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기획 ❶] 학교 모의선거교육, 왜 필요할까 | 이봉학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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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선거와 교육 사이 ❶ 


학교 모의선거교육,

왜 필요할까

 


이봉학

경기도 의정부 송현고 교사

 



장면 1: 

2024년 12월 2일 의정부의 한 고등학교 교실

 

2024년 12월 2일,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 시간에 유신헌법을 주제로 수업 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하였다. “선생님! 요즘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썰들이 많이 나오던데 지금 그러면 어떻게 돼요?” 순간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럼 학교 안 나와요?”, “우리 죽어요?” 등 질문이 쏟아졌다. 평소 수업 시간에 질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교실에서 이렇게 학생들이 흥미를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 상황이라 이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을 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럴 일은 절대 없다”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제정신이 아닌 이상 비상계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장담하였다. 이것이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지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당시 수업을 함께했던 학생들에게 12.3 내란 사건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이 경험은 민주 시민을 길러 내기 위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교육 현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충분히 교육하고 있는가? 선거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위해 어떤 고민과 판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는가? 정치가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을 어떻게 구별하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학습하고 있는가? 선거교육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학교교육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차원에 머무른 채, 학생들이 실제로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 보고 판단해 보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결국 2024년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제도만이 아니라 시민의 역량에서 비롯되며 그 역량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학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장면 2: 

2014년 남양주의 한 고등학교 교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 특히 현대사 부분을 수업하다 보면 교실에서 학생들이 특정 아이를 지목하며 “선생님! 저 아이 일○이에요” “선생님 저격당할 수도 있어요!”라며 놀리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당시 수업을 하던 반 중에서 유독 다른 아이들에게 일○으로 지목을 받던 아이가 있었다. 평소에 조용히 수업을 잘 듣던 학생이고 그런 지목에 늘 억울함을 호소하던 아이라 놀리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 놀림을 받다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놀림을 받은 학생이 울부짖으며 교실을 뛰쳐나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교실을 뛰쳐나가며 그 아이는 놀리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나 일○ 아니야! 이 개○○들아!” 그날 나는 놀리던 아이들을 크게 꾸짖고, 뛰쳐나간 아이를 찾아 달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에게도 사건 내용을 전달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보듬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일○으로 지목받던 학생이 평소 일○ 사이트에 특정 BJ를 모욕하는 글을 수차례 게시하였고 그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그 사이트의 관리자 등급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보면 해가 갈수록 ‘일○’으로 지목받는 아이들의 비율은 늘어만 가고 있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층의 보수화, 남녀 간의 정치적 이념 갈등 등이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시민교육은 교과서 중심의 이론 학습과 형식적 참여 활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선거 제도와 민주주의 원리를 배우지만, 실제 정책을 비교하거나 공약을 분석하거나 투표를 경험하기는 어렵다. 청년층의 보수화, 혐오적 정치 문화,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과 정치 무관심 등의 현상은 단순히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교육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학교에서의 체계적인 선거교육의 부재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장면 3: 

2018년 의정부의 특성화 고등학교 교실

 

관외 전입으로 인해 특성화 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된 나는 교직 생애의 전환점이 될 만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당시 담임을 맡은 학급은 전원 남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무려 7명의 보호관찰 대상 학생이 있었기에 보호관찰소 특별 보호관찰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친부·친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가 우리 반에 4명밖에 없다는 사실도 상담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업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유독 현대사 관련 내용에는 반응하는 이유가 특정 웹사이트에 심취해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많았으며, 특히나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미리 접한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심어 주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학업에는 관심이 없이 편향되고 왜곡된 의식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군분투하며 수업을 진행하던 상황에서 모의선거교육을 하게 되었다.


