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특집] 우리가 아는 돌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 | 김중미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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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우리가 아는 돌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

- 기차길옆작은학교를 중심으로 본 돌봄의 목적

 

김중미

mansuk99@hanmail.net

기찻길옆작은학교




신입생 모집

 

어린이날을 앞두고 전국의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닫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저출생 심화로 돌봄 대상 아동이 줄어드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거기에 늘봄학교까지 시범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저소득층 아동 돌봄을 담당해 왔던 지역아동센터가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2024년 하반기부터 전면 시행된다는 늘봄학교 정책에는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다함께돌봄센터, 진로체험기관, 민간 기업과 지역 대학의 우수한 인적 물적 인프라, 한국과학창의재단, 체육 관련 단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역 문화재단, 박물관, 도서관, 과학관까지 활용 또는 협력하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이상이 들어 있다. 그러나 전면 시행이 몇 달 남지 않은 현재까지 늘봄학교의 정확한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마다, 교육지원청마다, 각 시·도교육청마다 늘봄학교에 대한 입장과 이해가 다르다. 교사에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겠다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늘봄학교가 시행된 학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고 한다. 공간과 인력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데가 대다수인 탓이다.

우리 공부방 역시 올해 신입생 모집을 고민할 지경에 이르렀다. 2024년 새 학기를 앞두고 만석동 공부방의 초등학생이 12명으로 줄었다. 4명이 중학생이 되어 중등부로 올라갔고, 2명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 3월이 되도록 예년과 달리 초등학교 신입생 문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늘봄학교의 영향도 있겠지만 지역 재개발과 저출생 등으로 인근 초등학교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인천의 만석동, 화수동은 일제 강점기 때 병참 기지가 있던 공장 지대였다. 한국 전쟁 후 피란민들이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기숙사 건물, 관리자 숙소에 들어가거나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농민들이 모여들었다. 1990년
대 말부터 주거 환경 개선 사업으로 오래된 주택들이 헐리고 다세대 주택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LH 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도 들어섰다. 현재 만석동과 화수동은 오래된 주택과 다세대 주택, 아파트가 공존하는 인천 동구의 대표적인 서민 지역이다. 여전히 하청 공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 건축 노동자 등의 비율이 높고, 이주배경을 가진 주민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주변의 큰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하청 공장들도 사라지면서 예전처럼 일자리가 넉넉지 않다. 또 화수·화평 지역에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예전보다 주민이 많이 줄었다. 그러니 공부방을 이용할 아이들도 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학생 모집 홍보지를 돌려 보기로 했다. 공부방 바로 앞에 있는 LH 아파트 단지와 인근 아파트 단지의 광고판에도 이용료를 내고 홍보지를 붙였다. 주말을 이용해 만석동과 화수동 주변에 홍보지를 돌리는데 아이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변두리인 만큼 고령화 비율이 높고, 재개발이 확정된 곳의 다세대 주택에도 빈집이 많았다. 신입생 모집 홍보지를 돌린다는 걸 들은 중학교 1학년 친구들은 공부방에 오면 초등부 신입생이 왔는지 수시로 물었다. 그 친구들은 지난
2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큰 걱정을 했다.

“우리 졸업하면 4학년 애들이 3학년, 2학년을 잘 데리고 놀지 모르겠어요.”

“기역이가 전학 가서 6학년에 남학생만 둘인데, 니은이랑, 디귿이가 잘할까요?”

“리을이랑 시옷이는 잘할 텐데 5학년이 이응이 혼자잖아.”

“맞아, 이응이는 오히려 다른 애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미음이가 니은이 말을 안 들을 거야. 니은이가 좀 단호해야 하는데, 지금 6학년이 너무 착해요.”

“이모 큰일났네요, 초등부.”

6학년 2명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모, 6학년에 여학생 1명만이라도 오면 좋겠어요. 공부방이 너무 썰렁하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아이들의 걱정에 홍보를 시작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원조차 다닐 수 없었던 아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조손 가정, 이주 가정을 비롯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위기 가정들이 적지 않았다. 1학년 1명, 2학년 1명, 3학년 3명, 4학년 1명, 6학년 1명이 늘었다. 늘봄학교 때문에 신입생이 없을 줄 알았던 1학년 친구까지 들어와서 아이들이 신이 났다.

