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기획] 바다의 기억, 시간의 물결 | 정용주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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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세월호 10주기, 4.16 교육 체제와 애도 수업


바다의 기억, 시간의 물결

세월호 10주기와 안전 담론의 재조명


 

정용주

edcom234@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울 천왕초 교장

 



기억의 문을 열며

 

“알래스카에서는 눈썰매를 끄는 여러 마리의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줄을 짧게 맨다고 합니다. 개들이 빨리 달리게 할 때에는 짧게 매어 있는 개를 채찍으로 때립니다. 그 병약한 개의 비명이 다른 개들을 더욱 빨리 달리게 합니다. 그 병약한 개가 죽고 나면 나머지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가 그 자리에 묶입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썰매를 끄는 위치에 있다면 엄벌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엄벌을 주장하는 사람은 썰매를 끄는 사람이 아니라 썰매를 모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엄벌이란 병약한 개를 채찍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벌과 공포는 사회를 경직시킵니다. 반대로 참여와 소통은 많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고양하고 사회역량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와 소통 구조는 자칫 썰매 위의 자리가 침범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그리고 사회란 원래 썰매의 위아래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한 개를 채찍으로 때려 왔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ref]신영복(2015), 《담론》, 돌베개, 268쪽.[/ref] 

 

세월호 참사 10주년을 맞이하며, 나는 그날의 기억과 함께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 언급된 알래스카에서 눈썰매를 끄는 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가장 약한 개를 채찍질하는 행위가 다른 개들을 더욱 빠르게 달리게 한다는 이 이야기는, 약자에 대한 처벌과 공포가 사회 전체를 경직시키고, 결국은 공동체의 잠재력을 저해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교육은 그러한 체제를 지속시키는 중심에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변별 중심의 입시 체제 속에서 각자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현재의 교육 체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려고 했다. 현재의 교육 체제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요구하며,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경쟁을 강요한다. 이러한 체제는 학생들을 서로 경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협력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한다.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지 못한 학교에 대해 재인식하게 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교육 체제와 사회 체제의 총체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 참사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개별적인 문제나 개선 사항에 대한 해결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가치와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호, 공동체의 안전과 연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 교육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깊은 성찰이 10년을 이끌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지금, 우리는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리고, 그 아픔을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 체제와 사회 체제를 향한 연대와 실천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추모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책임과 약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0년,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년 전 기억의 장소에 다시 서서

 

10년이 지난 지금, 학교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세월호 참사의 파편들을 하나씩 모으며, 선명했던 기억과 저항의 실천들이 어떻게 기억 속에서 다르게 존재하는지 생각에 잠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충격적인 소식을 교실에서 처음 들었을 때,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교사로서 마음이 크게 다쳤다. 참사 이후 학교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4.16 이후 시간은 멈추었다. 우리는 잊혀 가는 생명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하는 일의 중요성을 늘 가슴에 새겼다. 특히, 1주년, 2주년이 다가오면 학생들과 함께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학교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거나 수업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추억의 시간과 장소들은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해 준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당시 딸을 잃은 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의 하루는 항상 딸을 잃은 슬픔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의 침묵, 빈방, 사진 속 미소는 과거와 현재를 얽히게 하는 순간들로, 슬픔과 기억이 어우러진 질감을 만들어 냈다. 또한, 나는 참사에서 겨우 살아남은 학생을 만났다. 과거의 그림자가 학생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친구들과의 대화, 책상에 새겨진 이름들은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하며, 살아남은 자로서 시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선생님도 있었다. 단원고에서 만난 선생님은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일상적인 교육 활동 속에서 자연스레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 곳곳에 스며든 학생들과의 추억, 운동장의 웃음소리와 도서관의 풍경은 선생님에게 과거의 순간들을 되새기게 하며,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순간을 경험하게 했다. 나는 1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그로 인해 변화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위로를 찾고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고, 비로소 세월호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의 현재 실천과 투쟁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성찰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실천으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 전망을 제시하며, 기억이 미래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은 점점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 가고 있었다.

