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 4.16 10주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재난의 기억 공간에서 무지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권은비
kwoneunbida@gmail.com
미술가,
기억 공간 연구자
우월한 고통, 우월한 슬픔, 우월한 애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사회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의지 표명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재난을 어떻게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는 올해로 1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재난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겪었음에도 제대로 된 안전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 재난이 반복되는 위험 사회에서 재난은 희생자와 당사자들에게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사회적 재난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통과 슬픔의 상처를 남긴다.
다시 첫 문장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고통, 슬픔, 애도에 있어서 우월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고통, 슬픔, 애도에 대해 잘 알고, 또 고통과 슬픔에 대한 애도를 잘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고통, 슬픔, 애도를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 《무지한 스승》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무지한 스승》에는 한 선생님이 등장한다. 이름은 조세프 자코토. 그는 1815년 프랑스 왕가로 인해 당시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벨기에의 루벤으로 망명한다. 자코토는 프랑스어 교사로 학교에 들어간다. 그가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은 프랑스어에 대해 무지했다. 반대로 자코토 역시 학생들이 사용하는 네덜란드어에 무지했다.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학생의 만남이었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교사도 학생도 서로의 언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고심 끝에 자코토는 학생과 자신을 연결해 줄 책을 찾는다. 마침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이 프랑스-네덜란드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자코토와 학생들은 겨우 책 1장의 절반을 읽고 또 읽기를 되풀이했다. 자코토와 학생들은 더듬거리며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책의 나머지 내용은 각자 알아서 읽을 수 있는 만큼만 보라고 했다. 얼마 후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읽은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프랑스어로 적어 보라고 요청했다. 자코토는 학생들의 결과물이 부정확한 어구로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자코토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프랑스어로 자신의 생각을 써냈다.
랑시에르는 무려 19세기에 있었던 자코토의 일화를 발굴하며,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교육이 갖고 있던 신화를 무너뜨리는 ‘무지한 스승’의 혁명적 사례라고 소개한다. 랑시에르에게 전통적 교육의 신화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과 미성숙, 유능과 무능, 천재와 바보로 학생들을 구분하는 ‘우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랑시에르는 바보를 만드는 스승은 유식하고 식견이 있으며 유능한 스승이라고 역설한다. 스승이 우월하고 유능할수록 학생들의 더듬거리는 과정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없고, 권위 있고 효율적이고 명료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 자체를 유능하고 우월한 스승일수록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랑시에르가 자코토의 사례를 통해 《무지한 스승》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스승과 학생 사이의 ‘지능의 평등함’이었다. 나아가 그는 ‘우리는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승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우월하거나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과 자신의 지능이 같다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무지한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애도에는 정답이 없다. 따라서 우월하고 훌륭한 애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스승과 학생 그리고 우리는 아직 참사를 이루고 있는 고통과 슬픔 그 뒤에 따르는 애도에 대해 무지하다. 어떻게 해야 애도를 잘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애도는 고통과 슬픔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대형 참사들이 우리에게 알려 준 진실이다.
