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교육, 그 존재의 밀도 ❷
학교가 통합교육에
실패하는 방식
양여경 yangyeokyung@gmail.com
서울 초등 특수 교사
올해로 ‘특수 교사’의 세계에 입문한 지 20년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학교는 여전히 내게 낯설고 조심스럽고 힘든 곳이다. 학창 시절 내 곁에는 교사였던 아버지와 학부모 역할에 열성적이었던 어머니,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삐딱함을 견뎌 주고 끝내 웃어 주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내가 거침없음과 예의 없음을 자랑쯤으로 여기며 학교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굳이 타인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학교는 왜 부적응의 공간이 되었을까? 성장 과정 내내 온전히 ‘나의 것’이라 믿었던 학교는 이제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장애 학생의 교사’라는 달라진 신분 때문임을 확신한다. 일상 곳곳에서 보편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고, 언제나 추가적인 조건과 설명을 요구받는 존재. 학교에서 나는 ‘특수한’ 학생들과 함께 이등 시민의 삶을 체험 중이다.
우리 사회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게 처음부터 다른 조건이 제공되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존중, 선택, 신뢰, 인내, 연대, 안전과 같이 학교를 아름답게 만드는 언어들은 결코 모두를 위한 것이 되지 못한다. 문제와 무능으로 정의된 학생에게는 낮은 기대와 그에 따른 분리와 배제, 질 낮은 서비스, 통제와 감시, 권리 박탈이라는 구조적 차별이 주어진다. 이에 더해 자기 충족적 예언은 이들의 실제 행동을 점차 사회의 낮은 기대에 맞추도록 이끈다. 더욱이 사회는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집단과 연결된 사람들(교사, 가족, 지원 인력 등)에게까지 공유된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그 집단과 유사한 가치 절하 및 지위 하락을 경험하도록 만든다.❶ 이는 사회가 가치의 역전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고 소수 집단의 주변화와 무능화를 확장하기 위해 마련한 정교한 전략 중 하나이다. 그 결과 발명된, ‘가치 절하된 정체성’과 ‘사회적 고립’은 ‘집단의 특성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는 규칙의 반복 속에서 불평등과 차별은 개인의 선의나 의지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굳어진다.❷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 재생산에 깊이 관여해 온 학교는, 동일한 방식으로 장애 학생 통합교육 또한 끈질기게 실패시켜 왔다. 불평등의 핵심이 ‘다름’ 자체가 아니라 ‘다름에 따른 차별적 가치 부여’라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학교는 ‘다름의 수용’, ‘다양성 이해’라는 그럴듯한 말들로 학생 간의 차이, 교사 간의 위계를 더욱 부각시켜 왔다. 장애 정체성과 특수교육 전문성을 끊임없이 지우고 가치 절하하고 폄훼하여 비장애 중심의 학교 체제와 일반 교육 왕국의 철옹성을 단단히 지켜 냈다. 사실 학교는 현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통합교육 성공’이 두렵다. 그래서 ‘통합교육 성공’을 막아 낼 거대 작전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실행시킴으로써 ‘통합교육 실패’에 늘 완벽하게 성공해 왔다.
나는 지난 20년간 통합교육 최선의 실제를 끈질기게 꿈꾸어 왔으나 현실에서는 반복적으로 뼈아픈 배신감과 깊은 소외감을 마주해야 했다. ‘특수한’ 학생들과 함께 ‘가치 절하된 정체성’의 통증을 몸으로 겪으며 학교 내 이등 시민의 위치를 감내해야 했다. 학창 시절 마음껏 누렸던 ‘근거 없는 특권’의 추억을 뒤로한 채, 어느새 나는 학교가 짜놓은 이 은밀하고 교묘한 사기극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학교의 성공을 응원하지 않겠다. 학교의 실패를 슬퍼하지도 않겠다. 지금 필요한 일은 통합교육의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통합교육을 실패로 이끈 조건들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학교가 통합교육에 실패하는 방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학교의 은폐된 전략을 하나씩 가시화하는 일, 그 ‘꼼수’를 언어로 드러내는 일만이 학교의 의도된 실패에 맞설 수 있는 유력한 대응 전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첫 번째 작전 : 장애 학생 능력 지우기
인간의 능력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다. 능력은 어느 한 가지 수치로 환원할 수 없고, 타인과 비교하여 우열로 구분할 수도 없음을 교사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에 학교의 평가 역시 서열에서 성장으로, 단일 지표에서 다차원적 준거로, 지식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최신의 이해가 장애 학생에게만큼은 온전히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정상성 논리를 통해 교사들의 사고를 제한하고, 장애 학생의 능력을 여전히 결핍의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만든다.
