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육, 그 존재의 밀도 ❸
감시를 바라게 되는 학교
불신과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으려면
난다 n23podo@gmail.com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 중에는 학교에서 몰래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대자보를 붙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범하지 못해 작은 규모로 실행하느라 별로 티가 나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작은 행동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은 대부분의 학교가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싫어하고 탄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전에 동료 활동가에게서 들은 경험담이다. 새벽같이 등교해 두발 규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몰래 책상 서랍마다 넣어 두었다가 학생지도부로 불려 가 벌점을 받았다고 한다. 공식 징계를 하면 일이 커질 테니 ‘교사 지시 불이행’ 항목으로 처리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을까. 알고 보니 그 학교에는 교실 내부는 아니지만 각 출입구와 교사(校舍) 앞뒤, 그리고 계단마다 CCTV(감시 카메라)가❶ 설치되어 있었고 교사들이 열심히 영상 기록을 하나하나 돌려 본 끝에 결국 배포한 학생을 찾아냈던 것이다.
최근 교실 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게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이 일화가 다시 떠올랐다. 과거에도 학생 간 폭력(학교폭력) 대책으로 감시 카메라 설치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먼저 들었던 마음은 거부감이었다. 학생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를 두고 주로 교사들이 우려와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데, 법안이 제안된 취지에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등을 방지하고 문제 발생 시 증거를 수집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이렇게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상황을 보며, 오늘날 학교가 처한 답답한 현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교육 주체들 사이에 신뢰가 약해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은 점점 사법적 절차와 ‘증거’가 중요해졌다. 학생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며, 통제를 더욱 강화해 온 학교는 이제 교사에 대해서도 더 철저한 감독과 감시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불신 그리고 불평등
요즘 학교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폭력 관련 법, 아동학대 관련 법, 그리고 교권 관련 법 등이 각종 갈등과 문제를 과도하게 사법 절차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화로 인해 갈등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시간과 돈은 많이 들어가고, 공동체는 더 쉽게 붕괴된다는 지적이다. 교실 내에도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주장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교가 사법화되었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사법화 때문에 학교공동체가 파괴되었다거나 교육 주체 간 불신이 강화되었다는 말들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과연 사법화라는 현상이 불거지기 전에는 교육 주체 사이에 충분한 존중과 신뢰가 있었나?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거나 성추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 교육 주체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는 굴종이나 공포에 가까웠다. 학생들 사이의 괴롭힘 문제를 호소해도 묵살당하기 일쑤이던 학교의 상황에서 학생들이 느낀 것은 고립감이나 침묵에 가깝지 않았나. 어쩌면 사법화는 학교가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채 쌓아 온 불신의 결과로 나타난 모습일지도 모른다.
물론 ‘강력 처벌’을 내세운 일부 법률들이나 사회 전반의 사법화 경향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가 법과 제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학교는 애초에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고, 공동체를 충분히 경험할 기반도 갖추지 못했다. 학교는 비민주적이고 경쟁적인 구조 속에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불신을 쌓아 왔다. 이런 문제들이 비판받고 공론화되고, 교육 주체들이 학교에 민원이나 소송 등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을 때, 교육 당국이나 학교들은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뢰가 약화되었다거나 무너졌다는 표현보다는, 원래부터 신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불신이 더 불거지고 노골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의 축이 있다. 바로 주체들 사이의 불평등한 조건이다. 감시 카메라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에는, 장애 학생이 겪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양육자가 장애 학생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내 얻은 자료가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 판결, 학생들의 스마트기기 소지·사용이 크게 제한당하게 된 법률 개정이 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등은 학생의 촬영·녹음을 교권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교사는 교권 침해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해 촬영·녹음을 하거나 다른 학생에게 이를 지시할 수 있다. 상황 기록이나 증거 수집에 있어 교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인 것이다. 심지어 교사와 교육청이 아동학대 행위를 ‘정당한 생활지도’ 혹은 교육 활동이라 주장하거나, 교원단체들이 아동학대 행위자에서 교사는 제외해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에 대한 객관적 증거 수집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결국 교실 내 감시 카메라는 학생들과 양육자가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을 대부분 박탈된 상황에서 대안처럼 제시된 셈이다. 또한 ‘교권 강화’를 외치며 교사가 자의적으로 지시나 조치를 할 수 있게 할수록, 교사의 행위의 정당성과 근거를 보증하고 감독하라는 요구는 커질 것이다. 양육자 및 시민들의 학교 출입이 크게 제한되면서 학교 안의 상황을 함께 바라보거나 살필 수 없게 만든 조치도 기계를 통한 모니터링 요구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교실 안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 반복되는 인권침해와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걸까? ‘교권 강화’를 내세운 각종 방침에 대응하고자 하는 맥락이 있다는 점을 살피면서도 우려되는 점이 더 많다. 결국 감시 카메라 확대는 교육 주체들 사이의 상호 신뢰와 견제를 포기한 채, 더 큰 권력을 가진 학교 기관이나 국가에게 감시와 감독의 권한을 넘기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감시 사회의 현실적인 위험성