재난의 고통과 슬픔은 늘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재난이 빈번한 사회임에도 그 고통과 슬픔은 늘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 재난의 고통과 슬픔 앞에 우월한 스승과 우월한 학생은 없다. 따라서 참사에 대한 고통과 슬픔 그리고 애도 앞에 우리 모두의 능력은 평등하다. 그러나 자코토가 교육의 방법으로 번역서를 찾은 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애도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랑시에르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기억의 공간, 연대의 장소
‘기억하다’라는 말은 대상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 즉, 동사다. 나아가 ‘기억하다’는 수행 동사(performative verb)다. 말을 하는 동시에 그 의지와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불완전하고 지워지기 쉽다. 따라서 기억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수행해야 한다. 중단 없는 기억 행위는 참사를 잊지 않고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선행해야 할 조건이다. 이태원 참사의 한 유가족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유가족들의 운동과 참사 특별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희생자들이 아니라 바로 지금과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개개인의 기억과 함께 참사에 대한 집단 기억 형성은 참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사회 구성원이 만들어 가야 할 의무이자 과제이다. 사회적 재난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핵심이다.’[ref]프리모 레비, 김영환 옮김(201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47쪽.[/ref] 물론 재난와 전쟁의 학살을 동일한 선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둘은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최악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시는 그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집단 기억은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통해 지속될 수 있다.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실행되어 왔다. 앞서 말했듯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물리적으로 재난에 대한 기억과 애도 과정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 바로 기억 공간이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역사 속 신화를 기억하는 공간은 역사적 반성과 슬픔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점차 변모해 왔다. 독일 전역에는 전쟁 피해자와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한 수많은 기억 공간들이 존재한다. 독일의 학교는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이 학년별로 채택되어 있다. 독일 학생들은 역사교육과 인권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전쟁 범죄와 파시즘의 야만에 대해 배운다. 역사적 ‘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야말로 또 다른 차별과 혐오, 왜곡 시도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억 공간들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어서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생활 그 자체가 되어 있다. 누구나 평등하게 기억 공간을 통해 과거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기억 공간은 언어를 넘어 다양한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운다. 처음 베를린 장벽 기억 공간을 방문했을 때, 나는 무지한 학생과 다름없었다. 당시 나는 독일의 분단 역사를 책으로만 접해 이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심지어 독일어도 읽을 줄 몰랐던 나는 베를린 장벽 기억 공간 앞에 선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의 발밑에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생을 마감한 익명의 이름과 그가 장벽을 넘은 날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던 바로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갈망하며 목숨을 걸고 장벽을 넘으려던 곳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멀게 느꼈던 분단의 역사가 순간 감각적으로 나에게 체감되었다. 이렇듯 기억 공간은 국적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 외국인에게까지 역사책이 전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을 건다. 무지한 학생이었던 나에게 베를린의 기억 공간들은 무지한 스승과도 같았다. 결국 그때의 경험은 내가 기억 공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다시 베를린으로 떠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반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억 공간
재난은 일상생활 속에서 피해자들에게 전쟁과도 같은 상흔을 남긴다. 전쟁에 대한 반성이 담긴 기억 공간뿐만 아니라 재난의 기억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어 왔다. 영국의 탈리도마이드 메모리얼과 미국의 9.11 메모리얼, 독일의 에세대 기억 장소 등은 모두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이자 장소이다. 이러한 기억 공간들은 무지한 스승으로서 나와 같은 무지한 학생에게 여러 모양의 말을 건넨다.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기억,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전해지는 기억을 담아내고, 기억을 행위로 수행하는 곳인 기억 공간은 재난의 상처를 직시하게끔 한다. 이렇듯 재난의 말과 이미지를 보고 읽는 행위는 고통을 수반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재난이 아님에도 재난의 말과 이미지는 우리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정신없고 바쁜 일상이 필수 조건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재난의 말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기억 공간에서만큼은 잠깐의 ‘멈춤’이 가능하다. ‘멈춤’은 빠르고 성공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사회를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직시하게 한다. 동시에 기억 공간은 집단 기억을 재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 공간 중 하나인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방문할 때마다 눈물을 참아 내며 교실을 둘러보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난다. 애써 참으려고 해도 흘러나오는 눈물로 가득 찬 눈동자, 또는 잔뜩 웅크린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한 감각과 경험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또 다른 집단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 된다. 슬픔, 분노, 고통, 그리고 죄책감은 참사를 기억할 때 거부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올해 나는 4·16재단으로부터 ‘4.16 꿈숲학교’ 안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추모하는 새로운 기억 작업을 해 줄 것을 제안받았다. 4.16 꿈숲학교는 250명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꿈을 기억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나는 이 제안을 받고 다시 단원고 4.16기억교실로 향했다. 교실 안에서 나를 오랫동안 붙잡은 곳은 교실 뒤편의 게시판이었다.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교실 게시판마다 ‘수도권 대학 지도’ 또는 ‘서울 대학 지도’가 붙어 있었다. 이는 단원고 4.16기억교실의 1층 영상에서 보았던 희생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추거나 운동회에서 격정적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250명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4·16재단의 아카이브 자료들과 각종 언론 기사, 세월호 기록집 등을 다시 살펴본 후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자료를 뒤적이며 250명의 아이들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학교에 제출했던 장래 희망을 살펴보며 내심 놀랐다. 많은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사회 통념이나 언론에서 말하는 선망 직업군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예상 외로 많았다. 나는 다시 250명의 희생 학생들의 꿈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제출하는 장래 희망 칸에 쓰는 ‘직업으로서 꿈’이 아니라, 아이들이 되고 싶었던, 혹은 존재 자체로 이미 아이들이 갖고 있었던 ‘진짜 꿈’을 찾아야 했다. 세월호 참사 10년을 통과하는 지금, ‘꿈’이라는 단어가 ‘희망 직업’으로 귀결되는 어른들의 납작한 사고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50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고 다시 반복해서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이나 생존 학생들의 증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자 자료들 속에서 새로운 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귓속말로 늘 사랑한다고 얘기했던 사람’, ‘왕따였던 학생을 도왔던 사람’, ‘사랑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소외된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 등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나는 250명의 꿈이 담긴 250권의 책을 만들기로 했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250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에 오늘을 살아가는 학생들이 희생 학생들을 기억하고 상상하며 또 다른 꿈을 적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4.16 꿈숲학교에는 ‘Dreambook-나의 너에게’라는 이름의 기획으로 250권의 책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책의 맨 앞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느 봄날, 두 아이가 걸으며 이야기한다.