본디 장애(disability)라는 용어는 능력(ability)의 없음(dis-)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 집단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초기 단계부터 ‘능력을 기준으로 한 결핍’을 강조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학교는 이러한 명칭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장애 학생을 능력의 주체가 아닌 결핍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서비스 적격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애’ 표찰은, 어느새 학생의 대표 정체성이 되고 장애 학생이 지닌 수많은 특성과 강점, 그들 안에서의 차이는 조용히 지워진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이에 학교는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한 더욱 정교한 전략에 돌입한다. ‘정상 안으로 밀어 넣기’와 ‘정상 밖으로 밀어내기’가 그것이다. 두 전략은 상반된 방식으로 작동되지만, 결국 장애 학생을 무능력한 집단으로 고착시키는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전략1] 정상 안으로 밀어 넣기
“봄이가 학교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전보다 친구들과도 더 잘 어울리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정상 아이만큼 될 수 있겠어요.”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 자리, 교사가 장애 학생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 건넨 말이다. 교사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운데, 학교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해 작동시키는 첫 번째 전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교는 교사 양성 단계에서부터 정상 분포❸를 통한 인간 구분을 강조함으로써 ‘정상’ 범주에 속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교육 현장에 전파한다. 이에 더해 학생 성장을 돕고자 하는 교사의 직업적 사명감을 자극하여,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정상과 표준을 향해 이동시키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며 의미 있는 성과라는 편협한 사고를 만들어 낸다. 소위 정상으로 규정된 범주 밖에도 수많은 능력의 척도와 삶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도록 이끈다. 결국 학교에서 장애 학생의 현재는 지워지고, ‘정상 안으로 들어가라’는 요구만이 남는다. 정상을 향한 갈망 속에서 장애 학생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확인하게 되고, 장애 학생 지도에 버거움과 무력감을 느낀 교사의 원망은 다시 학생의 ‘능력없음(disability)’으로 향한다.
[전략2] 정상 밖으로 밀어내기
교사1 : “선생님~, 여름이는 어쩜 그렇게 웃는 모습이 예뻐요?.”
교사2 : “그치, 정말 빛이 나게 예쁘지. 근데 그럼 뭐해! 그래 봤자 거기잖아…….”
여름이를 향한 교사들의 사랑과 걱정이 묻어나는 대화 속에서, 나는 학교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해 작동시키는 두 번째 전략을 발견했다. 학교는 교사들의 평가 본능을 자극하여 ‘여기’는 합격자의 공간, ‘거기’는 실격자의 공간이라는 근거 없는 이분법을 유포한다. 합격자와 실격자가 한 공간에 섞이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능함과 취약함, 온전함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현 체제의 위계적 질서에는 균열이 생긴다. 쉿! 학교는 두 세계의 경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공간의 구분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바꾸어 놓는다. 정상성에 고착된 장애 학생의 정체성은 유동적일 수 없기에, 한번 정해진 학생의 위치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거기’로 명명된 학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온전함과 유능함을 증명할 수 없고, 만성적인 낙인이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얼마 전 특수교육대상자로 배치된 여름이 역시 ‘여기’에서 ‘거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거기’의 세계에는 ‘그래봤자 소용없는’ 친구들과, ‘그래봤자 특수인’ 교사가 손을 흔들며 여름이를 맞이한다. 엄마와 아빠의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른다.
