는 이유로 축제에 참여를 못 하게 하고 자습만 시켜서 교장실 앞에 대자보를 붙이고 여러 반 학생이 축제 시간 동안 3학년 교실 복도를 엄청난 양의 벽보로 도배했던 일, 교복 단속을 심하게 하고, 성적으로 차별하기도 해서 학생회장 공약으로 ‘차별 금지’를 내걸었다가 교장실로 불려 가고 그럼에도 끝까지 선거를 마치고 당선된 학생 이야기, 그 학생과 연대하기 위해 아침에 급하게 글을 써서 교문 밖에서 전단을 나눠 주던 일. 그땐 무섭고 떨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재밌었다는 추억담을 나누며 뷔페 음식을 먹었다.
일요일 오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아쉬움이 남았다. 올해도 뭔가 더 함께 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마침 올해 우리 반에선 10명이나 대선 투표를 했는데, 참정권에 대한 활동도 제대로 못 했구나. 그래도 학년 초의 학급 회의에서는 없었던 여름의 워터파크 투어와 수능 이후 실습생과 함께하는 주말 여행을 학생들끼리 회의하고 계획하고 역할을 나누어 준비하고 있으니, 올해는 이로써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선 실습 나간 학생들과 주중에 어땠는지 한 명 한 명 대화를 나눴다. 서로 주말을 잘 보내자며 모든 대화를 마치자 이제 곧 졸업이구나, 아쉽구나. 추워질수록 점점 더 아쉬움이 커지며 완결을 미루고 싶은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마음도 들었다. 며칠 전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진 그랬다.
그저께 수업 종이 치고 올라가는 길에 큰 소리가 들렸다. 괴성 같은 소리, 오랜만에 들었기에 더 놀랐다. 한동안 학교에서 저런 소리를 안 들어서 학교가 나아진 줄 알았었는데……. 착각이었다.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을 지도한다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교사, 억울한 듯 오열하는 학생, 몸부림치는 듯한 소리와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둘을 말리는 교감의 모습이 스친다. 학교는 아직 평온한 곳이 아니다. 교복 때문에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울고 반항하는 모습이 왜 이리 낯설지가 않을까. 익숙해질 수 없는 그런 모습에 한동안 몸이 굳어 있었다. ‘민주적인 공간’과 ‘안전한 공간’이란 그리 멀지 않은 개념이다.
올해 학교에선 우리 반 학생들과 졸업식을 기다리며 서로 아쉬워하다 엔딩 크레딧이 오를 줄 알았는데, 복도에서 들린 그 큰소리에 모든 게 사라지고, 지금까지 즐거웠던 것은 다 꿈이었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알려 주듯이 반전이 일어나며 학교는 공포물이 되었다. 이렇게 엔딩 크레딧이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의 학급 회의 시간, 주제는 교복, 그리고 교사의 생활지도 방식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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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함께 만든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특성화고 교사
오랜만의 담임이기도 하고 3학년 담임이어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설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직전이 담임을 맡은 마지막 해였으니 5년 만이었다. 그때도 고3 담임이었다. 특성화고의 고3 담임은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을 모두 만나지만 올해는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며 겨울 방학을 보냈다. 지난 5년 동안 어느 나라의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여러 일을 겪었고, 겪은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다. 요약하자면 ‘다음 소희’를 넘어 ‘3학년 2학기’까지 잘 보내고 싶었다. 민주주의, 인권은 그동안의 교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올해는 안전과 건강을 우선하려 했다. 현장실습생이 아닌 학생으로만 지내는 3학년 1학기 동안 어떻게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그래야 2학기가 되어 실습이 시작되어 교실에 빈자리가 많아질 때 학생들에게 덜 미안하고 학생들도 덜 아쉬울 것이라 믿었다.
모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함께한 민주적인 학급
첫 학급 회의 때에도 학교에선 학급 자치 규정을 만들라고 했지만, 우리 반은 1학기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내야 가을에 등교가 아닌 출근을 할 때 덜 아쉬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계획을 세웠다. 학급 인원 19명 중 2~3명이라도 동의하거나 반대가 없기만 하다면 모두 다 하기로 했다. 3월엔 2주 정도 무작위로 뽑아 ‘어사즈’(어색한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활동)를 하기로 했고, 회의를 하던 그날부터 학급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주계와 부계 모두 맞팔하기로 하되, 부계는 팔로우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여름엔 물총 놀이를 하기로 하고, 졸업 전엔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도 했다. 처음엔 어사즈끼리 하루 급식 같이 먹는 정도의 스케일이었지만, 무엇을 제안하든 대부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아서인지 점점 품이 많이 드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학급 회의 시간이 끝날 때쯤 한 학생이 담임 선생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자는 제안을 했다. 반대 의견을 내는 학생은 없었고 동의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서 괜찮은 것 같아 나도 동의했다. 한편으론 ‘3월이라 뭐든 좋겠지, 곧 서로 바빠지고 갈등도 생기면 지금 세운 계획을 다 실행하기도 전에 그때 우리가 참 별의별 계획을 세웠었다는 기억만 남을 수도 있을 텐데, 초를 치고 싶지 않다’ 싶기도 했다.
