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④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가 보여 주는 대학생운동의 가능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아리 ‘돌곶이포럼’ 권나민, 여인서, 송정효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그간의 연재에서는 ‘대학의 위기’라는 공통의 질문을 통해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각자의 영역에서 때로는 연대하며 나름의 고군분투를 이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세 단체에 주목했던 이유는 첫째로 학생회와 대학 언론과 같이 학생 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갖춘 공식적 조직들의 현황을 통해 대학생운동의 ‘오늘’을 살펴보기 위함이었고, 둘째로는 그러한 대학생운동의 ‘전국적 연대체’가 대학의 위기라는 과제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인터뷰가 보편적인 대학생운동의 일면을 담으려는 시도였다면 이번 인터뷰부터는 분석의 층위를 개별 대학 학생 사회의 수준으로 좁혀 미시적인 단위의 대학생운동을 만나 보고자 한다. 당연하게도 대학생운동이란 학생 사회 공식적 조직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전국적 연대체의 활동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기층에서의 다양한 활동들로부터 대학생운동 일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개할 만한 전국적 대학생운동 조직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물론 부정할 수는 없다.
여러 고민 속에 첫 번째 개별 대학 대학생운동 단체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학생들로 구성되어 “‘예술과 운동’을 키워드로 공동의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는 집단”을 표방하는 ‘돌곶이포럼’을 선정했다. 여기서 밝혀 둘 고민 하나는 돌곶이포럼의 활동이 다른 대학생운동들과는 다른 특수한 예외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우선 돌곶이포럼이 발 딛고 있는 한예종은 엄밀히 말하면 「고등교육법」상 대학교가 아닌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에 근거한 ‘각급 학교’이고, 이러한 한예종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도 비교적 최근까지 반복되고 있다.[ref] “국립 한예종 ‘대학’ 지위 필요성 다시 논란”, 〈경향신문〉, 20022년 10월 12일. [/ref] 또한 한예종은 예술 종합 학교로서 통상적인 한국의 4년제 종합 대학과는 달리 오로지 예술 계열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돌곶이포럼이 표방하는 ‘예술과 운동’이라는 키워드에서도 잘 드러나는 한예종의 특수한 조건들이 대학생운동의 예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돌곶이포럼은 수많은 학생운동 정파들과 조직들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2012년부터 새롭게 등장해 십수 년을 이어 오며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운동으로서의 ‘동아리’라는 점이다. 학생회나 대학 언론과 같은 제도적인 공식 조직들과 달리 단체의 연속성과 재생산을 쉽게 담보하기 어려운 동아리라는 형식의 한계와, 각종 공동대책위원회처럼 학내외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모였다가 이슈의 마무리와 함께 해체되는 느슨한 연대체의 문법이 더 익숙한 2010년대를 돌곶이포럼이 돌파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을 필요가 있다.
부산 영도에서, 명동 마리에서, 강남 포이동에서,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우리들은 이미 만나 왔고 또 만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학교에서 또다시 만나고자 한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부딪히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최고은들과 김진숙들과 명동 마리들과, 포이동들과, 홍대 청소 노동자들과 마주치고자 한다.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며 나아가는 포럼을 한예종 학생 사회 내에서 만들어 보고자 한다.
- ‘돌곶이포럼(가칭) 준비 모임 제안문’, 〈얼룩진〉, 2012년 2월
2012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희망버스들이 달려갔던 부산 영도, 재개발로 비롯된 철거 농성장 명동 마리 카페, 반빈곤 연대 활동 장소였던 서울 강남 포이동, 그리고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신들의 학교에서 만나고자 했던 돌곶이포럼이 오늘의 대학생운동에 제기하는 쟁점은 무엇인가? 이를 질문하기 위해 2023년을 마무리하는 12월 30일,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3명의 돌곶이포럼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돌곶이포럼
강석남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권나민 제가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돌곶이포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분들과 같이 이야기하면 좋을 거 같아 두 분을 함께 모셨다. 23학번 영상이론과에 재학하고 있다.
여인서 2022년에 돌곶이포럼의 장을 맡았고 지금은 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정효 방송영상과 22학번이다. 돌곶이포럼 부원이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간략한 역사도 함께 듣고 싶다.
여인서 질문지를 받고 찾아보려고 했는데, 요즘 학생 조직들이 다 그렇겠지만 가는 실로 이어져 와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고 있더라. 아는 데까지만 설명해 드리자면 돌곶이포럼은 만들어진 지 12년째 됐다. 한예종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동아리이고, 학교의 공식적 조직이나 학생회와 관련 없는 자율적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초반에는 노동 관련 문제에 많이 집중했다고 알고 있다. 특히 석관동 캠퍼스 옆에 장위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재개발 투쟁에 연대하면서 돌곶이포럼이 본격화됐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지금은 모습이 좀 다른 거 같다. 초창기에는 논문을 같이 만든다든지 이론, 담론을 만드는 활동들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또 그때는 노동 관련된 게 많았다면, 요즘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 등 다양성에 대한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권나민 예술과 운동의 연합 속에서 어떤 방식의 정치 참여를 할지 고민한다. 토론회를 연다든가 대자보를 쓴다든가 등의 익숙한 방식의 정치 참여 형태가 있다면, 돌곶이포럼의 활동은 퍼포먼스를 한다든가 참여형 연극을 한다든가, 예술이 다른 형식을 통해서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활동들이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은 어떤 조직 구성인지,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의제나 목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여인서 조직은 아까 말했듯이 동아리 형태이고, 한예종 동아리연합회에 등록되어 있다. ‘돌짱’(돌곶이포럼의 장)이 있긴 한데 매주 있는 회의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때그때 진행되는 일이나, 인터뷰 요청, 연대 요청 등을 논의한다. 그래서 더더욱 공통의 대의라거나 목표가 항상 명확하게 수립되어 있다기보다는 멤버십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연대하고자 하는 의제, 활동하고자 하는 의제가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21년에는 LG트윈타워 투쟁에 결합을 많이 했고, 2022년 초에는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많이 함께했다. 그해에 한예종에 ‘모두의 화장실’(모장실)을 설치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서 학교에 모장실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또 했다. 2023년에는 조리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된 연대 활동을 진행했다. 어떻게 보면 줏대가 없게, 어떻게 보면 다양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공간은 학교 학생회관에 ‘돌방’이라고 하는 동아리방이 있다. 옛날부터 선배들이 읽던 책이나 직접 만든 잡지들이 있다. 돌곶이포럼에서 만든 잡지로 〈얼룩진〉이라고 있는데 그것도 많고, 옛날에 치던 기타나 담배꽁초들이 모여 있는 재밌는 공간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돌곶이포럼은 매년 단체 채팅방을 새로 파고 있는데, 15명 정도로 구성되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4~6명 정도다. 학교 축제나 퀴어문화축제 같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면 붙어서 할 수 있는 총 인원은 단톡방에 참여한 15명 정도. 한예종에서는 규모가 좀 큰 편이다. 동아리연합회 회의를 가 보면 보통 총원이 4~6명 정도에 많으면 10명인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이 새로운 구성원들을 모집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여인서 매년 초 신입 부원 모집을 하는데, 모집하기 전에 ‘소리 내어 읽는 밤’이란 행사를 한다. 돌방에 모여서 각자 원하는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구절 혹은 단락을 발췌해서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여기 초대한 다음에 신입 부원 등록을 권한다. 혹은 학교 에브리타임이나 학내 공간에 포스터를 붙일 때도 있다. 저 같은 경우는 한예종 들어오기 전부터 돌곶이포럼에 대해 알고 있어서 입학하면 꼭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왔다.