“너, 꿈은 뭐야?”
“…….”
“너는 꿈 없어? 사람들이 늘 묻잖아.”
“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 꿈을 가진 사람도 있어?”
“음…… 나?”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꿔 본 적 있어?”
“응, 나는 매일 꿈을 꿔. 평범한데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무모하지 않은 용기, 그렇지만 너무 흔해서 언제든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흔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듣고 보니 그런 사람,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책은 꿈을 적는 책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밝은 별이 된 단원고등학교 희생 학생 250명의 청소년들은 저마다 어떤 사람이 되는 꿈을 꿨을까요? 평범하고 흔한 용기가 있는 사람,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는 사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요? 이제 여기에 당신의 꿈은 적어 주세요.
지금, 4.16 꿈숲학교에는 250권의 책이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참사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우리는 아직 애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억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머뭇거리고 주저하기보다 참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애도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듯이.
후속 | 4.16 10주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재난의 기억 공간에서 무지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권은비
kwoneunbida@gmail.com
미술가,
기억 공간 연구자
우월한 고통, 우월한 슬픔, 우월한 애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사회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의지 표명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재난을 어떻게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는 올해로 1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재난은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겪었음에도 제대로 된 안전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 재난이 반복되는 위험 사회에서 재난은 희생자와 당사자들에게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사회적 재난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통과 슬픔의 상처를 남긴다.
다시 첫 문장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고통, 슬픔, 애도에 있어서 우월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고통, 슬픔, 애도에 대해 잘 알고, 또 고통과 슬픔에 대한 애도를 잘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고통, 슬픔, 애도를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 《무지한 스승》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무지한 스승》에는 한 선생님이 등장한다. 이름은 조세프 자코토. 그는 1815년 프랑스 왕가로 인해 당시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벨기에의 루벤으로 망명한다. 자코토는 프랑스어 교사로 학교에 들어간다. 그가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은 프랑스어에 대해 무지했다. 반대로 자코토 역시 학생들이 사용하는 네덜란드어에 무지했다.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학생의 만남이었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교사도 학생도 서로의 언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고심 끝에 자코토는 학생과 자신을 연결해 줄 책을 찾는다. 마침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이 프랑스-네덜란드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자코토와 학생들은 겨우 책 1장의 절반을 읽고 또 읽기를 되풀이했다. 자코토와 학생들은 더듬거리며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책의 나머지 내용은 각자 알아서 읽을 수 있는 만큼만 보라고 했다. 얼마 후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읽은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프랑스어로 적어 보라고 요청했다. 자코토는 학생들의 결과물이 부정확한 어구로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자코토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프랑스어로 자신의 생각을 써냈다.
