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❹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학교폭력예방법」이 되려면
- 있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학교의 현실
새시비비 ericrow@daum.net
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ㄱ 학생은 ADHD약을 복용 중이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다문화 가정이며, 형이 장애인이다. 외모가 이국적이라서 놀림도 받아 관련한 학교폭력 피해 경험도 있다. 주류 집단에 편승하기 위해 장애인 비하 발언, 외국인 혐오 발언, 여성 비하 발언 등을 하여 학교폭력 가해 경험도 있다. ㄱ 학생은 주로 피해를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다 약자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후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재생산하려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 같다.
한번은 ㄱ 학생이 밤 9시 무렵 약기운이 떨어져 ‘업’된 상황에서 화재경보기를 누르고는 자신이 눌렀다고 소리치며 학교 안을 돌아다녔다. 기숙 학교인 이곳에서는 화재 경보가 울릴 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대피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전교생이 밤 9시에 모두 본관 앞에 모였고, 사감이 ㄱ 학생의 장난을 모두 보는 앞에서 나무라고 해산했다. 그 뒤 학생들은 해산하지 않고 ㄱ 학생을 둘러싸고 비난했고, 그중 한 선배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ㄱ 학생의 뺨을 때렸다. 내가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학생이 나에게 사건을 알리면서였다. 나는 이전에도 학교폭력을 은폐해 온 이 학교의 전력을 알고 있기에 117에 신고했다. 그러면서 ㄱ 학생이 안전하게 피해를 진술할 수 있도록 학교 전담 경찰관이 조사할 때 조용히 나에게 연락하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진술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 전담 경찰관은 나에게 연락 없이 학교폭력 은폐 전력이 있는 인성인권부장에게 연락해서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때리고 맞는 일은 청소년 시기에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강조하며, ‘이런 일을 다 신고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ㄱ 학생은 인성인권부장의 휴대전화로 학교 전담 경찰관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했고, ㄱ 학생은 자신이 맞은 것은 분명하지만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을 뒤늦게 전해 들은 나는 학교 전담 경찰관에게 항의했고, 그는 다시 학교에 와서 진술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인성인권부장과 친한 담임 교사가 그 자리에 동석했다. 담임 교사이기에 자신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전담 경찰관은 결국 동석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이에 나는 ㄱ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하여 교장에게 항의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고, 다음날 ㄱ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 나를 신뢰 동석인으로 지명하고 함께 대화를 나눴다. 교장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가해 학생이 반성하고 있고, 사과하고자 하니 생활지도를 잘하겠다며 학교폭력 절차로 가지 말자고 제안했다. 나는 나중을 대비해서 당시 상황이 CCTV에 녹화되어 있을 것이니 이를 확인해서 확실하게 사과받고, 가해 학생의 괴롭힘이 계속될 경우에는 그 증거를 갖고 다시 문제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인성인권부장은 CCTV 기록을 열람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을 두둔하면서, 때리는 모습은 담겨 있지만 확실하게 뺨을 맞는 장면이 찍히지 않았다며 계속 폭력 사실을 축소하는 말을 했다. 중립을 지켜야 할 학교폭력 책임 교사가 가해 학생을 두둔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끼어들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빠지라고 다그쳤다. CCTV를 확인한 후 ㄱ 학생의 학부모와 나는 교장을 만나 인성인권부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과받았다. 교장이 낮은 자세로 사과하고 인성인권부장은 자신이 나무라겠다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ㄱ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폭력 신고를 취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며칠 뒤, 이번에는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다짜고짜 나에게 항의했다. 당시 가해 학생이 더 있었는데 왜 자기 아들만 신고했는지 따져 물으며, 그 학생만 미워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화를 낸 것이었다. 가해 학생의 어머니에게 내가 신고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담임 교사에게 들었다고 했다. 마침 옆에 있던 가해 학생의 담임은 당황하면서 사실을 인정하고 나에게 사과했다. 상황이 어렵게 된 것을 직감한 가해 학생의 어머니는 말을 얼버무리더니 사과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이후 교장의 약속과는 달리 가해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가해 학생이 ㄱ 학생 말고도 최소 2명의 학생에게도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 학생은 사건 이후로 항상 나의 지도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학생들 사이에서 ㄱ 학생은 사회생활을 못하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혔고, 더 노골적인 따돌림을 받았다.