두 번째 작전 : 장애 학생 존재 지우기
다양성이 교육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시대, 한국의 장애 학생 통합교육은 상당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❹ 그러나 현재 상당 수의 장애 학생들은 ‘시간제 통합교육’이라는 형태로 하루 중 일부 시간을 자신의 원적학급(통합학급)이 아닌 특수학급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교는 이러한 수업 형태를 ‘통합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지원’이자 ‘장애 학생이 적합한 교육을 받을 권리의 보장’이라고 설명한다.❺ 그러나 이는 완전한 분리를 장애 학생의 당연한 교육 배치로 전제했을 때에만 성립된다. 완전한 통합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간제 통합교육’은 통합의 한 방식이 아니라 엄연한 분리이자 배제이다.
학교는 장애 학생 분리 교육을 통합교육의 한 형태로 가장하여 홍보함으로써 통합교육에 대한 구성원들의 상상력에 한계를 설정한다. 완전통합, 보편적학습설계, 협력교수, 다층적지원체계와 같은 현재 이상의 실제를 이야기하는 이들 앞에는 견고하게 설계된 행정 장벽이 놓인다. 이러한 장벽은 구성원들의 변화 의지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변화에 대한 피로와 불안, 공포를 확산시킨다. 그 결과 많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현재의 분리 교육 체제를 ‘장애 학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학교는 ‘시간제 통합교육’을 통한 장애 학생의 분리와 배제를 영속화하기 위해 두 가지 실패 전략을 가동한다. 그것은 ‘(장애 학생에게) 분리의 책임 전가하기’와 ‘(비장애 학생에게) 분리의 기술 전수하기’이다. 이 두 전략을 통해 학교는 장애 학생에게는 수치심을, 비장애 학생에게는 우월감을 학습시키는 차별적 사회화 공격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두 집단 간에 뒤집기 힘든 위계가 형성되고 결국 장애 학생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전략1] 분리의 책임 전가하기
“아빠가 그러는데, 내가 머리가 멍청해서 벼리반(특수학급) 내려오는 거래요”
특수학급 수업 중 가을이의 갑작스러운 고백. 아이의 절절한 눈빛은 “제발 이 말이 거짓이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당혹감이 밀려온다. 아이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리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세련되고 교묘한 언어가 내겐 없었다. 처음에는 자녀의 자존감을 깎아내린 학부모의 과격한 표현이 원망스러웠으나, 곧 이것이 장애 학생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학교가 작동시키는 핵심 전략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는 장애 학생 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학부모의 수치심을 공격한다. 능력주의에 깊이 종속된 학교에서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하는 자녀의 ‘능력없음’은 그 자체로 분리의 충분조건이 된다. 한결같이 학교는 ’더 적합한 교육을 받을 권리’이자 ‘부모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분리 수업을 정당화해 왔다. 실제로 이에 온전히 동의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지만, 이미 학교의 수치심 공격 앞에서 전투력을 상실한 부모는 반박할 힘이 없다. 애초에 장애 학생이 통합학급 안에서 충분히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학교는 과연 ‘분리’를 ‘권리’로 포장했겠는가? 진정한 의미에서 학부모가 ‘특수’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능력없음’으로 규정된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처음부터 권리도,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수치심은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되며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가을이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끌벅적한 교실을 빠져나와 고요한 복도를 지나 ‘능력 없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특수학급으로 향할 것이다. 교실의 다른 친구들에게는 없는 일과를 매일 혼자 반복하며 그것을 자신의 ‘무능함’에 합당한 결과라 믿게 될 것이다. 반쪽짜리 시간표는 반쪽짜리 구성원 자격만을 허락할 것이고, 가을이의 자리는 언제나 취약할 것이다. 그 결과 가을이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분리와 배제는 장기화될 것이다.
[전략2] 분리의 기술 전수하기
“겨울아~! 이제 그만하고 쫌 내려가라! 벼리반 선생님 오셨잖니~.”
겨울이의 감정 폭발로 수업이 중단된 6학년 교실, 담임교사의 다급한 도움 요청 전화를 받고 통합학급에 올라가자, 설이가 겨울이를 향해 큰 소리로 아웃!을 외친다. 설이의 말에 얼어붙어 있던 교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교실 전체가 크게 웃었다. 겨울이를 데리고 나와 특수학급에 단둘이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장애 학생의 존재를 더 확실하고 더 오래 이 사회에서 지워 내려고 하는 학교의 숨겨진 전략을 보게 되었다.
