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특집 ❷] 피해자에게 부담을 주는 학교폭력 절차의 한계 | 애붕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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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학교폭력예방법이 남긴 것

 

피해자에게 부담을 주는 학교폭력 절차의 한계



애붕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대학생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페미니즘 리부트 후기였고, 제가 뭔가 회사 내의 여성 임원 부족을 문제 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런 문제의식이 너무 당연하니까 이야기했는데, 그 이후로 남학생들이 저한테 계속 “김치김치”거렸어요. 수업 시간마다 그랬고요. 선생님들이 계속 혼내고, 제지하고, 말리는 정도였다니까요. 이 무렵이 막 ‘학폭 미투’가 일어나던 시기라서 유독 학교폭력 설문 조사를 많이 했고, 저는 그때 이 일을 상세히 적었습니다, 해서 선도부 선생님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눴고 저랑 가해자 모두 소선도위원회에 갔죠.


그런데 당연히 제가 피해자인데, 소선도위원회는 딱히 관심도 없는 거 같았어요. 제가 그 남학생들에게 ‘그러면 넌 된장남이냐?’ 그랬거든요. 그런 걸 꼬투리 잡아서 저도 소선도위원회 징계를 받았습니다. 제가 ‘피해자’라는 감각이 있었으면 정말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 가해자들이 1년 내내 저를 괴롭혔는데, 거의 1학년 2학기 말에야 위원회가 열리고 처분받아서,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고, 생각해 보면 가해자 분리가 아예 안 됐어요. 정말 성인지 감수성도 없고, 무엇보다 저에게도 가해자들에게도 별 영향도 없는 이런 소선도위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정말 화났죠. ‘이러니까 막무가내로 괴롭히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선도위원회이기는 했지만 걔네들도 제가 ‘그럼 너네는 된장남이냐?’라고 한 걸 계속 꼬투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것도 일종의 ‘맞신고’에 해당하겠죠. 그런 상황에서 결국 저도 처벌받은 격이 됐으니까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인 저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고, 무엇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면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없게 된 거잖아요. 뭐 하나만 꼬투리 잡으면 피해자도 같이 처벌받는 것이니, 이게 무슨 반면교사가 되겠어요? 심지어 저는 처분이 낮게 나와서 쓰레기 치웠고, 걔네는 겨우 일주일 동안 복도 청소를 했는데, 가해자가 그걸 얼마나 억울해했는지 아세요? 제 처분이 낮은 게 당연한 건데도 ‘왜 쟤는 쓰레기 치우고, 우리는 청소해요?’ 이랬다니까요.


그래도 저는 학교폭력 신고를 한 것에 만족하긴 했어요. 가해자들은 일주일 내내 복도 청소했고, 수업 시간에도 했기 때문에 망신당하기도 딱 좋은 거긴 했거든요. 그렇지만 폭력을 예방하고, 당사자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문화를 바꿔 내는 데 실패한 거죠. 일단 저도 처분을 받았기도 했고, 이 가해자들은 거의 10명 전후로 패거리 수준이라서 이후에 걔들이 바뀐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당사자인 저에게는 전혀 치유가 안 됐다고 생각해요. 저도 잘못했다며 처분을 받았고, 진정한 사과도 별로 받지 못했고요. 가해자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냥 ‘처벌받았으니까 됐잖아?’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기가 얼마나 쉽겠어요. 이건 피해자인 저에게 전혀 치유가 아닌 거고, 그들도 뭘 잘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전혀 ‘당사자들의 치유’가 아닌 거죠.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제도

 

형식적이고 사법적인 처벌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 논리에 따라 가해자는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거고, 그에 따라 피해자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느꼈어요. 물론 이 당시는 이른바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사건’ 이전이긴 했지만요. 제가 경험한 학교는 여성혐오적인 언어폭력이나 차별·혐오적 괴롭힘 등을 단순한 것,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고, 그 처리 과정도 느리고, 소선도위원회에서 끝나고, 자칫 ‘피해자도 처벌’을 받고, ‘가해자와 분리 조치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든다는 거죠.


