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특집 ❺] ‘사람’은 없고 ‘사안’만 남은 학교폭력 제도를 극복하려면 | 좌담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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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❺

 

‘사람’은 없고 ‘사안’만 남은

학교폭력 제도를 극복하려면

 

- 학교와폭력 벗 연구모임 좌담

 


참가자

지석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수료

주원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석사

정예현 전국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회장

이윤경 본지 편집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문

이민정 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교육학과 박사 과정

양서영 본지 편집위원, 경기 중등 교사

 

일시

2026년 2월 25일

 

장소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

 

기록·정리

공현

 

 



2026년 2월 4일, ‘학교와 폭력 2차 포럼 – 학폭법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이 열렸다. 포럼에는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가 사회를 맡았고, 학교폭력 피해를 겪고 절차를 밟아 본 적이 있는 학생(이루리, 애붕),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의 부모(정예현), 그리고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어 본 적이 있는 교사(새시비비, 홍인기)가 발표자를 맡았다.

포럼에서는 약 2시간 동안 학교폭력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어떤 고민과 개선안이 필요한지 등을 토론했다. 참석자들은 학교폭력 신고 이후 맞신고와 2차 가해를 당했던 경험, 피해자에게는 무관심하고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현행 제도, 즉시 분리 제도의 부작용 등 다양한 경험담을 털어놓고 의견을 밝혔다. 어떻게 해야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포럼을 기획한 ‘학교와 폭력 벗 연구모임’ 구성원들이 포럼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학교폭력 제도와 학교 현실을 돌아보고 생각을 나누는 좌담을 가졌다.

 


피해자의 회복은 왜 어려운가

 

이민정 

포럼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에 공동체의 회복, 피해자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이 회복적 서클이 오히려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다는 경험도 털어놨다. 학교에서 공동체적 회복을 시도하고 싶지만 행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 회복이라는 것이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우리가 당장 문제 해결이나 처벌이라는 틀에 너무 갇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각자 생각하시는 공동체적 회복 또는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의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양서영 

회복적 서클 자체가 별로 효과가 없다기보다는, 따돌림당한 경험 등이 있고 그 교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대화 자리를 만들어서 말하라고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이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할 수 있는 회복적 교육이 학교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야 서클도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하니까 학생들도 교사들도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할 수 있다. 나는 회복적 서클이 좋은 효과를 가진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오해받는 경우를 많이 본다.

 

주원 

꼭 회복적 서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때는 잘 해내기 위한 훈련 내지는 준비가 필요할 텐데 학교는 개개인이 이에 대해 동의하거나 수용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필 수 없는 환경인 것 같다. 회복적 서클과 같은 활동이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면, 이를 위해 시간이나 자원을 충분히 투여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정규 교육과정이나 이미 정해진 학사 일정이 우선시되고, 서클 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라서, 애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차단되는 것 아닐까.

 

양서영 

포럼에서 우리 사회 전체에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 인권 감수성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말이 와닿았다.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서클은 부담스러웠던 반면 포럼 자리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던 거잖나.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애붕 님이 2차 가해를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강조했는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내가 폭력을 당했다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선생님은 ‘그거 그냥 장난이잖아, 그런 걸 갖고 그래’ 하고 답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니까, 학생들은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여질지 말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폭력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한 것이 없는 채로 각자 동상이몽하고 있는 게 안전하지 못한 학교를 만드는 것 같다.

 

이윤경 

학생들이 과연 누구와 있을 때 학교에서 안전하게 느낄까? 어느 공간에서 안전하다고 느낄까? 포럼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안전함조차 학교에서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었어도, 다시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집단 따돌림이든 폭력이든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 나를 도와줄 거라는 생각, 이런 것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중요한 지점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어떻게 하면 이런 믿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매뉴얼로 내려보내고 끝이다. ‘회복적 서클 몇 회 진행’, ‘위센터에서 몇 회기 상담’, 이런 식의 행정 중심의 조치는 모든 사안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서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별적으로 기다려 주는 시간도 달라야 하고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야 하는데 획일화되어 있다.