 


‘어린이’는 ‘돌봄 대상자’가 아니다

 

공부방에 오래 다닌 아이들은 공부방만의 약속에 익숙하다. 귓속말하지 않기, 간식 가져오지 않기, 놀 때 다 같이 놀기, 욕하지 않기, 스마트폰 꺼내지 않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기, 마음 나누기, 느린 친구들을 기다려 주기, 양보하기, 다툼이 일어나면 함께 대화로 해결하기 등. 물론 수시로 까먹고 어겨 서로서로 다시 확인하는 것이 공부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새로운 아이들이 오면 이모·삼촌들은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 특성을 분석하며 아이가 가진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살핀다. 신입생을 받기 전 부모 상담을 반드시 하지만, 첫 만남에서 가정 환경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어 몇 가지 정보와 함께 아이들의 행동과 언어를 통해 살필 수밖에 없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 관계에 어려움은 없는지, 한글을 익혔는지, 의사소통을 비롯한 언어 이해력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정서적인 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한다. 아이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아이에게 있는 어려움을 돕기 위해 주보호자와 통화하고 상담도 해야 한다. 때로는 학교 담임 교사, 학교복지사, 돌봄 교실과 상의해서 교육지원청 소속 위센터나 지역의 아동청소년상담센터에 검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또 아이나 보호자를 지역의 다문화센터, 장애인활동지원센터와 연결하도록 도와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교와는 다른 공부방의 공동체 수업 방식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공부방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 주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오르고, 미술 실력이 늘고, 노래 실력이 늘고, 운동 실력이 늘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과 재능을 깨닫는 것은 그저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 모든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 돕고, 나누고, 함께 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각자의 존재감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놀이와 문화·예술 활동이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자도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야 하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재미있게 놀려면 원하지 않더라도 술래를 해야 하고, 지고 이기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도 배워 가야 한다. 놀다 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과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타자를 이해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타자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사과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그것이 아이들이 모든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를 통해 배우게 되는 덕목이고 지혜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가정과 학교, 지역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들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안다. 공부방에 가면 이모·삼촌들이 언제든 반갑게 맞아 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애써 준다는 것을 안다. 오래전 아이들이 골목에서 자라고, 이웃들의 보살핌을 받았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보호자와 함께 있을 시간이 없고, 또래와 어울려 놀 시간이 없다.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한 갈등 해결 능력의 부족으로 학교에서 생기는 작은 다툼은 학교폭력이 된다. 돌봄은 어른들이 없는 시간에 아이들이 단지 안전하게 어딘가에 있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돌봄의 과정은 사회화 과정과 일치한다. 그런데 지금 국가에서 한다는 돌봄에는 그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2020년에 돌봄 교실을 교육청이 맡아야 할지, 지자체가 맡아야 할지로 논쟁이 있었다. 돌봄 교실과 방과후학교가 가진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학교공동체 안에서 계속 갈등을 일으킨 까닭은 정책이 장기적인 교육적 비전에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정권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급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돌봄 전담사의 노동권, 학부모들의 시민권, 교사들의 인권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돌봄 교실로 인한 갈등을 보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돌봄과 교육이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돌봄과 교육을 애써 구분하는 까닭은 돌봄이 전문적이지 않다는 편견 때문이다. 유아교육, 그리고 초등교육이 돌봄과 어떻게 분리될 수 있을까? 그 모든 논쟁에 당사자인 어린이가 없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저출생 대책으로 나온 늘봄학교에도 어린이는 없다. 어린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린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돌봄과 지원, 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은 어린이들이 행복해지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돌봄이 그렇지만 아동 돌봄은 특히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돌봄 안에서 교육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돌봄 교실이 그랬듯이 늘봄학교도 하향식으로 내리꽂은 정책이다. 늘봄학교의 목적은 “정규 교육과정을 보완하고 미래 신수요에 대응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미래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 육성”과 “학생·학부모 수요를 반영한 소규모, 수준별 강좌를 개설하여 맞춤형 학생 성장 지원 및 과열된 사교육 수요 해소”이다. 미래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 육성과 사교육 수요 해소라는 거창한 목표를 이루려고 만든 늘봄학교 정책은, 그동안 공적 영역에서 혹은 시민단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 온 기관들을 끌어다 짜깁기를 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늘봄학교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늘봄 전담사, 돌봄 전담사, 초등학교 교사들을 여럿 만났지만, 그 누구도 늘봄학교가 어떻게 운영될지 선명하게 알고 있지 않았다. 어디에도 돌봄의 주체인 ‘어린이’가 없었다.

