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왜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논쟁하지 않는가
이윤경 justyk@daum.net
본지 편집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문
“현장학습 필수 아닙니다! 학생들과 함께 경험하기 위해 저희가 가 주는 겁니다!”
교육부 주관 현장체험학습 간담회에서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이 한 이 발언은 각종 SNS상의 날 선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반에는 “과하다”와 “그럴 만하다”로 나뉘던 여론이, 이제는 ‘교사 대 비교사’ 구도로 갈라져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학생은 공부나,
학부모는 양육이나 하세요”
교사들은 말한다. 악성 민원인, 학부모들 탓에 교육이 불가능해졌다고.
약 1,000명 규모의 교육계 단체 채팅방에 한 교사가 이런 글을 남겼다. “의사가 환자 치료 방법을 정할 때 보호자와 같이 정하는 게 아니듯, 교육은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하는 겁니다. 민주적이라는 단어로, 학생·학부모·교사가 같이 정하라는 것 자체가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단면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학부모님은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해 주시는 게 역할입니다.”
또 다른 교사는 “의사·환자·보호자를 ‘의료 3주체’라고 하지 않는데 왜 교육계에서만 교사·학생·학부모를 ‘교육 3주체’라고 하느냐”고 반문하며 “교사는 교육의 주체, 학생은 학습의 주체, 학부모는 양육의 주체”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채팅방에 있던 한 고등학생이 남긴 글이다. “학생도 체험학습을 포함한 모든 교육 활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사를 의사에 비유하며 교육 전문성을 독점하려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거버넌스’ 정책 역시 교육부, 교육청, 학교 입장에서는 불편한 형식적 절차였고, 실제로도 교사 외의 주체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에 대한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감히’ 주체로 나서려 드느냐가 기본값이다. 최근 교육 3주체론에 대한 노골적인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진보 진영에서마저 학교운영위원회를 폐지하자거나 교원 위원만으로 구성하자는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교사 집단 이기주의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교원 단체들을 중심으로 여과 없이 표출되며, 오히려 교사 집단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민원이 아닌 갑질,
그 뒤에 숨는 교육 기관
앞서 언급한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의 발언 영상에 대해 어느 공무원이 올린 글을 봤다.
‘일반 공무원도 교사 못지않게 많은 민원에 시달린다. 죽은 동료도 있고 법정에 선 동료도 많다. 나 또한 1년 넘게 민원에 시달리다가 법정에서 울먹이며 호소한 적이 있고, 심지어 자기 돈으로 평생 메꿔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라는 요지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다른 공무원들도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 과연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니까 “학부모들 민원이 있으면 해결해 가며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을 안 함으로써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교사들의 현실이 다른 공무원들의 현실과 단순 비교될 수는 없고, 학교 현장의 문제점도 민원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은 글로 기억에 남았다. 그렇다, 문제는 민원의 유무가 아니다.
교사들이 사례로 드는 “내 아이만 특별히 챙겨 달라”는 요구는 엄밀히 말해 민원이 아니라 갑질이다. 갑질은 접수도, 반영도 해선 안 되며, 교장과 교육청은 그런 요구가 교사에게 닿지 않도록 걸러 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부당한 갑질을 여과 없이 교사에게 떠넘겨 교육 활동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방치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바로 그런 교육 기관이다.
몰상식한 사람들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학교에서만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가. 우리 동네 주민센터의 동장실 소파에 “내 세금으로 운영되는 내 사무실”이라며 매일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센터나 구청이 몰상식한 주민들 때문에 마을 행사를 취소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교사들이 수년에 걸쳐 전국의 갑질 사례를 모아, 마치 모든 학부모가 그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은 결국 일부 몰상식한 학부모를 핑계 삼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위협이다. 하지만 다수의 학부모는 이에 맞설 카드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회가 나서서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현장체험학습을 보냈다고 한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거부감과 ‘이렇게라도 하자’는 간절함이 교차돼 씁쓸하다.