 


소외되고 분절되는 과정

 

지석 

학교폭력 제도도 겉으로는 회복을 지향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회복되어야 할 고통으로 학교폭력 사건에서의 고통만 상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고통은 계속되는, 연속적인 것이다. 폭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고통받을 수도 있고, 학교폭력을 신고하고 다루어지는 시간 동안 또 다른 고통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제도는 일어난 사건에서의 고통을 다루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학생들이 그 괴리감 때문에 더 회복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학교폭력 절차에서 학생들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나. 학생들은 민원 접수하고 그저 처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전체 과정에서 소외된 채로, 그 소외로 인한 고통까지 가중된 상태로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부분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문제점도 점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윤경 

문제를 다룰 때 사람이 중심이 아닌 거다. 모든 것을 사안으로 보고 ‘어떻게 처리할까, 어떻게 빨리 끝낼까’ 그런 시선에 제일 문제가 있다. ‘학교장 자체 해결’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안을 종결하는 것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원 

우리가 아름다운 가치라고 하는 화해 내지 용서 같은 것들도, 몇 시간 교육받고 몇 회 봉사 활동을 한다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다. 관계 안에서 천천히 혹은 극적으로 사람마다 그런 것들을 체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이유를 정말 교육적으로 배울 수 있다. 지금은 마치 반성문 쓰면 반성하는 거고, 봉사 활동 하면 착해진다는 식이다. 사실 학생들도 안다. 자기가 봉사 활동을 3시간을 하든 6시간을 하든 그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학교가 그런 정량적인 것을 종결을 위한 해결책이라고 내세웠을 때, 학생들은 그것에 의해 끝났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거고, ‘그냥 치워 버리기 위한 거구나’ 하고 느끼는 경험만 쌓일 것 같다. 그래서 학교가 폭력이나 관계에 개입하려 하는 시스템을 더 불신하거나 우습게 여기기도 쉽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의 시스템이 가해자를 대하는 그런 정량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엄벌주의적인 상상력만 남기는 것 같다.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회복이나 화해나 그런 과정이 필요함에도, 시스템적 조치는 ‘교육 몇 회’, ‘반성문 몇 장’ 이런 것만 있으니까 어떻게 더 강하게 처벌할까 하는 것 말고 다른 상상력은 결여될 수밖에 없다. 상상력의 문을 좀 더 열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데, 지금으로선 해 왔던 관료적인 방식으로밖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석 

공동체적 회복이라고 했을 때, 사실 연루된 사람이 누구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다 같이 이 문제를 인지하고 고민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에서는 문제 당사자와 담당하는 소수의 교사들 말고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척’해야 되지 않나. 그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게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알아야 하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법이 막아 놔서 모두가 알고 있어도 모른 체해야 한다.

 

이윤경 

비밀 유지는 어떻게 보면 형사 절차적인 방식이 어설프게 들어와 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게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당사자들만의 일로 분절된다.

 

지석

 형사 절차를 닮았다고 하지만, 형사 사건은 시민들이 알 수 있지 않나. 사건도 보도되고 재판도 공개되고.

 

주원 

일종의 보호를 하겠다는 건데, 사실 주변에서 모두가 다 알잖나. 하루의 절반을 붙어 있는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 모를 수가 없고, 학교 안에서만이 아니라 SNS나 여러 가지로 학교 바깥에서도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안에서 비밀 유지라는 게 가능할까? 결국 비밀 유지 의무는, 일을 더 키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불명예스러운 문제가 학교 밖으로 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밀 유지의 취지야 그런 게 아니겠으나, 실제로는 뒤에서 알음알음 이야기되게 만들고 그게 더 안 좋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부끄럽거나 부담스럽더라도,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만 우리가 무언가 대화를 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감각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그 기회가 차단되고 있다. 비밀 유지 같은 제도가 잘못 설계되어 있진 않은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학교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예현 

나는 피해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회복될 것 같아?’라는 질문을 한 명이라도 던져 줬을까 싶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뒤에 아이가 안심하게 된 이유는 그거였다. 학교에 학교폭력·성폭력 예방, ‘이런 건 하면 안 돼’ 하는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이런 일은 잘못된 일이라고 알리고,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교사들이 뭔가 노력하는 게 보이니까, 그게 아이한테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 첫째 요소였던 것 같다. 가해 학생들에 대한 조치는 오히려 별개였다.

우리가 다른 사건에서도 가해 학생은 벌주고, 피해 학생은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맨날 하는 건 사실 상담밖에 없잖나. 실제로는 학교 전체의 문화가 바뀌는 과정이 계속되어야 한다. 학교공동체가 이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뭘 하자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가해 학생 하나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 전체에서 작더라도 변화가 있을 때 피해 학생들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안정감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양서영 

이루리 님 글 중에 가해자가 처벌받고 끝나는 게 아니고, 피해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고, 그 이후에 가해자는 어떻게 살아가며 2차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더 신경 쓰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 일이 있고 나서 학교공동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까지도 우리가 살펴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변화가 하루이틀 만에 일어나는 게 아니고, 섬세하게 지켜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예현 

학부모 입장에서 궁금했던 게,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들을 처리하잖나. 그럼 지난 1년간의 사건들을 보면서 학생 사이에서 어떤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면 좋겠다. 그래서 학교가 생활지도를 어떻게 할 건지, 학급에서 관계나 학생들 생활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게 없다.