이런 조건이 결국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걸 강화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피해자답지 않으면 끊임없이 가해자들은 꼬투리를 잡을 테고, 그러면 피해자도 같이 처벌받죠. 이건 ‘기계적 중립’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피해자는 피해를 받았음에도, 자기도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피해자다워야’ 하는 거죠. 끊임없이 무고한 학생이어야 하고, 착하고, 순종적이고, 무슨 학교폭력 당하면 가만히 있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어야 하는. 그런데 그런 게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피해자도 처벌받는다는 건 정말 안 좋은 선례로 남는다고 생각해요. 결국 피해자를 향한 구속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에서 느낀 건 문화를 바꿔 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변화나 치유를 하기가 어려운 거죠. 예를 들어 제가 겪은 문제에서는 근본적으론 남초, 여성혐오적인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가 있는 건데 그건 해결이 안 된 거죠. 가해자들도 그 처벌 좀 받았다고 사과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여성혐오가 뭔지, 그게 왜 문제인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고, 피해자인 제가 사과도 못 받았는데, 1년 내내 괴롭힌 것에 대해 분리 조치도 안 된 채 겨우 일주일 청소한 거 가지고 제 속이 풀릴 거 같나요? 전혀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런 사건을 이유로 남초 문화 개선, 여성혐오적인 말이 왜 잘못됐고 어떻게 하면 안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야죠. 정말 형식적으로라도 가해자들이 포괄적 성교육, 젠더폭력과 관련된 교육을 들었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실질적인 방식으로 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없고, 단순한 엄벌주의가 뭐가 그렇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사회적으로도 강남역 살인 사건, N번방 범죄, 버닝썬, 딥페이크 성범죄가 터지는 게 아니겠어요? 매번 특정 가해자만 욕하고 악마화해서 형량 높게 하고, 일상적으로 더 많은 다른 가해자들은 별로 처벌하지도 않고. 이게 매번 사회 문화, 분위기를 구조적으로 바꾸지 않으니까 계속 이름과 형태만 바꿔서 재발하잖아요. 이런 걸 벌써 학교에서부터 학습시키면 어떡하나요?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 같은 강력 처벌도 ‘반면교사’, ‘본보기’가 되는 거지, ‘가해자의 반성과 책임’을 이끄는 제도는 절대 아니에요. ‘걸리지 말걸, 재수 없게 걸렸어’, ‘아, 쟤가 더 심하게 했는데 나만 폭로됐어’, ‘피해자가 유난해서, 신고해서, 선생님한테 얘기해서 이렇게 된 거야’라고 억울해할 뿐일 거예요. 폭행을 한 경우에도 ‘옆 학교에선 이를 부러뜨렸다던데, 나는 좀 때려서 멍밖에 안 들었는데 왜 처벌을 비슷하게 받거나, 나만 비난받나’ 할 수도 있고, 따돌림도 ‘내가 뭐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 것도 아니고, 카카오톡 감옥 만들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밖에 안 했는데 왜 마치 그런 드라마 속 악마처럼 몰아가냐’ 하고 억울해할 수도 있고요. 가해자들이 ‘쟤는 더 심하게 했는데 나보다 더 잘 살고, 무서운 애니까 처벌 안 하고, 나만 어정쩡해서 처벌받았어’라고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상대적이잖아요. 성폭력이라고 하면 정말 ‘강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성추행이나 성희롱 같은 걸 하고도 ‘이 정도가 뭔 성폭력?’ 하며 안하무인, 적반하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교사들도 ‘다 크면 괜찮아져’, ‘남자애들 원래 다 저러잖아, 수준 낮으니까 네가 이해해’ 이렇게 넘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성인지 감수성이 학교와 사회에 안 갖춰진 상태에서 법에 ‘성폭력’을 형식적으로 넣기만 하면 뭐하냐고요. 정말 하등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성폭력, 차별, 혐오 등 모두 별것 아니라 생각하니까 너무 처벌이 가벼운 거죠.


 

‘생기부 기재’의 한계와 위험성

 

제가 학교폭력을 겪은 그때도 생기부 기재 제도는 분명 있었어요. 저에 대한 가해자들도 생기부 기재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생기부는 내용 실리는 기간도 길고, 대학 입시에 반영이 된다지만, 초등학교·중학교에서는 기재 기간이 더 짧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실제로 학교폭력이 고등학생으로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폭력을 저지르고, 괴롭힐 만큼 다 괴롭혀 놓고, 고등학교 가서는 이제 시시해져서, 대학 입시 준비해야 되니까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초등학생, 중학생들한테는 별로 의미 있는지 모르겠어요. 또, 대학 입시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일수록 생기부 기재, 대입 불이익 이런 건 영향이 적다는 문제도 있죠. 상급 학교 입시라는 수단이 없이는 아무 압박이 안 되는 상황이 근본적인 한계점 아닐까요?