송정효 저 같은 경우도 입학 전부터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했던 선배가 돌곶이포럼 부원이었는데, 입학하면 돌곶이포럼 들어가 보라고 해서 그때부터 페이스북을 찾아보고 했던 거 같다. 입학 전부터 관심 있었고 입학하자마자 들어가게 됐다.
강석남 그렇다면 돌곶이포럼은 어떤 동아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여인서 학교에서는 대자보에 이름 나갈 때는 ‘예술과 운동 키워드로 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는 집단’, 이렇게 정해진 문구가 있긴 한데, 매우 추상적인 말들이어서 무슨 활동을 하든 끼워 맞출 수 있는 문장인 거 같다. ‘돌포’(돌곶이포럼)는 그냥 대명사처럼…… 불만 많고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이 있는 동아리? 아무래도 다른 종합대 같은 경우는 총여학생회도 있고 학생회도 있고 퀴어 동아리, 페미니즘 동아리, 인권 동아리 등이 많은데, 한예종에는 그런 동아리가 저희밖에 없다 보니까 특별히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것 같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겠거니 하고 왔고 지내고 있는 거 같다.
강석남 수식어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정체성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여인서 그렇게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들어 가는?
강석남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돌곶이포럼의 상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학생회나 학내 인권위원회 등과 같은 다른 대학 내 조직이나 대학생 조직과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나?
송정효 어려운 질문이라 추상적으로만 생각되는데……. 돌곶이포럼이 다른 모임과 구분되는 특성은 ‘편협함’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난이나 오류의 위험성 같은 것들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걸 개의치 않는단 건 아니지만.
여인서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인터뷰 답변을 같이 준비하면서, ‘편협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다’ 그렇게 썼다. 저도 그래서 돌곶이포럼에 들어온 게 있었다. 인권위는 학교 기관이니까 눈치도 많이 봐야 할 거 같고, 학생회는 욕도 많이 먹고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곳이 아닐까.
권나민 저도 비슷한 마음인데, 어딘가에 매여 있는 동아리, 소규모의 즐겁고 폐쇄적인 그런 모임이 아니라, 매여 있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최소 단위로서의 동아리다. 최소 단위로서 보장되는 자유로움 속에서 느슨한 연대이다 보니 우리가 게릴라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학생회와 달리 동아리라는 느슨한 연대이기에 그 형식에서 요구되는 책임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그 책임도 우리의 의미로 재조정할 수 있는 거고. 무엇이 책임인지에 대해서 물을 수도 있는 거고. 정해진 질문이 있고 답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질문과 답 둘을 다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여인서 그렇다 보니까 좀 무기력해질 때도 많은 거 같다. 예를 들어 모장실 설치를 요구할 때 학생회가 그런 요구를 했다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겠다 싶다. 설문 조사를 받는다든지 협의를 위한 테이블을 만든다든지. 그런 것들을 우리는 할 수가 없으니까, 어느 순간에는 권위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는 거 같다. 그리고 한예종이 현재 학생회가 없기도 하다. 1년도 넘었다. 비대위만 있는 상황이라서 이런 부침이 더 있는 거 같다.
간략한 돌곶이포럼의 소개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적극적인 운동성을 표방하면서도, 특정한 목표나 대의를 내세우기보다 구성원들이 돌곶이포럼의 방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비워 두기’를 망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비워 두기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은 다시 돌곶이포럼의 ‘편협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성과 맞물려 12년간 돌곶이포럼이 다양한 관심사와 운동의 장소들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니었을까? LG트윈타워 투쟁과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 모두의 화장실, 학내 청소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지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의 궤적 속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다만 학생회의 역할과 가능성과의 구별 속에서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이 항상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본격적인 쟁점을 제기하기에 앞서 돌곶이포럼의 구체적인 활동을 먼저 살펴보자.
장벽을 낮춘다는 건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어제 돌곶이포럼은 조리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식판 실뜨기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학생, 교직원, 조리 노동자 등 40여 명이 함께 참여해 주셨습니다. 실을 엮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퍼포먼스를 만들어 갔는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실을 통해 우리 모두가 노동 착취에 연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었어요.”[ref] 돌곶이포럼 페이스북 페이지의 2023년 10월 20일 게시물. [/ref]

2023년 10월 19일, 돌곶이포럼이 한 실뜨기 퍼포먼스
강석남 최근 활동 중 학내 조리 노동자 관련 ‘실뜨기’ 퍼포먼스가 흥미로웠다. 기획 계기와 퍼포먼스 과정 등을 소개하자면?
송정효 조리 노동자 파업 이후 간담회를 주최하고 연대 자보 서명 같은 걸 먼저 조직했던 건 총학생회 산하 단위인 인권위원회였다. 돌곶이포럼에서는 이 투쟁에 연대하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방향성을 고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학내, 학생 사회 안에서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고 그 창구가 되는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대자보 같은 텍스트로 바로 착수하기보다 가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와 기획하게 됐다. 돌곶이포럼이 퍼포먼스나 참여형 액션을 할 때는 인스타그램이나 에브리타임 같은 곳에 공지를 올려 부원이 아니어도 잠깐 모여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돌곶이포럼 구성원이 아닌 학생들이나 교직원들도 와서 실뜨기를 했다.
권나민 에브리타임 같은 데서 보이는, ‘노동자’나 ‘노조’라고 했을 때 판에 박힌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착화된 투쟁의 풍경, 연대의 풍경, 좀 관성적인 것에서 벗어나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 뭐지?’ 하고 이질감 속에서 습관적 생각을 중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여인서 연대의 장벽을 좀 낮추고 싶었다는 게 컸다. 학교 안에서 돌곶이포럼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란 인식도 있었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의제를 가지고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면서 실뜨기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물론 그렇다고 저희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투쟁만을 고집하려는 건 아니다. 조리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지금 상황이 어떤지 설명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적어 달라고 한 포스트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석남 연대의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 대중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 같은데.
여인서 장벽이 없다는 것은 친절한 말을 쓴다거나, 대중들을 온건한 언어로 설득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총학생회가 망해 가는 이유 중 하나가 학생들이 총학을 소비자적인 마인드로만 대하기 때문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 학교 학생회는 무슨 혜택을 주냐’ 이렇게 따지는 것 같다. 돌곶이포럼의 활동은 ‘너도 우리랑 같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의미가 있다. 실뜨기 퍼포먼스에는 예술적인 의미도 있었다. 손과 몸을 이용해서, 글을 보며 스크롤 내리는 게 아니라, 감각하면서 연대 활동을 해 보잔 것도 있었고. 단지 대중 친화적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강석남 돌곶이포럼 같은 활동이나 고민을 표방하는 한예종 내외의 유사한 대학생 모임이나 조직들의 근황을 파악하고 있나?
