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리뷰] 나의 싸움이자 너의 싸움이면서 우리의 싸움이었던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영실)

나의 싸움이자 너의 싸움이면서 

우리의 싸움이었던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 청소년 기후행동 외 씀,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교육공동체 벗, 2020



영실

kanghansontop@hanmail.net

경남 지역 고등학교 국어 교사.

고독한 삶의 가운데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싶어, 읽고 쓴다.




학교에서 활동가 학생을 만난다는 것


학교에서 일하며 ‘활동가’인 학생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나는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했다. 활동가인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었다. 학교에는 (당연히) 그 학생들과 내가 ‘쳐내야’만 하는 ‘각자의 싸움’이 있기 마련인데, 학교와 교사들은 우리를 늘 한 프레임 안에 가두려 했다. 학생들이 무언가를 하려 들면 일단은 눈을 세모처럼 뜨고 “누가 시켰냐?”(일명 ‘배후가 누구냐?’는 말. 당시에도 웃겼고, 지금 쓰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다)라며 의심했고, 내가 학내 사안에 대해 어떤 의견을 표시하면 “학생들에게 인기 얻으려 한다”라고 빈정댔다.


어느 날은 학생 몇 명이 편지 형식의 글을 복사해서 모든 교사들의 자리에 올려 두어 온 교무실이 술렁댔는데, 하필 ‘교사분들께’라는 표현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교사들은 편지에 적힌 내용은 읽지도 않고 시작 시점에 나온 그 다섯 글자에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교사들’이라니! ‘선생님’도 아니고 ‘교사들’이라니!!!) 나는 숨을 골랐다. ‘교사’라는 말은 ‘학생’과같은 층위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며 그 자체로 하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뒤에 ‘분’이 있고 ‘께’가 있지 않느냐, 학생들이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라고 내가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검열한 그 말을 내뱉었을 때 순간 싸늘해지던 교사들의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 교사가 내게 물었다.

“그 글 쓸 때 선생님도 같이 있었습니까?” (“니가 시켰냐?”의 다른 버전이다.)


각자 하는 싸움에도 이 정도인데 함께하는 싸움에서는 오죽했을까. 신이 나서 이것저것 도모하고 기획했지만, 우리는 갈수록 고립감에 위축이 되었다. 쟤들은 너무 과격해, 쟤들은 너무 앞서가……. 학생인권조례 투쟁을 하면서는 교사들이 멀어져 갔고, ‘나이주의’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는 학생들이 떠나갔다. 때로는 우리만 저만치 앞서가는 느낌이 들어,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 앞서 ‘고단한 일’이라 표현했지만 사실은 — 그들과 함께여서 고단한 날들보다 든든한 날들이 훨씬 많았다. ‘이 학교에서 나의 진정한 동료는 학생들이구나’라는 생각. 우선 우리는 거칠게나마 명백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라면 산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추진력이 넘쳤다. 게다가 심지어, 교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느끼기 힘든 상호 존중과 신뢰의 감정까지. 우리는 애정이라고도, 혹은 연대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로 충만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이런 감정.

“선생님, 제가 옆에 같이 서 있어 드릴까요?”

경남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등굣길 교문 앞에 홀로 서 있었을 때, 잔뜩 긴장한 내 옆으로 슬며시 다가온 학생의 다정한 한마디. 이 말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그 순간의 느낌을, 아마 나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들이 졸업 등의 이유로 학교를 떠났거나 고3이 되어 학내 문제와 조금쯤은 멀어졌기 때문이고, 그 이후의 다른 학년에선 학생운동에 관심 있는 학생을 아직 못 만났기 때문이며, 코로나19로 인해 학내의 모든 활동이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가끔 외롭고, 종종 ‘우리의 빛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고단하기는 했지만 몹시 든든했던 시절. 그때의 학생 동료들이 느꼈을 마음까지. 그리고 때마침 이 책이 내게로 왔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



누군가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열두 명(팀)의 청소년 필자가 함께 썼다. 여기서 포인트는 마땅히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유예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책은 크게 세 꼭지로 나뉜다.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 보자면 1부는 페미니스트로서, 장애인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난민 친구를 둔 사람으 로서 세상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행동한 이야기이다. 1부를 읽는 내내 나는 필자들의 삶의 길을 따라갔다. 특히 그들을 따라 들어간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는 자주 읽기를 멈추어야 했는데, 내가 일하는 곳이기도 한 그 공간이 차별과 혐오가 공기처럼 떠도는 곳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조신하지 못하게’ 기가 세고 목소리가 크면 일단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곳, ‘가기 싫은 이유’만으로 한 벽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는 곳, 페미니즘을 ‘과격하다’고 여기는 곳, 단편적인 내용의 영상들을 상영하고 ‘장애 이해 교육’을 했다고 말하는 곳, 재난 대피 훈련에서조차 장애인은 배제되는 곳, 성소수자인권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학생에게 ‘너 동성애자냐’라고 대놓고 물을 수 있는 곳, ‘어린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집회를 한다’고 비아냥댈 수 있는 곳.


