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기후 정의를 위한 선언과 실천
학교에서 기후 정의를 위해
- 〈기후 정의 교사 선언〉 해설
김성보
sb00@seu.go.kr
서울 마장중 교사
2023년 5월 22일, 생물 다양성의 날에 전국의 교사 3,149명이 〈기후 정의 교사 선언〉을 발표했다. 2021년 5월에는 〈기후 위기, 지금 당장 말하고 지금 당장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기후 위기 교사 선언을 했었다. 청소년들의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가 여전히 국제적 이슈가 되던 때라 교사들의 행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요즘은 대기업들조차도 연일 신문과 잡지에 ‘탄소 중립 녹색 성장’을 광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그린워싱 캠페인과 학교의 행동은 뭐가 달라야 할지 고민이 컸다. 그래서 새로운 선언은 ‘기후 정의’를 앞세웠다.
기후 위기는 공간상 전 지구적 문제이며, 시간상 짧게 잡아도 200년을 따져야 하는 문제다. 그러다 보니 기후 문제는 우리(나, 주민, 시민, 국민, 인류)에게 너무 크다.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간 활동(특히 자본주의적 산업)이라는 점은 국제적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누가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어야 할지는 합의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기후 논의에서 종종 등장하는 ‘미래 세대’라는 용어는 자칫 현재의 과제를 나중으로 미뤄 청소년들이 자라서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여기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들의 활동은 기후 위기 당사자로서 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혜적 생태 체험 활동으로만 한정되기도 한다. 가급적 ‘미래 세대’라는 호명을 피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 당면한 과제로 기후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느끼는 지점은 다양하다. 폭염, 폭우, 가뭄, 산불, 혹한, 태풍, 해일 등 기상 이변은 직관적이며, 각종 전염병과 녹조 독성, 오존과 자외선, 산호초 백화, 생물 멸종, 식량난은 한 꺼풀 뒤에 있다.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 정신 건강 악화, 불평등 확대, 기후 난민과 전쟁은 때때로 숨어 있는 기후 위기 현상이다. 이런 문제들을 통해 기후 위기를 실감하고 행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기후 정의를 위해 알고 실천해야 할 것
지금 당장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시간적 절박함은 티핑 포인트의 위험 때문인데,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되돌리기 불가능한 영구적인 기후 변화 현상이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함축한 표현이 ‘1.5도’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하면 지구는 인류의 노력에 상관없이 수천 년 사이에 지금보다 10~20℃ 더 높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 변화할 것이고, 현 생물군의 대멸종 이후 새로운 지질 시대가 열릴 것이다.
복잡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거대하고 오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은 자본주의 문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요행을 바라거나 초자연적인 기대를 하거나 개인의 절제와 수련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2030년까지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0% 감축, 2050년까지 추가 배출 0(탄소 중립)을 달성하자는 것이 국제적 약속이다. 이를 위해 인류의 대응은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당분간 계속될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과 지구 온난화 추세를 되돌리기 위한 온실가스 저감 노력이다. 적응은 기후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습지와 하천 복원, 혼종 농업, 지역 농업, 도시 농업, 임간 축산, 혼종 숲 조성, 선주민 생득권 인정, 시골 생계 안정화, 도시 저소득층 주거 환경 개선, 소수자 사회 안전망 강화, 의료 보장 확대, 이주 자유 보장, 사회 공공성 확대, 포용적 거버넌스, 기후 관련 공적 재정과 융자, 기후 탄력적 개발(공평, 정의, 협력),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등이 적응의 영역이다.
온실가스 저감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흡수 저장을 늘리는 것이다. 풍력과 태양광 중심으로 재생 에너지를 확대, 토양 탄소를 고정하도록 농업·임업의 전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건물, 대중교통과 수송 체계 개선, 산업 효율성 확대, 폐기물 최소화 등이 탄소 저감의 영역이다.
현재 지구의 자본주의 문명은 불균등하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도 불균등하다. 상대적으로 북반구, 부자, 도시, 기성세대는 더 많은 번영을 누리는 반면, 남반구, 빈민, 농어촌, 어린이·청소년은 재난에 더 취약하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번영을 누려 온 사람들이 기후 적응과 탄소 감축에서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더 많이 배려받아야 한다. 이것이 기후 정의의 핵심이다. 2021년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화, 정치, 생태, 지식과 기술, 경제와 금융의 측면에서 포용과 형평, 정의가 결정적 분기점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PCC 6차 보고서 중 기후 탄력적 개발 기회 경로. ‘다양한 지식, 생태계 책임 관리, 형평 및 정의, 포용’의 선택이 기후 탄력적이고 지속 가능한 위쪽의 발전 경로를 밟는 선택임을 보여 준다.
