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게 해 주는 ‘생존 경제교육’을 위하여
하금철·채효정·진냥 외 씀,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 교육공동체 벗, 2023
한승민
yureka08@naver.com
중등 사회과 교사
한 달 전부터 난생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을 가기 위해 평일 자습 감독을 주말 자습과 바꿀 만큼 수영에 푹 빠졌다.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한 것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몇 분 만에 지하 주차장과 터널에 물이 가득 차고, 태풍으로 집 마당에 물이 넘실대는 세상에 생존 수영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강습 첫째 날, 물에 들어가는 법, ‘음파’ 호흡법, 발차기를 배웠다. 둘째 날, 육상에서 발차기를 몇 번 시키더니 물에 들어가서 킥 판을 잡고 헤엄치라고 한다. 그런데 킥 판을 잡고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체가 가라앉고, 발차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가라앉는다. 교사의 습성인지 몸보다는 머리로 익힐 생각을 먼저 한다. 동영상 플랫폼의 수영 발차기 알고리즘에 따라 제공된 각종 영상으로 예습을 해 보지만, 역시나 하반신은 물밑 저 아래에 있다.
그런데 어느 주말, 여덟이나 아홉 살쯤 돼 보이는 딸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는 어머니의 조언을 엿듣게 되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물에 뜰 수 있었다.
“사람은 결국 물에 뜨게 되어 있어. 네가 몸의 힘을 빼면 자연스럽게 뜰 거야. 생존 수영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네가 안전하게 버티게 해 주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혼자 빠진 게 아니라면 옆에 친구가 있을 텐데, 그때 서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 모두 가라앉게 되고 위험해져. 그러니 서로를 잘 의지해서 뜨는 법을 익혀 둬야 해.”
다음 날도,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수영 실력은 놀랍게도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물 아래로 가라앉을 때 발차기를 세차게 해서 주변 사람마저 물보라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힘을 빼고 두둥실 떠오르는 상상을 하는 단계로는 발전했다.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를 읽으며, 경제교육이 생존 수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 수영은 위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이 많은데, 생존 경제교육이 있으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아무짝에 쓸모없는 경제학 교과서
나는 15년 넘도록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한 일반사회과 교사이다. 교직 초기에 경제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임용 시험을 막 통과한 새내기 교사는 학문 중심 교육관에 입각하여 경제 교과서에 빼곡하게 경제학 원론 내용을 첨삭해 가며 가르쳤다. 그 당시 내가 수업하는 교실에는 할아버지와 살면서 농번기에는 모내기 줄을 잡아야 해서 학교를 오지 못하는 아이, 바닷가에서 생선을 말려 장날에 내다 파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해서 장날만 되면 종례가 급했던 아이, 동네에서 그나마 지역 유지 대접을 받지만 본인이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었던 철물점 사장님네 아이 등이 있었다. 이들에게 나는 가격 기구가 완전 경쟁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민간 경제의 흐름에서 기업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부의 재정 정책이 경기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 우위론에 따른 자유 무역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마구 쏟아 내었다.
그렇게 경제 수업을 한 학기 마쳤을 때, 할아버지와 살던 아이는 여름 방학 동안 해변가 튜브 대여소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한 임금으로 동네 형님이 주는 30만 원을 받아서 개학 날 까맣게 그슬린 피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할머니를 모시던 아이는 할머니께서 일용직으로 일하러 갔다가 다치는 바람에 몇 년간 넣었던 적금을 해지해서 치료비를 마련했고, 이후 등록금이 가장 적은 대학을 검색해 보곤 했다. 철물점 아들은 계주가 곗돈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보며, 이제 도시로 유학을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의 의미, 노동력의 가치를 인정받는 법, 고용 계약을 할 때 확인해야 할 것들, 산업 재해 보험의 중요성, 차용증 쓰는 법, 고율의 이자를 제공하는 사금융에 대한 주의법 등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했다. 그리고 사회가 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알려 주지 않은 것, 자신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음을 안내해 주지 않은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사회가 뭘 해 줄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안내하는 경제교육이어야 한다. (……) 개인 회생과 개인 파산 제도, 기초 생계 급여와 교육 급여, 아동 수당 등은 반드시 경제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들이다.