이런 척박한 곳에서 기꺼이 용기를 냈을 그들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좋은 ‘교사 동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말을 바꾼다. 어쩌면 나도 그들을 학교 현장에서 만났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나 역시 그들에게 그저 ‘방관자’였던 건 아닐까. 자꾸 스스로를 돌아보 느라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였고 학생인권운동가였던 그들 옆의 ‘교사인’ 동료로서 내가 얼마쯤은 비겁했음을 고백한다. 내가 동료 교사들 눈치를 보며 그들의 싸움을 외면한 적도 있음을, 투쟁 방식을 ‘코칭’한답시고 ‘표현의 부드러움’ 운운하며 그들에게 ‘정중함’을 요구하기도 했음을, 입시의 최전선에서 입시 거부 운동을 했던 이가 고3의 삶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돕지 못했음을, 못하고 있음을. 나만큼 그들도 외롭고 위축 되었을 텐데, 나의 고통에 신경 쓰느라 비겁하게 고개 돌렸던 순간들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돌아보게 되었다.


1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운 이들이 자책하고 후회하는 장면이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활동가인 최유경은 페미니스트들이 과격하다는 말을 정작 여학생들로부터 듣게 되었을 때 ‘동의할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는 고립감’을 느꼈고, 결국 ‘학교를 바꾸지 못하고 졸업한 것을 조금 자책했다’ 고 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인권 동아리를 만들고자 했던 이호는 동아리 회장이었던 자신의 자퇴로 인해 그 동아리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슬픔을 아주 깊이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을 느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 주고 싶다. 당신들이 한 일은 차별과 혐오로 물든 그 단단한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내었으며, 그건 ‘실패한’ 것도 ‘자책할’ 일도 아니라고.


최유경의 여자 후배가 ‘그래도 물어볼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 준 것처럼, 이호의 후배가 ‘지금은 학교가 조금 더 ‘퀴어 프렌들리’하게 바뀌었다’라고 말해 준 것처럼, 장애인 유튜버 김지우가 ‘장애 여성의 롤모델까지는 아니지만 닮고 싶은 언니’로 살고자 하는 것처럼, 난민 친구의 추방을 막고 싶었던 김지유의 싸움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희망의 한 사례’가 된 것처럼, 누군가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책의 필자들은 이미 누군가의 앞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이다혜(2019), 《출근길의 주문 -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 한겨레출판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이 책의 2부는 참정권 운동,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기후 위기 대응 행동 등 ‘지금’ 처한 내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고자 실천한 이야기이다. 2부의 뭉클함은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유예하지 않겠다는 필자들의 선언에서 온다. 그들 스스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며, 그러므로 자신들의 행동을 ‘기특하거나 발칙한’ 일로 폄훼하지 말라는 선언.


‘참정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교사인 나 역시 분노가 치민다. 교사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은커녕 후원을 하지도 못하고, 학생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로 취급되는 — 반쯤만 시민인 — 나는, 청소년의 참정권만큼이나 교사의 참정권을 간절히 원한다. 하여 온전한 참정권을 지닌 너와 내가 각자 꿈꾸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서로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김윤송과 조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했다. 김윤송은 선거 연령이 18세로 하향된다 해도 자신은 당장 선거권을 얻지 못하는 나이였지만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참정권이 ‘단순히 투표소에서 도장 하나 찍고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소한 참여들에서까지 배제되는’ 차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참정권은 성숙하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성숙하다 할지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판단 능력이 부족하므로 선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소위 ‘어른들’이 밑줄 쫙쫙 긋고 공부해야 하는 대목이다.


조민은 선거법에 맞섬으로써 참정권이 보편적 권리여야 함을 보여 주었다. 촛불 광장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은 동등한 주체로 참여했는데, 촛불 광장이 앞당긴 대통령 선거에서는 촛불 광장의 시민들이 선거권자와 ‘무’선거권자로 쪼개졌다고, 명쾌하게 쟁점을 짚었다. 조민을 비롯한 청소년들의 ‘선거법 위반 자수 캠페인’은 내게 신선한 액션으로 다가왔다. ‘선거법을 적나라하게 어기겠다’는 그의 다짐은 아주 통쾌하다. 그의 입에서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되는 해방 세상을 꿈꾼다’는 이상이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 나올 때, 나는 그가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외쳐 묻게 된다. 나이가 중요한가?