랑시에르는 무려 19세기에 있었던 자코토의 일화를 발굴하며,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교육이 갖고 있던 신화를 무너뜨리는 ‘무지한 스승’의 혁명적 사례라고 소개한다. 랑시에르에게 전통적 교육의 신화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과 미성숙, 유능과 무능, 천재와 바보로 학생들을 구분하는 ‘우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랑시에르는 바보를 만드는 스승은 유식하고 식견이 있으며 유능한 스승이라고 역설한다. 스승이 우월하고 유능할수록 학생들의 더듬거리는 과정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없고, 권위 있고 효율적이고 명료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 자체를 유능하고 우월한 스승일수록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랑시에르가 자코토의 사례를 통해 《무지한 스승》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스승과 학생 사이의 ‘지능의 평등함’이었다. 나아가 그는 ‘우리는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승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우월하거나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과 자신의 지능이 같다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무지한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애도에는 정답이 없다. 따라서 우월하고 훌륭한 애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스승과 학생 그리고 우리는 아직 참사를 이루고 있는 고통과 슬픔 그 뒤에 따르는 애도에 대해 무지하다. 어떻게 해야 애도를 잘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애도는 고통과 슬픔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대형 참사들이 우리에게 알려 준 진실이다.
재난의 고통과 슬픔은 늘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재난이 빈번한 사회임에도 그 고통과 슬픔은 늘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 재난의 고통과 슬픔 앞에 우월한 스승과 우월한 학생은 없다. 따라서 참사에 대한 고통과 슬픔 그리고 애도 앞에 우리 모두의 능력은 평등하다. 그러나 자코토가 교육의 방법으로 번역서를 찾은 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애도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랑시에르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기억의 공간, 연대의 장소
‘기억하다’라는 말은 대상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 즉, 동사다. 나아가 ‘기억하다’는 수행 동사(performative verb)다. 말을 하는 동시에 그 의지와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불완전하고 지워지기 쉽다. 따라서 기억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수행해야 한다. 중단 없는 기억 행위는 참사를 잊지 않고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선행해야 할 조건이다. 이태원 참사의 한 유가족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유가족들의 운동과 참사 특별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희생자들이 아니라 바로 지금과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개개인의 기억과 함께 참사에 대한 집단 기억 형성은 참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사회 구성원이 만들어 가야 할 의무이자 과제이다. 사회적 재난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핵심이다.’[ref]프리모 레비, 김영환 옮김(201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47쪽.[/ref] 물론 재난와 전쟁의 학살을 동일한 선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둘은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최악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시는 그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집단 기억은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통해 지속될 수 있다.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실행되어 왔다. 앞서 말했듯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물리적으로 재난에 대한 기억과 애도 과정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 바로 기억 공간이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역사 속 신화를 기억하는 공간은 역사적 반성과 슬픔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점차 변모해 왔다. 독일 전역에는 전쟁 피해자와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한 수많은 기억 공간들이 존재한다. 독일의 학교는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이 학년별로 채택되어 있다. 독일 학생들은 역사교육과 인권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전쟁 범죄와 파시즘의 야만에 대해 배운다. 역사적 ‘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야말로 또 다른 차별과 혐오, 왜곡 시도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억 공간들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어서 특별한 것이라기보다 생활 그 자체가 되어 있다. 누구나 평등하게 기억 공간을 통해 과거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기억 공간은 언어를 넘어 다양한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운다. 처음 베를린 장벽 기억 공간을 방문했을 때, 나는 무지한 학생과 다름없었다. 당시 나는 독일의 분단 역사를 책으로만 접해 이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심지어 독일어도 읽을 줄 몰랐던 나는 베를린 장벽 기억 공간 앞에 선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의 발밑에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생을 마감한 익명의 이름과 그가 장벽을 넘은 날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던 바로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갈망하며 목숨을 걸고 장벽을 넘으려던 곳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멀게 느꼈던 분단의 역사가 순간 감각적으로 나에게 체감되었다. 이렇듯 기억 공간은 국적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 외국인에게까지 역사책이 전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을 건다. 무지한 학생이었던 나에게 베를린의 기억 공간들은 무지한 스승과도 같았다. 결국 그때의 경험은 내가 기억 공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다시 베를린으로 떠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반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억 공간