폭력의 희생자로 남는 소수자들
가해 학생을 옹호한 학생들은 학생 사회의 주류였으며, 주류 교사들에게 신뢰받는 학생이었다. 이들의 양육자들은 학부모회의 주요 임원들이었고,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학부모, 학생, 교사 중의 주류들이 연결되어 학교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이 하는 일들이 선행이고 곧 학교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식의 주장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자신을 도와줄 교사나 다른 조력자들을 찾다가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선택을 하곤 한다. 또는 이와 같은 폭력을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을 호소한다. 일부 전학 가지 않은 학생들은 가해자의 무리에 합류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이제 맞아도 울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고 자위하며 버티기도 한다. 가해 학생들은 주류 교사들의 지도 및 교육에 잘 적응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기에 학교생활기록부 관리에 더 진심이다. 피해 학생들은 주로 그날그날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가해 학생들도 또 어느 순간 다른 학생이나 교사, 양육자 등으로부터 받은 폭력의 피해자일 것이라고. 교사들도 그렇고 양육자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물타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꼭 짚어 봐야 한다.
법이 규정한 학교폭력의 범위는 좁지 않지만, 좁게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좁게 적용하고 싶은 대상에게만. ㄱ 학생과 같은 소수자성과 취약성을 지닌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신고당할 때는 충분히 넓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그런 폭력 피해의 말단에 있었던 또 다른 학생은 시설 거주 학생이었다. 시설 거주 학생, 장애인, 성소수자, 빈곤, 이주 배경 등 취약성을 노출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의 피해로 가는 지름길이다. 법과 정책, 또 교육 종사자들이 할 일은 학생의 취약성이 폭력 피해로 이어지는 길을 교육의 힘으로 끊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은 그러한 소수자를 위한 장치로 작동해야만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은 본래 그런 소수자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다. 소수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더 평등하고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할 일이다.
앞선 사례의 사건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가해학생을 편파적으로 두둔했던 인성인권부장은 아동학대를 하여 신고당한 적이 있고, 그 행위에 비해 가벼운 처분을 받아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다. 또한 이 학교의 다수 학생들은 보호자로부터 체벌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동 인권 옹호자 역할을 해야 할 보호자와 교사가 아동학대에 가까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그들의 아동학대 내지는 폭력적 행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또 폭력을 교육으로 정당화하는 일이 지속됨으로써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민감도는 낮아지고, 인권 감수성은 후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권력 서열의 아래쪽으로 계속 전가되고 소수자들은 폭력의 희생자로 남아 있게 된다.
지금의 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이 ‘사법화’를 부추긴다고 비판받지만, 많은 법정 드라마에서 선의의 변호사들이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는 방식을 생각해 보고, 또 수많은 현실의 공익 변호사들의 활동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있는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현행법을 어떻게 하면 더 정의롭게 적용하고 시행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왜 유독 학교에서는 선의의 변호사 그리고 공익 변호사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사들(특히 교사들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의 이야기를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악성 민원을 내는 학부모로 인해 생활지도가 어렵다는 교사들의 호소에 호응하여, 생활지도 고시, 일명 ‘악성 민원 방지법’ 제정 추진 등 교권 강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교권이 강화된 그 교사들은 왜 「학교폭력예방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 학생들의 편에서 공익 변호사들과 같은 적극적 활동을 하지 않는가? 교사가 「학교폭력예방법」을 공부하고 이를 잘 활용하여 소수자 학생들을 도울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교사가 공익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말 억울한 학교폭력 신고에 대해 교사가 대처하여 그 과정에서 갈등과 악감정이 증폭되는 것을 예방한 사례도 있다. 가해 추정 학생에 대해 학교폭력 신고도 하지 않고 분리 조치를 요구할 때, 「학교폭력예방법」을 통해 가해 추정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고 결국 ‘학교폭력 아님’ 결정을 받도록 도와준 경험도 있다.
《전유경》이라는 불교 경전에는 독화살의 비유가 나온다. 누군가 독화살을 맞고 죽어 가는데 독화살을 누가 쐈고,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독은 어떤 독인지 아는 것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닌데, 그것에 집착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학교폭력예방법」에 한계가 많고 문제를 개선하자는 논의가 많지만, 지금 당장 폭력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선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물론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 등 제도의 개선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응보적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개선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과 병행하여 지금의 법 제도를 정의롭게 적용하고 활용하여 당장의 피해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주디스 버틀러·프레데리크 보름스 씀, 문학과지성사)이라는 책을 읽었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은 연결되어 있으며,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방치한 채로 살 만한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학교가 폭력으로 인해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사는 공간이 되면, 특히 소수자에게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도 살 만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나중에 법 제도가 개선된 뒤에야 뭔가 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방치하는 행위다. 법 제도 개선은 지속적으로 논의하더라도 지금 당장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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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예방법」이 되려면
- 있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학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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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교사,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ㄱ 학생은 ADHD약을 복용 중이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다문화 가정이며, 형이 장애인이다. 외모가 이국적이라서 놀림도 받아 관련한 학교폭력 피해 경험도 있다. 주류 집단에 편승하기 위해 장애인 비하 발언, 외국인 혐오 발언, 여성 비하 발언 등을 하여 학교폭력 가해 경험도 있다. ㄱ 학생은 주로 피해를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다 약자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후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재생산하려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 같다.