학교에서의 기후 정의를 위한 노력
그럼 학교에서 기후 정의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우선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 지금은 견디고,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둘째, 학생에게만 떠넘기면 안 된다. 학생들은 오히려 책임이 적다. 셋째, 종말론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 기후 우울증을 낳을 수 있고, 핵 발전 찬양처럼 비과학적 대안에 이끌릴 수 있다. 넷째, 신기술만 강조해선 안 된다. 허황한 낙관으로 행동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다섯째, 개인의 소비 양식 문제를 너무 강조해선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이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의 상표 선택뿐이다. 채식은 공장식 축산의 제도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석유 기반 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각각 실천들을 모두 합쳐도 석탄 화력 발전소 하나 폐쇄하는 것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도덕적 죄책감은 실천에 대한 저항을 낳기도 한다. 여섯째, 동정은 행동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동물이나 제3세계의 고통을 전시하는 교육만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과제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는 현재의 삶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배움이 일어난다. 기후 문제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MDF 합판에 스칸디아모스를 목공 풀로 붙이는 활동이 생태전환교육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단편적인 체험 교육은 앞에 말한 여섯 가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권이 바뀐 후에 새 교육과정 총론에서 생태전환교육에 대한 강조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각론을 포함한 교육과정 전체에서 생태전환교육은 이전에 비해 강화되었다. 교과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 급별로 점차 심화되며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운영 원리에서는 경쟁과 차별을 제거하고 배려와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답 찍기, 선별과 경쟁은 기후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입시 경쟁과 학벌과 서열을 없애는 것이 학교에서의 기후 정의다.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학교 구성원이 참여하면서 바깥 사회에서는 더딘 탄소 감축 과제를 먼저 실험해 보기 좋다. 예를 들어 2030년까지 학교 내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태양광 발전 비율을 확대하며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학교에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둘 수 있다. 빗물 저장소와 텃밭, 실내 정원, 연못 등으로 물 순환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에너지 효율적인 디자인으로 만들고 벽과 창문 단열 보강, 녹색 커튼, 자연 채광, 냉난방 개선 등을 할 수 있다.
특권 학교들을 폐지하고 지역의 학교로 전환하여 학생과 교직원을 근거리 배정하고 대중교통비를 지원할 수 있다. 녹색 금융을 의무화하고, 급식에서 식물식 확대와 식재료 탄소 발자국 인센티브를 도입할 수 있다. 유해 물질이 나오는 석유 화학 제품 설비를 빼고 원목 중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학교의 각종 행사를 일회용품과 쓰레기 없는 행사로 만들 수 있다. 학교의 상시 비정규직은 정규직화하고, 임시 계약 업무에서는 협동조합을 우대할 수 있다. 교육농업을 활성화하고 학교 숲과 습지를 지역 사회와 연결하며 길고양이, 새, 곤충, 양서류 등 종 다양성 거점으로 만들 수 있다. 지역의 자원 순환 업체와 연계하여 체계적인 분리 배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런 취지들을 담아 〈기후 정의 교사 선언〉은 전문, 선언, 요구 사항으로 구성했다. 전문에서는 시대 인식, 기후 위기 양상과 기후 정의의 의미, 생태전환교육의 의미가 서술되었고, 내용적으로 주체, 내용, 목표, 학교에서 기후 정의, 원리, 시급성을 선언했다. 요구 사항은 법과 제도, 교육과정의 대전환과 교육 기관 탄소 중립 추진에 학생과 교직원의 참여 보장이다. 앞으로 선언에 참여하고 행동에 동참하는 교사가 확대되고, 학생이나 학부모도 참여하는 학교 기후 정의 선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기후 정의 교사 선언 우리 인류는 개인과 공동체의 존엄과 행복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실현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삶’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경제 성장을 해 온 우리 인류에 의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1992년 리우협약,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정을 채택하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가지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폭염, 가뭄, 화재, 태풍, 홍수, 한파 등 기후 재난은 점점 심해지고, 생물 다양성 손실과 자원 고갈,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전쟁 갈등 역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약탈적인 탄소 소비 사회에서 북반구, 부자, 도시, 기성세대는 번영을 누려 왔지만, 남반구, 빈민, 농어촌, 어린이·청소년은 삶의 기반을 잃어 왔습니다. 