학교만이 아니라 불평등하고 불신이 가득한 세상 곳곳에서 ‘감시 사회’를 요구하는 주장은 힘을 키워 왔다. 감시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참하고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못된 일이 재발하는 것을 예방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로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응답할 책임을 나누기보다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무엇에도 엮이지 않기를 바라게 한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카메라에 기록된 ‘팩트(사실) 체크’ 위주의 과정과 형식적/사법적 절차만 중요해지며, 고통의 뿌리인 불평등과 차별, 폭력을 조장하는 구조를 마주하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인권운동은 오랫동안 사회 전반에 감시 카메라가 늘어나는 흐름을 비판해 왔다. 사건 발생 시 증거 수집 등의 효과는 있겠지만, 이것이 곧 인권 침해나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 권력에 의한 감시 체계의 부작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권력자가 감시 카메라를 오직 범죄 예방에만 사용할 리 없으며 감시 체계가 강화될수록, 부당하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 통제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교실 내 감시 카메라 문제도 다르지 않다. 앞서 말했듯 감시 카메라는 학생들의 자치적이고 비판적인 활동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교실 내 CCTV 설치의 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의견 표명’에서 학생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고 감시가 강화될수록 학생인권 침해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 기록 또한 교권 침해 증거로만 많이 쓰이게 되진 않을까?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록된 영상 정보의 열람이 가능한 조건과 절차, 누가 열람할 수 있는지 등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학교에서,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법령도, 국가인권위의 권고 사항도 어기기 일쑤인 학교에서, 과연 이런 방법들이 갖춰진다고 해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학교 구조가 그대로인 상태라면, 감시 카메라 관리와 정보 접근 권한 등에서도 더 큰 권력을 가진 학교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글머리에서 이야기한 사례와 같이 감시 카메라를 학교 비판 유인물을 배포한 사람을 찾는 데 쓴 것 자체가 설치·운용 목적 위반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이 이를 학교에 따지거나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안전장치를 담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개방하고 연결되고 함께하는 대안을 찾아
학교는 거듭된 불신과 불평등의 결과로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까지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로는 단지 영상이 찍힌 몇몇 사건이 처벌받을 뿐, 문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에 정말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적 변화는 오히려 뒷전이 될지도 모른다. 감시 카메라에게 시선과 증언을 맡길수록, 우리는 더욱 단절되고 서로 무책임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다만 그러니까 교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말자며 넘어갈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사법화의 문제도, 아동학대의 위험도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세상과 타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닫힌 상태를 내버려두면 고립감은 커지고 더 큰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고립은 폐쇄성을 낳고 이는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그렇기에 학교는 최소한 지금보다 더 개방적으로 열려야 한다. 서로 간의 개입과 참여와 연결이 활성화될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역량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상황을 기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장하고,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상호적으로 학교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학교에 왜 이토록 오랫동안 불신이 뿌리내렸는지, 불평등과 불균형을 함께 인식하고 바꿔 나가기 위해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객관적인 재판 증거가 아닌 신뢰와 평등, 참여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CCTV의 시선을 빌려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 주는 학교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➊ CCTV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losed Circuit Television)의 준말로, 본래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영상 촬영 및 모니터링 장치를 뜻한다. 그러나 ‘CCTV’지만 외부 접속이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에 CCTV란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설치 목적이나 의미를 생각하면 ‘감시 카메라’, 또는 ‘보안/방범 카메라’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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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를 바라게 되는 학교
불신과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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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 중에는 학교에서 몰래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대자보를 붙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대범하지 못해 작은 규모로 실행하느라 별로 티가 나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작은 행동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은 대부분의 학교가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싫어하고 탄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전에 동료 활동가에게서 들은 경험담이다. 새벽같이 등교해 두발 규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몰래 책상 서랍마다 넣어 두었다가 학생지도부로 불려 가 벌점을 받았다고 한다. 공식 징계를 하면 일이 커질 테니 ‘교사 지시 불이행’ 항목으로 처리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을까. 알고 보니 그 학교에는 교실 내부는 아니지만 각 출입구와 교사(校舍) 앞뒤, 그리고 계단마다 CCTV(감시 카메라)가❶ 설치되어 있었고 교사들이 열심히 영상 기록을 하나하나 돌려 본 끝에 결국 배포한 학생을 찾아냈던 것이다.