 

양서영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보통은 학생들이 규칙을 어겼는지,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그걸 어떻게 없앨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생들이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민정 

‘교사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냥 일을 처리하는 것일 뿐, 관계나 존중이 빠진 것 같다.’ 이런 말이 오간 게 기억난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걸 그냥 처리할 사안과 업무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학교공동체라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고민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지 않을까.

 

지석 

말씀처럼 학교가 사건 이후에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 주려면, 일단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각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화해 역시 서로 화해하려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거 잘못한 거 아닌데’, ‘그거 별일 아닌데’ 하는 시그널을, 교사가 됐든 학부모가 됐든 다른 어른들이 됐든 보내는 것에 학생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선생님/부모님은 잘못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왜 이걸 인정하고 사과해야 돼?’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앞에 나온 이야기로 돌아가는데,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는 것, 폭력이라는 단어가 거창하다면, 잘못된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걸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기반이 중요하겠다.

 

이윤경 

가해자든 피해자든 제일 먼저 시작되어야 하는 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은 늘 생략되는 것 같다. 그냥 ‘신고해서 접수해’ 이렇게 되지 않나. 가해자가 학교폭력예방법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그거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성찰하고 반성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라는 교육 기관마저 그런 걸 가르치지 않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런 교육에 나설 수 있는 전문가가 누구일까 고민해 보면 결국 교사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최근 교사들은 학교폭력 문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양서영 원래 교사들이 해 왔던 일인데, 「학교폭력예방법」이 생기고 학교폭력 절차 안으로 들어가면서 교사들의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지금의 절차 안에서는 그런 걸 묻지 않는 게 옳은 게 된다.

 

이윤경 

피해 학생들이, 간단하게 ‘강한 처벌을 원한다’,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 이런 것 말고, 어떤 과정과 상황이 있었고 나는 이런 데서 상처받았고 이런 오해를 받아서 억울하다든지, 저 아이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이것만 이야기를 해 주면 마음이 풀리겠다든지 그런 것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런 질문을 반드시 하게끔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양서영 

차라리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학교폭력 담당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피해 학생에게 회복을 위해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묻더라도 간단하게만 이루어지고, 또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서도 그 답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조사는 경찰에서 사건 조사하듯이 진술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포럼에서 피해 학생이 심의위원회 가서 진술할 때 마치 자기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거기까지 가면서 여러 사람에게 사건에 대해 말했을 텐데,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내가 잘못했나’ 하는 느낌까지 갖게 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윤경 

나도 학교폭력 심의를 하면서 그런 질문을 꼭 하려고 했다. 어떤 자리에서 누가 물어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맞다. 그들의 관계나 맥락을 아는 사람이 묻는지, 사안 처리를 하려고 조치를 위해서 묻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래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는, 가장 초기에 학급에서부터 그런 걸 묻고 대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이민정 

공동체 안에서, 직접 그 사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연루될 수밖에 없고, 얽히는 과정을 함께해야 하는데, 그냥 가해와 피해를 나눠 버리고 그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 그런 절차 자체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과연 얽히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런 일에 기꺼이 연루될 마음이 있을까? 결국 학교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가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학교는 표백된 공간일 수 없다

 

이민정 

분절되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가 어떤 학교 문화를 꿈꾸는가, 어떤 학교를 기대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애붕 님은 다양성이 많이 존중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새시비비 님은 누군가의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고민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완전히 갈등이 없고 평화로운, 유토피아적인 학교는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학교를 우리는 기대할까 하는 고민을 던져 본다.

 