학급 회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찾아왔다. 자신은 학급 활동에서 빠지고 싶다고, 자신은 친목이 싫고 조용히 지내다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졸업 사진도 안 찍을 생각이라고. 어차피 학급 회의 때에 약속했다. 어떤 활동이든 참가 여부는 당일 개인의 선택으로 하기로. 그러니 문제없을 거라고, 언제든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강제로 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6월이 되기 전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했다. 나름 민주적으로 정한 약속들이니 대부분 참여해 주었다. 어사즈를 하며 급식을 같이 먹고, 잔디밭에서 좀비 게임을 하고, 수박을 같이 먹고, 생일 파티도 했다. 그리고 체육대회가 있던 날에는 전교생이 하교한 후에 우리 반만 남아 물총 놀이를 3시간 동안 했다.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고 3시간의 놀이를 마친 후 다른 교사와 학생 없어 평온해진 운동장에서 해 지는 모습을 보며 저녁은 뭘 먹을까 수다를 떨었다. 모든 활동의 순간들을 누군가 학급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각자 하트를 눌렀다. 모든 이가 참여한 활동은 없었고 모든 활동에 불참한 학생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던 학생도 좀비 게임을 같이 했고, 수박인지 아이스크림인지는 같이 먹었던 것 같다. 더할 나위 없이 1학기는 계획대로 즐겁게 보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불안해졌다. 이런 식이면 내 집에도 모두 초대해야 하나?
학생들을 초대하는 일에 대해 가족에게는 그제야 물어봤고, 우리 집의 크기로 인해 19명을 한번에 초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음 학급 회의 때 미안하게도 계획을 수정해야 하니 안건을 다시 논의하자고 건의했다. 지금까지 첫 회의에서 정한 대로 다 했기에 급히 수정안을 만들었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제안했다. 동의가 되지 않으면 원안대로 가기로 했다. 수정안은 학교 인근 캠핑장을 내가 대여하는 것이고 불판이나 버너도 내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동의해 주었는데, 몇몇 학생은 어차피 우리 집에서 하더라도 물품 준비는 같이 하려고 했으니 각자 가능한 선에서 물품 준비를 나누자고 했고 갑자기 젓가락부터 김치, 쌈장까지 각자 가능한 물품들을 가져오겠다 했다. 짐이 무거울 것 같은 학생 둘은 아침 등교 시간에 내가 차로 태워 오기로 했다. 덕분에 6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19명 중 16명이 캠핑장에서 삼겹살을 먹고,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한 뒤, 달을 보며 헤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 학급에서 놀기만 한 이야기만 있어서 민망하지만 캠핑장에서 집에 오며 민주적인 학교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유하고 싶은 시간에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함께했다. 일찍 가고 싶은 학생은 중간에 갔고, 선약이 있던 학생이나 오고 싶지 않은 학생은 오지 않았다. 다 같이 가야 의미 있다며 못 간다는 학생을 원망하는 이도 없었고, 먼저 간다며 미안해하는 학생을 잡지도 않았다. 학급에서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 분위기가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그 말이 폭력적이지만 않다면 서로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어느 학생의 동성 애인이 교실 앞에 자주 찾아와도 그 모습에 불편해하는 학생도 없었다. 모태 신앙인이자 동성애를 혐오하는 교단의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도, ‘동성애는 죄’라고 어릴 때부터 하도 들어서 아직은 죄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모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미 신앙적으로 죄인들이고 자신도 여러 죄를 짓고 살기에 별일 아닌 것 같다고, 나중에는 동성애가 죄라는 생각조차 않을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어차피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친구라는 것이라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 학생을 위해 일찍 등교하는 학생 두엇이 아침마다 미리 휠체어를 대여해서 다친 학생의 등교 시간에 맞춰 교문으로 마중 나갔다.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책상 사이가 좁으니 좋아하던 창가 뒷자리를 양보해 준 학생도 있었다. 평소 소리를 잘 지르는 학생이 있어 처음에는 걱정도 했지만, 여러 학생이 그 학생의 소리에 반응해 주며 소리를 안 질러도 된다고 진정하고 말하라고 자주 말해 줘서 잘 어울릴 수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이 그 과정에서의 수고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는 더 나서서 도와줬고 누군가는 덜 했으며, 상황마다 서로 다른 역할들을 해 주어서 1학기 동안 학교가 힘들다고, 못 버티겠다고 말한 학생이 없었다.