권나민 나는 제도권 밖에 있다가 올해 들어온 경우라서, 제도권 바깥 사람들의 상황을 좀 더 잘 아는 부분이 있다. 다른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없어졌다거나 퀴어 동아리가 없어졌다거나 그런 이야길 듣게 되지만, 다른 맥락에서 이름을 갖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연결망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라든가,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을 하지 않은 사람들 등……. 다만 어떤 이름을 가지고 모여서 활동하는 게 아니니 잘 보이지 않기는 한다. 어떻게 사람들을 좀 더 응집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운동의 방식들이 고민되고 있는 시점일 수도 있겠다.
강석남 그렇다면 대학 바깥의, 이전과는 다른 활동 방식을 고민하는 분들은 많이 보이는데, 왜 그런 움직임이 대학 내에선 유독 보이지 않는 걸까?
여인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는 장면들이 점점 많이 포착된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대에 입학하려 했을 때의 백래시라든가, 총여를 폐지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든가. 그런 장면을 보면서 겁이 나는 게 있는 것 같다. 돌곶이포럼에서도 ‘으으’ 하고 싶은데 왜 잘 안 될까 싶을 때가 있는데, 직접적으로 느끼는 건 대학 안에서도 계속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을 계속 내야 하고, 성적을 받아야 하고, 그런 분위기 탓이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
권나민 우선 대학 내에서 학생들의 보수화 경향이 엄청나게 심하고, 애초에 대학이 어떤 정도의 문화라든가 학생 자치라는 공동의 의제로 묶여 있을 수 있는 공간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이 성적을 내는 개별화된 루트가 강화되지, 스스로 시민이라는 자각 자체도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탈정치화가 너무 심하고, 그 이유는 정치에 굳이 관심 가질 것 없이 개인의 스펙을 쌓는 게 너무 중요한 일이고 그것만이 허락된 일로 보이니까. 감각 자체가 없다고 할까? 우리가 함께 의제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언어가 우리에게 더 이상 유효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느낌.
강석남 대학 내 상황에 대한 분석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대학의 위기 담론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다. 학령 인구 감소 현상에 기반한 위기 진단에 대한 돌곶이포럼의 입장은?
여인서 저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현재의 대학 평준화가 안 된 상황에서는 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거 같고. 인구가 많다 한들, 반대로 적다 한들, 지금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문화, 대학 안에서의 문화 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권나민 저도 학령 인구 감소는 와닿는 진단은 아니다. 그보다는 탈정치화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고, 대학 안팎에서 사람들의 개인화가 더 보편적인 문제란 생각이 든다. 대학의 위기는 학벌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다. 여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삶의 경로들이 너무 비가시화되어 있다, 대학 자체가 사회에서 재생산돼야 하는 맥락을 생산하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곳이라면, 사회를 지탱하는 다양한 경로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언어나 강의를 교육 기관으로서 갖춰야 하는데, 그런 것들 자체가 전무하지 않나.
여인서 돌곶이포럼에서 특별히 대학의 위기에 대한 공통의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활동하면서 목격한 장면들은 비관적인 면이 많다. 예를 들어 성공회대 모장실 투쟁과 연대했는데, 반대 측이 소송을 내서 성공회대 모장실을 없애려고 시도했다. 그렇게 위기를 맞는 장면들을 보면서, 학교를 자정하려는 노력들이 점점 빛을 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감각은 다들 있을 거 같다. 한편으로 한예종을 그냥 ‘한국 대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학교에서 대학의 위기보다는 ‘예술의 위기’를 더 많이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앞서 이야기 나온 탈정치화도, 특히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이기에 더 큰 문제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실뜨기 퍼포먼스’의 사례는 돌곶이포럼이 자신들의 활동 속에서 자유로움과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학내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라는 의제에 관하여 학내외의 부당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편협함을 견지하면서 전통적이지만 일각에서는 고루하다고 외면하는 노동 의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노동 의제에 대한 대학생 사회의 판에 박힌 인식에 균열을 내기 위해 활동의 수단을 유연하게 바꾸어 가며 ‘연대의 장벽 낮추기’를 시도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돌곶이포럼이 한예종이라는 상대적으로 예외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운동 일반에 던져 주는 함의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핵심은 돌곶이포럼이 자유로움과 편협함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대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고민하는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대학생운동의 쇠락 속에서 많은 운동이 범해 왔던 실수, 한없이 유연해지거나 의제에는 유연해지지만 수단에는 편협함을 고수했던 수많은 시도들이 떠오른다. 소위 ‘학우 대중의 수요’에 적응하겠다며 ‘유연하게’ 운동과 정치에서 복지와 서비스로 전환하면서도 형식적인 편협함은 버리지 못하고 고사해 온 것 아닌가. 장벽을 낮춘다는 것은 그저 대중에게 친절하고 온건한 말을 쓴다는 게 아니라, 대중을 주체로 호명하는 데 있다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만 여전히 쟁점은 남아 있다.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자유로움과 편협함의 견지가 돌곶이포럼에게 있어 어느 시점까지 유효한 선택인지 논의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수식어를 비워 둔 공간’으로서의 돌곶이포럼이 자유로움과 구체적인 방향성을 상실한 ‘좌표 없음’과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이 제기하는 쟁점과 함의
강석남 이제까지의 문답을 바탕으로 돌곶이포럼에 관한 쟁점을 다뤄 보고자 한다. 앞서 돌곶이포럼이 정체성을 비워 두고 구성원들의 관심사에 따라 방향성이 변화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편으로 기동력 있는 게릴라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돌곶이포럼에 기대되는 역할이나 대학 사회 내 책임의 방기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로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돌곶이포럼’이라는 일관적인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가? 둘째로 정말로 들어온 사람들이 각자의 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채워 나가는 곳이라면 돌곶이포럼의 활동들은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인터뷰 서두에 역사성과 관련해 ‘가는 실로 이어진다’는 비유를 들었는데, 다른 대학생운동들은 의도치 않은 계승의 실패로 가는 실만 겨우 있다면, 돌곶이포럼은 사실 계승 같은 것에 그리 구애받지 않았던 것도 같다.
여인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구성원의 들고 나는 빈도도 잦을 수 있고. 돌짱이었던 입장에선 한 가지 의제를 밀고 나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민망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여긴 완전히 자유로운 곳이에요’ 하면 아무도 안 와 버린다. 그럼에도 ‘가는 실’이라고 했던 것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기득권이 아니라 소수의 관점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는 정체성이 놓고 싶지 않은 부분인 것 같긴 하다.
돌곶이포럼이 기대받는 역할에 대하여 무책임하단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만약 학생회가 있었다면 그런 문제가 좀 희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회가 절차를 만들고 실무를 한다면 돌곶이포럼은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거나 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두 가지가 같이 존재하지 않아서, 스스로도 그런 비판과 질문들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 너무 말만 하고 끝내는 거 아냐? 우리 모두의 화장실 운동 대자보 붙이고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해?’ 같은.