교사와 학부모를 맞붙여 놓은 싸움의 와중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못하는 세대, 교실 밖과 단절된 채 점점 좁아지는 학생들의 공간과 시간이 안타깝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만든 ‘추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며,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대통령의 지시는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을 보장할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었지, 갈지 말지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지시는 교사가 아닌 교육부를 향한 것이었다. 당사자들을 링 위에 올려 놓고 비겁하게 심판만 보려는 교육 기관을 향해 ‘할 수 없는 핑계’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교사가 상급 기관인 교육청, 교육부에 건의하기 어렵다면, 학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갑질 학부모가 아닌 다수의 학부모는 기꺼이 앞장설 준비가 되어 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한목소리를 낸다면,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누구 책임’이 아닌
‘누구를 위한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교육 불가능’이 화두가 된 시대다. 못 하는 것이든, 안 하는 것이든, 교육 현장이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갈등과 분쟁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유독 교육 기관은 그것을 당사자 간의 문제로 몰아 버린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사안에서 교육 당국이 중재하거나 책임지는 구조가 아직도 갖춰져 있지 않다. 교권 보호, 학교폭력, 아동학대, 민원 대응 시스템 등 관련 정책들은 결국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처벌을 강화하고, 분리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만 흘러왔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덮어 왔던 교육 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질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교육 불가능’은 어느 특정 집단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교육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것이 근본 원인이다. 예를 들어 ‘교육권’을 어떤 이는 교육받을 권리로, 또 어떤 이는 교육할 권리로 해석한다. ‘학교’의 기능과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모두가 제각각의 상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붕괴해 가는 학교 안에서 각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책임 소재만 따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있다.
하루빨리 교육의 목적을 다시 세우고, 학교의 기능을 다시 묻고, 이 시대에 국가와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정립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산적한 교육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 수십 년째 같은 주제가 반복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최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들리는 소식들은 죄다 퇴행뿐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교복이나 현장체험학습을 넘어, 더 근본적인 교육 문제들을 언급하면 좋겠다. 내신·수능 절대평가, 대학 서열 없애기, 자사고·특목고 폐지, 학생인권법 제정, 학교폭력예방법 폐지 등 학생들이 친구와 경쟁하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질문을 바꾸자.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헤쳐 나갈 모든 질문의 첫 문장은 반드시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학생을 위해-”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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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을 열며
왜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논쟁하지 않는가
이윤경 justyk@daum.net
본지 편집위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문
“현장학습 필수 아닙니다! 학생들과 함께 경험하기 위해 저희가 가 주는 겁니다!”
교육부 주관 현장체험학습 간담회에서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이 한 이 발언은 각종 SNS상의 날 선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반에는 “과하다”와 “그럴 만하다”로 나뉘던 여론이, 이제는 ‘교사 대 비교사’ 구도로 갈라져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학생은 공부나,
학부모는 양육이나 하세요”
교사들은 말한다. 악성 민원인, 학부모들 탓에 교육이 불가능해졌다고.
약 1,000명 규모의 교육계 단체 채팅방에 한 교사가 이런 글을 남겼다. “의사가 환자 치료 방법을 정할 때 보호자와 같이 정하는 게 아니듯, 교육은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하는 겁니다. 민주적이라는 단어로, 학생·학부모·교사가 같이 정하라는 것 자체가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단면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학부모님은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해 주시는 게 역할입니다.”
또 다른 교사는 “의사·환자·보호자를 ‘의료 3주체’라고 하지 않는데 왜 교육계에서만 교사·학생·학부모를 ‘교육 3주체’라고 하느냐”고 반문하며 “교사는 교육의 주체, 학생은 학습의 주체, 학부모는 양육의 주체”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채팅방에 있던 한 고등학생이 남긴 글이다. “학생도 체험학습을 포함한 모든 교육 활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사를 의사에 비유하며 교육 전문성을 독점하려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거버넌스’ 정책 역시 교육부, 교육청, 학교 입장에서는 불편한 형식적 절차였고, 실제로도 교사 외의 주체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에 대한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감히’ 주체로 나서려 드느냐가 기본값이다. 최근 교육 3주체론에 대한 노골적인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진보 진영에서마저 학교운영위원회를 폐지하자거나 교원 위원만으로 구성하자는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교사 집단 이기주의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교원 단체들을 중심으로 여과 없이 표출되며, 오히려 교사 집단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민원이 아닌 갑질,
그 뒤에 숨는 교육 기관
앞서 언급한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의 발언 영상에 대해 어느 공무원이 올린 글을 봤다.