 


돌봄은 존중과 사랑이다

 

어린이날에 90여 명 가까이 되는 공부방 식구들이 공간 산문(옛 강화공부방이자 강화집)에 모였다. 신입생들은 어린이날 행사에는 처음이지만, 2주 전에 농촌 체험을 와서 볍씨를 뿌리고, 꽃나무를 심고, 달래를 캐 본 덕에 공간에는 익숙했다. 그런데 신입생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고등부와 청년부, 그리고 중고등부 담당 이모·삼촌들이 생각보다 많아 어리둥절해했다. 6학년이지만 공부방에서는 신입생인 한 친구는 청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방에 다니다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데 아직도 공부방에 다녀요?”

“아니, 이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방 행사에 참여하거나 중고등부를 가르치기도 하지. 비읍아, 너도 나중에 이모·삼촌이 될 수 있어.”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 싶어요.”

간식을 먹고 초등부는 자연과 좀 더 친해지도록 공간 산문 주변의 풀, 꽃, 나뭇잎, 곤충과 함께 노는 자연 놀이를 하고, 중고등부는 청년들과 함께 피구와 발야구를 했다. 점심을 다 같이 먹고 양도초등학교에 모여 작은 운동회를 열었다. 운동회를 진행하고 간식을 준비하는 이모·삼촌들을 빼고, 모두 여섯 모둠으로 나눠 긴줄넘기, 줄다리기, 공나르기, 물풍선 터뜨리기, 물 담긴 종이컵 나르기, 밀가루 안에서 젤리 찾기, 신발 던지기 등을 했다. 모든 놀이가 단체 놀이라서 나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 없고, 져도 내 탓이 아니다. 경쟁에 익숙한 신입생들은 처음에는 지고 이기는 것에 예민하지만 점점 결과에 상관없이 놀이 자체를 즐기게 된다.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다시 운동장으로 나가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생 삼촌까지 축구를 한다.

작은 운동회의 피날레는 일곱 살부터 청년들까지 다 같이 하는 이어달리기이다. 첫 주자는 가장 어린 아이이고, 장애가 있거나 아파서 잘 뛰지 못하는 친구들도 청백 팀에 골고루 들어가 뛴다.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들은 항상 고등부와 대학생이다. 아이들은 팀을 대표해 전력 질주하는 마지막 주자를 목청 높여 응원한다. 청백 중 누가 우승할지 마음을 졸이지만,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미리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해 와서 모두 즐거워지는 법을 몸에 익혔을 뿐이다. 이어달리기가 끝나고 간식까지 먹고 나서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놀기 시작한다. 누군가 혼자 우두커니 있으면 동생이든, 친구들, 언니든, 형이든 곁에 가서 말을 걸고 장난을 친다. 그러면 쭈뼛거리던 아이도 금세 환하게 웃는다. 대학생들은 입시나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고등부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고등학생이 돼서 첫 시험을 망친 고등부 신입생들을 위로한다.

공부방 어린이날에는 좋은 음식, 비싼 선물 따위는 없다. 이모·삼촌들이 마련한 선물 주머니에는 성탄절과 다름없이 과자와 양말 몇 켤레가 들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얼굴이 청명한 날씨만큼 밝고 맑다. 경쟁에서 이기지 않아도 행복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 돌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경험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하루 종일 놀고도 지친 기색이 없는 공부방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좋은 선물이 아니라 존중받고 사랑받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맞아 ‘2024년 어린이의 삶과 또래 놀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교 후 친구들과 노는 장소를 물었더니, ‘놀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38.3%에 달했다. 도시 지역은 ‘동네 놀이터’(40.9%)에서, 농어촌 지역은 ‘학교 운동장’(43.1%)에서 주로 놀았다. 또 방과 후 또래 친구와 어울려 노는 빈도를 묻자, 일주일에 ‘1~2일 정도’(32.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거의 없음’(27.9%), ‘3~4일’(22,7%), ‘5~6일’(9.6%), ‘매일’(7.7%)이 뒤를 이었다. 10명 중 6명의 어린이가 거의 놀지 않거나 1~2일만 놀고 있었다.