권나민 ‘돌곶이포럼의 정체성이 비어 있다’라고 하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돌곶이포럼이 잡아 가는 방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인권이라거나, 어디에서 혐오가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누가 약자이고 배제되고 있는지 등이다. 다만 올 한 해 우리가 어떤 지점에 집중할 것인가가 열려 있는 것이다. 각자 하고 싶은 운동들이 있을 거고, 그 사이에 우열 관계를 두지 않고 계속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단발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단발성과 지속성 자체를 계속해서 고뇌해 나가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중요한 지점일 거 같다.
송정효 돌곶이포럼은 사실상 동아리라서, 대학의 특성상 사람들이 빠르게 교체될 수밖에 없다. 그게 무책임하다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돌곶이포럼은 기본적으로 공간이다. 하지만 돌곶이포럼에 대한 상은 유지되는 거 같다. 그 안에서 바뀌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활동의 형식이 많이 달라진다는 건 공감한다. 현장 연대나, 웹진을 쓴다거나, 이론을 좀 더 한다거나 이런 부분을 지금 잘 안 하고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동아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사람들을 모아야 운동을 할 수 있고, 요새 사람들은 특정 단체가 대변하는 이미지와 자기 자신이 겹쳐 보이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까, 장벽을 낮춰서 사람들을 모아 보자는 데 주력하게 된 것 같다.
여인서 너무 ‘정신 승리’ 같긴 한데, 이 자유로움, 장벽을 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예컨대 돌곶이포럼이 학생회 소속 단체였다면 장애인들이 투쟁할 때 깃발 들고 나가는 것에 대해 학생 사회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말을 삼가게 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사태가 벌어지는 것에 책임을 못 지게 되는 거니까.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게 아닐까.
강석남 두 가지 답변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은 당면한 이슈나 활동의 수단, 방법론이 유연해지는 것이라는 답. 다른 하나는 자유로움 속에서도 지배적인 공감대는 존재한다는 답. 후자의 비결이 궁금한데, 자유로움 속에서 돌곶이포럼의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방향성은 어떻게 재생산될 수 있나?
여인서 특별히 홍보를 열심히 하지도, 포럼이나 교육 같은 걸 열지도 않고 있는데, 이 사회가 돌곶이포럼에 들어올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어떤 곳이든 ‘아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좀 논의해 봐야겠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돌곶이포럼은 그것이 자유로운 곳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계속 오게 되는 거 같다. 장벽이 별로 없고 누구든지 와서 무슨 이야기든 해도 괜찮고, 이런 것 때문에 이어지는 게 아닐까.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까?
강석남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방향성을 견지하면서, 유연하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누구나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이 돌곶이포럼의 중요한 전략인 것 같다. 다만 이 자유로움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또 한예종에서만 가능하고 유효한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면?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유로움에 기반한 돌곶이포럼의 기동성은 과거 전통적인 학생회 중심의 학생 자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유의미한 것은 아닌가?
여인서 구성원끼리 학생회 선거 나갈 수는 없는지 이야기를 해 보기도 했는데……. 돌곶이포럼이 좀 수동적인 모습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판을 만들어 간다기보다는, 판이 있어야 유효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송정효 다른 대학에서도 유효하지 않을까. 우리 학교에서 실뜨기 퍼포먼스를 했을 때 매체에도 소개되고 하긴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뜨기를 준비할 때 사람들이 ‘저게 뭐지? 아 할로윈이잖아’ 하고 지나갔다. 예술 학교라서 추상적이라거나 감각적인 방식이 특별히 유효하거나 그렇진 않은 거 같다.
사실 모든 대학생 조직이나 단체는 아무리 그 대의와 목표를 구체적인 강령으로 정해 둔다 할지라도 구성원의 변천 속에 궤적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돌곶이포럼의 특징이라면 변화하는 궤적의 스펙트럼을 상대적으로 넓게 열어 두고, 구성원들의 토론과 결합을 보장하는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좌표의 상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나름의 구성원 간 합의된 방향성의 존재가 앞서 강조했던 ‘편협함’의 준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터뷰 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완전히 비어 있지 않은 돌곶이포럼의 어떠한 방향성이 어느 정도 층위까지 구체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사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방향성의 스펙트럼은 돌곶이포럼이 지금까지 그려 온 궤적에 비해 너무 넓은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인터뷰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한예종에 입학하기 전부터 돌곶이포럼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 왔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돌곶이포럼이 그려 온 활동의 궤적이 학교 바깥에서 보기에도 강력한 소구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돌곶이포럼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기에, 편협해야 할 때 편협할 수 있는 스스로의 준거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돌곶이포럼의 유연함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한편 돌곶이포럼의 활동들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이 굳이 예술학교라는 한계에 국한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인다. 돌곶이포럼의 성취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어떤 세련됨이나 예술적인 기법이 아니라 의제와 실천의 유연함과 편협함을 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운동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고민이자 장점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실천의 세련된 형태에만 매몰됐던 많은 대학 내 이른바 ‘새로운’ 시도들의 실패를 반추할 때, 앞서 짚었던 돌곶이포럼이 대학생운동 일반에 던지는 함의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강석남 이전의 인터뷰에서도 던졌던 공통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돌곶이포럼’은 운동인가? 혹은 대학생운동이나 예술운동 중에서 어떤 쪽일까?
권나민 저는 활동을 짧게 했지만, ‘완전 운동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돌곶이포럼의 활동을 통해서는 사람들에게 ‘운동인지 아닌지 모르겠지? 헷갈리지? 고민하게 되지? 우리가 운동이라 생각해 온 건 뭐였을까?’ 이런 고민을 던지는 게 좋다. ‘아, 이건 예술이네, 이건 운동이네’ 하게 되면 그냥 그게 뭔지 떠올리게 되고, 그럼 사실상 아무 이야기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저절로 떠오르는 걸 막고 ‘저건 뭘까?’ 생각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인서 저도 586 세대들이 했던 그런 운동과 모습이 다를지라도 학생운동이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덧붙여서 예술과 운동은 돌곶이포럼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런 측면이 더 있는 거 같은데, 모든 예술은 운동의 측면을 갖고 있다. 완전히 사적인 것, 추상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내용적인 걸 봤을 때도 우리가 예술 활동, 예술운동이라고 할 만한 걸 했나 싶다. 예술인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예술에 대해 논의하거나 이랬던 기억이 없어서, 학생운동에 가깝지 않을까? 학교를 바꾸려고 한다거나. 그런 일들을 많이 했으니까.
송정효 예술과 운동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고, 그리고 돌곶이포럼이 대학생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느슨한 연대라고 생각해 왔다. 짧은 에피소드인데,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동아리방 정리를 한 적이 있었다. 동아리 안의 모든 물건을 스펙트럼처럼 나열하는 건데, 한쪽에는 정치적인 것, 다른 한쪽엔 비정치적인 것을 기준으로 구분했다. 나열하고 보니까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더라. 그런 재밌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공백이 있는 플래그, 아직 뭔가를 쓰지 않은 백지더라도 침묵 또한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냐 이런 이야길 하면서…….