 

안전 담론의 변화 1. 저항 담론에서 통치 담론으로 흡수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ref]박민규 외(2014),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56쪽.[/ref]

 

2023년 경기도교육청은 직속 기관인 4·16민주시민교육원을 참사 10주기에 맞춰 ‘생명안전교육’ 중심 교육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3년 4월 임태희 교육감이 세월호 9주기 추도사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안전한 교육 환경 속에서 교육 활동에 힘을 쏟을 때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따른 조치이다.[ref]경기도교육청, “[보도 자료] 4.16민주시민교육원, ‘생명안전교육 중심 체제’ 전환”, 2023년 11월 24일.[/ref]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실천의 중심에 안전 담론이 있다. 안전 담론은 다른 담론들을 압도했다. 이는 교육과정에서 안전 교육 시수 확대, 학교에서 각종 행사 및 교육 활동 진행 시 안전 매뉴얼 강화, 안전 교육 의무 시수 강화와 같이 제도화되었지만 세월호 사건 당시 안전 담론은 매우 저항적인 담론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국가인가?”,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으며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에 어떤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분노를 이어갔다. 특히 안전 담론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와 함께 지배 이데올로기의 안정성을 흔들고 권력관계를 들추어내는 역할을 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공동체성에 입각한 시민 의식의 형성은 적절히 결합하지 못했다. 특히 교육은 그동안 공동체성에서 멀리 떨어진 개별성에의 경쟁적 현실에 충실했다. 가족주의 틀 안에서 입시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적 본질을 회복하면서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적 연대와 실천을 위해 노력했다. 이윤 창출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원리 밑에 돈의 문제가 생명의 문제보다 우선시되는 사건임을 인식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기억의 계급성, 기억의 개인성 안에 머물지 않고 체제 전환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면서 안전에 대한 정치적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었다. 종교, 교육, 사회, 지자체, 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안전 관리 체제의 확립이 주요 쟁점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안전 담론은 세월호 참사를 사고에서 사건으로,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정부 대응 양상의 불신을 지적하는 데서 사회 각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기본 체제로서의 안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안전 담론이 저항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보다 강화한 계기는 정부가 참사 초기에 세월호 참사를 사고로 프레이밍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러한 저항 담론은 강요된 망각, 왜곡된 기억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듯 권력은 프레임을 형성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기억을 강요하고, 망각을 하게 하고, 안전 매뉴얼 및 안전 교육 강화와 같이 통치 담론으로서 안전 담론을 강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안전 담론이 강화되면 사건의 본질을 내부로 깊숙이 인지하는 것을 막고 사고의 외현적 현상으로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기념관 건립, 추모제 등의 행사 안에 기억을 머물게 한다.

저항 담론으로서 안전 담론은 이러한 통치 담론으로서 안전 담론에 맞선다.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의 폭을 줄이고 그저 사고나 사건의 나열로만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정치화, 장소의 정치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 체제, 교육 체제의 주체를 만들어 가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점차 공감과 기억 소환의 문제가 주류를 형성하였고 기억의 영토화 작업으로서 기록화 과정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교육 영역에서 이러한 저항 담론으로서 안전 담론은 보다 강화되었다.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이었기에 그랬다. 우리는 학생들을 미래 사회의 일원으로 준비시키는 데만 치중하며 현재의 행복과 시민으로서의 참여를 억제하는 입시 중심의 교육에 심각한 비판을 제기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알래스카에서 눈썰매를 끄는 개들과 같은 처지로서 입시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을 인식하며 이 문제를 의제화했다. ‘교육 체제의 정의롭고 생태적인 전환’이라는 방향성이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학생들이 단지 학업 성취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어야 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에서 저항으로서 안전 담론은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4.16 선언)과 ‘4.16 교육 체제’로 이어졌다. 4.16 선언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가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수많은 세월호들의 침몰 속에서 다시 닥쳐온 재난이라는 성격 규정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복수성, 즉 우리 사회에 다른 세월호 참사들이 존재하며 그 사건들에 귀 기울어야 함을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참혹하게 드러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의를 짓밟고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에 저항했다. 인간의 존엄에 침을 뱉고 참사의 진실을 덮으며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에 분노하는 선언과 이 땅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선언을 통해 기억을 통한 약자들의 연대와 실천을 이어 갔다. 아니, 이 선언은 미국의 「수정헌법」이 만들어진 과정과 닮았다. 저항적 안전 담론은 권력이 강요하는 안전 개념, 기존의 질서 지키기, 준법 의식, 예의 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안전 담론을 추구하며, 배제와 분리, 경계를 넘어서 소수자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사회적 소통을 위한 연대를 모색했다. 결국 안전 담론이 사회 전반에 걸친 정치적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게 했으며, 안전 관리 체계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요구가 부상했다.