설이는 특수교사의 등장만으로도 겨울이의 ‘교실 밖’ 행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또한 우리 교실에서 사라져 달라는 그 위험한 발언이, 인내의 시간을 공유한 반 전체에게는 유머로 받아들여질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설이는 이미 다년간의 통합교육 경험을 통해 장애 학생 분리가 일상화된 학교의 규칙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리가 합의되는 방식, 분리를 가능하게 하는 각자의 역할, 그리고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배제를 실행할 수 있다는 효능감과 우월감까지! 설이는 장애 학생 분리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습득해 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학교는 ‘시간제 통합’이라는 분리 방식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배제의 감각과 분리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전수한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어린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이 규칙을 성실히 연습하고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에 중요한 기여자가 된다.
다수의 바람대로 장애 학생은 그렇게 교실에서 치워졌고, 그들만의 수업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설이와 반 친구들은 분리와 배제의 기술을 다시 한번 학습했을 것이다. 이러한 학습은 초·중·고 12년 동안 멈추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철저한 완전 학습이 있을까? 학교가 미래 세대를 위해 설계한 이 ‘완벽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미래의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으로, 주어진 사회 질서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시간제 통합교육은 그야말로 ‘교실에서 시작되는 효과 만점 시민교육’이다.
꿈꾸기를 중단함으로써 새롭게 꿈꾸기
학교는 ‘장애 학생 능력 지우기’와 ‘장애 학생 존재 지우기’라는 두 작전을 끈질기게 가동하며, 혹시 모를 통합교육의 성공에 빈틈없이 대비해 왔다. 이 두 작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학교가 더 빠르고, 더 자주, 그리고 더 확실하게 실패하도록 돕는다. 학교가 휘두르는 정상성의 폭력에 길든 구성원들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장애 학생에 대한 분리와 배제를 점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학교 내부에서 통용되는 분리와 배제의 공식에 의해 다시 강화되며, 장애 학생은 더욱 철저히 비가시화된 존재가 된다. 반복되는 비가시화의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는 점점 더 공고해진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 전략을 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학교의 다양한 사기 수법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한다. 학교가 실패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확장되고 장애를 둘러싼 불평등 구조에 대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통합교육 현장에서 양산되는 수많은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장애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통합교육 실패의 구조적 원인, 다시 말해 학교가 치밀하게 설계한 거대 시나리오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개인적 선의와 우정, 열의에 기대어 지속 불가능한 통합교육을 꿈꾼다. 실패가 반복되고 그에 따른 배신감과 소외감이 누적되지만, 개인의 역량 개발과 끈질긴 노력을 통해 언젠가 최선의 실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한 열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의 실패가 견딜 수 없이 반복되는 순간, 그리고 자신이 꿈꾸어 온 통합교육 방식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통합교육주의자들이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고 죄 없는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통합교육에 대한 꿈꾸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상을 꿈꾸는 대신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 전략을 읽어 내고, 그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학교의 전략을 무력화하고 통합교육 실패에 맞서는 가장 현명한 대응 방식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통합교육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꿈꾸기를 중단함으로써, 다시 새롭게 꿈꾸기를 시도한다.
❶ Wolfensberger, W.(1983), Social Role Valorization: A proposed new term for the principle of normalization, Mental Retardation, 21(6).
❷ 불평등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 구조의 산물이므로 통합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 역시 사회 구조적 틀 안에서 해석하고 논의해야 한다.
❸ 정상 분포(정규 분포, normal distribution)는 자연스럽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분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정상(norm)은 통계적 규칙성을 의미하는 개념일 뿐 사회적 가치 판단이 포함된 ‘정상’의 의미가 아니다. 본래 정상 분포는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학교는 이를 서열화와 배제의 도구로 오용해 왔다.
❹ 교육부의 〈2025년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체 장애 학생의 74.1%가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분리된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은 25.7%에 불과하다.
❺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특수학급을 ‘특수교육대상자의 통합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일반 학교에 설치된 학급’으로, 통합교육을 ‘특수교육대상자가 장애 유형 및 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정의한다.