강석남 아주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실 소감이 있으시다면?
여인서 돌곶이포럼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다.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④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가 보여 주는 대학생운동의 가능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아리 ‘돌곶이포럼’ 권나민, 여인서, 송정효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그간의 연재에서는 ‘대학의 위기’라는 공통의 질문을 통해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각자의 영역에서 때로는 연대하며 나름의 고군분투를 이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세 단체에 주목했던 이유는 첫째로 학생회와 대학 언론과 같이 학생 자치의 제도적 기반을 갖춘 공식적 조직들의 현황을 통해 대학생운동의 ‘오늘’을 살펴보기 위함이었고, 둘째로는 그러한 대학생운동의 ‘전국적 연대체’가 대학의 위기라는 과제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인터뷰가 보편적인 대학생운동의 일면을 담으려는 시도였다면 이번 인터뷰부터는 분석의 층위를 개별 대학 학생 사회의 수준으로 좁혀 미시적인 단위의 대학생운동을 만나 보고자 한다. 당연하게도 대학생운동이란 학생 사회 공식적 조직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전국적 연대체의 활동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기층에서의 다양한 활동들로부터 대학생운동 일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개할 만한 전국적 대학생운동 조직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물론 부정할 수는 없다.
여러 고민 속에 첫 번째 개별 대학 대학생운동 단체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학생들로 구성되어 “‘예술과 운동’을 키워드로 공동의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는 집단”을 표방하는 ‘돌곶이포럼’을 선정했다. 여기서 밝혀 둘 고민 하나는 돌곶이포럼의 활동이 다른 대학생운동들과는 다른 특수한 예외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우선 돌곶이포럼이 발 딛고 있는 한예종은 엄밀히 말하면 「고등교육법」상 대학교가 아닌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에 근거한 ‘각급 학교’이고, 이러한 한예종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도 비교적 최근까지 반복되고 있다.[ref] “국립 한예종 ‘대학’ 지위 필요성 다시 논란”, 〈경향신문〉, 20022년 10월 12일. [/ref] 또한 한예종은 예술 종합 학교로서 통상적인 한국의 4년제 종합 대학과는 달리 오로지 예술 계열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돌곶이포럼이 표방하는 ‘예술과 운동’이라는 키워드에서도 잘 드러나는 한예종의 특수한 조건들이 대학생운동의 예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돌곶이포럼은 수많은 학생운동 정파들과 조직들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2012년부터 새롭게 등장해 십수 년을 이어 오며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운동으로서의 ‘동아리’라는 점이다. 학생회나 대학 언론과 같은 제도적인 공식 조직들과 달리 단체의 연속성과 재생산을 쉽게 담보하기 어려운 동아리라는 형식의 한계와, 각종 공동대책위원회처럼 학내외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모였다가 이슈의 마무리와 함께 해체되는 느슨한 연대체의 문법이 더 익숙한 2010년대를 돌곶이포럼이 돌파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을 필요가 있다.
2012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희망버스들이 달려갔던 부산 영도, 재개발로 비롯된 철거 농성장 명동 마리 카페, 반빈곤 연대 활동 장소였던 서울 강남 포이동, 그리고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신들의 학교에서 만나고자 했던 돌곶이포럼이 오늘의 대학생운동에 제기하는 쟁점은 무엇인가? 이를 질문하기 위해 2023년을 마무리하는 12월 30일,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3명의 돌곶이포럼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돌곶이포럼
강석남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권나민 제가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돌곶이포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분들과 같이 이야기하면 좋을 거 같아 두 분을 함께 모셨다. 23학번 영상이론과에 재학하고 있다.
여인서 2022년에 돌곶이포럼의 장을 맡았고 지금은 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정효 방송영상과 22학번이다. 돌곶이포럼 부원이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간략한 역사도 함께 듣고 싶다.
여인서 질문지를 받고 찾아보려고 했는데, 요즘 학생 조직들이 다 그렇겠지만 가는 실로 이어져 와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고 있더라. 아는 데까지만 설명해 드리자면 돌곶이포럼은 만들어진 지 12년째 됐다. 한예종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동아리이고, 학교의 공식적 조직이나 학생회와 관련 없는 자율적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초반에는 노동 관련 문제에 많이 집중했다고 알고 있다. 특히 석관동 캠퍼스 옆에 장위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재개발 투쟁에 연대하면서 돌곶이포럼이 본격화됐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지금은 모습이 좀 다른 거 같다. 초창기에는 논문을 같이 만든다든지 이론, 담론을 만드는 활동들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또 그때는 노동 관련된 게 많았다면, 요즘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 등 다양성에 대한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권나민 예술과 운동의 연합 속에서 어떤 방식의 정치 참여를 할지 고민한다. 토론회를 연다든가 대자보를 쓴다든가 등의 익숙한 방식의 정치 참여 형태가 있다면, 돌곶이포럼의 활동은 퍼포먼스를 한다든가 참여형 연극을 한다든가, 예술이 다른 형식을 통해서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활동들이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은 어떤 조직 구성인지,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의제나 목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여인서 조직은 아까 말했듯이 동아리 형태이고, 한예종 동아리연합회에 등록되어 있다. ‘돌짱’(돌곶이포럼의 장)이 있긴 한데 매주 있는 회의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때그때 진행되는 일이나, 인터뷰 요청, 연대 요청 등을 논의한다. 그래서 더더욱 공통의 대의라거나 목표가 항상 명확하게 수립되어 있다기보다는 멤버십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연대하고자 하는 의제, 활동하고자 하는 의제가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21년에는 LG트윈타워 투쟁에 결합을 많이 했고, 2022년 초에는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많이 함께했다. 그해에 한예종에 ‘모두의 화장실’(모장실)을 설치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서 학교에 모장실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활동을 또 했다. 2023년에는 조리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된 연대 활동을 진행했다. 어떻게 보면 줏대가 없게, 어떻게 보면 다양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공간은 학교 학생회관에 ‘돌방’이라고 하는 동아리방이 있다. 옛날부터 선배들이 읽던 책이나 직접 만든 잡지들이 있다. 돌곶이포럼에서 만든 잡지로 〈얼룩진〉이라고 있는데 그것도 많고, 옛날에 치던 기타나 담배꽁초들이 모여 있는 재밌는 공간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돌곶이포럼은 매년 단체 채팅방을 새로 파고 있는데, 15명 정도로 구성되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4~6명 정도다. 학교 축제나 퀴어문화축제 같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면 붙어서 할 수 있는 총 인원은 단톡방에 참여한 15명 정도. 한예종에서는 규모가 좀 큰 편이다. 동아리연합회 회의를 가 보면 보통 총원이 4~6명 정도에 많으면 10명인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강석남 돌곶이포럼이 새로운 구성원들을 모집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여인서 매년 초 신입 부원 모집을 하는데, 모집하기 전에 ‘소리 내어 읽는 밤’이란 행사를 한다. 돌방에 모여서 각자 원하는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구절 혹은 단락을 발췌해서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여기 초대한 다음에 신입 부원 등록을 권한다. 혹은 학교 에브리타임이나 학내 공간에 포스터를 붙일 때도 있다. 저 같은 경우는 한예종 들어오기 전부터 돌곶이포럼에 대해 알고 있어서 입학하면 꼭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왔다.