한번은 ㄱ 학생이 밤 9시 무렵 약기운이 떨어져 ‘업’된 상황에서 화재경보기를 누르고는 자신이 눌렀다고 소리치며 학교 안을 돌아다녔다. 기숙 학교인 이곳에서는 화재 경보가 울릴 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대피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전교생이 밤 9시에 모두 본관 앞에 모였고, 사감이 ㄱ 학생의 장난을 모두 보는 앞에서 나무라고 해산했다. 그 뒤 학생들은 해산하지 않고 ㄱ 학생을 둘러싸고 비난했고, 그중 한 선배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ㄱ 학생의 뺨을 때렸다. 내가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학생이 나에게 사건을 알리면서였다. 나는 이전에도 학교폭력을 은폐해 온 이 학교의 전력을 알고 있기에 117에 신고했다. 그러면서 ㄱ 학생이 안전하게 피해를 진술할 수 있도록 학교 전담 경찰관이 조사할 때 조용히 나에게 연락하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진술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 전담 경찰관은 나에게 연락 없이 학교폭력 은폐 전력이 있는 인성인권부장에게 연락해서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때리고 맞는 일은 청소년 시기에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강조하며, ‘이런 일을 다 신고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ㄱ 학생은 인성인권부장의 휴대전화로 학교 전담 경찰관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했고, ㄱ 학생은 자신이 맞은 것은 분명하지만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을 뒤늦게 전해 들은 나는 학교 전담 경찰관에게 항의했고, 그는 다시 학교에 와서 진술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인성인권부장과 친한 담임 교사가 그 자리에 동석했다. 담임 교사이기에 자신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전담 경찰관은 결국 동석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이에 나는 ㄱ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하여 교장에게 항의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었고, 다음날 ㄱ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 나를 신뢰 동석인으로 지명하고 함께 대화를 나눴다. 교장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가해 학생이 반성하고 있고, 사과하고자 하니 생활지도를 잘하겠다며 학교폭력 절차로 가지 말자고 제안했다. 나는 나중을 대비해서 당시 상황이 CCTV에 녹화되어 있을 것이니 이를 확인해서 확실하게 사과받고, 가해 학생의 괴롭힘이 계속될 경우에는 그 증거를 갖고 다시 문제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인성인권부장은 CCTV 기록을 열람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을 두둔하면서, 때리는 모습은 담겨 있지만 확실하게 뺨을 맞는 장면이 찍히지 않았다며 계속 폭력 사실을 축소하는 말을 했다. 중립을 지켜야 할 학교폭력 책임 교사가 가해 학생을 두둔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끼어들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빠지라고 다그쳤다. CCTV를 확인한 후 ㄱ 학생의 학부모와 나는 교장을 만나 인성인권부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사과받았다. 교장이 낮은 자세로 사과하고 인성인권부장은 자신이 나무라겠다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ㄱ 학생의 학부모는 학교폭력 신고를 취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며칠 뒤, 이번에는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와 다짜고짜 나에게 항의했다. 당시 가해 학생이 더 있었는데 왜 자기 아들만 신고했는지 따져 물으며, 그 학생만 미워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화를 낸 것이었다. 가해 학생의 어머니에게 내가 신고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담임 교사에게 들었다고 했다. 마침 옆에 있던 가해 학생의 담임은 당황하면서 사실을 인정하고 나에게 사과했다. 상황이 어렵게 된 것을 직감한 가해 학생의 어머니는 말을 얼버무리더니 사과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이후 교장의 약속과는 달리 가해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가해 학생이 ㄱ 학생 말고도 최소 2명의 학생에게도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 학생은 사건 이후로 항상 나의 지도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학생들 사이에서 ㄱ 학생은 사회생활을 못하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혔고, 더 노골적인 따돌림을 받았다.