이처럼 4.16 선언은 안전 담론이 저항적 안전 담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고,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근본으로 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었다. 여기에 교육 체제 전환으로 응답한 것이 ‘4.16 교육 체제’였다. 4.16 교육 체제는 세월호 참사의 날짜인 4월 16일에서 이름을 따와, 참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학교 안전 교육과 생명 존중의 문화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 체제를 말한다. 4.16 교육 체제는 참사의 충격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외부 활동을 꺼리게 되고 학생들의 교육 활동에서 경험의 기회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안전 담론이 맥락화되는 것에서 벗어나, 진보적 교육 정책을 도입하여 참사의 교훈을 교육 체제에 반영하고자 했다. 특히 자율화, 참여, 공동체의 책임을 통해 학교 안전 문화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단순히 교육 체제 내의 안전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와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려고 했다. 교육은 단지 지식의 전달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4.16 교육 체제는 세월호 이후 교육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비전을 담고자 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선언과 선언의 구체화를 위한 연대와 실천이 이어졌다.

그러나 안전 담론은 점차 교육과 사회의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안전을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동력에서 벗어나, 안전 교육을 수강하고 정해진 매뉴얼을 준수하며, 국가가 제정한 지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러한 전환은 국가가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동시에, 위반 시에는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개인과 기업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국가는 이를 통해 안전 규정의 제정자이자 감독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기업으로 이전하려고 한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은 신자유주의적 통치 전략의 특징을 반영하며, 국가는 직접적인 안전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안전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적으로, 안전 담론은 국가가 제정한 안전 기준과 지침의 준수를 강조하며, 개인과 기업이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강화된 처벌을 직면하도록 한다. 이러한 접근은 국가의 역할을 안전 정보와 규정의 제공자로 한정하며, 개인과 기업이 스스로 안전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도구를 갖추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안전 관리의 책임은 국가에서 개인과 기업으로 이전되며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은 최소화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시스템의 지속 불가능성은 안전 매뉴얼에 갇혀 보이지 않게 된다.


변화 2. 강박화된 안전 논리와 교사 책임이 강화된 안전 담론

 

세월호 참사 이후 강화된 안전 논리는 교사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확대된 역할을 부여했다. 이제 교사들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책임감은 교사들이 안전 교육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위기 상황 발생 시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더불어, 교사들은 안전 관련 지식과 기술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학생들에게 안전 의식을 심어 주는 동시에, 위험 상황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학교공동체의 구조 역시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아, 명목적으로는 협력적이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안전 담론이 지배하는 환경,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교사와 학부모, 학교 관리자 간의 관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안전에 대한 증가된 기대와 요구는 절차주의와 문서주의를 남발했고, 과도한 감시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교사들이 교육 활동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를 주저하게 만들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교육 방법의 도입을 어렵게 한다.

성장과 발달은 테마파크의 놀이기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고 때로는 도전적인 바다의 파도에서 이루어진다. 진정한 학습의 과정은 편안함과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위험을 수용할 때 이루어진다. 배움의 과정에서 위험은 단순히 부정적인 요소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개인의 발달과 성장을 촉진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완전한 안전을 추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가치와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비에스타는 자신의 저서 《Beautiful Risk of Education》에서 교육이 가지는 본질적인 불확실성과 위험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며, 이러한 요소가 학습자의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비에스타는 표준화되고 결과 지향적인 현대 교육 시스템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흐리게 만든다고 비판하면서, 교육과정에서의 불확실성과 개방성이 학습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강조한다. 위험은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만남이며, 이러한 만남을 통해 학습자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가능성을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과도한 강박은 이러한 성장과 발달의 과정을 방해하며, 교육 활동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제한하게 된다. 교육 환경이 지나치게 통제되고 규제되면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이는 마치 모든 활동이 중단된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며,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과 가치를 퇴색시킨다.

