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준비호[기획]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배이상헌)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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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인권을 만난 교육, 교육을 만난 인권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배이상헌 광주 무진중 

chamtear@hanmail.net




2010년 10월 5일 국내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 의회를 통과하였다. 이렇게 빨리 제도화에 성공할지 몰랐다. 무상급식과 달리 광범위한 반대 여론이 움직였고, 교육계의 진보 세력이라 할 전교조조차도 조심스레 대응하는 과제였기에 경기도 의회의 결정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주목할 것은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했던 몇 가지 것들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보다 학교를 지탱했던 전통적인 수직적 질서가 무너지고, 학교 내 교육 주체들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즉 창조를 향한 다양한 실험의 지점에 학교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라는 관료 조직을 ‘학교 사회’로 돌아오게 하는 작전의 시작이다.

학생인권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교육의 봉건적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며, 학생 인권조례는 늦게나마 우리 교육 체제를 진정으로 근대화하는 과제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한국 사회의 뒤늦은 근대화를 성취하는 문제라면, 변화의 동력은 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체벌에 대한 찬성-반대가 쟁점이 아니다. 어떤 개선안이 나오느냐가 문제이다. 두발 규정의 존치 여부가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신체의 자유’를 받아들이며, ‘ 청소년과 아동’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성숙 여부가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새로운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결국 학교가 최소한 지켜져야 할 가이드라인이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희망하는 학교의 변화상 


학생인권조례가 진정으로 희망하는 학교의 변화는 무엇일까?

첫째, 학생에게 학교는 인권의 산실이어야 한다. 학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초·중등 시기는 존중받음을 통하여 발돋움하고 성장하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회 계약의 기본 전제를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과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존재 그 자체가 인권의 역사를 전하고,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을 형성 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인권과 민주시민이란 무엇보다 체험을 통한 배움의 대상이다. 공기 마시듯 들이마셔야 하며, 생존권을 요구하듯 인권과 민주주의는 인간의 생태계로서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교사에게 인권은 교사의 전문성의 산실이어야 한다. “ 학생의 인권도 좋지만, 교사의 교권은 어쩌라고?”와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큰 흐름에서 비례한다. 교사의 교권은 학생의 인권에 근거를 두는 것이며,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약속과 세부적 장치가 없다면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는 규칙이나 틀도 불가능하다. 돌아보면 그동안 교사에게 교권이 없었던 이유는 학생을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거나 학교를 권리 실현의 사회 계약 시스템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초· 중등교육법의 그 어떤 명시적 규정과 상관없이 학교는 맹목적으로 교사의 입장에서 교육 활동을 진행하기 위한 편리를 교사 자신의 수완에 내맡겼다. 학생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은 오로지 교사 개개인의 능력이었다.

결국 교사는 교육의 전문성과는 다른 길로 내몰렸다. 보호 관리하는 자이거나, 교과 지도의 기능적 일꾼이었다. ‘생활지도’가 지배하는 학교 현실에서 ‘생활교육’의 자리는 없었다. 면학 분위기 형성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는 ‘생활지도’가 강조될 때 학생 내면의 다양한 성장을 읽어 내고 지원하는 ‘생활교육’은 불가능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생활교육이 살아나고 부흥할 것을 기대한다. 생활교육 관련 ‘사이비’ 전문성들을 솎아 내는 담론도 활발해질 것이다. 손쉬운 통제,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카리스마, 교사 간 협력보다는 개인의 수월성으로 전문성을 구가하는 것이나 사육사나 조련사 수준의 탁월하지만 목적이 불순한 그 모든 방법들에 이르기까지.