송정효 저 같은 경우도 입학 전부터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했던 선배가 돌곶이포럼 부원이었는데, 입학하면 돌곶이포럼 들어가 보라고 해서 그때부터 페이스북을 찾아보고 했던 거 같다. 입학 전부터 관심 있었고 입학하자마자 들어가게 됐다.
강석남 그렇다면 돌곶이포럼은 어떤 동아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여인서 학교에서는 대자보에 이름 나갈 때는 ‘예술과 운동 키워드로 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는 집단’, 이렇게 정해진 문구가 있긴 한데, 매우 추상적인 말들이어서 무슨 활동을 하든 끼워 맞출 수 있는 문장인 거 같다. ‘돌포’(돌곶이포럼)는 그냥 대명사처럼…… 불만 많고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이 있는 동아리? 아무래도 다른 종합대 같은 경우는 총여학생회도 있고 학생회도 있고 퀴어 동아리, 페미니즘 동아리, 인권 동아리 등이 많은데, 한예종에는 그런 동아리가 저희밖에 없다 보니까 특별히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것 같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겠거니 하고 왔고 지내고 있는 거 같다.
강석남 수식어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정체성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여인서 그렇게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들어 가는?
강석남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돌곶이포럼의 상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학생회나 학내 인권위원회 등과 같은 다른 대학 내 조직이나 대학생 조직과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나?
송정효 어려운 질문이라 추상적으로만 생각되는데……. 돌곶이포럼이 다른 모임과 구분되는 특성은 ‘편협함’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난이나 오류의 위험성 같은 것들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걸 개의치 않는단 건 아니지만.
여인서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인터뷰 답변을 같이 준비하면서, ‘편협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다’ 그렇게 썼다. 저도 그래서 돌곶이포럼에 들어온 게 있었다. 인권위는 학교 기관이니까 눈치도 많이 봐야 할 거 같고, 학생회는 욕도 많이 먹고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곳이 아닐까.
권나민 저도 비슷한 마음인데, 어딘가에 매여 있는 동아리, 소규모의 즐겁고 폐쇄적인 그런 모임이 아니라, 매여 있지 않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최소 단위로서의 동아리다. 최소 단위로서 보장되는 자유로움 속에서 느슨한 연대이다 보니 우리가 게릴라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학생회와 달리 동아리라는 느슨한 연대이기에 그 형식에서 요구되는 책임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그 책임도 우리의 의미로 재조정할 수 있는 거고. 무엇이 책임인지에 대해서 물을 수도 있는 거고. 정해진 질문이 있고 답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질문과 답 둘을 다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여인서 그렇다 보니까 좀 무기력해질 때도 많은 거 같다. 예를 들어 모장실 설치를 요구할 때 학생회가 그런 요구를 했다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겠다 싶다. 설문 조사를 받는다든지 협의를 위한 테이블을 만든다든지. 그런 것들을 우리는 할 수가 없으니까, 어느 순간에는 권위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는 거 같다. 그리고 한예종이 현재 학생회가 없기도 하다. 1년도 넘었다. 비대위만 있는 상황이라서 이런 부침이 더 있는 거 같다.
간략한 돌곶이포럼의 소개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적극적인 운동성을 표방하면서도, 특정한 목표나 대의를 내세우기보다 구성원들이 돌곶이포럼의 방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비워 두기’를 망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비워 두기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은 다시 돌곶이포럼의 ‘편협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성과 맞물려 12년간 돌곶이포럼이 다양한 관심사와 운동의 장소들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니었을까? LG트윈타워 투쟁과 혜화역 장애인 이동권 시위, 모두의 화장실, 학내 청소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지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의 궤적 속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다만 학생회의 역할과 가능성과의 구별 속에서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이 항상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본격적인 쟁점을 제기하기에 앞서 돌곶이포럼의 구체적인 활동을 먼저 살펴보자.
장벽을 낮춘다는 건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어제 돌곶이포럼은 조리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식판 실뜨기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학생, 교직원, 조리 노동자 등 40여 명이 함께 참여해 주셨습니다. 실을 엮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퍼포먼스를 만들어 갔는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실을 통해 우리 모두가 노동 착취에 연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었어요.”[ref] 돌곶이포럼 페이스북 페이지의 2023년 10월 20일 게시물. [/ref]
2023년 10월 19일, 돌곶이포럼이 한 실뜨기 퍼포먼스
강석남 최근 활동 중 학내 조리 노동자 관련 ‘실뜨기’ 퍼포먼스가 흥미로웠다. 기획 계기와 퍼포먼스 과정 등을 소개하자면?
송정효 조리 노동자 파업 이후 간담회를 주최하고 연대 자보 서명 같은 걸 먼저 조직했던 건 총학생회 산하 단위인 인권위원회였다. 돌곶이포럼에서는 이 투쟁에 연대하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방향성을 고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학내, 학생 사회 안에서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고 그 창구가 되는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대자보 같은 텍스트로 바로 착수하기보다 가시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와 기획하게 됐다. 돌곶이포럼이 퍼포먼스나 참여형 액션을 할 때는 인스타그램이나 에브리타임 같은 곳에 공지를 올려 부원이 아니어도 잠깐 모여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돌곶이포럼 구성원이 아닌 학생들이나 교직원들도 와서 실뜨기를 했다.
권나민 에브리타임 같은 데서 보이는, ‘노동자’나 ‘노조’라고 했을 때 판에 박힌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착화된 투쟁의 풍경, 연대의 풍경, 좀 관성적인 것에서 벗어나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 뭐지?’ 하고 이질감 속에서 습관적 생각을 중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여인서 연대의 장벽을 좀 낮추고 싶었다는 게 컸다. 학교 안에서 돌곶이포럼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란 인식도 있었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의제를 가지고 공동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면서 실뜨기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물론 그렇다고 저희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투쟁만을 고집하려는 건 아니다. 조리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지금 상황이 어떤지 설명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적어 달라고 한 포스트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석남 연대의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 대중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 같은데.
여인서 장벽이 없다는 것은 친절한 말을 쓴다거나, 대중들을 온건한 언어로 설득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총학생회가 망해 가는 이유 중 하나가 학생들이 총학을 소비자적인 마인드로만 대하기 때문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 학교 학생회는 무슨 혜택을 주냐’ 이렇게 따지는 것 같다. 돌곶이포럼의 활동은 ‘너도 우리랑 같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의미가 있다. 실뜨기 퍼포먼스에는 예술적인 의미도 있었다. 손과 몸을 이용해서, 글을 보며 스크롤 내리는 게 아니라, 감각하면서 연대 활동을 해 보잔 것도 있었고. 단지 대중 친화적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강석남 돌곶이포럼 같은 활동이나 고민을 표방하는 한예종 내외의 유사한 대학생 모임이나 조직들의 근황을 파악하고 있나?