교육공동체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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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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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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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교육, 그 존재의 밀도 ❷
학교가 통합교육에
실패하는 방식
양여경 yangyeokyung@gmail.com
서울 초등 특수 교사
올해로 ‘특수 교사’의 세계에 입문한 지 20년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학교는 여전히 내게 낯설고 조심스럽고 힘든 곳이다. 학창 시절 내 곁에는 교사였던 아버지와 학부모 역할에 열성적이었던 어머니,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삐딱함을 견뎌 주고 끝내 웃어 주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내가 거침없음과 예의 없음을 자랑쯤으로 여기며 학교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굳이 타인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학교는 왜 부적응의 공간이 되었을까? 성장 과정 내내 온전히 ‘나의 것’이라 믿었던 학교는 이제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장애 학생의 교사’라는 달라진 신분 때문임을 확신한다. 일상 곳곳에서 보편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고, 언제나 추가적인 조건과 설명을 요구받는 존재. 학교에서 나는 ‘특수한’ 학생들과 함께 이등 시민의 삶을 체험 중이다.
우리 사회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게 처음부터 다른 조건이 제공되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존중, 선택, 신뢰, 인내, 연대, 안전과 같이 학교를 아름답게 만드는 언어들은 결코 모두를 위한 것이 되지 못한다. 문제와 무능으로 정의된 학생에게는 낮은 기대와 그에 따른 분리와 배제, 질 낮은 서비스, 통제와 감시, 권리 박탈이라는 구조적 차별이 주어진다. 이에 더해 자기 충족적 예언은 이들의 실제 행동을 점차 사회의 낮은 기대에 맞추도록 이끈다. 더욱이 사회는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집단과 연결된 사람들(교사, 가족, 지원 인력 등)에게까지 공유된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그 집단과 유사한 가치 절하 및 지위 하락을 경험하도록 만든다.❶ 이는 사회가 가치의 역전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고 소수 집단의 주변화와 무능화를 확장하기 위해 마련한 정교한 전략 중 하나이다. 그 결과 발명된, ‘가치 절하된 정체성’과 ‘사회적 고립’은 ‘집단의 특성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는 규칙의 반복 속에서 불평등과 차별은 개인의 선의나 의지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굳어진다.❷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 재생산에 깊이 관여해 온 학교는, 동일한 방식으로 장애 학생 통합교육 또한 끈질기게 실패시켜 왔다. 불평등의 핵심이 ‘다름’ 자체가 아니라 ‘다름에 따른 차별적 가치 부여’라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학교는 ‘다름의 수용’, ‘다양성 이해’라는 그럴듯한 말들로 학생 간의 차이, 교사 간의 위계를 더욱 부각시켜 왔다. 장애 정체성과 특수교육 전문성을 끊임없이 지우고 가치 절하하고 폄훼하여 비장애 중심의 학교 체제와 일반 교육 왕국의 철옹성을 단단히 지켜 냈다. 사실 학교는 현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통합교육 성공’이 두렵다. 그래서 ‘통합교육 성공’을 막아 낼 거대 작전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실행시킴으로써 ‘통합교육 실패’에 늘 완벽하게 성공해 왔다.
나는 지난 20년간 통합교육 최선의 실제를 끈질기게 꿈꾸어 왔으나 현실에서는 반복적으로 뼈아픈 배신감과 깊은 소외감을 마주해야 했다. ‘특수한’ 학생들과 함께 ‘가치 절하된 정체성’의 통증을 몸으로 겪으며 학교 내 이등 시민의 위치를 감내해야 했다. 학창 시절 마음껏 누렸던 ‘근거 없는 특권’의 추억을 뒤로한 채, 어느새 나는 학교가 짜놓은 이 은밀하고 교묘한 사기극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학교의 성공을 응원하지 않겠다. 학교의 실패를 슬퍼하지도 않겠다. 지금 필요한 일은 통합교육의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통합교육을 실패로 이끈 조건들을 드러내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학교가 통합교육에 실패하는 방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학교의 은폐된 전략을 하나씩 가시화하는 일, 그 ‘꼼수’를 언어로 드러내는 일만이 학교의 의도된 실패에 맞설 수 있는 유력한 대응 전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첫 번째 작전 : 장애 학생 능력 지우기
인간의 능력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다. 능력은 어느 한 가지 수치로 환원할 수 없고, 타인과 비교하여 우열로 구분할 수도 없음을 교사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에 학교의 평가 역시 서열에서 성장으로, 단일 지표에서 다차원적 준거로, 지식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최신의 이해가 장애 학생에게만큼은 온전히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정상성 논리를 통해 교사들의 사고를 제한하고, 장애 학생의 능력을 여전히 결핍의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만든다.
