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뜻밖에서 | 서한영교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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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뜻밖에서

- 정상과 보편성에 정박되지 않은 뜻 밖에서의 배움

 


서한영교

poetrypunx@gmail.com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뜻밖의 배움이 쳐들어올 때가 있다.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뜻밖의 순간. 뜻의 바깥으로 뜻을 내모는 배움. 뜻의 바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배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나는 노들야학에서 뜻-밖을 배웠다. 그날도 뜻밖이었다.

국어 교과 참관 수업이 끝나고, 터질 듯 웅성거리는 질문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쏟아 내던 중이었다. “학생분들은 평균적으로 얼마나 한글을 읽을 수 있나요?” 누군가는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읽지 못하는 듯해서였다. “평균은 없어요.” 낱말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 “보통 얼마나 한글을 읽으시나요?” 이어 물었습니다. “보통은 없어요. 저마다 달라요. 그리고 저는 평균, 보통이라는 말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네?

네? 는 움찔한다.

네? 는 하얗다.

네? 는 관문이다.

 

아니…… 그 말을 왜? 어째서? 뭣 때문에? 평균? 이건 수학에서도 쓰고, 통계에서도 쓰고, 신문에서도 쓰고, 너무 흔하게 쓰는 말이잖아? 보통? 이건 또 왜? 보통 사람, 보통 일상 너무 평범한 말 아닌가? 뜻 밖에서 복잡해져 버렸다. 평균이라는 말, 보통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으려 한다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다음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실수할 것만 같아 꾹, 참았다. 실수가 반복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하니까.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곰곰해져 버렸다. 평균…… 보통…… 일반…… 표준…… 평범…… 정규…… 줄줄이 따라오는 보편성을 담보하는 낱말들의 행렬은…… 자연스러운…… 전반적인…… 총체적인…… 흔한…… 으로 이어지다가…… 버스 단말기에서 삐빅, 정상처리 되었습니다…… 정상처리…… 정상…… 뜻밖의 ‘정상’에 이르렀을 때…… 메모장을 급히 펼쳐 필사해 둔 일라이 클레어의 문장을 뒤졌다.

 

메모 1.

“정상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불리는 이 기준들은 평균으로 알려진다. 평균이란 가장 일반적이고 최상인 상태의 몸-마음으로 제시되고, “우리”라는 집단을 설명하는 말로 쓰인다.”[ref]Clare, E.(2017), Brilliant Imperfection, Duke University Press, pp. 173-174. 하은빈 옮김(2023),《눈부시게 불완전한》, 동아시아, 298쪽.[/ref](일라이 클레어)

 

‘정상’이라는 낱말은 평균, 보통, 일반, 표준……과 같은 보편성을 담보하는 낱말들을 정박시키는 인식론적 항구이자, 거점으로 있는 건 아닐까. 규범(norm)을 따르는 평균-보통-일반-표준-정상(normal) ‘우리’와 다르다고 상상되는 비정상(abnormal) ‘무리’로 장애인, 홈리스, 트렌스젠더 성노동자,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표상되는 걸까. 평범하고 익숙한 낱말이었던 ‘정상’이라는 낱말이 뜻밖이었다. 메모장을 조금 더 넘겨 보았다.

 

메모 2.

우리가 나눠 쓰는 이

낯설고 부패한 천국의 한 구석[ref]오드리 로드, 송섬별 옮김(2020), 《블랙 유니콘》, 움직씨 출판사, 38쪽.[/ref](오드리 로드)

 

병원 앞에 붙어 있는 ‘정상’ 진료, 식당 앞에 붙어 있는 ‘정상’ 영업, 라디오 교통 정보 방송에서 나오는 ‘정상’ 주행. 박정희 정신으로 나라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통해 교육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나라 꼴이 ‘정상’이 아니다. 수도 없이 들어 왔던 코로나19 예방 체온 측정기 앞에서 들었던,

 

“정상 체온입니다.”

 

뜻밖에서 소스라친다.

뜻밖의 시간은 퍼렇다.

뜻밖으로 누군가 뛰쳐나간다.

 

들리기 시작했다, 는 사건은 언어의 정전기를 발생시킨다. 나도 모르게 수업을 ‘정상’ 진행합니다, 하거나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야, 라거나 하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려 할 때. 목구멍 안에서 튀는 정전기에 소스라쳤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보통’은 이러지 않나? ‘대체로’ 저러지 않나? 이해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럴 때 이러지 않나? ‘평범’한 사람들은 저러지 않나? 보통과 일반으로 끊임없이 ‘정상성의 기준’ 삼으려 하는 마음을 만날 때면 “내면 깊숙이 이식된 억압자의 조각”(파울로 프레이리)을 맨발로 밟아야 했다. 메모장을 조금 더 넘겨 본다.

 

메모 3.

“병신들이 출근 시간에 처기어 나와서 지랄이야. 이게 정상이야? 미쳤어? 몸이 병신이면 마음이라도 병신이 아니어야지. 염병을 하고 있네.”(지하철 시민)

 

병신, 지랄, 미친, 염병, 이런 단어들 사이에 정상도 함께 놓여 있다. 역겹고 불쾌하다. 몸 어딘가 충혈된다. 병신, 지랄, 미친은 나도 자주 썼던 말이다. 이제 이 말을 혀에서 도려낼 때가 되었다.

 

메모 4.

혀를 칼날처럼 벼릴 수 있게

어떤 언어든 필요하고

뱀이 내 피 아래에서 잠든 동안에도

의식은 깨어 있다.[ref]오드리 로드(2020), 앞의 책, 33쪽.[/ref](오드리 로드)

 

무장애 숲길, 결정 장애, 장애물 달리기…… 거슬린다. 장애가 없는 길을 만들거나, 장애가 있어 결함이 있다거나, 장애를 뛰어넘거나…… 장애는 불편하고, 열등하고, 정상이 아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니야. 장애는 특별한 능력이고, 남다른 능력이지. 우리의 친구들 장애우들 환영합니다~.


메모 5.

“당신들이 나를 장애인, 불구, 병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고, 아무도 설명할 수 없도록 고안된 순수한 언어적 쓰레기처럼 여겨지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고만 하지 말라.”[ref]Mairs, N.(1986), Plain Text, Tucson : University of Arizona Press, p. 10.[/ref](낸시 메어스)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인문화예술축제’가 펼쳐지고 있던 날. 넥타이를 맨 비장애인-남성 사회자가 말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저희에게 희망의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신 장애인 연주자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내 옆자리에 있던 장애인 동료가 읊조렸다.

 

“씨발, 말 좆같이 하네.”

 

저는 한국말이 서툽니다.

저는 한국말을 잘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아름답게 하고 싶습니다.

 

메모장을 덮습니다. 어떻게 이 세계를 다시 발음해 볼까,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 생각합니다. 뜻밖에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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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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