- 본문 75쪽
‘노동’이란 단어를, ‘산업 재해’라는 단어를, ‘근로 계약서’라는 단어를, ‘노동 3권’,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귀에 들리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내 입에서 ‘나는 노동자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노동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 본문 127쪽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노동 없는 경제적 자유
나는 올해 새로운 학교로 발령이 났다. 이전 학교의 학생들이 야간 자율 학습을 째고 고깃집 점원, 편의점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면, 새 학교의 선발 집단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주식, 펀드, 채권, 코인으로 자금을 불린다. 초전도체 뉴스를 접한 다음 날 관련 주식을 산 학생, AI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품의 미국 주식을 대량 매입해서 수익을 올린 학생, 선물 시장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 등이 있다. 통합 사회 교과의 첫 단원 ‘행복’에서 몇몇 학생들은 최고의 행복은 부에서 오며, 특히 노동하지 않고 많은 부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추후 노동하지 않고 살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한다고 했다.
KBS 프로그램 〈자본주의 학교〉의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10대 아이들에게 경제 공부를 가르쳐 주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른들이 국·영·수에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만 어떻게 먹고사는지는 잘 알려 주지 않는다. 월급 통장에 돈이 찍혀도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ref] ❶ ““이 시대에 꼭 필요해”… 아이들 경제 예능 ‘자본주의 학교’”, 〈엑스스포츠 뉴스〉, 2022년 4월 14일. [/ref]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는 말이 월급 통장에 돈이 찍히는 월급쟁이가 안 되었으면 한다는 것인지, 월급 통장의 액수가 적어 막막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명 ‘경제적 자유’라는 날개를 심어 주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경제적 자유’는 일정한 시간을 임금 노동에 투입하지 않고도 추가적인 소득을 벌 수 있는 상태,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학생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하고, 부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어찌 하게 되었을까?
생존 금융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교 교육과정에 자산 관리, 주식, 채권, 펀드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우리나라 청소년 금융 이해력이 낙제점(60점)에 훨씬 밑도는 46.8점이라며 금융교육을 위해 공통 교과로 금융 과목 도입, 수능 필수 과목화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은 마치 금융 자본주의는 노동 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교육과정에서 노동자가 아닌 투자자만 살려 놓았다. 투자자에게 노동자의 파업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적대 요소이다. 그리고 우수한 노동자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줄 생산 요소이므로 자유 시장 경쟁의 원리에 따라 선별하는 것이 당연하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효율을 내는 기업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금융·투자교육은 투자자로서 가치를 판단하는 법,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법 등을 가르친다. 노동을 기반으로 한 부가 가치의 생산은 기업 가치 내부에서만 작동할 뿐이다.
아무리 도박은 불법이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는 합법이라고 해도,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거칠게 말해서, ‘투자’와 ‘투기’처럼 둘 사이는 ‘깻잎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이든, 주식과 부동산 투자 교육이든, 이를 통해 아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건 단 한 가지다. 바로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 돈이 없으면 주위로부터 업신여김당한다는 세태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는지를 가르치면서 도박은 안 된다고 하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 본문 43~44쪽
나는 이 영끌 투자 광풍이, 학생들에게 부가 능력이나 그 사람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는 배움을 남기길 바란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도, 혹은 소위 ‘대박’이 나서 얻게 되는 큰 수익도 그저 운에 따른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 또는 자존감과 관련짓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누군가의 크나큰 부가 요행으로 얻기엔 너무 부당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지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본문 79쪽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모두가 잘사는 건 행복하지 않다
경제 교과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인간상을 전제한다. 그러나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하는 경제적 합리성이 모든 사회에 통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이에 행동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게임을 변형해서 ‘기부금 게임’을 진행했다. 4명의 팀원들이 각자 얼마씩 공동체를 위해 기부할 수 있다. 단, 기부금 총액은 사회적 가치가 더해져서 총액의 배수가 되고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1/N로 환원된다. 기부금을 각자 얼마 냈는지는 서로 몰라야 하고, 기부금을 내지 않아도 배당금은 받게 되는 게임이다. 학생들은 게임 규칙을 듣는 순간 각자 기부금을 많이 내면 배당금도 커지고, 공동체 전체가 잘살 수 있다고 서로를 독려했다. 팀별로 7회씩 게임을 진행했는데, 모든 게임이 끝난 후 각 팀에서는 기부를 제일 적게 한 사람이 최고 수익을 보유한 상태였다. 물론 전체적으로 기부를 많이 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구성원 모두가 많은 수입을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기부를 하지 않고 수익이 많은 이들과 자신의 수익을 비교했고, 자신의 선한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다. “모두가 잘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학생들은 이기적 인간의 탐욕이 자유 시장의 근간을 이룬다고 배워 왔다. 애덤 스미스가 이타심과 도덕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기심을 발휘해야 함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믿지 않으려 한다. 자본주의 교육 안에서 학생들은 이타심이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 전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서는 것은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침해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 이런 사회와 교육 속에서 다른 경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사회적경제교육은 시장 논리에 따른 의사 결정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공동체를 위한 협동과 연대의 가치, 공유와 신뢰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교육 활동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사회적경제교육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동과 연대의 가치에 기초하거나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참여하도록 돕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경제교육과 차별성을 가진다.