최근 교실 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게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이 일화가 다시 떠올랐다. 과거에도 학생 간 폭력(학교폭력) 대책으로 감시 카메라 설치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먼저 들었던 마음은 거부감이었다. 학생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를 두고 주로 교사들이 우려와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데, 법안이 제안된 취지에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등을 방지하고 문제 발생 시 증거를 수집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이렇게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상황을 보며, 오늘날 학교가 처한 답답한 현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교육 주체들 사이에 신뢰가 약해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은 점점 사법적 절차와 ‘증거’가 중요해졌다. 학생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며, 통제를 더욱 강화해 온 학교는 이제 교사에 대해서도 더 철저한 감독과 감시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불신 그리고 불평등
요즘 학교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폭력 관련 법, 아동학대 관련 법, 그리고 교권 관련 법 등이 각종 갈등과 문제를 과도하게 사법 절차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화로 인해 갈등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시간과 돈은 많이 들어가고, 공동체는 더 쉽게 붕괴된다는 지적이다. 교실 내에도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주장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교가 사법화되었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사법화 때문에 학교공동체가 파괴되었다거나 교육 주체 간 불신이 강화되었다는 말들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과연 사법화라는 현상이 불거지기 전에는 교육 주체 사이에 충분한 존중과 신뢰가 있었나?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거나 성추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던 시대, 교육 주체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는 굴종이나 공포에 가까웠다. 학생들 사이의 괴롭힘 문제를 호소해도 묵살당하기 일쑤이던 학교의 상황에서 학생들이 느낀 것은 고립감이나 침묵에 가깝지 않았나. 어쩌면 사법화는 학교가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채 쌓아 온 불신의 결과로 나타난 모습일지도 모른다.
물론 ‘강력 처벌’을 내세운 일부 법률들이나 사회 전반의 사법화 경향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가 법과 제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학교는 애초에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고, 공동체를 충분히 경험할 기반도 갖추지 못했다. 학교는 비민주적이고 경쟁적인 구조 속에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불신을 쌓아 왔다. 이런 문제들이 비판받고 공론화되고, 교육 주체들이 학교에 민원이나 소송 등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을 때, 교육 당국이나 학교들은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뢰가 약화되었다거나 무너졌다는 표현보다는, 원래부터 신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불신이 더 불거지고 노골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의 축이 있다. 바로 주체들 사이의 불평등한 조건이다. 감시 카메라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에는, 장애 학생이 겪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양육자가 장애 학생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내 얻은 자료가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 판결, 학생들의 스마트기기 소지·사용이 크게 제한당하게 된 법률 개정이 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등은 학생의 촬영·녹음을 교권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교사는 교권 침해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해 촬영·녹음을 하거나 다른 학생에게 이를 지시할 수 있다. 상황 기록이나 증거 수집에 있어 교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인 것이다. 심지어 교사와 교육청이 아동학대 행위를 ‘정당한 생활지도’ 혹은 교육 활동이라 주장하거나, 교원단체들이 아동학대 행위자에서 교사는 제외해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에 대한 객관적 증거 수집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결국 교실 내 감시 카메라는 학생들과 양육자가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을 대부분 박탈된 상황에서 대안처럼 제시된 셈이다. 또한 ‘교권 강화’를 외치며 교사가 자의적으로 지시나 조치를 할 수 있게 할수록, 교사의 행위의 정당성과 근거를 보증하고 감독하라는 요구는 커질 것이다. 양육자 및 시민들의 학교 출입이 크게 제한되면서 학교 안의 상황을 함께 바라보거나 살필 수 없게 만든 조치도 기계를 통한 모니터링 요구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교실 안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 반복되는 인권침해와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걸까? ‘교권 강화’를 내세운 각종 방침에 대응하고자 하는 맥락이 있다는 점을 살피면서도 우려되는 점이 더 많다. 결국 감시 카메라 확대는 교육 주체들 사이의 상호 신뢰와 견제를 포기한 채, 더 큰 권력을 가진 학교 기관이나 국가에게 감시와 감독의 권한을 넘기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감시 사회의 현실적인 위험성