심지어 저는 같이 징계를 받았는데 그것도 반영되었을 수 있어요. 저도 가해자들이 더 큰 처벌을 받고, 오래 기록이 남았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랬으면 저한테도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하는 데도 불이익이 생기고 타격이 됐을 수 있는 거죠. 만약 학교폭력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싸우면 맞신고를 당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똑같이 생기부 기재가 적용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어떤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식 개선, 가해자의 반성이 더 중요한 거지, 뭐 처벌을 더 받고, 얼마나 생기부에 박제해 놓느냐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저한테는 사과 한마디가 더 중요했고, 생기부 기재라는 방식이 아닌, 다른 학생들이 반면교사 삼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했다고요.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교사들이 계속 이 가해자들만 혼내고 그랬어 봐요. 단순히 기계적으로 처벌만 강화하면, ‘피해자답지’ 못하면 피해자도 처벌받는 세상에서 피해자한테도 엄청난 압박과 부담으로밖에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생기부 기록 기간이나 범위만 넓히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저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구조적인 문제, 인식 개선, 가해자의 사과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강조해야 돼요.

 


힘들었던 주변의 인식과 2차 가해

 

꼭 별도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사실 저는 학교 선생님들이 저한테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남자애들은 원래 다 저래, 저 때는 저럴 때야. 나중에 대학생 되면 안 그래’, ‘남자애들이 그렇지’ 하고 넘어가는 반응도 많았고, 그런 말들이 더 상처였고 화가 났어요. 아니, 사회가 그걸 용인해 주니까 그럴 수 있잖아요. 자꾸 그런 말을 하면 어쩌라는 건지, 속으로만 생각하든가요.


저는 제 가족들도 2차 가해를 해서 더 힘들었어요. 언니도 ‘어차피 가해자들 수준 낮은 걸 아는데도 왜 그런 페미니즘 얘기를 하냐’는 식으로 몰아붙였고, 엄마도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야 돼. 또 학교 가서 항의하면 어쩌려고’라면서 저를 계속 입막음했어요. 그 이후에 엄마가 가해자의 양육자들이랑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안 지내면 안 돼?’ 그랬는데, ‘너는 너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지’라고 답하셔서 정말 상처받았어요. 정작 지금은 그 양육자들이랑 가깝게 지내지도 않는데, 그럴 거면 저한테 왜 그랬대요? 정말 억울하고 분해요.


학교에서 하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도 주로 그냥 영상 틀어 놓고 보라고 하는 거에 그치고 있어요. 솔직히 고등학생들은 집중도 안 하지만, 중학생들도 그냥 간식 사 와서 먹고 잡담하는 시간 정도로만 활용하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죠. 게다가 제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징계 처분을 받았는데도 학교폭력 관련 교육, 포괄적 성교육, 젠더폭력에 대한 교육 같은 건 하나도 듣지 않았거든요. 이러니까 하등 도움이 안 되죠. 적어도 학교폭력과 젠더폭력에 대해서 강사가 직접 와서 설명하고, 교육하려고 하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했다고 생각해요.


 

약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법화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도 괴롭힘을 당했는데요. 그때 저도 ‘말해서 사과받자’가 아니라 바로 ‘법적 대응’이 떠올랐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 가해 교사한테 사과를 요구했다가는 더 상처받는 일만 생겼을 것이 뻔했지만요.


그런데 그렇게 법적 대응을 생각해 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일단 청소년이 변호사한테 의뢰하는 거 자체가 너무 까다로워요. ‘부모 동의서’를 요구하든가, ‘이런 건 흔하지가 않아서 다른 변호사한테 문의해 보세요’ 이렇게 대응하는 경우도 많아서……. 제가 법률 대응을 알아보면서 느낀 한계들이었어요. 이게 나이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교사의 폭력과 괴롭힘 말고, 학교폭력 전문 대응 변호사는 굉장히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피해 사실을 왜 ‘상업화’하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절박함과 피해 사실마저도 돈으로 환산해 버리는 건 너무 끔찍해요 심지어 이런 자칭 변호사들은 이미 가해 학생 중심으로 변호하고, 그렇게 방향을 잡았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학교폭력 문제에 대처하기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법률사무소가 있다는 서현역, 교대역에도 가 봤는데, 서현역에서는 정말 성심성의껏 상담해 주긴 하지만, 시간당 비용이 10만 원 정도라서 너무 비쌌어요. 교대역에서는 상담을 하긴 하는데 너무 시혜적이고, 대충대충 하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이런 조항까지 엮어서 하시게요? 안 될 거예요’라며 단정적인 태도로 문전박대를 당했던 기억도 나요.


결국 피해자가 취약 계층이라면 법적 분쟁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이런 비용의 장벽이나 불리함 때문에 ‘봉쇄 소송’을 당하는 것처럼 느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애초에 법률 상담 비용도 비용이고, 변호사 선임하면 500만 원은 기본이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돈이 많은 가해자들이 마음 놓고 학교폭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가령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사건’ 같은 사례가 정확하게 이 허점을 파고든 거죠. 어차피 법적인 결론이 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사법화가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피해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거예요. 학교폭력이라는 게 강약약강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데, 이런 건 아예 무시하는 거죠.



교육공동체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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