하지현(하지)은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의 맛’을 본 순간에 대해 말했다. 그의 ‘결정적 순간’을 함께했던 나는, 하지가 ‘인권의 맛’을 아주 깊이 음미하고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특히 좋아했다. 인권을 공부하고 학내에서 학생인권 담론을 형성하면서도 하지는 늘 입시의 불안과 고독에 빠진 동료 학생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아파했다. 현실에 가로막혀 학생들의 공감대를 더 이끌어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자책하는 그였지만, 나는 그가 학내에서 이룬 작은 성과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선배로부터 이어받아 이끌어 준 ‘학생인권수다회’는 내가 기억하는몇 안 되는 ‘작지만 근사한’ 운동 중 하나다.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했던 그는 활동이 끝난 뒤 ‘이제 법 제정 운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학교에서 학생 생활 규정을 개정할 당시 학생의 의견을 전면 반영하지 못해 좌절했을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규정 개정 같은 거 하지 맙시다. 그냥 신나고 재밌는 걸 해요.” ‘서로가 서로의 밧줄이 되어 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신나고 재밌는 싸움. 그러게, 이런 게 우리의 싸움이지.


청소년 기후행동은 ‘기후 위기 당사자’로서 함께 연대해 싸우고픈 동료들이다.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그들의 적극적인 운동은 나태했던 사회의 인식을 한 걸음 성큼 내딛게 했고, 정책과 제도의 변화에도 마중물이 되었다. ‘이 상태로 2050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상상하면 감당이 안 되어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 하는 그들이 있어서,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릴 수 있어서, 곁이 든든하다.


내 주위의 많은 비청소년들은 불만만 있고 정작 행동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서는 거 못한다”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다고 뭐가 바뀌냐”라고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날 때가 많다. 하지만 김윤송과 조민, 하지, 청소년 기후행동 들은 비겁한 말 뒤에 숨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하고 싶어서’ 행동했다. 비록 지쳤고 승리하지 못했지만 지지는 않았다고, 그리고 계속 행동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둘 중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이들 편에 서고 싶다.



안도현의 시 〈모항으로 가는 길〉의 시행을 변형




세계는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3부는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유기 동물, 제주 제2공항 건설 등 지금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이들의 싸움에 연대한 이야기이다. 읽기 전부터 나는 궁금했다. 이들은 왜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명하게 되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답을 얻었다.


2014년에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김수현은 ‘화가 나서’ 6년째 세월호 참사와 함께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하고 자신들만 빠져나간 사람들의 무책임함, 국민을 구조하지 않고 숨어 버린 정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분노가 그를 움직이게 했다. 밀양과 8년째 연대 중인 이미르는 “와 줘서 고맙다. 정말 큰 힘이 됐다”는 한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찡하고 울려 왔’다고 한다. 별것 아닌데 고맙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연대로 실천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캣맘으로 살았던 김은결은 유기 고양이 ‘깽깽이’와의 만남으로 ‘동물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이규헌은 제주에서 무전여행을 하며 ‘주민들이 제2공항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자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되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퍽 감동적이었는데, 어떤 이유로든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여 연대한 사람들이 그 싸움의 과정에서 결국은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하나씩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집회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말할 권리’를 찾았다는 김수현, 밀양과 연대하며 자신이 살았던 성미산과 밀양-강정-세월호-영덕의 싸움이 하나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이미르, 동물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사회적 약자들도 보호할 수 있으며, 동물이 행복한 세상에서 인간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김은결, ‘왜 공항을 반대하는지’ 에 대해 자신만의 언어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규헌.


이들을 통해 나는 또 나만의 소중한 가치를 하나 품게 되었다. 바로, 고통을 덜어 내는 힘은 연결과 연대에서 온다는 것이다.



[정세랑(2020), 《목소리를 드릴게요》, 아작] 중 〈작 가의 말〉




가르치려 드는 일은 그만하고, 이제 공부합시다


오랜만에 제목에 충실한 태도로 책을 읽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그들의 입장을 생생한 언어로 들으며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으며, 이후에 마주할 학생 동료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러니까 나의 학생 동료들과 함께 도모하고 싸우던 그때도 나는 늘 그들로 인해 배웠다. 교사라는 위치가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 내가 쓰는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생’의 자리에 ‘여성’이,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이주민’이, 또한 ‘동물’이 올 수 있음을, 하여 세상 모든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는 내내 그들로부터 배운 셈이고, 결국 우리는 함께 성장한 것이다.


이건 사실 퍽 고마운 일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음을 깨닫고는 민망해진다. 지금이라도, 나의 그 학생 동료들에게 이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 주어 고맙다고. 


그리고 많은 비청소년들에게, 교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가르치려 드는 일은 그만 좀 하고,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부하자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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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