결국 교육행정의 논리에까지 학생인권조례는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학생을 까다롭고 섬세한 존재로 바라볼 때 학생을 다루는 교사의 깊고 심오한 전문성도 요구된다. 학생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관점이 정립될 때에 교사의 전문성을 지원하는 교육행정의 전문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셋째, 학부모에게 학교는 연대의 근거지가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를 설계하기 위한 구체적 고민을 발전시켜 갈 것이며 ‘지역의 공동체성’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학생의 학부모도, 장애가 있는 학생의 학부모도 학교에 아쉬운 소리 구걸하지 않고 학교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교사와 협력하는 주체로서 학부모와 학부모 조직의 역할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학생인권조례는 시민(운동)에게 학교가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터전으로 자리 잡을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지 학생이 학교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보호하는 정도의 열매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백화점의 종업원이 고객에게 어떻게 서비스해야 한다는 친절 수행 규정이 아니다. 학교를 인권 친화적 민주 시민 교육의 터전으로 변화시키는 적극적 설계가 필요하다. 성 평등 교육이 없는 남녀 합반이 갖는 역기능처럼 인권 교육, 민주 시민 교육의 적극적 설계 없이 학생인권조례만 선포될 때, 그결과는 결코 낙관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변화를 향한 다음 단계의 시나리오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린마일리지’와 인권 담론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교육의 기본 가이드라인이지 목표가 아니다. 학교는 인권조례를 발판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정규 교과 이외의 교육 활동의 자유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정보와 자치활동의 권리, 종교·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 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 발표가 무럭무럭 터져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담론은 현장의 부작용과 관련해서만 진행되고 있다.

체벌이 문제라는 지적이 단지 ‘체體’에 ‘벌罰’하는 것만 문제 삼는 것인가? ‘ 체’만 아니라 ‘벌’ 중심의 관계도 문제 아닌가? 상벌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관계 자체가 ‘인격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감시하고 감독하는 설정이 타당한지, 교육적 가치를 발현시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발표되는 내용의 골자는 ‘격리’ 또는 계량적 점수 누적제로 치닫고 있다. 성찰 교실과 최근 교육부 발표에서 드러난 ‘출석 정지’는 일정 정도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스템과 내용 개발, 학생의 선택권 등이 지원되지 않으면 이는 그야말로 ‘격리’의 다양한 패턴으로 그칠 것이다. 그린마일리지라 미화된 표현이 확산되는 것도 우려된다. 이는 이미 몇 년의 시행 과정을 통해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보고가 있었다. 상벌점 제도가 있어서 체벌이, 교사의 폭언이, 교사와 학생의 갈등이 없어졌는가. 종종 체벌과 상벌점은 함께 공존한다. 벌점을 발급하는 것은 교사의 임의(주관성)에 맡겨지며, 그 규정이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린마일리지의 취지를 위반하는 자 3점’이라는 기상천외한 문구도 발견된다.

이러한 ‘격리’와 ‘그린 마일리지’에 ‘사랑’과 ‘대화’ ‘만남’의 휴머니즘은 없다. 생활교육의 르네상스도 없다. ‘생활교육’과 ‘법치’ ‘자치’로의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그 어떤 해법도 진정한 해결책일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이후’학교는 ❶‘계약 사회로서 법치’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교는 어찌 해야 하나? 생활교육의 두 가지 과제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치’와 ‘자치’이다.

‘법치法治’는 ‘인치人治’와 대비된다. 현재의 학교는 학생에게 ‘인치’로 시작해서 ‘인치’로 끝난다. 인치의 공간에서 학생은 ‘누가 권력자인가?’ ‘권력자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힘센 자가 누구인가, 힘센 자의 성향은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1교시부터 9교시까지 들어오는 많은 교사들이 제각기 다른 원칙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적용한다. 학생들의 의견이 존중되거나 통일된 학교의 일반 규칙이 있기보다는 다양한 교사만큼 다양한 규칙들이 학생들을 규율한다. “왜 국어 선생님의 규칙과 영어 선생님은 달라요?”와 같은 질문은 있을 수가 없다. 오랜 학교생활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발달하는 정치 감각은 ‘처세’이지 ‘철학’이 아니다.