본디 장애(disability)라는 용어는 능력(ability)의 없음(dis-)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 집단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초기 단계부터 ‘능력을 기준으로 한 결핍’을 강조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학교는 이러한 명칭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장애 학생을 능력의 주체가 아닌 결핍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서비스 적격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애’ 표찰은, 어느새 학생의 대표 정체성이 되고 장애 학생이 지닌 수많은 특성과 강점, 그들 안에서의 차이는 조용히 지워진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이에 학교는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한 더욱 정교한 전략에 돌입한다. ‘정상 안으로 밀어 넣기’와 ‘정상 밖으로 밀어내기’가 그것이다. 두 전략은 상반된 방식으로 작동되지만, 결국 장애 학생을 무능력한 집단으로 고착시키는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전략1] 정상 안으로 밀어 넣기
“봄이가 학교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전보다 친구들과도 더 잘 어울리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정상 아이만큼 될 수 있겠어요.”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 자리, 교사가 장애 학생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해 건넨 말이다. 교사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가운데, 학교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해 작동시키는 첫 번째 전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교는 교사 양성 단계에서부터 정상 분포❸를 통한 인간 구분을 강조함으로써 ‘정상’ 범주에 속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교육 현장에 전파한다. 이에 더해 학생 성장을 돕고자 하는 교사의 직업적 사명감을 자극하여,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정상과 표준을 향해 이동시키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며 의미 있는 성과라는 편협한 사고를 만들어 낸다. 소위 정상으로 규정된 범주 밖에도 수많은 능력의 척도와 삶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도록 이끈다. 결국 학교에서 장애 학생의 현재는 지워지고, ‘정상 안으로 들어가라’는 요구만이 남는다. 정상을 향한 갈망 속에서 장애 학생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확인하게 되고, 장애 학생 지도에 버거움과 무력감을 느낀 교사의 원망은 다시 학생의 ‘능력없음(disability)’으로 향한다.
[전략2] 정상 밖으로 밀어내기
교사1 : “선생님~, 여름이는 어쩜 그렇게 웃는 모습이 예뻐요?.”
교사2 : “그치, 정말 빛이 나게 예쁘지. 근데 그럼 뭐해! 그래 봤자 거기잖아…….”
여름이를 향한 교사들의 사랑과 걱정이 묻어나는 대화 속에서, 나는 학교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지우기 위해 작동시키는 두 번째 전략을 발견했다. 학교는 교사들의 평가 본능을 자극하여 ‘여기’는 합격자의 공간, ‘거기’는 실격자의 공간이라는 근거 없는 이분법을 유포한다. 합격자와 실격자가 한 공간에 섞이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능함과 취약함, 온전함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현 체제의 위계적 질서에는 균열이 생긴다. 쉿! 학교는 두 세계의 경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공간의 구분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바꾸어 놓는다. 정상성에 고착된 장애 학생의 정체성은 유동적일 수 없기에, 한번 정해진 학생의 위치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거기’로 명명된 학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온전함과 유능함을 증명할 수 없고, 만성적인 낙인이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얼마 전 특수교육대상자로 배치된 여름이 역시 ‘여기’에서 ‘거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거기’의 세계에는 ‘그래봤자 소용없는’ 친구들과, ‘그래봤자 특수인’ 교사가 손을 흔들며 여름이를 맞이한다. 엄마와 아빠의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른다.