학교만이 아니라 불평등하고 불신이 가득한 세상 곳곳에서 ‘감시 사회’를 요구하는 주장은 힘을 키워 왔다. 감시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참하고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못된 일이 재발하는 것을 예방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로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응답할 책임을 나누기보다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무엇에도 엮이지 않기를 바라게 한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카메라에 기록된 ‘팩트(사실) 체크’ 위주의 과정과 형식적/사법적 절차만 중요해지며, 고통의 뿌리인 불평등과 차별, 폭력을 조장하는 구조를 마주하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인권운동은 오랫동안 사회 전반에 감시 카메라가 늘어나는 흐름을 비판해 왔다. 사건 발생 시 증거 수집 등의 효과는 있겠지만, 이것이 곧 인권 침해나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 권력에 의한 감시 체계의 부작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권력자가 감시 카메라를 오직 범죄 예방에만 사용할 리 없으며 감시 체계가 강화될수록, 부당하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 통제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교실 내 감시 카메라 문제도 다르지 않다. 앞서 말했듯 감시 카메라는 학생들의 자치적이고 비판적인 활동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교실 내 CCTV 설치의 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의견 표명’에서 학생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고 감시가 강화될수록 학생인권 침해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 기록 또한 교권 침해 증거로만 많이 쓰이게 되진 않을까?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록된 영상 정보의 열람이 가능한 조건과 절차, 누가 열람할 수 있는지 등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학교에서,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법령도, 국가인권위의 권고 사항도 어기기 일쑤인 학교에서, 과연 이런 방법들이 갖춰진다고 해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학교 구조가 그대로인 상태라면, 감시 카메라 관리와 정보 접근 권한 등에서도 더 큰 권력을 가진 학교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글머리에서 이야기한 사례와 같이 감시 카메라를 학교 비판 유인물을 배포한 사람을 찾는 데 쓴 것 자체가 설치·운용 목적 위반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이 이를 학교에 따지거나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안전장치를 담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개방하고 연결되고 함께하는 대안을 찾아
학교는 거듭된 불신과 불평등의 결과로 교실 내 감시 카메라 설치까지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로는 단지 영상이 찍힌 몇몇 사건이 처벌받을 뿐, 문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에 정말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적 변화는 오히려 뒷전이 될지도 모른다. 감시 카메라에게 시선과 증언을 맡길수록, 우리는 더욱 단절되고 서로 무책임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다만 그러니까 교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말자며 넘어갈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사법화의 문제도, 아동학대의 위험도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세상과 타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닫힌 상태를 내버려두면 고립감은 커지고 더 큰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고립은 폐쇄성을 낳고 이는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 그렇기에 학교는 최소한 지금보다 더 개방적으로 열려야 한다. 서로 간의 개입과 참여와 연결이 활성화될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역량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상황을 기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장하고,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상호적으로 학교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학교에 왜 이토록 오랫동안 불신이 뿌리내렸는지, 불평등과 불균형을 함께 인식하고 바꿔 나가기 위해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객관적인 재판 증거가 아닌 신뢰와 평등, 참여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CCTV의 시선을 빌려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 주는 학교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➊ CCTV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losed Circuit Television)의 준말로, 본래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영상 촬영 및 모니터링 장치를 뜻한다. 그러나 ‘CCTV’지만 외부 접속이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에 CCTV란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설치 목적이나 의미를 생각하면 ‘감시 카메라’, 또는 ‘보안/방범 카메라’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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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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