 

변화 3. 계급 담론이 된 안전 담론

 

계급 담론으로의 안전 담론의 변질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안전한 항구를 찾아 헤매는 이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도 같다. 바다의 높은 파도는 사회적 약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며, 폭풍의 중심에서 누가 더 안전한 항구로 향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담론은 본래의 포용적 정치공동체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계급적 차별의 수단으로 점차 변모하며, 안전이라는 가치가 계급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맥락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내면화된 적대감에서 시작되며, 개인의 무능력을 사회적 실패의 원인으로 돌리는 경향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제 가능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들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심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보도와 같이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는 표현의 사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며, 이들이 받는 보상금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등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학교는 국가가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시공간이다. 그래서 학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변혁과 변화, 웰빙에 대한 열망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 이상적으로 학교는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점점 학교 환경은 이러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게 운영되고 있다. 안전 담론이 계급 담론으로 변질되고 경쟁과 배제의 원리가 강조되며, 교육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계급 담론을 강화하고 ‘공정한 차별’의 개념을 확대하는 현상은 교육에서의 사회적 약자 배제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며, 성적이나 능력에 따른 차별을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해석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포용적인 교육 체제로의 전환을 방해하고,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안전 담론의 이러한 계급적 전환은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안전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임을 상기해야 한다. 계급적 차별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계급적 차별을 넘어서는 포괄적이고 공정한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포용적인 교육 체제로의 전환은 교육 기회의 확대,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실현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구성원의 안전과 포용을 보장하는 안전 담론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변화 4. 자기 경영의 윤리가 된 안전 담론

 

세월호 참사 초기, 사회적 분노와 슬픔이 국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은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국가의 안전 관리 체계와 정책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이러한 사회적 반응은 당시의 안전 담론이 국가 주도의 보호와 개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질문은 “왜 배를 탔어?”라는 질문으로 변모하였다. 이 변화는 안전 담론이 개인의 책임과 자기 경영의 윤리로 전환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미셸 푸코가 언급한 ‘자기기술(self-technologies)’의 개념을 차용하면, 세월호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담론은 자신의 안전을 포함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고 규율하는 성격이 강화되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위험을 판단하며, 예방 조치를 취하는 등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경영의 윤리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행동, 선택, 그리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는 개념이다. 특히 자기 경영의 윤리는 개인의 책임을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외부 환경이나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지원 체계의 중요성을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단적으로 모든 개인이 동일한 조건에서 자기 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은 개인의 자기 경영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기 경영 담론이 된 안전 담론은 미셸 푸코의 ‘살아 있지만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개인의 자기 관리와 자율적인 책임을 강화했다. 국가의 역할이 변화함에 따라, 개인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는 사법화의 심화로 이어졌다. 학교 안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학부모들이 학교의 안전 관리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 사건이나 안전사고 발생 시 학부모들이 학교나 교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학교의 안전 관리 부실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증거 자료를 수집하려는 흐름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학교 안전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 관계를 약화시키고, 교육 활동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특정 사회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자기 경영 능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반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은 이러한 체계에서 소외될 위험이 높다. 이는 권력과 자원의 불균등한 분포를 반영하며, 안전 담론의 계급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다시, 세월호 참사 앞에서 – 주체화와 사회적 연대의 복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되돌아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정의 파동을 느낀다. 아니, 어른으로서 가진 죄의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깊은 상처와 함께, 그 속에서 발견한 연대의 따뜻한 빛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이 아픔은 우리를 하나로 묶었고, 잊힐 위기에 처한 진실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세월호를 기억하며, 다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서로 의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우리의 연대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세월호의 기억이 우리의 연대와 희망의 의지에 불씨를 지펴, 더욱 따뜻하고 연결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영감을 줄 것이다.





참고 문헌

고성휘(2018), 〈세월호 담론투쟁과 주체의 전이현상 연구〉,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 학위 논문.

김대근(2014), 〈안전개념의 분화와 혼융에 대한 법체계의 대응방안〉, 《법과 사회》, 47, 법과사회이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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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