교육감 선거를 포함해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교육과정에서 청소년 선거교육을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면서 시행하고자 교육시민단체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주관하여 모의선거교육 참여 학교를 모집하고 있었다. 이에 평소 선거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던 나는 참여를 신청하였고, 6월 지방 선거 전에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주제로 선거교육을 한 후 모의선거까지 진행하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습 목표는 모의선거를 통해 청소년의 민주 시민 의식과 주권자 의식을 함양하는 것으로 잡았다. 학생들이 단순히 선거 제도를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책을 비교하고 판단하며 선택하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체감하도록 하였다. 또한 정당 정치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적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후보와 정책을 분석하고 토론함으로써 민주적 의사 결정의 구조를 경험하게 하였다. 모의선거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과거의 정치보다는 현재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사회적 현안과 선거에 훨씬 더 큰 관심과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나 각 후보자의 공약을 분석하고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본 과정은 학생들에게 선거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정치란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다. 또한 막연한 거부감 또는 선입견이 아닌 후보자의 공약과 정책을 통해 선택하는 경험도 교육시킬 수 있었다.


 

장면 4: 

모의선거 수업을 통한 교사의 성장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모의선거교육을 진행하는 데 다양한 지원을 했다. 우선 각급 학교에 선거관리위원회와의 질의응답에 기초한 법령 정보 등을 첨부하여 보내 주어, 모의선거교육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현장 교사들이 안정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한 학습 지도안과 학습지 공유, 선관위에 등재된 각 후보의 공약집 등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운영하였고, 지원금, 투표함, 투표소, 투표 도장, 투표 용지 등을 지원하였다. 학생들의 모의 투표 결과는 선거가 끝난 후 발표했는데, 전국 참가 학교의 최종 결과를 수합하여 언론에도 발표하였다. 일부 학교의 경우에는 학생 대표가 당선된 교육감에게 당선증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모의선거 프로젝트를 실시한 학교 교사를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고 수업의 의미를 정리하는 마무리 활동까지 하였다. 간담회를 통해, 수업의 뛰어난 효과성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근거로 조심스러워하는 학교 내의 부정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었고, 결국 참여를 꺼린 학교와 교사가 많이 있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의선거교육을 통한 경험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로서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모의선거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높은 관심과 집중은 교육이 추상적 설명이 아닌 구체적 경험을 통해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또한 본인 스스로도 말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교사가 되려고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께 모의선거 수업을 통해 경험한 교육적 실천 사례를 나누기 위해 티처빌 연수원을 통해 ‘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라는 원격 강의를 개설하여 희망하는 전국의 교사들에게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공유하였다.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할 당시에는 자치 역량 강화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학생과 학부모, 지역 사회의 다양한 교육공동체들이 민주시민교육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한 소년이 선거를 통해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호프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소설에 추천의 글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모의선거 수업은 학생들의 성장뿐만 아니라 수업을 진행한 교사도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민주시민교육 및 선거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참여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나는 민주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야말로 민주 시민을 길러 내는 가장 확실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념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모의선거 수업을 진행한 것이었다.


2019년 만 18세 선거권이 보장되면서 고등학교 학생이 유권자가 되었고, 이에 일부 언론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유권자 학생이 있는 상황에서 학교에서의 모의선거는 학교를 정치화할 우려가 있으며, 「공직선거법」 위배 소지가 있다고 하여 결국 모의선거교육을 금지하였다. 이후 여러 노력의 결과로 일부 교육 목적 모의 투표는 허용되었지만, 실제 후보와 정당을 대상으로 한 모의선거는 여전히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는 모의선거교육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참여 경험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렵게 시작된 체험형 민주시민교육이 시작과 동시에 좌초되었다는 의미이다.


어느덧 8년 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시 모의선거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 학년 말 수업 평가 때 적었던 내용을 잊을 수 없다.

“제가 만약 이 수업을 듣지 않고 성인이 되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소중한 선거의 기회를 한 번 놓쳤을 것 같아요. 선생님 수업 덕분에 선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첫 선거에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직 경험에서 몇 번 느껴 보지 못한 보람과 희열이었다. 어떤 이는 ‘모의선거교육이 학교를 정치화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모의선거교육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민주시민교육이었다. 결국 민주주의는 참여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그 출발점은 모의선거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학교 현장에서 모의선거교육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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