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 채효정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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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채효정 

본지 편집위원장




유리창 너머로 몇몇 사내들이 나를 쳐다본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책을 읽는데, 카페 안으로 들어와서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 친구 아무개예요” 가까이서 보니 아들의 친구들이다. 추석 연휴 때였다. “아이고, 추석이라고 집에 왔구나!” 반갑게 인사하고 보내고 나니 먼저 아는 체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그 애들을 몰라본 것은, 눈이 나빠져서만은 아니다. 녀석들의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어엿한 청년이 되었으니 앳된 모습이 사라진 것은 당연하지만, ‘아저씨’라 불러도 될 정도로 나이가 훌쩍 들어 버린 얼굴이었다. 다들 대학생이었으니, ‘중간고사 공부하느라 지친 걸까?’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그와는 다른 느낌의 지치고 피로한 얼굴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읍내에서 누구, 누구, 누구를 만났거든, 근데 너무 변해서 처음에 몰라봤어. 애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삭았대?” “응? 다들 담배를 너무 피워서 그런가?” “담배를 그렇게 많이 펴?” “응, 일이 힘드니까.” “무슨 일을 하는데……?” “닥치는 대로.” “왜?” “돈 모으려고.” 그냥 대학에 다니고 있을 줄 알았는데, K는 벌써 5000만 원을 모았고, B는 중고차를 샀다고 한다. “차를? 벌써?” “응, 일하는 식당에서 차가 필요해서.” 왜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지 이유를 물었다. “뭘 하려고 해도 일단 돈이 필요하니까.” 어쩌면 청년들이 닥치는 대로 하는 일 중에는 쿠팡 물류센터의 야간 노동도 있을 것이고, 택배 상하차 까대기 노동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요즘은 게임도 잘 안 하고 술도 이젠 별로 안 마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럴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일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낯설었다. 정확히 말하면 ‘20대 청년’의 얼굴을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 낯설었다. 그 ‘청년’들은 여름날 동네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하던 어린이들이었다. 이 ‘대학생’들에게 학점 경쟁, 취업 경쟁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학점이나 대학 졸업장이 미래에 아무런 보장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학은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하라고 권하고,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가가 되라며 자영업의 길로 떠미는 사회다. 사회학이나 경제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근로 소득보다 자산 소득이 훨씬 더 크고, ‘격차’가 ‘자산’에서 생긴다는 것을 저절로 알아 버리게 되는 시대다. 우리 시대의 승자는 ‘건물주’가 되고, 지대 수입과 불로 소득이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능력자의 표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창업을 하든, 투자를 하든, 자금이 필요하다. 불로 소득자인 부모가 있지 않는 한,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목돈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청년들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초기 자금, ‘자산’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을 창업에 쓰거나 개미 투자자로 증시에 쏟아부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아, 안 돼!” 비명이 절로 나왔다.


청년들의 자산은 현금만이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 몰라서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졌다. 청년들은 청소년 때와 얼굴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몸도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 마르고 비실비실하던 아이들도 다들 몸이 다부지고 탄탄했다.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그럴까. 아니다. 구릿빛 피부와 근육질의 팔뚝으로 그려지곤 하는 ‘노동으로 단련된 몸’은 옛날에도 환상이었다. 이미 오래전 대학 시절 공장 활동에서 만난 노동자들을 통해 알고 있지만, 일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래서 몸이 그렇게 좋았구나!” 따위의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짐작대로 그 답은 틀렸다. “다들 운동해, 엄청 열심히 몸 만들어.” ‘피트니스는 부르주아의 신앙’이라는 말이 있지만, 노동 계급 청년들의 취미 활동도 ‘헬스’였다. 신체 또한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자산으로서 ‘신체 자본’인 것이다. 