공부방에서는 날마다 논다.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서 놀이터가 없지만, 공부방 앞에서 다방구를 하고, 야구 놀이를 하고, 얼음땡을 하고, 소꿉놀이를 하며 논다. 그러다 옆집 아저씨한테 시끄럽다고 혼이 나 풀이 죽기도 하지만 곧 잊고 논다. 아이들은 놀면서 또래의 규칙을 배우고, 상호작용을 배우고, 사회성을 배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놀이다. 돌봄은 아이들이 익숙한 곳에서 또래들과 자신들을 돌봐 줄 믿을 만하고 자신을 잘 아는 연장자들이 있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놀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이 어디서 사회성을 배우고, 타자와 관계 맺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 뒤에는 갈등을 또래끼리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한국 사회는 불평등하다. 그 불평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주거 환경이다. 특히 만석동이나 화수동처럼 빈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곳에서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부방에서는 아이들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내 친구들은 어디에 살고, 그 집에는 어떤 추억이 깃들었는지’를 알아 가는 프로그램도 한다. 팬데믹 전후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책으로 엮어 낸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공부방 주변에 있는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구조해 돌보는 일도 함께 한다. 빈집과 빈 공장이 많은 동네에는 버려진 동물들이 많다. 유기 동물이 점점 많아지는 까닭을 함께 공부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동물들을 구조하고 돌보면서 자신이 돌봄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존엄을 외쳐요”

 

팬데믹 3년 동안 30년 동안 해 왔던 정기 공연을 하지 못했다. 앤데믹이 된 뒤에도 달라진 공연장 예약 환경, 경제적인 어려움, 공동체의 변화 등으로 예전처럼 공부방 전체가 모여 반년 가까이 공연을 준비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앤데믹이 되자 아이들이 먼저 꿈틀거렸다.

“이모·삼촌 인형극 안 해요?”

2019년 초등부 아이들이 춘천아마추어인형극제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저학년이던 아이들이 다시 춘천아마추어인형극제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초등부 담당자들 위주로 쉽고 간단하게 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요구가 점점 커졌다. 형·누나가 했던 것처럼 관절 인형으로 하고 싶고, 소품도 될 수 있으면 예전 같은 수준이길 원했다. 아이들은 인형극 안에 팬데믹을 겪은 자신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를 담고 싶어 했다. 아이들의 요구에 초등부 담당자와 상근자들은 대본을 계속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인형극으로 2022년에 다시 대상을 받았다. 아이들은 그 상금을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보내자고 했다.

공부방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닥친 재개발 문제, 보호자들의 노동 문제, 팬데믹의 원인, 기후 위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 배우고 토론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자각하든 못 하든 세계 시민으로 자란다.

2023년에도 아이들은 당연히 인형극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회의하는데 3학년과 5학년 친구가 2022년 성탄절에 함께 읽은 그림책 《존엄을 외쳐요》를 주제로 인형극을 만들자고 했다. 《존엄을 외쳐요》는 〈세계 인권 선언〉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한 그림책이다. 이모·삼촌들과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느린학습자 이야기, 변호사가 된 시각장애인 진영 삼촌의 이야기와 자신들의 일상을 담았다. 그리고 다시 춘천아마추어인형극제에 나갔다.

인형극 경연 대회에서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무대 조명이 꺼졌는데, 마이크 전원이 내려가지 않았는지 스피커로 무대 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인준아. 대사 빼먹은 거 티 안 났어. 잘했어. 괜찮아.”

“맞아, 잘했어. 괜찮아.”

“나 진짜 떨렸어.”

3학년 인준이와 하준이, 6학년 의령이의 대화였다. 관객석에 있던 나는 순간 뭉클했다. 아이들은 상을 바라겠지만 상을 받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3학년 아이들이 물었다.

“큰이모, 우리가 세계 최초죠?”

“뭐가?”

“있잖아요. 춘천인형극제에서 연속으로 대상 받는 거요. 그거 세계 최초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웃음을 참고 있는데 다행히 5학년 아이가 말했다.

“세계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일걸?”

그제야 나도 대답했다.

“맞아. 형 말이 맞아.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일 거야.”

인형극이 끝나고 상범 삼촌이 6학년 아이들을 인터뷰해 영상을 만들었다.

 

“그때 지헌이랑 만약 상을 타게 되면은 무슨 말을 할까 얘기했거든요. ‘내가 첫 막 때 지팡이를 떨어트려서 상을 못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극단한테 미안했다.’ 이 말을 꼭 하려 했는데 대상을 받아 버린 거예요. 그래서 시상식 때 그 말을 까먹었어요. 시간을 되돌려서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어린애들은 힘이 약하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편견을 깨부수고 우리가 같이 대본 만들고, 인형 만들고, 조작 합 맞추고, 성우 합 맞추고 그런 게 다른 극단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는 인형극을 통해 존엄을 외치잖아요.”