‘일반 공무원도 교사 못지않게 많은 민원에 시달린다. 죽은 동료도 있고 법정에 선 동료도 많다. 나 또한 1년 넘게 민원에 시달리다가 법정에서 울먹이며 호소한 적이 있고, 심지어 자기 돈으로 평생 메꿔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라는 요지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다른 공무원들도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 과연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니까 “학부모들 민원이 있으면 해결해 가며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을 안 함으로써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교사들의 현실이 다른 공무원들의 현실과 단순 비교될 수는 없고, 학교 현장의 문제점도 민원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은 글로 기억에 남았다. 그렇다, 문제는 민원의 유무가 아니다.
교사들이 사례로 드는 “내 아이만 특별히 챙겨 달라”는 요구는 엄밀히 말해 민원이 아니라 갑질이다. 갑질은 접수도, 반영도 해선 안 되며, 교장과 교육청은 그런 요구가 교사에게 닿지 않도록 걸러 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부당한 갑질을 여과 없이 교사에게 떠넘겨 교육 활동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방치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바로 그런 교육 기관이다.
몰상식한 사람들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학교에서만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가. 우리 동네 주민센터의 동장실 소파에 “내 세금으로 운영되는 내 사무실”이라며 매일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노인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센터나 구청이 몰상식한 주민들 때문에 마을 행사를 취소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교사들이 수년에 걸쳐 전국의 갑질 사례를 모아, 마치 모든 학부모가 그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은 결국 일부 몰상식한 학부모를 핑계 삼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위협이다. 하지만 다수의 학부모는 이에 맞설 카드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회가 나서서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현장체험학습을 보냈다고 한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거부감과 ‘이렇게라도 하자’는 간절함이 교차돼 씁쓸하다.
교사와 학부모를 맞붙여 놓은 싸움의 와중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못하는 세대, 교실 밖과 단절된 채 점점 좁아지는 학생들의 공간과 시간이 안타깝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만든 ‘추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며,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대통령의 지시는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을 보장할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었지, 갈지 말지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지시는 교사가 아닌 교육부를 향한 것이었다. 당사자들을 링 위에 올려 놓고 비겁하게 심판만 보려는 교육 기관을 향해 ‘할 수 없는 핑계’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교사가 상급 기관인 교육청, 교육부에 건의하기 어렵다면, 학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갑질 학부모가 아닌 다수의 학부모는 기꺼이 앞장설 준비가 되어 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한목소리를 낸다면,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누구 책임’이 아닌
‘누구를 위한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교육 불가능’이 화두가 된 시대다. 못 하는 것이든, 안 하는 것이든, 교육 현장이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갈등과 분쟁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유독 교육 기관은 그것을 당사자 간의 문제로 몰아 버린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사안에서 교육 당국이 중재하거나 책임지는 구조가 아직도 갖춰져 있지 않다. 교권 보호, 학교폭력, 아동학대, 민원 대응 시스템 등 관련 정책들은 결국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처벌을 강화하고, 분리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만 흘러왔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덮어 왔던 교육 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질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교육 불가능’은 어느 특정 집단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교육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것이 근본 원인이다. 예를 들어 ‘교육권’을 어떤 이는 교육받을 권리로, 또 어떤 이는 교육할 권리로 해석한다. ‘학교’의 기능과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모두가 제각각의 상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붕괴해 가는 학교 안에서 각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책임 소재만 따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있다.
하루빨리 교육의 목적을 다시 세우고, 학교의 기능을 다시 묻고, 이 시대에 국가와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정립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산적한 교육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 수십 년째 같은 주제가 반복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최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들리는 소식들은 죄다 퇴행뿐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교복이나 현장체험학습을 넘어, 더 근본적인 교육 문제들을 언급하면 좋겠다. 내신·수능 절대평가, 대학 서열 없애기, 자사고·특목고 폐지, 학생인권법 제정, 학교폭력예방법 폐지 등 학생들이 친구와 경쟁하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질문을 바꾸자.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헤쳐 나갈 모든 질문의 첫 문장은 반드시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학생을 위해-”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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