손실과 피해가 특정 공동체에 집중되지 않도록 지구 온난화를 되돌리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후 정의, 정의로운 전환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교육의 목적부터 내용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기후 정의와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배우는 생태전환교육을 핵심 내용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돌보고 협력하는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여전히 각자도생 입시 경쟁 교육이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 총론에 ‘생태전환교육’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배우기만 하고 나중에 바꾸라며 당장의 전환을 미루거나, 학교의 에너지 운영 방식과 시설은 바꾸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자원 절약만 강요한다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의 빚을 대신 갚게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현재의 삶으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절박한 결의를 담아 기후 정의-생태전환교육을 선언합니다. • 우리는 모든 어린이·청소년들과 교직원들이 보편적 인권으로서 지속 가능한 생태적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모든 어린이·청소년들과 교직원들이 기후 위기의 원인과 결과,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배우고, 정의로운 생태적 대전환의 방법을 토론하고 실행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학교와 지역 사회가 생태전환교육의 직접적인 교육 자료이자 근본적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시설 환경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 전반에서 생태적 대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생태적 대전환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변화 적응에서 어린이·청소년과 교직원들이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청소년들이 균형 잡힌 생태 환경을 안전하게 배우고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경쟁과 불평등, 무한 성장을 피하고 연대와 협력으로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고 에너지와 자원이 순환하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학교를 포함한 모든 삶의 터전에서 지금 당장 생태적 전환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요구 - 생태전환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과 제도, 교육과정을 마련하라! - 교육 기관 탄소 중립 계획을 구체화하고 집행하라! - 어린이·청소년과 교직원의 참여를 보장하라! 2023년 5월 22일 기후 정의 교사 선언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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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기후 정의를 위한 선언과 실천
학교에서 기후 정의를 위해
- 〈기후 정의 교사 선언〉 해설
김성보
sb00@seu.go.kr
서울 마장중 교사
2023년 5월 22일, 생물 다양성의 날에 전국의 교사 3,149명이 〈기후 정의 교사 선언〉을 발표했다. 2021년 5월에는 〈기후 위기, 지금 당장 말하고 지금 당장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기후 위기 교사 선언을 했었다. 청소년들의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가 여전히 국제적 이슈가 되던 때라 교사들의 행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요즘은 대기업들조차도 연일 신문과 잡지에 ‘탄소 중립 녹색 성장’을 광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그린워싱 캠페인과 학교의 행동은 뭐가 달라야 할지 고민이 컸다. 그래서 새로운 선언은 ‘기후 정의’를 앞세웠다.
기후 위기는 공간상 전 지구적 문제이며, 시간상 짧게 잡아도 200년을 따져야 하는 문제다. 그러다 보니 기후 문제는 우리(나, 주민, 시민, 국민, 인류)에게 너무 크다.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간 활동(특히 자본주의적 산업)이라는 점은 국제적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누가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어야 할지는 합의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기후 논의에서 종종 등장하는 ‘미래 세대’라는 용어는 자칫 현재의 과제를 나중으로 미뤄 청소년들이 자라서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여기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 학교에서 교사들의 활동은 기후 위기 당사자로서 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혜적 생태 체험 활동으로만 한정되기도 한다. 가급적 ‘미래 세대’라는 호명을 피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 당면한 과제로 기후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느끼는 지점은 다양하다. 폭염, 폭우, 가뭄, 산불, 혹한, 태풍, 해일 등 기상 이변은 직관적이며, 각종 전염병과 녹조 독성, 오존과 자외선, 산호초 백화, 생물 멸종, 식량난은 한 꺼풀 뒤에 있다.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 정신 건강 악화, 불평등 확대, 기후 난민과 전쟁은 때때로 숨어 있는 기후 위기 현상이다. 이런 문제들을 통해 기후 위기를 실감하고 행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기후 정의를 위해 알고 실천해야 할 것
지금 당장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시간적 절박함은 티핑 포인트의 위험 때문인데,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되돌리기 불가능한 영구적인 기후 변화 현상이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함축한 표현이 ‘1.5도’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하면 지구는 인류의 노력에 상관없이 수천 년 사이에 지금보다 10~20℃ 더 높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 변화할 것이고, 현 생물군의 대멸종 이후 새로운 지질 시대가 열릴 것이다.