- 본문 146쪽
생존 수영과 같은 경제교육이 되려면
생존 수영은 일반적인 수영과 달리 기록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물 위에서 최소한의 체력으로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ref] ❷ 네이버 지식백과 ‘생존 수영’ 항목. [/ref] 생존 수영을 익히면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본인의 몸을 띄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경제교육은 물에 빠진 자에게 부력의 원리, 수영을 잘하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금융·투자를 통해 혼자서만 부자가 되고, 공동체에서 상호성, 호혜성에 입각한 행동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에 비해 생산성이 열등하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학생들은 빈곤, 소외, 경쟁에서의 낙오 등 현실 세계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생존 수영은 자기 구조법(물에 빠지더라도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쉴 수 있는 법), 보빙(숨을 쉬기 위해 위아래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여 잠수하는 것), 주변 물체를 활용하는 법을 안내하고 있다. 즉, 생존이란 스스로를 구하려는 노력, 때로는 물 위와 아래를 모두 경험하는 것, 그리고 주변의 부유물(물체와 사람)에 의지해서 함께 살아남으려는 자세가 수반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생존 경제교육 또한 생존 수영법처럼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져 본다.
진짜 ‘생존경제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기꺼이 자신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사회가 함께 덜어 달라고 청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마치 불이 났을 때 119에 전화해야 한다는 것처럼 기초적인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수치심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기생수’ 되는 법도 가르쳐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 본문 60~61쪽
버티게 해 주는 ‘생존 경제교육’을 위하여
하금철·채효정·진냥 외 씀,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 교육공동체 벗, 2023
한승민
yureka08@naver.com
중등 사회과 교사
한 달 전부터 난생처음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을 가기 위해 평일 자습 감독을 주말 자습과 바꿀 만큼 수영에 푹 빠졌다.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한 것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몇 분 만에 지하 주차장과 터널에 물이 가득 차고, 태풍으로 집 마당에 물이 넘실대는 세상에 생존 수영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강습 첫째 날, 물에 들어가는 법, ‘음파’ 호흡법, 발차기를 배웠다. 둘째 날, 육상에서 발차기를 몇 번 시키더니 물에 들어가서 킥 판을 잡고 헤엄치라고 한다. 그런데 킥 판을 잡고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체가 가라앉고, 발차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가라앉는다. 교사의 습성인지 몸보다는 머리로 익힐 생각을 먼저 한다. 동영상 플랫폼의 수영 발차기 알고리즘에 따라 제공된 각종 영상으로 예습을 해 보지만, 역시나 하반신은 물밑 저 아래에 있다.
그런데 어느 주말, 여덟이나 아홉 살쯤 돼 보이는 딸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는 어머니의 조언을 엿듣게 되었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물에 뜰 수 있었다.
“사람은 결국 물에 뜨게 되어 있어. 네가 몸의 힘을 빼면 자연스럽게 뜰 거야. 생존 수영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네가 안전하게 버티게 해 주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혼자 빠진 게 아니라면 옆에 친구가 있을 텐데, 그때 서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 모두 가라앉게 되고 위험해져. 그러니 서로를 잘 의지해서 뜨는 법을 익혀 둬야 해.”