권나민 나는 제도권 밖에 있다가 올해 들어온 경우라서, 제도권 바깥 사람들의 상황을 좀 더 잘 아는 부분이 있다. 다른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없어졌다거나 퀴어 동아리가 없어졌다거나 그런 이야길 듣게 되지만, 다른 맥락에서 이름을 갖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연결망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라든가,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을 하지 않은 사람들 등……. 다만 어떤 이름을 가지고 모여서 활동하는 게 아니니 잘 보이지 않기는 한다. 어떻게 사람들을 좀 더 응집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운동의 방식들이 고민되고 있는 시점일 수도 있겠다.
강석남 그렇다면 대학 바깥의, 이전과는 다른 활동 방식을 고민하는 분들은 많이 보이는데, 왜 그런 움직임이 대학 내에선 유독 보이지 않는 걸까?
여인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는 장면들이 점점 많이 포착된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대에 입학하려 했을 때의 백래시라든가, 총여를 폐지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든가. 그런 장면을 보면서 겁이 나는 게 있는 것 같다. 돌곶이포럼에서도 ‘으으’ 하고 싶은데 왜 잘 안 될까 싶을 때가 있는데, 직접적으로 느끼는 건 대학 안에서도 계속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을 계속 내야 하고, 성적을 받아야 하고, 그런 분위기 탓이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
권나민 우선 대학 내에서 학생들의 보수화 경향이 엄청나게 심하고, 애초에 대학이 어떤 정도의 문화라든가 학생 자치라는 공동의 의제로 묶여 있을 수 있는 공간인가 싶기도 하다. 개인이 성적을 내는 개별화된 루트가 강화되지, 스스로 시민이라는 자각 자체도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탈정치화가 너무 심하고, 그 이유는 정치에 굳이 관심 가질 것 없이 개인의 스펙을 쌓는 게 너무 중요한 일이고 그것만이 허락된 일로 보이니까. 감각 자체가 없다고 할까? 우리가 함께 의제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언어가 우리에게 더 이상 유효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느낌.
강석남 대학 내 상황에 대한 분석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대학의 위기 담론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다. 학령 인구 감소 현상에 기반한 위기 진단에 대한 돌곶이포럼의 입장은?
여인서 저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현재의 대학 평준화가 안 된 상황에서는 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거 같고. 인구가 많다 한들, 반대로 적다 한들, 지금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문화, 대학 안에서의 문화 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권나민 저도 학령 인구 감소는 와닿는 진단은 아니다. 그보다는 탈정치화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고, 대학 안팎에서 사람들의 개인화가 더 보편적인 문제란 생각이 든다. 대학의 위기는 학벌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다. 여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삶의 경로들이 너무 비가시화되어 있다, 대학 자체가 사회에서 재생산돼야 하는 맥락을 생산하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곳이라면, 사회를 지탱하는 다양한 경로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언어나 강의를 교육 기관으로서 갖춰야 하는데, 그런 것들 자체가 전무하지 않나.
여인서 돌곶이포럼에서 특별히 대학의 위기에 대한 공통의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활동하면서 목격한 장면들은 비관적인 면이 많다. 예를 들어 성공회대 모장실 투쟁과 연대했는데, 반대 측이 소송을 내서 성공회대 모장실을 없애려고 시도했다. 그렇게 위기를 맞는 장면들을 보면서, 학교를 자정하려는 노력들이 점점 빛을 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감각은 다들 있을 거 같다. 한편으로 한예종을 그냥 ‘한국 대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학교에서 대학의 위기보다는 ‘예술의 위기’를 더 많이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앞서 이야기 나온 탈정치화도, 특히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이기에 더 큰 문제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실뜨기 퍼포먼스’의 사례는 돌곶이포럼이 자신들의 활동 속에서 자유로움과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학내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라는 의제에 관하여 학내외의 부당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편협함을 견지하면서 전통적이지만 일각에서는 고루하다고 외면하는 노동 의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노동 의제에 대한 대학생 사회의 판에 박힌 인식에 균열을 내기 위해 활동의 수단을 유연하게 바꾸어 가며 ‘연대의 장벽 낮추기’를 시도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돌곶이포럼이 한예종이라는 상대적으로 예외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운동 일반에 던져 주는 함의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핵심은 돌곶이포럼이 자유로움과 편협함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대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고민하는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대학생운동의 쇠락 속에서 많은 운동이 범해 왔던 실수, 한없이 유연해지거나 의제에는 유연해지지만 수단에는 편협함을 고수했던 수많은 시도들이 떠오른다. 소위 ‘학우 대중의 수요’에 적응하겠다며 ‘유연하게’ 운동과 정치에서 복지와 서비스로 전환하면서도 형식적인 편협함은 버리지 못하고 고사해 온 것 아닌가. 장벽을 낮춘다는 것은 그저 대중에게 친절하고 온건한 말을 쓴다는 게 아니라, 대중을 주체로 호명하는 데 있다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만 여전히 쟁점은 남아 있다.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자유로움과 편협함의 견지가 돌곶이포럼에게 있어 어느 시점까지 유효한 선택인지 논의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수식어를 비워 둔 공간’으로서의 돌곶이포럼이 자유로움과 구체적인 방향성을 상실한 ‘좌표 없음’과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이 제기하는 쟁점과 함의
강석남 이제까지의 문답을 바탕으로 돌곶이포럼에 관한 쟁점을 다뤄 보고자 한다. 앞서 돌곶이포럼이 정체성을 비워 두고 구성원들의 관심사에 따라 방향성이 변화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편으로 기동력 있는 게릴라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돌곶이포럼에 기대되는 역할이나 대학 사회 내 책임의 방기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로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돌곶이포럼’이라는 일관적인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가? 둘째로 정말로 들어온 사람들이 각자의 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채워 나가는 곳이라면 돌곶이포럼의 활동들은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인터뷰 서두에 역사성과 관련해 ‘가는 실로 이어진다’는 비유를 들었는데, 다른 대학생운동들은 의도치 않은 계승의 실패로 가는 실만 겨우 있다면, 돌곶이포럼은 사실 계승 같은 것에 그리 구애받지 않았던 것도 같다.
여인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구성원의 들고 나는 빈도도 잦을 수 있고. 돌짱이었던 입장에선 한 가지 의제를 밀고 나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민망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여긴 완전히 자유로운 곳이에요’ 하면 아무도 안 와 버린다. 그럼에도 ‘가는 실’이라고 했던 것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기득권이 아니라 소수의 관점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는 정체성이 놓고 싶지 않은 부분인 것 같긴 하다.
돌곶이포럼이 기대받는 역할에 대하여 무책임하단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도, 만약 학생회가 있었다면 그런 문제가 좀 희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학생회가 절차를 만들고 실무를 한다면 돌곶이포럼은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거나 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두 가지가 같이 존재하지 않아서, 스스로도 그런 비판과 질문들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 너무 말만 하고 끝내는 거 아냐? 우리 모두의 화장실 운동 대자보 붙이고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해?’ 같은.
