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얼굴
학교 근처에
숯불갈비 식당이 하나 있지
그곳은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돌들이 먼저 와 있었어
석공들은
사람을 얼싸안듯 돌을 껴안더니
웅크린 몸을 지렛대 삼아
한 우주를 번쩍 들어 올리곤 했지
돌 정원이 완성되자
가장 큰 돌 위에는 식당 간판이 세워졌어
마치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몸통처럼
제법 품이 너른 돌에는
글자 한 자 새겨져 있지 않았지
나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어
돌의 여백에 시를 쓰고 싶다고
식당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그러면 사람들이 시만 보고 돌은 안 봐요”
그 뒤론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돌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하지
하마터면 시에 가려
지나칠 뻔한 돌의 얼굴을
결핍
저 고운 빛이 어디서 왔을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곱지 않아서
고울 수 없어서
애쓰는 마음에서 왔다는 것을
나무, 나무들
장인어른 기일에 쓸 제사떡을 사러 나왔다가
신호등에 걸려 잠깐 서 있는데
막 초록 잎이 돋기 시작하는 나무, 나무들
그중 우연하게 눈이 가닿은 한 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저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나일 수도 있다는
그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좀 더 멋져 보이지만
내가 꼭 그 나무일 필요는 없다는
어차피 나무들은 나와 내가 없이
숲이 되어 함께 서 있기도 하거니와
내 곁에 다정하고 아름다운 벗이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가를 생각하면
저 나무, 나무들이 그렇듯이
굳이 나일 필요는 없다는
시작노트
퇴임 후에도 몇 번 그 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돌 위에 식당 간판이 세워진. 그 돌 위에 글자 한 자 새겨져 있지 않은.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혹시 그동안 아이들의 얼굴에 내 시를 새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제자들에게 써 준 생일 시를 모아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생일 시를 써 주려고 했을까? 그것은 초임 교사인 나에게 위협이 되기도 했던 아이들의 거친 무기가 결핍으로 이해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때로는 그 결핍이 상대적인 열등감에서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한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막 초록 잎에 돋기 시작하는 나무, 나무들 // 그중 우연하게 눈이 가닿은 한 나무를 바라보며 / 문득, 저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나일 수도 있다는 / 그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좀 더 멋져 보이지만 / 내가 꼭 그 나무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안준철(jjbird7@hanmail.net) 1954년 전주 출생으로 전남 순천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1992년 제자들에게 써 준 생일 시를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 《생리대 사회학》, 《나무에 기대다》, 《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 산문집으로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등이 있다. 교육문예창작회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에서 산책가로 살고 있다.
돌의 얼굴
학교 근처에
숯불갈비 식당이 하나 있지
그곳은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돌들이 먼저 와 있었어
석공들은
사람을 얼싸안듯 돌을 껴안더니
웅크린 몸을 지렛대 삼아
한 우주를 번쩍 들어 올리곤 했지
돌 정원이 완성되자
가장 큰 돌 위에는 식당 간판이 세워졌어
마치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몸통처럼
제법 품이 너른 돌에는
글자 한 자 새겨져 있지 않았지
나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어
돌의 여백에 시를 쓰고 싶다고
식당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그러면 사람들이 시만 보고 돌은 안 봐요”
그 뒤론
식당 앞을 지날 때마다
돌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하지
하마터면 시에 가려
지나칠 뻔한 돌의 얼굴을
결핍
저 고운 빛이 어디서 왔을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곱지 않아서
고울 수 없어서
애쓰는 마음에서 왔다는 것을
나무, 나무들
장인어른 기일에 쓸 제사떡을 사러 나왔다가
신호등에 걸려 잠깐 서 있는데
막 초록 잎이 돋기 시작하는 나무, 나무들
그중 우연하게 눈이 가닿은 한 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저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나일 수도 있다는
그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좀 더 멋져 보이지만
내가 꼭 그 나무일 필요는 없다는
어차피 나무들은 나와 내가 없이
숲이 되어 함께 서 있기도 하거니와
내 곁에 다정하고 아름다운 벗이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가를 생각하면
저 나무, 나무들이 그렇듯이
굳이 나일 필요는 없다는
시작노트
퇴임 후에도 몇 번 그 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돌 위에 식당 간판이 세워진. 그 돌 위에 글자 한 자 새겨져 있지 않은.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혹시 그동안 아이들의 얼굴에 내 시를 새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제자들에게 써 준 생일 시를 모아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생일 시를 써 주려고 했을까? 그것은 초임 교사인 나에게 위협이 되기도 했던 아이들의 거친 무기가 결핍으로 이해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때로는 그 결핍이 상대적인 열등감에서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한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막 초록 잎에 돋기 시작하는 나무, 나무들 // 그중 우연하게 눈이 가닿은 한 나무를 바라보며 / 문득, 저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나일 수도 있다는 / 그 옆에 서 있는 나무가 좀 더 멋져 보이지만 / 내가 꼭 그 나무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안준철(jjbird7@hanmail.net) 1954년 전주 출생으로 전남 순천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1992년 제자들에게 써 준 생일 시를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 《생리대 사회학》, 《나무에 기대다》, 《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 산문집으로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등이 있다. 교육문예창작회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에서 산책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