‘인치’를 언급하는 것은 학교 사회의 ‘봉건적 통제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인치’의 문제는 교무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봉건적 통제’란 학교 체제에 대한 수사적 묘사가 아니라 전체 사회와 학교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사실적 묘사이며, 그렇기에 학교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의 과제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에 힘입어 학교는 학생을 ‘인치’의 공간에서 ‘법치’의 공간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 법치’는 결국 학교의 근대화하고 근대적 계약 사회로서 학교 구성 주체들의 권리-의무 관계를 명료 하게 할 것이다.

‘법치’는 학교 조직이 사회적 계약에 근거한‘학교 사회’로 크게 변화해 가는 바탕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도화되는 현실은 ‘법치’의 당면 과제와 중·장기 과제를 구분하고 구체화하는 학교 시스템의 설계도를 필요로 한다. 학교에 상응하는 ‘법치’의 포괄적 개념은 관료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학교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며 중·장기 과제로서 정책 과제는 참여 자치 활동이 구체화된 생활교육 과정이 제정되고, 교사회·학부모회·학생회가 법제화되며 제 주체의 권리와 권한, 책무 등이 공식화되는 일이다. 또 행정적 과제는 교사 간 협력(의사소통) 구조와 절차를 규칙화하고 학부모와 지역 사회의 참여 구조와 지원 체계를 수립하는 것과 현재의 학급 담임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문화적 과제는 교사와 학생의 사적 관계 방식이 아닌 공공적 교사상의 확립이며, 지역과 학부모가 공공적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 협력하는 경험의 누적이다.

‘법치’는 ‘수평적 계약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법’은 ‘보편적 약속’이다. 학생들이 학교 제도의 체험을 통해 ‘시민 사회의 보편 약속’을 체험하고 가꾸는 경험을 배우는 것이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의 핵심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이후’학교는 ❷‘학생 사회의 형성과 자치’


‘법치’가 인권적 학교의 시스템과 규칙, 의사 절차를 의미한다면, ‘자치’는 다양한 참여 활동과 그 과정, 성과를 학생이 주체가 되어 총화해 내는 학생 활동이다. ‘법치’가 하드웨어라면 ‘자치’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이다. 조례가 인권 지향적 학교의 실제적 동력일 수 있다면 그것의 최고의 목표는 ‘자치’이다.

‘자치’는 학생을 공동체로 회생시키며, 그때에 교사와 학부모 또한 공동체로서 자기 규정력을 높인다. 학생-교사-학부모의 만남이 생태적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자치’를 지향하는 가운데 인권은 이제 민주 시민 교육으로서 적극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자치를 지향하는 눈높이에서 학생은 비로소 ‘학생 사회’를 주체적으로 눈뜨게 된다. 국어를 가르치든, 미술, 역사, 통일, 성평등, 그 밖의 그 무엇을 가르치든 교사는 ‘학생’과 만나며, ‘학생 사회’와 만난다는 교육의 방법론을 깨우쳐야 한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참여 자치권은 18조(자치활동의 권리), 19조(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20조(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로 한정되어 있으며, 세부적 시행 규칙을 신속히 마련하고 이를 교육하고, 권장하며, 감독하는 후속 과제가 요청된다. 학생 자치활동은 초·중등교육법 제17조와 동법 시행령 제30조에 근거를 오래 전부터 갖추고 있던 내용인지라 조례 내용은 미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좀 더 내실 있는 자치활동의 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육성, 보호하는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학교 이야기를 해 보자. ‘자치’와 ‘참여’를 병기한 것은 참여권이라는 인권적 개념으로부터 ‘자치’를 이해해 줄 것과, ‘자치’의 개념이 ‘학생 사회’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발전시켜 가는 과정의 총체로서 이해를 요청하기 위함이다.