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 선거와 자치 활동에 더 신경을 썼던 예전의 학급보다, 안전과 건강만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올해 학급에서 더 민주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했고, 참여는 자유로웠고 꽤 자발적이었다. 학급 회의 시간이 아니어도 급히 정해야 할 것들은 조회나 종례 시간에 짬을 내어 학급 임원들이 회의를 진행해서 정했고 왜 종례 시간이 늦어지냐고 불만을 가지는 때도 없었다. 지하철 시간이 촉박한 학생은 일찍 갈 수 있었고 대신 다른 학생이 회의 내용을 단체 대화방에 올려 줘 동의 여부는 나중에 말해 줘도 됐다. 회의를 한 번만 해서 그 시간에 다 정하기보다는, 여러 번 회의를 할 것이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민주주의를 깬 고성
3학년 2학기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실습이 시작되었다. 겨울을 앞둔 지금, 우리 교실엔 수능을 준비하며 종일 자습하는 학생들만 남아있다. 19명 중 9명이 떠났다. 떠나기 전의 마지막 학급 회의 때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학교에 건의할 것을 정했다. 특히 많은 학생이 동의한 것은 갑자기 올해부터 단속이 강화된 명찰 착용 문제에 대한 건의였다. 학급회장은 다수의 의견을 모아 학생회와 생활안전부에 건의했다. 실습을 떠난 학생들이 가끔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들의 건의 사항은 어떻게 되었냐고. 학생회에서도 생활안전부에서도 공식 답변은 없었고, 내가 알아본 비공식 답변은 올해 처음 해 본 거니 끝까지 하고 다시 평가해 보겠다는 정도였다. 비공식 답변을 듣고 나니, 명찰 단속 강화에 반대하는 것이 우리 반 모두의 의견이었는데 너무 안일했나 반성하게 된다. 학급에서 민주적인 환경,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 만들기만큼 건의에도 더 신경 썼다면, 학생들이 건의 사항에 답이 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역시 학교는 어쩔 수 없다고 곧장 평가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난주, 졸업생의 결혼식에서 예전 학급의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3이라는 이유로 축제에 참여를 못 하게 하고 자습만 시켜서 교장실 앞에 대자보를 붙이고 여러 반 학생이 축제 시간 동안 3학년 교실 복도를 엄청난 양의 벽보로 도배했던 일, 교복 단속을 심하게 하고, 성적으로 차별하기도 해서 학생회장 공약으로 ‘차별 금지’를 내걸었다가 교장실로 불려 가고 그럼에도 끝까지 선거를 마치고 당선된 학생 이야기, 그 학생과 연대하기 위해 아침에 급하게 글을 써서 교문 밖에서 전단을 나눠 주던 일. 그땐 무섭고 떨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재밌었다는 추억담을 나누며 뷔페 음식을 먹었다.
일요일 오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아쉬움이 남았다. 올해도 뭔가 더 함께 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마침 올해 우리 반에선 10명이나 대선 투표를 했는데, 참정권에 대한 활동도 제대로 못 했구나. 그래도 학년 초의 학급 회의에서는 없었던 여름의 워터파크 투어와 수능 이후 실습생과 함께하는 주말 여행을 학생들끼리 회의하고 계획하고 역할을 나누어 준비하고 있으니, 올해는 이로써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선 실습 나간 학생들과 주중에 어땠는지 한 명 한 명 대화를 나눴다. 서로 주말을 잘 보내자며 모든 대화를 마치자 이제 곧 졸업이구나, 아쉽구나. 추워질수록 점점 더 아쉬움이 커지며 완결을 미루고 싶은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마음도 들었다. 며칠 전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진 그랬다.
그저께 수업 종이 치고 올라가는 길에 큰 소리가 들렸다. 괴성 같은 소리, 오랜만에 들었기에 더 놀랐다. 한동안 학교에서 저런 소리를 안 들어서 학교가 나아진 줄 알았었는데……. 착각이었다.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을 지도한다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교사, 억울한 듯 오열하는 학생, 몸부림치는 듯한 소리와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둘을 말리는 교감의 모습이 스친다. 학교는 아직 평온한 곳이 아니다. 교복 때문에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울고 반항하는 모습이 왜 이리 낯설지가 않을까. 익숙해질 수 없는 그런 모습에 한동안 몸이 굳어 있었다. ‘민주적인 공간’과 ‘안전한 공간’이란 그리 멀지 않은 개념이다.
올해 학교에선 우리 반 학생들과 졸업식을 기다리며 서로 아쉬워하다 엔딩 크레딧이 오를 줄 알았는데, 복도에서 들린 그 큰소리에 모든 게 사라지고, 지금까지 즐거웠던 것은 다 꿈이었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알려 주듯이 반전이 일어나며 학교는 공포물이 되었다. 이렇게 엔딩 크레딧이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의 학급 회의 시간, 주제는 교복, 그리고 교사의 생활지도 방식이다.
교육공동체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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