두 번째 작전 : 장애 학생 존재 지우기
다양성이 교육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시대, 한국의 장애 학생 통합교육은 상당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❹ 그러나 현재 상당 수의 장애 학생들은 ‘시간제 통합교육’이라는 형태로 하루 중 일부 시간을 자신의 원적학급(통합학급)이 아닌 특수학급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교는 이러한 수업 형태를 ‘통합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지원’이자 ‘장애 학생이 적합한 교육을 받을 권리의 보장’이라고 설명한다.❺ 그러나 이는 완전한 분리를 장애 학생의 당연한 교육 배치로 전제했을 때에만 성립된다. 완전한 통합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간제 통합교육’은 통합의 한 방식이 아니라 엄연한 분리이자 배제이다.
학교는 장애 학생 분리 교육을 통합교육의 한 형태로 가장하여 홍보함으로써 통합교육에 대한 구성원들의 상상력에 한계를 설정한다. 완전통합, 보편적학습설계, 협력교수, 다층적지원체계와 같은 현재 이상의 실제를 이야기하는 이들 앞에는 견고하게 설계된 행정 장벽이 놓인다. 이러한 장벽은 구성원들의 변화 의지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변화에 대한 피로와 불안, 공포를 확산시킨다. 그 결과 많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현재의 분리 교육 체제를 ‘장애 학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학교는 ‘시간제 통합교육’을 통한 장애 학생의 분리와 배제를 영속화하기 위해 두 가지 실패 전략을 가동한다. 그것은 ‘(장애 학생에게) 분리의 책임 전가하기’와 ‘(비장애 학생에게) 분리의 기술 전수하기’이다. 이 두 전략을 통해 학교는 장애 학생에게는 수치심을, 비장애 학생에게는 우월감을 학습시키는 차별적 사회화 공격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두 집단 간에 뒤집기 힘든 위계가 형성되고 결국 장애 학생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전략1] 분리의 책임 전가하기
“아빠가 그러는데, 내가 머리가 멍청해서 벼리반(특수학급) 내려오는 거래요”
특수학급 수업 중 가을이의 갑작스러운 고백. 아이의 절절한 눈빛은 “제발 이 말이 거짓이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당혹감이 밀려온다. 아이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리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세련되고 교묘한 언어가 내겐 없었다. 처음에는 자녀의 자존감을 깎아내린 학부모의 과격한 표현이 원망스러웠으나, 곧 이것이 장애 학생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학교가 작동시키는 핵심 전략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는 장애 학생 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학부모의 수치심을 공격한다. 능력주의에 깊이 종속된 학교에서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하는 자녀의 ‘능력없음’은 그 자체로 분리의 충분조건이 된다. 한결같이 학교는 ’더 적합한 교육을 받을 권리’이자 ‘부모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분리 수업을 정당화해 왔다. 실제로 이에 온전히 동의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지만, 이미 학교의 수치심 공격 앞에서 전투력을 상실한 부모는 반박할 힘이 없다. 애초에 장애 학생이 통합학급 안에서 충분히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학교는 과연 ‘분리’를 ‘권리’로 포장했겠는가? 진정한 의미에서 학부모가 ‘특수’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능력없음’으로 규정된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처음부터 권리도,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수치심은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되며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가을이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끌벅적한 교실을 빠져나와 고요한 복도를 지나 ‘능력 없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특수학급으로 향할 것이다. 교실의 다른 친구들에게는 없는 일과를 매일 혼자 반복하며 그것을 자신의 ‘무능함’에 합당한 결과라 믿게 될 것이다. 반쪽짜리 시간표는 반쪽짜리 구성원 자격만을 허락할 것이고, 가을이의 자리는 언제나 취약할 것이다. 그 결과 가을이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분리와 배제는 장기화될 것이다.
[전략2] 분리의 기술 전수하기
“겨울아~! 이제 그만하고 쫌 내려가라! 벼리반 선생님 오셨잖니~.”
겨울이의 감정 폭발로 수업이 중단된 6학년 교실, 담임교사의 다급한 도움 요청 전화를 받고 통합학급에 올라가자, 설이가 겨울이를 향해 큰 소리로 아웃!을 외친다. 설이의 말에 얼어붙어 있던 교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교실 전체가 크게 웃었다. 겨울이를 데리고 나와 특수학급에 단둘이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장애 학생의 존재를 더 확실하고 더 오래 이 사회에서 지워 내려고 하는 학교의 숨겨진 전략을 보게 되었다.
