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오늘의 교육을 열며] 학생인권이 부딪혀 온 유리장벽 | 공현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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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을 열며


학생인권이 부딪혀 온 유리장벽

 


공현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하거나 사례를 수집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들어온 사례들을 살펴보면 ‘학생인권이 너무 잘 지켜져서 문제’라는 말이 참 허황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접한 사례들 중 떠오르는 것들은 이렇다. 등굣길에 교장과 선도부가 복장 검사를 하고 벌점을 주는 학교, 교사가 휴대전화를 강제로 뺏으려고 물리력을 행사하고 상처를 입힌 사건, 체벌에 찬성한다고 발언하는 교사, 손바닥 체벌 등이 상습 발생하는 대안학교…….

10년 단위로 길게 보면 학생인권 침해의 빈도나 정도는 분명 감소했다. 그렇더라도 오늘날 일어나는 인권 침해 하나하나가 별것 아닌 게 되진 않는다. 문제는 그런 사례를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모으고 해결을 촉구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체감하기로는 기자 없는 기자 회견, 자료를 배포해도 취재·보도가 전혀 없는 사건이 점점 늘고 있다. 어쩌다 기자 한둘이 관심을 갖고 취재해 가도[ref]예를 들면 이런 좋은 기사가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학교장 재량’이라니… 학생인권은 어디에?”, 〈한겨레〉, 2022년 1월 18일.[/ref], 사회적 공론화라 부를 만큼 보도와 논의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 심각한 문제나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걸까? 짐작하기로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학생인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복장 검사하고 벌점 주거나 휴대전화 좀 압수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요즘은 교권 침해가 더 문제 아니야’ 하는 데에 머물러 있어서인 듯하다. 청소년단체 내에선 더 거시적으로 좌파적인 군소 언론들은 줄어들고 보수 언론은 종편 등으로 영향력이 커진 언론 환경의 변화 때문인가 하는 걱정도 나누곤 한다.

학교 안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 올해 제주에서 축구 대회 단체 응원에 대해 폭력적·강압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던 고등학생은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ref]“제주 고교생 “응원 강제동원은 인권침해… 자퇴합니다””, 〈뉴시스〉, 2024년 5월 1일.[/ref] 또 다른 문제는 학생이 인권을 주장하고 부당함을 호소하고 비판하는 일을 ‘교권 침해’로 규정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자치 활동 침해에 항의했더니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된 사례[ref]“부당한 일에 항의하는 게 ‘교권 침해’라고요?”, 〈프레시안〉, 2023년 3월 26일.[/ref]도 있고, 학생 또는 양육자가 교사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민원을 내는 것이 ‘진상’이고 ‘교권 침해’라며 지탄받기도 한다. 사실 학교의 직접적인 탄압은 약화된 게 맞다. 그렇다고 학교 안의 환경이 딱히 좋아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잘못됐다고 함께 말하고 지지해 줄 학교 안팎의 세력이 더 약화된 것이 싸움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장벽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계속 떠올리는 오래된 기억 하나. 내가 고등학교 재학 중 두발자유운동을 막 시작했을 때, 가깝게 지내던 교사(평소에 진보·개혁적 관점의 책을 권하곤 했고 자리에 격월간 《민들레》가 주르륵 꽂혀 있었는데)는 “두발자유화 같은 사소한 데 집착하지 마라.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서는 입시 문제 같은 게 정말 중요한 거라고 했다.

두발자유를 비롯해 청소년인권 이슈가 계속 맞닥뜨린 장벽은 바로 그런 말들이었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소한 문제다.’ 물론 운동을 하면서 더 많이 부딪히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고 학생들을 평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데 강력 반대하는 이들이다. 성소수자와 문제 학생을 학교에서 내쫓으라고 외치는 단체들이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그 이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고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무관심과 유예로 일관하는 책임자들을 비롯한 사회 일반의 태도였다. 이는 내가 만났던 고교 교사의 태도였고, 오랫동안 교육부와 교육청의 태도이기도 했으며, 학생인권에 별 관심이 없는 언론과 사회의 태도이기도 했다.