폭력의 희생자로 남는 소수자들
가해 학생을 옹호한 학생들은 학생 사회의 주류였으며, 주류 교사들에게 신뢰받는 학생이었다. 이들의 양육자들은 학부모회의 주요 임원들이었고,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학부모, 학생, 교사 중의 주류들이 연결되어 학교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이 하는 일들이 선행이고 곧 학교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식의 주장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자신을 도와줄 교사나 다른 조력자들을 찾다가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선택을 하곤 한다. 또는 이와 같은 폭력을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을 호소한다. 일부 전학 가지 않은 학생들은 가해자의 무리에 합류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이제 맞아도 울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고 자위하며 버티기도 한다. 가해 학생들은 주류 교사들의 지도 및 교육에 잘 적응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기에 학교생활기록부 관리에 더 진심이다. 피해 학생들은 주로 그날그날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가해 학생들도 또 어느 순간 다른 학생이나 교사, 양육자 등으로부터 받은 폭력의 피해자일 것이라고. 교사들도 그렇고 양육자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물타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꼭 짚어 봐야 한다.
법이 규정한 학교폭력의 범위는 좁지 않지만, 좁게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좁게 적용하고 싶은 대상에게만. ㄱ 학생과 같은 소수자성과 취약성을 지닌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신고당할 때는 충분히 넓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그런 폭력 피해의 말단에 있었던 또 다른 학생은 시설 거주 학생이었다. 시설 거주 학생, 장애인, 성소수자, 빈곤, 이주 배경 등 취약성을 노출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의 피해로 가는 지름길이다. 법과 정책, 또 교육 종사자들이 할 일은 학생의 취약성이 폭력 피해로 이어지는 길을 교육의 힘으로 끊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은 그러한 소수자를 위한 장치로 작동해야만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은 본래 그런 소수자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다. 소수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더 평등하고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할 일이다.
앞선 사례의 사건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가해학생을 편파적으로 두둔했던 인성인권부장은 아동학대를 하여 신고당한 적이 있고, 그 행위에 비해 가벼운 처분을 받아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다. 또한 이 학교의 다수 학생들은 보호자로부터 체벌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동 인권 옹호자 역할을 해야 할 보호자와 교사가 아동학대에 가까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그들의 아동학대 내지는 폭력적 행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또 폭력을 교육으로 정당화하는 일이 지속됨으로써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민감도는 낮아지고, 인권 감수성은 후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은 앞서 말한 것처럼 권력 서열의 아래쪽으로 계속 전가되고 소수자들은 폭력의 희생자로 남아 있게 된다.
지금의 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이 ‘사법화’를 부추긴다고 비판받지만, 많은 법정 드라마에서 선의의 변호사들이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는 방식을 생각해 보고, 또 수많은 현실의 공익 변호사들의 활동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있는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현행법을 어떻게 하면 더 정의롭게 적용하고 시행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왜 유독 학교에서는 선의의 변호사 그리고 공익 변호사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사들(특히 교사들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의 이야기를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악성 민원을 내는 학부모로 인해 생활지도가 어렵다는 교사들의 호소에 호응하여, 생활지도 고시, 일명 ‘악성 민원 방지법’ 제정 추진 등 교권 강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교권이 강화된 그 교사들은 왜 「학교폭력예방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자 학생들의 편에서 공익 변호사들과 같은 적극적 활동을 하지 않는가? 교사가 「학교폭력예방법」을 공부하고 이를 잘 활용하여 소수자 학생들을 도울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교사가 공익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말 억울한 학교폭력 신고에 대해 교사가 대처하여 그 과정에서 갈등과 악감정이 증폭되는 것을 예방한 사례도 있다. 가해 추정 학생에 대해 학교폭력 신고도 하지 않고 분리 조치를 요구할 때, 「학교폭력예방법」을 통해 가해 추정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고 결국 ‘학교폭력 아님’ 결정을 받도록 도와준 경험도 있다.
《전유경》이라는 불교 경전에는 독화살의 비유가 나온다. 누군가 독화살을 맞고 죽어 가는데 독화살을 누가 쐈고,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독은 어떤 독인지 아는 것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닌데, 그것에 집착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학교폭력예방법」에 한계가 많고 문제를 개선하자는 논의가 많지만, 지금 당장 폭력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선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물론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 등 제도의 개선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응보적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개선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과 병행하여 지금의 법 제도를 정의롭게 적용하고 활용하여 당장의 피해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주디스 버틀러·프레데리크 보름스 씀, 문학과지성사)이라는 책을 읽었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은 연결되어 있으며,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방치한 채로 살 만한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학교가 폭력으로 인해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사는 공간이 되면, 특히 소수자에게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도 살 만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나중에 법 제도가 개선된 뒤에야 뭔가 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방치하는 행위다. 법 제도 개선은 지속적으로 논의하더라도 지금 당장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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