설이는 특수교사의 등장만으로도 겨울이의 ‘교실 밖’ 행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또한 우리 교실에서 사라져 달라는 그 위험한 발언이, 인내의 시간을 공유한 반 전체에게는 유머로 받아들여질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설이는 이미 다년간의 통합교육 경험을 통해 장애 학생 분리가 일상화된 학교의 규칙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리가 합의되는 방식, 분리를 가능하게 하는 각자의 역할, 그리고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배제를 실행할 수 있다는 효능감과 우월감까지! 설이는 장애 학생 분리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습득해 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학교는 ‘시간제 통합’이라는 분리 방식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배제의 감각과 분리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전수한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어린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이 규칙을 성실히 연습하고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에 중요한 기여자가 된다.
다수의 바람대로 장애 학생은 그렇게 교실에서 치워졌고, 그들만의 수업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설이와 반 친구들은 분리와 배제의 기술을 다시 한번 학습했을 것이다. 이러한 학습은 초·중·고 12년 동안 멈추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철저한 완전 학습이 있을까? 학교가 미래 세대를 위해 설계한 이 ‘완벽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미래의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으로, 주어진 사회 질서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시간제 통합교육은 그야말로 ‘교실에서 시작되는 효과 만점 시민교육’이다.
꿈꾸기를 중단함으로써 새롭게 꿈꾸기
학교는 ‘장애 학생 능력 지우기’와 ‘장애 학생 존재 지우기’라는 두 작전을 끈질기게 가동하며, 혹시 모를 통합교육의 성공에 빈틈없이 대비해 왔다. 이 두 작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학교가 더 빠르고, 더 자주, 그리고 더 확실하게 실패하도록 돕는다. 학교가 휘두르는 정상성의 폭력에 길든 구성원들은 장애 학생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장애 학생에 대한 분리와 배제를 점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학교 내부에서 통용되는 분리와 배제의 공식에 의해 다시 강화되며, 장애 학생은 더욱 철저히 비가시화된 존재가 된다. 반복되는 비가시화의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는 점점 더 공고해진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 전략을 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학교의 다양한 사기 수법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한다. 학교가 실패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확장되고 장애를 둘러싼 불평등 구조에 대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통합교육 현장에서 양산되는 수많은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장애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통합교육 실패의 구조적 원인, 다시 말해 학교가 치밀하게 설계한 거대 시나리오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개인적 선의와 우정, 열의에 기대어 지속 불가능한 통합교육을 꿈꾼다. 실패가 반복되고 그에 따른 배신감과 소외감이 누적되지만, 개인의 역량 개발과 끈질긴 노력을 통해 언젠가 최선의 실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한 열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의 실패가 견딜 수 없이 반복되는 순간, 그리고 자신이 꿈꾸어 온 통합교육 방식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통합교육주의자들이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고 죄 없는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통합교육에 대한 꿈꾸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상을 꿈꾸는 대신 학교의 통합교육 실패 전략을 읽어 내고, 그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학교의 전략을 무력화하고 통합교육 실패에 맞서는 가장 현명한 대응 방식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통합교육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꿈꾸기를 중단함으로써, 다시 새롭게 꿈꾸기를 시도한다.
❶ Wolfensberger, W.(1983), Social Role Valorization: A proposed new term for the principle of normalization, Mental Retardation, 21(6).
❷ 불평등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 구조의 산물이므로 통합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 역시 사회 구조적 틀 안에서 해석하고 논의해야 한다.
❸ 정상 분포(정규 분포, normal distribution)는 자연스럽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분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정상(norm)은 통계적 규칙성을 의미하는 개념일 뿐 사회적 가치 판단이 포함된 ‘정상’의 의미가 아니다. 본래 정상 분포는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학교는 이를 서열화와 배제의 도구로 오용해 왔다.
❹ 교육부의 〈2025년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체 장애 학생의 74.1%가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분리된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은 25.7%에 불과하다.
❺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특수학급을 ‘특수교육대상자의 통합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일반 학교에 설치된 학급’으로, 통합교육을 ‘특수교육대상자가 장애 유형 및 정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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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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