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특집] 교육, 그 존재의 밀도 | 편집부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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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육,

그 존재의 밀도

 


매년 새로운 이름의 정책과 담론, 이른바 ‘○○ 트렌드’ 속에서 교육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변화가 반복될수록 학교와 교육은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규정과 매뉴얼, 절차와 책임 분담은 촘촘해졌지만, 교육의 주체들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 존재의 무게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학교는 사유의 공간이라기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오늘의 학교가 어떻게 사유를 잃어 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토론과 숙의가 사라진 결정 구조, 갈등을 외부 절차로 넘기는 외주화와 사법화, 신뢰 대신 증거와 감시에 의존하는 문화,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배제, 지역 소멸의 흐름 속에서 비워지는 학교의 자리까지. 이러한 장면들은 개별 현상이 아니라, 교육의 구조와 언어가 변화해 온 결과다. 학교가 더 이상 스스로 책임지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교육 전반에서 ‘존재의 밀도’는 옅어지고 있다.


양서영은 규정개정위원회에서 벌어진 하복 위 겉옷 금지 논의를 통해, 학교 민주주의가 어떻게 형식만 남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토론과 숙의 없이 설문으로 결론이 내려진 결정은 규제 강화로 이어졌고, 이는 이미 정해진 답을 확인하는 절차에 가까웠다. 정답이 먼저 주어지는 교육과 촘촘한 규정 속에서 학생과 교사는 함께 사유하는 경험을 잃어 간다. 이 글은 사유가 사치가 된 학교에서, 왜 다시 질문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양여경은 특수교사 20년 차의 시선으로, 통합교육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실패하도록 설계되어 왔는지를 드러낸다. ‘시간제 통합교육’은 통합의 이름으로 분리와 배제를 정당화하고, 그 책임은 장애 학생과 부모에게 전가된다. 필자는 통합교육의 이상을 말하기보다, 학교가 실패를 은폐해 온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 지금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저항임을 강조한다.


난다는 교실 내 CCTV 설치 논란을 계기로, 학교가 ‘신뢰’ 대신 ‘증거’와 ‘감시’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을 비판한다. 불평등한 증거 수집 조건은 감시 요구를 키웠고, 감시는 학교를 통제의 공간으로 고착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난다는 카메라가 아니라 기록과 문제 제기 권리, 다중의 참여를 통해 서로 ‘감시자’가 아닌 ‘목격자’로 존재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윤경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와 교권보호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을 통해 교육의 사법화와 외주화가 학교 안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짚는다. 갈등은 교육의 언어가 아닌 법과 절차의 언어로 처리되고, 처벌과 매뉴얼은 남았지만 사과와 화해, 관계 회복의 시간은 사라졌다. 문제를 학교 밖으로 넘길수록 학교는 더 안전해지기보다 더 취약해졌다.


이민희는 전남 영광 묘량중앙초 사례를 통해 농촌 교육과 지역 소멸 문제를 조명한다. 작은 학교를 지키려는 선택은 공동체를 변화시켰지만, 농촌 전반의 구조적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글은 학교를 교육·문화·돌봄의 지역 거점으로 다시 사유하며, 지역과 함께 지속 가능한 교육의 가능성을 묻는다.


이번 특집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학교는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질 수 있는 공간인가. 사유 없는 결정, 외부로 이전된 책임, 감시와 절차로 대체된 관계, 반복되는 배제와 비워지는 학교의 자리는 우연히 나란히 놓인 장면들일까. ‘교육, 그 존재의 밀도’는 무엇을 더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빠져 왔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다시 학교와 교육의 한가운데에 놓으며, 교육이 어떤 무게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독자에게 되돌려 묻고자 한다.


- 편집부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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