복잡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거대하고 오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은 자본주의 문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요행을 바라거나 초자연적인 기대를 하거나 개인의 절제와 수련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2030년까지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0% 감축, 2050년까지 추가 배출 0(탄소 중립)을 달성하자는 것이 국제적 약속이다. 이를 위해 인류의 대응은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당분간 계속될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과 지구 온난화 추세를 되돌리기 위한 온실가스 저감 노력이다. 적응은 기후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습지와 하천 복원, 혼종 농업, 지역 농업, 도시 농업, 임간 축산, 혼종 숲 조성, 선주민 생득권 인정, 시골 생계 안정화, 도시 저소득층 주거 환경 개선, 소수자 사회 안전망 강화, 의료 보장 확대, 이주 자유 보장, 사회 공공성 확대, 포용적 거버넌스, 기후 관련 공적 재정과 융자, 기후 탄력적 개발(공평, 정의, 협력),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등이 적응의 영역이다.
온실가스 저감은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흡수 저장을 늘리는 것이다. 풍력과 태양광 중심으로 재생 에너지를 확대, 토양 탄소를 고정하도록 농업·임업의 전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건물, 대중교통과 수송 체계 개선, 산업 효율성 확대, 폐기물 최소화 등이 탄소 저감의 영역이다.
현재 지구의 자본주의 문명은 불균등하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도 불균등하다. 상대적으로 북반구, 부자, 도시, 기성세대는 더 많은 번영을 누리는 반면, 남반구, 빈민, 농어촌, 어린이·청소년은 재난에 더 취약하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번영을 누려 온 사람들이 기후 적응과 탄소 감축에서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더 많이 배려받아야 한다. 이것이 기후 정의의 핵심이다. 2021년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화, 정치, 생태, 지식과 기술, 경제와 금융의 측면에서 포용과 형평, 정의가 결정적 분기점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PCC 6차 보고서 중 기후 탄력적 개발 기회 경로. ‘다양한 지식, 생태계 책임 관리, 형평 및 정의, 포용’의 선택이 기후 탄력적이고 지속 가능한 위쪽의 발전 경로를 밟는 선택임을 보여 준다.
학교에서의 기후 정의를 위한 노력
그럼 학교에서 기후 정의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우선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 지금은 견디고,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둘째, 학생에게만 떠넘기면 안 된다. 학생들은 오히려 책임이 적다. 셋째, 종말론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 기후 우울증을 낳을 수 있고, 핵 발전 찬양처럼 비과학적 대안에 이끌릴 수 있다. 넷째, 신기술만 강조해선 안 된다. 허황한 낙관으로 행동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다섯째, 개인의 소비 양식 문제를 너무 강조해선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이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의 상표 선택뿐이다. 채식은 공장식 축산의 제도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석유 기반 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각각 실천들을 모두 합쳐도 석탄 화력 발전소 하나 폐쇄하는 것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도덕적 죄책감은 실천에 대한 저항을 낳기도 한다. 여섯째, 동정은 행동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동물이나 제3세계의 고통을 전시하는 교육만 하면 안 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과제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는 현재의 삶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배움이 일어난다. 기후 문제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MDF 합판에 스칸디아모스를 목공 풀로 붙이는 활동이 생태전환교육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단편적인 체험 교육은 앞에 말한 여섯 가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권이 바뀐 후에 새 교육과정 총론에서 생태전환교육에 대한 강조가 많이 약화되었지만, 각론을 포함한 교육과정 전체에서 생태전환교육은 이전에 비해 강화되었다. 교과별로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 급별로 점차 심화되며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운영 원리에서는 경쟁과 차별을 제거하고 배려와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답 찍기, 선별과 경쟁은 기후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입시 경쟁과 학벌과 서열을 없애는 것이 학교에서의 기후 정의다.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학교 구성원이 참여하면서 바깥 사회에서는 더딘 탄소 감축 과제를 먼저 실험해 보기 좋다. 예를 들어 2030년까지 학교 내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태양광 발전 비율을 확대하며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학교에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둘 수 있다. 빗물 저장소와 텃밭, 실내 정원, 연못 등으로 물 순환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에너지 효율적인 디자인으로 만들고 벽과 창문 단열 보강, 녹색 커튼, 자연 채광, 냉난방 개선 등을 할 수 있다.