 

“예를 들어 이걸 못하면 다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잘하는 걸 찾아 주고, 또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성우를 못하면 조작으로 가서 잘하는 게 있는지 보고, 또 아니면 소품으로 가서 소품을 더 잘하는지 보잖아요. 더 못하는 게 아니라 더 잘하는 걸 찾는 것 같아서 좋아요.”

 

“공부방 인형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신만의 부담이 아니라 모두의 부담이라는 게 가장 큰 거 같아요. 그냥 하다 보면 친구들, 동생들, 형들이랑 다 같이 좀 더 친해지고. 그래서 그냥 인형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더 친해지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곧 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인형극을 하면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기쁨이, 그리고 함께 상을 받으며 느꼈던 공동체가 몸과 마음에 새겨져 쌓일 것이다. 아니 쌓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벅찬 감동으로 행복했던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등부 아이들은 2023년에 받은 상금으로 12월에 동두천에 있는 아프리카 난민 공동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존엄을 외쳐요〉 인형극을 공연했다. 기찻길 아이들과 동두천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좀 쭈뼛거리다가 금세 친구가 되었다. 겨울 방학 때, 다 함께 공간 산문에서
1박 2일을 하자고 약속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은 난민센터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아이들이 만나 하룻밤 자고 썰매를 타고 노는 것조차 어려웠던 데는 우리 사회가 난민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같은 또래의 어린이들이 만나 노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미래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가 될 미래를 위해 지금 놀지 않고, 외로워도 참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함께 성장하는 돌봄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최근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7,0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초등학생들은 행복의 조건 중 ‘화목한 가족’(39%)을 첫 번째로 꼽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가족과의 대화 시간은 하루 “1~2시간(26%)이나 1시간 미만(21%)”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넓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학교에서 13시간씩 돌봐 준단다. 아침·저녁 식사도 간단하게 제공한단다. 아이들이 주보호자들과 만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진다는 말은 아이들을 집이 아닌 학교에서 13시간까지 돌보라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일이 되어 버린 돌봄 노동을 여자와 남자가 똑같이 나누고, 임금 노동 시간을 줄여 보호자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볼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지역 안에 공공 공간이 많아 아이들이 자유롭게 운동하고, 어울려 놀고, 음악과 춤을 즐기고, 가족과 함께 그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저출생을 해결하기 위해, 아동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은 노동 정책, 주거 문제, 경쟁 위주의 대학 입시이다.

 

적절한 가격의 집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공 문화공간, 질 높은 공교육, 직업 훈련, 대학교육 그리고 보건 의료 제공을 보장한다. 돌보는 국가는 돌봄 인프라와 일상적인 돌봄이 수많은 종류의 기술과 숙련된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인식한다. (……) 우리 시대의 많은 문제점이 신자유주의 원리, 긱 경제, 인구의 99%가 느끼는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가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ref]더 케어 콜렉티브, 정소영 옮김(2021),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120~121쪽.[/ref]

 

올해 들어 초등학교마다 교실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협력 교사의 도움으로도 통제가 안 되는 교실에서 교사들은 성대 결절 증상이 올 정도로 고군분투한다. 작은 다툼도 학교폭력이 되고, 학부모들은 급식 문제, 방과후 문제, 친구 문제 등으로 수시로 민원을 올린다. 정서 장애, 행동 장애, 지적 장애 등의 진단이 필요한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교육 예산이 줄어들어 위센터에 아이들의 검사를 맡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초 학력 예산도 줄고, 협력 교사 수도 줄었다. 무너진 교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에게 온갖 행정 업무까지 과중된다. 그런 학교에서 아이들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온종일 돌봐 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해질까.

아이들은 경쟁에 이겨 부자가 되고, 미래 역량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 AI와 코딩 전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타인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늘봄학교”라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계 최고가 아니라 아이들이 모든 순간에 우선되고, 존중받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기조를 바꾸지 않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조차 없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마저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머지않아 어른이 될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사회가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공화가 깨진 사회일까 봐 두렵다. 그래서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 대한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진다.

두렵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되는 보호자와 아이 문제로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애쓰고, 여러 센터와 소통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몸짓에서 아이가 말로 하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 욕구를 읽으려 애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은 그저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생명을 가진 역동적인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임을 잊지 않고, 어른이자 이모·삼촌인 우리가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성장의 모든 순간에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방 안에서도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흔들릴 것이다. 그때마다 곁에 있는 어른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고, 실천하는 돌봄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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