‘자치’를 고등학생 발달 단계의 적용 과제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치’를 단지 ‘총학생회 관련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치’는 ‘학생 사회’를 발전시켜 가는 제반 참여 활동을 의미한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또는 그 이하의 유치원 단계에서도 각각의 발달에 맞게 가능한 경험을 부여하고 발전시켜야 인간의 내면도 총체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학생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학생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인권과 복지는 기본 전제를 형성한다. 바야흐로 ‘인권’ ‘복지’ ‘문화’ ‘자치’ 등이 삶과 교육의 고도한 생태계를 이룩하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은 미흡하다. 시행착오 과정도 당연히 예상되며, 그 이상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도 교육 활동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만 교육 활동이며, 학교교육인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갈등하고 부딪히는 것 또한 교육 활동이다. 왜 자주성은 강조하면서, 독립적 실천이나, 저항을 통해 주체의 책임 의지가 숙성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가?

‘자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권한을 행사하고 평가하며 책임지는 일련의 정치가 학생 사회 내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자신들과 갈등할 때에 교사의 위치는 더욱 소중하게 조명된다. 입시 위주의 암기 교육으로 학생들을 식물인간으로 만들면서 교사는 자신의 생명력을 어디서 찾겠다는 것인가?

현재의 학교 문화에서 보여 주는 다수 학생들의 냉소와 무기력은 자치와 참여가 없는 학교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나마 무기력보다 냉소가 낫다. 교사에게는 아픔을 주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이제 교사와 학생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집단과 학생 집단이 대립하고 교사는 상생의 공존을 위해 새 역할을 훈련해야 한다. ‘친구들에 대한 비판을 우리가 어떻게 해요? 선생님이 해 주셔야지요’라는 전통적 학생상을 극복해 가는 구체적 기획이 필요하다.

학생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급하다. 학급 단위에서, 동 학년 단위에서, 또는 함께 화장실을 쓰는 같은 층의 학생 단위에서 자치활동을 구상해야 한다. 혹은 교과 수업의 평가 방식과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까지도 학생 대표와 학생 집단의 의사소통을 기획하고 교사와 학생 자치의 협력을 기획할 수 있다. 학교 내 학생인권의 실태와 만족도를 평가하고, 개선 과제를 학생들 스스로 찾아서 발표하는 것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자치 설계의 핵심은 ‘자치의 영역과 지원 내용’ ‘역할과 권한’ ‘대표의 선출’ ‘회의와 학생 언론’ ‘교육’이다. 학생생활규정을 손보는 것이 급한 과제로 부상하겠지만, ‘법치’와 ‘자치’를 근간으로 한 생활교육의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생인권조례는 해빙기의 살얼음판이 될 것이다. 학생 사회의 형성을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지역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일이다. 서울, 경기도의 조례에는 ‘학생참여위원회’가 있고, 광주는 ‘학생의회’를 구상하고 있다. 또 교육청 계획으로 학생 자치 지원 활동이 언급되는 바, 지역의 학생 참여 구조와 학교 단위 학생 자치 구조를 긴밀히 연결할 수 있다면 학생은 학교의 선처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 단위 학생 자치활동을 통해 학교의 개혁을 압박하는 상황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폐쇄된 학교의 옷을 벗기는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면, 학교 개혁의 전략에도 큰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납부금 고지서에 학생회비가 독립 회계로 부과되었다. 전교생이 1,000여 명이 넘는 경우에 학생회 예산으로 연간 1,400만 원 정도의 회계가 집행되었다.

많은 경우 학생생활부에서 학생회장 도장을 만들어 놓고 집행하기도 했지만, 학생 활동이 활발한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직접 집행하고 회계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요란해지면서 학생회 독립 회계는 폐지되고, 학생 자치는 더욱 퇴행의 길을 걸었다. 우리 교육개혁의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등에 업고 학교 현장에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지 않으면 조례는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분명 우리에게 신작로를 열고 있다. 발길은 우리가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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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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