특권 학교들을 폐지하고 지역의 학교로 전환하여 학생과 교직원을 근거리 배정하고 대중교통비를 지원할 수 있다. 녹색 금융을 의무화하고, 급식에서 식물식 확대와 식재료 탄소 발자국 인센티브를 도입할 수 있다. 유해 물질이 나오는 석유 화학 제품 설비를 빼고 원목 중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학교의 각종 행사를 일회용품과 쓰레기 없는 행사로 만들 수 있다. 학교의 상시 비정규직은 정규직화하고, 임시 계약 업무에서는 협동조합을 우대할 수 있다. 교육농업을 활성화하고 학교 숲과 습지를 지역 사회와 연결하며 길고양이, 새, 곤충, 양서류 등 종 다양성 거점으로 만들 수 있다. 지역의 자원 순환 업체와 연계하여 체계적인 분리 배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런 취지들을 담아 〈기후 정의 교사 선언〉은 전문, 선언, 요구 사항으로 구성했다. 전문에서는 시대 인식, 기후 위기 양상과 기후 정의의 의미, 생태전환교육의 의미가 서술되었고, 내용적으로 주체, 내용, 목표, 학교에서 기후 정의, 원리, 시급성을 선언했다. 요구 사항은 법과 제도, 교육과정의 대전환과 교육 기관 탄소 중립 추진에 학생과 교직원의 참여 보장이다. 앞으로 선언에 참여하고 행동에 동참하는 교사가 확대되고, 학생이나 학부모도 참여하는 학교 기후 정의 선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기후 정의 교사 선언
우리 인류는 개인과 공동체의 존엄과 행복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실현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삶’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경제 성장을 해 온 우리 인류에 의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1992년 리우협약,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정을 채택하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가지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폭염, 가뭄, 화재, 태풍, 홍수, 한파 등 기후 재난은 점점 심해지고, 생물 다양성 손실과 자원 고갈,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전쟁 갈등 역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약탈적인 탄소 소비 사회에서 북반구, 부자, 도시, 기성세대는 번영을 누려 왔지만, 남반구, 빈민, 농어촌, 어린이·청소년은 삶의 기반을 잃어 왔습니다. 손실과 피해가 특정 공동체에 집중되지 않도록 지구 온난화를 되돌리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후 정의, 정의로운 전환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교육의 목적부터 내용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기후 정의와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배우는 생태전환교육을 핵심 내용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돌보고 협력하는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여전히 각자도생 입시 경쟁 교육이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 총론에 ‘생태전환교육’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배우기만 하고 나중에 바꾸라며 당장의 전환을 미루거나, 학교의 에너지 운영 방식과 시설은 바꾸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자원 절약만 강요한다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의 빚을 대신 갚게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현재의 삶으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절박한 결의를 담아 기후 정의-생태전환교육을 선언합니다.
• 우리는 모든 어린이·청소년들과 교직원들이 보편적 인권으로서 지속 가능한 생태적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모든 어린이·청소년들과 교직원들이 기후 위기의 원인과 결과,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배우고, 정의로운 생태적 대전환의 방법을 토론하고 실행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학교와 지역 사회가 생태전환교육의 직접적인 교육 자료이자 근본적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시설 환경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 전반에서 생태적 대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생태적 대전환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변화 적응에서 어린이·청소년과 교직원들이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청소년들이 균형 잡힌 생태 환경을 안전하게 배우고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경쟁과 불평등, 무한 성장을 피하고 연대와 협력으로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고 에너지와 자원이 순환하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우리는 학교를 포함한 모든 삶의 터전에서 지금 당장 생태적 전환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요구
- 생태전환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과 제도, 교육과정을 마련하라!
- 교육 기관 탄소 중립 계획을 구체화하고 집행하라!
- 어린이·청소년과 교직원의 참여를 보장하라!
2023년 5월 22일
기후 정의 교사 선언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