학생인권 문제가 사소한 일이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이런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학생인권 침해는 ‘일부 학교, 교사의 일탈이나 이례적 문제’이고, ‘의식만 바꾸면 해결될 간단한 문제’라는 식의 관점이다. 이처럼 문제를 축소해서 보는 것은 학생인권 보장이 지지부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학생인권 실현을 위해서는 학교가 굴러가는 방식이나 공동체의 규칙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민주적 구조와 대안적 문화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시설과 인력, 제도와 환경이 보강되고 개혁돼야 한다. 그러나 학생인권운동으로 변화를 추동하는 도중에도 이런 폭넓은 사회적·정치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학칙에서 몇 줄만 고치면, 잘못한 교사를 퇴출하기만 하면 곧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간주되었다. 두발 규제나 체벌의 문제에서도, 스쿨 미투 사건에서도 그런 식이었고, 특히 교육청의 접근법이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 문제는 정부에 의해서나 정치의 영역에서 주요한 과제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광주, 서울, 전북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소수자 혐오·차별을 선동하는 단체들과 충돌이 생길 때에나 잠시 조명을 받으면서, 마치 그러한 갈등이 학생인권조례의 핵심 쟁점인 것처럼 비춰졌다.

 

외로운 학생인권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됐을 때 나는 수원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이었어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아서 직접 홍보물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하기도 했다. 체벌, 벌점제, 두발 단속 등의 인권 침해 제보를 받아 대응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만들어진 ‘경기 학생인권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라는 연대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연대체는 2013년쯤부터 잘 돌아가지 않았다. 회의를 하면 개인 자격의 참가자를 포함해 3~4명 올까 말까였다. 어느 날 매주 열던 수원역 앞 촛불 집회의 뒤풀이 자리에서 교육 분야 단체 활동가에게 ‘왜 연대체 회의에 안 나오시냐’고 물었다. 그 활동가는 이렇게 답했다. “너무 바빠서 못 챙기네요. 그런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서 이제 학생인권은 교육청이랑 김상곤 교육감이 잘해 주는 거 아닌가요? 꼭 우리가 뭘 해야 하나?”

물론 시민사회단체들은 항상 일손이 부족하고 할 일이 너무 많으며, 비서울 지역 단체들의 사정은 더 안 좋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어떤 의제는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역 단체들 중 학생인권 문제를 우선순위로 두는 단체가 거의 없다는 것은 단순히 각 단체의 선택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 게다가 교육 분야 단체이고 학생인권 연대체에 이름도 올리고 있는 곳마저 ‘교육청이 잘할 테니……’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하다. 다른 단체들도 아마 그 활동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 아니었을까. 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이슈화되자 힘을 보탰지만, 제정 이후에는 진보 교육감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손을 뗀 것이다.

전교조가 학생인권 의제에 소극적인 것도 지역 사회 운동에서 학생인권이 고립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나마 안정적인 재정과 인력이 있기 때문에 지역 교육운동에서 전교조 지부·지회의 영향력은 아주 큰 편이다. 물론 전교조 안에는 학생인권 문제에 높은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운동 주체들도 많았지만, 동시에 교사들이 불편해한다면서 학생인권운동에 협조하지 않는 지회·지부도 적지 않았다.

 

더 나아가지 못했기에 퇴보한

 

2024년 4월,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재의에서까지 가결됐다. 4월 말에는 서울시의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됐고, 재의 절차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에선 이미 ‘교육인권조례’라는 제도로 학생인권조례의 실효성을 반감시켰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고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여러 지자체의 다수 의석을 점하면서 예견됐던 바다. 학생인권조례 등 소수자 인권을 후퇴시킬 것이 명백한 정치 세력이 집권하고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해 준 유권자들과 제도권 정치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뒤로 줄곧,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2010년 이후로 더 분명하게 느꼈던 ‘유리 장벽’을 떠올린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많은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대다수는 평소에는 학생인권 문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언론이든, 정당이든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퇴보’에 호들갑을 떨지만, 나는 주목해야 할 것은 퇴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2013년까지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나서, 우리 사회는 이를 발판 삼아 더 많은 변화로 나아가야 했다. 학생인권이 학교와 사회의 상식이자 원칙으로 뿌리내리게 만들면서 이를 둘러싼 개혁과 변화를 논의해야만 했다. 체벌을 보다 완전하고 확실하게 금지하고, 학생인권이 지역과 학교에 무관하게 보장되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했다. 학생들의 자치 활동과 참여를 활성화하여 학교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차별금지법 등으로 차별 없는 사회와 교육에 대한 합의가 진전돼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하며 관심을 두지 않고 유예한 결과가 결국엔 학생인권조례 폐지·축소 위기를 초래했다. 2020년 충남과 제주까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잠시 기대감도 가져 봤지만 이미 너무 늦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조례를 지켜서 퇴보를 막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말하겠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고 악을 쓰는 것만큼이나 ‘학생인권, 이 정도면 충분치 않냐’,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진보 교육감이 해 주지 않겠냐’ 하던 말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겠다. 인권과 교육이 퇴보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동안 더 나아가려고, 변화하려고 하지 않고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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