양서영 

분절된 공동체를 만드는 커다란 요인이 약자에 대한 혐오다. 포럼에서도 이야기 나왔던, 차별금지법이나 포괄적 성교육 등이 뿌리내려서 학교 안에까지 들어왔을 때, 그런 문제가 많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비교적 안전한 학교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원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 전체가 ‘오염될 용기’ 같은 것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씀하셨듯 학교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이 될 수가 없다. 학교를 순수하고 푸릇푸릇한 학생들이 있는 그런 다소 이상화된 공간으로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에 어긋나는 것들을 안 좋게 본다. 학교를 ‘표백된 공간’으로 보고, 문제의 소지를 차단해 버리려 하는 태도가 있다. 그래서 피해 학생도 ‘이런 일을 겪었어요’ 하고 말하는 순간 마치 있어선 안 되는 문제를 내가 굳이 말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처럼 느끼게 되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선을 지키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나. 그런데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디까지가 선인지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한 번쯤 선을 밟아 봐야 한다. 가까이 다가가고 밟기도 하고 ‘아, 여기까지가 우리의 선이구나’ 하고 알아야 사람들이 서로의 선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학교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선을 밟을 수도 있으니 네 원 중심에만 서 있어라’ 하는 거다. 움직이지 말고, 문제 일으키지 말고, 아예 그런 걸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단 말이다. 선을 밟는 경험이 사실 성장이나 성숙의 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쟤 선 밟았네, 넘었네, 큰일났다, 쟤 내보내자’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학교폭력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가 폭력을 바라보는 방식인 것 같다. 제가 많이 느끼는 건 학교도 그렇고 사람들이 오염되기를 꺼리고 있다는 거고, 깨끗하게 아름답게 표백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정 

사람들이 있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선이나 발을 밟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시끄러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민해 보면, 애초에 시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시끄럽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는 잔잔한 고요함을 바라고,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제해 버리는 것 아닐까.

 

주원 

그런 잔잔함을 왜 서로가 원하게 될까 생각해 보면, 잔잔하지 않을 때 아무도 나를 지켜 주지 않고 내가 오롯이 책임 져야 한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학생들도 학교를 조용히 다니고 싶어 하고, 교사들도 맡은 일만 하고 아무 사건도 없길 바라고, 학부모들도 내 아이가 아무 일에도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주류의 분위기다. 물론 평화로운 건 좋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평화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양서영 

갈등과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고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건데, 모든 갈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짝꿍도 놀이 시간도 이것저것 다 없애고 가만히 혼자 지내는 방향으로 가니까 공동체가 깨지는 결과를 낳았다.

포럼에서 홍인기 님이 ‘폭력을 학교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사실 학교가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게 와닿았다. 학교가 이런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쩔 줄 모르고 손도 못 대고 무기력해진 모습인 것 같다.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지 확인한 자리였다

 

이민정 

마지막으로 포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감과 생각을 나누고 마치자. 나는 청소년이 참여하며 학교폭력과 학교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논의가 누군가에게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거나, ‘그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아닌가’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럼을 통해서, 그동안 결과에 대한 해결책, 그러니까 학교폭력 사건이 터진 후에야 사후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하여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충분히 던지지 못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학교폭력을 정말 없애려면 일단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채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우리의 모임이 ‘학교 그리고 폭력’에 대해 함께 깊이 고민하는 자리로 이어지길 바란다.

 

양서영 

학교폭력에 대해 복잡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날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교에는 사실 기본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존중, 기본적인 배려, 기본적인 인권. 그런 것이 학교에 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발생한 현상만 갖고 이야기하고 있던 건 아닌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지석 

양서영 님과 좀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는데, 오히려 복잡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공적 자리에서 학교폭력에 대해 논의할 때 좀 이미 정해진 꽉 막힌 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여러 사람들이 다 얽힌 문제다.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하면서 생각을 열어 주는 계기들이 있었다.

 

정예현 

청소년들이 발언하는 걸 들으면서, ‘얼마나 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 안에서 서로 어려움이 있고 갈등도 있고 했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장이 별로 없다. 학교로 돌아가서도, 그래 봐야 나는 한 명의 학부모일 뿐이지만, 학생들이 더 중심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원 

포럼에 참석한 사람들이 입장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들으면서 결국 모두가 원하는 것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바라는 방향성은 같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 각자의 입장을 더 내세우게 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서로가 의견이 좁혀질 수 없다고 오해하게 되곤 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참석자들끼리 그런 의견의 차이를 좁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결국 같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명이 “학폭법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이었고, 홍보물에 “우리를 가로막는 학폭법”이라고 썼는데,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포럼이었다.

 

이윤경 

학교폭력 주제의 토론회 등은 주로 제도나 정책 중심의 논의가 대부분이고 정작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학교 안에서 견디고 있는 학생, 교사, 학부모 당사자들은 어떤 심정인지 경험 중심으로 들어 보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번 포럼은 현장의 이야기로 시작해 고민을 확장해 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임이 지난 1년 동안 ‘학교와 폭력’ 세미나를 통해 심각하게 고민해 왔고 이번 포럼을 기획하면서도 의도했던 방향대로 진행될지 회의적이었지만 포럼에 참여했던 학생의 소감 한마디에 희망이 보였다.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조금 바뀌는 계기가 되었어요.” 관계 회복 중심의 학교폭력 대안, 가능할 수도 있겠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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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