권나민 ‘돌곶이포럼의 정체성이 비어 있다’라고 하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돌곶이포럼이 잡아 가는 방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인권이라거나, 어디에서 혐오가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누가 약자이고 배제되고 있는지 등이다. 다만 올 한 해 우리가 어떤 지점에 집중할 것인가가 열려 있는 것이다. 각자 하고 싶은 운동들이 있을 거고, 그 사이에 우열 관계를 두지 않고 계속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단발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단발성과 지속성 자체를 계속해서 고뇌해 나가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중요한 지점일 거 같다.
송정효 돌곶이포럼은 사실상 동아리라서, 대학의 특성상 사람들이 빠르게 교체될 수밖에 없다. 그게 무책임하다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돌곶이포럼은 기본적으로 공간이다. 하지만 돌곶이포럼에 대한 상은 유지되는 거 같다. 그 안에서 바뀌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활동의 형식이 많이 달라진다는 건 공감한다. 현장 연대나, 웹진을 쓴다거나, 이론을 좀 더 한다거나 이런 부분을 지금 잘 안 하고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동아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사람들을 모아야 운동을 할 수 있고, 요새 사람들은 특정 단체가 대변하는 이미지와 자기 자신이 겹쳐 보이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까, 장벽을 낮춰서 사람들을 모아 보자는 데 주력하게 된 것 같다.
여인서 너무 ‘정신 승리’ 같긴 한데, 이 자유로움, 장벽을 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예컨대 돌곶이포럼이 학생회 소속 단체였다면 장애인들이 투쟁할 때 깃발 들고 나가는 것에 대해 학생 사회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말을 삼가게 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사태가 벌어지는 것에 책임을 못 지게 되는 거니까.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게 아닐까.
강석남 두 가지 답변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돌곶이포럼의 자유로움은 당면한 이슈나 활동의 수단, 방법론이 유연해지는 것이라는 답. 다른 하나는 자유로움 속에서도 지배적인 공감대는 존재한다는 답. 후자의 비결이 궁금한데, 자유로움 속에서 돌곶이포럼의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방향성은 어떻게 재생산될 수 있나?
여인서 특별히 홍보를 열심히 하지도, 포럼이나 교육 같은 걸 열지도 않고 있는데, 이 사회가 돌곶이포럼에 들어올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어떤 곳이든 ‘아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좀 논의해 봐야겠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돌곶이포럼은 그것이 자유로운 곳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계속 오게 되는 거 같다. 장벽이 별로 없고 누구든지 와서 무슨 이야기든 해도 괜찮고, 이런 것 때문에 이어지는 게 아닐까.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까?
강석남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방향성을 견지하면서, 유연하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누구나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이 돌곶이포럼의 중요한 전략인 것 같다. 다만 이 자유로움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또 한예종에서만 가능하고 유효한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면?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유로움에 기반한 돌곶이포럼의 기동성은 과거 전통적인 학생회 중심의 학생 자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유의미한 것은 아닌가?
여인서 구성원끼리 학생회 선거 나갈 수는 없는지 이야기를 해 보기도 했는데……. 돌곶이포럼이 좀 수동적인 모습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판을 만들어 간다기보다는, 판이 있어야 유효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송정효 다른 대학에서도 유효하지 않을까. 우리 학교에서 실뜨기 퍼포먼스를 했을 때 매체에도 소개되고 하긴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뜨기를 준비할 때 사람들이 ‘저게 뭐지? 아 할로윈이잖아’ 하고 지나갔다. 예술 학교라서 추상적이라거나 감각적인 방식이 특별히 유효하거나 그렇진 않은 거 같다.
사실 모든 대학생 조직이나 단체는 아무리 그 대의와 목표를 구체적인 강령으로 정해 둔다 할지라도 구성원의 변천 속에 궤적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돌곶이포럼의 특징이라면 변화하는 궤적의 스펙트럼을 상대적으로 넓게 열어 두고, 구성원들의 토론과 결합을 보장하는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좌표의 상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나름의 구성원 간 합의된 방향성의 존재가 앞서 강조했던 ‘편협함’의 준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터뷰 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완전히 비어 있지 않은 돌곶이포럼의 어떠한 방향성이 어느 정도 층위까지 구체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사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방향성의 스펙트럼은 돌곶이포럼이 지금까지 그려 온 궤적에 비해 너무 넓은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인터뷰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한예종에 입학하기 전부터 돌곶이포럼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 왔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돌곶이포럼이 그려 온 활동의 궤적이 학교 바깥에서 보기에도 강력한 소구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편협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돌곶이포럼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기에, 편협해야 할 때 편협할 수 있는 스스로의 준거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돌곶이포럼의 유연함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한편 돌곶이포럼의 활동들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이 굳이 예술학교라는 한계에 국한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인다. 돌곶이포럼의 성취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어떤 세련됨이나 예술적인 기법이 아니라 의제와 실천의 유연함과 편협함을 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운동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돌곶이포럼의 고민이자 장점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실천의 세련된 형태에만 매몰됐던 많은 대학 내 이른바 ‘새로운’ 시도들의 실패를 반추할 때, 앞서 짚었던 돌곶이포럼이 대학생운동 일반에 던지는 함의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강석남 이전의 인터뷰에서도 던졌던 공통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돌곶이포럼’은 운동인가? 혹은 대학생운동이나 예술운동 중에서 어떤 쪽일까?
권나민 저는 활동을 짧게 했지만, ‘완전 운동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돌곶이포럼의 활동을 통해서는 사람들에게 ‘운동인지 아닌지 모르겠지? 헷갈리지? 고민하게 되지? 우리가 운동이라 생각해 온 건 뭐였을까?’ 이런 고민을 던지는 게 좋다. ‘아, 이건 예술이네, 이건 운동이네’ 하게 되면 그냥 그게 뭔지 떠올리게 되고, 그럼 사실상 아무 이야기도 안 한 거나 다름없다. 저절로 떠오르는 걸 막고 ‘저건 뭘까?’ 생각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인서 저도 586 세대들이 했던 그런 운동과 모습이 다를지라도 학생운동이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덧붙여서 예술과 운동은 돌곶이포럼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런 측면이 더 있는 거 같은데, 모든 예술은 운동의 측면을 갖고 있다. 완전히 사적인 것, 추상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내용적인 걸 봤을 때도 우리가 예술 활동, 예술운동이라고 할 만한 걸 했나 싶다. 예술인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거나 예술에 대해 논의하거나 이랬던 기억이 없어서, 학생운동에 가깝지 않을까? 학교를 바꾸려고 한다거나. 그런 일들을 많이 했으니까.
송정효 예술과 운동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고, 그리고 돌곶이포럼이 대학생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느슨한 연대라고 생각해 왔다. 짧은 에피소드인데,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동아리방 정리를 한 적이 있었다. 동아리 안의 모든 물건을 스펙트럼처럼 나열하는 건데, 한쪽에는 정치적인 것, 다른 한쪽엔 비정치적인 것을 기준으로 구분했다. 나열하고 보니까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더라. 그런 재밌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공백이 있는 플래그, 아직 뭔가를 쓰지 않은 백지더라도 침묵 또한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냐 이런 이야길 하면서…….
강석남 아주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실 소감이 있으시다면?
여인서 돌곶이포럼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