다음 날도,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수영 실력은 놀랍게도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물 아래로 가라앉을 때 발차기를 세차게 해서 주변 사람마저 물보라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힘을 빼고 두둥실 떠오르는 상상을 하는 단계로는 발전했다.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를 읽으며, 경제교육이 생존 수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 수영은 위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죽고 사는 일이 많은데, 생존 경제교육이 있으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아무짝에 쓸모없는 경제학 교과서
나는 15년 넘도록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한 일반사회과 교사이다. 교직 초기에 경제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임용 시험을 막 통과한 새내기 교사는 학문 중심 교육관에 입각하여 경제 교과서에 빼곡하게 경제학 원론 내용을 첨삭해 가며 가르쳤다. 그 당시 내가 수업하는 교실에는 할아버지와 살면서 농번기에는 모내기 줄을 잡아야 해서 학교를 오지 못하는 아이, 바닷가에서 생선을 말려 장날에 내다 파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해서 장날만 되면 종례가 급했던 아이, 동네에서 그나마 지역 유지 대접을 받지만 본인이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었던 철물점 사장님네 아이 등이 있었다. 이들에게 나는 가격 기구가 완전 경쟁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민간 경제의 흐름에서 기업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부의 재정 정책이 경기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 우위론에 따른 자유 무역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마구 쏟아 내었다.
그렇게 경제 수업을 한 학기 마쳤을 때, 할아버지와 살던 아이는 여름 방학 동안 해변가 튜브 대여소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한 임금으로 동네 형님이 주는 30만 원을 받아서 개학 날 까맣게 그슬린 피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할머니를 모시던 아이는 할머니께서 일용직으로 일하러 갔다가 다치는 바람에 몇 년간 넣었던 적금을 해지해서 치료비를 마련했고, 이후 등록금이 가장 적은 대학을 검색해 보곤 했다. 철물점 아들은 계주가 곗돈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보며, 이제 도시로 유학을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의 의미, 노동력의 가치를 인정받는 법, 고용 계약을 할 때 확인해야 할 것들, 산업 재해 보험의 중요성, 차용증 쓰는 법, 고율의 이자를 제공하는 사금융에 대한 주의법 등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했다. 그리고 사회가 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알려 주지 않은 것, 자신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음을 안내해 주지 않은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사회가 뭘 해 줄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안내하는 경제교육이어야 한다. (……) 개인 회생과 개인 파산 제도, 기초 생계 급여와 교육 급여, 아동 수당 등은 반드시 경제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들이다.
- 본문 75쪽
‘노동’이란 단어를, ‘산업 재해’라는 단어를, ‘근로 계약서’라는 단어를, ‘노동 3권’,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귀에 들리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내 입에서 ‘나는 노동자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노동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 본문 127쪽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노동 없는 경제적 자유
나는 올해 새로운 학교로 발령이 났다. 이전 학교의 학생들이 야간 자율 학습을 째고 고깃집 점원, 편의점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면, 새 학교의 선발 집단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주식, 펀드, 채권, 코인으로 자금을 불린다. 초전도체 뉴스를 접한 다음 날 관련 주식을 산 학생, AI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품의 미국 주식을 대량 매입해서 수익을 올린 학생, 선물 시장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 등이 있다. 통합 사회 교과의 첫 단원 ‘행복’에서 몇몇 학생들은 최고의 행복은 부에서 오며, 특히 노동하지 않고 많은 부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추후 노동하지 않고 살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한다고 했다.
KBS 프로그램 〈자본주의 학교〉의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10대 아이들에게 경제 공부를 가르쳐 주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른들이 국·영·수에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만 어떻게 먹고사는지는 잘 알려 주지 않는다. 월급 통장에 돈이 찍혀도 막막할 때가 많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ref] ❶ ““이 시대에 꼭 필요해”… 아이들 경제 예능 ‘자본주의 학교’”, 〈엑스스포츠 뉴스〉, 2022년 4월 14일. [/ref]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는 말이 월급 통장에 돈이 찍히는 월급쟁이가 안 되었으면 한다는 것인지, 월급 통장의 액수가 적어 막막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명 ‘경제적 자유’라는 날개를 심어 주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경제적 자유’는 일정한 시간을 임금 노동에 투입하지 않고도 추가적인 소득을 벌 수 있는 상태,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학생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하고, 부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어찌 하게 되었을까?
생존 금융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교 교육과정에 자산 관리, 주식, 채권, 펀드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우리나라 청소년 금융 이해력이 낙제점(60점)에 훨씬 밑도는 46.8점이라며 금융교육을 위해 공통 교과로 금융 과목 도입, 수능 필수 과목화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은 마치 금융 자본주의는 노동 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교육과정에서 노동자가 아닌 투자자만 살려 놓았다. 투자자에게 노동자의 파업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적대 요소이다. 그리고 우수한 노동자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줄 생산 요소이므로 자유 시장 경쟁의 원리에 따라 선별하는 것이 당연하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효율을 내는 기업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하고, 금융·투자교육은 투자자로서 가치를 판단하는 법,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법 등을 가르친다. 노동을 기반으로 한 부가 가치의 생산은 기업 가치 내부에서만 작동할 뿐이다.