게다가 남자들에게 근육질의 몸은 왜소한 몸보다 타인으로부터 쉽게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갑옷’이 되고, ‘남자다운 몸’은 ‘남성성’의 상징이 된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성, 인종, 정체성의 ‘변경할 수 없는’ 특권은 또 다른 중요한 ‘자산’이다. 남성, 백인, 순수한 한국인, 기독교 등 ‘성, 인종, 민족, 국가, 종교’와 같은 정체성의 표지가 특권이자 보호 장치가 되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귀속감을 찾고 그곳에서 파시즘이 발호한다. 차별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집단에 속한다는 것이 개인의 보호와 안전장치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차별과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나쁜 종류의 귀속감에 대한 희구는, 사회 도처에서 불안과 위험이 증대되지만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 안전망은 더 취약해질 때 더욱더 크게 나타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러하다.

 

추석 지난 지 한참이 되었지만 그날 들었던 ‘닥치는 대로’와 ‘악착같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박혀 빠지질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하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와, 이를 위해서는 좋은 노동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노동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 본 적이 없는데, 노동의 공론장은 비참한 사고로 가득 차 있다. 노동하는 법 - 노동조합 활동을 포함하여 –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의 조건이 와해해 버린 곳에서 노동은 오직 돈 버는 수단이 되고, 노동에 대한 계급적 긍지와 사회적 규범이 무력한 곳에서는 ‘닥치는 대로’만이 남는다. ‘살만한 삶’을 살 가능성이 봉쇄되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비난하고 계몽할 수 있을까. 빚지는 청년들을 ‘소비의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청소년이 청년이 되는 시간 동안 세상은 돈의 필요와 소중함을 줄기차게 가르치지만, 노동의 의미와 소중함은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대신 각자 노동을 하면서 이 사회가 노동자를 멸시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어떤 노동을 해야 하고 어떤 노동은 해선 안 되는지에 대한 기준, 노동과 직업에 대한 원칙, 가치, 철학, 계급적 입장 같은 것, 나의 존엄을 짓밟는 노동을 거부하는 법,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법, 함부로 대하는 이들에게 모멸당하지 않는 법 등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투자(투기)하는 법’을 알려 주겠다는 어른들은 넘치지만,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는 어른들은 없다. 금융 투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사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금융 수탈과 부채 종속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민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채는 산업 프롤레타리아를 금융 프롤레타리아로 변형하며 우리의 삶과 생명을 수탈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사슬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날 만난 청년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마 대부분 ‘빨간색(국힘)’에 가까울 것이다. 생각보다 더 극우로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청년들은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하는 청년들이다. 주유소에서는 물 한 병 더 챙겨 주고, 식당에서는 반찬 한 접시를 더 챙겨 주는 살가운 아이들이었고, 지금도 제힘으로 살아가 보려 애쓰는 청년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대남’으로 호명되는 청년들이자 ‘청년 극우화’로 문제시되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박근혜, 문재인 정부였음을 상기하자.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스캔들로 무너졌고, 문재인 정부는 조국 스캔들로 자멸했다. 젊은이들에게 이준석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낡은 ‘양당 체제’에 맞서 싸우는 야당의 젊은 정치인으로 보이는 이유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새로운 인물’을 지지한다는 건, 달리 보면 이들이야말로 지금과 다른 새로운 정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정 담론’에 포획당하긴 했지만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고 근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대남’과 같은 표현을 통해 추상화된 ‘20대 청년’이, 추석날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내가 아는 구체적인 동네 청년의 얼굴로 나타났을 때, 나는 그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놓쳐 버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어요(Sorry, we missed you)’다. 영화 속에서 리키의 아들도, 열심히 학교에 다녀 봤자 결국 자신의 아버지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다. 《힐빌리의 노래》로 노동계급 청년들의 좌절감을 세상에 전한 J. D. 벤스가 트럼프와 같은 신념을 공유하게 된 것처럼, 리키도 그의 아들도, 그리고 우리들도, 돈 말고는 구원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변신할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택배노동자 리키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몸으로도 운전대를 잡았는데, 지금 한국에서 쿠팡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그런 노동 현장으로 오기 전에 학교가 있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놓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잃는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잃지 않으려는 마음, 나는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우리가 사람인 것을 잃지 않으려고 독재에 저항했다면, 지금 교육운동은 자본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함께 분투해야 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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