재난은 일상생활 속에서 피해자들에게 전쟁과도 같은 상흔을 남긴다. 전쟁에 대한 반성이 담긴 기억 공간뿐만 아니라 재난의 기억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어 왔다. 영국의 탈리도마이드 메모리얼과 미국의 9.11 메모리얼, 독일의 에세대 기억 장소 등은 모두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이자 장소이다. 이러한 기억 공간들은 무지한 스승으로서 나와 같은 무지한 학생에게 여러 모양의 말을 건넨다.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기억,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전해지는 기억을 담아내고, 기억을 행위로 수행하는 곳인 기억 공간은 재난의 상처를 직시하게끔 한다. 이렇듯 재난의 말과 이미지를 보고 읽는 행위는 고통을 수반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재난이 아님에도 재난의 말과 이미지는 우리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정신없고 바쁜 일상이 필수 조건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재난의 말과 이미지로 만들어진 기억 공간에서만큼은 잠깐의 ‘멈춤’이 가능하다. ‘멈춤’은 빠르고 성공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사회를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직시하게 한다. 동시에 기억 공간은 집단 기억을 재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 공간 중 하나인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방문할 때마다 눈물을 참아 내며 교실을 둘러보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난다. 애써 참으려고 해도 흘러나오는 눈물로 가득 찬 눈동자, 또는 잔뜩 웅크린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서로 모르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한 감각과 경험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또 다른 집단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 된다. 슬픔, 분노, 고통, 그리고 죄책감은 참사를 기억할 때 거부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올해 나는 4·16재단으로부터 ‘4.16 꿈숲학교’ 안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추모하는 새로운 기억 작업을 해 줄 것을 제안받았다. 4.16 꿈숲학교는 250명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꿈을 기억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나는 이 제안을 받고 다시 단원고 4.16기억교실로 향했다. 교실 안에서 나를 오랫동안 붙잡은 곳은 교실 뒤편의 게시판이었다.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교실 게시판마다 ‘수도권 대학 지도’ 또는 ‘서울 대학 지도’가 붙어 있었다. 이는 단원고 4.16기억교실의 1층 영상에서 보았던 희생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추거나 운동회에서 격정적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250명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4·16재단의 아카이브 자료들과 각종 언론 기사, 세월호 기록집 등을 다시 살펴본 후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자료를 뒤적이며 250명의 아이들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학교에 제출했던 장래 희망을 살펴보며 내심 놀랐다. 많은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사회 통념이나 언론에서 말하는 선망 직업군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예상 외로 많았다. 나는 다시 250명의 희생 학생들의 꿈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제출하는 장래 희망 칸에 쓰는 ‘직업으로서 꿈’이 아니라, 아이들이 되고 싶었던, 혹은 존재 자체로 이미 아이들이 갖고 있었던 ‘진짜 꿈’을 찾아야 했다. 세월호 참사 10년을 통과하는 지금, ‘꿈’이라는 단어가 ‘희망 직업’으로 귀결되는 어른들의 납작한 사고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50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고 다시 반복해서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이나 생존 학생들의 증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자 자료들 속에서 새로운 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귓속말로 늘 사랑한다고 얘기했던 사람’, ‘왕따였던 학생을 도왔던 사람’, ‘사랑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소외된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 등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나는 250명의 꿈이 담긴 250권의 책을 만들기로 했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250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에 오늘을 살아가는 학생들이 희생 학생들을 기억하고 상상하며 또 다른 꿈을 적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4.16 꿈숲학교에는 ‘Dreambook-나의 너에게’라는 이름의 기획으로 250권의 책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책의 맨 앞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느 봄날, 두 아이가 걸으며 이야기한다.
“너, 꿈은 뭐야?”
“…….”
“너는 꿈 없어? 사람들이 늘 묻잖아.”
“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 꿈을 가진 사람도 있어?”
“음…… 나?”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꿔 본 적 있어?”
“응, 나는 매일 꿈을 꿔. 평범한데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무모하지 않은 용기, 그렇지만 너무 흔해서 언제든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흔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듣고 보니 그런 사람,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책은 꿈을 적는 책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밝은 별이 된 단원고등학교 희생 학생 250명의 청소년들은 저마다 어떤 사람이 되는 꿈을 꿨을까요? 평범하고 흔한 용기가 있는 사람,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는 사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요? 이제 여기에 당신의 꿈은 적어 주세요.
지금, 4.16 꿈숲학교에는 250권의 책이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참사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우리는 아직 애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억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머뭇거리고 주저하기보다 참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애도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