아무리 도박은 불법이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는 합법이라고 해도,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거칠게 말해서, ‘투자’와 ‘투기’처럼 둘 사이는 ‘깻잎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도박 중독 예방 교육이든, 주식과 부동산 투자 교육이든, 이를 통해 아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건 단 한 가지다. 바로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 돈이 없으면 주위로부터 업신여김당한다는 세태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는지를 가르치면서 도박은 안 된다고 하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 본문 43~44쪽
나는 이 영끌 투자 광풍이, 학생들에게 부가 능력이나 그 사람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는 배움을 남기길 바란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도, 혹은 소위 ‘대박’이 나서 얻게 되는 큰 수익도 그저 운에 따른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 또는 자존감과 관련짓지 않을 수 있길 바란다. 더불어 누군가의 크나큰 부가 요행으로 얻기엔 너무 부당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지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본문 79쪽
비생존 경제교육의 경험
: 모두가 잘사는 건 행복하지 않다
경제 교과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인간상을 전제한다. 그러나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하는 경제적 합리성이 모든 사회에 통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이에 행동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게임을 변형해서 ‘기부금 게임’을 진행했다. 4명의 팀원들이 각자 얼마씩 공동체를 위해 기부할 수 있다. 단, 기부금 총액은 사회적 가치가 더해져서 총액의 배수가 되고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1/N로 환원된다. 기부금을 각자 얼마 냈는지는 서로 몰라야 하고, 기부금을 내지 않아도 배당금은 받게 되는 게임이다. 학생들은 게임 규칙을 듣는 순간 각자 기부금을 많이 내면 배당금도 커지고, 공동체 전체가 잘살 수 있다고 서로를 독려했다. 팀별로 7회씩 게임을 진행했는데, 모든 게임이 끝난 후 각 팀에서는 기부를 제일 적게 한 사람이 최고 수익을 보유한 상태였다. 물론 전체적으로 기부를 많이 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구성원 모두가 많은 수입을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기부를 하지 않고 수익이 많은 이들과 자신의 수익을 비교했고, 자신의 선한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다. “모두가 잘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학생들은 이기적 인간의 탐욕이 자유 시장의 근간을 이룬다고 배워 왔다. 애덤 스미스가 이타심과 도덕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기심을 발휘해야 함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믿지 않으려 한다. 자본주의 교육 안에서 학생들은 이타심이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 전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서는 것은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침해가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 이런 사회와 교육 속에서 다른 경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사회적경제교육은 시장 논리에 따른 의사 결정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공동체를 위한 협동과 연대의 가치, 공유와 신뢰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교육 활동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사회적경제교육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협동과 연대의 가치에 기초하거나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참여하도록 돕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경제교육과 차별성을 가진다.
- 본문 146쪽
생존 수영과 같은 경제교육이 되려면
생존 수영은 일반적인 수영과 달리 기록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물 위에서 최소한의 체력으로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ref] ❷ 네이버 지식백과 ‘생존 수영’ 항목. [/ref] 생존 수영을 익히면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본인의 몸을 띄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경제교육은 물에 빠진 자에게 부력의 원리, 수영을 잘하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금융·투자를 통해 혼자서만 부자가 되고, 공동체에서 상호성, 호혜성에 입각한 행동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에 비해 생산성이 열등하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학생들은 빈곤, 소외, 경쟁에서의 낙오 등 현실 세계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생존 수영은 자기 구조법(물에 빠지더라도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쉴 수 있는 법), 보빙(숨을 쉬기 위해 위아래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여 잠수하는 것), 주변 물체를 활용하는 법을 안내하고 있다. 즉, 생존이란 스스로를 구하려는 노력, 때로는 물 위와 아래를 모두 경험하는 것, 그리고 주변의 부유물(물체와 사람)에 의지해서 함께 살아남으려는 자세가 수반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생존 경제교육 또한 생존 수영법처럼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져 본다.
진짜 ‘생존경제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기꺼이 자신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사회가 함께 덜어 달라고 청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마치 불이 났을 때 119에 전화해야 한다는 것처럼 기초적인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수치심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기생수’ 되는 법도 가르쳐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 본문 60~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